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변증코너님! 영사 보던 도중에 질문드리고 싶은것이 있어 댓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주관적인 경험이 물리적 과정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음은, 단지 그 분야 과학의 한계로 인해 설명되지 않는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마음과 영혼이라는것이 그저 매우 복잡한 것이기에 우리가 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것이라면, 마음과 영혼이 비물리적인 존재라는 가정이 의미있는 주장이 되지 못하지 않을까 싶어요. 고등학생인데 바쁜 공부중에 잠시 보게 된 영상이라, 더 깊이 생각하거나 추가적인 조사를 하지 못하고 바로 질문부터 드려서 조금 죄송합니다..ㅠㅠ 또, 이렇게 의미있는 영상들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윤리와 사상] 시간에 그리스도교를 배우며 '신앙을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싶었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지는 못했거든요. 하지만 이런 영상들을 계속 만들어주시니 저로서는 조금이나마 저의 신앙에 대해 조심스레 생각해보고 탐구해볼 기반이 쌓여가는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래요!
좋은 질문입니다. 먼저, 과학의 한계라는 관점은 과학이 현재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중에 설명될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이는 합리적인 접근 방식이죠. 그러나 마음과 물질의 문제에서 논의되는 것은 단순히 과학적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개념적 비환원성*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고통, 맛, 색깔의 지각 등 주관적인 경험은 뇌의 전기 신호나 화학 반응 등 물리적 신호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그 신호를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신호 자체가 그런 경험을 구성할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설탕의 분자 구조는 설탕의 단맛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설탕의 화학 구조를 아무리 자세히 알아도, "단맛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단맛의 경험은 물리적 구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속성이기 때문이죠. 이를 qualia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주관적 경험과 물리적 상태의 관계를 단지 과학의 부족으로 간주하는 것은, 우리가 설명해야 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간과하는 것입니다. 이 논점은 과학의 한계를 넘어,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뇌과학이 계속 발달되어도 문제가 여전합니다. 마음(영혼)이라는 비물질적인 것이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는, 힘을 가지지 않는 마음이 어떻게 신경세포를 발화하게 할 수 있는지, 즉 어떻게 힘을 갖게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뇌과학으로 설명될 수 없는 영역이에요. 운영체제를 공부하면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른 인간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논리이죠.
도달하고자 하는 결론: 마음의 속성과 물질의 속성은 공유할 수 없다. 이를 뒷받침 위해 한 말 : 고통을 느끼는 것과 뇌의 전기 신호는 다르다. 왜냐하면 1.1: 전기신호가 있다고 반드시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1.2: 통증이 느껴지지만 뇌의 전기신호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내 생각: 우린 현실에 대해 논하고 있으므로 1.2 는 뒷받침한 말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고통은 전기신호의 일부라면 1.1은 성립한다. 환원에 대해: 통증과 맛 경험은 전기신호와 화학 반응으로 설명 될 수 없다. (이를 양보해서 참이라고 한다고 해도) 그러므로 주관적 경험은 물리적으로 설명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신적 경험은 물리적 뇌 상태로 환원 될 수 없다. 궁금증: 환원불가능하면 본질적으로 다른가? AI로 예측할 수 없는 바둑 수를 두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AI가 물리적 부품으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것일까?(적절한 예인지 모르겠음) 결론: 물질을 포함한 모든 것은 마음이다. 여전히 참; 모든 물질은 마음이다. 여전히 참: 마음에는 물질이 있다. 전제 2: 마음과 물질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를 위반하지 않는지 모르겠음. 내 생각: 마음은 물질이다. 누군가 움직이기로 결정해 신경 세포가 발화한다. 여기에 힘은 전기적 상호작용과 화학적 상호작용이 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저도 "전기 신호가 없지만 통증이 여전히 존재하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라는 말을 영상에 넣었을 때, 같은 이유로 마음에 걸렸어요. 왜냐하면 "[그러한]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고 말하는 순간, 더 이상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었던 포인트는 "통증"과 "뇌의 전기 신호"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만약 둘이 완전히 같다면, 통증을 신호로 환원하거나 신호를 통증으로 환원하여 서로 다르게 표현할 수 없겠죠. 맛이라는 퀄리아(qualia, 감각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울다다기 양배추의 맛을 설명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맛의 경험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 흥미로운 예입니다. 이는 퀄리아가 객관적인가 주관적인가에 관한 문제죠. 그런데 만약 맛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세상(예를 들어, 모두가 동시에 코로나에 걸리거나 혀를 제거한 상황)에서는 음식의 물질로부터 "맛"이라는 정보를 추출할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로 인해, 맛이라는 퀄리아는 물질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AI 예를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인공지능에 경험이 있는 사람인데, (대부분의) AI는 통계 머신이거나 단순한 수학적 공식에 불과합니다. 신경망에는 여러 뉴런이 있고, 각 뉴런에는 학습 과정에서 조정되는 고유한 a, b값이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입력값이 주어졌을 때, y=ax+b라는 방정식으로 출력값을 결정하죠. 그래서 신경망을 이와 같이 환원할 수 있고, 물질 세계에 대한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해서 (모델 구조가 잘못되었거나 학습 데이터에 문제가 있었던 이유 등으로) 이 신경망이 물리적 부품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저는 AI를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보기 때문에 물리적 부품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그 결론에 도달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님의 의견에 더 적합한 예가 있더라도, 이 예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증코너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이 있어 댓글을 남깁니다. 우선, 영상을 매우 흥미롭게 보았으며, 알지 못하던 것들을 알게되어 즐겁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영상의 내용에 공감 하고 있으며, 이 자리에서 공격적인 태도가 아닌 정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있는 어린 아이와 같은 태도로 질문하고자 함을 밝힙니다. 저는 라플라스의 악마(결정론)에 양자역학이 반박하였음을 안 뒤로부터 과학과 철학의 함의점들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저는 AI를 연구하고 있는 박사과정 학생입니다. 궁금한 것은, 과연 AI를 지능 혹은 인격 혹은 의식이라 할 수 있는가? 영상 내용과 연결지어, AI의 물리적 계산이 정말 의식으로의 환원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만약 AI를 지성이라 인정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오늘 영상의 논증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입니다. 이 질문들에 대한 의견과 최신 연구들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저는 아래와 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 곳에서 AI는 GPT만 따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1. 저는 AI의 대답이 물리적 현상의 환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는 것 처럼 딥러닝은 y=ax+b 라는 연산과 nonlinear operation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간단한 연산들은 0과 1의 전기적 신호의 연산과 같고, 이는 전자의 물리적 이동, 스핀 등으로 구현됩니다. 