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자TV전쟁의신 아이젠하워는 어떻게 보면 진짜 재벌급 기업의 CEO 그 자체라고나 할까요. 진짜 CEO들을 보면 강압이 아닌 의견조율과 타협으로 다혈질급의 인물들을 잘 다스리고 조율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사실 정주영, 이병철 같은 인물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정주영의 카리스마에 이병철 그 분의 타협을 잘 섞으면 아이젠하워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만..... 카리스마와 조율성을 잘 조화시키는 것도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 아이젠하워가 대단한 부분은 2차대전 당시 서로 내가 잘났다고 잘난듯이 떠들어대는 프리마돈나 몽고메리와 패튼을 잘 조율하고 소련을 상대로 베를린을 넘겨줄테니 최대한도로 협력을 해 달라는 그런 정치적인 능력도 발휘했다는 점이랄까요? 그래서 2차대전이 끝난 뒤 서방측 군인 중 단 두명에게만 수여했다는 전승훈장까지 받았으니...... 참고로 그 전숭훈장은 소련 역사상 딱 17명에게만 수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냉전 직후의 한국전도 성공적.....으로 끝내고 2차대전 직후의 콧대높은 군부를 확실하게 휘어잡아서 지금의 미국군 문민통제 시스템을 제대로 자리잡게 만들었다고 할까요?
제대로 보셨네요. 아이젠하워는 조율도 했지만 독일 본토로 들어갈 때 넓은 정면 전략 즉 독일 본토로 병력을 고르게 배분해서 진격한다는 자신의 전략은 관철시켰습니다. 몽고메리와 패튼이 자신에게 물자를 몰아달라는 집중 공세 전략을 하자고 주장했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았죠. 이것이 히틀러와 달랐던 점입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장군의 가장 큰 임무는 전투의 승리보다는 가능한한 많은 병사를 그들의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그런 진정한 장군의 임무를 가장 잘 수행한 진짜 군인일 겁니다. 적을 죽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에서 소모될 수 밖에 없는 그런 병사들을 단 한명이라도 더 많이 살려서 그런 병사들의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니까 말입니다.
끼어들어서 죄송하지만 그래서 제가 히틀러를 싥어합니다 그당시 독일병사들은 SS든국방군이든 히틀러와 그리고 조국을 위해사운 병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병사들에 희생으로 프랑스를 독일땅으로 영국과 한판전쟁과 북아프리카전선에서에 전술적 승승장구 동부전선에서에 모스크바 코앞까지 장군들에 공이크기도하지만 병사들은 이런 유능한장군들을 잘따라주면서 자신에 목숨을 받쳐싸움니다 이런 용맹한 부하들을 모욕하고 비하하는 히틀러를 저는 극적으로 싥어합니다 자신을 위해싸워서 고맙다 잊지 않겟다라는 말도 못할망정 1941년에 기세는 어디갓냐고 그렇게 모욕하던데 결국엔 모델도 빡쳐가지고 이런말을 햇죠 1941년이동부전선에서 많은 젊은들이 당신들을 위해 싸우다죽엇다고 히틀러를 총애하던 모델도 빡칠만하고 그외장군들도 빡칠만합니다 포로들마저 막대하는대 자기부하들마저 모욕하면 히틀러는 명백한 이기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병사들이 자신을위해 이렇게 싸우다전사햇는대 결국엔 모욕을 하면 천하에 인간도 아닌놈이죠
아이젠하워 장군 대단하죠..고집불통 오만불손한 몬티를 데리고 승리를 이끌어내고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임무를 큰 실수없이 완수한건 정말 대단하죠. 인품도 식견도 높고.. 역시 마셜 원수가 안목이 높아요...^^ 개인적으로는 마셜 원수가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갔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우리의 루즈벨트 할배가 "조지! 자네가 없으면 내가 편안히 잠을 못자" ^^;; 그 한마디에 대야망을 어쩔수 없이 포기..
2주간에 걸쳐서 아이젠하워를 1~2부로 다뤘습니다. 국내 관련 사료를 모두 참조하였습니다. 결론은 아이젠하워는 최고 사령관이면서도 히틀러와는 다르게 작은 것에 대해서는 참견하지 않고 믿고 맡겼으며 자신은 대전략만 챙겼습니다. 이 영상에서는 특히 아이젠하워의 넓은 정면 전략을 소개했는데요. 패튼과 몽고메리가 집중돌파 전략을 하자고 자신에게 자원을 몰아달라고 졸라댔지만 대전략에 있어서는 끝까지 양보를 하지 않고 소신을 지켰던 아이젠하워였습니다.
제대로 볼줄 아시는군요. 감사합니다. 1945년 5월 8일에 서부전선에서 연합군이 공식 항복을 받았죠. 그 당시 옵저버로 소련장군들도 참석했다고 합니다. 자료화면에도 소련장군들이 보입니다. 다음날인 5월 9일에는 소련군이 연합군과는 별도로 독일군에게 공식 항복을 받게 됩니다. 말씀하신 일화는 5월 8일 새벽 그 역사적 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소련장군들은 지상 최강 붉은군대. 독일군을 거꾸러뜨리다. 뭐 이런식으로 선전 메시지를 냈습니다. 연합군 대표인 아이젠하워는 담백하면서도 그야말로 연합군이 이룬 퍼펙트한 승리를 함축한 저런 멋진 메시지를 내며 2차대전을 마쳤습니다.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소련이 독일을 붙잡아줬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맺어진 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군은 싸움보다는 물량과 보급으로 연합군의 승리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나 할까요? 전투 부분은 글쎄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Golden Eagle 님과 동감이기는 합니다만........ 사실 고전 2차대전 영화들을 보면 맨날 미군이나 영국군이 독일군을 발라버리는 내용들이 대다수인데 실제로는 그것과는 완전히 틀린 상황이니까 말입니다. 그 증거로 안지오 상륙작전, 마켓가든 작전, 휘르스트 숲 전투, 캉 전투등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진짜 미군이 제공권이라나 확실하게 쥐고 있어서 그 당시 서부유럽 전투 부분에서는 미군과 영국군이 그나마 독일군을 상대할 수 있었으니...... 진짜 1대 1의 승부라면 절대로 미군은 독일군을 상대로 승리하지 못할 겁니다.
맞습니다. 연합군은 서부전선에서의 독일군 항복을 독일국방군 사령부 소속 요들 장군에게 받았고 그날 행사장에는 소련군 장성들도 있었습니다. 소련군 장성들은 우리 최강의 소련군, 나치 독일군과 히틀러를 날려버렸다. 뭐 이런식으로 승리 선언문을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딱 한 줄을 적었죠. 1945년 5월 7일, 우리 연합군은 주어진 모든 미션을 완수했다. 딱 한줄로 연합군의 완벽한 승리를 묘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 미국에서 군의 대령이 장군이 되려면 정치에도 능해야한다고 합니다. 패튼같은 외골수 급의 그런 순수한 군인은 오히려 진급이 안된다고나 할까요? 그나마 패튼은 2차 대전 당시 그의 그런 뛰어난 군사적인 능력이 진짜 필요해서 나중에는 별을 4개나 달수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군사적 재능....... 그 재능이야말로 어떻게 보자면 인간의 재능 중 가장 필요할 수도, 아니면 가장 필요없는 재능일지도 모릅니다. 군사적 재능이 필요한 상황은 오로지 전쟁 때 뿐이니까 말입니다. 그런 재능은 훗날 역사가 평가하지도 않고 훗날 역사학자들이 가능성을 평가하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오로지 결과 그것 하나만이 모든 것을 결정하니까 말입니다. 그나마 패튼과 브래들리는 그런 재능을 결과로 증명을 했으니........ 그래서인지 몰라도 멕아더와는 틀리게 패튼과 브래들리는 지금도 냉전시절의 주력 탱크와 지금 미군의 주력 장갑차의 이름으로 영원히 그 이름을 남겼으니......
