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었습니다. 선생님 강의의 요점은 "자유시참변은 독립운동단체들의 통합 과정에서 한인 공산주의자들간의 경쟁과 갈등의 산물이었다"라는 것인데, 그렇게 정리하시면 피해자만 있고 책임자는 없는 사건을 만드는 겁니다. 자유시참변은 그 이후 우리 무장독립운동단체가 더이상 독자적인 전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독립군이 궤멸된 사건인데, 그런 모호한 말로 정리해서 끝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강의엔 몇 가지 중요한 점이 빠져있습니다. 누가 독립군들을 그 먼 자유시로 모이게 했는가, 그때 볼세비키의 의도는 무엇이었나, 홍범도는 자유시참변 후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레닌을 만나 금화와 자기 이름이 새겨진 권총을 선물 받았는데 이것은 뭐에 대한 대가였나 등등. 선생님이 이 강의를 위해 도움받은 책으로 임경석 씨 책을 소개하면서(3:50) "...가장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시는데 임경석씨는 지극히 좌편향된 사람 아닌가요? 뭘 근거로 가장 정확하게 기록한다고 하시나요? 전공이 아닌 분야의 강의는 자제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공산당을 그렇게 싫어하는 자들이 홍범도보고 자유시참변 학살자다 독립군 2명 쏴죽였다 그러는 게 코미디죠. 자유시참변은 기본적으로 공산군vs공산군인데 홍범도가 거기서 활약했다면 영웅아닙니까? 공산군, 그것도 다수였던 상해파를 제압했는데? 그리고 홍범도가 사살한 그 독립군 2명, 김오남과 김창수도 상해파 고려공산당 대한의용군 사할린의용대 출신입니다. 즉 공산군이죠. 그게 왜 문제가 되는데요!!!! 대체 홍범도가 대한민국 파괴를 위해 뭘했는데!! 사상검증: 김일성은 600만 민족동포 대량학살자, 민족의 사탄, 개쌔끼다. 이러고도 내가 좌좀이냐? 에휴
@@bestji6169저도 군은... 반공이라는 정체성이 강해야한다는 측면에서 일정 반감이 있을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소련공산당 입당해서 연금생활을 한 경력이 있는 인물을 문재인정부가 굳이 육사에 흉상을 마련한... 그 의도를 모르지 않고요. 문재인정부는 대한민국 반역자 김원봉의 수훈이 막히자 곧바로 추진한 게 이 흉상이죠. 그게 무슨 의도겠습니까? 그러나 윤석열정부는 바보같이 대응했다는 겁니다. 독립기념관이라는 본원으로 잘 모시겠다가 아니라, 이건 뭔 자유시참변 학살자로 만드니 그게 잘못됐단 거죠! 왜 좌는 김원봉가지고, 우는 홍범도가지고 역사왜곡하는데요????? 김원봉이 대한민국의 영웅입니까???? 홍범도가 자유시참변 학살자에요?????
가장 중요한 요점을 놓치고 쓸데없는 겉만 계속 핱으시네요. 대한민국 독립운동 역사 중, 자유시참변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상 내용 41:30 에 나오는 자유시로 넘어가지 않은 독립군 지휘관들과 자유시로 넘어간 후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만주로 탈출한 독립군 지휘관들과 그 부대들의 행적입니다. 그리고 자유시로 넘어갔다가 소련공산당과 소비에트군대에게 자신의 부대를 빼앗기고 이용당한 후 만주로 되돌아온 독립군 지휘관들의 행적 또한 중요입니다. 첫번째 경우는 이범석, 두번째 탈출한 경우는 서일, 김좌진, 나중소, 김규식, 이장녕, 안무 세번째 경우는 지청천, 최진동, 김홍일의 경우이다. 특히 오광선의 서로군정서 부대의 경우는 끝까지 무장해제를 거부하다가 자유시전투에 휘말려 오광선 등 지휘관들은 포로로 잡혀 시베리아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나 만주로 귀환한다. 그 외에 홍범도처럼 자유시에서 순순히 소비에트의 무장해제 명령을 수용하고 소련공산당원으로 살아간 사람들과 상해파 공산당,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의 내부 갈등은 우리나라의 역사도 아닐뿐더러 공산주의도 일본제국주의만큼 우리의 역사에 악영향을 끼친 것들입니다. 선생의 영상은 초반 좋은 내용과는 달리 후반에서 촛점을 벗어나서 산으로 가버렸네요.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운 지적에 공감합니다 홍범도가 소비에트의 공산주의에 동참하여 독립군을 무장해제와 사살/행불/포로로 와해시킨 자유시 참변으로 인해 무장독립항쟁은 명맥이 끊겼음은 물론, 간도/연해주에 살던 수많은 한인들이 터전을 잃고 강제로 이주되면서 일본의 패망 후, 간도지역의 대한민국 소유권을 회복하거나 주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사라져갔다는 거죠. 이러한 홍범도를 장군이라 칭송하는 자들은 대한민국의 간도/연해주를 점유한 소비에트와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저들의 허락하에 대한민국을 기습 침략하여 300만의 희생자를 낸 북한 김씨왕조를 추종하는 종북이들이거나 이들에게 세뇌되어 정신적 지배를 받는 꼭두각시이자, 간도/연해주 한인처럼 터전을 잃고 강제 이주될 희생양을 꿈꾸는 슈퍼 문저리들이 아닐까 싶네요
러시아의 혁명에 영향을 받아 대한독립선언서가 기초되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요? 억지로 공산당선언을 집어 넣은 것은 아닌가요? 대한독립선언서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의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는데....그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러시아혁명 이야기만 나오니....조금은 의문????
우리나라 역사학자 또는 역사학계의 가장 큰 문제는 기록자가 역사적 사실을 하나의 맥락으로 정리할려 하여 자료를 취사선택할려는 것이다 자료를 찾는 방법을 가르킨다는건 정말 중요한 이야기인데 자료를 선택한다는 이야기는 매우 잘못된 이야기이다 역사는 누가기록하느냐에따라 즉 관점에따라 사건의 전말이 완전히 바뀌는 것인데 어느 한쪽을 취사한다는건 매우 잘못된것이란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이 위대한 역사서가 된것은 예를들어 소진열전에서는 장의가 나쁜사람이 되고 장의열전에서는 소진이 나쁜사람으로 기록된것처럼 각자의 사료에 있는 각자의 입장을 그대로 전달했기 때문이다 사료의 진실성을 근거를 갖고 경중을 주는것까지는 좋으나 일방의 논리만을 선택하는건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역사학자는 자료의 수집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것이다 서양의 역사학자중에 눈앞의 사실도 양자의 입장을 들어보고는 자기가 본 것과 완전히 다른것을보고 더이상 역사를 쓰지 않았다는 자가 있는데 그만큼 한쪽만 본다는건 그만큼 역사를 왜곡한다는것이다
의도적이신건지 모르겠지만 모든걸 주도했던 소련의 역활을 쏙 빼고 설명하시네요.. 자유시참변은 결국 독립군을 소련으로 복속시키려는쪽이 독립적으로 남아있으려는 쪽을 소련군과 함께 학살한것입니다. 그로인해 독립군은 괴멸했고 바로 소련은 무장 세력이 없어진 연해주의 한인들을 강제이주시켜 연해주를 소련땅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인 지도자 몇천명이 살해되었구요. 이르쿠츠크파는 독립군이 아니라 친소앞잡이이고 소련은 일본이상으로 악랄했습니다. 홍범도는 레닌에게 훈장과 돈, 권총을 받을만큼 소련의 충복으로 인정받았고 평생을 소련 국민임을 자랑스러워 했으며 2차대전때는 소련군으로 참전하겠다고 주장할만큼 소련을 조국으로 생각한 인간입니다. 설명이 매우 편향적이시라 여겨집니다.