계산은 물리량의 환원이고, 우리와 AI의 소통을 매개하는 키보드와 모니터 또한 물리량의 환원입니다. 2. 딥러닝은 수많은 계산을 통해 어떤 결과값을 도출해 냅니다. 저도 GPT가 나오기 전까지는 LLM이 그저 '그럴듯한' 답을 기존의 데이터셋을 조합하여 뱉어내는 모델들일 뿐이라 생각하고, 지능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LLM이 이제 long-term의 대화 맥락을 파악하고,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이 것을 절제된 지성과 다르다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따라서 AI가 지능인가, 의식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해 집니다. 물리적 환원인 AI의 답변을 보고 AI를 지능 혹은 의식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은 흔히 중국어 방 사고실험에 대입되며,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으로 이어집니다. 4. GPT4가 출시되기 전,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진은 미리 GPT4를 테스트할 수 있었고, 해당 내용을 담아 MIT에서 'First contact'라는 제목으로 간단한 키노트 세션을 열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능'의 기준에 대해 나름 정의를 하고 테스트를 하였고, 결론은 '아직 지능이라 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는 모른다' 였습니다. (찾아보니 같은 내용으로 세미나를 하고 유튜브에 올렸네요! ruclips.net/video/qbIk7-JPB2c/видео.html) 5. AI는 결코 지능으로 인정될 수 없는가?에 대하여 증명이 가능하다면 차라리 별 생각이 없겠습니다만, 여러 SF소설들의 영향인지 언젠가 AI는 인간의 지능과 구분할 수 없는 수준이 되리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AI를 지능으로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6. 흥미로운 것은 최신 AI 연구의 가장 굵직한 트렌드 중 하나가 인간이 생각하는 사고과정을 모사하여 인공지능의 모델을 개발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더 나은 성능을 보여줍니다. (혹시 흥미가 있으시다면 heuristic과 inductive bias라는 키워드를 남깁니다) 7. 만약 과학자들의 상상처럼, 인간의 뇌를 구조적으로 완벽히 모사하고, 대화를 통하여도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AI가 개발된다면, 이를 우린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인간과 AI의 차이는 뭘까요? 물리량과 의식 사이의 환원은 어떤 개념으로 정리될까요? - 어떤 물리량도 (특히 중력과 열역학) 발견 전에는 환원되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과학적 개념으로 정리 되었습니다. 과연 인간의 정신과 물리적 세계 사이의 환원이 어떤 물리량으로 정리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저도 감사합니다!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는 현상은 환상 사지 통증입니다. 일부 사지를 잃은 사람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지에서 통증을 느끼는 "환상 사지 통증"을 자주 경험합니다. 이것은 뇌에서 오는 신호로 설명될 수 있지만, 이 "통증"이 실제로 신체적 부상의 결과가 아니라 정신적인 경험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물리적인 사지는 사라졌지만, 그 통증은 여전히 그 사람에게 매우 현실적인 것입니다. 이는 통증의 경험이 물질(사지)의 존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그 신호에 대한 정신의 해석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 영상을 본 다른 댓글들을 보니, 이 문장을 포함한 것에 대해 약간 후회스럽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전기 신호와 주관적인 경험(감각질 또는 퀄리아) 사이에 항상 일대일 대응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했던 요점은 바로 그 다음 부분에서 언급한 '환원'입니다. 정신은 물질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동일한 자극에 대한 신경 활동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주관적 경험은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통증 경험은 다른 사람의 통증 경험과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비록 물질적 원인(신경 활동)은 같더라도 말이죠. 이는 통증이나 다른 정신적 상태의 경험이 단순히 뇌 활동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정신'에는 '물질'에 존재하지 않는 정보가 있으며, 따라서 두 가지를 별개의 실체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자역학과 신학을 모두 탐구하는 자료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많지는 않지만 존재합니다. InspiringPhilosophy라는 영어권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기독교 철학자 마이클 존스는 양자역학과 신학의 중첩에 가장 많이 관여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저는 이 영상을 만들 때 그분의 콘텐츠를 상당히 참고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변증가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도 있는데, 크레이그는 고전적인 철학을 다루는 것 같습니다.
@@변증코너 아무래도 많은 분들의 댓글을 보니 예시를 통해 요점에 집중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만, 저는 덕분에 환상 사지 통증을 정신과 물질의 환원에 빗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네요 ㅎㅎ 좋은 컨텐츠 추천 감사합니다. 10대 아이들과 교류가 많은 직종이다 보니 궁금증이 많았는데 변증코너님 덕분에 많이 알아갑니다.
변증코너님이 요약으로 적으신 글과 동영상에서 “신”을 “기독교의 신”으로 바꾸면 신을 믿는 비율이 굉장히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신”으로 적고 신의 존재를 변증하시니 어떤 사람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으로 착각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기독교인이라면 “맞아, 역시 하나님은 계신다니까!”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변증하신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기독교의 신인지 아니면 그와 다른, 혹은 기독교의 신보다 상위의 신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변증하신 것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냥 신 그 자체이지 기독교의 신은 아닙니다. 혹시 “기독교의 신”도 자기를 “창조”한 상위 신의 명령인, “너는 네 마음대로 너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인간을 만들지 마라”는 명령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인간을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기독교의 신도 원죄를 가지고 있고, 자기를 창조한 신에 의해 구원을 받아야 할 존재일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시겠지만, 기독교의 주장을 그대로 카피한 것입니다. 저는 (진짜) 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인간은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적은 성경을 근거로 믿을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신이 아무리 능력이 있어서 인간에게 찰떡 같이 말해줘도 인간은 신이 아닌 이상 신의 설명을 알아들을 수 없고 항상 개떡 같이 해석할 뿐입니다. 마치 개가 인간의 말에 반응은 해도 인간을 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더구나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인간은 피조물이니, 그 차이는 마치 인간과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클 것입니다. 인간이 바이러스에게 아무리 자기를 나타내도 알아듣겠습니까? 하나님의 극히 일부라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럼 뭐합니까? 사람도 수십 년을 같이 산 배우자의 극히 일부만 알고, 그로 인해서 무수히 많은 오해와 불신이 쌓이는데, 인간이 하나님의 극히 일부만 안다면, 그게 온전할까요? 지금은 (거울처럼)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날이 되면 완전히 알게 된다면, 지금은 함부로 안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게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고 참람한 짓입니다. 기독교인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다(예를 들어 심지어 사랑의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는 순간 그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사랑에 대해서도 사람은 자기 경험과 사고에 비추어 온갖 추측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구엔 80억의 신이 있다고도 하지요. 목사 부부라도 믿는 하나님이 다릅니다.
