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 코흘리개 시절... 임창용 선수가 1:3 트레이드 되던 충격을 잊지 못합니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던 꼬꼬마 시절이라서 임창용선수가 잘하는건 어렴풋히 알았는데 그래도 선수 1명이랑 3명이랑 바꾼다는게 꼬맹이로썬 이해가 쉽지 않았습니다 ㅋㅋ 그래서 개인적으론 임창용 선수 트레이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용규 홍현우 받고 이원식 소소경 LG로 간 트레이드가 기억나죠. 홍현우 전설은 시즌 초반 주전 3루수로 나서는 듯 하더니 원정 경기에서 홈런 하나 치고 은퇴하고.. 그리고 타이거즈는 몇 년 동안 쏠쏠하게 활약해준 리드오프를 얻었죠. 콧수염 없고 앳된 이용규..ㅎㅎ 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만 여전히 기억납니다
80년생, 91년부터 야구에 꽂혀 살던 소년이 목격한 가장 충격적인 트레이드는 한대화 - 김상훈 트레이드였습니다.ㅠㅠ 좌타 거포를 원했던 코감독님... 왜 한대화를 버렸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됩니다. 기대했던 홍현우 선수가 한대화 선수의 빈 자리를 완벽하게 매운 것도 아니고...ㅠㅠ KBO 최고의 클러치히터를 꼽으라면, 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한대화를 꼽을 겁니다. 현역시절 내내 개인 타이틀이라곤 타격왕 타이틀 하나가 전부인 한대화 감독이지만, 86년 한대화가 해태로 온 후(물론, 선동열의 입단 이후) 한국시리즈 4연패를 합니다. 한대화는 기록 외적으로 더 팀에 공헌이 많았던 선수로 기억합니다.
한대화와 해태 구단은 91년 연봉협상 부터 극심한 갈등으로 , 서로 '어차피 내 보내야 할 선수!'와 '어차피 떠나야할 팀!'으로 이별은 이전부터 기정사실화 되었습니다. 한대화는 92년부터 하향세를 보인 것도 트레이드 원인. 홍현우가 한대화를 대신한 첫 해인 94년은 부진했지만 95년부터는 한대화 보다 좋은 성적을 올렸기에 해태의 결정은 틀린 것은 아니였죠. 다만 김응용 감독이 원한 엘지 선수는 2루수 박종호였었는데 그게 어긋나서 김종국이 입단하기전까지는 2루수는 해태의 약점이 된 것이 아쉬었죠.
태평양으로 간 김일권 선수는 불고기 항명사건의 여파로 알고 있지만, 불고기 항명은 핑계였고 구단에선 노쇠화가 왔다고 판단한거 같습니다. 당시 토사구팽으로 트레이드 된 선수들에겐 상처 였겠지만, 노쇠화가 왔다고 판단된 선수들은 가차없이 트레이드 시키고 대체할 새로운 유망주에겐 기회를 주며 키웠던 코감독의 뛰어난 조직관리 능력과 안목을 엿볼 수 있죠.
어렸을때 코흘리개 시절... 임창용 선수가 1:3 트레이드 되던 충격을 잊지 못합니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던 꼬꼬마 시절이라서 임창용선수가 잘하는건 어렴풋히 알았는데
그래도 선수 1명이랑 3명이랑 바꾼다는게 꼬맹이로썬 이해가 쉽지 않았습니다 ㅋㅋ
그래서 개인적으론 임창용 선수 트레이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김성한 감독님 은퇴 하실때이종범 성님 주니치로 이적하셨을때 눈물을 흘렀습니다.이기적인 생각일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참 슬픈일이였습니다.
이종범 코치는 일본에서 성적과는 별개로 동료들과 화기애애하게 잘 지냈고 인생에서 필요한 여러가지를 깨닫게 되어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 이었다고 기억하더군요.
옛 타이거즈에 대해 선수님들 감독님들 비하인드스토리 여러 에피소드들 알고싶어서 유튜브 찾아보다가 우연히 알게됬어요~~~좋은 영상 감사합니다~~앞으로도 챙겨볼께요~~전설의 해테 타이거즈 현재도 KBO에 명문구단 기아 타이거즈 올 시즌 호랑이해니깐 일한번 만들어 보자~~
최고의 트레이드 한대화 김상현!!!