@@김민서-l4i7k 공산주의란 이슈는 한마디도 안했는데요? 공산주의의 실체를 몰라본 당시 일부 독립군의 판단력을 문제삼을수있지만 당시 상황을 본다면 아해가는 뷰뷴도 있죠. 하지만 소련에 독립군을 복속시키고 저항하는 독립군을 학살하려는 계획에 알고도 동참한 이르쿠츠파와 홍범도는 독립군도 아닐뿐더러 역사와 민족에 죄인이지요.
@@happypuppy8889아니 유체이탈화법 쓰지 마시고요. 이르쿠츠크파는 독립군이 아닌데 왜 상해파 고려공산당 산하 대한의용군(사할린의용대)은 독립군입니까? 공산군이죠! 똑같은 공산군인데 피해자라고 동정표줍니까? 그리고 홍범도가 자유시참변에서 독립군 학살하라고 명령했습니까? 홍범도가 자유시참변에 관여해서 독립군학살명령을 내렸거나 동참했는데, 홍범도와 최진동이 1922년 2월 러시아 공화국 군사혁명위원회 참모총장과 국제공산당 집행위원회에 에서 이르쿠츠크파와 러시아 정책담당자들의 범죄를 밝혀요?!!!!!!! 똑바로 알고 이야기하세요! 저 에는 슈미야츠키, 최고려, 김하석, 오하묵, 김철훈을 '4천년 조선의 역사 안에서 전례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살인자로 규정합니다. 동조했다고요? 누가요? 저기서 오하묵, 최고려가 누군지는 압니까? 상해파 리더면서 빤스런한 박일리아는 아세요? 자유시참변이 무슨 사건인지는 아십니까?
님은 사람을 멀보고 평가합니까? 그사람의 인생을 자신이라 생각하고 평가해도 어렵지않습니까? 누가 나를 오해하면 힘들지 않습니까? 사실을 잘아는 일이 어려운이유입니다. 인간에대한 사랑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지 아는것도 어렵습니다. 진짜로 인간다운 사람들을 많이 보시길 바랍니다
교수님 참 어려운 주제를 선택하셨네요. 요즘 고려거란전쟁 드라마 때문에 교수님이 고려사를 전공한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홍범도장군을 다루어 주어서 우선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저도 장군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 위해 중국 연변에 있는 봉오동, 청산리전투 현장과 간도참변후 일제에 쫏겨 이동한 밀산, 우수리강, 흑룡강(아무르강)을 따라 黑河市까지 따라가 보았습니다. 삼강평원을 지날때에는 중국이 농지개발을 잘해서 끝없이 펼쳐지는 평야가 정말 부러웠습니다. 역사란 무엇일까요. 저는 '신념을 쫒아 가는게 아니라, 사실을 알아 가는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장군의 척박한 환경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의 갈등과 전투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가 생겼고, 그후 행보를 보면 소련 공산당 입장에 서서 활동한 것도 사실 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고려사를 전공한 교수님이 다루기에는 이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너무 첨예하여 조심스러운 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동휘, 그가 홍범도보다도 더한, 소위 오줌마저 시뻘건 공산주의자였던 건 맞죠. 근데 왜 그가 건국훈장을 받았냐고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였고 공산 계열 독립운동가로서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했으니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그는 김일성 그 개쌔끼가 북괴 공산제국 건설하기 전에 사망했습니다.
휴... 자유시 참변은 결국 외국 해외 등지에서 투쟁활동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설움과 고초를 잘 보여주는 사건 같습니다 ㅠ 자유시 참변과 비슷하게 상해 임시정부 내의 공산당 자금 분쟁과 김립 피살, 미국 하와이 박용만의 대조선국민군단 등 외국 정부와 독립운동가들끼리 노선 대립이 터졌다고 하죠 ㅠㅠ 나머지 두 사건들도 차차 다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재형의 이야기는 정말 시큰한 감정이 들었네요 ㅠ 혹시 이봉창의 일생에 대해서도 한 번 다뤄주실 수 있으면 꼭 다뤄주시길 바랍니다.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시지만 반대로 연관이 되지 않았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직접적 연관이 없다와 있다 모두 추정에 불과한 것이죠. 역사적 인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하나의 해석을 강요하고 다른 주장을 역사적 왜곡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독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의 미래를 알지 못하셨다 하더라도 만약 한반도에서 공산주의의 추종 세력들이 성공했다면 지금의 자유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겠죠. 그 당시에는 그게 정의라고 믿었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부분때문에 존경심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구요. 홍범도 장군을 위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온국민이 숭상할 정도의 위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위대한 영웅이시다라고 법으로 정하고 이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는 것은 범죄다라고 정한건 아니잖아요.
한반도에 있었던 국가와 우리민족이 세우고 다스린 국가들을 연구하고 전문가 된다는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한국에 있는 자료와 중국의 역사 자료,러시아,일본의 역사재료도 참고해서 고대사를 연구해야 되지않을까 생각된다.그런데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한국현대사도 어려운것 같다 사람마다 자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역사는 진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연구해야 한다.세상에 쉬운것은 없네요.
@@casey7488 소련은 토벌이 아니고 통제를 하려했고, 통제를 따른 독립군부대와 통제를 따르지 않은 독립군 부대끼리의 갈등으로 발생한 참변입니다. 당시의 독립군을 지금의 상명하복이 확실한 군대로 비교하면 안 됩니다. 규모가 크지 않은 독립군 부대가 넓은 지역에서 각자 활동했기 때문에 독립군끼리 유대감이 없고 오히려 부족한 보급을 해결하기 위해 경쟁하는 구조였어요. 독립군끼리의 분열이 참변의 핵심원인.
홍범도 장군, 존중받아야 마땅한 민족의 독립운동가임에 분명한 것 같습니다 독립기념관에서 업적을 기려야 할 지도자 입니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공산권과 정전 중인 국가의 현실로써 국군의 간성을 육성하는 육사생도의 표상이 될 수는 없다고 확인했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독립운동 했지만 끝내 공산당으로 남았습니다
그당시 독립군의 착각 공동의 적인 일본군을 상대로 싸웠던 독립군은 쏘련에 환대를 받을줄로 알았던것 같다 그런데 이게 왠일 무장해제 당하고 쏘련군에 복속 명령 불복종시 전멸당함 쏘련 공산당은 일본군보다 더더욱 잔인하다는 것을 당시 독립군은 몰랐을 것 그과정에서 내부분열과 홍범도와 같은 반역자도 나왔던것
자유시 참변이후 독립운동은 거의 소멸되다시피 되었는데, 그게 소수 집단간 갈등 충돌결과라는게 말이 됩니까? 해설자님의 말대로라면 소수의 사망자, 실종자가 발생했을 뿐이데 왜 이후 상당기간 독립투쟁 기록은 안보일까요? 그 이유가 해설자님은 궁금하지 않나요? 저의 추측은 공산주의 자들이 자유시 참변을 축소, 왜곡 시키는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자유시 참변이 발생 한 후, 무력독립운동이 사라진게 아닙니다. 1930년대, 1940년대 에도 무력투쟁이 지속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역사교과서에 실릴정도의 큰 전과가 없어 알려지지 않은것 뿐입니다. 일제시대 초기에는 독립군 자체로 봉오동, 청산리 대첩의 승리를 거두나, 지속적인 보급과 병력수급문제로 일제시대 중반부터는 러시아나 중국과 합세하게 됩니다. 자유시 참변 때 사망한 상해파 독립군 수는 최소 36명 정도가 학계의 정설이고, 많이 추산한다하더라도 수백명입니다. 이 정도의 인원 손실로 독립군이 괴멸되었다는 말은 억측입니다.