흥미로운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신이 존재할지라도 그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아니다"라는 것 같네요. 저는 본 영상에서 "하나님" 대신 "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기독교"나 종교에 관한 언급을 피한 이유가 있습니다. "신이 존재하는가?"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가?"라는 두 질문은 반드시 구분해야 하며, 후자의 질문은 전자의 질문에 '예'라는 답이 나왔을 때, 그 이후에만 논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순서를 지키지 않거나 두 질문을 혼동하게 되면, 성급한 결론에 도달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영상의 내용은 기독교인이든, 무슬림이든, 유대인이든, 이신론자이든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답변하면 님이 제기한 포인트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 간단히 답해보겠습니다. 기독교가 참인지 아닌지를 논하기 위해서는, 2천 년 전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 사건이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말한 것처럼,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 신앙은 헛된 것이라고 했죠. 예수님의 부활이 입증된다면, 그분을 주님/하나님/신으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변증코너 첫 문단은 이해하겠습니다. 둘째 문단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입증된다면 그를 기독교 신앙의 대상으로 인정할 수 있겠습니다. 그가 하나님 혹은 신이냐 하는 것은 또 별개이고요. 왜냐하면 기독교의 주장에 의하면 그는 스스로 다시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대교와 이슬람은 아직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위대한 선지자 중 한 명이라고 하지요. 아무튼 앞으로 예수의 부활을 증명하실 것 같은데, 여기서 미리 말씀드릴 것은 1. 성경 안에서 증명하는 것은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신천지의 이만희씨가 스스로 메시아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믿는 사람이 많은데, 그 근거를 자기들이 만든 경전에 둔다면 그걸 증거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2. 특히 구약에서 예수를 믿었거나 오실 예수를 믿은 구체적인 사람이나 구체적인 구절이 있으면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꺼운 구약에 등장하는 그 많은 인물과 사건에서 예수에 대해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면, 구약은 기독교가 말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말하고자 함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예수가 하나님이고, 구약이 오실 예수에 관한 책이라면 예수에 대해 많이 언급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때도 역시 현대 기독교의 교리로 그 구절을 해석하지 마시고, 기독교의 교리가 전혀 없었던 그 당시 사람의 입장에서, 그 당시 사람의 관점으로 읽었을 때 해당되는 구절이 있으면 가르쳐 주시길 바랍니다. 예를 들면 에스겔18장 전체는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두고 온통 원죄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걸 기독교의 교리를 전혀 몰랐던 당시 사람의 입장에서 읽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기독교 교리의 잣대로 해석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불치하문-q4m 사실 기독교는 애초에 증명을 부정합니다. 왜냐면 기독교의 핵심은 부활신앙이고 이것에 대한 믿음이 구원의 열쇠이니까요. 그래서 비신자들이 증명하라고 하면 증명할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믿음의 영역으로 비워둔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아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믿음의 영역으로 남겨진 부분이 있다는 의미는 반대 해석하면 기독교를 부정할 수 있는 근거도 찾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온전히 믿음의 영역으로 남겨두시려고 기독교를 완전히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찾을 수 없게 만드셨습니다. 님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시대와 공간에 걸쳐 기독교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대한민국의 과학을 좋아하는 댓글러일까요? 아님 유물론자? 이성주의자? 아뇨 유태인 입니다. 님들이 알고 있는 기독교 반대하는 이론의 출처는 거의 다 유대인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유물론자인 마르크스 레닌도 유태인이구요.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완벽히 증명해내지 못했습니다.
님이 제기하신 상위개념의 신의개념은 성경을 기반으로 한 상상력에 불과합니다.그 생각도 성경을 기반으로 나온 생각이구요.그리고 무엇보다 님이 성경을 몰라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오묘하고 빈틈이 없으며 어렵습니다. 구약을 보면 말도 안되는 얘기가 있는 것 같아보이겠지만 그 말도 안 되어보이는 것들이 신약과 이어지면서 숨어있는 엄청난 의미가 드러납니다.구약은 예언서가 있습니다. 그 예언서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아직 안왔다고 여기는 거죠 그러나 신약에서 그 기다린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예언서 내용과 교차검증 될수 있게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 시기에 미처 해석하지 못했던 구약의 의미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며 하느님이시라는 하느님이 직접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라는 내용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부활신앙이라 했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구약의 모든 수수께끼를 푸는 답을 제공해줍니다. 그것도 역사적사실로써 구약에서 예언한 내용과 그 숨은 의미를 실제 역사적 사건으로 이루어내고 명백히 알려줍니다. 구약의 유월절 내용(파스카 축제)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죠. 그리고 예수님 수난에 대한 구약성서 부분도 있는데 거기 적힌 그대로 역사적으로 실제 십자가 길을 걸으셨고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증거가 많아요. 그래서 구약의 예수님 수난 부분은 유대교에서 읽지를 않아요 구약성경 그부분은 없애지는 않고 그냥 읽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까지는 객관적으로 증명가능합니다. 다만, 부활은 증거할 수 있게 만드시지 않은 것이에요 부활은 믿음의 영역이라 12제자와 그리스도인의 목숨을 바쳐 증언으로써 전달되어온 것입니다.증거로 증명되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목격한 증인의 증언으로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즉 요약하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은 구약에서 숨겨진 의미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뜻을 해석을 못한 것이고 신약으로 비로소 숨겨진 의미가 드러난 것인데 부활을 객관적사실로 증명하는 부분은 믿음의 영역으로 남겨두신 것입니다.
그리고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하느님은 어떤 분이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확히 나와있습니다. 이에 반해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의미 같이 인간의 지식과 생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에 아무 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완전히 선하시고 전지전능하시다는 것 그리고 진리이고 참이시라는 것은 나와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우리보다 큰 뜻이 있으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그리고 이것에 대한 증명도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입니다. 유월절이 뭔지 아시나요? 우리 죄를 뒤집어 쓸 죄없는 희생양을 찾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어린양에게 뒤집어 씌우고 죽이죠. 그리고 죽인 양의 피로 재앙을 피하죠 그런데 신약에서 알려줍니다. 그 어린양이 예수님이라는 것을요. 하느님의 아들이 하느님 자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스스로 희생양이 되려고 세상에 오실 것을 유월절 (파스카 축제)를 통해 구약에 미리 말해둔 것임을 누가 알았을까요? 예수님은 처음부터 처참한 모습으로 죽으려고 오셨고 신약성경에서 계속나오는 '그때'는 죽는날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선 유월절시기이고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부터는 그 유명한 부활절시기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그 피로 죄가 사해지고 부활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 뜻인 줄 누가 알았을까요? 제자들도 몰라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었죠. 사람은 남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요? 가족이라면 모르겠네요 그런데 나쁜사람 죄인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요? 배은망덕하고 못된 동물을 위해 사람이 동물의 모습이 된 후 동물들에게 온갖 수난받고 비웃음 당하면서 죽을 수 있을까요? 심지어 사람이 동물을 창조한 것도 아닙니다. 신이 피조물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고 다만 부활만은 증인으로 알려주신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하는 말은 이것을 의미합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각 논증에는 신 정의에 대한 범위가 달라져요. 예를 들어, 칼람 우주론적 논증: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 시공간을 만들 능력이 있는 존재 라이프니츠 우주론적 논증/양상 존재론적 논증: 필연적인 존재 의식 논증: 인간의 마음보다 큰 마음, 물질을 존속하게 하는 마음 모든 논증을 고려하면, 신이라는 존재가 어떠한 속성을 지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헛소리처럼 들림. 되도 않는 전제들을 깔아 놓고선, 그러니까, 결론은..... 이렇다. 수많은 인격 신을 인정하지 않는 노벨상 수상자들은 모른척하고선. 1900년도의 사람을 인용하면서, 봤지? 물리학자도 인정하잖아 하는 꼴. 물리학자들이 선호하는 태도: 앞선 사람들이 뭐라 떠들던, "그건 그 사람 의견이고, 실험 만이 답을 말해준다."임.
