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속의 사랑] 중국 황제는 수천명에 달하는 궁녀들과 어떤 밤생활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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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14 ноя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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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사랑
중국 황제는 수천명에 달하는 궁녀들과 어떤 밤생활을 했을까?!!
궁녀의 수로 보면 진나라 진시황의 경우 만 명의 후궁을 두었고 당나라 현종은 4만 명의 후궁을 거느렸기 때문에 지나친 성생활로 수명마저 단축되었고 잠자리하기 위해 순번을 정하기도 했습니다.
황제나 임금의 성행휘 목적은 후손인 왕자를 생산하기 위해서였는데 중국은 통치관념인 유가사상을 기반으로 효를 중시했고, 효의 핵심은 대를 잇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은 큰 불효로 여겼습니다.
『주례』라는 책에는 황제의 성생활에 관한 규범들이 적혀 있는데, 여기에 따르면 황제는 하루도 쉬지 않고 여성들과 합방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후궁은 1등급에서 5등급으로 나뉘어 있었고, 여사(女史)라는 관직의 상궁이 후보 선발을 담당했는데 여사는 황제가 어떤 여성을 원하는지 취향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후궁들의 몸매나 얼굴 등으로 등급을 매겼습니다.
한 달이 삼십 일이라면 1일부터 9일까지는 모든 급에 해당하는 81명의 후궁들이 황제와 동침을 했습니다.
5등급의 후궁들은 ‘어초’라고 불렀는데 81명을 9일로 나누면 하루에 9명이었기 때문에 9명이 한 개의 조가 되어 황제와 9대 1로 잠자리를 가졌습니다.
이때 잠자리에서 황제의 기분을 맞추지 못한 후궁들은 탈락되었고, 이 기간이 ‘그날’이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잠자리를 가지지 못한 후궁들도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후 10일부터 12일까지는 4등급에 해당하는 27명의 후궁들과 동침을 했는데 4등급의 후궁들은 세부(笹婦)라고 불렸습니다.
후궁들의 등급이 올라가면 갈수록 그 등급에 해당하는 후궁들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기 때문에 27명의 후궁들은 3일로 나누어 5등급의 후궁들과 마찬가지로 9대 1로 황제와 동침했습니다.
한 남자가 여자 아홉을 데리고 어떻게 자는지 신기하게 생각하겠지만, 굶주린 여인들 속에서 밤을 새워야 했으니, 황제의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