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석현-h3l 그 소수는 일본인으로 바뀌었다 일본인에게 지진을 일으켰다고 돌에 맞으며 창에 찔려 죽었다 똥줄에 비비는건 영상만봐도 일본이 더심했다 동아줄 잡다가 핵까지 쳐맞았다 길거리에 똥은 사람의 똥이아니라 소 말의 똥이다 그당시에 사람의 똥은 농사짓는데 사용되었고 사고팔정도의 가치가 있었기에 집에서 싸야하였다 역시 천방지추마골피의 마씨.. 이해가간다
1.상황 대한민국;세계 최빈국 거지국가 하나도 제대로 상대 못함 그래서 세계 초강대국 미국 응딩이 끼고있는 상황 일본제국: 세계 초강대국 미국하고 총력전 다른 한쪽으론 물량빨 중국 말기에는 소련까지 양면전쟁 총력전하는 상황 2.착취 강도 일제 강제징용=>전쟁 끝날쯤 국민 총동원할때 고작 9~11개월 대한민국 강제징용=>군대 2년 예비군 8년 40살 민방위 3.군인 대우 일제시대=당시 순사월급의 3배 대한민국=임금이 올라도 최저시급도 안됨 나라를 이따위로 운영해놓고 반일에 목메고 애국한답시고 징병제를 결사옹호함 일제시대 군대>>>>>좆한민국 군대
@@김서현-o3y9u 진짜 수준 ㅈㄴ 떨어지네; 니가 논문급 연설을 펼치든 말든 니 알아서 하고 1. 진짜 개 병신 논리 이건 진짜 국까 그 자체임 지금 한국 군사력이 6~7위 할텐데 나라 하나도 제대로 상대 못한다? 이건 국뽕이 아니라 중국 일본은 다시는 한국 강점 못함 한국 강점 할려면 자기네 나라도 망하거나 큰 타격 입을 각오 해야 하기 때문임 애초에 일본은 소련 없이도 개쳐발릴 운명이었고 중국은 반병신인 상태였는데 "우리 대일본제국은 무려 소련과 중국 미국 상대로 전쟁하다가 패전하였습니다" 이지랄 떠네 ㅋㅋㅋ 2. 닌 한국이 왜 강제 징용을 하는지부터 알아야함 위에 바로 북한이라는 적이 있기 때문이고 한국이 군사력 계속 올리는 이유도 그거임 일본 반일 때문에 징집령 내리는게 아니라고 ㅋㅋㅋ 3. 군인 월급은 븅신인건 맞음 애초에 니가 말하는데는 주장만 있지 근거가 하~나도 없는 허무맹랑한 니 일반적인 주장일 뿐임 일뽕 새끼야 ㅋㅋ
안타깝지만 이게 위안부의 진실임 위안부는 자발적창녀임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지금도 유흥업소나 안마방? 이런 몸 파는 곳에 여자들이 넘쳐나는데 왜 그 시절엔 창녀가 없었을거라고 생각하는거임?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강제로 끌고갔다거나 무슨 일 하는지 속여서 데려갔다거나 이런 건 같은 조선인 포주가 한 짓이고 상식적으로 몇천 몇만명을 이런 방식으로 끌고 올 수 있었겠음? 이건 상식의 문제
의외로 임팔 작전이 1g도 옳은 구석이 없는 작전은 아니었습니다. 무타구치 렌야는 대략 2주 남짓한 보급품을 가지고 전투할 것을 지시했는데 임팔 전역을 3개 지역으로 나누면, 최북단의 요충지 임팔과 최남단의 2개 사단이 주둔한 기지, 그리고 임팔과 기지를 잇는 좁은 길이 있었어요. 일본군은 우선 전차를 포함한 1개 사단으로 최남단의 2개 사단을 공격, 후퇴하는 사단을 길목을 끊은 일본군으로 하여금 좌우에서 갈아마시고 북단의 임팔에서 병사를 빼서 남쪽을 지원할때, 임팔 동쪽의 산을 타고 내려온 병사들로 하여금 무주공산을 치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요. 이 작전은 초반부에 거의 성공했습니다. 남쪽을 공격하는 1개 사단은 영국군 2개 사단을 후퇴시키는데 성공했고 중간지대를 공격하는 부대 또한 임팔과 남부 기지를 잇는 길목을 차단하는데 성공했어요. 심지어 무타구치 렌야의 계획대로 영국군의 대규모 보급기지 둘 중 하나도 점령했고요. 여기까진 계획대로 진행됐습니다. 문제는 남부 기지를 지키던 영국군이 너무나도 빠르게 철수하면서, 1년 걸려 세운 기지를 날려버렸고 임팔에서의 지원군 또한 빠른 속도로 중앙 부대를 압박했으며, 점령당한 보급기지 또한 퇴각하면서 싹 다 못써먹을 물건으로 만들어버리고 퇴각했거든요. 결과적으로 개고생하면서 아무것도 없는 폐허를 점령한 남부지역 일본군 사단은 보급품도 없는 상황에서 퇴각한 영국군을 쫓아야 했고 중앙 길목을 점거한 일본군 부대는 보급품 탈취에 실패한 와중에 엄폐물 하나 없는 맨땅에서 항공공격을 맞아가며;;; 임팔방면 지원군과 퇴각하는 사단 사이에 껴서 필사적으로 버티다 다시 그들이 왔던 지옥, 아니 고산지대의 정글로 쫓겨나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북부 임팔을 공격하던 부대는 2주 보급품을 가지고 한달 이상을 버텼는데요. 영국군이 지키던 고지를 점령하면서 밀어붙였지만, 임팔을 얼마 안 남긴 지점에서 퇴각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군은 고지 하나를 점령할때마다 엄청난 손실을 봤고 손실이 보충되지 않은 반면 영국군은 손실이 큰 부대를 다른 부대와 교체할 정도로 여유로웠어요. 심지어 일본군이 마지막으로 점령한 임팔 인근의 고지는... 영국군이 그냥 고지 하나를 놔두고 뒤로 물러난 덕분에 아무것도 없는 땅을 점령한 거지 일본군이 영국군을 이겨서 점령한게 아니다보니 준비가 철저하게 된 다음 고지를 공격할 여력은 없었어요. 임팔작전 최대의 문제점은 1. 보급 경시 - 밥이든 총알이든... 뭐든 있어야 병사들이 정신력으로 나머지를 커버할 수 있습니다. 2. 생명 경시 - 2천명 데리고 고지 하나를 점령할때마다 200명이 죽는다면, 일본군은 4개 고지를 점령하고 1200명이 남는다고 계산하는 희대의 얼간이들이었어요. 무타구치 렌야는 그중에서도 한손에 꼽힐 정도로 난장판인 인간이었고요. 3. 안일한 전략 - 작전이 2주 안에 끝나면 얼마나 좋겠냐만... 항상 최악을 생각해도 모자랄 판에 누구 하나 단 하나의 실수도 없고, 전황 변화도 생각하지 않은 단일 A플랜의 전략도 문제였습니다.
-임팔 작전으로 병력 9만 2천 명을 전투도 제대로 않고 1만 3천 명으로 줄여버린 팀킬에 성공하자 무타구치 렌야는 자결하는게 좋겠냐는 상투적 발언을 내뱉었다. 그러나 수석부관 후지와라 이와이치가 "아무도 없는 데서 하십시오. 누구도 방해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 패전의 책임 같으면 장군님이 할복하고도 남습니다."라며 조용히 권총을 내밀었다.