@@변증코너 2:20 "정신적 경험은 물리적 뇌상태로 환원될 수 없고, 이 둘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전기적 신호어쩌고 하다가, 뜬금없이, 갑자기, 왜, 정신 세계와 물리적 세계가 분리되었음을 보여준다고 결론 내리는 것인지 적절하게 말하지 않고 있음. 당신의 믿음이 관여된 하나의 의견일 뿐인데, 그것을 마치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결론처럼 말하고 있음. 거기서부터, 다 틀어졌음. 어설프게 환원주의를 들먹이는 것도 웃김.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자신의 학문이 꼭대기에 있다고 자부하기(어찌보면, 시건방떨기) 위해 말하는 환원주의. 물리학자들은 물리학>화학>생물학>?? 뉴런/정신??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말하는데,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 과정의 단절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면서 말하고 있음. 이것은 그냥 논리적 비약. 전체적으로, 그냥 논리적 비약 + 논리적 비약으로 범벅되었는데, 무슨 논증이니 어쩌구 하는지 모르겠고, 이런 것을 어찌 "당신 논증은 잘못되었소"라고 분석할 수 있으리오? 그냥 파울리의 명언 Not Even Wrong일 뿐. 꽤 고상해보이는 추상명사/형용사를 많이 사용한다고, 논증이 타당해지는 것이 아님. 그냥 인격신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가 본데, 그건 당신 자유이지만, 어설프게 과학과 철학을 들먹이지 마쇼...
중요한 부분들 놓치고 있네요. 내가 정신적 상태와 물리적 상태의 구분을 말할 때, 갑자기 이유 없이 둘을 나누는 게 아닙니다. 이건 마음의 철학에서 오랫동안 논의된 주제고, 특히 퀄리아라는 개념, 즉 주관적인 경험이 물리적 설명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온 결론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비약이라는 건 아닙니다. 환원주의에 대해서도 주장도 잘못 이해하고 있네요. 물론 물리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냐가 아니라, 과학이 주관적 경험 자체를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뇌 신경이 발화하는 것만이 마음이라고 말하는 거라면, 님이 잘 알려진 의식의 hard problem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거죠.. 이건 물리학을 인용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걸 단순히 "의견"이라고 치부하는 건 역설적이네요. 님 댓글 자체가 아무 논리적 반박 없이 님이 선호하는 환원주의를 단순히 내세우고 있잖아요. 의식의 비환원성 문제에 대한 실제 도전은 무시하고 말이죠. 이 영상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건 본인 자유지만, 간단히 무시하는 태도로는 강한 반론을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일단 마음 자체가 전기 신호에서 나오는 것 일 뿐더러 통증이 있는데 뇌의 전기 신호가 없다는 말은 원인이 없는데 결과가 있다는 논리적 오류고 통증과 전기 신호가 1대1로 환원 될 수 없다? 이건 인간이 한 사건을 얼마나 많은 편집과 각색을 해서 기억하는데 당연히 환원이 될 수가 없지...심리학이 없던 시기에야 그럴듯한 설명을 하고있어
Q: 인격 신을 인정하지 않은 물리학자들에는 누가 있는가? GPT's Answer: 인격 신을 인정하지 않은 물리학자들 중에는 여러 저명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신의 존재나 개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거나 부정했으며, 특히 인격 신에 대해 회의적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아인슈타인은 신의 존재에 대해 "범신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인격 신을 믿지 않았지만, 우주와 자연의 질서, 조화로움을 경외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종종 스피노자의 신 개념에 가까운 입장을 취했으며, 우주의 조화를 초월적 지능이 설계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유명한 말 중 하나인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우주가 근본적으로 질서와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그의 신념을 나타냅니다. 리처드 파인만 (Richard Feynman) 파인만은 종교적 신념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과학적 탐구에서 종교나 초자연적 신념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과학과 종교가 본질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한다고 보았으며, 종교적 믿음이 과학적 사고와 양립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티븐 호킹 (Stephen Hawking) 호킹은 인격 신의 개념을 부정했습니다. 그의 책 시간의 역사에서, 그는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신의 개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그는 우주의 탄생과 발전을 설명하는 데 물리학적 법칙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호킹은 특히 과학이 계속 발전함에 따라 신의 역할은 줄어든다고 보았습니다. 닐스 보어 (Niels Bohr) 보어는 양자역학의 주요 창시자 중 하나였으며, 신앙보다는 과학적 설명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는 인격 신의 존재에 대해 직접적으로 많은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자연의 복잡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했고, 종교적인 개입이나 신의 존재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피했습니다. 스티븐 와인버그 (Steven Weinberg)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는 종종 무신론적 입장을 취한 과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우주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의미 없게 보인다"는 언급을 하며,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의 세계관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만일 영상의 첫 5분을 생략했으면 “권위에 호소”에 해당됐겠죠. 그렇지만 이 결론에 어떻게 도달했는지를 첫 5분에서 꼼꼼히 설명했습니다. “유명한 노벨상 수상자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언급하고 연설을 인용했을 뿐. 만약 “어떤 한 노벨상 수상자가 이렇게 믿었다, **그러므로** 이 견해가 옳다”고 말했으면 권위에 호소에 해당됐겠지만, 님이 첫 5분을 보지 않고 마지막 2분만 본 것처럼 얘기하고 계시네요.
안녕하세요 변증코너님! 영사 보던 도중에 질문드리고 싶은것이 있어 댓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주관적인 경험이 물리적 과정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음은, 단지 그 분야 과학의 한계로 인해 설명되지 않는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마음과 영혼이라는것이 그저 매우 복잡한 것이기에 우리가 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것이라면, 마음과 영혼이 비물리적인 존재라는 가정이 의미있는 주장이 되지 못하지 않을까 싶어요.
고등학생인데 바쁜 공부중에 잠시 보게 된 영상이라, 더 깊이 생각하거나 추가적인 조사를 하지 못하고 바로 질문부터 드려서 조금 죄송합니다..ㅠㅠ
또, 이렇게 의미있는 영상들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윤리와 사상] 시간에 그리스도교를 배우며 '신앙을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싶었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지는 못했거든요. 하지만 이런 영상들을 계속 만들어주시니 저로서는 조금이나마 저의 신앙에 대해 조심스레 생각해보고 탐구해볼 기반이 쌓여가는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래요!
