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구리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는 잘 아는데 고려사는 잘 모릅니다. 저만 그러는 줄 알았더니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그러더라구요. 생각보다 고려사를 잘 모릅니다. 얼마전 대학생 한명이 삼국시대까지 그리고 조선시대는 술술 잘 넘어가는데 고려사는 도통 알 수가 없다고 하길래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억지로 한반도에 끼워 맞추려고 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면서 고려사의 젼개과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학생을 나중에 다시 만났는데 덕분에 에이플러스 받았다고 고마워하더라구요. 그 교수가 고려사 전공 교수인데도 고려사를 명쾌하게 설명을 못한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대륙고려 위주로 설명을 해 주면서도 다만 학점을 받기 위해서는 일단 한반도 중심으로 답안지를 작성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이 잘 알아듣고 답안 작성을 요령껏 한 모양입니다. 그 학생도 고려를 하북성에 놓고 생각해 보니 이해가 훨씬 잘 된다고 하더라구요. 거란이 왜 자기네가 고구려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는지, 왜 고려와 거란이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는지, 고려와 송의 관계, 금나라가 일어나서 거란을 멸망시키는 과정, 원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산동반도의 강화도로 천도해서 반백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등을 얘기해 줬더니 너무 재미있고 알기 쉬웠다고 하더라구요. 한반도에 고려사를 우겨넣으니 곳곳에 구명이 생기고 앞뒤가 안 맞고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기 때문에 학생들이 고려사를 공부하는 게 어렵게 되는 거죠.
역사 공부를 하기 전에 강화도를 가서 구석 구석 돌아다니며 늘 들던 생각. 대몽 항쟁기 관련, "여기서 40년을 버텼다고? 요 몇백미터의 바다를 40년 동안 못건너왔다고? 황하도 넘어간 몽골 병사들이? 고려왕성 터는 있나?....." 의문이 꼬리를 물었지요. 책보고님 영상들 수십편 보니 개안이 됩니다. 오늘 영상도 대박입니다~!!!
조선 초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 지도가 고려가 대륙에 있었다는 증거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도 보면 중국 대륙 지명들을 엄청 세세하게 적어놨던데 일급기밀 취급 받는 지도 정보를 명나라에서 제공했을 리가 없고 이미 과거에 그 정보가 있었기에 그런 지도를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이겠죠.
특히 "조선 초기"라는 시기는 모든 베이스가 고려시대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가운데 떡하니 그려진 중원의 세세한 지도는 누가 주인인지 너무나 명백하지요. "혼일강리역대국도" 자체가 증거라는 말씀 격하게 동의합니다. 아울러.... 개인적으로 조선시대 강역도 의구심이 듭니다. 성삼문의 시조 구절,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 백이숙제의 수양산... 지구 어디에서든 향할 수는 있지만...조선 강역 이내같은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적어도 고려시대 강역내의 수양산은 분명하지 않을까요. "수양산 그늘이 광동 80리를 간다." 수양산이 애 이름도 아니고...너무나 친숙하게 등장합니다. 재외 동포 고려인은 왜 스스로를 고려인이라 할까요. 중국 조선족하고는 또 다른...뭔가 깊고 깊은 역사가 있는 게 아닐까요. 코리아 국명에도 펄펄 살아 있는 고려, 중국으로 변신한 국명 china 신라, Japan-->저팬->제밴->제백->백제, 중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불리우는 친숙한 지명들...대체 우리 선조님들은 어떤 분들이셨을까요...
드뎌 올라왔네요.여행자의 입장이라면, 최대한 그대로 기록하려는 욕구가 있죠 ㅋ 그림이 있어야 그림책이라고 하는데, 5백년된 조선도 지도가 넘치는데, 7백년된 고려의 지도가 없다는게 말이안되고, 무엇보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가 개발된 고려이기에 팔만대장경도 있고,고려탱화도 있는데 그림이 없다는게 말이 안됨.아마도 분명 조선까지 대한제국까지는 있었을거 같고, 일제때 대거 조선총독부가 정창원으로 가져가 버린가 아닌가 의심스럽다눈. 꼼꼼하게 해설 해주신거 감동이네요!!
우리 나라가 36년간 역사에 접근하지 못한채 친일들이 만들어 놓은 억사를 아직두 못버리고 고집하고 계승하는 우리나라 식민사학자들 정말 지겹구 화가 치밀어 오른다,그들은 왜 각성하지도 역사를 바로 잡지 않을까~?!!!!!책보고님 같은 분들이 진정한 역사가 입니다,항상 고생많으십니다 ~👍😇
티모시 메이라는 미국 박사가 쓴 몽골 병법이라는 책 후반부에도 몽골이 송나라 멸망시킬 때 고려인과 한족을 동원했다고 나오더라구요. 몽골은 공격하려는 곳 근처의 사람들을 징발해서 썼다고 하니까 고려가 중국에 있었다는 또다른 근거가 되겠고 기동성과 속도를 최우선시하는 몽골이 한반도에 있는 고려인들을 수개월에 걸쳐 사천까지 데려온다는 건 어불성설일테니까요.
산둥성쪽 중국 남자랑 결혼한 제 아내지인이 있는데, 딸 이름을 신라라 지었음. 현지인들이 이름 잘 지었다 한다고함. 산둥성 출신 중국 남성께서 제 아내에게 너희와 나의 조상이 같다고 한적이 있었습니다. 뭔 개솔?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 하면서 황당해했던 기억. 그땐 책보고가 없었어...ㅠㅠ
마동석 주연의 영화 압꾸정에 보면 중국 자본을 끌어 쓰면서 강대국(마동석 분)도 산동지방 조상의 후손이라고 나오는데. 이거 참 큰 그림인가 싶었습니다. 가끔 영화가 나서 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k 뷰티/성형 시장의 시조새 다큐 같은 코메디 영화였지만, 나름 의료계 문제도 나오고, 권모술수도 나오고 사람 사는 얘기라 재미나게 본 기억이 나네요.) 역사도 스며드는게 최고라..
제 생각에는 우리의 역사를 대륙에서 지우는 작업을 시작한 때가 조선과 명이 아닌 원나라로부터 시작했다고 봅니다. 원나가 요사, 금사를 쓰면서 고려의 강역의 북쪽은 요나라, 금나라 땅으로, 남쪽은 송나라땅으로 둔갑을 시킨 것이죠. 원나라는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이기 때문에 같은 고구려의 후예인 고려를 부마국으로 만들었고 영역을 축소시킬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몽고가 금나라를 침략해 황항 이남으로 몰아낼 때 즈음인 1132년에 고려는 열심히 강화로 천도를 하고 있었다고 나오는데, 그 때의 강화는 지명이 아니라 지형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말로는 황하도 하가 아니고 강이라고 불렀을 것이고 큰 강이 수시로 물길이 변하여 넓은 지역을 여러갈래로 갈라져 흐르는 것을 강화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1132년에 황하의 둑을 터뜨려 강이 여러갈래로 갈라지는 지형이 생겼고 그것을 이용해서 몽골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았고 그 아래로 수도를 옮길 계획을 세웠는데 그것이 강화천도일 것입니다. 황하가 범람해 지류가 여러개로 갈라진 쪽 어딘가에 수도를 옮겼을 것이고 점점 밑으로 내려가면서 수도가 옮겨지면서 40년 동안 이어졌겠죠. 처음에는 여러곳으로 옮겨 다니다가 나중에는 한곳에 정착한 후에 강화에 있는 도성이라 해서 강도라고 불렀고요.