1. 조선시대는 수레바퀴를 안쓰고 왜 사람이 직접 가마를 끌었나?? 도로가 정비가 안되었고 산간 지역이 대부분이기에 수레를 달고 다니기가 어려웠다. 문제는 가마를 끌고 다닐 인부를 항상 소집해야 했기에 가까운 지역이 아닌 먼 지역같은경우는 인부들이 탈진하거나 호랑이 표범등에 습격을 당해 죽는 경우도 빈번하였다. 2. 왜 한강을 배를 타고 다녀야만 하였나?? 한강이남과 이북을 연결하는 다리를 연결할경우 왜적과 오랑캐의 침입에 위험해 질수있다는 생각에 다리 설치를 엄두를 못내었다고함, 임금이 직접 강남으로 움직일 경우 거대한 땟목을 연결해서 다리배를 만들어서 건너기는 하였으나 실질적으로 임금이나 관리등도 강남으로 이동이 많지는 안았기에 다리를 놓아서 다니는것보다 배를 타고 다니는걸 선택한거였음 , 물론 한강을 이동시켜주는 뱃사공은 지금으로 치면 전문직에 고소득자 였다는것은 사실 3. 조선은 왜 노비신문에게는 군역을 지게 하지 안았을까?? 조선시대는 철저한 계급사회였고 노비나 천민은 일반적인 시민의 계급이 아니였기에 시민으로 인정받을수있는 군역을 지게 하지 안았다. 이는 나중에 임진왜란, 병자호란때 개털리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 노비에게 군역을 안주었던 실질적인 이유는 사실 지방세력이 수백만명에 가까운 노비를 병력 휘하게 둘경우 왕권까지도 위협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였다고 보면됨 4. 조선은 왜 역병에 대단히 취약했을까?? 조선은 전염병이 생기게 되면 해당 지역은 봉쇄를 하고 지역 사람을 모두 매장을 하거나 다 죽였다고 함 문제는 전염병에 대한 걸 마마님 이라고 하면서 주술이나 제사등으로 해결하려 헀다는게 웃긴점이였음 당시 명나라에서도 의학이나 서양의료등을 얼마든지 전수 받을 기회가 많았음에도 성리학에 위배된다는 이유만으로 배우려 하지도 못했다는 건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 아닐수없음 5. 조선은 과연 국뽕을 할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인가?? 조선은 당시 국가 경제력은 일본의 도쿠가와 가문의 경제력에도 미치지 못하고 ,군사력은 당시 명나라 1개 성의 지방왕의 군대보다도 약하였고, 기술력은 유럽 암흑시대의 기초과학수준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조선은 어디를 보아도 국뽕을 할수있는 요소는 없다고 보는게 정답임, 다만 조선에 분명히 세계적인 위인이 나온것은 사실임 그러나 훌륭한 위인이나왔다고 해서 그 시대 나라가 좋았다고 보는건 역설적임 마치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등 명장들이 촉나라에서 나왔다고 해서 촉나라가 잘나간게아닌거처럼 말이다 1줄요약 1. 조선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였고 미개함의 극치인 나라였다.
도조히데키도 작전을 보고 보급문제,현실성,버마의 공백등이 해결 가능하냐고 물었지만 작전을 가져온 대좌는 그거에 대답을 하지 못했고 호통을 쳤지만 결국 한숨을 쉬며 목욕탕에서 결제를 해줬습니다. 그만큼 파벌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봐도 힘든 작전이었으며 히로히토도 이걸 보고는 이게 진짜 가능한 작전이냐며 물엇다고 합니다. 히로히토도 육군군사관학교를 나온만큼 식견이 없는건 아니지만 렌야는 실전경험을 가진 지휘관이고 히로히토는 어디까지나 이론만 아는 수준인걸 생각하면 이건 뭐...
매일은 아니지만 생각날때마다 들러서 올려주신 유익한 영상들 잘 보고있습니다. 혹시 언젠가 기회가 되신다면 고조선때의 역사도 이야기 해주실수 있으신가요?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주요 사건들이나 흐름은 그럭저럭 알고있는데 기원전의 이 땅에 있었던 역사에 대해선 거의 아는 것이 없어서 문득 궁금해지더라구요.
@에엑따 제가 이런 대화는 크게 싫어하는데 에옉따님 이덕일역사tv를 제대로 보셨나요. 이덕일박사님은 환단고기 외에 삼국사기(이 삼국사기도 설명을 하려니 너무 힘들고 책보고 체널 참고. )외에 중국 사료 등 여러 방대한 역사서를 바탕으로 우리의 왜곡되고 빼앗긴 역사를 바로 찾고자하시는 분인데 강당사학자들의 눈으로 보지마시고 이덕일역사tv 중에 많은 것이 아니라도 몇몆 체널이라도 보시고 이런 댓글 달기바랍니다. 계속 답글 남겨보아야 책 한권 읽은 수준으로 또 답글들 남길게 뻔해서 이번만 답글 남기고 에엑따님과는 더이상 답글 놀이 하지않겠습니다.
그런데 전술적인 관점에서 냉정히 보자면 무다구치 렌야의 작전은 상대가 오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 곳을 들이치는 것이고 이런 형태의 공격은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고 칭기즈칸의 부대가 텐산 산맥을 넘은 것과 같은 형태로 역사에도 남아 있습니다. 다만 렌야는 칭기즈칸이 아니고 일본군은 몽골군이 아니었죠. 몽골군이 텐산산맥을 넘을 때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양털 안을 발효시켜 그 열기로버텼다고 하는데, 그건 혹독한 몽골 초원의 추위를 견디던 몽골 부족의 지혜였죠. 베어 그릴스도 그런 생존 기법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진짜 렌야가 일본인이 비건이라고 생각했다면 작전 전에 밀림에서 자체적으로 먹을 수 있는 거리가 있는지 연구를 하든가 차라리 풀뿌리와 나무껍데기 캐먹으며 보릿고개를 넘기던 조선인들을 데리고 오는 게 맞았습니다(당연하게도 농담이죠)
임팔작전의 문제... 일단 3개 사단의 편제가 부족해서 평군 70%도 체우지 못했다. 그러면서 영국군의 군의 규모를 너무 축소해서 파악하고 영국군 자체를 무시함. 렌야가 전쟁초반 영국군 보급품을 얻어서 달달하게 빨아본 경험으로 부족한 보급품을 영국군에게 취한다였는데 영국군이 퇴각할때 1년동안 세운 기지마져 불태우고 퇴각해서 아무것도 얻은게 없었음. 작전 후반때 상당량의 보급품이 있는 기지를 점령에 성공했지만 지칠대로 지친 일본군들은 영국군의 반격에 버티질 못해 아무것도 얻지 못함. 결론 - 자신들의 군의 정원도 못체우면서 적을 과소평과하였고 오래전 경험에만 의존해 현제 상황 파악도 못하여 강행해서 망함.
임팔작전은 지도상으로는 뛰어난 보병기동과 공격시기를 포착한 괜찮은 작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차대한 '지피지기'기가 제대로 안되어 제대로 망한 사례입니다. 일본군은 영국을 너무 얕잡아봤고, 청야전술에 대한 대비가 없었습니다. 영국은 이전 전투와 달리 전력이 강화되었고, 특히 청야전술과 공중보급을 통해 일본의 공격을 아주 잘 막아냈습니다. 전술적으로 아무리 뛰어나도, 보급과 정보라는 전략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패전을 면치 못한다는 중대한 교훈을 남겼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신약성서 마가복음 11:23절의 말씀이면 대한민국 군대 수뇌부들의 생각들! 지금도 무다쿠치의 후예들은 군에서 산을 옮길 것을 종용하고 있으며, 불쌍한 우리 젊은이들은 오늘도 삽질을 합니다.
칭기즈칸 몽골 군대 방식 - 바짝 말려 아예 가루로 만들어서 자루에 담은 양or소 한마리분의 육포. 마찬가지로 바짝 말려 가루로 만든 우유. 물과 마유주 예비화살 예비 활. 등등을 몽골병사(기병)개인당 몰고다니는 최소 여러 마리의 말들에다 실어두고 몰면서 달림. 타고다니는 말이 지치면 바로 갈아타고 말위에서 잠도 자고 먹는 것까지 왠만하면 말위에서 달리면서 다함. 그 기동력 덕분에 몽골군이 쳐들어온다! 라는 소식을 듣고 피난할 짐을 싸고 있을 때 벌써 쳐들어옴. 순식간에 털고 불태우고 살아있는건 수레바퀴보다 크면 다죽임.
17:20 서로 책임 않지겠다는 소리잖아!!! 지금도 일본 자민당 정부가 저런듯 합니다! 후쿠시마원전사건, 불화수소사건, 2020(2021)도쿄올림픽, 코로나19대응, 천재지변... 등등 일어난 사건 혹은 사후처리에 대해 책임지는 인간이 아무도 없이 또 자민당! 항상 유용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Hwan1616 아님. 몽골이 산많은 아프간지역도 중동 사막지역도 다 텀. 몽골이 빠른 기동력을 가지고 보급이 거의 없어도 되는 이유는 말우유와 육포였죠. 육포는 장기간 유통이 가능하고, 물만 데워서 던져놓고 먹기도 햇슴다(샤브샤브 원조). 말도 기병 한명당 3-4마리씩 끌고다녓는데, 말도 지치기에 교대로 타기 위함이엇지만 위급시(보급x) 그 말을 잡아먹엇습니다. 무다구치 렌야가 말한 현지수급(약탈)도 기본이엇죠.