역사는 해석학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자기 입맛에 맞게 사실, 팩트를 해석하지요..... 그래서 나는 국사는 권력자들(권력계급)이 자신들의 통치를 쉽게하려고 인민들에게 이데올로기를 주입해나가기 위한 수단, 한방법이지요..... 민초들은 전주이가나 양반놈들의 역사, 국사보다 자기 아버지,어머니,할아버지,할머니가 살아온 역사를 공부하고 찾아나서야한다고 봅니다!
여러 객관적 자료에 근거한 이익주 교수의 주장은 일관됩니다. ''홍범도는 자유시참변에 관련된 자이나 주도한 인물은 아니다'' 고로 이익주 교수님의 주장과 참변 후 홍범도가 모스코바에서 레닌을 면담하고 금붙이와 권총을 하사받은 사실 등을 감안하면 '홍범도는 자유시참변에 관련된 민족반역자' 라는 결론에 도달하죠. 홍범도는 쏘련공산당에 충성을 다한 쏘련의 항일영웅이 명백하군요.
여러 객관적 자료에 근거한 이익주 교수의 주장은 일관됩니다. ''홍범도는 자유시참변에 관련된 자이나 주도한 인물은 아니다'' 고로 이익주 교수님의 주장과 참변 후 홍범도가 모스코바에서 레닌을 면담하고 금붙이와 권총을 하사받은 사실 등을 감안하면 '홍범도는 자유시참변에 관련된 민족반역자' 라는 결론에 도달하죠. 홍범도는 쏘련공산당에 충성을 다한 쏘련의 항일영웅이 명백하군요.
홍범도가 자유시 참변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는 사료와 증거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자유시 참변 사건 이후의 홍범도 장군의 행동이 중요하겠죠. 독립군의 리더격인 홍범도는 그 사건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며 살아갔는지? 사건을 일으킨 이르쿠츠크파 편을 들면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상해파에 대해 죄책감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논란이 있는겁니다.
1922년 2월, 원동민족대회(코민테른 주도로 열린 동아시아 각국 공산당 및 민족 혁명 단체의 연석회의) 참석차 모스크바로 간 홍범도와 최진동(봉오동 전투를 함께 전개한 홍범도의 전우)이 제출한 라는 사료가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홍범도와 최진동은 슈미야츠키와 이르쿠츠크파 간부들을 “4천년 조선의 역사 안에서 전례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살인자로 규정하면서 이들의 조속한 퇴진을 촉구했습니다. 보고서엔 자신들의 명의로 발표된 ‘우리 고려 노동 군중에게’ 등 여러 성명서에 대한 반박이 기록되어 있죠. “이렇게 부끄러운 성명서에 서명할 수 없었으며, 그들(이르쿠츠크파와 슈미야츠키 측)이 최후통첩을 했지만 서명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들’은 동의 없이 임의로 우리들의 이름을 넣었다.” 해당 성명서들에 들어간 홍범도 등 간도 독립군 지도자 5인의 서명이 위조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실 자체가 5인에겐 치명적 치욕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 반공통일연맹 최고위원을 지낸 지청천(이청천) 장군도 그 5인 중 하나입니다. 홍범도 등은 이 보고서에 “작은 패배와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던 동지들에게 배신자로 되고 경멸을 받기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 라고 토로했죠. 홍범도와 최진동은 이르쿠츠크파 간부들과 자유시참변이라는 만행을 독단적으로 진행되게 한 극동공화국 비서부 부장 슈미야츠키를 조선역사 4천년 중 유래없는 살인자라며 고발했습니다. 이 사료 또한 대중들과 일부 그릇된 역사왜곡을 하는 유튜버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료 중 하나죠.
조국에 살지 못하고 연접 대국 러시아와 중국에 살기 위해 가서도 제국주의 러시아와 일본의 전략전술/계략에 놀아난 중구난방/ 붕당의 독립군 실상에 시시비비 있었던 그대로의 진실을 밝히되, 그 뭐니 해도 현 자유 민주 시장경제 체제의 "대한민국"이라는 입장에서 평하지 않을 수 없다.
잘 들었습니다. 선생님 강의의 요점은 "자유시참변은 독립운동단체들의 통합 과정에서 한인 공산주의자들간의 경쟁과 갈등의 산물이었다"라는 것인데, 그렇게 정리하시면 피해자만 있고 책임자는 없는 사건을 만드는 겁니다. 자유시참변은 그 이후 우리 무장독립운동단체가 더이상 독자적인 전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독립군이 궤멸된 사건인데, 그런 모호한 말로 정리해서 끝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강의엔 몇 가지 중요한 점이 빠져있습니다. 누가 독립군들을 그 먼 자유시로 모이게 했는가, 그때 볼세비키의 의도는 무엇이었나, 홍범도는 자유시참변 후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레닌을 만나 금화와 자기 이름이 새겨진 권총을 선물 받았는데 이것은 뭐에 대한 대가였나 등등.
선생님이 이 강의를 위해 도움받은 책으로 임경석 씨 책을 소개하면서(3:50) "...가장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시는데 임경석씨는 지극히 좌편향된 사람 아닌가요? 뭘 근거로 가장 정확하게 기록한다고 하시나요? 전공이 아닌 분야의 강의는 자제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정확히 보고 평한것으로 보입니다
권총 받은게 그 댓가다??? 확실하나?
이 사람 자체가 그 사람과 같으니 가장 정확하다고 하겠지
이제야 이익주에 대한 앎을 확신하게됨
@@울프사일런스-g6v 레닌에게 자유시참변에 대해서 보고하러 갔었을때 받은 총과 주화
같은 독립군이건 머건 나의 공산당이 아니면 다 죽여야됨
독립이 중요한게 아니라 공산주의가 훨씬 더 중요 결국 자리 싸움 그게
이념을 앞세우는 자들의 잔혹성
자기 이익만 챙기는 분열민족성은 유전인가봅니다. 말만독립운동이고요. 내 부모님이 만주사셨는데요. 해방이후에 한국땅으로왔더니, 마적질하던자들이 독립군행세하는거 보고는 경악했다고 말했던 기억납니다. 그 독립군이라 칭했던자들이 돈이 어디서 났겠습니까. 치욕역사라도 사실은 사실대로 말해야지 미화는 정도껏 합시다
저두 20대때 식민지시절 중국 오가셨던 어르신께서 그런 얘기해주신 것 기억합니다. 당시 상해와 한국을 오가며 건달 비슷한 생활하던 사람들 중에도 나중에 독립운동한 것으로 슬쩍 등재했다고요~
@@봉이-d1w 정확한 지적입니다. 상해파 사할린부대 독립군의 경우, 잦은 약탈과 폭행, 대규모 학살행각을 일으켜 극동아시아 현지인들과 갈등이 매우 컸습니다. 무장 떼강도인거죠. 현재의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에서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홍범도가 레린한테 이름이 들어가 있는 권총과 소련 장교군복 포상금까지 받아서 잘살다가 스탈린한테 버림받고 그래도 소련공산당을 위해 살다간 죽을때까지 군복을 입고간 사람
버림받은것 아닙니다 당시 영화관 경비는 특혜의 자리 입니다
홍범도가 논란이 있었지만. 문제가 있다고 결정적으로 확정된 것이 최근 동아일보가 러시아의 재판기록을 구입해서 발표한 이후입니다. 권총으로 독립군 2명을 사살한 것은 팩트고 그것 때문에 옥살이 한겁니다.
홍범도일기 내용에 군장교 살인후 도주 아무 죄없는 일가족 살인이나 비구니 겁탈 내용이 나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아님.
김구와 흡사한 성향 입니다.
@@대한중국-fb6ul 민주당의 얼이 살아있네요
공산당을 그렇게 싫어하는 자들이
홍범도보고 자유시참변 학살자다 독립군 2명 쏴죽였다 그러는 게 코미디죠.
자유시참변은 기본적으로 공산군vs공산군인데 홍범도가 거기서 활약했다면 영웅아닙니까? 공산군, 그것도 다수였던 상해파를 제압했는데?
