>>트럼펫의 마스터 김인배(金仁培) 김인배악단의 악단장, 청년음악의후견인 대표곡:석양, 내사랑, 운명 1932년 평안북도 정주 태생의 김인배는 어린 시절부터 주먹이나 종이나 대나무로 나팔 모양을 만들어 불던 소년이었다. 소년은 신호나팔을 부는 단계를 지나 중학교 (함흥의 영생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브래스 밴드에서 트럼펫을 불었다. 그 뒤 혈혈단신으로 월남했고 군에 입대하자마자 한국전쟁을 겪어야 했다. 다행히도 전쟁의 일선에서 비켜나 육군 군악대에 들어가서 트럼펫을 연주할 수 있었고 대구에서는 군악대원, 문관, 일반 연주자로 구성된 "대한 심포니"에서도 연주 생활을 계속했다. 거기서 안병서, 김동진 같은 현대 한국 음악의 선구자들로부터 사사를 받았다 (생략) 1960년대 초는 TV가 개국을 하고 민간방송이 속속 태동하는 등 방송의 매력이 음악인들을 휘어잡을 무렵이다. 김인배 역시 스물 아홉살 되던 무렵인 1963년 KBS 라디오의 악단장을 맡아 1년 정도 지휘봉을 잡았다. 그 뒤 1973년부터는 다시 TBC (동양방송) 라디오에서 악단장을 맡았고 1980년 언론 통폐합 뒤에는 KBS 라디오 악단(현재의 KBS 팝스 오케스트라의 전신)에서 악단장 생활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당시의 방송국 악단 생활이라는 것은 명예직일 뿐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뛰어든 곳은 "작곡가 생활"이다.(생략) 당시 작곡가들은 레코드사에 전속되어 활동하던 시기이다. 김인배는 오아시스 레코드를 시작으로 지구레코드와 대도레코드를 거치면서 “전속 작곡가”로 활동했다. 저작권 개념도 없던 시기라서 작곡가에 대한 수입은 주먹구구식이던 때였다.(생략) 출처:김종균교수의블로그
❤️ 💙 💜 화이팅 ❤️ 응원합니다 ❤️ 최고 👍 최고 입니다 ❤️
연주 잘합니다 응원합니다 ❤
운명 너무나 멋진 연주자시네요 치과의사 하시길 잘 하셨어요 음악인은 생명이 짧아요
대우도 못 받고 사는게 힘들죠 강성일님 존경합니다
고.김인배선생님의 {운명}연주 잘 들었습니다
엄청 떨리셨을텐데... 집중하시는 모습...
대단하십니다 🎺👍
#나팔나팔
62번째 좋아요 등록합니다 와웅
아주아주 좋아요
즐감합니다 😅😅😅😅😅
너무 멋있는 연주입니다~~^^
연주 듣는 순간 가슴이 울컥 합니다
감사합니다
>>트럼펫의 마스터 김인배(金仁培)
김인배악단의 악단장, 청년음악의후견인
대표곡:석양, 내사랑, 운명
1932년 평안북도 정주 태생의 김인배는 어린 시절부터 주먹이나 종이나 대나무로 나팔 모양을 만들어 불던 소년이었다. 소년은 신호나팔을 부는 단계를 지나 중학교 (함흥의 영생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브래스 밴드에서 트럼펫을 불었다. 그 뒤 혈혈단신으로 월남했고 군에 입대하자마자 한국전쟁을 겪어야 했다. 다행히도 전쟁의 일선에서 비켜나 육군 군악대에 들어가서 트럼펫을 연주할 수 있었고 대구에서는 군악대원, 문관, 일반 연주자로 구성된 "대한 심포니"에서도 연주 생활을 계속했다. 거기서 안병서, 김동진 같은 현대 한국 음악의 선구자들로부터 사사를 받았다 (생략)
1960년대 초는 TV가 개국을 하고 민간방송이 속속 태동하는 등 방송의 매력이 음악인들을 휘어잡을 무렵이다. 김인배 역시 스물 아홉살 되던 무렵인 1963년 KBS 라디오의 악단장을 맡아 1년 정도 지휘봉을 잡았다. 그 뒤 1973년부터는 다시 TBC (동양방송) 라디오에서 악단장을 맡았고 1980년 언론 통폐합 뒤에는 KBS 라디오 악단(현재의 KBS 팝스 오케스트라의 전신)에서 악단장 생활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당시의 방송국 악단 생활이라는 것은 명예직일 뿐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뛰어든 곳은 "작곡가 생활"이다.(생략)
당시 작곡가들은 레코드사에 전속되어 활동하던 시기이다. 김인배는 오아시스 레코드를 시작으로 지구레코드와 대도레코드를 거치면서 “전속 작곡가”로 활동했다. 저작권 개념도 없던 시기라서 작곡가에 대한 수입은 주먹구구식이던 때였다.(생략)
출처:김종균교수의블로그
고향을 버리고 왜 도망온겨 ?
삐라 날리지 말고
남쪽에서 열심히 생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