참고로 추가 정보를 더 설명하자면 1938년에 우한이 함락되고 나서 중국 전선이 지지부진 한 건 맞았고 떨어지는 돈과 자원을 축적하기 위해 동남아로 가기로 결정하고 진주만 공습을 하게 되면서 미국을 적으로 끌어들였고 1944년 태평양 전선에서 가망이 없음을 깨달은 일본군은 대륙타통작전 (이치고 작전) 을 감행하여 중국 남부의 항구도시를 장악한 일본군과 화북과 화중의 일부를 장악하고 있는 일본군이 중화민국 남부에서 만나서 중국 남부의 중국군들을 대규모로 포위하는 작전이었으며 실제로 성공했습니다. 물론 이미 미군의 압도적인 힘으로 일본제국은 패망의 길이 멀이 않았고 동남아의 깊숙한 골짜기로 일일이 철도를 연결하여 자원을 신속하게 중국전선으로 옮긴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분명 이 작전은 동아시아 역사에 영향을 미쳤고 중국 국민당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줬습니다. 국민당군은 50만의 일본군이 감행한 이치고 작전을 막느라 65만의 병력이 희생되었고 화북에서 팔로군과 국민당 유격대들을 소탕하여 가까스로 후방의 치안을 유지하는데 성공했지만 치안유지에 필요한 병력들까지 죄다 이치고 작전에 투입시키면서 일본군 점령지는 거의 무주공산 상태가 되었고 그것은 훗날 국민당을 대륙으로 쫓아내고 자신들 공산당이 대륙을 통치하는데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군은 작전에 50만의 병력들과 800대의 전차 10만 마리의 군마 등을 동원하였는데 그 많은 장비들을 다 만들려면 시간이 필요했을 거고 때문에 1944년에 작전을 시행했을 가능성도 높지만 아마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미국이 참전하기 전) 일본군이 작전을 수행했다면 중국은 붕괴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일본군 쪽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1944년에 작전을 시행했을 때도 충칭이 함락위기에 놓이는 등 중국군에게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었고 실제로 작전 기간 중에 중국 장강의 3전구는 아예 일본군에게 포위당하기도 했습니다. 영상에서 일본군 보병들이 임팔의 험준한 산맥들을 무거운 짐을 지고 장거리를 뛰어내는 걸 보고 만약 일본군에게 작전을 수행할 만한 역량이 44전 전에 만들어져 있었고 실제로 임팔작전처럼 동남아와 중국 전선 사이로 보병들을 이용해 자원을 수송했다면...한 번 쯤 궁금하게 생각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조선을 구할 기회를 얻고 싶소" 원균의 비장한 그 한마디는 어느 이에게는 실소를 터트리게 만들 수 있었지만, 눈 앞의 존재는 그러지 않았다. "이제 와서 말이요?" 그의 그 질문에 원균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무릇 사내로 태어나 업적을 남기고, 이름을 남겨야 하는 것이 도리인데 나는 오명을 남겼으니 어찌 한이 없겠소" 그러더니 그는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땅을 보며 남은 한탄을 토해낸다. "나에 의해 조선이 망할 뻔 하고, 왜군이 승리할 뻔 했소. 그 일은 평생 후손들에게 비웃음과 조롱을 받게 되겠죠." "어찌하고 싶소?" 눈 앞에서 검은 소복을 입고 걸어가는 이의 질문에 원균은 웃으며 같이 걸었다. "다시 태어나 조선을 위해 싸우고 싶소." "그런다고 이미 업혀진 오명은 사라지지 않소." "상관 없소. 내 개인적인 욕심이니." 그는 한 쌓인 길을 남기며 다시 한 번 자신의 바람을 표현한다. "다시 한 번 태어나 조선을 구하고, 왜를 물러나게 하고 싶소." 앞서 걷던 이는 그의 바람에 진지하게 웃어주었다. "그리 되기를 기대하오." 먼 훗날, 그 바람을 갖고 그는 이 땅에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튼실한 사내 아이가 태어났어요!" 그 외침에 그의 아버지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 나라를 위해 훌륭한 장군이 될 이가 태어났구나!" 초롱초롱한 아이의 눈을 보며 그의 아버지는 그가 훌륭한 이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출산의 고통에 힘겨워하던 어미는 자신으 아기를 안으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우리의 아이 이름은 그걸로 정한 거죠?" 그 질문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소. 그 이름이 최고인 것 같소." 그러고 아기를 바라보며 아버지는 아기에게 앞으로 불리게 될 이름을 알려준다. "잘 들어라, 이것이 너의 이름이란다. 부디 이 이름으로 나라를 위해 힘써주기를 바란다." 어미가 만족한 미소를 짓고, 아버지는 자상하게 속삭여준다. "렌야." 그것이 훗날 조선을 구하고- "무다구치 렌야! 그것이 너의 이름이란다!" 왜를 물러나게 할 조선의 희망이 가진 이름이었
그 명언이 안나오네 ㅋㅋㅋㅋ 식량이 없다고 하니깐 렌야 왈 "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다 식량이 없으면 풀을 뜯어 먹으면 된다" 라고 했음 그래서 진짜 일본애들은 풀 뜯어 먹으면서 진군했지만 미얀마가 정글이라서 온갖 독초가 많았기 때문에 일본군은 식용이 아닌 독초를 많이 먹어서 죽었다고 함
무다구치 렌야.. 당신은 훌륭한 독립군이었습니다
난존경함
어떤면에선 미국이랑 다이다이뜨는 개끼는 인정하야함..
어둠의 독립군 음해 ㄴㄴ
중일전쟁을 일으켜 일본을 중국이라는 수렁에 빠지게 한 김렌야 센세....
지금이라도 한국에서 훈장주어야함.
독립투사 렌야 장군님.. 당신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독립투사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 당신 덕분에 지금의 대공화국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구의아들 사회불만자라면서 누구보다 사회주의와 북한사회를 사랑하는군...
@@대구의아들 김일성이 독립운동한건 그렇다치는데 소규모전투만 존나한걸로 아는데? 큰건딱지 있나? 김좌진장군이나 김원봉단장보다 못한 새끼가 나라 세워서 한단 짓거리가 테러밖에 없는건가?
@@대구의아들 애잔하다~ ㅋㅋㅋㅋㅋ
렌야 장군님은 그렇게 팀킬을 수만명씩 시키고도 애국심을 갖고 일본 육군사관학교 교장까지 하면서 일본군의 전투력 저하에 큰 기여를 하셨습니다!!!
그런 렌야센세에게 탈탈 털린게 중국군 ㅋㅋ
아무리 이상한 명령이라도 까라면 까야되는 군대가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질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말이 정말 와닿는다. 우리나라 군 수뇌부도 반성해야된다. 까라면 까라는 마인드 싹 바꾸지 않으면 우리도 저꼴 안나리란법 없다.
훌룰한 적 장교보다 아둔한 아군장교가 더 무서운 이유.
조선엔 원균이 대표적.
군령태산~
우리도 남말할 처지가 아니다
원래 무능한 아군 지휘관이 더 무서운 법이죠......
625때 죽어도 전선을 사수하라는 상부의 명령때문에 개죽음을 당한 한국군 1개 대대와 윗대가리들이 빼돌린 군량으로인해 아사한 민병대가 상부의 무능함과 비리를 증명하지요
일본에게는 최악이지만 세계로써는 최선의 작전을 펼친 렌야장군..
그는 바람직한 비건으로써 기록에 남을것입니다
연합군이 훈장은 하나 줬어야 하지 않나요???
비건이래 ㅋㅋㅋㅋㅋㅋㅋ
그런 렌야에게 탈탈 털린 중국은 대체...
비건의 군대 일본군ㅋㅋㅋ
비건 돌격 ㅋㅋㅋㅋㅋ
어둠의 독립투사 렌야 장군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장군님의 대한독립을 향한 헌신에 눈물 한 방울 흘리고 갑니다.
흐흑.. 역시 홍석천 성님이시다.. ㅋㅋㅋㅋㅋ 애국심이 장난 아님
독립운동가 김렌야...