그리고 홍범도가 사살한 그 독립군 2명, 김오남과 김창수도 상해파 고려공산당 대한의용군 사할린의용대 출신입니다. 즉 공산군이죠.
그게 왜 문제가 되는데요!!!!
대체 홍범도가 대한민국 파괴를 위해 뭘했는데!!
사상검증: 김일성은 600만 민족동포 대량학살자, 민족의 사탄, 개쌔끼다. 이러고도 내가 좌좀이냐? 에휴
@@김민서-l4i7k 홍범도가 위대한 독립운동가임을 인정합니다. 당시 일본군을 제일 많이 죽인 사람이니까요. 문제는 대한민국 국군의 요람인 육사에 동상을 세우는게 맞냐? 입니다.
@@bestji6169저도 군은... 반공이라는 정체성이 강해야한다는 측면에서 일정 반감이 있을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소련공산당 입당해서 연금생활을 한 경력이 있는 인물을 문재인정부가 굳이 육사에 흉상을 마련한... 그 의도를 모르지 않고요.
문재인정부는 대한민국 반역자 김원봉의 수훈이 막히자 곧바로 추진한 게 이 흉상이죠. 그게 무슨 의도겠습니까?
그러나 윤석열정부는 바보같이 대응했다는 겁니다.
독립기념관이라는 본원으로 잘 모시겠다가 아니라, 이건 뭔 자유시참변 학살자로 만드니 그게 잘못됐단 거죠!
왜 좌는 김원봉가지고, 우는 홍범도가지고 역사왜곡하는데요?????
김원봉이 대한민국의 영웅입니까????
홍범도가 자유시참변 학살자에요?????
주도적 역할을 안 했다고 최고 지휘관의 책임이 면해지나요?
레닌으로 부터 권총과 복지증을 받은 독립군은 홍범도외에 또 있습니까? 레닌이 왜 그토록 홍범도를 이용하고 챙겼을까요
답변부탁합니다.
교육 목적이 의심?
문제는 왜 홍범도가 사변이 끝난 뒤 소련에 가서 보고를 했다느니 하는 말을 들었으며 권총을 하사(?)받았다는 것은 그 사변의 처리과정에 대한 치하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강제 진압과 동포 살해의 사태에서 책임이 없다고는 못 할것이다.
사령관을 배신하고 부하를 죽게 만든 사람이 홍범도 아닌가요?
내가 바로 그 홍범도!*님
자기 부하도 항명한다고 2명이나 쏴죽였죠.
홍범도에 대해 다시 많은걸
찾아보세요
윤석열이 말하는 홍범도는
가짜 그 자체입니다
어찌 저런자가 대통이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김옥희-u2y 윤석렬이 홍범도에 대해 뭐라고 했나요?
자유시 참변에서 충돌 독립군 한쪽이 탱크 무장을 했다는 말인데.... 그게 말이 되나요? 자유시 참변은 의도를 가지고 탱크를 동원한 큰 세력이 뒤에 있었다는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요.
3.1운동은 소련의 영향이 아닙니다. 유관순처럼 만세부른 기독교인들이 많았던 것은 미국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합니다.
자유시참변에 대해 여러 책들이 있지만 그 사건을 직접 겪은 이범석장군과 김홍일장군의 자서전을 보는 것이 우선인듯 함니다.
이익주선생! kbs 역사저널 그날에 고정 출연했던분 이지요? 그프로 왜폐지 됐을까? 곰곰생각해 봅니다ㅡ
사회자부터 패널모두 좌좌편향되분들 아닌가요? 언제까지 그쪽에 있으런지..
나라가 걱정됩니다ㅡ
그날 프로가 왜 좌편향입니까 ? 주괸적인 시선을 배제하고 객관성을 잘 유지하던 프로엿습니다. 박민이 윤석럴에 충성히느라 우격다짐으로 없앤거 아닌가요 ?
@@정준혁-o4j 역사저널을 단 한편도 놓치지 않고 시청했던 사람입니다. 일제시대, 근현대사에서부터 좌파 냄새가 너무 심하다고 느꼈습니다.
네개의파가있었다그런데네개파모두가공산당파네그럼공산당이지뭐야?
가장 중요한 요점을 놓치고 쓸데없는 겉만 계속 핱으시네요. 대한민국 독립운동 역사 중, 자유시참변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상 내용 41:30 에 나오는 자유시로 넘어가지 않은 독립군 지휘관들과 자유시로 넘어간 후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만주로 탈출한 독립군 지휘관들과 그 부대들의 행적입니다. 그리고 자유시로 넘어갔다가 소련공산당과 소비에트군대에게 자신의 부대를 빼앗기고 이용당한 후 만주로 되돌아온 독립군 지휘관들의 행적 또한 중요입니다. 첫번째 경우는 이범석, 두번째 탈출한 경우는 서일, 김좌진, 나중소, 김규식, 이장녕, 안무 세번째 경우는 지청천, 최진동, 김홍일의 경우이다. 특히 오광선의 서로군정서 부대의 경우는 끝까지 무장해제를 거부하다가 자유시전투에 휘말려 오광선 등 지휘관들은 포로로 잡혀 시베리아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나 만주로 귀환한다. 그 외에 홍범도처럼 자유시에서 순순히 소비에트의 무장해제 명령을 수용하고 소련공산당원으로 살아간 사람들과 상해파 공산당,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의 내부 갈등은 우리나라의 역사도 아닐뿐더러 공산주의도 일본제국주의만큼 우리의 역사에 악영향을 끼친 것들입니다. 선생의 영상은 초반 좋은 내용과는 달리 후반에서 촛점을 벗어나서 산으로 가버렸네요.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운 지적에 공감합니다
홍범도가 소비에트의 공산주의에 동참하여 독립군을 무장해제와 사살/행불/포로로 와해시킨 자유시 참변으로 인해 무장독립항쟁은 명맥이 끊겼음은 물론, 간도/연해주에 살던 수많은 한인들이 터전을 잃고 강제로 이주되면서
일본의 패망 후, 간도지역의 대한민국 소유권을 회복하거나 주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사라져갔다는 거죠.
이러한 홍범도를 장군이라 칭송하는 자들은 대한민국의 간도/연해주를 점유한 소비에트와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저들의 허락하에 대한민국을 기습 침략하여 300만의 희생자를 낸 북한 김씨왕조를 추종하는 종북이들이거나
이들에게 세뇌되어 정신적 지배를 받는 꼭두각시이자, 간도/연해주 한인처럼 터전을 잃고 강제 이주될 희생양을 꿈꾸는 슈퍼 문저리들이 아닐까 싶네요
그래야 TV에 나올수 있습니다.
결국은 개인적 의견 결론이네
근거는 러시아 문서에 기재되있다
러시아의 혁명에 영향을 받아 대한독립선언서가 기초되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요? 억지로 공산당선언을 집어 넣은 것은 아닌가요? 대한독립선언서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의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는데....그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러시아혁명 이야기만 나오니....조금은 의문????