좋은 질문입니다. 먼저, 과학의 한계라는 관점은 과학이 현재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중에 설명될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이는 합리적인 접근 방식이죠. 그러나 마음과 물질의 문제에서 논의되는 것은 단순히 과학적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개념적 비환원성*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고통, 맛, 색깔의 지각 등 주관적인 경험은 뇌의 전기 신호나 화학 반응 등 물리적 신호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그 신호를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신호 자체가 그런 경험을 구성할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설탕의 분자 구조는 설탕의 단맛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설탕의 화학 구조를 아무리 자세히 알아도, "단맛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단맛의 경험은 물리적 구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속성이기 때문이죠. 이를 qualia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주관적 경험과 물리적 상태의 관계를 단지 과학의 부족으로 간주하는 것은, 우리가 설명해야 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간과하는 것입니다. 이 논점은 과학의 한계를 넘어,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뇌과학은 아직 발달된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상관관계를 알 수 없다고 해서 흑백논리로 가버리면 그건 잘못됨
뇌과학이 계속 발달되어도 문제가 여전합니다.
마음(영혼)이라는 비물질적인 것이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는, 힘을 가지지 않는 마음이 어떻게 신경세포를 발화하게 할 수 있는지, 즉 어떻게 힘을 갖게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뇌과학으로 설명될 수 없는 영역이에요.
운영체제를 공부하면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른 인간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논리이죠.
도달하고자 하는 결론: 마음의 속성과 물질의 속성은 공유할 수 없다.
이를 뒷받침 위해 한 말 :
고통을 느끼는 것과 뇌의 전기 신호는 다르다. 왜냐하면
1.1: 전기신호가 있다고 반드시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1.2: 통증이 느껴지지만 뇌의 전기신호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내 생각: 우린 현실에 대해 논하고 있으므로 1.2 는 뒷받침한 말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고통은 전기신호의 일부라면 1.1은 성립한다.
환원에 대해:
통증과 맛 경험은 전기신호와 화학 반응으로 설명 될 수 없다. (이를 양보해서 참이라고 한다고 해도)
그러므로 주관적 경험은 물리적으로 설명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신적 경험은 물리적 뇌 상태로 환원 될 수 없다.
궁금증: 환원불가능하면 본질적으로 다른가?
AI로 예측할 수 없는 바둑 수를 두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AI가 물리적 부품으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것일까?(적절한 예인지 모르겠음)
결론: 물질을 포함한 모든 것은 마음이다.
여전히 참; 모든 물질은 마음이다.
여전히 참: 마음에는 물질이 있다.
전제 2: 마음과 물질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를 위반하지 않는지 모르겠음.
내 생각: 마음은 물질이다.
누군가 움직이기로 결정해 신경 세포가 발화한다. 여기에 힘은 전기적 상호작용과 화학적 상호작용이 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저도 "전기 신호가 없지만 통증이 여전히 존재하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라는 말을 영상에 넣었을 때, 같은 이유로 마음에 걸렸어요. 왜냐하면 "[그러한]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고 말하는 순간, 더 이상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었던 포인트는 "통증"과 "뇌의 전기 신호"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만약 둘이 완전히 같다면, 통증을 신호로 환원하거나 신호를 통증으로 환원하여 서로 다르게 표현할 수 없겠죠.
맛이라는 퀄리아(qualia, 감각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울다다기 양배추의 맛을 설명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맛의 경험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 흥미로운 예입니다. 이는 퀄리아가 객관적인가 주관적인가에 관한 문제죠. 그런데 만약 맛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세상(예를 들어, 모두가 동시에 코로나에 걸리거나 혀를 제거한 상황)에서는 음식의 물질로부터 "맛"이라는 정보를 추출할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로 인해, 맛이라는 퀄리아는 물질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AI 예를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인공지능에 경험이 있는 사람인데, (대부분의) AI는 통계 머신이거나 단순한 수학적 공식에 불과합니다. 신경망에는 여러 뉴런이 있고, 각 뉴런에는 학습 과정에서 조정되는 고유한 a, b값이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입력값이 주어졌을 때, y=ax+b라는 방정식으로 출력값을 결정하죠. 그래서 신경망을 이와 같이 환원할 수 있고, 물질 세계에 대한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해서 (모델 구조가 잘못되었거나 학습 데이터에 문제가 있었던 이유 등으로) 이 신경망이 물리적 부품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저는 AI를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보기 때문에 물리적 부품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그 결론에 도달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님의 의견에 더 적합한 예가 있더라도, 이 예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증코너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이 있어 댓글을 남깁니다.
우선, 영상을 매우 흥미롭게 보았으며, 알지 못하던 것들을 알게되어 즐겁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영상의 내용에 공감 하고 있으며, 이 자리에서 공격적인 태도가 아닌 정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있는 어린 아이와 같은 태도로 질문하고자 함을 밝힙니다. 저는 라플라스의 악마(결정론)에 양자역학이 반박하였음을 안 뒤로부터 과학과 철학의 함의점들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저는 AI를 연구하고 있는 박사과정 학생입니다. 궁금한 것은, 과연 AI를 지능 혹은 인격 혹은 의식이라 할 수 있는가? 영상 내용과 연결지어, AI의 물리적 계산이 정말 의식으로의 환원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만약 AI를 지성이라 인정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오늘 영상의 논증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입니다. 이 질문들에 대한 의견과 최신 연구들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저는 아래와 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 곳에서 AI는 GPT만 따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1. 저는 AI의 대답이 물리적 현상의 환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는 것 처럼 딥러닝은 y=ax+b 라는 연산과 nonlinear operation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간단한 연산들은 0과 1의 전기적 신호의 연산과 같고, 이는 전자의 물리적 이동, 스핀 등으로 구현됩니다. 계산은 물리량의 환원이고, 우리와 AI의 소통을 매개하는 키보드와 모니터 또한 물리량의 환원입니다.
2. 딥러닝은 수많은 계산을 통해 어떤 결과값을 도출해 냅니다. 저도 GPT가 나오기 전까지는 LLM이 그저 '그럴듯한' 답을 기존의 데이터셋을 조합하여 뱉어내는 모델들일 뿐이라 생각하고, 지능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LLM이 이제 long-term의 대화 맥락을 파악하고,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이 것을 절제된 지성과 다르다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따라서 AI가 지능인가, 의식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해 집니다. 물리적 환원인 AI의 답변을 보고 AI를 지능 혹은 의식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은 흔히 중국어 방 사고실험에 대입되며,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으로 이어집니다.