소수의 양반이 대다수 국민 노비로 부리는 문화
돌던져서 서로 죽이는 석전문화
똥줄에 똥꼬 비비는 문화
길에 똥싸는 문화
민족전통문화를 말살하려 하다니 일제의 만행에 치가 떨립니다
@@마석현-h3l 솔직히 그거 없앤건 ㄹㅇ 잘했다
@@마석현-h3l 그 소수는 일본인으로 바뀌었다
일본인에게 지진을 일으켰다고 돌에 맞으며 창에 찔려 죽었다
똥줄에 비비는건 영상만봐도 일본이 더심했다 동아줄 잡다가 핵까지 쳐맞았다
길거리에 똥은 사람의 똥이아니라 소 말의 똥이다 그당시에 사람의 똥은 농사짓는데 사용되었고 사고팔정도의 가치가 있었기에 집에서 싸야하였다
역시 천방지추마골피의 마씨.. 이해가간다
렌야는 전후에 전범으로 회부되었다가 무죄로 풀려났죠 연합군에 알게모르게 도움을 많이 줘서 연합군도 그냥 내버려 뒀고 그는 끝까지 자기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죠
전범재판에서 무죄받은 가장 큰 이유가
1. 임팔작전으로 인해 일본의 패망을 앞당김
2. 렌야 본인은 약탈 살인 강간 등 전쟁범죄를 일체 금지했음
이거때문이라고 하죠
@@Turn-Off 전쟁 범죄를 금지한 일은 잘했네요.
루머
@@Turn-Off 무타구치 렌야 때문에 중일전쟁이 일어난 것도 있습니다!
패전을 앞당긴 사람정도가 아니라 패망을 하게 만든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 안중근, 김구, 김원봉 만큼이나 대한독립에 큰 공을 세운 위인이라 생각합니다!!
@@exelre827 사실 광복군이 일제 군부에 침투시킨 스파이이자 독립운동가여셨던 거임ㅋㅋㅋㅋ
위대한 독립군. 우리나라정부는 당신의 공을 인정하지않지만 대한민국국민들은 당신을 애국지사, 무장독립투사로 추앙합니다.
게다가 진짜 인성도된게 절대 전범행위를 금한 진정한 인격자 위대한 장군
우리정부로부터 훈장받았다고 들었던거 같았는데 잘못알고있는건가?
곧 받는 답니다
잊혀진 독립군....렌야 장군님 덕분에 우리가 21세기 대한민국에 살고 있습니다.....
@bbb 찐
최고의 독립군 사령관 중 하나...
다크나이트
렌야센세는 체고조넘이시다. 최고중 하나가 아닌 독보적 존재..
1.상황
대한민국;세계 최빈국 거지국가 하나도 제대로 상대 못함
그래서 세계 초강대국 미국 응딩이 끼고있는 상황
일본제국: 세계 초강대국 미국하고 총력전
다른 한쪽으론 물량빨 중국
말기에는 소련까지 양면전쟁 총력전하는 상황
2.착취 강도
일제 강제징용=>전쟁 끝날쯤 국민 총동원할때 고작 9~11개월
대한민국 강제징용=>군대 2년 예비군 8년 40살 민방위
3.군인 대우
일제시대=당시 순사월급의 3배
대한민국=임금이 올라도 최저시급도 안됨
나라를 이따위로 운영해놓고 반일에 목메고
애국한답시고 징병제를 결사옹호함
일제시대 군대>>>>>좆한민국 군대
@@김서현-o3y9u 제국주의 군대와 일반적 군대가 같냐?
@@김서현-o3y9u 진짜 수준 ㅈㄴ 떨어지네; 니가 논문급 연설을 펼치든 말든 니 알아서 하고
1. 진짜 개 병신 논리 이건 진짜 국까 그 자체임 지금 한국 군사력이 6~7위 할텐데 나라 하나도 제대로 상대 못한다? 이건 국뽕이 아니라 중국 일본은 다시는 한국 강점 못함 한국 강점 할려면 자기네 나라도 망하거나 큰 타격 입을 각오 해야 하기 때문임 애초에 일본은 소련 없이도 개쳐발릴 운명이었고 중국은 반병신인 상태였는데 "우리 대일본제국은 무려 소련과 중국 미국 상대로 전쟁하다가 패전하였습니다" 이지랄 떠네 ㅋㅋㅋ
2. 닌 한국이 왜 강제 징용을 하는지부터 알아야함 위에 바로 북한이라는 적이 있기 때문이고 한국이 군사력 계속 올리는 이유도 그거임 일본 반일 때문에 징집령 내리는게 아니라고 ㅋㅋㅋ
3. 군인 월급은 븅신인건 맞음
애초에 니가 말하는데는 주장만 있지 근거가 하~나도 없는 허무맹랑한 니 일반적인 주장일 뿐임 일뽕 새끼야 ㅋㅋ
이걸 별별역사 버전으로 보게되는 날이 있다니 ㅠㅠ 감동입니다
오바하지 마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타깝지만 이게 위안부의 진실임
위안부는 자발적창녀임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지금도 유흥업소나 안마방? 이런 몸 파는 곳에 여자들이 넘쳐나는데
왜 그 시절엔 창녀가 없었을거라고 생각하는거임?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강제로 끌고갔다거나 무슨 일 하는지 속여서 데려갔다거나 이런 건 같은 조선인 포주가 한 짓이고
상식적으로 몇천 몇만명을 이런 방식으로 끌고 올 수 있었겠음? 이건 상식의 문제
@@김서현-o3y9u 이 미친새끼가 내 댓글에 이따위 답글을 써놓네
@@Apdo_dog 오바아님 ㄹㅇ
의외로 임팔 작전이 1g도 옳은 구석이 없는 작전은 아니었습니다.
무타구치 렌야는 대략 2주 남짓한 보급품을 가지고 전투할 것을 지시했는데
임팔 전역을 3개 지역으로 나누면, 최북단의 요충지 임팔과 최남단의 2개 사단이 주둔한 기지, 그리고 임팔과 기지를 잇는 좁은 길이 있었어요.
일본군은 우선 전차를 포함한 1개 사단으로 최남단의 2개 사단을 공격, 후퇴하는 사단을 길목을 끊은 일본군으로 하여금 좌우에서 갈아마시고
북단의 임팔에서 병사를 빼서 남쪽을 지원할때, 임팔 동쪽의 산을 타고 내려온 병사들로 하여금 무주공산을 치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요.
이 작전은 초반부에 거의 성공했습니다.
남쪽을 공격하는 1개 사단은 영국군 2개 사단을 후퇴시키는데 성공했고
중간지대를 공격하는 부대 또한 임팔과 남부 기지를 잇는 길목을 차단하는데 성공했어요.
심지어 무타구치 렌야의 계획대로 영국군의 대규모 보급기지 둘 중 하나도 점령했고요.
여기까진 계획대로 진행됐습니다.
문제는 남부 기지를 지키던 영국군이 너무나도 빠르게 철수하면서, 1년 걸려 세운 기지를 날려버렸고
임팔에서의 지원군 또한 빠른 속도로 중앙 부대를 압박했으며, 점령당한 보급기지 또한 퇴각하면서 싹 다 못써먹을 물건으로 만들어버리고 퇴각했거든요.
결과적으로 개고생하면서 아무것도 없는 폐허를 점령한 남부지역 일본군 사단은 보급품도 없는 상황에서 퇴각한 영국군을 쫓아야 했고
중앙 길목을 점거한 일본군 부대는 보급품 탈취에 실패한 와중에 엄폐물 하나 없는 맨땅에서 항공공격을 맞아가며;;;
임팔방면 지원군과 퇴각하는 사단 사이에 껴서 필사적으로 버티다 다시 그들이 왔던 지옥, 아니 고산지대의 정글로 쫓겨나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북부 임팔을 공격하던 부대는 2주 보급품을 가지고 한달 이상을 버텼는데요.
영국군이 지키던 고지를 점령하면서 밀어붙였지만, 임팔을 얼마 안 남긴 지점에서 퇴각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군은 고지 하나를 점령할때마다 엄청난 손실을 봤고 손실이 보충되지 않은 반면 영국군은 손실이 큰 부대를 다른 부대와 교체할 정도로 여유로웠어요.
심지어 일본군이 마지막으로 점령한 임팔 인근의 고지는... 영국군이 그냥 고지 하나를 놔두고 뒤로 물러난 덕분에 아무것도 없는 땅을 점령한 거지
일본군이 영국군을 이겨서 점령한게 아니다보니 준비가 철저하게 된 다음 고지를 공격할 여력은 없었어요.
임팔작전 최대의 문제점은
1. 보급 경시 - 밥이든 총알이든... 뭐든 있어야 병사들이 정신력으로 나머지를 커버할 수 있습니다.
2. 생명 경시 - 2천명 데리고 고지 하나를 점령할때마다 200명이 죽는다면, 일본군은 4개 고지를 점령하고 1200명이 남는다고 계산하는 희대의 얼간이들이었어요.
무타구치 렌야는 그중에서도 한손에 꼽힐 정도로 난장판인 인간이었고요.