한반도내의 공산사상이 해방후 김일성집단부터 생각하기 쉬우나 이미 1900년대초 강점기에도 지식인들에게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독립선언서에도 나온다고 인용한 것이지 윌슨독트린을 외면한 것은 아닌듯요
우리나라 역사학자 또는 역사학계의 가장 큰 문제는 기록자가 역사적 사실을 하나의 맥락으로 정리할려 하여 자료를 취사선택할려는 것이다
자료를 찾는 방법을 가르킨다는건 정말 중요한 이야기인데 자료를 선택한다는 이야기는 매우 잘못된 이야기이다
역사는 누가기록하느냐에따라 즉 관점에따라 사건의 전말이 완전히 바뀌는 것인데 어느 한쪽을 취사한다는건 매우 잘못된것이란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이 위대한 역사서가 된것은 예를들어 소진열전에서는 장의가 나쁜사람이 되고 장의열전에서는 소진이 나쁜사람으로 기록된것처럼 각자의 사료에 있는 각자의 입장을 그대로 전달했기 때문이다
사료의 진실성을 근거를 갖고 경중을 주는것까지는 좋으나 일방의 논리만을 선택하는건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역사학자는 자료의 수집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것이다
서양의 역사학자중에 눈앞의 사실도 양자의 입장을 들어보고는 자기가 본 것과 완전히 다른것을보고 더이상 역사를 쓰지 않았다는 자가 있는데 그만큼 한쪽만 본다는건 그만큼 역사를 왜곡한다는것이다
이 영상은 전형적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즐겨쓰는 자기들의 잘못을 사회적 책임 또는 모두의 책임으로 변명하는 “공산주의자 입장에서 말하는 자유시 참변의 변” 이정도의 제목이었다면 적당하였다고 하겠다
3.1운동에 영향을 준 것은 볼세비키혁명이 아니라, 1차대전 전후처리를 위해 1919년 1월부터 열린 파리강화회의에서 우드로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입니다. 은근설쩍 볼세비키혁명의 영향이라고 왜곡하시면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자유시 참변이후 레닌 만나서 황금 권총과 군복과 소련군 장교로 특채가 되었는데............홍범도랑 자유시 참변이랑 관계가 없다.............참 애쓰시네요...........
홍범도를 영웅시하는구나.
다 狗라다!
참변 홍범도 주범.
일반인이 역사학자를 무시하네
감사합니다.
의도적이신건지 모르겠지만 모든걸 주도했던 소련의 역활을 쏙 빼고 설명하시네요.. 자유시참변은 결국 독립군을 소련으로 복속시키려는쪽이 독립적으로 남아있으려는 쪽을 소련군과 함께 학살한것입니다. 그로인해 독립군은 괴멸했고 바로 소련은 무장 세력이 없어진 연해주의 한인들을 강제이주시켜 연해주를 소련땅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인 지도자 몇천명이 살해되었구요. 이르쿠츠크파는 독립군이 아니라 친소앞잡이이고 소련은 일본이상으로 악랄했습니다. 홍범도는 레닌에게 훈장과 돈, 권총을 받을만큼 소련의 충복으로 인정받았고 평생을 소련 국민임을 자랑스러워 했으며 2차대전때는 소련군으로 참전하겠다고 주장할만큼 소련을 조국으로 생각한 인간입니다. 설명이 매우 편향적이시라 여겨집니다.
님과 같이 말씀하시는 분들이 빠뜨리는 게 있는 것이죠.
자유시참변 당시 공격, 학살당한 상해파 고려공산당 산하 대한의용군(사할린의용대)이 독립군입니까?
왜 공산군이라고 안 하시죠?
홍범도보곤 공산주의자라고 하면서요.
@@김민서-l4i7k 공산주의란 이슈는 한마디도 안했는데요? 공산주의의 실체를 몰라본 당시 일부 독립군의 판단력을 문제삼을수있지만 당시 상황을 본다면 아해가는 뷰뷴도 있죠. 하지만 소련에 독립군을 복속시키고 저항하는 독립군을 학살하려는 계획에 알고도 동참한 이르쿠츠파와 홍범도는 독립군도 아닐뿐더러 역사와 민족에 죄인이지요.
@@happypuppy8889아니 유체이탈화법 쓰지 마시고요.
이르쿠츠크파는 독립군이 아닌데
왜 상해파 고려공산당 산하 대한의용군(사할린의용대)은 독립군입니까?
공산군이죠!
똑같은 공산군인데 피해자라고 동정표줍니까?
그리고 홍범도가 자유시참변에서 독립군 학살하라고 명령했습니까?
홍범도가 자유시참변에 관여해서 독립군학살명령을 내렸거나 동참했는데,
홍범도와 최진동이 1922년 2월 러시아 공화국 군사혁명위원회 참모총장과 국제공산당 집행위원회에 에서 이르쿠츠크파와 러시아 정책담당자들의 범죄를 밝혀요?!!!!!!!
똑바로 알고 이야기하세요!
저 에는 슈미야츠키, 최고려, 김하석, 오하묵, 김철훈을 '4천년 조선의 역사 안에서 전례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살인자로 규정합니다.
동조했다고요?
누가요?
저기서 오하묵, 최고려가 누군지는 압니까?
상해파 리더면서 빤스런한 박일리아는 아세요?
자유시참변이 무슨 사건인지는 아십니까?
제발 뻥튀기지 마라!
독립영웅들이 뭐했노?
결국 홍범도는 고려혁명군을 지지하여 대한의용군을 참살하는데 눈감아 주었군요... 봉오동 전투의 영웅이지만, 결국 공산주의자로 변절자가 되었습니다... 씁씁하네요...
봉오동..영화 믿지마세요.
그리고 홍범도란 인물은 잔인한 성향을 가진 사이코패스 입니다.
군인시절 군장교 살해 일하던 곳 급여가 밀렸단 이유로 사장 일가족 살해 후 암자로 도망 비구니 겁탈후 같이 삼.
이 내용은 홍범도가 작성한 헝범도일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의 내용에는 일본을 막아달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 의견을 알고 싶습니다.
거중 조정
[청정심 박치우]
"한겨레역사힘차게"
: 자주적 한겨레 역사관 , 한겨레의 역사 외 세계사 포함 , 국수주의 배격 ,
동서양 사상과 문화
홍범도가 줃ㆍ하지 않았지만, 가해세력에 있었고, 그 이후 그 결과로 레닌에게 포상 받고, 죽을 때까지 그 업적으로 쏘련 연금을 수혜했다는 것 이건 2007년 이후 밝혀진 사료인가?
님은 사람을 멀보고 평가합니까? 그사람의 인생을 자신이라 생각하고 평가해도 어렵지않습니까? 누가 나를 오해하면 힘들지 않습니까? 사실을 잘아는 일이 어려운이유입니다. 인간에대한 사랑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지 아는것도 어렵습니다. 진짜로 인간다운 사람들을 많이 보시길 바랍니다
홍범도는 사람 쥭이는 것 대수롭지 않게 행한 소련군대위죠.
자유시참변후 독립군 2명이 홍범도에게 자유시참변에 대해 따지면서 몸싸움하던와중에 홍범도 이가 부러져서 홍범도는 레닌이 준 권총으로 두명을 사살합
@@minahwh3213홍범도가 자유시참변 당시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는데 뭔 소리죠?
@@나다짜근엄마-q2v그 2명, 김오남, 김창수는 상해파 고려공산당 산하 대한의용군(사할린의용대) 출신입니다.
아니!
홍범도가 공산주의자라서 잘못됐다면서, 공산군 쏴죽인 것도 잘못됐습니까?
님은 님한테 권총들이미는데 나 쏘시오
하실 건가요?
한국사를 공부한다는것은 남보다 더 많이 안다는게 아니라 공부하는 방법,자료를 올바로 해석하는 태도란 말씀에 정말 공감합니다. 비단 역사공부 뿐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이익주 박사는 해석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이유는? 이 영상에서 설명한 공산주의자들이 바로...
북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이기 때문입니다.
영상 시작할 때 왜 홍범도 논란이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는데
북조선
민주주의
인민
어떤 나라도 조선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때 이승만이 들은 이야기는 대규모 민중봉기가 필요하다는 충고였습니다
일본편에서 싸운 0:18 조선인은 반공주의자입니까? 아니면 매국노입니까? 가슴을 치는 질문이십니다.당시 상황이 너무나도 복집했고 오늘의 시각,단편적인 시각으론 평가할수없다는 사실을 절감한 명강의였습니다. 자료에 기반한 설명 감사드려요.