@@만물상자TV전쟁의신 사실 브래들리, 아이젠하워 그 분들이 웨스트포인트를 1911년에 입학해서 1915년에 졸업했는데 그 기수를 가리켜서 지금도 미국에서는 별들의 기수 라고 합니다. 164명의 졸업생 중에 59명이 장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중 24명은 준장으로, 24명은 소장으로, 7명은 중장으로, 2명은 대장으로 군 생활을 마쳤으며 2명은 원수까지 진급했는데.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오마 브래들리가 그 둘이지요. 특히 브래들리 원수는 미국 역사상 마지막 원수기도 하고......
저 또한 예전에는 인터넷 겉핥기로 "브래들리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독일 기갑부대를 간신히 호랑이 아가리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라는 말만 보고 잘 와닿지 않았는데 이번에 사료 조사를 하면서 브래들리와 패튼의 무전 내용을 알게 되면서 완벽히 이해가 되더군요. 브래들리는 워낙 빠르게 돌진한 패튼을 원래 정해진 곳에 대기하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계획을 변경하면 연합군 병력이 서로 섞여서 혼란스럽다는게 이유였죠.
@@tassader3317 네. 빠져나갔습니다. 이 때 아예 다 전멸당했다면 어쩌면 베를린에 연합군이 먼저 입성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팔레즈 전투 예고편 (ruclips.net/video/p4ZLY_LhChg/видео.html) 이 영상 짧으니까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급격하게 흥미가 땡기실 것입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브래들리는 신중하면서도 필요한 때에는 과감한 모습을 보이지만 패튼은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니...... 영화 패튼대전차군단 에서도 브래들리와 패튼의 대화 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브래들리 장군이 패튼의 그런 저돌적인 모습을 보면서 하는 쓴소리인 '나는 직업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지만 패튼 자네는 즐기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 같네.'
@@daewookkim4795 브래들리는 얌전한 스타일이었습니다. 패튼과 같은 저돌성은 부족했죠. 그래서 팔레즈 포위전에서 서부전선의 독일 기갑부대를 아예 몰살을 시키지 못했던 것은 브래들리의 우유부단함 떄문이었다고 사료에 기록이 되어 있씁니다. 패튼은 히틀러조차 미친 미국 카우보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전투의 화신, 그야말로 싸움닭이란 별명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패튼은 위기 때마다 연합군을 구했습니다. 바로 코브라 작전, 그리고 벌지전투에서였습니다.
몽고메리가 그랬을수밖에 없는것이 대전중 미국의 참전으로 인해 연합군의 사기가 오른 장점도 있지만 반면 대영제국이 감당못할정도로 아메리카의 파워가 상당했기때문입니다.승전?이기면 좋죠 하지만 전후 국제질서에서 아메리카에게 굴종되는것이 분명했기때문에 ...아무래도 할수 있는한의 견제가 필요했었던겁니다.
패튼 대전차군단에서도 그 베를린 레이스 부분이 나오기는 합니다. 패튼이 선두에 서서 가는 모습을 본 병사가 '어디 가세요? 장군님?' 하니까 패튼 왈 '베를린! 빌어먹을 히틀러를 내 손으로 직접 쏴죽이러!' 하니까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는데 그것이 베를린 레이스 중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바로 벌지전투 직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도 잘 묘사되었지만 벌지전투는 미군과 독일군의 싸움이었죠. 죽어라 싸워서 간신히 독일군을 패퇴시켰는데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던 몽고메리가 기자들 앞에서 미군이 나때문에 승리했다 라고 했으니 미군 입장에 뭐가 되겠습니까? 브래들리는 거의 목소리를 안내는 사람인데 브래들리까지 관두겠다고 나왔고 아이젠하워도 열을 받을대로 받았죠. 결국 아이젠하워는 나냐. 몽고메리냐 택하라고 마셜 육참총장에게 쓴 편지를 보여주며 몽고메리를 협박했고 몽고메리가 난생 처음으로 사과를 하면 일단락 되었습니다.
1. 아르덴 대공세를 성공시켰어도 대세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히틀러의 목적은 승리를 위해서 아르덴 대공세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엔트워프 항구를 점령해서 미군이 쳐들어오는 시간을 좀 벌려고 했을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적은 시간끌기였지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2. 쿠르스크전투에서 이겼다면 전황에 영향이 분명 있었습니다. 만슈타인이 열정적으로 쿠르스크 전투를 준비했던 이유가 바로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으로 스탈린과 강화협정을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이 기존에 올렸던 만슈타인 시리즈에 매우 자세하게 나옵니다. 히틀러가 허락할지 말지는 미지수지만 쿠르스크에서 패배했다면 소련군에게는 매우 큰 타격이 되었을 것입니다. 독일입장에서 제일 좋은 시나리오는 만슈타인의 말을 듣고 히틀러가 스탈린과 휴전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였습니다. 히틀러가 실상 받아들일 확률은 없다고 생각되지만 하여간 쿠르스크에서 이겼다면 소련은 당분간 대규모 공세를 할 탄력을 잃어버렸을 거란 점은 확실합니다. 또 하나 가능성은 스탈린이 독일과 협상을 하자고 제안 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독일입장에서는 굉장한 기회였죠. 동부전선에서 좋은 조건으로 휴전을 할 기회 말입니다.
아이젠하워를 칭찬하는 글들의 기본 내용 1.아이젠하워가 아니면 미영 연합군은 깨졌을것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렇게 생각할 만한 근거가 무엇입니까 저는 그반대의 근거를 여러가지 가지고있습니다 . 1-1 미영 연합군의 병력 물자는 미군측이 주로 대고 있었는데 아이젠하워가 역사와다르게 좀더 미국의 편을 들었더고 미영 연합군이 깨졌을까요? 1-2. 몽고메리는 북아프리카와 다르게 이탈리아 북서유럽에서 그다지 뛰어난 활약을 하지 못합니다. 몽고메리를 해임하는것만으로 미영연합군이 깨지게된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마켓가든이전인 시실리 이탈리아 토탈라이즈 작전등에서 이미 영국군의 피해가 엄청나서 영국군내부 영국정치권에서 몽고메리를 해임시켜야한다는요구가 거세었던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2-1 1차대전때의 참호전의 영웅이 2차 대전에선 퇴물이 되듯이 북아프리카의 명장 몽고메리도 프랑스에선 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걸 계속 데리고 다닌것도 사령관으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1-2-2 영국군 전차의 피해만이 아니었습니다.영국군 보병은 전쟁 말기까지 극심한 보병부족을 겪는데 프랑스전투에서 소모된 것이 그이유였고 그책임은 무능한 몽고메리를 그냥둔 그 상급자아이젠하워에게 있는 것입니다. 1-2-3 당시 북프랑스에서 전사한 자식들을 둔 부모들의 항의가 어땠을까요? 2. 프랑스에 상륙이후의 미군은 보카주지형때문에 진격 못하고 영군군은 독일군 기갑사단때문에 진격을 못했다. 그건 몽고메리 브래들리의 문제다 과연? 2-1 항공정찰 첩보원침투 현지인 협조등을 수개월 동안 받았느데 보카쥬 지형이란게 있어서 진격을 못했다? 그런 지형을 파악 못했다? 몰랏다면 무능한거고 알고도 대책을 안세웠다면 나쁜거고 거기까지 신경을 안썼다면 자기 일을 태만히 한겁니다.2-2 독일군 기갑사단때문에 진격을 못했다. 기갑부대의 운용능력이 독일이 뛰어난것은 덮어둡시다 그런데... 독일군 기갑부대에게 그렇게 영미 연합군 부대가 당하는것은 전차 한대 한대의 능력차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독일군은 기갑사단에 최소 1개 대대의 판터를 보유하고있었고 나머지 1개대대도 장포시 4호 전차였습니다. 그 정보는 이미 상륙전에 접수되어있었고 거기에대한 아무런 대처도 없엇습니다. 이역시 몰랐다면 무능한거고 알고도 대책을 안세웠다면 나쁜거고 거기가지 신경을 안썻다면 자기일을 테만히 한것입니다. 더 할이야기 많지마...... 3. 어느영화나 글에서나...." 6월 6일 폭풍속에 잠시 날씨가 좋아질때 "자신이 책임지고 연합군 부대를 상륙 결행시킨다는 아이젠하워의 행동을 영웅시 합니다. 