4. GPT4가 출시되기 전,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진은 미리 GPT4를 테스트할 수 있었고, 해당 내용을 담아 MIT에서 'First contact'라는 제목으로 간단한 키노트 세션을 열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능'의 기준에 대해 나름 정의를 하고 테스트를 하였고, 결론은 '아직 지능이라 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는 모른다' 였습니다. (찾아보니 같은 내용으로 세미나를 하고 유튜브에 올렸네요! ruclips.net/video/qbIk7-JPB2c/видео.html)
5. AI는 결코 지능으로 인정될 수 없는가?에 대하여 증명이 가능하다면 차라리 별 생각이 없겠습니다만, 여러 SF소설들의 영향인지 언젠가 AI는 인간의 지능과 구분할 수 없는 수준이 되리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AI를 지능으로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6. 흥미로운 것은 최신 AI 연구의 가장 굵직한 트렌드 중 하나가 인간이 생각하는 사고과정을 모사하여 인공지능의 모델을 개발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더 나은 성능을 보여줍니다. (혹시 흥미가 있으시다면 heuristic과 inductive bias라는 키워드를 남깁니다)
7. 만약 과학자들의 상상처럼, 인간의 뇌를 구조적으로 완벽히 모사하고, 대화를 통하여도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AI가 개발된다면, 이를 우린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인간과 AI의 차이는 뭘까요? 물리량과 의식 사이의 환원은 어떤 개념으로 정리될까요? - 어떤 물리량도 (특히 중력과 열역학) 발견 전에는 환원되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과학적 개념으로 정리 되었습니다. 과연 인간의 정신과 물리적 세계 사이의 환원이 어떤 물리량으로 정리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아! 다시 보니 저 유튜브 링크가 제가 들었던 그 세미나네요!
단순히 신이 없다는 의견도 신을.가정해야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 무의미하죠. 그 말도 하나의 의견이니까
아닙니다. 신의 존재는 가정이 아니라 결론입니다.
유익한 영상 늘 감사합니다.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통증과 전기 신호가 늘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만, 어떠한 예가 있을까요?
그리고 양자물리학과 신학을 겹쳐서 공부해볼 만한 좋은 입문서가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는 현상은 환상 사지 통증입니다. 일부 사지를 잃은 사람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지에서 통증을 느끼는 "환상 사지 통증"을 자주 경험합니다. 이것은 뇌에서 오는 신호로 설명될 수 있지만, 이 "통증"이 실제로 신체적 부상의 결과가 아니라 정신적인 경험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물리적인 사지는 사라졌지만, 그 통증은 여전히 그 사람에게 매우 현실적인 것입니다. 이는 통증의 경험이 물질(사지)의 존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그 신호에 대한 정신의 해석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 영상을 본 다른 댓글들을 보니, 이 문장을 포함한 것에 대해 약간 후회스럽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전기 신호와 주관적인 경험(감각질 또는 퀄리아) 사이에 항상 일대일 대응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했던 요점은 바로 그 다음 부분에서 언급한 '환원'입니다. 정신은 물질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동일한 자극에 대한 신경 활동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주관적 경험은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통증 경험은 다른 사람의 통증 경험과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비록 물질적 원인(신경 활동)은 같더라도 말이죠. 이는 통증이나 다른 정신적 상태의 경험이 단순히 뇌 활동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정신'에는 '물질'에 존재하지 않는 정보가 있으며, 따라서 두 가지를 별개의 실체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자역학과 신학을 모두 탐구하는 자료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많지는 않지만 존재합니다. InspiringPhilosophy라는 영어권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기독교 철학자 마이클 존스는 양자역학과 신학의 중첩에 가장 많이 관여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저는 이 영상을 만들 때 그분의 콘텐츠를 상당히 참고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변증가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도 있는데, 크레이그는 고전적인 철학을 다루는 것 같습니다.
@@변증코너 아무래도 많은 분들의 댓글을 보니 예시를 통해 요점에 집중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만, 저는 덕분에 환상 사지 통증을 정신과 물질의 환원에 빗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네요 ㅎㅎ
좋은 컨텐츠 추천 감사합니다. 10대 아이들과 교류가 많은 직종이다 보니 궁금증이 많았는데 변증코너님 덕분에 많이 알아갑니다.
스토아학파 형님들이 주장한게 맞았을지도..?
변증코너님이 요약으로 적으신 글과 동영상에서 “신”을 “기독교의 신”으로 바꾸면 신을 믿는 비율이 굉장히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신”으로 적고 신의 존재를 변증하시니 어떤 사람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으로 착각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기독교인이라면 “맞아, 역시 하나님은 계신다니까!”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변증하신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기독교의 신인지 아니면 그와 다른, 혹은 기독교의 신보다 상위의 신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변증하신 것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냥 신 그 자체이지 기독교의 신은 아닙니다.
혹시 “기독교의 신”도 자기를 “창조”한 상위 신의 명령인, “너는 네 마음대로 너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인간을 만들지 마라”는 명령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인간을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기독교의 신도 원죄를 가지고 있고, 자기를 창조한 신에 의해 구원을 받아야 할 존재일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시겠지만, 기독교의 주장을 그대로 카피한 것입니다.
저는 (진짜) 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인간은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적은 성경을 근거로 믿을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신이 아무리 능력이 있어서 인간에게 찰떡 같이 말해줘도 인간은 신이 아닌 이상 신의 설명을 알아들을 수 없고 항상 개떡 같이 해석할 뿐입니다. 마치 개가 인간의 말에 반응은 해도 인간을 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더구나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인간은 피조물이니, 그 차이는 마치 인간과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클 것입니다. 인간이 바이러스에게 아무리 자기를 나타내도 알아듣겠습니까?
하나님의 극히 일부라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럼 뭐합니까? 사람도 수십 년을 같이 산 배우자의 극히 일부만 알고, 그로 인해서 무수히 많은 오해와 불신이 쌓이는데, 인간이 하나님의 극히 일부만 안다면, 그게 온전할까요? 지금은 (거울처럼)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날이 되면 완전히 알게 된다면, 지금은 함부로 안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게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고 참람한 짓입니다. 기독교인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다(예를 들어 심지어 사랑의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는 순간 그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사랑에 대해서도 사람은 자기 경험과 사고에 비추어 온갖 추측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구엔 80억의 신이 있다고도 하지요. 목사 부부라도 믿는 하나님이 다릅니다.
흥미로운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신이 존재할지라도 그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아니다"라는 것 같네요. 저는 본 영상에서 "하나님" 대신 "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기독교"나 종교에 관한 언급을 피한 이유가 있습니다. "신이 존재하는가?"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가?"라는 두 질문은 반드시 구분해야 하며, 후자의 질문은 전자의 질문에 '예'라는 답이 나왔을 때, 그 이후에만 논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순서를 지키지 않거나 두 질문을 혼동하게 되면, 성급한 결론에 도달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영상의 내용은 기독교인이든, 무슬림이든, 유대인이든, 이신론자이든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답변하면 님이 제기한 포인트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 간단히 답해보겠습니다. 기독교가 참인지 아닌지를 논하기 위해서는, 2천 년 전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 사건이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말한 것처럼,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 신앙은 헛된 것이라고 했죠. 예수님의 부활이 입증된다면, 그분을 주님/하나님/신으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변증코너
첫 문단은 이해하겠습니다.
둘째 문단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입증된다면 그를 기독교 신앙의 대상으로 인정할 수 있겠습니다. 그가 하나님 혹은 신이냐 하는 것은 또 별개이고요. 왜냐하면 기독교의 주장에 의하면 그는 스스로 다시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대교와 이슬람은 아직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위대한 선지자 중 한 명이라고 하지요.