그림 없는 그림책 1. 원 제목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북송 말기 서긍이 이끄는 8척 배가 고리高麗를 방문하며 고리의 도로, 건축물 등을 모두 염탐한 기록을 해 놓았다. 40권 중 2권만 남아있고, 38권이 분실되어 후대에 다시 쓰여졌다. 전해지는 2권은 바닷길이다. 양자강에서 출발하여 도착하는 데까지 40일 걸렸고, 고리高麗 황성에 도착하여 한달 정도 체류하면서 황성 건축물이나, 고리 사람들 사는 모습, 관직 등을 기록했다. 돌아오는 데도 40일 걸렸다. 이 책이 발견된 곳은 강소성 난창이다. 양자강 남부로 우측에 신라 경덕(경덕진), 위에는 백제 무령이 있다. 난창과 운남성에서 발견되었다는 건 남송의 마지막 수도가 운남 임안임을 밝혀주는 강력한 증거.. '도경'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전해지지 않는다. 고리시대 지도는 단 한 장도 존재하지 않고, 남김없이 없애졌다. 송나라 망한 다음 원나라가 있고, 명나라 때 다시 쓰인 책이라 보면 된다. 2. 고리高麗 이전 고구리高句麗 역사 외국에 가는 사신은 무조건 그림으로 그리는 걸 급선무로 한다. 고구리는 요동이라 멀므로 그림으로 그려내는 게 쉽지 않다. 그전 왕윤이 쓴 가 있었으나 전해지지 않는다. 한나라 장건은 실크로드 쪽 대월지에 사신으로 파견된 적이 있다. 내가(서긍이) 고리에 있었던 기간이 한 달 남짓이어서 작성에 한계가 있다. 그 기간 동안 대여섯 번 밖에 나왔을 때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책.. 이 나라는 호를 선우나 카칸(가한)이라 부른다. 부여의 왕이 황하의 신(하신)의 딸을 거두었는데, 햇빛을 받아 감응하여 알을 낳으니 '주몽'이라 한다. 홀승골에 살면서 그곳을 '고구리高句麗'라 했다. (산서성 북경위쪽에 지금도 '홀승골' 지역명 있음) 한말 공손강이 환도산 아래에서 고구리를 격파했었다. 위 장수 무구검이 고구리 환도성을 쳐들어가 무찌르고 그 기록에 돌에 새겨놓고 돌아온 적이 있다. 위는 이로부터 20년 후 망한다. 당나라 때는 이세민(당태종)이 고구리를 정벌하러 요동을 쳤으나 연개소문에 패하고 돌아왔다. 아들 이치(당고종)는 나라를 배신한 연남생 도움으로 고구리를 패망시켰다. 왕 고장(보장왕 642~668)을 사로잡고 그 땅을 나누어 군현을 삼았으며, 안동도호부를 평양성에 설치했다. 3. 출발지 명주(닝보) 명주(닝보) 정해 먼바다를 건너서 고리高麗로 나아갔다. 4. 고리高麗 영역 남에 요해, 서에 요수, 북에 옛 거란, 동에 금과 접한다. 그리고 일본, 유구, 담라, 흑수(말갈), 모인 등의 나라와 개의 어금니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신라와 백제를 흡수해 고리를 이루었는데, 나주(현 기춘), 광주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송 수도를 개봉이라 주장하는데, 더 내륙인 변량이다. 변량이 수도이면 고리高麗 수도가 북동에 있는 게 말이 된다. 연산도(산서성 지역)에서 육로를 거친 다음에 태행산맥 요수를 건넜다. 고리高麗 수도(현 북경)까지 가는데 4천리.. 해도로는 하북(황하북쪽), 경동, 회남(회수이남), 양절, 광남, 복건(양자강아래)이 있는데, 모두 왕래가 가능하다. 현재 고리高麗의 위치는 등주·내주·빈주·체주(산동곶)와 정확히 마주보는 위치다. 송나라에서는 사신을 파견할 때 명주(닝보)에서 출발한다는 얘기는 수도가 개봉이 아니라는 얘기다. 만약 수도가 개봉이라면 황하를 따라 쉽게 서경(현 북경)으로 갈 수 있다. 그런데 못 간다는 건, 금나라가 가로막기 때문이다. 고리高麗는 동서 2천리, 남북 1500리다. 가로가 더 길다는 얘기다. 이는 지금 한국사학계가 가르치고 배우게 하는 고리 지도가 말짱 다 틀린 거라는 얘기다. 고리高麗 영토는 동해에 닿아있다. 서해, 남해도 아니고 굳이 '동해에 닿아있다'고 쓴 것은 대륙 고리가 동중국해와 닿아있다는 얘기이다. 큰 산과 깊은 골이 많다는 것은 북경의 산맥들을 말하는 거다. 5. 고리高麗 내원성과 국내성 전에는 요와 경계를 이루었는데, 계속 침범을 하니까 高麗가 내원성을 쌓았다. 태행산맥에 '내원'이라는 지역명이 그대로 남아있다. 흑수말갈에서 발원하는 압록강(오리가 많은 강)은 요동에서 5백리 떨어져 있는데, 고구리 국내성을 거치면서 염난수와 합류한다. 안평에서 海로 들어간다. 이 위치는 고리高麗에서 천혜의 요충지로 폭이 넓다. 요의 동쪽은 옛날에 거란에 속했던 지역이다. 6. 고리高麗 왕성 당나라 때 이적이 남소에서 고구리를 격파하고 물을 건널 때, 물이 얕고 좁았는데 그곳이 바로 요수의 시원이다. 한말 환도성 아래 살았고, 후위~당에 이르는 동안 평양에 도읍하였다. 이적이 도호부를 세우자 동으로 옮겨가 살았다. 당말 나라를 되찾았을 때 현 도읍지를 '개주'라 했으며, 현재도 여전히 '개성부'를 두고 있다. 성 북쪽에는 숭산이 있다. 평양은 한 유철(한무제)이 세운 낙랑군과 당 이치(당고종)가 세운 도호부가 있던 곳으로 압록수 동남쪽이다. 당말 고구리는 점점 동쪽으로 옮겨갔다. 지금의 왕성은 압록수 동남쪽 1천리에 위치하는데, 옛 평양지역은 아니다. 성 주위는 60리이며 산에 둘러싸여 있다. '평양' 지역명은 대륙에 여럿이다. 7. 고리高麗 고관 풍속 ① 동이 고리高麗에는 종묘사직을 세우고 읍과 주에는 집과 거리가 있으며, 높은 성첩으로 둘렀다. 성곽들이 우뚝 솟아 업신여길 수 없다. 에 '동이'의 '이'란 '어질어서 잘 자란다'는 뜻이다. 만물이 땅과 맞닿아 자라나기 때문에 동이의 천성은 유순하여, 호전적인 서융과는 다르다. ② 복식 왕은 자색 비단옷을 입는데, 금빛과 푸른빛을 수놓은 허리띠를 매었으며, 검은 두건을 쓰고 있다. 그 아래 영관급 신하들은 자색 비단옷에 허리에 옥 허리띠를 두르고 금어대를 찼다. 대개 청라로 된 관에 새깃을 달아 썼다. 경과 감은 자색옷은 못 입고 비색 비단옷에 허리에 무소뿔 허리띠를 두르고 은어대를 찼다. 조관은 비색옷에 은어대, 서관은 녹색옷을 입고 검은신을 신었다. ③ 갑옷과 무기 갑옷은 고구리때처럼 위아래 연결된 모습이며, 금빛 꽃으로 장식한 높은 모자는 석자나 된다. 푸른색 비단옷에 느슨한 허리띠는 사타구니까지 내려온다. 고리 사신들은 대개 고깔 모자를 쓴다. 활은 다섯자, 화살은 대나무가 아닌 버드나무로 만들어 더 짧고 작다. ④ 왕이 타는 말은 큰 의례가 있는 날에는 말에 갑옷을 입힌다. 고리는 금(아골타)과 멀지 않은 까닭에 준마가 많다. 기병이 타는 말의 안장과 언치는 매우 정교하다. 밀치끈과 고삐 사이사이는 황금과 오은으로 꾸몄다. ⑤ 동신성모지당 선인문 안에 동신사가 있다. 여신을 모신 곳인데, 어떤 이는 부여왕의 처인 '하신의 딸'이고 주몽의 엄마이기 때문에 상을 세우고 모신다고 한다.
8. 高麗 백성 ① 고리에서는 글을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여색을 좋아하고, 쉽게 사랑하고, 재물을 중히 여긴다. 문물이 발달하고 예의가 바른 나라로서, 음식을 먹고 마실 때 그릇을 쓴다. 문자는 해서체, 예서체를 모두 쓰고, 주고받을 때 무릎을 꿇고 절하며 엄숙히 공경하므로 우러러볼 만하다. 제사를 지내는 것을 좋아하고 불교를 좋아한다. ② 농민과 상인의 복식 흰 모시옷을 입고 네가닥 띠가 있는 검은 두건을 쓴다. 장인들은 매우 정교하고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 무늬비단으로 만든 모자(두건)을 매우 소중히 여기며 하나의 가격이 쌀 한 섬에 해당한다. 맨머리는 거의 죄수나 다름없다 여겨서 부끄러워 하므로 대나무관을 만들어 쓴다. 여자옷은 흰색 모시저고리에 노란 치마를 입었다. ③ 모자 총각은 두건으로 머리를 싸고 머리를 길게 내려뜨리다가, 장가든 뒤에는 머리를 묶는다. ④ 식습관 고리高麗의 봉록은 매우 박해서 쌀과 채소만을 줄 뿐이므로 평상시 고기를 먹는 일이 드물다. 귀족들은 주로 양과 돼지 고기를 먹고, 가난한 민중은 주로 해산물을 먹는다. 고리高麗가 내륙지역이고 한큰곶이라면 해산물 먹기가 힘들다. 강을 끼고 있고 바다가 가까운 대륙동부라는 얘기다. 하북성~산동곶~양자강 흐르는 곳이 다 해산물 먹기 알맞은 지역이다. ⑤ 자원 죽솥은 삶는 그릇인데 철로 만든다. 지거나 이는 구리 항아리에 물, 쌀을 담는데, 어깨로 맬 수 없으면 머리에 인다. 금은, 구리가 많이 나고, 나전칠기 솜씨가 기막히게 세밀하다. 고리高麗 황호필은 원숭이 털이라 한다. 원숭이는 산동곶 아래~양자강에 산다. 한큰곶이라 하면 말이 안 되는 기록이다. ⑥ 은향로 은 30근을 들인 향로는 윗부분이 산 모양이고 아랫부분은 다리가 3개다. 매우 정교하다. 우리가 충청도에서 발견되어, 백제 것으로 가르치고 있는 금동대향로가 실은 백제 거라는 증거가 없다. 9. 사신 도착 뒤 사신들이 예성항에 도착하자 고리高麗 의장대가 맞아준다. 사신단의 삼절(상절, 중절, 하절)은 걸어서 벽란정으로 들어간다(북경 벽란다리 현존). 이곳에서 30리 가면 황성(자금성).. 정사와 부사가 조서를 받들고 순천관으로 들어간다. 10일 이내에 길일을 택해 고리왕이 조서를 받는다. 조서 받기 하루전 설의관을 먼저 보내어 정사와 부사를 만나게 했다. 예전에 '순천' 하면 무조건 '북경'이다. 서긍이 기록한 장소들은 이민구 대표가 사서의 지명들과 고리高麗 황성 기록을 고지도와 구글맵 지역명과 교차검증하여 빼박 '북경 자금성'임을 다 밝혀냈다. 금동 1만5천근이나 사용한 큰 종이 있는데, 2층 누각에 두고 울리면 그 소리가 거란에까지 들렸고, 선우가 그 소리를 듣기 싫어해서 지금 이곳 서경(현 북경)에 옮겼다고 한다. 한큰곶에 종이 있다 치면 거란이 어디 있길래 그 소리가 들리겠나? 태행산맥을 두고 북경에서 치면 들릴 거라는 것으로 보아야.. 10. 배 & 바닷길 海(황하)로 나갈 때 배를 이용해야 했다. 배를 타고 간 바닷길은 이민구 대표가 발표한 영상을 참조하시라. 악주가 나온다. 송 중심지가 악주, 즉 지금의 우한였던 거다. 수도가 개봉이고 중국동부라면 그쪽 지역명이 나와야 하는데, 안 나온다. 고리高麗 서경(현 북경)을 떠나서 명주(닝보)까지 바닷길로 오는 데 42일이 걸렸다. 에서 양자강에서 출발하여 명 황제 있는 북경까지 40여일 걸린다는 기록과 일치한다.
고리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무역왕국이였고 그래서 개성상인이라는 전설이 생긴겁니다.. 당시 어음을 쓰던 곳은 페르시아와 고리 뿐이였습니다.. 엽전(죽엽전.. 대나무 모양의 은자)을 고려 초기부터 썼어요.. 조선은 숙종 때서야 엽전을 겨우씁니다.. 진짜 빈한한 유교탈레반 국가..
요사,금사,송사가 원나라때 편찬 했다는데 이상한 점이 송사 496권 편찬 완성이 2년 밖에 안걸렸다는 점과 중국 25사 중 권수가 제일 많음 .요사.금사.송사. 쓰여지고 얼마안가 명이 들어섬 .명이 원사를 쓰면서 요사.금사 송사도 같이 손봤을 거고. 한족 입장에서 .베트남,한국.일본은 원나라 침공 버티고 나라를 존속 했는데 지들만 망함. 원을 몰아 냈어도 자존심 매우 구겨진 상태 였는데 조선이 알아서 기니 얼씨구나 날조 했겠지 .고려는 비굴하고 약하게 요.금은 악당이지만 호적수로 .
