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준화 시절에는 3대 공립 서울대 몇 명 의미가 없어요 이 시절에는 서울 3대 공립고교가 전국에서 올라오는 준비 된 학생들 선발권 갖고 선발해서 그 학생들이 알아서 대학 가던 시기였고 이때는 전국에 고등학교가 몇개 없었죠 그나마 서울권에는 공립고교 하고 사립고교들이 몰려 있었죠 당연히 학생들 선발하기 좋았던 시절이었죠 더구나 60-70년대는 가난한 시절이었고 대학 진학률이 5%도 안되던 시절이라서 고등학교 안나온 사람이 더 많았죠 중학교도 나오면 다행이던 시절이었고 국립 서울대 뺴고는 나머지 대학은 등록금만 있으면 가던 시절이고 소 팔고 등록금 마련 할 수 있는 집안이면 대단했던60년대 70년대 그때 그시절이었지요
서울사대부고가 남녀공학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결과네요. 그래서 천하부고라는 말이 있었고 특차라 경기고 진학이 충분히 가능한데도 가지 않았다는 말이 있었음.
사대부고가들이 대단한거임
대구의 사대부고는 정원이 일반고의 3분의1일정도로 아는데 저정도면 경북고보다 더 많이 보낸셈이내요
근데 당시라면 경제력도 한 몫할건데 아무리 우수한 사람이라도 서울 유학은 힘들었을건데
사대부고는 나름 잘살아서 서울대 도전이 많았는가?
3대 공립이 아니고
5대 공립 ,5대 사립
이렇게 호칭 됐 습니다
3대 공립이라고 호칭 한 적이 싼번도 없습니다.
그 때 살던 세대로써 정정시켜드립니다
3대공립 맞아요
모자에 흰색줄 1,2,3개올려져있어요
그게 상징하는겁니다
경기,평양,경북고
@@미숭산.1962년에 평양은 좀… 일제시대도 아니고,보통 5대공립이라고 했지요.
자신이 아는것이 다가 아닐지니
일제시대때 3대고보는
경기 평양 대구(지금의 경북)이 맞습니다
어느도시나 지방도시도 3고 3중학교 이라는 3등안에 순위 메기는게 유행이든 시절
경기고 평양고 경북고가
3대 공립고
모자에 흰색줄 1,2,3개있었지요
저때 대학진학률이 10%나 되었을까요?
글쎄요
그보단 많았겠죠
훨씬 안되지 80년대도 20프로 안되는데
비평준화 시절에는 3대 공립 서울대 몇 명 의미가 없어요 이 시절에는 서울 3대 공립고교가 전국에서 올라오는 준비 된 학생들 선발권 갖고 선발해서 그 학생들이 알아서 대학 가던 시기였고 이때는 전국에 고등학교가 몇개 없었죠 그나마 서울권에는 공립고교 하고 사립고교들이 몰려 있었죠 당연히 학생들 선발하기 좋았던 시절이었죠 더구나 60-70년대는 가난한 시절이었고 대학 진학률이 5%도 안되던 시절이라서 고등학교 안나온 사람이 더 많았죠 중학교도 나오면 다행이던 시절이었고 국립 서울대 뺴고는 나머지 대학은 등록금만 있으면 가던 시절이고 소 팔고 등록금 마련 할 수 있는 집안이면 대단했던60년대 70년대 그때 그시절이었지요
썸네일사진 정독도서관
저땐 돈있는 집안들이닌 대학 보냈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