아무튼 앞으로 예수의 부활을 증명하실 것 같은데, 여기서 미리 말씀드릴 것은 1. 성경 안에서 증명하는 것은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신천지의 이만희씨가 스스로 메시아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믿는 사람이 많은데, 그 근거를 자기들이 만든 경전에 둔다면 그걸 증거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2. 특히 구약에서 예수를 믿었거나 오실 예수를 믿은 구체적인 사람이나 구체적인 구절이 있으면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꺼운 구약에 등장하는 그 많은 인물과 사건에서 예수에 대해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면, 구약은 기독교가 말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말하고자 함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예수가 하나님이고, 구약이 오실 예수에 관한 책이라면 예수에 대해 많이 언급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때도 역시 현대 기독교의 교리로 그 구절을 해석하지 마시고, 기독교의 교리가 전혀 없었던 그 당시 사람의 입장에서, 그 당시 사람의 관점으로 읽었을 때 해당되는 구절이 있으면 가르쳐 주시길 바랍니다. 예를 들면 에스겔18장 전체는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두고 온통 원죄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걸 기독교의 교리를 전혀 몰랐던 당시 사람의 입장에서 읽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기독교 교리의 잣대로 해석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불치하문-q4m 사실 기독교는 애초에 증명을 부정합니다. 왜냐면 기독교의 핵심은 부활신앙이고 이것에 대한 믿음이 구원의 열쇠이니까요. 그래서 비신자들이 증명하라고 하면 증명할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믿음의 영역으로 비워둔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아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믿음의 영역으로 남겨진 부분이 있다는 의미는 반대 해석하면 기독교를 부정할 수 있는 근거도 찾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온전히 믿음의 영역으로 남겨두시려고 기독교를 완전히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찾을 수 없게 만드셨습니다.
님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시대와 공간에 걸쳐 기독교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대한민국의 과학을 좋아하는 댓글러일까요? 아님 유물론자? 이성주의자? 아뇨 유태인 입니다. 님들이 알고 있는 기독교 반대하는 이론의 출처는 거의 다 유대인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유물론자인 마르크스 레닌도 유태인이구요.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완벽히 증명해내지 못했습니다.
님이 제기하신 상위개념의 신의개념은 성경을 기반으로 한 상상력에 불과합니다.그 생각도 성경을 기반으로 나온 생각이구요.그리고 무엇보다 님이 성경을 몰라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오묘하고 빈틈이 없으며 어렵습니다. 구약을 보면 말도 안되는 얘기가 있는 것 같아보이겠지만 그 말도 안 되어보이는 것들이 신약과 이어지면서 숨어있는 엄청난 의미가 드러납니다.구약은 예언서가 있습니다. 그 예언서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아직 안왔다고 여기는 거죠 그러나 신약에서 그 기다린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예언서 내용과 교차검증 될수 있게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 시기에 미처 해석하지 못했던 구약의 의미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며 하느님이시라는 하느님이 직접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라는 내용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부활신앙이라 했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구약의 모든 수수께끼를 푸는 답을 제공해줍니다. 그것도 역사적사실로써 구약에서 예언한 내용과 그 숨은 의미를 실제 역사적 사건으로 이루어내고 명백히 알려줍니다. 구약의 유월절 내용(파스카 축제)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죠. 그리고 예수님 수난에 대한 구약성서 부분도 있는데 거기 적힌 그대로 역사적으로 실제 십자가 길을 걸으셨고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증거가 많아요. 그래서 구약의 예수님 수난 부분은 유대교에서 읽지를 않아요 구약성경 그부분은 없애지는 않고 그냥 읽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까지는 객관적으로 증명가능합니다. 다만, 부활은 증거할 수 있게 만드시지 않은 것이에요 부활은 믿음의 영역이라 12제자와 그리스도인의 목숨을 바쳐 증언으로써 전달되어온 것입니다.증거로 증명되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목격한 증인의 증언으로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즉 요약하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은 구약에서 숨겨진 의미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뜻을 해석을 못한 것이고 신약으로 비로소 숨겨진 의미가 드러난 것인데 부활을 객관적사실로 증명하는 부분은 믿음의 영역으로 남겨두신 것입니다.
그리고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하느님은 어떤 분이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확히 나와있습니다. 이에 반해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의미 같이 인간의 지식과 생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에 아무 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완전히 선하시고 전지전능하시다는 것 그리고 진리이고 참이시라는 것은 나와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우리보다 큰 뜻이 있으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그리고 이것에 대한 증명도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입니다. 유월절이 뭔지 아시나요? 우리 죄를 뒤집어 쓸 죄없는 희생양을 찾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어린양에게 뒤집어 씌우고 죽이죠. 그리고 죽인 양의 피로 재앙을 피하죠 그런데 신약에서 알려줍니다. 그 어린양이 예수님이라는 것을요. 하느님의 아들이 하느님 자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스스로 희생양이 되려고 세상에 오실 것을 유월절 (파스카 축제)를 통해 구약에 미리 말해둔 것임을 누가 알았을까요? 예수님은 처음부터 처참한 모습으로 죽으려고 오셨고 신약성경에서 계속나오는 '그때'는 죽는날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선 유월절시기이고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부터는 그 유명한 부활절시기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그 피로 죄가 사해지고 부활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 뜻인 줄 누가 알았을까요? 제자들도 몰라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었죠. 사람은 남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요? 가족이라면 모르겠네요 그런데 나쁜사람 죄인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요? 배은망덕하고 못된 동물을 위해 사람이 동물의 모습이 된 후 동물들에게 온갖 수난받고 비웃음 당하면서 죽을 수 있을까요? 심지어 사람이 동물을 창조한 것도 아닙니다. 신이 피조물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고 다만 부활만은 증인으로 알려주신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하는 말은 이것을 의미합니다.
신이라고 하기 보다는 그 것 이라고 하는게 낫지안을까요
그쵸, 꼭 신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어요. 그렇지만 신이라고 안 부를 이유도 없죠
신이 무엇인지 정의가 먼저 필요합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각 논증에는 신 정의에 대한 범위가 달라져요.
예를 들어,
칼람 우주론적 논증: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 시공간을 만들 능력이 있는 존재
라이프니츠 우주론적 논증/양상 존재론적 논증: 필연적인 존재
의식 논증: 인간의 마음보다 큰 마음, 물질을 존속하게 하는 마음
모든 논증을 고려하면, 신이라는 존재가 어떠한 속성을 지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헛소리처럼 들림. 되도 않는 전제들을 깔아 놓고선, 그러니까, 결론은..... 이렇다.
수많은 인격 신을 인정하지 않는 노벨상 수상자들은 모른척하고선.
1900년도의 사람을 인용하면서, 봤지? 물리학자도 인정하잖아 하는 꼴.
물리학자들이 선호하는 태도: 앞선 사람들이 뭐라 떠들던, "그건 그 사람 의견이고, 실험 만이 답을 말해준다."임.