이게 얼마나 무책임한 일입니까 이 에피소드하나만으로도 아이젠하워가 독일군의 준비태세 기갑전력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말해주는 것입니다. 6월 6일 하루만 날씨가 좋아사 상륙만 성공하면 그 다음은 날씨가 나빠도 즉 지상군이 항공근접지원이 없어도 보급이 원할하기 이루어지지 않아도 교두보만 장악하면 그다음은 알아서 독일군을 무찌를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반증입니다. 실제로 6월 6일 상륙 성공하지만(사실 오마하 상륙 참극을 보면 전 성공과 실패 중간쯤아닐가.... 이사람들이 정찰을 한건가? 주빌리 상륙작전의 교훈으로 많이 배웠다더니 뭘 배웠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이후로 폭풍우가 몰아쳐 후속 상륙과 보급이 난항을 겪고 지상군 진격도 지지부진하고 이 기상악화 기간동안 독일군 기갑부대들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4 .온화한 인품으로 마켓가든작전에서 대든 몽고메리를 참교육한 일화.. 과연 이게 잘한일일까요? 참교육했다면 그 작전 못하게 막았어야 했습니다. 결제권자는 아이젠하워이고 마켓가든작전의 실패는 몽고메리의 무능이 아니라 미영 연합군 조직의 문제이며 그 연합군 조직의 책임자는 아이젠하워입니다. 마켓가든 작전의 실패로 네덜란드인에게 얼마나 피해가 갔으며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생명을 잃어야 했습니까 그책임은 마켓가든 작전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몽고메리에게만 있느게 아닙니다. 무다구치렌야만 욕먹느게 아니라 무다구치렌야의 작전을 허허 이친구가 이리 신념을 갖고 주장하니 한번 밀어주지..했던 대본영이 같이 욕먹는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5. 아이젠하워가 추후 대일 전선을 염두에 두고 불필요한 베를린 점령에 소모될 미영 연합군의 손실을 막기위해 전진을 조절했다는이야기.... 후자는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일전선을 염두에 두고 혹은 소련과 대치하지 않기위해 전진을 늦췄다는 주장은 군인이 하면 안되는 행동입니다. 유럽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 그것을 미국이나 영국군 정치인에게 묻고 지시를 따를 일이지 본인이 먼저 결정할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당시 미육군내에서도 이미 이전부터 아이크를 정치군인으로 보고있던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회자도니느이야기입니다. 어디에도 미리 본국에 허락맡았다니는 기록없습니다. 당시 언론에세 이걸 벌써물고들어지자 미정치권에서 수습해준 기록만 있습니다. 부록 5. 팔레즈 포켓에세 영미군이 충돌이 날까봐 진격을 막은것... 과연 그게 브래들리 혼자의 생각일까요? 에.. 그럴수도있죠. 그런데 그럼 브래들리 한번 까죠? 영국군과 미군이 서로 약속한 지점을 지나서 만나서 오인 사격 전투가 벌어졌다 그피해가 얼마겠습니까? 일개 사단이 전멸했을까요? 그리고 영미 동맹이 깨져쓸까요? 아니죠... 이미 숱한 오폭 오사로 아군에게 3스타도 죽는 노르망디였습니다. .. 1개 사단이 전멸할일도 없고 있다고해도 묻혔을걸요.. 그리고 그런정도의 오인사격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 대신 그때 포위망 빠져나간 독일군이 재조직되어 있지도 않을 아군 오인사격으로 인한 유령피해보다 몇천배 큰 피해를 이차대전 끝날때까지 미영 연합군에게 입혔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의견 정말 감사드립니다. 너무 자세하게 써주셨네요. 본 컨텐츠는 존 우코비츠 지음, 상하, 국적, 보수와 진보를 초월한 소통과 통합의 리더 아이젠하워라는 서적을 주로 참고하였습니다. 아이젠하워가 몽고메리와 패튼 두 사람 사이에서 무척 고통을 받았던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특히 몽고메리는 우리가 몰랐지만 많은 문제를 일으켰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영국과 미국이 갈라설리는 없죠. 하지만 아이젠하워는 적국인 나치독일에게 최대한 영국과 미국이 원팀으로 유지되고 분란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국가적 자존심 문제이자 연합군의 사기문제니까요.
사실 몽고메리 때문에 거의 미군과 영국군의 사이가 개와 고양이 급으로 사이가 나빴던 것이고 그것을 잘 조율한 것만으로도 진짜 아이젠하워 그 분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2차대전 당시 영국 내에서 그나마 싸우는 법을 아는 장군이 적기도 했으니....... 목을 날리고 싶어도 못 날린 거지요. 그래서인지 결국 몽고메리는 사망 뒤 2차대전 영웅답지 않게 웨스트민스턴 사원에 안장도 못되고 자기 고향집 공동묘지에 안장이 되었으니...... 그 놈의 자존심과 체면에 목을 맨 몽고메리로서는 자업자득이라고 해야 하나.......
@@만물상자TV전쟁의신 어떻게 보자면 최고사령관은 정치적인 능력이 없으면 맡기 힘들 것 같습니다. 마치 대기업의 CEO 처럼 말입니다. 여러 개성있는 부하들을 적제적소에 잘 써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야 하니까 말입니다. 진짜 아이젠하워 원수 그 분은 저 당시에는 진짜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탈모가 심해지셨는지도......
간만에 질문 올립니다. 1. 패튼이 소련군보다 먼저 베를린을 점령하자 했는데 아이젠하워가 이를 거절한 게 진짠가요?(옛날 외화 시리즈에서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2. 아이젠하워는 전술/전략에서는 구체적으로 얼마나 뛰어났나요? 3.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엘베강에서 조우한 미군과 소련군은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나요? (옛날에 대충 듣기론 소련 병사들이 M1A1 톰슨과 M1 개런드/카빈 그리고 총검에 대해 호평했다고 함, 요건 틀린 수도 있음)
1. 질문하신 것에 대한 답이 이미 본 영상, 아이젠하워 2부에 나와 있습니다. 답을 드리자면 패튼과 몽고메리 둘다 베를린에 들어가려고 환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젠하워는 먼저 베를린에 입성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15:05) 부분에 아이젠하워가 왜 베를린에 먼저 입성하기를 거부했는지 그 이유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영상을 보시면 모든 것을 저절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 이 영상에 나온 모든 내용은 아이젠하워 관련 서적에 나오는 팩트입니다! 2. 아이젠하워의 전술/전략은 만슈타인이나 롬멜, 구데리안과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아이젠하워 1부에 그 이유가 이미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아이젠하워 1부를 꼭 보시길 권합니다.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의 비교대상은 바로 히틀러입니다. 왜냐하면 독일군 총사령관이 히틀러였으니까요. 그런데 같은 총사령관이지만 아이젠하워가 히틀러와 달랐던 점은 세부적인 전략, 전술은 참견하지 않았고 커다란 가이드만 정해줬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임무형 지휘체계. 아이젠하워는 (12:08) 에 나온 것과 같이 넓은 정면 전략을 밀어붙였습니다. 이것은 승리를 위해 어느 한곳만 깊숙히 뚫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게 똑같이 자원배분해서 밀고 들어간다 이 개념입니다. 바로 이것 아이젠하워의 전략이었습니다. 반면 몽고메리 패튼은 집중돌파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이 대전략에서만큼은 몽고메리와 패튼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3. 엘베강에서 조우한 미군, 소련군. 그 시기가 1945년 4월쯤이었으니까 당연히 서로를 같은 편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스탈린, 루즈벨트 입장에서는 이념적으로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긴장감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일반병사들이야 그런게 있을리가 없었죠. 엘베강에서 조우했을 때 양측 병사들은 서로 담배도 나눠피고 미국 잡지도 같이 보고 화기애애한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아이젠하워 2부 영상에서도 다뤘지만 아이젠하워는 너무나 정치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아직 일본과의 전쟁이 진행 중이었기에 일본을 치는데 소련이 도움을 줄 수 있었기에 소련과 잘 지내고자 노력했던 것이 아이젠하워였습니다.
