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키우시느라 고생하신 부모님께, 이제 꽃길만 걷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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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2 авг 2024
  • 생각만 해도 눈물나는 부모님, 내가 부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
    저는 16년 차 직장인 입니다.
    현금흐름을 만들어 멋지고 쿨하게 퇴직하기 위해 오늘도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재테크 및 투자 공부를 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매일같이 퇴근해서 영상을 만들고,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이유는,
    제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부모님을 위해서입니다.
    그간 저를 낳으시고 키우시느라 고생하신 저의 부모님께 더 늦기 전에 효도를 해 보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소망이라면, 음식과 청소 서비스, 의료 서비스 등이 제공되고 산책로와 운동시설도 구비된 고급 실버타운에 살게 해 드리는 게 목표입니다.
    요새 실버타운들이 많이 분양되고 다양한 매체들에 소개되고 있는데, 너무 좋아 보였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시골 출신입니다.
    아버지는 군인 장교로 복무하셨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셨습니다.
    지금도 군인 처우가 좋지 않다고 언론에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 과거에는 더 처우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군대에서 제공되는 간부 숙소는 겉으로 보면 괜찮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면 단기간 내 여러 사람이 살다 이사를 하는 집이기 때문에 여기저기 파손되어 있고 상당히 낡아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집에서 연탄을 때거나, 기름보일러라 하더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겨울에 집안에서도 패딩을 입고 오들오들 떨면서 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퀴벌레나 쥐들도 많이 나와 덫을 놓고 하던 기억도 있네요.
    간부 숙소에 사는 게 어차피 본인 집이 아니고 잠시 들렀다 가는 것으로 생각하여,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지은 지도 수십 년 된 집들이다 보니, 잔고장도 매우 많았습니다.
    이사도 많이 다녔던 것 같은데, 주민등록 초본을 떼어보면 30번도 더 다닌 것 같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에는 아버지 근무지 따라 전학도 많이 다녔네요.
    요새는 이삿짐센터가 있어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면 되지만, 당시에는 이삿짐을 직접 박스 구해와서 하나하나 쌌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저의 어머니께서 대부분의 이삿짐을 싸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30대 여성이 아이들과 수시로 연고도 없는 최전방 산골짜기 등으로 이사 다니면서 이삿짐도 다 싸고 풀고 했다는 것인데, 저의 어머니께서 정말 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고생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저희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백발이십니다.
    부모님께서는 이제 연세가 많으셔서 이런저런 질환으로 약도 드시고,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시고 수술도 하셨는데, 이렇게 아프다고 하실 때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습니다.
    아직은 제가 고급 실버타운에 보내드릴 정도의 상황은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더 많이 아프시거나 하시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듭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함께 사시면서 수발을 계속 들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저도 부모님께서 거동이 어려우시거나 하시면 함께 살면서 지내고 싶습니다.
    물론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돈을 많이 벌어놔야 하겠습니다.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성과를 내고 월급 외의 파이프라인을 많이 만들어 멋진 아들, 성공한 아들이 되어보고 싶습니다.
    영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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