어떤 한 노벨상 수상자가 신을 인정해서 신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주장한 적 없는데? 그리고 말이 안된다고 했는데, 왜 말이 안되는지를 말해야 제가 가치있는 답변을 써드릴 수 있어요.
@@변증코너 2:20 "정신적 경험은 물리적 뇌상태로 환원될 수 없고, 이 둘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전기적 신호어쩌고 하다가, 뜬금없이, 갑자기, 왜, 정신 세계와 물리적 세계가 분리되었음을 보여준다고 결론 내리는 것인지 적절하게 말하지 않고 있음.
당신의 믿음이 관여된 하나의 의견일 뿐인데, 그것을 마치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결론처럼 말하고 있음.
거기서부터, 다 틀어졌음.
어설프게 환원주의를 들먹이는 것도 웃김.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자신의 학문이 꼭대기에 있다고 자부하기(어찌보면, 시건방떨기) 위해 말하는 환원주의.
물리학자들은 물리학>화학>생물학>?? 뉴런/정신??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말하는데,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 과정의 단절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면서 말하고 있음. 이것은 그냥 논리적 비약.
전체적으로, 그냥 논리적 비약 + 논리적 비약으로 범벅되었는데,
무슨 논증이니 어쩌구 하는지 모르겠고, 이런 것을 어찌 "당신 논증은 잘못되었소"라고 분석할 수 있으리오? 그냥 파울리의 명언 Not Even Wrong일 뿐.
꽤 고상해보이는 추상명사/형용사를 많이 사용한다고, 논증이 타당해지는 것이 아님.
그냥 인격신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가 본데,
그건 당신 자유이지만, 어설프게 과학과 철학을 들먹이지 마쇼...
중요한 부분들 놓치고 있네요. 내가 정신적 상태와 물리적 상태의 구분을 말할 때, 갑자기 이유 없이 둘을 나누는 게 아닙니다. 이건 마음의 철학에서 오랫동안 논의된 주제고, 특히 퀄리아라는 개념, 즉 주관적인 경험이 물리적 설명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온 결론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비약이라는 건 아닙니다.
환원주의에 대해서도 주장도 잘못 이해하고 있네요. 물론 물리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냐가 아니라, 과학이 주관적 경험 자체를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뇌 신경이 발화하는 것만이 마음이라고 말하는 거라면, 님이 잘 알려진 의식의 hard problem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거죠.. 이건 물리학을 인용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걸 단순히 "의견"이라고 치부하는 건 역설적이네요. 님 댓글 자체가 아무 논리적 반박 없이 님이 선호하는 환원주의를 단순히 내세우고 있잖아요. 의식의 비환원성 문제에 대한 실제 도전은 무시하고 말이죠.
이 영상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건 본인 자유지만, 간단히 무시하는 태도로는 강한 반론을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일단 마음 자체가 전기 신호에서 나오는 것 일 뿐더러 통증이 있는데 뇌의 전기 신호가 없다는 말은 원인이 없는데 결과가 있다는 논리적 오류고 통증과 전기 신호가 1대1로 환원 될 수 없다? 이건 인간이 한 사건을 얼마나 많은 편집과 각색을 해서 기억하는데 당연히 환원이 될 수가 없지...심리학이 없던 시기에야 그럴듯한 설명을 하고있어
저도 "나"라는게 어떻게 뇌세포를 흐르는 신호일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여기 딱 들어맞는 내용이 나오네요
Q: 인격 신을 인정하지 않은 물리학자들에는 누가 있는가?
GPT's Answer:
인격 신을 인정하지 않은 물리학자들 중에는 여러 저명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신의 존재나 개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거나 부정했으며, 특히 인격 신에 대해 회의적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아인슈타인은 신의 존재에 대해 "범신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인격 신을 믿지 않았지만, 우주와 자연의 질서, 조화로움을 경외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종종 스피노자의 신 개념에 가까운 입장을 취했으며, 우주의 조화를 초월적 지능이 설계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유명한 말 중 하나인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우주가 근본적으로 질서와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그의 신념을 나타냅니다.
리처드 파인만 (Richard Feynman)
파인만은 종교적 신념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과학적 탐구에서 종교나 초자연적 신념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과학과 종교가 본질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한다고 보았으며, 종교적 믿음이 과학적 사고와 양립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티븐 호킹 (Stephen Hawking)
호킹은 인격 신의 개념을 부정했습니다. 그의 책 시간의 역사에서, 그는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신의 개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그는 우주의 탄생과 발전을 설명하는 데 물리학적 법칙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호킹은 특히 과학이 계속 발전함에 따라 신의 역할은 줄어든다고 보았습니다.
닐스 보어 (Niels Bohr)
보어는 양자역학의 주요 창시자 중 하나였으며, 신앙보다는 과학적 설명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는 인격 신의 존재에 대해 직접적으로 많은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자연의 복잡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했고, 종교적인 개입이나 신의 존재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피했습니다.
스티븐 와인버그 (Steven Weinberg)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는 종종 무신론적 입장을 취한 과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우주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의미 없게 보인다"는 언급을 하며,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의 세계관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면 chatgpt한테 “권위에 호소하는 논증”이란 무엇인가를 같이 물어보세요.
@@변증코너플랑크를 인용하지 않았다면, 또 그 초상을 썸네일에 걸지 않았다면 이 영상은 누구도 보지 않았을텐데요? ㅋㅋ
누군가의 권위 뒤에 숨은 건 본인 아닌가요?
포인트는 뭡니까? 인용하면 죄고, 인용하지 않으면 죄니까 할 말이 없네요.
@@변증코너 참으로 놀라움.
바로 그 "권위에 호소"로 보여서, 댓글을 달았는데, "권위에 호소"를 말하다니......
만일 영상의 첫 5분을 생략했으면 “권위에 호소”에 해당됐겠죠.
그렇지만 이 결론에 어떻게 도달했는지를 첫 5분에서 꼼꼼히 설명했습니다. “유명한 노벨상 수상자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언급하고 연설을 인용했을 뿐. 만약 “어떤 한 노벨상 수상자가 이렇게 믿었다, **그러므로** 이 견해가 옳다”고 말했으면 권위에 호소에 해당됐겠지만, 님이 첫 5분을 보지 않고 마지막 2분만 본 것처럼 얘기하고 계시네요.
버클리주의 변종
영혼과 신이 같다??????
영혼과 인간이 같지 않듯이 영혼과 신이 같지 않습니다.
안간은 영혼을 가집니다. 마찬가지로 신이 있으면 신도 영혼을 가지겠다는 견해는 충분히 타당합니다. 그리고 본 영상에서 설명된 것처럼 어떤 인간 한 명의 마음이 될 수 없는, 우리보다 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참... 유튜브 영상도 아무나 못올리게 해야함...이런거 보고있자니 갑갑하다.
ㅋㅋㅋㅋㅋ
말 놀이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