최강 💥 해태 타이거즈 왕조 ~
화려한 선수 생활 하다가 * 타팀 으로 이적 한 김일권 손일섭 송유석 전설 모두🤗타이거즈 올드 팬들은 전성기 시절을
영원히 ❤️ 기억 합니다
2022시즌 기아 타이거즈 우승 🏆 입니다
와서 보배가된 선수들이 너무나많습니다 그렇지만 너무아픈이별도 많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임창용성님과 장성호성님때가 제일 슬펐습니다 특히 타팀에서 타팀유니폼을 입고 나왔는데 같은 응원가가 나오던 그때 채널돌려버렷음
이명기 이우성 트레이드요
몇날며칠을 울었는지 ㅜㅜ
이용규 홍현우 받고 이원식 소소경 LG로 간 트레이드가 기억나죠. 홍현우 전설은 시즌 초반 주전 3루수로 나서는 듯 하더니 원정 경기에서 홈런 하나 치고 은퇴하고.. 그리고 타이거즈는 몇 년 동안 쏠쏠하게 활약해준 리드오프를 얻었죠. 콧수염 없고 앳된 이용규..ㅎㅎ 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만 여전히 기억납니다
44번 송일섭 어르신을 보니 백일섭 배우가 떠오름
아무리 프로라지만 토사구팽인거 같은 느낌도있어서 씁쓸하고 아쉬운 감정도 마니 들긴하네요;;그래도 야구팬 비롯 국민들한테 충분히 힘을 주셨던분들이었다는 건 변함없죠
저런 비정하리 만큼 냉정한 물갈이가 있었기에 타이거즈 9회 우승의 금자탑을 세울 수 있었던 거죠.
보통 왕조라고 말하는 팀들이 주전과 백업 선수들의 세대교체가 늦어져 왕조 이후 몇년간 암흑기를 걷는거 생각하면 코감독의 조직관리, 운영 능력은 최상급으로 보여 집니다.
영상의 선수들이 서정환 선수처럼 필요해 의한 트레이드가 아니라 선수보복 차원의 트레이드라 너무 안타깝습니다. 트레이드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보복성 트레이드는 없어져야 합니다
한대화, 서정환 트레이드 좋아요
임창용, 장성호, 김상현 맘이 아팠어요
다행히 임창용 와서 좋았어요 김상현 또 가서 슬펐음 그러나 임창용도 은퇴해서 맘이 아픔
트레이드를 하니까 출연하신분들은 짜증나겠죠.
박경완이 1군 콜업된 건 김원형때문인데...ㅎㅎ
정말 몰랐을까?
80년생,
91년부터 야구에 꽂혀 살던 소년이 목격한
가장 충격적인 트레이드는
한대화 - 김상훈 트레이드였습니다.ㅠㅠ
좌타 거포를 원했던 코감독님...
왜 한대화를 버렸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됩니다.
기대했던 홍현우 선수가 한대화 선수의 빈 자리를 완벽하게 매운 것도 아니고...ㅠㅠ
KBO 최고의 클러치히터를 꼽으라면,
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한대화를 꼽을 겁니다.
현역시절 내내 개인 타이틀이라곤 타격왕 타이틀 하나가 전부인 한대화 감독이지만,
86년 한대화가 해태로 온 후(물론, 선동열의 입단 이후) 한국시리즈 4연패를 합니다.
한대화는 기록 외적으로 더 팀에 공헌이 많았던 선수로 기억합니다.
실력보단 불화를 이유로 보낸 게 아닐지 ㅠㅠ
한대화와 해태 구단은 91년 연봉협상 부터 극심한 갈등으로 , 서로 '어차피 내 보내야 할 선수!'와 '어차피 떠나야할 팀!'으로 이별은 이전부터 기정사실화 되었습니다. 한대화는 92년부터 하향세를 보인 것도 트레이드 원인. 홍현우가 한대화를 대신한 첫 해인 94년은 부진했지만 95년부터는 한대화 보다 좋은 성적을 올렸기에 해태의 결정은 틀린 것은 아니였죠. 다만 김응용 감독이 원한 엘지 선수는 2루수 박종호였었는데 그게 어긋나서 김종국이 입단하기전까지는 2루수는 해태의 약점이 된 것이 아쉬었죠.
@@appetite4214 와 박종호 얻었으면 진짜 안 그래도 사기팀인데 더 극강 사기팀 될뻔... 박종호가 해태가서 적응을 잘 했을진 모르겠지만
태평양으로 간 김일권 선수는 불고기 항명사건의 여파로 알고 있지만, 불고기 항명은 핑계였고 구단에선 노쇠화가 왔다고 판단한거 같습니다.
당시 토사구팽으로 트레이드 된 선수들에겐 상처 였겠지만, 노쇠화가 왔다고 판단된 선수들은 가차없이 트레이드 시키고 대체할 새로운 유망주에겐
기회를 주며 키웠던 코감독의 뛰어난 조직관리 능력과 안목을 엿볼 수 있죠.
일권이형 트레이드는 팀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윈윈이었다 봅니다. 태평양으로 갔기 때문에 91년까지 선수로 뛰면서 프로 10년을 채울 수 있었죠. 계속 해태에 있었다면 은퇴가 빨라졌을겁니다. 거기가서 3할도 쳐보고 도루왕에도 다시 올랐죠.
OhUH
오 1등
타팀출신 배제하고 순혈 타이거즈출신으로 개편해야한다. 타이거즈 화이팅!!
2군 주전보다 1군 후보가 더 낫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