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릉원은 마립간 시대 고분군으로 스키토-시베리아 문화의 기마민족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에서는 사슴을 토템으로 숭배했고, 신라 금관은 계림을 상징하는 나뭇가지와 사슴뿔을 상징하는 녹각이 합쳐져 수지녹각형의 모양을 갖게 됐죠. 현재 대릉원 무덤 중 유일하게 주인이 밝혀진 무덤은 금관총인데 학자들은 금관총의 주인인 이사지왕은 마립간은 아니고 고위 지배층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ruclips.net/video/mCcWiobN6Wo/видео.htmlsi=3ChGea5-CO6Fu6PP 연맹왕국에서 시작한 신라는 법흥왕 때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불교를 공인했고, 왕즉불 사상을 내세우며 왕권을 강화해나갔습니다. 선덕여왕은 성스러운 석가모니의 혈통인 성골이라는 이유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고, 불교적 세계관인 정토사상에 입각해서 옥녀봉-첨성대-선덕여왕릉-문무왕릉을 일직선에 위치시켰죠. 선덕여왕릉은 불교적 정토인 도리천을 상징하는데 첨성대가 33층인 이유가 그때문이죠. ruclips.net/video/qNmHUskgeIk/видео.htmlsi=TzfPry2P_jy_XW-- ruclips.net/video/9A_GYk0zFGs/видео.htmlsi=Nh7ObYkx7xe5L2cO 신라 왕실에서 불교를 공인하며 기존 샤머니즘의 권위가 쇠퇴하자, 신라 공주였던 만명부인은 아들인 김유신에게 신궁의 제관인 천관녀를 음탕한 계집이라고 하며 그녀와 인연을 끊을 것을 권고했습니다. 마립간 시기 신의 권위를 상징하던 금관은 신라 왕실이 불교화한 6세기 이후에는 더이상 출토되지 않습니다. 선덕여왕, 문무왕 등의 초상화에 금관이 함께 그려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더이상 금관이 신의 권위를 상징하지 않고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상징물로 전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금관총 주인인 이사지왕이 마립간이 아니고 신라의 고위층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금관이 왕의 권위를 상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 책을 읽으셨는지 짐작이 갑니다만 그 분 주장은 학술적으로 아예 말이 안돼요. 신라는 철저한 골품제 사회였고, 기마민족이었으며, 사로국에서 시작해 끊임없는 정복전쟁으로 나라가 발전했잖아요. 평등하고 평화로운 고대 모계사회가 고대 신라 문화에서 발견된다는 주장이 어떻게 말이 되겠습니까.
그 때 경주 갔을 때 이거 봤는데 정말 멋지더군요
어제 다녀왔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잘 다녀가셨나요?! 천마총 금관 정말 아름답죠!
영상 너무 잘 만드셨어요.
귀에 쏙쏙 들어오는 내용이었습니다!!
선덕여왕,문무왕 시대에는 왕관도 없어지고 릉이 산속으로 들어간 시기죠.
영상은 잘 만든 것 같은데 조회수가 낮네
흑흑 ㅠㅠ
전 경주에 살아서 맨날 가요ㅎㅎ
100억가치 보다 훨씬 넘을것 같은데
동명왕도있는데
대릉원은 마립간 시대 고분군으로 스키토-시베리아 문화의 기마민족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에서는 사슴을 토템으로 숭배했고, 신라 금관은 계림을 상징하는 나뭇가지와 사슴뿔을 상징하는 녹각이 합쳐져 수지녹각형의 모양을 갖게 됐죠.
현재 대릉원 무덤 중 유일하게 주인이 밝혀진 무덤은 금관총인데 학자들은 금관총의 주인인 이사지왕은 마립간은 아니고 고위 지배층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ruclips.net/video/mCcWiobN6Wo/видео.htmlsi=3ChGea5-CO6Fu6PP
연맹왕국에서 시작한 신라는 법흥왕 때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불교를 공인했고, 왕즉불 사상을 내세우며 왕권을 강화해나갔습니다. 선덕여왕은 성스러운 석가모니의 혈통인 성골이라는 이유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고, 불교적 세계관인 정토사상에 입각해서 옥녀봉-첨성대-선덕여왕릉-문무왕릉을 일직선에 위치시켰죠. 선덕여왕릉은 불교적 정토인 도리천을 상징하는데 첨성대가 33층인 이유가 그때문이죠.
ruclips.net/video/qNmHUskgeIk/видео.htmlsi=TzfPry2P_jy_XW--
ruclips.net/video/9A_GYk0zFGs/видео.htmlsi=Nh7ObYkx7xe5L2cO
신라 왕실에서 불교를 공인하며 기존 샤머니즘의 권위가 쇠퇴하자, 신라 공주였던 만명부인은 아들인 김유신에게 신궁의 제관인 천관녀를 음탕한 계집이라고 하며 그녀와 인연을 끊을 것을 권고했습니다. 마립간 시기 신의 권위를 상징하던 금관은 신라 왕실이 불교화한 6세기 이후에는 더이상 출토되지 않습니다. 선덕여왕, 문무왕 등의 초상화에 금관이 함께 그려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더이상 금관이 신의 권위를 상징하지 않고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상징물로 전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금관총 주인인 이사지왕이 마립간이 아니고 신라의 고위층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금관이 왕의 권위를 상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 책을 읽으셨는지 짐작이 갑니다만 그 분 주장은 학술적으로 아예 말이 안돼요.
신라는 철저한 골품제 사회였고, 기마민족이었으며, 사로국에서 시작해 끊임없는 정복전쟁으로 나라가 발전했잖아요. 평등하고 평화로운 고대 모계사회가 고대 신라 문화에서 발견된다는 주장이 어떻게 말이 되겠습니까.
주말에 가니깐 이거 없고 딴거 있던데 실망임
소지왕 무덤 같음 금관총이 지증왕 무덤
신라시대의 금은 어디서 가져왔을까요? 경주 인근에 금광이 있었을까여?
천마도 보면 말에 뿔 달렸던데 ~유니콘 아님? ㅋㅋ
남자 문무왕 일꺼라 생각함 너무크고 대두 일꺼라 생각함
신라 왕조 김씨가 흉노들이라 금관도 북방계 순록이나 사슴뿔 모양이다.
대두 문무왕
이해가 안가는데.무덤 발굴할때
누구의 것인지 비석같은것도 없었나?
천마총이 뭐야 천마총이 ㅡㅡ 그냥 갖다 붙인거지 이름을
존나 웃긴 고고학자들 ㅋㅋㅋㅋㅋ 진짜 븅닭같다 ㅋㅋㅋ 천마그림이 발견됐다고 ㅋㅋㅋ 그 무덤이름을 천마총 ㅋㅋㅋ 그따구로 이름 정할꺼면 ㅋㅋㅋ 나같은 일반 초딩도 다 하겠다 ㅋㅋㅋ
천마도 그림도 말 다래 즉 말 옆구리에 달았던거 즉 높은신분의 사람 왕이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