3. 안일한 전략 - 작전이 2주 안에 끝나면 얼마나 좋겠냐만... 항상 최악을 생각해도 모자랄 판에 누구 하나 단 하나의 실수도 없고, 전황 변화도 생각하지 않은 단일 A플랜의 전략도 문제였습니다.
-임팔 작전으로 병력 9만 2천 명을 전투도 제대로 않고 1만 3천 명으로 줄여버린 팀킬에 성공하자 무타구치 렌야는 자결하는게 좋겠냐는 상투적 발언을 내뱉었다.
그러나 수석부관 후지와라 이와이치가 "아무도 없는 데서 하십시오. 누구도 방해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 패전의 책임 같으면 장군님이 할복하고도 남습니다."라며 조용히 권총을 내밀었다.
@@ssss-n4e7q 근데 너무 착해서 전쟁범죄는 일으키지 않았죠
하지만 거절했다
@@ssss-n4e7q 그게 영웅이라고?? 히틀러도 영웅인가?? 스탈린도 영웅이고??
@@kingtiger733 중국인 어서 오고
@@kingtiger733 바퀴벌레 죽인건데 왜 그럼?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그림도 나레이션도 너무 멋지고...
귀엽기도 합니다 ^^
임시정부에는 無모 장군 두분이 계시니 하나는 장대인이요 하나는 우리 모전구렴야 대한광복군 요원님... 그립읍니다..
ㅁ모전구 ㅋㅋㅋ
읍니다 킹받네...
牟田口廉也 한자뜻 그대로ㅋㅋㅋ
어허..요원이라니 대 독립군 사령관이셨읍니다…
읍니다 개 킹받넼ㅋㅋㅋㅋㅋ
하늘이 원균을 지금이라도 너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라며 환생시킨게 렌야 장군이라는게 학계의정설
렌야 장군님께 ㅈ균 묻히지 말라구ㅋㅋㅋ
해박한 설명에 만세를 부릅니다 ㅎㅎ
어디 렌크나이트 무타구치 렌야 센세에개 원새끼를 갔다붙이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
영웅
매일 매일 들어도 별별역사님 목소리 정말 존잘이다 ㅎㅎㅎㅎㅎ
일본군에겐 누구보다 엄격하고, 비인도적이지만, 포로와 민간인에겐 다정하신분 ㅠ
ㄹㅇ 병신인 거랑은 별개로 또 전쟁범죄는 금지시켜서 반전매력 오짐
@@kyungtackoh7422 아군이라면 모든게 아귀가 들어맞음.
사람은 좋은데 무능하다 그런건가.
@@개구락지-j7m 사람이 좋은것도 아님요 ㅋㅋㅋ 자기 부하들은 정신론 강조하면서 엄청 굴렸음
@@디에스이레 스파이 였던게 진짜였던거임 ㅋㅋㅋ
스파이로 들어가 장군이되어서 부하새끼들 다 합법적 대량 암살했는데 아무도 모름
고맙습니다 우리 민족을 지켜 주셔서 ......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
당신은 영원한 대한민국 독립군 입니다 ^^
그의 업적은 후세 다쓰지와 카네코 후미코와 비교해도 될 정도라죠?
(참고로 후세 다쓰지와 카네코 후미코는 일본인임에도 대한 독립에 큰 기여를 하여, 독립유공자에 명단이 있는 인물들)
안 돼 절대 그 사람들을 무타구치 렌야와 비교하지 마요...
무타구치 렌야
후세 다쓰지가 독립운동투사 무료변론한 변호사죠? 들어본듯.
후미코는 모르겟...
@@yhansookim7850 독립운동가 박열선생의 애인이자 아나키스트였습니다
일본에 원균이 있다면 우리에겐 무타구치 렌야 센세가 있다
원균은 명함도 못내밀수준ㅋㅋ
그런 무다구치도 중국군은 털어버리거 다님 ㅋㅋㅋ
원균이 일본땅에서 환생.
원균이 이순신장군보다 훨씬 졸장이었도 위국헌신할 줄 아는 군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나요?
@@davidpep6865 그딴게 위국헌신이면 나는 벌써 1000번은 위국헌신함.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졸장을 넘어 그냥 인간이 덜된 놈이구만 무슨
와...제가 아는 그 인도 북동쪽 마니푸르의 "임팔" 인가..설마..했는데..와우..
이런 역사가 있었군요. 영상과 설명 너무 재밌게 잘 봤습니다. 주요 인물들 캐리커처와 자료 사진들이 설명과 너무 잘 어울리네요. 대단쓰...👍👍👍👍👍
개천절에 독립군 스파이 모전구렴야 장군 이야기를 올려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진짜 이게 실화라는게 볼때마다 놀라움ㅋㅋㅋㅋㅋ
그리고 부하들 장례식에서 유족들 울고있는데 자기잘못없다는 전단지뿌리다 맞아죽을뻔ㅋㅋ
현실은 드라마나 영화를 뛰어넘는다 ㅋㅋ
@@남센터느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 일화가 진짜 줫나 웃겼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ㄹㅇ다크나이트임 탄압을 일삼은 죽은 일본군들까지 조롱하는 ㅋㅋㅋ
1. 조선시대는 수레바퀴를 안쓰고 왜 사람이 직접 가마를 끌었나??
도로가 정비가 안되었고 산간 지역이 대부분이기에 수레를 달고 다니기가 어려웠다.
문제는 가마를 끌고 다닐 인부를 항상 소집해야 했기에 가까운 지역이 아닌 먼 지역같은경우는
인부들이 탈진하거나 호랑이 표범등에 습격을 당해 죽는 경우도 빈번하였다.
2. 왜 한강을 배를 타고 다녀야만 하였나??
한강이남과 이북을 연결하는 다리를 연결할경우 왜적과 오랑캐의 침입에 위험해 질수있다는 생각에
다리 설치를 엄두를 못내었다고함, 임금이 직접 강남으로 움직일 경우 거대한 땟목을 연결해서 다리배를
만들어서 건너기는 하였으나 실질적으로 임금이나 관리등도 강남으로 이동이 많지는 안았기에 다리를 놓아서
다니는것보다 배를 타고 다니는걸 선택한거였음 , 물론 한강을 이동시켜주는 뱃사공은 지금으로 치면 전문직에
고소득자 였다는것은 사실
3. 조선은 왜 노비신문에게는 군역을 지게 하지 안았을까??
조선시대는 철저한 계급사회였고 노비나 천민은 일반적인 시민의 계급이 아니였기에 시민으로 인정받을수있는 군역을
지게 하지 안았다. 이는 나중에 임진왜란, 병자호란때 개털리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
노비에게 군역을 안주었던 실질적인 이유는 사실 지방세력이 수백만명에 가까운 노비를 병력 휘하게 둘경우 왕권까지도
위협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였다고 보면됨
4. 조선은 왜 역병에 대단히 취약했을까??
조선은 전염병이 생기게 되면 해당 지역은 봉쇄를 하고 지역 사람을 모두 매장을 하거나 다 죽였다고 함
문제는 전염병에 대한 걸 마마님 이라고 하면서 주술이나 제사등으로 해결하려 헀다는게 웃긴점이였음
당시 명나라에서도 의학이나 서양의료등을 얼마든지 전수 받을 기회가 많았음에도 성리학에 위배된다는 이유만으로
배우려 하지도 못했다는 건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 아닐수없음
5. 조선은 과연 국뽕을 할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인가??
조선은 당시 국가 경제력은 일본의 도쿠가와 가문의 경제력에도 미치지 못하고 ,군사력은 당시 명나라 1개 성의 지방왕의
군대보다도 약하였고, 기술력은 유럽 암흑시대의 기초과학수준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조선은 어디를 보아도 국뽕을 할수있는 요소는 없다고 보는게 정답임, 다만 조선에 분명히 세계적인 위인이 나온것은 사실임
그러나 훌륭한 위인이나왔다고 해서 그 시대 나라가 좋았다고 보는건 역설적임
마치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등 명장들이 촉나라에서 나왔다고 해서 촉나라가 잘나간게아닌거처럼 말이다
1줄요약
1. 조선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였고 미개함의 극치인 나라였다.
@@김서현-o3y9u 조선얘기가 왜 나오누?
육군대학이라는 대학이 따로 있는게 아니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영관급이 됐을때 교육 받는겁니다.
여기를 졸업해야 나중에 장군진급을 할수 있어요.
그러니까 장군 대부분이 육군대학을 졸업했다고 볼 수 있죠.