선화봉사고려도경 『선화봉사고려도경』 권3 성읍(城邑) 영토[封境] ㅡㅡ대륙고려 북경 고려위치 ㅡㅡㅡ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遼海)로 막히고, ₩₩₩₩₩₩₩ 서쪽으로는 요수(遼水)와 맞닿았으며, 북쪽으로는 옛 거란 지역과 접경하였고, 동쪽으로는 금[大金]과 맞닿아있다. 육로ㅡ고려는 우리 송(宋) 수도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산도(燕山道)에서 육로를 거친 다음 요수(遼水)를 건너[陸走渡遼] 동쪽으로 고려 국경까지 가는데 모두 3,790리(里)이다 해로 ㅡ우리 조정에서 사신을 파견할 때는 항상 명주(明州)의 정해(定海)에서 먼바다[絶海]로 길을 잡아 ㅡㅡㅡ북쪽으로₩₩₩ㅡㅡㅡ 나아갔다. 배를 탈 때는 언제나 하지(夏至) 다음의 남풍(南風)을 탔으니 ₩₩₩₩바람이 순조로우면₩₩₩₩₩₩ 닷새도 안 돼 해안에 도착할 수 있다. 선화봉사고려도경 『선화봉사고려도경』 권3 성읍(城邑) 영토[封境] ㅡ 영토[封境]ㅡㅡㅡ요수는 영정하 ㅡ압록강은 원문에 압록 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遼海)로 막히고, ₩₩₩₩₩₩₩ 서쪽으로는 요수(遼水)와 맞닿았으며, 북쪽으로는 옛 거란 지역과 접경하였고, 동쪽으로는 금[大金]과 맞닿아있다. 그리고 일본(日本)·유구(流求)·담라(聃羅)·흑수(黑水)·모인(毛人) 등의 나라와 개의 어금니[犬牙]처럼 서로 맞물려있다. 저 신라와 백제가 자신들의 영토[圉]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병합이 되었으니 현재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가 여기에 해당된다. 고려는 우리 송(宋) 수도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산도(燕山道)에서 육로를 거친 다음 요수(遼水)를 건너[陸走渡遼] 동쪽으로 고려 국경까지 가는데 모두 3,790리(里)이다 . 해도(海道)로는 하북(河北)·경동(京東)·회남(淮南)·양절(兩浙)·광남(廣南)·복건(福建) 등이 있는데 모두 왕래가 가능하다. 지금 세워진 나라는[今所建國] 등주(登州)·내주(萊州)·빈주(濱州)·체주(棣州)와 정확하게 마주보는 위치에 있다. 원풍(元豐)註 001 연간 이래 우리 조정에서 사신을 파견할 때는 항상 명주(明州)의 정해(定海)에서 먼바다[絶海]로 길을 잡아 ㅡㅡㅡ북쪽으로₩₩₩ㅡㅡㅡ 나아갔다. 배를 탈 때는 언제나 하지(夏至) 다음의 남풍(南風)을 탔으니 ₩₩₩₩바람이 순조로우면 ₩₩₩닷새도 안 돼 해안에 도착할 수 있다. 옛날에는 그 영토가 동서(東西)로는 2,000여리, 남북(南北)으로는 1,500여리였는데 현재는 신라와 백제를 병합하여 동북쪽이 약간 넓어졌고 서북쪽은 거란과 접해 있다. 전에는 요[大遼]와 경계를 이루었는데 나중에 침범을 당하게 되자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견고하게 〈방어토록〉 하였다. 아울러 압록강을 의지하여 요새로 삼으려 하였다. 말갈에서 발원하는 압록강[鴨綠水]은 그 물빛이 오리 머릿빛[鴨頭]과 같아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요동(遼東)과는 500리 떨어져 있는데 국내성(國內城)을註 002 거치면서 다시 서쪽으로 한 강물과 합류하여 흐르는데 이것이 염난수(鹽難水)이다.註 003 이 두 강물이 합쳐서 흐르다가 서남쪽으로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註 004 고려에서는 이것이 가장 큰 강이다. 물결은 맑고[淸澈] 지나치는 나루터[津濟]에는 큰 배를 댈 수 있다. 고려에서는 이 곳을 천혜의 요충지[天塹]로 여기는데 폭이 300보에 이를 정도로 넓다 . 평양성(平壤城)에서는 서북쪽으로 450리이며 요수(遼水)의 동남쪽으로는 480리에 있다. 요(遼)의 동쪽은 곧 옛날 거란에 속했던 지역인데 현재는 사람들[虜衆]이 이미 흩어진 상태이다. 금[大金]에서는 그 땅이 불모지여서 다시 성을 세워 수비하지 않고 다만 오가는 길목으로 삼았을 뿐이다. 압록의 서쪽으로는 백랑수(白浪水)와 황암수(黃嵓水)라는 두 강이 있는데 파리성(頗利城)에서 몇 리(里)를 흐른 곳에서 합류하여 남쪽으로 흐르니 이것이 바로 요수(遼水)이다 ==========%%%%₩₩₩₩₩₩₩₩₩ .註 005 당 정관(貞觀)註 006 연간에 이적(李勣)이 남소(南蘇)에서 고려를 크게 격파하고 물을 건널 때 그 물이 얕고 좁은 것이 괴이하여 물으니 이곳이 요수(遼水)의 수원(水源)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註 007 이로써 옛날에는 요수를 견고하다고 믿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고려가 압록강의 동쪽으로 물러나 국경을 지키고 있는 이유이다.
안녕하세요 책보고님 항상 감사드립니다 한국 사학계 실체는 주변국가 이미오래 전부터 다 알고 있을겁니다 언론통제로 보도를 안해서 우리들만 모르는 것일겁니다 저의 심도있는 개인적인 생각 입니다만 지금 윤석열 당선한것도 뒤에 미국 일본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돈좀 먹였을겁니다 사학계만 그런게 아니라 정치판도 일본놈들이 장악한지 오래라 봅니다 아마 일본은 옛날부터 계획적으로 그랬을 겁니다
조선중기까지 전쟁이 없었던이유.. 동서남북 주변국이 각기 내부사정으로 혼란스러웠기도 했지만. 이성계와 주원장간의 모종의 타협이 있었을듯.. 중국 동쪽땅 바치고 찾은 평화인듯..물론 그덕에 세종대왕같은분이 평생 일에 몰두할수있었고. 백성들도 편하게 지냈지만..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고 부랴부랴 편생한일.. 과거역사 지우기...!!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지웠으면.. 세종때 집현전학자들이 자료를 못찾아서 고려사를 쓰는데 애먹었다하네요..
강감찬 장군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조선..조선이 강감찬 묘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던 것은 문중의 무관심으로 실전된 것이 아닌, 한반도 조선땅에 묻히지 않았기에 모른다는 것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일텐데, 향토학자들은 강감찬 묘가 청주 흥덕 옥산에 있다고 하며 누군지도 모르는 묘를 강감찬 장군묘로 알고 있다는게 답답하네요. 당시 개경이나 서경이 중국에 있었다면 또한 천수라는 곳을 봉작지로 받았다면 중국땅 천수가 유력 후보지 아닐까? 책보고님 강간참 장군묘가 중국에 있지 않을까요?
책보고 지도 보면 당송 모두 좁은 강역이고 물산이 적은 척박한 한중 서천입니다.. 삼국지연의도 강역이 거기구요.. 큰 나라가 아니죠.. 일본놈들 마냥 입만 살았던 놈들.. 주원장도 사실 명교(배화교)를 등에 업고 큰 거죠.. 초기엔 위구르 세력으로 큰거구 나중에 한족들을 규합한거죠..
다시 알아보니 제가 적은 내용이 일정부분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어서 수정합니다. 황하쪽으로 못간 이유는 중국 북방 지역은 대부분 금(金)제국의 치하에 있었으므로, 북송에서 파견한 사절단은 육로를 이용할 수 없었고 바닷길로 황해를 건너가야 했다. 그것도 산둥(山東) 방면의 항구에서 떠나는 짧고 안전한 항로가 아니라, 지금의 저장성 연안의 항구에서 떠나 황해를 건너 전남 흑산도, 군산도(선유도)를 거쳐 강화도를 감돌아 다시 예성항(벽란도)에 이르는 우회 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출처] 벽란도(碧瀾渡), 고려의 국제항은 얼마나 붐볐을까 작성자 박하
책보고 를 시청하면서 자긍심 을 갖는이상으로 답답함 과 안타까움 이 남는것 은 이런 위대한 외침이 너무나 작다는 것이다. 자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역사를 가르치는 놈들부터 지식과 검증없는 조작된역사를 가르키고 힘있는 자 들은 외면하고 있으니 이 나라의 역사는 언제 찾을것인지...
책보고 고려 주요 22개 영상들 링크 >
1) 고려영토 옛지도발견.우리가 모르던 영토
ruclips.net/video/_N2L4NbdZzA/видео.htmlsi=CTAnZYkK6pd88BAK
2) 거란,요나라위치
ruclips.net/video/Sn-CyiVb2wg/видео.htmlsi=_sMnwvHtf4YrnwDw
3) 고려낙타의 비밀
ruclips.net/video/CYfkbYlvI_w/видео.htmlsi=0z7npqPZP4kw42yc
4) 고려강화의 위치
ruclips.net/video/cPDmKw59AbM/видео.htmlsi=-9KBM-caEAlxATs3
5) 고려서경지도
ruclips.net/video/KzaJW_UjydM/видео.htmlsi=AIu3aGQvWSkTf455
6) 고려서경16개 핵심증거
ruclips.net/video/6oa7YRIbBbs/видео.htmlsi=1W-G7BTrSha2cbFr
7) 고려최충
ruclips.net/video/aMce5mN-awU/видео.htmlsi=8bSLSxcReLaSxSpz
8) 고려사 원문강의
ruclips.net/video/T1TrmNvMF34/видео.htmlsi=Cl7YceuSzRrk0BUb
9) 서희의 담판 고려사 원문
ruclips.net/video/6x3jAOy1Lts/видео.htmlsi=6z2yyJCWdiykIDL
10) 고려영토관
ruclips.net/video/lDdJ6tBC2Oo/видео.htmlsi=R_JXk_X1v0UDz4sD
11) 고려거란전쟁 위치비교
ruclips.net/video/I_R6Io6DZ1M/видео.htmlsi=Y3z4hOuMOGh8Pfly
12) 북한의 고려유적.유물
ruclips.net/video/u0OzQsseXHk/видео.htmlsi=BAQTeH26iLzUyB1W
13) 고려거란.서북장성 위치
ruclips.net/video/ouzcBstKJmI/видео.htmlsi=CyHcdjuPb6pTWqO5
14) 중국동부의 고려절?
ruclips.net/video/sqQfMKnF5l8/видео.htmlsi=juSobPEQWwpxjEEv
15) 고려말기 영토의 축소기록
ruclips.net/video/i-Mrc5bnvU8/видео.htmlsi=vfqFGyFQ0Ox01Eud
16) 고려거란 전쟁사 동국병감
ruclips.net/video/qhghMTCITns/видео.htmlsi=CmEBCJSUBSkCXL3J
17) 고려강화도와 삼별초위치
ruclips.net/video/UsRF02pE84k/видео.htmlsi=IZnoBRkn_luAbBmH
18) 도이, 오키나와 정체
ruclips.net/video/09ZowM1yJM8/видео.htmlsi=zyGxHNgl_YpqwC2t
19) 송나라 고려도경 세계최초 뱃길추적
ruclips.net/video/pxUmCsJn27s/видео.htmlsi=Y7klVAcHyC-B50_Y
20) 그림없는 그림책 고려도경 책 분석
ruclips.net/video/7PueEqN9z5w/видео.htmlsi=_ynpHSoi3n7M6NTc
21) 원나라대도위치(월후원전용)
ruclips.net/video/WtfhAeCSgYs/видео.htmlsi=F-QzU5I1rpwqwE1d
22) 왕건과 후백제 고창전투 실제 위치
(월후원전용)
ruclips.net/video/NFaJdlI0N10/видео.htmlsi=ul-x8tAU1dv3Hrle
1402년 이후 지워졌던 江華를
장개석이 복원한 이유를 알수가 없습니다.