@@sungminkim6309 < 무슨 소리! 쏘련이 아니었으면 베를린 점령은 한참 뒤에나 가능했을 것임 > ..제 댓글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 반론이시네요..차라리 미군의 베를린 점령 의도와는 상관 없이 어차피 소련이 먼저 베를린을 점령했었을 것이다..라고 반론하시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랬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저는 답변할 지식이 부족합니다만) ..2023.10.11 오전 10시32분
@@sungminkim6309 다음은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노르망디상륙 작전 후 미군이 마음만 먹었다면 소련보다 먼저 베를린을 점령할 수 있었을까요? > 에 대한 BARD, Chatgpt, CLOVA X 의 답변입니다.. < BARD > 짧은 답변은 "가능했다"입니다. 미군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빠르게 전진하여 1945년 4월에는 베를린까지 진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연합군의 최고 사령관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소련과 협력하여 독일을 점령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미군은 베를린을 향해 전진하는 속도를 늦추고 소련군과 협력하여 독일을 점령했습니다. 더 긴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군이 마음만 먹었다면 소련보다 먼저 베를린을 점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군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독일군을 빠르게 격퇴하고 전진했습니다. 1945년 4월에는 이미 베를린까지 진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미군은 소련군보다 더 많은 병력과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미군은 공군력에서 소련군보다 우세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연합군의 최고 사령관인 아이젠하워는 소련과 협력하여 독일을 점령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련군은 이미 동부 전선에서 독일군을 격퇴하고 베를린에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소련과 협력하여 독일을 점령하면 전쟁을 더 빨리 종결하고 전후 유럽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 Chatgpt > 제2차 세계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연합군(주로 미국, 영국, 캐나다)이 나치 독일을 서유럽에서 밀어내고 독일을 패배시키기 위한 중요한 작전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만 먹었다고 해서 미군이 소련보다 먼저 베를린을 점령할 수 있었을지에 대한 여러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전략적 위치: 노르망디는 독일과 베를린에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베를린은 소련의 진영에 더 가까웠습니다. 미군이 노르망디에서 베를린으로 진격하는 동안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 했고, 이것은 공급선과 통신 라인을 길게 만들어서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소련의 공격력: 소련은 독일 동부에서 상당한 규모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베를린으로의 진격에 큰 규모의 군사 및 물자를 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공격력과 결정력은 독일 수도를 점령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연합군 내부의 협력과 계획: 연합군은 연합작전을 수행하기로 결정했으며 서로 협력하여 독일에 대합한 전략을 개발했습니다. 미군, 영국군, 캐나다군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소련과의 연결을 유지하며 독일을 패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과 연합군의 전략적 목표: 미국과 연합군의 전략적 목표는 독일을 패배시키는 것이었지 베를린을 가능한 한 빨리 점령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과 연합군은 독일의 복수분열과 안전한 투항을 보장하는 것에 중점을 뒀으며, 베를린을 먼저 점령하는 것이 그 목표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미군이 노르망디에서 베를린을 먼저 점령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어렵고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연합군은 서로 협력하여 독일을 패배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베를린의 점령은 소련군이 주도했습니다. < CLOVA X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베를린을 먼저 점령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존재하지 않지만, 당시 미군이 베를린으로 진격할 의지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베를린으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과 긴 보급로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미군이 베를린을 점령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당시 미국과 소련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베를린 점령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베를린을 먼저 점령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소련과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미군이 베를린을 먼저 점령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2023.10.11 오전10시 45분
오늘 산 책에 관련 내용이 있어서 옮겨 봅니다.. 『 85. 쓸모없는 협약에 집착하다 - 엘베(Elbe)에서 멈추다.. ...(전략)...중요한 문제는 아이젠하워 장군이 어디까지 밀고 들어갈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패튼 장군과 다른 지휘관들에게는 불만이겠지만, 베를린에서 나와 사실상 동유럽까지 진출한 부대를 빼라는 결정이 내려왔다....(중략)..이 명령은 루즈벨트에게서 내려왔고, 미군은 사실상 동유럽을 소련에게 양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중략)..미국이 저지른 진짜 실수는 소련이 그 어떤 조항도 이행할 의도가 없다는 점이 이미 분명해진 상황에서, 협약에 대한 자국의 입장만 충실하게 이행한 것이다...(중략)..미국 대통령과 미군이 냉전을 예건할 선견지명이 있었다면 아이젠하워 장군은 계속 밀고 들어가라는 명령을 내렸을지 모르다 그의 부대는 독일의 저항세력을 경계하면서 베를린에 가장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 기동성이 상당히 뛰어난 미국의 기계화 부대는 오스트리아, 베를린, 알바니아, 불가리아, 그리고 어쩌면 체코슬로바키아에도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후략)』 - -빌 포셋 지음/권춘오 옮김, 역사를 바꾼 100가지 실수 ①, 매일경제사, 2013. 2023.11.17 오후 07시12분
아이젠하워 1~2부를 모두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몽고메리는 이탈리아 시실리 침공당시부터 실수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 후 캉 전투에서도 명성과는 다르게 실망스런 전투를 펼쳤죠. 그런데 자존심은 엄청나게 강했습니다. "나는 전설적인 롬멜을 격파했다" 이 말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벌지전투 후에 고생고생해서 미군이 승리하니까 사실 나 때문에 아이젠하워와 미군이 이긴 것이다! 라는 말을 했다가 열받은 아이젠하워에게 짤릴 뻔합니다.
엘 알라메인의 영웅이 된 것도 공격을 하려고 물자를 집적하며 공격기회를 기다린 전임자가 공세물자를 충분히 비축했기 때문이고 공격하려고 작전짜는데 정치력으로 밀어내고 차지해서 그 물자로 이김. 그 물자로는 아무리 독일군이 정예라고 해도 이길 수 있는 양이었고 작전설명을 몽고메리이하 영국수뇌부에 보고했지만 들들 볶는데 몽고메리도 참여해서 성공 직전에 공을 가로챔 몽고메리는 고집과 정치력만 좋았죠 그보다 좋았던 영국장성들수는 충분했지만 계급이 밀렸죠
하나 더 달께요. 몽고메리 말고 다른 장군으로 영국군 최고선임이 바뀌었어야 했습니다, 엘 알라메인 이전에요. 후임 장군이 열심이 일해서 만들어놓은 무조건 이기는 조건을 보고 후임의 승리를 홈치다니 예의도 없고 염치도 없는 양아치짓이죠. 비난하는 이유는 엘 알라메인이 롬멜에게 함락되기 전부터 함락되어 재요새화되고 승승장구할 때 이 기를 꺽기위해 북아프리카 총사령관으로 임관해 달라는 요청을 여러차례 거절함.
아이젠하워에게 욕을 한 이유가 바로 그 유명한 마켓가든 작전 때문이었습니다. 하여간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아이젠하워가 끝까지 인내했지만 막판에 사람좋은 아이젠하워도 결국 터져버리죠. 바로 벌지전투가 영국군의 공이 가장 컸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젠하워가 참고 참았던 이유는 결국 대외적 이미지때문이었습니다. 연합군 자체가 분열되어버리는 사태만은 반드시 막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나저나 패튼이나 몽고메리는 사실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고 여겨집니다.영상으로 볼때 서로를 존중해주는 모습들이 보여요.성격이 같았다...라고 밖엔.. 그에 반해 아이크는 영상으로 봤을때 가게의 지배인? 니네들은 날아봤자 내 손아귀야 라는 느낌? 제가 10달 정도 상점의 점원일을 해봐서 ...확 와닿더군요.