앞으로 일본가게 되면
우리의 애국자 렌야
장군님 도쿄 묘소에 참배하러
갑시다. 이런 분을 역사에
영원히 기록해야 합니다.
렌야장군. 만세......
별별역사님 덕에 또 이렇게 배웁니다 별별역사님 최공~~~~^^
불멸의 히트작 “여명의눈동자”의 초기 징면이 학도병으로 임팔전투에 끌려온 최대치 이야기였음. 가만 생각하면 장항선이 왠지 이 위대한 장군을 모티브로 잡은거 같음. 그래서 굶주림에 최대치가 뱀을 씹어 먹는게 명 장면임. 실제 제작은 필리핀에서 했음
이야 제가 이전에 가장 보고 싶다고 얘기드렸었는데 드디어 이걸 보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무타구치 렌야는 전쟁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다네요. 오히려 전쟁 범죄에 반대하고 식민지민들을 보호하기도 했다네요. 만주군 시절에는 생체 실험을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며 반대 했죠.
그런 사람이 자국군인은 엄청 잡아돌리고 혹사시킴 ㅋㅋㅋㅋㅋㅋ
인권을 존중한다 근데 우리군은 사람이 아니잖아?@@문재훈-y7v
민간인만 사람취급하고 군인 목숨은 벌레취급한거네
@@bfnfgkfjgㄴㄴ 초식동물 취급했음
무타구찌는 일본군이 아니였어 연합군 스파이인게 분명하다
렌야 그림 ㄹㅇ 뺨따구 마렵게 잘 그리셨네요 ㅋㅋㅋㅋ
역대급 막장이 우리나라 군에서도 수도 없이 실행하며 은폐되고 있는것을 영상 하나로 느껴지네요
우리도 정신차리고 참혹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ㅠㅠ
도조히데키도 작전을 보고 보급문제,현실성,버마의 공백등이 해결 가능하냐고 물었지만 작전을 가져온 대좌는 그거에 대답을 하지 못했고 호통을 쳤지만 결국 한숨을 쉬며 목욕탕에서 결제를 해줬습니다. 그만큼 파벌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봐도 힘든 작전이었으며 히로히토도 이걸 보고는 이게 진짜 가능한 작전이냐며 물엇다고 합니다. 히로히토도 육군군사관학교를 나온만큼 식견이 없는건 아니지만 렌야는 실전경험을 가진 지휘관이고 히로히토는 어디까지나 이론만 아는 수준인걸 생각하면 이건 뭐...
군대있을 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훈련소 3교관이 알려주길 군대는 상명하복이지만 그 명령이 너무나 반인륜적이라면 무시해도 된다고요. 근데 전쟁에서 그'반인륜'은 어디까지 누가 평가하는 가 이 생각이 나더군요.
매일은 아니지만 생각날때마다 들러서 올려주신 유익한 영상들 잘 보고있습니다. 혹시 언젠가 기회가 되신다면 고조선때의 역사도 이야기 해주실수 있으신가요?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주요 사건들이나 흐름은 그럭저럭 알고있는데 기원전의 이 땅에 있었던 역사에 대해선 거의 아는 것이 없어서 문득 궁금해지더라구요.
책보고, 이덕일역사TV를 보시면 흥미있게 다가갈수가 있습니다
@에엑따 저를 향한 저격이면 이유를 말해주삼^^ 구독 목록도 없고 에엑따님에 관한 어떤 정보도 없는데 이런 저격의글은 아니올시다입니다^^
@에엑따 정확한 논리도 없이 무작정 이덕일박사님께 "믿거임"하면 혼나요--
@에엑따 제가 이런 대화는 크게 싫어하는데 에옉따님 이덕일역사tv를 제대로 보셨나요. 이덕일박사님은 환단고기 외에 삼국사기(이 삼국사기도 설명을 하려니 너무 힘들고 책보고 체널 참고. )외에 중국 사료 등 여러 방대한 역사서를 바탕으로 우리의 왜곡되고 빼앗긴 역사를 바로 찾고자하시는 분인데 강당사학자들의 눈으로 보지마시고 이덕일역사tv 중에 많은 것이 아니라도 몇몆 체널이라도 보시고 이런 댓글 달기바랍니다. 계속 답글 남겨보아야 책 한권 읽은 수준으로 또 답글들 남길게 뻔해서 이번만 답글 남기고 에엑따님과는 더이상 답글 놀이 하지않겠습니다.
ㄹㅇ
일본군식 군대문화가 1990년대 후반까지도 학교에서 정식과목으로 있었던게 더 소름…
개천절에 독립운동가 영상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본 역사상 가장 기상천외한 작전 ㅋㅋㅋㅋ
어느분의 작전 분석을 보면 어느정도 먹힐만한 작전이긴 했습니다... 문제는 적의 전투력 개무시, 일본군 정신승리 사상, 보급의 중요성 개무시(이건 일본군 보급사상이 좀 이상하긴 했음...) 여하튼 결론적으론 엄청난 피해만 입고 끝난 작전.
애초에 보급이 없는 작전은 성립부터 안되는 것이란게 문제죠
그런데 전술적인 관점에서 냉정히 보자면 무다구치 렌야의 작전은 상대가 오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 곳을 들이치는 것이고 이런 형태의 공격은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고 칭기즈칸의 부대가 텐산 산맥을 넘은 것과 같은 형태로 역사에도 남아 있습니다.
다만 렌야는 칭기즈칸이 아니고 일본군은 몽골군이 아니었죠.
몽골군이 텐산산맥을 넘을 때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양털 안을 발효시켜 그 열기로버텼다고 하는데, 그건 혹독한 몽골 초원의 추위를 견디던 몽골 부족의 지혜였죠. 베어 그릴스도 그런 생존 기법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진짜 렌야가 일본인이 비건이라고 생각했다면 작전 전에 밀림에서 자체적으로 먹을 수 있는 거리가 있는지 연구를 하든가 차라리 풀뿌리와 나무껍데기 캐먹으며 보릿고개를 넘기던 조선인들을 데리고 오는 게 맞았습니다(당연하게도 농담이죠)
샤를 군사 연구소 보니까 당시 지식인들한테 정글에서 먹을 수 있는 풀 그런걸 조사하게 했다네요 하지만 일본군이 명확하게 먹을 수 있는지 판단하기 힘들었고 독이 있는 걸 먹고 많이들 가셨다고,,
진짜로 전술적으로만 보면 임팔작전은 완벽한 작전입니다. 이 좋은 작전을 역대급 트롤짓한게 렌야와 대본영이죠
일본 우익들 와서 또 뇌절하고 있네 ㅉㅉ 차량 이동도 안되고 천혜의 자연 방탄 조끼 입고 있는 곳을 새총으로 쏜 격인데 ㅋㅋ 성공했다면 ㅋㅋㅋ 그래 새총이 방탄 조끼 뚫고 심장을 관통했다면 성공인거지 그래 그래
독립운동가 모전구렴야 선생님의 일대기는 못 참지 ㅋㅋ
이 미담은 들어도 들어도 아름답습니다.
대한민국은 무타구치 렌야 선생을 기리는 행사를 시행하라!
사진만 봐도 듬직함.
이정도면 우리나라의 독립에 큰기여를 한거임
역사적 티배깅 ㅋㅋㅋ
@@안전제일 ㄹㅇ 존나재밌겠다 ㅋㅋㅋㅋㅋㅋㅋ
독립유공자 훈장을 드려야 할거같은 분 ㅋㅋ
빛타구치 갓야임
전군님 영상보면 임팔작전 설명잘나와있죠. 무타구치 렌야는 광복군에서 파견한 첩보원입니다.
7:15 남 이야기 같지가 않네요 병사들 파리목숨 ㄷㄷ
국민들을 파리목숨으로 보는...
무다구치 렌야... 적어도 이일보다는 훨씬 훌륭한 명장이었다. 적어도 무다구치 렌야는 적을 보자마자 군복을 싹 벗고 발가숭이가 되어 팔딱거리면서 도망치지도 않았고 자기가 도망치는데 남아서 싸운 참모를 군법에 회부하지도 않았다.
이일 장군 바바리맨설~
임팔작전의 문제...
일단 3개 사단의 편제가 부족해서 평군 70%도 체우지 못했다.
그러면서 영국군의 군의 규모를 너무 축소해서 파악하고 영국군 자체를 무시함.
렌야가 전쟁초반 영국군 보급품을 얻어서 달달하게 빨아본 경험으로
부족한 보급품을 영국군에게 취한다였는데 영국군이 퇴각할때
1년동안 세운 기지마져 불태우고 퇴각해서 아무것도 얻은게 없었음.