한번더 댓글 남깁니다
건축공학 00기술사입니다
공부좀 하는 전문직이지요
건축에서 가장중요한건 현황지정입니다
당연하지요 지리를 모르면 아무것도 못할테니깐요
하물며 타국의 정보수집개념에서 상대국의 지리이해는 기본이자 전부겠지요
무슨 직장에 무슨일들을 그리 거창하게들 하는지 모르겠지만 국뽕? 환빠?
단어 남발이네요 어디가서 그런말들 하지마요 우리같은 전문직들이 비웃어요 책보고님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책보고님 사람이 너무 똑똑하면
개때같이 합체해서 달려듭니다
물론 논리로 따지는게 아니라
개짖듯이 짖어재낄겁니다
@@shs6374원래 대한민국은 예로부터 좆문가들이 넘쳐납니다
你这个骗子!
역사 학자들이 해야 할 일들을 민간인이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코미디립니다
역사 독립전쟁을 동족간
&
공직자(국녹을받고 주인을 배신하는자들)와
민간인이(자비로 오로지 민족자긍심과 정의로)
싸워야할판
인하대 고조선 연구소 포함, 식민사학 한다는 분들도 자신들의 위치와 돈과 권력을 놓치기 싫어서, 다른 사관과 다른 견해는 무조건 무시하고 경멸하고 사이비로 몰아가는 풍토를 우리는 제대로 보았습니다. 학자들의 양심을 묻고 싶습니다. 창피하진 않은 걸까요...?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을 친다... 노래도 있잖아요. 전 그 노래 부르신 신신애 가수가 뭔가 빡쳐서 간접적으로 고발한 거라 봅니다.
말로만 개탄하고 친일파로 원인떠넘기는 사람들~ ~~
과연 그럴까??
고려도경, 우리 역사 복원과 진짜 역사 광복을 위해 불철주야 애써주시는 모든 분들, 감쏴합니다.
진짜 고맙습니다😊
우리가 고구리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는 잘 아는데 고려사는 잘 모릅니다.
저만 그러는 줄 알았더니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그러더라구요.
생각보다 고려사를 잘 모릅니다.
얼마전 대학생 한명이 삼국시대까지 그리고 조선시대는 술술 잘 넘어가는데 고려사는 도통 알 수가 없다고 하길래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억지로 한반도에 끼워 맞추려고 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면서 고려사의 젼개과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학생을 나중에 다시 만났는데 덕분에 에이플러스 받았다고 고마워하더라구요. 그 교수가 고려사 전공 교수인데도 고려사를 명쾌하게 설명을 못한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대륙고려 위주로 설명을 해 주면서도 다만 학점을 받기 위해서는 일단 한반도 중심으로 답안지를 작성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이 잘 알아듣고 답안 작성을 요령껏 한 모양입니다.
그 학생도 고려를 하북성에 놓고 생각해 보니 이해가 훨씬 잘 된다고 하더라구요.
거란이 왜 자기네가 고구려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는지, 왜 고려와 거란이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는지, 고려와 송의 관계, 금나라가 일어나서 거란을 멸망시키는 과정, 원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산동반도의 강화도로 천도해서 반백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등을 얘기해 줬더니 너무 재미있고 알기 쉬웠다고 하더라구요.
한반도에 고려사를 우겨넣으니 곳곳에 구명이 생기고 앞뒤가 안 맞고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기 때문에 학생들이 고려사를 공부하는 게 어렵게 되는 거죠.
👍
산동반도의 양산박이 강화도랑께 알긋나?
촌놈 이성계가 왕이 되고싶어
동쪽만먹고 서쪽을 주원장에게 주니 .
마음이 찔려서 고려역사지를 다 없애버린것이다 그후손놈들에 이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
요동반도 까지도 좃선이었지만 관리를 못했다 . 민족의 매국노다
정말 속 시원하게 말을 잘하네요 ㅋ굿!!!!
책보고님 영상보고 이렇게 상식적으로 대화하는 구독자님들 있는거 보면 정말 마음이 뿌듯합니다.
책보고님 영상보고 그많은 학자 교수들이 삼국사기도 제대로 연구하지 않았다는게 충격이다 일제가 만든 가짜 역사만 앵무새처럼 외웠다는거잖아
역사는 지속적으로 연구 고찰이 필요한데 강단사학자들 친일사학의 후예들은 전혀 할 일을 안 하는 식충이들이죠
역사 공부를 하기 전에 강화도를 가서 구석 구석 돌아다니며 늘 들던 생각.
대몽 항쟁기 관련,
"여기서 40년을 버텼다고?
요 몇백미터의 바다를 40년 동안 못건너왔다고? 황하도 넘어간 몽골 병사들이?
고려왕성 터는 있나?....."
의문이 꼬리를 물었지요.
책보고님 영상들 수십편 보니 개안이 됩니다. 오늘 영상도 대박입니다~!!!
책보고님이 없었다면 이런 정보 우리 위대한 조상님들을 몰랐을거에요. 항상 감사합니다.
고려도경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림없는 그림책
그당시 모습과 각 도시로 가는 길을 통해 고려의 개경과 서경 위치를 알 수 있는 그책!
주말의 마무리를 즐겁게 해주시다니 ^^
조선 초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 지도가 고려가 대륙에 있었다는 증거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도 보면 중국 대륙 지명들을 엄청 세세하게 적어놨던데 일급기밀 취급 받는 지도 정보를 명나라에서 제공했을 리가 없고 이미 과거에 그 정보가 있었기에 그런 지도를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이겠죠.
매우 공감하고 있는 내용을 적어주셨네요!!!
아프리카까지 있는걸 보면 전세계를 다 돌아 다녔을 것도 같습니다.
저도 그 생각함 명초 즉 태종 이방원전 명나라가 만든 지도에도 한반도가 포함 되서 그려진게 있는걸로 암
즉 혼일강리역지도는 고려의 영토와 그 주변 세계정보를 모은 세계지도일 가능성이 큼
특히 "조선 초기"라는 시기는 모든 베이스가 고려시대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가운데 떡하니 그려진 중원의 세세한 지도는 누가 주인인지 너무나 명백하지요.
"혼일강리역대국도" 자체가 증거라는 말씀 격하게 동의합니다.
아울러....
개인적으로 조선시대 강역도 의구심이 듭니다.
성삼문의 시조 구절,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
백이숙제의 수양산...
지구 어디에서든 향할 수는 있지만...조선 강역 이내같은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적어도 고려시대 강역내의 수양산은 분명하지 않을까요.
"수양산 그늘이 광동 80리를 간다."
수양산이 애 이름도 아니고...너무나 친숙하게 등장합니다.
재외 동포 고려인은 왜 스스로를 고려인이라 할까요.
중국 조선족하고는 또 다른...뭔가 깊고 깊은 역사가 있는 게 아닐까요.
코리아 국명에도 펄펄 살아 있는 고려,
중국으로 변신한 국명 china 신라,
Japan-->저팬->제밴->제백->백제,
중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불리우는 친숙한 지명들...대체 우리 선조님들은 어떤 분들이셨을까요...
이게 맞죠.. 예전부터 늘 이상하던 지도.. 우리가 반도가 강역이면 저런 지도가 나올 리가 없음..
옳소 조선이 한반도에 있었다면 그 당시의 교통통신사정으로 볼 때 남의나라 지도를 그렇게 그릴 수는 없고 더구나 상국으로 모시는 나라였다고 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첩자로 ㆍ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ㅡ감사합니다 책보고님.힘내세요
드뎌 올라왔네요.여행자의 입장이라면, 최대한 그대로 기록하려는 욕구가 있죠 ㅋ 그림이 있어야 그림책이라고 하는데, 5백년된 조선도 지도가 넘치는데, 7백년된 고려의 지도가 없다는게 말이안되고, 무엇보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가 개발된 고려이기에 팔만대장경도 있고,고려탱화도 있는데 그림이 없다는게 말이 안됨.아마도 분명 조선까지 대한제국까지는 있었을거 같고, 일제때 대거 조선총독부가 정창원으로 가져가 버린가 아닌가 의심스럽다눈. 꼼꼼하게 해설 해주신거 감동이네요!!
조선시대때 이방원이 다 없앴을거에요 그때 조선판 분서갱유가 있었습니다
@@themarketobserver2537
거기다 세종대왕 때 고려의 어진과 초상화가 모두 불타 없어지기까지 했죠. 고려의 부흥세력이 있을까봐
대륙에서 지명을 찾아 가며 해석을 하니, 정말 잘 들어 맞습니다.
한반도에서 해서을 하면 정말 앞뒤가 안맞는 엉터리 해석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꼭 행복하실 겁니다.
500년을 호령한 황제국이 그림 한장 안 남아있다는것 자체가 역사 왜곡이 있었다는 반증이죠
동의합니다
옳습니다 😊
ㅇㅋ ^*^
좋은 강의! 수고 많이 하십니다 ~~~
역사복웓 방송 책보고 응원합니다
진실의 역사지킴이 책보고님
제가 얘기한거 바로 해주시는군요 굿.
우리 나라가 36년간 역사에 접근하지 못한채 친일들이 만들어 놓은 억사를 아직두 못버리고 고집하고 계승하는 우리나라 식민사학자들 정말 지겹구 화가 치밀어 오른다,그들은 왜 각성하지도 역사를 바로 잡지 않을까~?!!!!!책보고님 같은 분들이 진정한 역사가 입니다,항상 고생많으십니다 ~👍😇
정상이 아닌 저들이죠
친일바가 아니라 총독부가 모은 일사학자들에 의해 날조해놓은거임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책보고님 고생많으셨습니다.