몽고메리 관련 shorts영상 (ruclips.net/user/shortsA-2e4Ynxd9w?feature=share) 을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에서도 몽고메리에 대한 당시 미군 병사들의 평가가 나오는 흥미로운 장면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몽고메리 그놈은 능력없어."
제 말이 그말입니다. 아이젠하워는 정치감각은 확실히 대단했지만 군인으로서는 아니었다는 판단입니다. 하지만 그 말 많은 패튼, 몽고메리를 잘 이끌었던 리더십 하나는 대단했습니다. 사실 그 장점 때문에 총사령관이 된 것입니다. 그는 불과 1942년만해도 육군 준장에 불과했습니다.
아.. 1부부터 보셨군요. 아이젠하워. 보통 그 사람이 대체 한게 뭐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 컨텐츠는 아이젠하워 평전 2권을 총 2부작으로 녹여낸 영상입니다. 동료들은 모두 전투부대를 지휘하는데 아이젠하워는 오랫동안 맥아더의 부관, 마셜의 부관만 했었죠. 참으로 드라마틱한 것은 자신의 부인에게 "여보 나는 영국으로 떠나게 될거야" 라고 말하자 부인이 드디어 전투부대를 맡은거 아닌가 싶어 축하인사를 하자 아니. 나는 연합군 전체를 맡게 되었다고 대답하죠. 세상에 이것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이 있을까 싶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제생각인데...루즈벨트가 아이젠하워를 뽑은 게...아마도...그것도 정치적 이유?...미국이 영국에게서 나왔지만 그것도 귀족도 아닌 평민뿐이었지만 오히려 지금은 우리 아메리카가 더 강하다.....라는 어필?...사람의 무의식이란건 참 알수 없는거죠.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아이젠하워 1부에 나오는 장면인데 참으로 인상 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1942년 당시 마셜 육참총장, 그 당시에 아이젠하워는 겨우 마셜의 부관에 불과했습니다. 마셜이 아이젠하워에게 연합군 총사령관 후보 명단을 제출하라고 시켰고 아이젠하워는 마셜에게 보고서를 제출하죠. 그 때 마셜이 한말. 연합군 총사령관은 아마도 자네가 가장 적임자일지도 모르지. 이미 그때 벌써 루즈벨트는 쟁쟁한 장군들을 제치고 아이젠하워를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낙점했던 것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푸딩님이 제게 큰 힘이 되는군요.
오늘도 잘보고갑니다 만물상자 TV[전쟁의신]운영자님
아이젠하워~
리더십에서 배울 점이 많은 분이네요.
인격적으로도 제.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몽고메리가 직급상 자신의 하위직급인데 쓰레기라고 욕까지 했는데도 흥분하지 않고 오히려 침착하라고 한 것을 봐서 나중에 대통령까지 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아이젠하워는 어떻게 보면 진짜 재벌급 기업의 CEO 그 자체라고나 할까요.
진짜 CEO들을 보면
강압이 아닌 의견조율과 타협으로
다혈질급의 인물들을 잘 다스리고 조율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사실 정주영, 이병철 같은 인물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정주영의 카리스마에 이병철 그 분의 타협을 잘 섞으면
아이젠하워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만.....
카리스마와 조율성을 잘 조화시키는 것도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후일 맥아더를 제치고 대통령이 되는 아이젠하워군요.
@@만물상자TV전쟁의신 원래 야심가는 웬만한 욕은 듣지도 않지요!롬멜이 여우라지만
아이젠하워는...음흉한 늑대?여우?...싸이코패스에 제일 가깝죠.한국전때도 시찰와서 정치적 행사만 하다갔어요.이승만씨하고도 사이가 그리 좋진 않았죠?
@@user-mz3ho4cm8v 아이젠하워는 통합의 리더십, 말많고 탈많았던 영미 동맹이 깨지지 않도록 잘 이끌고 가긴 했지만
패튼과 같은 야전군인 타입은 절대 아닙니다.
사실 아이젠하워가 대단한 부분은
2차대전 당시
서로 내가 잘났다고
잘난듯이 떠들어대는 프리마돈나 몽고메리와 패튼을 잘 조율하고
소련을 상대로 베를린을 넘겨줄테니
최대한도로 협력을 해 달라는 그런 정치적인 능력도 발휘했다는 점이랄까요?
그래서
2차대전이 끝난 뒤
서방측 군인 중 단 두명에게만 수여했다는 전승훈장까지 받았으니......
참고로 그 전숭훈장은 소련 역사상 딱 17명에게만 수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냉전 직후의 한국전도 성공적.....으로 끝내고
2차대전 직후의 콧대높은 군부를 확실하게 휘어잡아서
지금의 미국군 문민통제 시스템을 제대로 자리잡게 만들었다고 할까요?
제대로 보셨네요. 아이젠하워는 조율도 했지만 독일 본토로 들어갈 때 넓은 정면 전략 즉 독일 본토로 병력을 고르게 배분해서 진격한다는 자신의 전략은 관철시켰습니다. 몽고메리와 패튼이 자신에게 물자를 몰아달라는 집중 공세 전략을 하자고 주장했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았죠. 이것이 히틀러와 달랐던 점입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장군의 가장 큰 임무는
전투의 승리보다는
가능한한 많은 병사를 그들의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그런 진정한 장군의 임무를 가장 잘 수행한 진짜 군인일 겁니다.
적을 죽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에서 소모될 수 밖에 없는 그런 병사들을
단 한명이라도 더 많이 살려서
그런 병사들의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니까 말입니다.
끼어들어서 죄송하지만 그래서 제가 히틀러를 싥어합니다 그당시 독일병사들은 SS든국방군이든 히틀러와 그리고 조국을 위해사운 병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병사들에 희생으로 프랑스를 독일땅으로 영국과 한판전쟁과 북아프리카전선에서에 전술적 승승장구 동부전선에서에 모스크바 코앞까지 장군들에 공이크기도하지만 병사들은 이런 유능한장군들을 잘따라주면서 자신에 목숨을 받쳐싸움니다 이런 용맹한 부하들을 모욕하고 비하하는 히틀러를 저는 극적으로 싥어합니다 자신을 위해싸워서 고맙다 잊지 않겟다라는 말도 못할망정 1941년에 기세는 어디갓냐고 그렇게 모욕하던데 결국엔 모델도 빡쳐가지고 이런말을 햇죠 1941년이동부전선에서 많은 젊은들이 당신들을 위해 싸우다죽엇다고 히틀러를 총애하던 모델도 빡칠만하고 그외장군들도 빡칠만합니다 포로들마저 막대하는대 자기부하들마저 모욕하면 히틀러는 명백한 이기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병사들이 자신을위해 이렇게 싸우다전사햇는대 결국엔 모욕을 하면 천하에 인간도 아닌놈이죠
아이젠하워에겐 겸손한 자세와 따뜻한 가슴이 있어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되었군요.
글구 베를린 점령에 목매지 않은 게 유럽전선을 빨리 마무리하고 태평양 전쟁을 끝낼려면 '병력을 아껴야 된다' 참 지혜롭습니다.
아이젠하워 1부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육군 소령에 불과한 아이젠하워가 불과 2년 사이에 연합군 총사령관이 되었으니 정말 드라마틱했습니다.
이 영상의 마지막에 나온 아이젠하워가 2차대전 독일 항복 조인식 후 남긴 말도 무척 인상적입니다.
아주 흥미롭네요. 바로 구독 박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영상에 나온 모든 것은 정확한 사료에 기반한 것이며 다른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모두 고증에 맞는 영상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이젠하워 장군
대단하죠..고집불통 오만불손한 몬티를 데리고 승리를 이끌어내고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임무를 큰 실수없이 완수한건 정말 대단하죠.
