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과 함께하는 설악산 백담사 [한국의 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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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0 сен 2024
  • 현재의 이름인 백담사는 7차에 걸친 실화가 닥쳤고, 그 때마다 터전을 옮기면서 이름을 바꾸었다.
    백담사라는 이름은 골이 깊고 흐르는 물의 연원이 먼 내설악에 자리한 절이라는 뜻이나, 거듭되는 화재를 피해보고자 하는 뜻이 담겨진 이름이라는 설을 다음의 전설로 알 수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화재가 있을 때마다 주지스님의 꿈에 도포를 입고 말을 탄 분이 나타나 변을 알려주었다고 하는데 기이하게도 지금도 이 근처에 도포를 입고 말을 탄 듯한 암석이 솟아 있다.
    거듭되는 화재로 절 이름을 고쳐보려고 하던 어느 날 밤, 주지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潭]를 세어 보라고 하여 이튿날 세어보니 꼭 100개에 달하였다. 그래서 담자를 넣어 백담사라 이름을 고치는 동시에 지금의 장소로 옮겼는데, 담자가 들었기 때문에 그 뒤부터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1915년 겨울밤에 일어난 화재는 불상과 탱화 20여 위(位)를 제외한 건물 70여 칸과 경전·범종까지도 모두 태워 버렸다. 당시의 주지 인공(印空)은 사무(寺務)를 오세암에서 행하면서 백담사의 중건에 착수하였고, 기호(基鎬)와 인순(仁淳) 등이 그를 도왔다.
    강원도 일대를 다니면서 시주받은 1,786원 30전으로 1919년 4월에 법당 20칸과 화엄실(華嚴室) 20칸을 건립하였으며, 1921년 봄에는 응향각(凝香閣) 및 사무실 30칸 등을 이룩하고, 종과 북을 새로이 주조하여 낙성법회(落成法會)를 열었다.
    한용운이 『백담사사적』을 편찬한 1928년 당시의 백담사는 복구가 끝나고 정리가 되어 있을 때였다.
    근대에 이르러 백담사는 한용운이 머물면서 『불교유신론(佛敎維新論)』과 『십현담주해( 十玄談註解)』·『님의 침묵』을 집필하는 장소가 되었고 만해사상의 고향이 되었다. 그러나 이 절은 6·25전쟁 때 소실되었으며, 1957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담사 #설악산 #한국의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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