티모시 메이라는 미국 박사가 쓴 몽골 병법이라는 책 후반부에도 몽골이 송나라 멸망시킬 때 고려인과 한족을 동원했다고 나오더라구요. 몽골은 공격하려는 곳 근처의 사람들을 징발해서 썼다고 하니까 고려가 중국에 있었다는 또다른 근거가 되겠고 기동성과 속도를 최우선시하는 몽골이 한반도에 있는 고려인들을 수개월에 걸쳐 사천까지 데려온다는 건 어불성설일테니까요.
오.. 이 또한 좋은 증거네요..
항상 우리의 참 역사를 일깨워
주시는 책보고님 지금도
책보고님과 우리는 한발짝씩
주류로 전진합니다.
삼국시대의 지도도 그렇고 참..안타깝지만 지금은 글만 있는걸로 만족해야겠네요. 언젠가 지도도 하나둘씩 밝혀졌으면 좋겠네요.
오늘도 영상 잘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산둥성쪽 중국 남자랑 결혼한 제 아내지인이 있는데, 딸 이름을 신라라 지었음. 현지인들이 이름 잘 지었다 한다고함. 산둥성 출신 중국 남성께서 제 아내에게 너희와 나의 조상이 같다고 한적이 있었습니다. 뭔 개솔?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 하면서 황당해했던 기억. 그땐 책보고가 없었어...ㅠㅠ
마동석 주연의 영화 압꾸정에 보면 중국 자본을 끌어 쓰면서 강대국(마동석 분)도 산동지방 조상의 후손이라고 나오는데. 이거 참 큰 그림인가 싶었습니다. 가끔 영화가 나서 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k 뷰티/성형 시장의 시조새 다큐 같은 코메디 영화였지만, 나름 의료계 문제도 나오고, 권모술수도 나오고 사람 사는 얘기라 재미나게 본 기억이 나네요.) 역사도 스며드는게 최고라..
21:22 김부식, 장대한 체구에 얼굴은 검고 눈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두루 통달하고 기억력도 탁월하여 글을 잘 짓고 역사를 잘 알아 학사들에게 신망을 얻는 데에는 그보다 앞선 사람이 없었다. 그의 아우 김부철 또한 시를 잘한다는 명성이 있다.
자세한 해설 감사합니다.
소동파가 고려의 사신단이 사천성까지 가서 대접 받았다고 뭐라했다던데
왜 고려사신이 먼지방까지 가서 그랬나 싶었는데 뭔가 이해가 됩니다.
고려도경의 원문을 짧은 시간에 쉽게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고구려의 국호는 장수왕 때 고려로 바꿨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실방이네요...!!!👍
좋은 내용입니다...
국민들이 깨어나야 합니다
황제국
고려의 흔적을
지운 조선....
역사의 범죄다.
이씨 조선
쿠데타 정권의 숙명
책보고 구독자 10만 달성 .목전.. 카톡으로 책보고 지인에 전송.. 국민 5천만명 조작 역사 인식 재고 수정 작업 본격 시작
최고다.!!!
응원합니다
내가 중고딩시절
고려가 아랍과 무역이 굉장히 성행했다고 배우면서
벽란도가 주요항이라하였는데
이해가되지않는것이
벽란도주변은 조수간만의차가큰
갯벌이 많은데 어떻게 무역항이 될까 궁금했다
제 생각에는 우리의 역사를 대륙에서 지우는 작업을 시작한 때가 조선과 명이 아닌 원나라로부터 시작했다고 봅니다. 원나가 요사, 금사를 쓰면서 고려의 강역의 북쪽은 요나라, 금나라 땅으로, 남쪽은 송나라땅으로 둔갑을 시킨 것이죠. 원나라는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이기 때문에 같은 고구려의 후예인 고려를 부마국으로 만들었고 영역을 축소시킬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몽고가 금나라를 침략해 황항 이남으로 몰아낼 때 즈음인 1132년에 고려는 열심히 강화로 천도를 하고 있었다고 나오는데, 그 때의 강화는 지명이 아니라 지형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말로는 황하도 하가 아니고 강이라고 불렀을 것이고 큰 강이 수시로 물길이 변하여 넓은 지역을 여러갈래로 갈라져 흐르는 것을 강화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1132년에 황하의 둑을 터뜨려 강이 여러갈래로 갈라지는 지형이 생겼고 그것을 이용해서 몽골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았고 그 아래로 수도를 옮길 계획을 세웠는데 그것이 강화천도일 것입니다.
황하가 범람해 지류가 여러개로 갈라진 쪽 어딘가에 수도를 옮겼을 것이고 점점 밑으로 내려가면서 수도가 옮겨지면서 40년 동안 이어졌겠죠. 처음에는 여러곳으로 옮겨 다니다가 나중에는 한곳에 정착한 후에 강화에 있는 도성이라 해서 강도라고 불렀고요.
O
^~^
감\ /사 합니다.
친일파역사학자들은 반드시 처벌해야합니다.우리는 조상님들의 훌륭함을 반드시 되찾아야합니다.
송나라부터 천년의 시기질투가 어마어마하구먼
그전 부터죠.. 화하족은 곤륜과 화산을 벗어난 적이 없고.. 태산은 늘 우리 강역이였죠.. 전설과 속담을 보면 다 나옵니다..
저도 이전 부터 왜랑 화하족이 그래왔던건 알지만 특히 송나라때 소동파등이 본격적으로 동이족에 열등감을 갖고 지도나 사서에 대놓고 왜곡을 하기 시작했던 때라서 특히 더 그런 걸 느끼네요.
그림 없는 그림책
1. 원 제목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북송 말기 서긍이 이끄는 8척 배가 고리高麗를 방문하며 고리의 도로, 건축물 등을 모두 염탐한 기록을 해 놓았다. 40권 중 2권만 남아있고, 38권이 분실되어 후대에 다시 쓰여졌다. 전해지는 2권은 바닷길이다.
양자강에서 출발하여 도착하는 데까지 40일 걸렸고, 고리高麗 황성에 도착하여 한달 정도 체류하면서 황성 건축물이나, 고리 사람들 사는 모습, 관직 등을 기록했다. 돌아오는 데도 40일 걸렸다.
이 책이 발견된 곳은 강소성 난창이다. 양자강 남부로 우측에 신라 경덕(경덕진), 위에는 백제 무령이 있다. 난창과 운남성에서 발견되었다는 건 남송의 마지막 수도가 운남 임안임을 밝혀주는 강력한 증거..
'도경'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전해지지 않는다. 고리시대 지도는 단 한 장도 존재하지 않고, 남김없이 없애졌다.
송나라 망한 다음 원나라가 있고, 명나라 때 다시 쓰인 책이라 보면 된다.
2. 고리高麗 이전 고구리高句麗 역사
외국에 가는 사신은 무조건 그림으로 그리는 걸 급선무로 한다. 고구리는 요동이라 멀므로 그림으로 그려내는 게 쉽지 않다. 그전 왕윤이 쓴 가 있었으나 전해지지 않는다.
한나라 장건은 실크로드 쪽 대월지에 사신으로 파견된 적이 있다. 내가(서긍이) 고리에 있었던 기간이 한 달 남짓이어서 작성에 한계가 있다. 그 기간 동안 대여섯 번 밖에 나왔을 때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책..
이 나라는 호를 선우나 카칸(가한)이라 부른다. 부여의 왕이 황하의 신(하신)의 딸을 거두었는데, 햇빛을 받아 감응하여 알을 낳으니 '주몽'이라 한다. 홀승골에 살면서 그곳을 '고구리高句麗'라 했다. (산서성 북경위쪽에 지금도 '홀승골' 지역명 있음)
한말 공손강이 환도산 아래에서 고구리를 격파했었다. 위 장수 무구검이 고구리 환도성을 쳐들어가 무찌르고 그 기록에 돌에 새겨놓고 돌아온 적이 있다. 위는 이로부터 20년 후 망한다. 당나라 때는 이세민(당태종)이 고구리를 정벌하러 요동을 쳤으나 연개소문에 패하고 돌아왔다. 아들 이치(당고종)는 나라를 배신한 연남생 도움으로 고구리를 패망시켰다. 왕 고장(보장왕 642~668)을 사로잡고 그 땅을 나누어 군현을 삼았으며, 안동도호부를 평양성에 설치했다.
3. 출발지 명주(닝보)
명주(닝보) 정해 먼바다를 건너서 고리高麗로 나아갔다.
4. 고리高麗 영역
남에 요해, 서에 요수, 북에 옛 거란, 동에 금과 접한다. 그리고 일본, 유구, 담라, 흑수(말갈), 모인 등의 나라와 개의 어금니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신라와 백제를 흡수해 고리를 이루었는데, 나주(현 기춘), 광주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송 수도를 개봉이라 주장하는데, 더 내륙인 변량이다. 변량이 수도이면 고리高麗 수도가 북동에 있는 게 말이 된다.
연산도(산서성 지역)에서 육로를 거친 다음에 태행산맥 요수를 건넜다. 고리高麗 수도(현 북경)까지 가는데 4천리..
해도로는 하북(황하북쪽), 경동, 회남(회수이남), 양절, 광남, 복건(양자강아래)이 있는데, 모두 왕래가 가능하다. 현재 고리高麗의 위치는 등주·내주·빈주·체주(산동곶)와 정확히 마주보는 위치다.
송나라에서는 사신을 파견할 때 명주(닝보)에서 출발한다는 얘기는 수도가 개봉이 아니라는 얘기다. 만약 수도가 개봉이라면 황하를 따라 쉽게 서경(현 북경)으로 갈 수 있다. 그런데 못 간다는 건, 금나라가 가로막기 때문이다.
고리高麗는 동서 2천리, 남북 1500리다. 가로가 더 길다는 얘기다. 이는 지금 한국사학계가 가르치고 배우게 하는 고리 지도가 말짱 다 틀린 거라는 얘기다.
고리高麗 영토는 동해에 닿아있다. 서해, 남해도 아니고 굳이 '동해에 닿아있다'고 쓴 것은 대륙 고리가 동중국해와 닿아있다는 얘기이다. 큰 산과 깊은 골이 많다는 것은 북경의 산맥들을 말하는 거다.
5. 고리高麗 내원성과 국내성
전에는 요와 경계를 이루었는데, 계속 침범을 하니까 高麗가 내원성을 쌓았다. 태행산맥에 '내원'이라는 지역명이 그대로 남아있다.
흑수말갈에서 발원하는 압록강(오리가 많은 강)은 요동에서 5백리 떨어져 있는데, 고구리 국내성을 거치면서 염난수와 합류한다. 안평에서 海로 들어간다. 이 위치는 고리高麗에서 천혜의 요충지로 폭이 넓다. 요의 동쪽은 옛날에 거란에 속했던 지역이다.