인품도 식견도 높고..
역시 마셜 원수가 안목이 높아요...^^ 개인적으로는 마셜 원수가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갔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우리의 루즈벨트 할배가 "조지! 자네가 없으면 내가 편안히 잠을 못자" ^^;;
그 한마디에 대야망을 어쩔수 없이 포기..
2주간에 걸쳐서 아이젠하워를 1~2부로 다뤘습니다. 국내 관련 사료를 모두 참조하였습니다. 결론은 아이젠하워는 최고 사령관이면서도 히틀러와는 다르게 작은 것에 대해서는 참견하지 않고 믿고 맡겼으며 자신은 대전략만 챙겼습니다. 이 영상에서는 특히 아이젠하워의 넓은 정면 전략을 소개했는데요. 패튼과 몽고메리가 집중돌파 전략을 하자고 자신에게 자원을 몰아달라고 졸라댔지만 대전략에 있어서는 끝까지 양보를 하지 않고 소신을 지켰던 아이젠하워였습니다.
그 독불장군 패튼도 잘 구슬려서 잘 써먹음
@@호연-r6o 14:45 에 아이젠하워 머릿속에 있었던 핵심이 나옵니다. "함께 팀을 이룰수만 있다면 어떤 것이든 내게 가치가 있다네, 이렇게 해서라도 둘이 계속 경쟁하며 진격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해." 이 말이 바로 몽고메리에게 욕까지 들어먹고 했던 말이었습니다.
맞습니다! 독일군을 상대하기 보다 몬티를 상대하는 것이 10배는 더 어려웠을 겁니다
구수한 목소리 최고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이정도 목소리에 이정도 학식이면, 육군사관학교 교장을 지내신 분이 드디어 당신께서 가진 모든 지식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얘기할 수 있는 장치인 유투브를 만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이동중-v4h 응원의 좋은 말씀이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내용 고맙습니다.
추진되야→추진돼야 또는 추진되어야
나중에 독일 만토이펠장군도 다루어주세요!
좋은의견 감사합니다.
너무유익한방송이네요
네~ 많은 응원부탁드립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사적 팩트를 고증에 맞게 정확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혹시 1부도 보셨는지요? 야전경험도 없었던 육군 소장이었다가 갑자기 난데없이 연합군 총사령관이 되는 아이젠하워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맡겨진 모든 임무를 완수했다' 딱 한줄 간지다 크
연합군은 퍼펙트한 승리를 거뒀다.
간단히 말해서 이런 의미였습니다. 그의 성격이 나오는 부분입니다.
이 컨텐츠를 1부부터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아이젠하워는 승리도 중요했지만 동맹국과의 단합이 어떤 의미에서는 더 중요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큰그림을 그릴줄아는 전형적인 총사령관감이군요
와 상당히 수준높은 영상이네요...
아이젠하워 장군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네요~ 야전 사령관과 달리 연합군 최고사령관은 전쟁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죠...
" 연합군은 맡겨진 모든 임무를 완수하였다."
참으로 군인다운 멋진 마지막 메세지입니다 👍
제대로 볼줄 아시는군요. 감사합니다.
1945년 5월 8일에 서부전선에서 연합군이 공식 항복을 받았죠. 그 당시 옵저버로 소련장군들도 참석했다고 합니다. 자료화면에도 소련장군들이 보입니다.
다음날인 5월 9일에는 소련군이 연합군과는 별도로 독일군에게 공식 항복을 받게 됩니다.
말씀하신 일화는 5월 8일 새벽 그 역사적 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소련장군들은 지상 최강 붉은군대. 독일군을 거꾸러뜨리다. 뭐 이런식으로 선전 메시지를 냈습니다.
연합군 대표인 아이젠하워는 담백하면서도 그야말로 연합군이 이룬 퍼펙트한 승리를 함축한 저런 멋진 메시지를 내며 2차대전을 마쳤습니다.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10%의 독일군을 상대로 미군 참 잘났습니다. 사실 90%의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종전까지 하루에 3번 이상 전투를 했습니다.
이번 영상 많은 기대바랍니다
사실 소련이 독일을 붙잡아줬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맺어진 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군은 싸움보다는
물량과 보급으로 연합군의 승리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나 할까요?
전투 부분은 글쎄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Golden Eagle
님과 동감이기는 합니다만........
사실 고전 2차대전 영화들을 보면
맨날 미군이나 영국군이 독일군을 발라버리는 내용들이 대다수인데
실제로는 그것과는 완전히 틀린 상황이니까 말입니다.
그 증거로 안지오 상륙작전, 마켓가든 작전, 휘르스트 숲 전투, 캉 전투등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진짜 미군이 제공권이라나 확실하게 쥐고 있어서
그 당시 서부유럽 전투 부분에서는
미군과 영국군이 그나마 독일군을 상대할 수 있었으니......
진짜 1대 1의 승부라면
절대로 미군은 독일군을 상대로 승리하지 못할 겁니다.
동의합니다. 사실 독일군 중에서도 A급 부대는 1941-43년까지의 동부전선에서 대부분 소모됐습니다. 유럽전선에서 러시아군의 역할은 70%는 됐다고 봅니다.
@@daewookkim4795 맞아요. 휘르스트 숲 전투에서는 연합군이 제공권이 없었지요. 숫자는 헐씬 많았지요.
@@PurpleCat9794 브래들리 원수의 흑역사이기도 하지요.
마켓가든 작전이 몽고메리 원수의 흑역사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 두 명의 원수의 흑역사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발터 모델 원수라는 것은 진짜......
몽고 메리 너무 추억이 돋네요 60~80년대 던가 겨울 내복 엠보싱 내복 이름이 몽고 메리 였던것 같으네요. 상표가 목뒤 쪽에 한글로 몽고 메리 있던거 기억이 나는데요
ㅋㅋㅋ
네 맞습니다. 내복 장군 입니다.
18:40 와 간지가 그냥 제대로네요...
맞습니다. 연합군은 서부전선에서의 독일군 항복을 독일국방군 사령부 소속 요들 장군에게 받았고 그날 행사장에는 소련군 장성들도 있었습니다.
소련군 장성들은 우리 최강의 소련군, 나치 독일군과 히틀러를 날려버렸다. 뭐 이런식으로 승리 선언문을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딱 한 줄을 적었죠.
1945년 5월 7일, 우리 연합군은 주어진 모든 미션을 완수했다. 딱 한줄로 연합군의 완벽한 승리를 묘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 미국에서 군의 대령이 장군이 되려면
정치에도 능해야한다고 합니다.
패튼같은 외골수 급의 그런 순수한 군인은
오히려 진급이 안된다고나 할까요?
그나마 패튼은
2차 대전 당시 그의 그런 뛰어난 군사적인 능력이 진짜 필요해서
나중에는 별을 4개나 달수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군사적 재능.......
그 재능이야말로
어떻게 보자면
인간의 재능 중 가장 필요할 수도,
아니면
가장 필요없는 재능일지도 모릅니다.
군사적 재능이 필요한 상황은 오로지 전쟁 때 뿐이니까 말입니다.
그런 재능은
훗날 역사가 평가하지도 않고
훗날 역사학자들이 가능성을 평가하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오로지 결과
그것 하나만이
모든 것을 결정하니까 말입니다.
그나마 패튼과 브래들리는
그런 재능을 결과로 증명을 했으니........
그래서인지 몰라도
멕아더와는 틀리게
패튼과 브래들리는
지금도 냉전시절의 주력 탱크와
지금 미군의 주력 장갑차의 이름으로 영원히 그 이름을 남겼으니......
사실 조지패튼의 그 저돌성을 좋아하는데 결과론적으론 말씀대로 됐죠. 더 안타까운 것은 브래들리와 아이젠하워도 조지패튼 장군보다 웨스트포인트 후배였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패튼은 브래들리와 아이젠하워에게 진급이 밀렸던 것이죠.