🎉😂
교수님 참 어려운 주제를 선택하셨네요. 요즘 고려거란전쟁 드라마 때문에 교수님이 고려사를 전공한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홍범도장군을 다루어 주어서 우선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저도 장군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 위해 중국 연변에 있는 봉오동, 청산리전투 현장과 간도참변후 일제에 쫏겨 이동한 밀산, 우수리강, 흑룡강(아무르강)을 따라 黑河市까지 따라가 보았습니다. 삼강평원을 지날때에는 중국이 농지개발을 잘해서 끝없이 펼쳐지는 평야가 정말 부러웠습니다. 역사란 무엇일까요. 저는 '신념을 쫒아 가는게 아니라, 사실을 알아 가는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장군의 척박한 환경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의 갈등과 전투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가 생겼고, 그후 행보를 보면 소련 공산당 입장에 서서 활동한 것도 사실 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고려사를 전공한 교수님이 다루기에는 이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너무 첨예하여 조심스러운 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틈만 나면 분열하고 끝까지 분열함으로써 결국 모두가 무지렁이가 되고 마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지금 2024년 대한 민국도 마찬가지 모습인것 같습니다.
근현대사 사전은 찾아보나마나다.그걸 누가 썼나를 봐야지.
독립군하면있어보이지만문제는대다수국민의 권익 을위한건지독재적체제유지가 목적인지가 문제
가장 훌륭한 댓글이라 생각합니다
당시 임정 국무총리였던 이동휘는 자유시참변에 혁혁한공을 세운자임 문제는 왜 이자가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었나
이사람은 진짜 공산주의자였죠
독립과 정치사상과는 별개로 봐야할거같아요 김일성도 독립운동을 했던것처럼
이동휘, 그가 홍범도보다도 더한, 소위 오줌마저 시뻘건 공산주의자였던 건 맞죠.
근데 왜 그가 건국훈장을 받았냐고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였고
공산 계열 독립운동가로서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했으니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그는 김일성 그 개쌔끼가 북괴 공산제국 건설하기 전에 사망했습니다.
여러 영상 흥미있게 들었으나 이제 그만 들어야겠습니다. 역사적 소명으로라도 제대로 된 근대사를 공부하고 다시 강의해 주십시오.
교수님 강의 항상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근데 교수님 예전에 저희 한국사 과목 교수님이셨던것 같은데 90년대 초 천안 모대학에서 근무하시지 않으셨는지요?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뉘신지 모르지만, 저와 비슷한 시기에 학교에 다니셨나보네요...ㅎㅎ.그때 그 교수님 맞습니다. 젊은 꽃미남 교수님이셨는데 이제 중후한 중년 멋쟁이 꽃미남이 되셨네요~^^
휴... 자유시 참변은 결국 외국 해외 등지에서 투쟁활동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설움과 고초를 잘 보여주는 사건 같습니다 ㅠ 자유시 참변과 비슷하게 상해 임시정부 내의 공산당 자금 분쟁과 김립 피살, 미국 하와이 박용만의 대조선국민군단 등 외국 정부와 독립운동가들끼리 노선 대립이 터졌다고 하죠 ㅠㅠ 나머지 두 사건들도 차차 다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재형의 이야기는 정말 시큰한 감정이 들었네요 ㅠ
혹시 이봉창의 일생에 대해서도 한 번 다뤄주실 수 있으면 꼭 다뤄주시길 바랍니다.
봉창이의 일생 그저 술쳐먹고 도박하다 빚 지고 지겨워 하며 쫒기던 참에 중국으로 도망쳤는데 김구에게 속아서 테러하다 실패하고 죽음
잘못된 역사책을 읽으신듯..
독립을 위해 투쟁한 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만주에 살던 동포들에게 피해가 가더라도 꼭 그렇게 했어야만 할까요? 팔레스타인이 테러를 통해 독립을 하려다 얼마나 많은 선량한 자국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는 걸 우리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기들 먹고 살고자 총을 들고 독립군이라 한거죠.
@@minahwh3213 딱 일제시대때 일본앞잡이들이 이런말을 했지요
팔이 왜 독립?
나라 없는 자들의 비극이죠.
공산당 같이 정형화된 뒷배에 붙지 않는다면 옛고구려식 약탈경제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시 고종은 개쌔끼죠.
홍범도가 자유시참변 경과보고하러 스탈린한테 불려갔었는데 그리고는 권총을 하사받았지
그래서? 뭐?
@@jinojoo4080 스탈린동지의 지시를 받잡고 충실히 꼬붕짓 잘하여 상을 받은 홍범도동무, 남조선좌익들의 표상이로세
한국출신 일본군인은 권총뿐만 아니라 더 한것도 받았지
@@율곡-n1g아 그러면 홍범도가 공산주의자가 된게 자랑스럽다는 말이냐?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도대체? 홍어야? 아니 홍범도의 잘못을 얘기하는데 친일파 얘기가 왜나오냐고? 뭐 그러면 친일파가 나쁜넘들이면 홍범도의 잘못이 없어지는거냐? 뭘 씨부리는거야 도대체?
자유시참변 이후 1년뒤에 소련에 공산당대회에 가서 레닌한테 권총도 받고 돈도 받고 군복도 받음
역사를 왜곡하는 교수님 강의 잘들었습니다
러시아의 블라쉬보스톡에가서 훌륭한 독립운동가의 기념관에도 갔습니다
돈도 기부했습니다
(최재형선생)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시지만
반대로 연관이 되지 않았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직접적 연관이 없다와 있다 모두 추정에 불과한 것이죠.
역사적 인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하나의 해석을 강요하고 다른 주장을 역사적 왜곡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독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의 미래를 알지 못하셨다 하더라도
만약 한반도에서 공산주의의 추종 세력들이 성공했다면 지금의 자유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겠죠.
그 당시에는 그게 정의라고 믿었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부분때문에 존경심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구요.
홍범도 장군을 위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온국민이 숭상할 정도의 위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위대한 영웅이시다라고 법으로 정하고 이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는 것은 범죄다라고 정한건 아니잖아요.
문재인이 숭배하는 자들은 결론은 다 같습니다.
안 햇다는 증거가 어딘나 세상에
@@hwadams65 사건당시 다른곳에 머물렀다 등등
@@davidshin9200 사건당시 머물렀다는 곳 조차 자유시 참변과 같이 독립군을 말살하던 곳이라는 게 함정
사건당시 자유시에 없음
조선시대에도 당파싸움,식민지 시절에도 당파싸움, 해방되고서도 당파싸움, 그후로도 쭉 당파싸움, 오늘날에도 일종의 당파싸움..왜 이리도 욕심들을 양보 않하는지..종특이 그렁가?
한반도에 있었던 국가와 우리민족이 세우고 다스린 국가들을 연구하고 전문가 된다는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한국에 있는 자료와 중국의 역사 자료,러시아,일본의 역사재료도 참고해서
고대사를 연구해야 되지않을까 생각된다.그런데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한국현대사도
어려운것 같다 사람마다 자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역사는 진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연구해야 한다.세상에 쉬운것은 없네요.
홍범도 배신자 맞네!
무장해제에 찬성했다면...
레닌은 왜 독립군을 모아서 무장해제 시킬려고 했나? 이익주는 역사라면 이걸 설명할 수 있어야 해. 레닌이 뒤통수 친 이유가 뭔지 거기에 대해서 설명 좀 해봐.
소련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은 무장 외국인들(독립군)을 당연히 통제해야겠죠? 지금 대한민국에 무장한 외국인이 돌아다닌다고 생각해보세요.
@@bestji6169 통제가 아니라 토벌.. 소련은 왜 일본을 대신해 만주 독립군을 토벌해야 했었나? 이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해 달라는 거예요...