6. 고리高麗 왕성
당나라 때 이적이 남소에서 고구리를 격파하고 물을 건널 때, 물이 얕고 좁았는데 그곳이 바로 요수의 시원이다. 한말 환도성 아래 살았고, 후위~당에 이르는 동안 평양에 도읍하였다. 이적이 도호부를 세우자 동으로 옮겨가 살았다. 당말 나라를 되찾았을 때 현 도읍지를 '개주'라 했으며, 현재도 여전히 '개성부'를 두고 있다. 성 북쪽에는 숭산이 있다.
평양은 한 유철(한무제)이 세운 낙랑군과 당 이치(당고종)가 세운 도호부가 있던 곳으로 압록수 동남쪽이다. 당말 고구리는 점점 동쪽으로 옮겨갔다.
지금의 왕성은 압록수 동남쪽 1천리에 위치하는데, 옛 평양지역은 아니다. 성 주위는 60리이며 산에 둘러싸여 있다. '평양' 지역명은 대륙에 여럿이다.
7. 고리高麗 고관 풍속
① 동이
고리高麗에는 종묘사직을 세우고 읍과 주에는 집과 거리가 있으며, 높은 성첩으로 둘렀다. 성곽들이 우뚝 솟아 업신여길 수 없다.
에 '동이'의 '이'란 '어질어서 잘 자란다'는 뜻이다. 만물이 땅과 맞닿아 자라나기 때문에 동이의 천성은 유순하여, 호전적인 서융과는 다르다.
② 복식
왕은 자색 비단옷을 입는데, 금빛과 푸른빛을 수놓은 허리띠를 매었으며, 검은 두건을 쓰고 있다. 그 아래 영관급 신하들은 자색 비단옷에 허리에 옥 허리띠를 두르고 금어대를 찼다. 대개 청라로 된 관에 새깃을 달아 썼다. 경과 감은 자색옷은 못 입고 비색 비단옷에 허리에 무소뿔 허리띠를 두르고 은어대를 찼다. 조관은 비색옷에 은어대, 서관은 녹색옷을 입고 검은신을 신었다.
③ 갑옷과 무기
갑옷은 고구리때처럼 위아래 연결된 모습이며, 금빛 꽃으로 장식한 높은 모자는 석자나 된다. 푸른색 비단옷에 느슨한 허리띠는 사타구니까지 내려온다. 고리 사신들은 대개 고깔 모자를 쓴다.
활은 다섯자, 화살은 대나무가 아닌 버드나무로 만들어 더 짧고 작다.
④ 왕이 타는 말은 큰 의례가 있는 날에는 말에 갑옷을 입힌다. 고리는 금(아골타)과 멀지 않은 까닭에 준마가 많다. 기병이 타는 말의 안장과 언치는 매우 정교하다. 밀치끈과 고삐 사이사이는 황금과 오은으로 꾸몄다.
⑤ 동신성모지당
선인문 안에 동신사가 있다. 여신을 모신 곳인데, 어떤 이는 부여왕의 처인 '하신의 딸'이고 주몽의 엄마이기 때문에 상을 세우고 모신다고 한다.
8. 高麗 백성
① 고리에서는 글을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여색을 좋아하고, 쉽게 사랑하고, 재물을 중히 여긴다.
문물이 발달하고 예의가 바른 나라로서, 음식을 먹고 마실 때 그릇을 쓴다. 문자는 해서체, 예서체를 모두 쓰고, 주고받을 때 무릎을 꿇고 절하며 엄숙히 공경하므로 우러러볼 만하다. 제사를 지내는 것을 좋아하고 불교를 좋아한다.
② 농민과 상인의 복식
흰 모시옷을 입고 네가닥 띠가 있는 검은 두건을 쓴다. 장인들은 매우 정교하고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 무늬비단으로 만든 모자(두건)을 매우 소중히 여기며 하나의 가격이 쌀 한 섬에 해당한다. 맨머리는 거의 죄수나 다름없다 여겨서 부끄러워 하므로 대나무관을 만들어 쓴다.
여자옷은 흰색 모시저고리에 노란 치마를 입었다.
③ 모자
총각은 두건으로 머리를 싸고 머리를 길게 내려뜨리다가, 장가든 뒤에는 머리를 묶는다.
④ 식습관
고리高麗의 봉록은 매우 박해서 쌀과 채소만을 줄 뿐이므로 평상시 고기를 먹는 일이 드물다.
귀족들은 주로 양과 돼지 고기를 먹고, 가난한 민중은 주로 해산물을 먹는다. 고리高麗가 내륙지역이고 한큰곶이라면 해산물 먹기가 힘들다. 강을 끼고 있고 바다가 가까운 대륙동부라는 얘기다. 하북성~산동곶~양자강 흐르는 곳이 다 해산물 먹기 알맞은 지역이다.
⑤ 자원
죽솥은 삶는 그릇인데 철로 만든다. 지거나 이는 구리 항아리에 물, 쌀을 담는데, 어깨로 맬 수 없으면 머리에 인다. 금은, 구리가 많이 나고, 나전칠기 솜씨가 기막히게 세밀하다. 고리高麗 황호필은 원숭이 털이라 한다. 원숭이는 산동곶 아래~양자강에 산다. 한큰곶이라 하면 말이 안 되는 기록이다.
⑥ 은향로
은 30근을 들인 향로는 윗부분이 산 모양이고 아랫부분은 다리가 3개다. 매우 정교하다. 우리가 충청도에서 발견되어, 백제 것으로 가르치고 있는 금동대향로가 실은 백제 거라는 증거가 없다.
9. 사신 도착 뒤
사신들이 예성항에 도착하자 고리高麗 의장대가 맞아준다. 사신단의 삼절(상절, 중절, 하절)은 걸어서 벽란정으로 들어간다(북경 벽란다리 현존). 이곳에서 30리 가면 황성(자금성)..
정사와 부사가 조서를 받들고 순천관으로 들어간다. 10일 이내에 길일을 택해 고리왕이 조서를 받는다. 조서 받기 하루전 설의관을 먼저 보내어 정사와 부사를 만나게 했다. 예전에 '순천' 하면 무조건 '북경'이다.
서긍이 기록한 장소들은 이민구 대표가 사서의 지명들과 고리高麗 황성 기록을 고지도와 구글맵 지역명과 교차검증하여 빼박 '북경 자금성'임을 다 밝혀냈다.
금동 1만5천근이나 사용한 큰 종이 있는데, 2층 누각에 두고 울리면 그 소리가 거란에까지 들렸고, 선우가 그 소리를 듣기 싫어해서 지금 이곳 서경(현 북경)에 옮겼다고 한다. 한큰곶에 종이 있다 치면 거란이 어디 있길래 그 소리가 들리겠나? 태행산맥을 두고 북경에서 치면 들릴 거라는 것으로 보아야..
10. 배 & 바닷길
海(황하)로 나갈 때 배를 이용해야 했다. 배를 타고 간 바닷길은 이민구 대표가 발표한 영상을 참조하시라.
악주가 나온다. 송 중심지가 악주, 즉 지금의 우한였던 거다. 수도가 개봉이고 중국동부라면 그쪽 지역명이 나와야 하는데, 안 나온다.
고리高麗 서경(현 북경)을 떠나서 명주(닝보)까지 바닷길로 오는 데 42일이 걸렸다. 에서 양자강에서 출발하여 명 황제 있는 북경까지 40여일 걸린다는 기록과 일치한다.
이걸 다 받아 적으셨다니..🎉🎉🎉🎉
인간 AI 분당약사님의 영상 핵심정리글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약사님..
저도 생각합니다.
우리가 집에 불나면 어떻게 하죠?
그냥 뛰쳐 나옵니다.
뭐 그런거 같습니다.
과거에는 소실한 자료는 살릴수가 없겠죠.
고려거란전쟁 마지막까지 잘 봤습니다~~ 이제 무슨 낙으로 사나 싶을 만큼 울면서 봤어여 ㅠㅠ 근데 양규김숙흥이 왜안나와 ㅠㅠ
고려도경을 볼때 고려유물.유적과 대입하면서 봐야겠네요. 고려불화에 그려져 있는 모습과 다르면 고려도경의 내용이 왜곡된 것이겠네요
바이칼 동쪽에 홉스굴(홀승골)호가 있다고 우리역사 히스토리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훕스골은 북경위로 쭉 가서 몽골 남부에도 있습니다
책보고님 잘보고있어요 유튜브에 보면 시대별 영토 영상이 있는데 책보고님 관점에서 하나 만들어주시면 어떨까요?
책보고채널 약350개 영상들에 잔뜩나오니 보세요
동남아랑 아랍쪽 역사서에는 고려에 대한 기록이 없나요? 고려 초기에 벽란도에 아라비아 상인들 무역했다고 하면 위치에 대한 기록이 있을법 한데요
페르시아가 신라와 형제국이였으니 고려랑도 가까웠을듯 합니다..
민족 배신자 이성계가 진짜 밉다..
부관참시하라.
@@대동한쏠-q2e. 위대 좋아하네 매국노다
촌놈이 주원장에게 서쪽은 팔아먹고
마음이 찔리니까 고려역사서를 다 없앤거다
누굴 미워할 일이 아닙니다. 역사가 그렇게 흘렀을뿐...우린 보고 배우며 옳게,바르게 살아야 하는겁니다. 그리고 즉기전에 역사 찾기운동을 열심히해요
근데
그
덕에 글을 지킨게아닌가싶긴해요..
세종 이도를 존재하게 한 것만으로도 가치있었다고 할까...
안녕하세요
진짜 식민교과서에서 고리 물물교환 했다고 배웠었어요 그러면서 세계적인 무역국 이었다 하구요 전혀 앞뒤가 안맞았죠
고리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무역왕국이였고 그래서 개성상인이라는 전설이 생긴겁니다.. 당시 어음을 쓰던 곳은 페르시아와 고리 뿐이였습니다.. 엽전(죽엽전.. 대나무 모양의 은자)을 고려 초기부터 썼어요.. 조선은 숙종 때서야 엽전을 겨우씁니다.. 진짜 빈한한 유교탈레반 국가..
@@SamuelSmith1221 조선은 10만 상비병 유지할 돈도 없었으니요 ㅠ
어려서 부터 고려역사는 이상하게 축소되어있고 자세한 기술도 없다 심지어 그전 삼국시대는 오히려 기록이 더 많은데 이건 누가 후대에 일부러 조직적으로 은폐하기 위한 작업하지 않는 이상 이럴수가 있나 항상 궁금했었다 진실은 과연 ...
일본황실도서관에 남아있지 않을까요...