@@만물상자TV전쟁의신 사실 브래들리, 아이젠하워 그 분들이 웨스트포인트를 1911년에 입학해서 1915년에 졸업했는데
그 기수를 가리켜서 지금도 미국에서는 별들의 기수 라고 합니다.
164명의 졸업생 중에 59명이 장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중 24명은 준장으로, 24명은 소장으로, 7명은 중장으로, 2명은 대장으로 군 생활을 마쳤으며 2명은 원수까지 진급했는데.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오마 브래들리가 그 둘이지요.
특히 브래들리 원수는 미국 역사상 마지막 원수기도 하고......
시칠리아 섬 , 노르망디 팔레즈 포위전에서 독일군을 완전섬멸 못한건 확실히 연합군에 실수내요
저 또한 예전에는 인터넷 겉핥기로 "브래들리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독일 기갑부대를 간신히 호랑이 아가리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라는 말만 보고 잘 와닿지 않았는데 이번에 사료 조사를 하면서 브래들리와 패튼의 무전 내용을 알게 되면서 완벽히 이해가 되더군요. 브래들리는 워낙 빠르게 돌진한 패튼을 원래 정해진 곳에 대기하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계획을 변경하면 연합군 병력이 서로 섞여서 혼란스럽다는게 이유였죠.
@@만물상자TV전쟁의신 저도 컴퍼니오브히어로즈 미군 미션하면서 팔레즈미션 끝나고 1만명 사살 5만명 포로 라길래 독일군을 섬멸했구나 이생각했는데 그게아니었다니
@@tassader3317 네. 빠져나갔습니다. 이 때 아예 다 전멸당했다면 어쩌면 베를린에 연합군이 먼저 입성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팔레즈 전투 예고편 (ruclips.net/video/p4ZLY_LhChg/видео.html) 이 영상 짧으니까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급격하게 흥미가 땡기실 것입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브래들리는 신중하면서도 필요한 때에는 과감한 모습을 보이지만
패튼은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니......
영화 패튼대전차군단 에서도
브래들리와 패튼의 대화 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브래들리 장군이 패튼의 그런 저돌적인 모습을 보면서 하는 쓴소리인
'나는 직업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지만
패튼 자네는 즐기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 같네.'
@@daewookkim4795 브래들리는 얌전한 스타일이었습니다. 패튼과 같은 저돌성은 부족했죠. 그래서 팔레즈 포위전에서 서부전선의 독일 기갑부대를 아예 몰살을 시키지 못했던 것은 브래들리의 우유부단함 떄문이었다고 사료에 기록이 되어 있씁니다. 패튼은 히틀러조차 미친 미국 카우보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전투의 화신, 그야말로 싸움닭이란 별명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패튼은 위기 때마다 연합군을 구했습니다. 바로 코브라 작전, 그리고 벌지전투에서였습니다.
1942년의 카세린 전투를 베경으로 다룬 영화 1995년작 사하라가 있내요.
그 영화는 사실 1943년 사하리 전차대의 리메이크 작입니다.
험프리 보가트 주연이지요.
아이젠하워에 대해 잘 몰랐는데... 역시 그는 그냥 군인이 아니었네요! 보는 내내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저.. 영국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몽고메리, 좋은 장군이 절대 아닌 것 같네요.
몽고메리가 상당히 오만했습니다.
엘 알라메인전투에서 물량으로 롬멜을 이긴 후에는 거의 언터처블이었습니다.
아이젠하워 1부도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그가 말단장교였을 때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연합군 총사령관이 되었는지 영화처럼 내용이 펼쳐질 것입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ㅋ 재미있게 보겠습니다. 이제 보려구요.. 보고나서 그 채널에도 꼭 댓글 쓸게요... ~
@@shanestory3879 감사합니다.
아이젠하워가 가장 사랑했던 군가가 배경음악으로 쓰였습니다.
몽고메리가 그랬을수밖에 없는것이 대전중 미국의 참전으로 인해 연합군의 사기가
오른 장점도 있지만 반면 대영제국이 감당못할정도로 아메리카의 파워가 상당했기때문입니다.승전?이기면 좋죠 하지만 전후 국제질서에서 아메리카에게 굴종되는것이 분명했기때문에 ...아무래도 할수 있는한의 견제가 필요했었던겁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오만이라...제가 볼땐 그렇게 보여질정도의 견제가 영국에게는 필요했을거라고 여겨집니다.그만큼 미국의 힘이 강대했다고 느껴집니다.
서방 미영 연합군과 소련군간 이른바 베를린 마라톤의 서막 나오는군요.
패튼 대전차군단에서도 그 베를린 레이스 부분이 나오기는 합니다.
패튼이 선두에 서서 가는 모습을 본 병사가
'어디 가세요?
장군님?'
하니까
패튼 왈
'베를린!
빌어먹을 히틀러를 내 손으로 직접 쏴죽이러!'
하니까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는데
그것이 베를린 레이스 중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daewookkim4795 역시 미소영 연합군간 베를린 마라톤을 아시는군요.
@@daewookkim4795 라일구에서 저격수 젝슨역(페리페퍼)도 페튼과 같은 대사를 했어요.
@@pedrogim6952 차이점은 저격수의 대사는 가상이지만
패튼 장군의 대사는
실제였다는 겁니다.
그 부분은 2차대전 참전용사들의 증언이
바탕이 되니까 말입니다.
그 온화한 브래들리장군이 관둔다고
했다니 몽고메리도 막장이네요
바로 벌지전투 직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도 잘 묘사되었지만 벌지전투는 미군과 독일군의 싸움이었죠. 죽어라 싸워서 간신히 독일군을 패퇴시켰는데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던 몽고메리가 기자들 앞에서 미군이 나때문에 승리했다 라고 했으니 미군 입장에 뭐가 되겠습니까? 브래들리는 거의 목소리를 안내는 사람인데 브래들리까지 관두겠다고 나왔고 아이젠하워도 열을 받을대로 받았죠. 결국 아이젠하워는 나냐. 몽고메리냐 택하라고 마셜 육참총장에게 쓴 편지를 보여주며 몽고메리를 협박했고 몽고메리가 난생 처음으로 사과를 하면 일단락 되었습니다.
질문이 있습닏아
1.독일이 아르덴 대공세를 성공시켰다면 향후 독일은 어떻게 되었을까여?
2.독일이 쿠르스크 전투에서 승리했다면 향후 독일은 어떻게 되었을까여?
1. 아르덴 대공세를 성공시켰어도 대세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히틀러의 목적은 승리를 위해서 아르덴 대공세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엔트워프 항구를 점령해서 미군이 쳐들어오는 시간을 좀 벌려고 했을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적은 시간끌기였지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2. 쿠르스크전투에서 이겼다면 전황에 영향이 분명 있었습니다. 만슈타인이 열정적으로 쿠르스크 전투를 준비했던 이유가 바로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으로 스탈린과 강화협정을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이 기존에 올렸던 만슈타인 시리즈에 매우 자세하게 나옵니다. 히틀러가 허락할지 말지는 미지수지만 쿠르스크에서 패배했다면 소련군에게는 매우 큰 타격이 되었을 것입니다. 독일입장에서 제일 좋은 시나리오는 만슈타인의 말을 듣고 히틀러가 스탈린과 휴전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였습니다. 히틀러가 실상 받아들일 확률은 없다고 생각되지만 하여간 쿠르스크에서 이겼다면 소련은 당분간 대규모 공세를 할 탄력을 잃어버렸을 거란 점은 확실합니다. 또 하나 가능성은 스탈린이 독일과 협상을 하자고 제안 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독일입장에서는 굉장한 기회였죠. 동부전선에서 좋은 조건으로 휴전을 할 기회 말입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섬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미드 높은 성의 사나이가 현실이 될 가능성도....?