@@casey7488 소련은 토벌이 아니고 통제를 하려했고, 통제를 따른 독립군부대와 통제를 따르지 않은 독립군 부대끼리의 갈등으로 발생한 참변입니다. 당시의 독립군을 지금의 상명하복이 확실한 군대로 비교하면 안 됩니다. 규모가 크지 않은 독립군 부대가 넓은 지역에서 각자 활동했기 때문에 독립군끼리 유대감이 없고 오히려 부족한 보급을 해결하기 위해 경쟁하는 구조였어요. 독립군끼리의 분열이 참변의 핵심원인.
@@bestji6169 당시에 우리 독립군은 조직폭력배 수준이었다는 얘기군요.. 그게 원인이라는 거죠?
@@casey7488 목표(독립)는 같으나, 서로 뭉치지 못한게 사실입니다. 무장독립군을 조폭에 비유하는것은 부적절하지만, 그들끼리 주도권 세력 다툼을 하다가 발생한 것이 자유시참변이예요. 서로 단결했으면 참변은 없었겠죠.
홍범도 비호하느라 애쓰세네
독립군 전투는 어데서했나.?
본오동.청산리 뿐인가 ?
자유시에서의 독립군들의 이데올로기에 갈등이 많앗다고 볼수있다.
그당시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으로 이쪽이 옳으냐저족이 옪으냐 서로 갈등이 많앗던것...
홍범도 찬양하는것 만큼 이승만도 찬양해라 그게 형평성이 맞지요
김용삼기자 연구한 것도유투브로 봐주세요 청산리 봉오동 자유시참변 객관적으로 설명이 잘 되어 있습니다
ㅋㅋㅋㅋㅋ
대한민국 1대王미국인.
그담에는 일본인 윤석열을 찬양~
@@Go-jx8jj 그 이승만이 세운 나라에 온갖것을 누리면서 미국인 ㅋㅋㅋㅋㅋ라고?
지얼굴에 침뱉고.
한국인 아닌가?
조선족이었나보네.
교수님 훌륭한 강의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홍범도 장군, 존중받아야 마땅한 민족의 독립운동가임에 분명한 것 같습니다 독립기념관에서 업적을 기려야 할 지도자 입니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공산권과 정전 중인 국가의 현실로써 국군의 간성을 육성하는 육사생도의 표상이 될 수는 없다고 확인했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독립운동 했지만 끝내 공산당으로 남았습니다
문재인이 홍범도를 욕먹이고 있죠. 가만히 두었으면 영원히 장군인데 그의 과거를 다 알게 되 레린에 충성한 소련군대위로 밝혀졌으니...북조선 혁명열사능으로 가는게 맞죠. 출신도 평안도니 대한민국과는 아무 관련 없는 자죠
레닌의 공산당과 스탈린의
공산당은 다릅니다
그당시 독립군의 착각
공동의 적인 일본군을 상대로 싸웠던 독립군은 쏘련에 환대를 받을줄로 알았던것 같다
그런데 이게 왠일 무장해제 당하고 쏘련군에 복속 명령 불복종시 전멸당함
쏘련 공산당은 일본군보다 더더욱 잔인하다는 것을 당시 독립군은 몰랐을 것 그과정에서 내부분열과 홍범도와 같은 반역자도 나왔던것
자유시 참변이후 독립운동은 거의 소멸되다시피 되었는데, 그게 소수 집단간 갈등 충돌결과라는게 말이 됩니까? 해설자님의 말대로라면 소수의 사망자, 실종자가 발생했을 뿐이데 왜 이후 상당기간 독립투쟁 기록은 안보일까요? 그 이유가 해설자님은 궁금하지 않나요? 저의 추측은 공산주의 자들이 자유시 참변을 축소, 왜곡 시키는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자유시 참변이 발생 한 후, 무력독립운동이 사라진게 아닙니다. 1930년대, 1940년대 에도 무력투쟁이 지속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역사교과서에 실릴정도의 큰 전과가 없어 알려지지 않은것 뿐입니다. 일제시대 초기에는 독립군 자체로 봉오동, 청산리 대첩의 승리를 거두나, 지속적인 보급과 병력수급문제로 일제시대 중반부터는 러시아나 중국과 합세하게 됩니다. 자유시 참변 때 사망한 상해파 독립군 수는 최소 36명 정도가 학계의 정설이고, 많이 추산한다하더라도 수백명입니다. 이 정도의 인원 손실로 독립군이 괴멸되었다는 말은 억측입니다.
진실의 역사를 말해야. 특히 역사 교육자는 진실을 바탕으로 해야. 거짓의 살을 붙이면 그게 북한이지요.
역사는 해석학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자기 입맛에 맞게 사실, 팩트를 해석하지요.....
그래서 나는 국사는 권력자들(권력계급)이 자신들의 통치를 쉽게하려고 인민들에게 이데올로기를 주입해나가기 위한 수단, 한방법이지요.....
민초들은 전주이가나 양반놈들의 역사, 국사보다 자기 아버지,어머니,할아버지,할머니가 살아온 역사를 공부하고 찾아나서야한다고 봅니다!
곡학아세하는 비열한 지식인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학자적 입장과 그에 따른 소신으로 강의하시는 모습에 존경과 찬사를 보냅니다!
여러 객관적 자료에 근거한 이익주 교수의 주장은 일관됩니다.
''홍범도는 자유시참변에 관련된 자이나 주도한 인물은 아니다''
고로
이익주 교수님의 주장과 참변 후 홍범도가 모스코바에서 레닌을 면담하고 금붙이와 권총을 하사받은 사실 등을 감안하면 '홍범도는 자유시참변에 관련된 민족반역자' 라는 결론에 도달하죠.
홍범도는 쏘련공산당에 충성을 다한 쏘련의 항일영웅이 명백하군요.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는 것하고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그게,그거다, .왜냐?. 김좌진 같은 분은 속내를 제대로 봤기 때문이다..그래서. 화를 면했다...공산주의지는 믿을 수 없는자들이란 경험을 겪었거든? .
하나의 사건만도 이렇게 어렵구나
교수님.
오랜세월과경험에서온내공으로
저런말에상처안입으시겠지요?
소신있는진정한지성인으로생각하고존경합니다.
딸애도팬됐습니다.
댓글잘안다는데
울분이솟아서...
화이팅입니당^^
여러 객관적 자료에 근거한 이익주 교수의 주장은 일관됩니다.
''홍범도는 자유시참변에 관련된 자이나 주도한 인물은 아니다''
고로
이익주 교수님의 주장과 참변 후 홍범도가 모스코바에서 레닌을 면담하고 금붙이와 권총을 하사받은 사실 등을 감안하면 '홍범도는 자유시참변에 관련된 민족반역자' 라는 결론에 도달하죠.
홍범도는 쏘련공산당에 충성을 다한 쏘련의 항일영웅이 명백하군요.
교수님 강의 감사합니다 잘봤어요
우리국민 즉 우리민족은 협의는 하는데 합의 잘 안되드라 그 때도 안되고 지금도 잘 안되고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고 사욕이 많아서 아닌가 싶습니다.
잘 정리하신 . 잘 인용하신. 강의 같습니다 .
자유시 참변전날에서 끝내실게 아니라 최근 러시아가 구 소련 독립군관련 자료를 공개한것 까지 모두 해주시면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안일어날 것 같습니다.
한국 역사학계가 이렇게 무지할 줄이야 ..
참변 시기 까지만 설명하는데그 이후 홍범도 재판과정에 참여하고 소련으로부터 왜 상금과 권총ㅈ등을 하사ㅈ받았는지, 소련군이 된 것, 귀화한 이유등은 쏘오옥! 빼먹네? 오로지 홍범도 쉴드 까지 만 연구함? 머 쉴드 치는데 불편한게 있나요?
오늘 강의 정말 좋습니다~교수님.