잃어버린 우리의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후백제 고려. 발해의 역사를 찾아서
항상 감사합니다. 오늘은 지도 2장 배포. 찾아보고 싶은 게 있을 때 책보고님 영상 안에서만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이 있을까요 ? 고대사tv를 보다가 자비령 위치를 엉터리로 말하길래(이것도 인하대 교수 주장임 ㅎㅎㅎ } 진짜 자비령을 검색하려다 못찾아서....
북경위에 자비 라고 검색해보세요
@@booksbogo 오 감사염
북경. 서쪽부터/만주 전역과/한반도 까지가 모두 고려의 영토였죠.. 흑룡강이 고려의 동북/최북단 경계지 였을듯
남쪽으로는 광동성에 계양(揭阳) 이라고 충혜왕이 유배갔던 곳이 있어요
요사,금사,송사가 원나라때 편찬 했다는데 이상한 점이 송사 496권 편찬 완성이 2년 밖에 안걸렸다는 점과 중국 25사 중 권수가 제일 많음 .요사.금사.송사. 쓰여지고 얼마안가 명이 들어섬 .명이 원사를 쓰면서 요사.금사 송사도 같이 손봤을 거고. 한족 입장에서 .베트남,한국.일본은 원나라 침공 버티고 나라를 존속 했는데 지들만 망함. 원을 몰아 냈어도 자존심 매우 구겨진 상태 였는데 조선이 알아서 기니 얼씨구나 날조 했겠지 .고려는 비굴하고 약하게 요.금은 악당이지만 호적수로 .
@rebealthetruth高丽就是中国每个王朝灭亡的时候贵族逃向朝鲜半岛、他们很多人都不会用自己的姓名了、因为怕被中原王朝追杀、所以韩国很多人在100年前没有自己的姓名、是因为这群人是中国皇帝的后代、他们都是贵族、但是不敢用自己的姓名、
왜는 대만이 맞아요.. 기록에 고려 남쪽으로 나오고(일본은 동쪽으로 나옴).. 왜의 동쪽에 류구가 있다고 병기..
고구리는 장수왕이후로 고리(고려)로 국명을 고쳤어요. 그래서 고려라고 번역한게 맞지만 일반적으로 왕건 고리와 구분하기 위해 장수왕이후 고리도 그냥 고구리로 보면 될듯합니다
책보고님 몽고 침략에 맞선 고려역사는 다뤄주실서 있으신지요 ㅎ실제 강화도라 불리는 위치와 그역사가 있어야 지금 한반도로 좁혀진 역사에 대한 이해가 될것 같습니다
모두 다 설명하고 영상으로 만들었으니 제발 보세요.
책보고 고려 주요 22개 영상들 링크 >
1) 고려영토 옛지도발견.우리가 모르던 영토
ruclips.net/video/_N2L4NbdZzA/видео.htmlsi=CTAnZYkK6pd88BAK
2) 거란,요나라위치
ruclips.net/video/Sn-CyiVb2wg/видео.htmlsi=_sMnwvHtf4YrnwDw
3) 고려낙타의 비밀
ruclips.net/video/CYfkbYlvI_w/видео.htmlsi=0z7npqPZP4kw42yc
4) 고려강화의 위치
ruclips.net/video/cPDmKw59AbM/видео.htmlsi=-9KBM-caEAlxATs3
5) 고려서경지도
ruclips.net/video/KzaJW_UjydM/видео.htmlsi=AIu3aGQvWSkTf455
6) 고려서경16개 핵심증거
ruclips.net/video/6oa7YRIbBbs/видео.htmlsi=1W-G7BTrSha2cbFr
7) 고려최충
ruclips.net/video/aMce5mN-awU/видео.htmlsi=8bSLSxcReLaSxSpz
8) 고려사 원문강의
ruclips.net/video/T1TrmNvMF34/видео.htmlsi=Cl7YceuSzRrk0BUb
9) 서희의 담판 고려사 원문
ruclips.net/video/6x3jAOy1Lts/видео.htmlsi=6z2yyJCWdiykIDL
10) 고려영토관
ruclips.net/video/lDdJ6tBC2Oo/видео.htmlsi=R_JXk_X1v0UDz4sD
11) 고려거란전쟁 위치비교
ruclips.net/video/I_R6Io6DZ1M/видео.htmlsi=Y3z4hOuMOGh8Pfly
12) 북한의 고려유적.유물
ruclips.net/video/u0OzQsseXHk/видео.htmlsi=BAQTeH26iLzUyB1W
13) 고려거란.서북장성 위치
ruclips.net/video/ouzcBstKJmI/видео.htmlsi=CyHcdjuPb6pTWqO5
14) 중국동부의 고려절?
ruclips.net/video/sqQfMKnF5l8/видео.htmlsi=juSobPEQWwpxjEEv
15) 고려말기 영토의 축소기록
ruclips.net/video/i-Mrc5bnvU8/видео.htmlsi=vfqFGyFQ0Ox01Eud
16) 고려거란 전쟁사 동국병감
ruclips.net/video/qhghMTCITns/видео.htmlsi=CmEBCJSUBSkCXL3J
17) 고려강화도와 삼별초위치
ruclips.net/video/UsRF02pE84k/видео.htmlsi=IZnoBRkn_luAbBmH
18) 도이, 오키나와 정체
ruclips.net/video/09ZowM1yJM8/видео.htmlsi=zyGxHNgl_YpqwC2t
19) 송나라 고려도경 세계최초 뱃길추적
ruclips.net/video/pxUmCsJn27s/видео.htmlsi=Y7klVAcHyC-B50_Y
20) 그림없는 그림책 고려도경 책 분석
ruclips.net/video/7PueEqN9z5w/видео.htmlsi=_ynpHSoi3n7M6NTc
21) 원나라대도위치(월후원전용)
ruclips.net/video/WtfhAeCSgYs/видео.htmlsi=F-QzU5I1rpwqwE1d
22) 왕건과 후백제 고창전투 실제 위치
(월후원전용)
ruclips.net/video/NFaJdlI0N10/видео.htmlsi=ul-x8tAU1dv3Hrle
❤
비정상회담 에 나온 타일러 씨 를 초대해서 설명해주는것도 괜찮을거라고 생각되네요.
유튭도 쭝꿔콩사탕이 많이 잠식했던데 불안하네요
이성계가 고려기록다태우고
중국이 동북공정하면서
조선이전의 한반도 기록을
다 지웠다고 보여집니다
밤새 술먹는건 고리쩍부터 그랬네유
김부식이 묘청의 난
서경천도 반란을 진압한 사람 아닌가요?
서경천도를 반대해서 묘청을 진압 했으면
서경에 왕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한반도 에는 누가 살았나요?
가로가 더 긴거 보니 한반도는 그당시 고려 영토가 아니였나봐요?
제가 잘 몰라서요 알려주세요
서경에 묘청이 있었고 가로로 더긴 고려는 한반도도 영토입니다
백제가 조선태수를
봉한적이 있습니다.
지역적으로 이성계가 조선으로 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화봉사고려도경 『선화봉사고려도경』 권3 성읍(城邑) 영토[封境] ㅡㅡ대륙고려 북경
고려위치 ㅡㅡㅡ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遼海)로 막히고, ₩₩₩₩₩₩₩ 서쪽으로는 요수(遼水)와 맞닿았으며, 북쪽으로는 옛 거란 지역과 접경하였고, 동쪽으로는 금[大金]과 맞닿아있다.
육로ㅡ고려는 우리 송(宋) 수도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산도(燕山道)에서 육로를 거친 다음
요수(遼水)를 건너[陸走渡遼] 동쪽으로 고려 국경까지 가는데 모두 3,790리(里)이다
해로 ㅡ우리 조정에서 사신을 파견할 때는 항상 명주(明州)의 정해(定海)에서 먼바다[絶海]로 길을 잡아
ㅡㅡㅡ북쪽으로₩₩₩ㅡㅡㅡ 나아갔다. 배를 탈 때는 언제나 하지(夏至) 다음의 남풍(南風)을 탔으니 ₩₩₩₩바람이 순조로우면₩₩₩₩₩₩ 닷새도 안 돼 해안에 도착할 수 있다.
선화봉사고려도경 『선화봉사고려도경』 권3 성읍(城邑) 영토[封境] ㅡ
영토[封境]ㅡㅡㅡ요수는 영정하 ㅡ압록강은 원문에 압록
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遼海)로 막히고, ₩₩₩₩₩₩₩ 서쪽으로는 요수(遼水)와 맞닿았으며, 북쪽으로는 옛 거란 지역과 접경하였고, 동쪽으로는 금[大金]과 맞닿아있다. 그리고 일본(日本)·유구(流求)·담라(聃羅)·흑수(黑水)·모인(毛人) 등의 나라와 개의 어금니[犬牙]처럼 서로 맞물려있다. 저 신라와 백제가 자신들의 영토[圉]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병합이 되었으니 현재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가 여기에 해당된다.
고려는 우리 송(宋) 수도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산도(燕山道)에서 육로를 거친 다음
요수(遼水)를 건너[陸走渡遼] 동쪽으로 고려 국경까지 가는데 모두 3,790리(里)이다
. 해도(海道)로는 하북(河北)·경동(京東)·회남(淮南)·양절(兩浙)·광남(廣南)·복건(福建) 등이 있는데 모두 왕래가 가능하다.
지금 세워진 나라는[今所建國] 등주(登州)·내주(萊州)·빈주(濱州)·체주(棣州)와 정확하게 마주보는 위치에 있다. 원풍(元豐)註 001 연간 이래
우리 조정에서 사신을 파견할 때는 항상 명주(明州)의 정해(定海)에서 먼바다[絶海]로 길을 잡아
ㅡㅡㅡ북쪽으로₩₩₩ㅡㅡㅡ 나아갔다. 배를 탈 때는 언제나 하지(夏至) 다음의 남풍(南風)을 탔으니 ₩₩₩₩바람이 순조로우면
₩₩₩닷새도 안 돼 해안에 도착할 수 있다.
옛날에는 그 영토가 동서(東西)로는 2,000여리, 남북(南北)으로는 1,500여리였는데 현재는 신라와 백제를 병합하여 동북쪽이 약간 넓어졌고 서북쪽은 거란과 접해 있다. 전에는 요[大遼]와 경계를 이루었는데 나중에 침범을 당하게 되자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견고하게 〈방어토록〉 하였다. 아울러 압록강을 의지하여 요새로 삼으려 하였다.