작전 후반때 상당량의 보급품이 있는 기지를 점령에 성공했지만
지칠대로 지친 일본군들은 영국군의 반격에 버티질 못해 아무것도 얻지 못함.
결론 - 자신들의 군의 정원도 못체우면서 적을 과소평과하였고
오래전 경험에만 의존해 현제 상황 파악도 못하여 강행해서 망함.
임팔작전은 지도상으로는 뛰어난 보병기동과 공격시기를 포착한 괜찮은 작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차대한 '지피지기'기가 제대로 안되어 제대로 망한 사례입니다. 일본군은 영국을 너무 얕잡아봤고, 청야전술에 대한 대비가 없었습니다. 영국은 이전 전투와 달리 전력이 강화되었고, 특히 청야전술과 공중보급을 통해 일본의 공격을 아주 잘 막아냈습니다. 전술적으로 아무리 뛰어나도, 보급과 정보라는 전략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패전을 면치 못한다는 중대한 교훈을 남겼죠.
일드 한자와나오키 中 대사 : "부하의 공은 상사의 공, 상사의 책임은 부하의 책임!"
현 일본사회도 겉으로만 개인주의, 개방적으로 보일 뿐, 우리나라보다 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곳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끔찍하게 보수적이고 폐쇄적이죠.
겉으로 보이는 개인주의, 개방성(특히 성이나 문화 관련된)은 자그마한 탈출구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일본서 살아봣는데 깊이 공감합니다 하나 더잇다면 융통성 이라곤 쥐뿔도 없죠... 매뉴얼 타령 과장해서 화장실에 가서 휴지 없음 옆자리에 휴지 달라 말안 하고 매뉴얼대로 다음사람이 문 두들기때 까지 몇시간이도 기달리는 사람들.....
일본사회 자체가 융통성 거의 제로에 엄청 폐쇄적임. 그 꽉막힌 한국공무원 조직이 오히려 일본내 민간회사보다 더 개방적일 정도로 느껴짐. 그래서 야동,애니,게임,스포츠로 푸는것임.
@@John-em4vf 그 오타쿠나 성문화 관련된것도 되게 저급하고 하등한걸로 취급함. 걍 뼛속까지 보수주의 끝판왕인 나라가 일본임. 20년 전의 한국을 보는 것 같음.
다들 놀리기 바쁘지만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정신력 타령 하는게 얼마나 위험한 짓거리인지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
제일 의외인게 무타구치렌야의 명령으로 발생한 민간인학살이나 포로학대가 없었다고 합니다;;
6:16 실제로는 목욕탕에서 서류결제함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신약성서 마가복음 11:23절의 말씀이면 대한민국 군대 수뇌부들의 생각들! 지금도 무다쿠치의 후예들은 군에서 산을 옮길 것을 종용하고 있으며, 불쌍한 우리 젊은이들은 오늘도 삽질을 합니다.
원균의 환생, 명예 광복군 무타구치 렌야 센세... 고맙읍니다 ㅠㅠ..
어떻게든 조선하고 엮을려고 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 댓글러들 진짜 심각하다
@@jkp5162 ?? 원균 드립은 이전부터 치던 건디.. 유머를 유우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나타, 혼또니 fun cool sexy하지 않네그려~~~
@@jkp5162 드립인데...
킹다구치 렌야 선생님 한테 좆균 뭍히지 말라 이거야 ㅋㅋㅋㅋ
@@디에스이레 꺼흑 마이깟!
이 채널은 무타구치라고 제대로 이름을 써 놓았네요. 심지어 국방부 채널도 무다구치라고 써 놨는데.. 정확한 명칭을 쓰신거에 쌍따봉 날립니다.
렌야센세 크흡 ㅠㅠㅠㅠ 당신의 희생을 잊지않겠읍니다 ㅠㅠㅠ
독립군 무타구치 렌야 센세..
09:00 왜 일본제국은 실패하였는가라는 책에 의하면 연합군은 일본군의 기습을 미리 예측하였으나, 적들의 보급라인을 더 길게 늘리기 위해 일부러 퇴각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훌륭한 영상을 어떻게 하면 일본어로 번역/제작해서 일본 유튜브 키워드 서치에 팍팍 뜨게 만들수 있을까요
와 별별역사님이 만드는 무다구치 렌야 스토리 기다렸습니다!~
이런 모습이 현재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보는거와 다름없다
특히 국짐당과 정의당이 비열스러워.
무슨 말이 필요있으랴...우리의 독립을 위해 힘쓴 렌야장군님 ㅠㅠ
3:58 칭키즈칸 군대 방식을 중국애들은 몰라서 못했나..
노하우가 엄청난 건데..
4:52 헐. 40kg이면..
전투부대는 최대한 경장으로 가고,
보급부대가 붙어야 할거 같은데..
칭기즈칸 몽골 군대 방식 - 바짝 말려 아예 가루로 만들어서 자루에 담은 양or소 한마리분의 육포.
마찬가지로 바짝 말려 가루로 만든 우유. 물과 마유주 예비화살 예비 활. 등등을 몽골병사(기병)개인당 몰고다니는 최소 여러 마리의 말들에다 실어두고 몰면서 달림.
타고다니는 말이 지치면 바로 갈아타고 말위에서 잠도 자고 먹는 것까지 왠만하면 말위에서 달리면서 다함.
그 기동력 덕분에 몽골군이 쳐들어온다! 라는 소식을 듣고 피난할 짐을 싸고 있을 때 벌써 쳐들어옴.
순식간에 털고 불태우고 살아있는건 수레바퀴보다 크면 다죽임.
무다의 환생이 12사단에 들어갔나....
연기력이 갈 수록 느시네요!
17:20 서로 책임 않지겠다는 소리잖아!!! 지금도 일본 자민당 정부가 저런듯 합니다! 후쿠시마원전사건, 불화수소사건, 2020(2021)도쿄올림픽, 코로나19대응, 천재지변... 등등 일어난 사건 혹은 사후처리에 대해 책임지는 인간이 아무도 없이 또 자민당! 항상 유용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칭기즈칸, 곽거병 식의 보급 방법은 아무나 할수있는게 아닐텐데.. ㅋㅋㅋㅋㅋ
오우 곽거병ㅎㅎ 간만에 듣네요
몽골의 기병운용은 압도적인 기동력을 바탕으로 한 신속한 약탈이 기반이었죠
@@Hwan1616 아님.
몽골이 산많은 아프간지역도 중동 사막지역도 다 텀.
몽골이 빠른 기동력을 가지고 보급이 거의 없어도 되는 이유는
말우유와 육포였죠.
육포는 장기간 유통이 가능하고, 물만 데워서 던져놓고 먹기도 햇슴다(샤브샤브 원조).
말도 기병 한명당 3-4마리씩 끌고다녓는데,
말도 지치기에 교대로 타기 위함이엇지만 위급시(보급x)
그 말을 잡아먹엇습니다.
무다구치 렌야가 말한 현지수급(약탈)도 기본이엇죠.
몇번을 봐도 질리지 않네요^^
14:29 도조는 도조히 후퇴를 명할수가 없었다.