공산주의건 뭐 독립운동이건 그이전에 평양에서 군인복무시절 상관살해후 도주 명목으로 육사에 흉상은 세우면 안된다고 봅니다
독립은 연합군의 승리 결과다. 연합군의 역할이 헤드라이트라면 독립투사들의 영향력은 반딧불 정도다. 80년지난 지금 돌잔치 그만하고 국격에 맞는 기념을 찾자.
사람들이. 홍범도를 공산당이라서 말하는것 아닌데 왜 같은. 독립군 끼리 총질을 했는가를 말하는건데 왜 공산당이라고 시불리는 거지
정말 훌륭한 강의 !!
감사합니다
진짜 제가 교수님 제자가 된 기분이에요 ㅎ
홍범도가 통곡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문헌? 증언? 뇌피셜?
홍범도가 자유시 참변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는 사료와 증거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자유시 참변 사건 이후의 홍범도 장군의 행동이 중요하겠죠. 독립군의 리더격인 홍범도는 그 사건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며 살아갔는지? 사건을 일으킨 이르쿠츠크파 편을 들면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상해파에 대해 죄책감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논란이 있는겁니다.
1922년 2월, 원동민족대회(코민테른 주도로 열린 동아시아 각국 공산당 및 민족 혁명 단체의 연석회의) 참석차 모스크바로 간 홍범도와 최진동(봉오동 전투를 함께 전개한 홍범도의 전우)이 제출한 라는 사료가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홍범도와 최진동은
슈미야츠키와 이르쿠츠크파 간부들을 “4천년 조선의 역사 안에서 전례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살인자로 규정하면서 이들의 조속한 퇴진을 촉구했습니다.
보고서엔 자신들의 명의로 발표된 ‘우리 고려 노동 군중에게’ 등 여러 성명서에 대한 반박이 기록되어 있죠.
“이렇게 부끄러운 성명서에 서명할 수 없었으며, 그들(이르쿠츠크파와 슈미야츠키 측)이 최후통첩을 했지만 서명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들’은 동의 없이 임의로 우리들의 이름을 넣었다.”
해당 성명서들에 들어간 홍범도 등 간도 독립군 지도자 5인의 서명이 위조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실 자체가 5인에겐 치명적 치욕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 반공통일연맹 최고위원을 지낸 지청천(이청천) 장군도 그 5인 중 하나입니다.
홍범도 등은 이 보고서에
“작은 패배와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던 동지들에게 배신자로 되고 경멸을 받기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
라고 토로했죠.
홍범도와 최진동은 이르쿠츠크파 간부들과 자유시참변이라는 만행을 독단적으로 진행되게 한 극동공화국 비서부 부장 슈미야츠키를
조선역사 4천년 중 유래없는 살인자라며 고발했습니다.
이 사료 또한 대중들과 일부 그릇된 역사왜곡을 하는 유튜버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료 중 하나죠.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즐거이 하지만 꼼꼼하게
잘 들었습니다.^^
그당시 배운체하는것들이 공산당편에 많이 서 있었지
뱃대지에 기름끼 낀것들이고
일해보지않고 먹물짓 하던것들.
요즘도 그런것들 많지.
특히 딴따라들중에 많지.
홍범도는 기회주의자고 소련국민인것도 사실이다.
권총도 하사받고 군복도 하사받고.ᆢ
홍범도가 딴따라입니까?
위대한 우리 조국!!!!!!! 대한민주공화국의 경제개발의 아버지 되시는 박정희 대통령께서 건국훈장 추서하신 독립영웅이 딴따라에요?
아하 그럼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의 정체는 뭐죠?
맞네
제대로 공부하세요
일본이 얼마나 강했는데
싸움을 걸어~
독립운동은 ᆢ동네
전쟁 놀이했겠다
싶은데
아직도 냉전사고로 세뇌된 넘이군
게으르고 머리나빠서 지식 업데이트 않하는게 자랑이냐?
@@최인향훈성T34 탱크 포함 각종 소련제, 중공제 무기로 중무장한 조선인민군이 얼마나 강력한데 걔네들한테 대항합니까? 박격포 몇개있던 국군따위가!
이러면서 참전용사 ㄱ무시하시나요?
조국에 살지 못하고 연접 대국 러시아와 중국에 살기 위해 가서도 제국주의 러시아와 일본의 전략전술/계략에 놀아난 중구난방/
붕당의 독립군 실상에
시시비비 있었던 그대로의 진실을 밝히되, 그 뭐니 해도
현 자유 민주 시장경제 체제의 "대한민국"이라는 입장에서 평하지 않을 수 없다.
항상 장난끼 가득한 소년 같은 미소로 설명하시는 모습만 보다 요근래 진지한 모습을 보니 화가 많이 나신듯 합니다. 교수님의 노력에 감사합니다.
그냥 북한이 좋다는 말을, 김일성 일가를 추앙한다는 말운 빙빙 돌려서 하네.
북한 가서 행복하게 사세요.
무식이 통통튄다. 한심한 것.
아니, 이게 왜 그렇게 들려요ㅋㅋ
자료를 좀 올려 주세요!
자료를 못 올리지 올리면 구라가 들키거든
네개으ㅏ 파가있었다 그럼 다 공산당이다
좋은 강의 잘 듣고갑니다.
교수님 항상 응원합니다 ~
의병활동때나 정부수랍때나 지금이나 늘 권력 싸움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국민타령 ㅋ
학교에서도 근현대사는 대충 지나가서 이해하기가 어려운데요, 교수님께서 많이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역사라 하는 것에는 진실이라는 것은 전혀 없다. 과거 사실에 대한 기록이나 자료에 대한 해석은 전부 자기 입장에서 기록한 것이고 객관적 입장에서의 기록은 아예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란 실제 사실과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기록된 것일 뿐이다.
교수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잘은 모르지만 이익주 교수님 의견을 믿는다.
치우치지않고 공평하게 진실을 추구하는 학자니까.
자료를 더 찿아보고 방송 헙시다,부족한 부분이 많네요,
서있는 위치와 의견의 차이는
서로 달랐지만
강도왜놈 몰아내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갖은 고초를 겪었던 건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당시의 결정과 행동을 판단하는 게
얼마나 경솔한 짓인지
새삼 느껴집니다
이런분이 역사학자시지....
감사합니다.
러시아가 왜 굳이 독립군을 불러서 절반은 흡수하고 절반은 죽이거나 처벌했는지 설명이 있냐?
공산당 놈들은 민족을 앞세우고 항일을 앞세우지만 결국은 당에대한 충성이 최선이였다 다른건 다쇼야 그건 지금도 진리다 따라서 홍범도의 항일은 소련공선당을 위한거였지 뭔놈의 조선의 독립을 위한거냐
레닌이 하사한 권총으로 무장한 소련군.
저때도 개판이였군 이기주의자들 독립군이 독립군을 죽여? 그래도 홍범도는 살아 남았어 아무 관여 안했어 레닌에게 권총을 하사 받았군아
홀범도도 이동휘도 결국은 다 공산당원이란 말이지! 공산당은 민족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고로 공산당이 독립운동을 했단 말은 개소리다!
먼소리 함??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한게 레닌임,,,
@@NN-fc5qh공부 좀 제대로 하세요. 그건 레닌이 한말이 아니라 미국대통령 우드로 윌슨 이 한말이에요. 에혀
미국은 1차대전 이후 1차대전 패전국의 식민지 해방.
소련은 민족독립 지원을 통한 소비에트 연방화.
감사합니다
홍범도는 독립운동하기전부터 살인자이자 범죄자입니다. 그리고 궁극에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독립군을 팔고 공산당에 투신한 인물입니다.
ㅋㅋㅋㅋㅋ
이런 이런~
일본간첩같은소리
@@Go-jx8jj그러는 너는 공산간첩이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산주의가 뭔지,또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등을 아신다음 얘기하셔야 될듯.
훌륭한 강의 감사드립니다.
하 서론 드럽게 길게하네
빨범도
인류역사기류 = 자연생태기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