말갈에서 발원하는 압록강[鴨綠水]은 그 물빛이 오리 머릿빛[鴨頭]과 같아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요동(遼東)과는 500리 떨어져 있는데 국내성(國內城)을註 002 거치면서 다시 서쪽으로 한 강물과 합류하여 흐르는데 이것이 염난수(鹽難水)이다.註 003 이 두 강물이 합쳐서 흐르다가 서남쪽으로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註 004
고려에서는 이것이 가장 큰 강이다. 물결은 맑고[淸澈] 지나치는 나루터[津濟]에는 큰 배를 댈 수 있다. 고려에서는 이 곳을 천혜의 요충지[天塹]로 여기는데 폭이 300보에 이를 정도로 넓다
. 평양성(平壤城)에서는 서북쪽으로 450리이며 요수(遼水)의 동남쪽으로는 480리에 있다.
요(遼)의 동쪽은 곧 옛날 거란에 속했던 지역인데 현재는 사람들[虜衆]이 이미 흩어진 상태이다. 금[大金]에서는 그 땅이 불모지여서 다시 성을 세워 수비하지 않고 다만 오가는 길목으로 삼았을 뿐이다. 압록의
서쪽으로는 백랑수(白浪水)와 황암수(黃嵓水)라는 두 강이 있는데 파리성(頗利城)에서 몇 리(里)를 흐른 곳에서 합류하여 남쪽으로 흐르니 이것이 바로 요수(遼水)이다 ==========%%%%₩₩₩₩₩₩₩₩₩
.註 005
당 정관(貞觀)註 006 연간에 이적(李勣)이 남소(南蘇)에서 고려를 크게 격파하고 물을 건널 때 그 물이 얕고 좁은 것이 괴이하여 물으니
이곳이 요수(遼水)의 수원(水源)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註 007 이로써 옛날에는 요수를 견고하다고 믿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고려가 압록강의 동쪽으로 물러나 국경을 지키고 있는 이유이다.
명을 세운 주원장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는데...특히 주원장이 명을 세운 뒤 공민왕에게 공물 까지 바쳤다는데.....
결혼과 이혼을 싑게 한다는 말은 남녀 경제가 아주 좋았단 말입니다.
거지도 비단옷을 입었다고 일본 귀족들이 한탄..
책보고님의 유투브와 책을 읽고 수업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위 내용과는 상관없으나 제대로 번역된 '삼국사기' 책 좀 소개 시켜 줄 수 있을까요 ??
없습니다. 제가 책으로 올해 내놓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시기는 알 수 있을까요 ?@@booksbogo
@@다물-y6d 올해중으로 출간준비중입니다
이맘(이슬람 신관/제사장)=때 면,
이 절기ㆍ에는(시절 season 쯔음ㆍ이면)..
그랑ㆍ께로 ~ "그르(ㅅ)ㆍ니까"
수프 그랑조 빠바밤
명나라는 고려의 속국 제후국이에 고려황제국에 조공을 바쳐겠죠 잃어버린 고려사를 다 되찾아야죠
와 정말 조작질이 장난아니구만
선생님 건설적인 비판으로서 그럼 고려도경에 나오는 벽란도의 위치는 어디일까요???
벽란도를 지나 개경에 도착하는데 중요한 포인트가 될것 같습니다
위성지도로 존재하는 수많은 지명만 찾으세요
@@booksbogo 아~! 고려도경 수도 따라가시는 영상이 있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책보고님 항상 감사드립니다 한국 사학계 실체는 주변국가 이미오래 전부터 다 알고 있을겁니다 언론통제로 보도를 안해서 우리들만 모르는 것일겁니다 저의 심도있는 개인적인 생각 입니다만 지금 윤석열 당선한것도 뒤에 미국 일본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돈좀 먹였을겁니다 사학계만 그런게 아니라 정치판도 일본놈들이 장악한지 오래라 봅니다 아마 일본은 옛날부터 계획적으로 그랬을 겁니다
베트남.중국.일본은 온순하고 겁이 많으며 성격이 부드러움
한국.몽골.만주족은 사납고 용감하며 성격이 거침
우리는 과연 되찾을 수 있을까요 선조들이 일구어낸 진정으로 광활한 역사를
조산시대 장영실도 아랍계??죠. 그 분도 천문 역학에 밝았다고
아랍계아니고 강소절강성 출신
@@booksbogo아..맞네요..
조선중기까지 전쟁이 없었던이유.. 동서남북 주변국이 각기 내부사정으로 혼란스러웠기도 했지만.
이성계와 주원장간의
모종의 타협이 있었을듯..
중국 동쪽땅 바치고 찾은
평화인듯..물론 그덕에
세종대왕같은분이 평생
일에 몰두할수있었고.
백성들도 편하게 지냈지만..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고
부랴부랴 편생한일..
과거역사 지우기...!!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지웠으면.. 세종때 집현전학자들이 자료를
못찾아서 고려사를 쓰는데
애먹었다하네요..
강감찬 장군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조선..조선이 강감찬 묘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던 것은 문중의 무관심으로 실전된
것이 아닌, 한반도 조선땅에 묻히지 않았기에 모른다는 것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일텐데, 향토학자들은 강감찬 묘가
청주 흥덕 옥산에 있다고 하며 누군지도
모르는 묘를 강감찬 장군묘로 알고 있다는게 답답하네요.
당시 개경이나 서경이 중국에 있었다면
또한 천수라는 곳을 봉작지로 받았다면
중국땅 천수가 유력 후보지 아닐까?
책보고님 강간참 장군묘가 중국에 있지
않을까요?
송나라가 고려에 간 사절단 규모가 200여명인데 조선 통신사도 300에서 최대 500여명 보냈다는데 조선보다 더 작은 소국일 가능성은 없는지… 사절단 규모로 국가규모를 추론 할 수없을까요???
책보고 지도 보면 당송 모두 좁은 강역이고 물산이 적은 척박한 한중 서천입니다.. 삼국지연의도 강역이 거기구요.. 큰 나라가 아니죠.. 일본놈들 마냥 입만 살았던 놈들.. 주원장도 사실 명교(배화교)를 등에 업고 큰 거죠.. 초기엔 위구르 세력으로 큰거구 나중에 한족들을 규합한거죠..
명의 주원장과 조선의 이성계의 야합의 결과물 또한 일본의 철저한 역사 파괴 날조 조작 왜곡의 산물입니다
' 김부식은 까맣고 눈이 튀어 나왔다 ' 동양계 아닌듯.
영상과는 좀 관련없는 이야기 입니다만 얼마전 중국성씨가 우리나라로 넘어온 유툽을 보니 책보고님의 이야기가 맞아떨어지더군요 근데 누군가 이런 댓글을 남겼더군요 중국 삼국시대때 위나 오나라가 신라와 전쟁을 했던 기록이 없다고 부정을 하더군요 사실인지 알고 싶습니다.
바로 망한 오나라따위가 신라에게 덤빌수 있나요?
@@booksbogo 네~~ 답변 감사합니다 ~
오나라 겨우 50년..글구 오월동주면 월나라 옆인데 당연히 무한지역이 오나라죠.. 대륙 중앙..
앞으로 왜곡된 역사 퍼뜨리는 동영상에 올바른 역사적 사실을 한 가지 씩 써줘야겠어요 ㅎㅎ
역사왜곡의 원조는 이씨조선이다...
과거의 역사서를 뒤져서 당시의 지도를 찾아내는 것이 합리적이겠군요? 역사서에 지도가 있는 책이 하나도 없을까요?
고려의 지명지도는 한개도 없다.
천안 성거 얼마전 이름 남창
책보고님
고려 태조
왕릉이 지금 개성이던가?
있는게 맞나요?
책보고님 영상보면
전혀 아닌것같은데요
묘지석 묘비명이 없는 후대비정 가짜능입니다
다시 알아보니 제가 적은 내용이 일정부분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어서 수정합니다. 황하쪽으로 못간 이유는 중국 북방 지역은 대부분 금(金)제국의 치하에 있었으므로, 북송에서 파견한 사절단은 육로를 이용할 수 없었고 바닷길로 황해를 건너가야 했다. 그것도 산둥(山東) 방면의 항구에서 떠나는 짧고 안전한 항로가 아니라, 지금의 저장성 연안의 항구에서 떠나 황해를 건너 전남 흑산도, 군산도(선유도)를 거쳐 강화도를 감돌아 다시 예성항(벽란도)에 이르는 우회 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출처] 벽란도(碧瀾渡), 고려의 국제항은 얼마나 붐볐을까 작성자 박하
송의 수도는 변량입니다 개봉이란건 후대 억지 추정인건 아시는지? 북송후기로 소동파가 있을땐 사천.무한이 그들의 중심지기에 강따라 명주 즉 영파에서 출발한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원본없음
송나라 초기 물품교역이 충분히 되기 때문에 개봉이 낙양이나 장안에 비해 방어가 힘들지만 수도가 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당시 낙양에 물이 부족해서 수운이 안되어 육로로 물품보내기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fireandice7217 개봉이 아니라니까 왜 말귀를 못알아 들으실까
개봉이 변량이고 고대로부터 여러 나라의 수도로 정비도 잘 되어 있고 물자 수송도 쉬운 곳을 수도로 정한 것이죠 갑자기 황😢량한 땅을 수도로 하겠어요
@@fireandice7217 개봉이 왜 변량인가? 중국인들 주장을 순진하게 믿어버리네. 후주에서 건국했는데 후주의 땅이 어딘지 아는가? 주구시다.
지도가 없는 이유는 복사기가 없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지도 관점이 중원의 북을 기준으로 남을 바라보는 관점 ..
즉 중원에서 남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서술...
현재의관점과 차이가 있어 기록의 해석이 바뀔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Qwerj-j5c 그건 헛소리입니다. 그럼 북을 바라볼땐 동서가 바뀌나요? 책보고 강좌영상 시청하세요
책보고 를 시청하면서 자긍심 을 갖는이상으로 답답함 과 안타까움 이 남는것 은 이런 위대한 외침이 너무나 작다는 것이다.
자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역사를 가르치는 놈들부터 지식과 검증없는 조작된역사를 가르키고 힘있는 자 들은 외면하고 있으니 이 나라의 역사는 언제 찾을것인지...
책보고가 자료를 기초로 생각하는 고려의 지도를 보고 싶네요
이왕이면 민족역사 학자들의 합의된
고려의 지도도 보고 싶네요
제가 해석하는 고려 지도 화면에 나옵니다. 그리고 고려사 제대로 해석하는 시민연구자들 현재 없습니다. 그들이 고려를 얼마나 언급 하는지도 잘 보세요. 가짜 민족사학자들입니다.
@@booksbogo 그 지도 펀딩으로 지원 받아 한번 제작을 해서 펀딩에 참여한 분들과 유튜브를 통해 잃어버린 우리 고려의 옛 지도에 관심이시는 분들도
구입할수 있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영상에만 있는 지도 보단 세상에
나오는게 더 좋지 않을까요?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classiczin9864 현재 판매중입니다 구매하세요
어디엔가 있을 수 있을 꺼야,,,
문화대혁명. 조선시대 왕권강화와 명.청때 다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