ㅋㅋㅋㅋㅋㅋ 좀 치시노
참고로 추가 정보를 더 설명하자면 1938년에 우한이 함락되고 나서 중국 전선이 지지부진 한 건 맞았고 떨어지는 돈과 자원을 축적하기 위해 동남아로 가기로 결정하고 진주만 공습을 하게 되면서 미국을 적으로 끌어들였고 1944년 태평양 전선에서 가망이 없음을 깨달은 일본군은 대륙타통작전 (이치고 작전) 을 감행하여
중국 남부의 항구도시를 장악한 일본군과 화북과 화중의 일부를 장악하고 있는 일본군이 중화민국 남부에서 만나서 중국 남부의 중국군들을 대규모로 포위하는 작전이었으며 실제로 성공했습니다. 물론 이미 미군의 압도적인 힘으로 일본제국은 패망의 길이 멀이 않았고
동남아의 깊숙한 골짜기로 일일이 철도를 연결하여 자원을 신속하게 중국전선으로 옮긴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분명 이 작전은 동아시아 역사에 영향을 미쳤고 중국 국민당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줬습니다. 국민당군은 50만의 일본군이 감행한 이치고 작전을 막느라 65만의 병력이 희생되었고 화북에서 팔로군과 국민당 유격대들을 소탕하여 가까스로 후방의 치안을 유지하는데 성공했지만 치안유지에 필요한 병력들까지 죄다 이치고 작전에 투입시키면서 일본군 점령지는 거의 무주공산 상태가 되었고 그것은 훗날 국민당을 대륙으로 쫓아내고 자신들 공산당이 대륙을 통치하는데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군은 작전에 50만의 병력들과 800대의 전차 10만 마리의 군마 등을 동원하였는데 그 많은 장비들을 다 만들려면 시간이 필요했을 거고 때문에 1944년에 작전을 시행했을 가능성도 높지만
아마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미국이 참전하기 전) 일본군이 작전을 수행했다면 중국은 붕괴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일본군 쪽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1944년에 작전을 시행했을 때도 충칭이 함락위기에 놓이는 등 중국군에게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었고 실제로 작전 기간 중에 중국 장강의 3전구는 아예 일본군에게 포위당하기도 했습니다. 영상에서 일본군 보병들이 임팔의 험준한 산맥들을 무거운 짐을 지고 장거리를 뛰어내는 걸 보고 만약 일본군에게 작전을 수행할 만한 역량이 44전 전에 만들어져 있었고 실제로 임팔작전처럼 동남아와 중국 전선 사이로 보병들을 이용해 자원을 수송했다면...한 번 쯤 궁금하게 생각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타구치 렌야 센세. 일본군을 무찌르기 위해 모든것을 내던지신 당신께 독립군 최고 훈장을 주는 것도 모자라다 생각합니다. 덕분에 남한은 일본보다 더 잘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별역사님 유익한 영상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빨리 다른것도 올려주세요 현기증 나니깐요 ㅡㅡ
브금 참 좋아 몰캉몰캉해지고 신기한 기분이 되는 브금 좋다❤
몇번을 봤지만 언제나 즐거운 임팔작전과 독립투사 무다구치 렌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렌야센세 잊지 않겠습니다 대한의 독립뒤에 당신이 있엇음을
10:20 망언(x) -> 명언(o)
무다구치 렌야 한번 검색했다가 8시간동안 나무위키만 봤던 3년전이 생각난다ㅋㅋㅋㅋㅋㅋ
모든걸 축소 은폐 조작하는게 그들만의 특기네요. 존심 상해서 말도 못하고 서로 눈치보는게 지금의 일본 문화랑 비슷하기도 하고 ..
우리나라 군부대도 고인물에 비리 많은데 이딴 코미디같은 비극이 일어나면 절대 안되겠죠.
콘텐츠 정말 재밌네요 ㅎㅎ 구독하고 갑니다 .
역시 별별 역사야! 세계사 공부를 이걸로 한다니까요. ㅎㅎ 진짜 일본 정부가 일본 군인들을 어떻게 생각 한건지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네요.
아아... 무다구치 렌야 장군님의 눈빛을 보고 클릭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인들이라면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겠지요...
일본에만 저런 사람이 있는것이 아닙니다. 한국군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해병대 1사단장 임성근
진짜 전시 상황이면 저랬을지도...
다시 태어난다면 조선을 구할 기회를 얻고 싶소"
원균의 비장한 그 한마디는 어느 이에게는 실소를 터트리게 만들 수 있었지만, 눈 앞의 존재는 그러지 않았다.
"이제 와서 말이요?"
그의 그 질문에 원균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무릇 사내로 태어나 업적을 남기고, 이름을 남겨야 하는 것이 도리인데 나는 오명을 남겼으니 어찌 한이 없겠소"
그러더니 그는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땅을 보며 남은 한탄을 토해낸다.
"나에 의해 조선이 망할 뻔 하고, 왜군이 승리할 뻔 했소. 그 일은 평생 후손들에게 비웃음과 조롱을 받게 되겠죠."
"어찌하고 싶소?"
눈 앞에서 검은 소복을 입고 걸어가는 이의 질문에 원균은 웃으며 같이 걸었다.
"다시 태어나 조선을 위해 싸우고 싶소."
"그런다고 이미 업혀진 오명은 사라지지 않소."
"상관 없소. 내 개인적인 욕심이니."
그는 한 쌓인 길을 남기며 다시 한 번 자신의 바람을 표현한다.
"다시 한 번 태어나 조선을 구하고, 왜를 물러나게 하고 싶소."
앞서 걷던 이는 그의 바람에 진지하게 웃어주었다.
"그리 되기를 기대하오."
먼 훗날, 그 바람을 갖고 그는 이 땅에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튼실한 사내 아이가 태어났어요!"
그 외침에 그의 아버지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 나라를 위해 훌륭한 장군이 될 이가 태어났구나!"
초롱초롱한 아이의 눈을 보며 그의 아버지는 그가 훌륭한 이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출산의 고통에 힘겨워하던 어미는 자신으 아기를 안으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우리의 아이 이름은 그걸로 정한 거죠?"
그 질문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소. 그 이름이 최고인 것 같소."
그러고 아기를 바라보며 아버지는 아기에게 앞으로 불리게 될 이름을 알려준다.
"잘 들어라, 이것이 너의 이름이란다. 부디 이 이름으로 나라를 위해 힘써주기를 바란다."
어미가 만족한 미소를 짓고, 아버지는 자상하게 속삭여준다.
"렌야."
그것이 훗날 조선을 구하고-
"무다구치 렌야! 그것이 너의 이름이란다!"
왜를 물러나게 할 조선의 희망이 가진 이름이었
비아냥 아니라 진심 대한민국 독립에 기여하신분
영상에서 언급되진않았지만
당시 임팔작전중 먹을게 없어 식인이 성행했지
아군 살을 발라내어서 그 인육을 물물교환까지 했음
진짜 이분 업적이면 명예훈장이라도 줘야된다.
형님형님... 제발제발 오스만제국 역사 올려주실수있으신가요?? ㅠㅠㅠㅜ 부탁드릴깨여
그 명언이 안나오네 ㅋㅋㅋㅋ 식량이 없다고 하니깐
렌야 왈 "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다 식량이 없으면 풀을 뜯어 먹으면 된다" 라고 했음
그래서 진짜 일본애들은 풀 뜯어 먹으면서 진군했지만 미얀마가 정글이라서 온갖 독초가 많았기 때문에 일본군은 식용이 아닌 독초를 많이 먹어서 죽었다고 함
ㅋㅋㅋㅋㅋㅋㅋ
ㅅㅂ 독초ㅋㅋㅋㅋㅋ
일본 뭐라할게 없는게
리승만시절 ‘국민방위군 사건’을 보면
더 기가막힘. 징병된 어린 군인들이 이리저리 끌여다니며 얼어죽고 굶어죽고 수뇌부는 예산을 죄다 착복한 사건.
지금은 가르치나요? 한국전 말해주면서.
라떼는~, 국민방어군이나 서북청년단 보도연맹사건에 대해 하나도 안가르쳣는데...
전쟁말기 일제는 늘어난 침략지역을 방어하면서 제대로된 훈련없이 군대를 증대하게되었죠. 그러므로 오합지졸인 조직을 통제하기위해선 상명하복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죠. 게다가 전술훈련이 거의 없으니 무조건 반자이돌격이 최선이었습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봤습니다.
도미나가 교지 이야기도 잊지 마세요 ㅋㅋ 기대하겠습니다!!
당시 저 일제군이 나름 좀 경험있는 일제군인데 ㅋㅋㅋ 그전력을 갈아먹은…
연합군 프락지… 렌야센세😂😂😂
6:54 풍자 잘하신다
약간 역사책에서 나오는 당시 상황을 풍자한 그림같음
이때 임시정부 소속의 광복군도 영국군 소속으로 연합군에편입해 임팔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치르기도 합니다.이 경험을 토대로 독수리작전을 통해 국내진공작전을 실행하려고까지 했는데..하필 그 작전 개시 며칠 전에 항복을 선언하는바람에..
6:34 이런 정보는 어떻게 얻는건가요??
대한민국 무공훈장이 받고싶었던 렌야좌 ㅜㅜ 그는 어둠의 독립투사입니다 ㅜ
뻥안치고 웬만한 독립운동가분들급으로 존경함
처음에 무타구치랑 카와베 그림을 보고 아니뭔 사람을 저렇게 그리지? 눈썹이랑 수염이 저렇게 생긴 사람이 어딨어? 라고 생각했는데 중간중간 나오는 실제인물 사진 보니 실제랑 똑같이 그렿네 수염이랑 눈썹이 저렇게 생겻다니 ㅋㅋㅋ
역대 우리나라 밀정중에 본좌 렌야 고마워요
연합군의 명장 무타구치를 여기서 보내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