그당시 독일히틀러가 쏘련만
침공안했으면... 미국과영국은
유럽에서 고전을 면치못했을거라는..
독일군들은 전투잘했다는설도.....
아이젠하워를 칭찬하는 글들의 기본 내용 1.아이젠하워가 아니면 미영 연합군은 깨졌을것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렇게 생각할 만한 근거가 무엇입니까 저는 그반대의 근거를 여러가지 가지고있습니다 . 1-1 미영 연합군의 병력 물자는 미군측이 주로 대고 있었는데 아이젠하워가 역사와다르게 좀더 미국의 편을 들었더고 미영 연합군이 깨졌을까요? 1-2. 몽고메리는 북아프리카와 다르게 이탈리아 북서유럽에서 그다지 뛰어난 활약을 하지 못합니다. 몽고메리를 해임하는것만으로 미영연합군이 깨지게된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마켓가든이전인 시실리 이탈리아 토탈라이즈 작전등에서 이미 영국군의 피해가 엄청나서 영국군내부 영국정치권에서 몽고메리를 해임시켜야한다는요구가 거세었던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2-1 1차대전때의 참호전의 영웅이 2차 대전에선 퇴물이 되듯이 북아프리카의 명장 몽고메리도 프랑스에선 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걸 계속 데리고 다닌것도 사령관으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1-2-2 영국군 전차의 피해만이 아니었습니다.영국군 보병은 전쟁 말기까지 극심한 보병부족을 겪는데 프랑스전투에서 소모된 것이 그이유였고 그책임은 무능한 몽고메리를 그냥둔 그 상급자아이젠하워에게 있는 것입니다. 1-2-3 당시 북프랑스에서 전사한 자식들을 둔 부모들의 항의가 어땠을까요? 2. 프랑스에 상륙이후의 미군은 보카주지형때문에 진격 못하고 영군군은 독일군 기갑사단때문에 진격을 못했다. 그건 몽고메리 브래들리의 문제다 과연? 2-1 항공정찰 첩보원침투 현지인 협조등을 수개월 동안 받았느데 보카쥬 지형이란게 있어서 진격을 못했다? 그런 지형을 파악 못했다? 몰랏다면 무능한거고 알고도 대책을 안세웠다면 나쁜거고 거기까지 신경을 안썼다면 자기 일을 태만히 한겁니다.2-2 독일군 기갑사단때문에 진격을 못했다. 기갑부대의 운용능력이 독일이 뛰어난것은 덮어둡시다 그런데... 독일군 기갑부대에게 그렇게 영미 연합군 부대가 당하는것은 전차 한대 한대의 능력차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독일군은 기갑사단에 최소 1개 대대의 판터를 보유하고있었고 나머지 1개대대도 장포시 4호 전차였습니다. 그 정보는 이미 상륙전에 접수되어있었고 거기에대한 아무런 대처도 없엇습니다. 이역시 몰랐다면 무능한거고 알고도 대책을 안세웠다면 나쁜거고 거기가지 신경을 안썻다면 자기일을 테만히 한것입니다. 더 할이야기 많지마...... 3. 어느영화나 글에서나...." 6월 6일 폭풍속에 잠시 날씨가 좋아질때 "자신이 책임지고 연합군 부대를 상륙 결행시킨다는 아이젠하워의 행동을 영웅시 합니다. 이게 얼마나 무책임한 일입니까
이 에피소드하나만으로도 아이젠하워가 독일군의 준비태세 기갑전력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말해주는 것입니다. 6월 6일 하루만 날씨가 좋아사 상륙만 성공하면 그 다음은 날씨가 나빠도 즉 지상군이 항공근접지원이 없어도 보급이 원할하기 이루어지지 않아도 교두보만 장악하면 그다음은 알아서 독일군을 무찌를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반증입니다. 실제로 6월 6일 상륙 성공하지만(사실 오마하 상륙 참극을 보면 전 성공과 실패 중간쯤아닐가.... 이사람들이 정찰을 한건가? 주빌리 상륙작전의 교훈으로 많이 배웠다더니 뭘 배웠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이후로 폭풍우가 몰아쳐 후속 상륙과 보급이 난항을 겪고 지상군 진격도 지지부진하고 이 기상악화 기간동안 독일군 기갑부대들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4 .온화한 인품으로 마켓가든작전에서 대든 몽고메리를 참교육한 일화.. 과연 이게 잘한일일까요? 참교육했다면 그 작전 못하게 막았어야 했습니다. 결제권자는 아이젠하워이고 마켓가든작전의 실패는 몽고메리의 무능이 아니라 미영 연합군 조직의 문제이며 그 연합군 조직의 책임자는 아이젠하워입니다. 마켓가든 작전의 실패로 네덜란드인에게 얼마나 피해가 갔으며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생명을 잃어야 했습니까 그책임은 마켓가든 작전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몽고메리에게만 있느게 아닙니다. 무다구치렌야만 욕먹느게 아니라 무다구치렌야의 작전을 허허 이친구가 이리 신념을 갖고 주장하니 한번 밀어주지..했던 대본영이 같이 욕먹는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5. 아이젠하워가 추후 대일 전선을 염두에 두고 불필요한 베를린 점령에 소모될 미영 연합군의 손실을 막기위해 전진을 조절했다는이야기.... 후자는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일전선을 염두에 두고 혹은 소련과 대치하지 않기위해 전진을 늦췄다는 주장은 군인이 하면 안되는 행동입니다. 유럽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 그것을 미국이나 영국군 정치인에게 묻고 지시를 따를 일이지 본인이 먼저 결정할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당시 미육군내에서도 이미 이전부터 아이크를 정치군인으로 보고있던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회자도니느이야기입니다. 어디에도 미리 본국에 허락맡았다니는 기록없습니다. 당시 언론에세 이걸 벌써물고들어지자 미정치권에서 수습해준 기록만 있습니다. 부록 5. 팔레즈 포켓에세 영미군이 충돌이 날까봐 진격을 막은것... 과연 그게 브래들리 혼자의 생각일까요? 에.. 그럴수도있죠. 그런데 그럼 브래들리 한번 까죠? 영국군과 미군이 서로 약속한 지점을 지나서 만나서 오인 사격 전투가 벌어졌다 그피해가 얼마겠습니까? 일개 사단이 전멸했을까요? 그리고 영미 동맹이 깨져쓸까요? 아니죠... 이미 숱한 오폭 오사로 아군에게 3스타도 죽는 노르망디였습니다. .. 1개 사단이 전멸할일도 없고 있다고해도 묻혔을걸요.. 그리고 그런정도의 오인사격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 대신 그때 포위망 빠져나간 독일군이 재조직되어 있지도 않을 아군 오인사격으로 인한 유령피해보다 몇천배 큰 피해를 이차대전 끝날때까지 미영 연합군에게 입혔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의견 정말 감사드립니다. 너무 자세하게 써주셨네요. 본 컨텐츠는 존 우코비츠 지음, 상하, 국적, 보수와 진보를 초월한 소통과 통합의 리더 아이젠하워라는 서적을 주로 참고하였습니다. 아이젠하워가 몽고메리와 패튼 두 사람 사이에서 무척 고통을 받았던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특히 몽고메리는 우리가 몰랐지만 많은 문제를 일으켰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영국과 미국이 갈라설리는 없죠. 하지만 아이젠하워는 적국인 나치독일에게 최대한 영국과 미국이 원팀으로 유지되고 분란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국가적 자존심 문제이자 연합군의 사기문제니까요.
사실 몽고메리 때문에 거의 미군과 영국군의 사이가 개와 고양이 급으로 사이가 나빴던 것이고
그것을 잘 조율한 것만으로도 진짜 아이젠하워 그 분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2차대전 당시 영국 내에서 그나마 싸우는 법을 아는 장군이 적기도 했으니.......
목을 날리고 싶어도 못 날린 거지요.
그래서인지 결국 몽고메리는 사망 뒤 2차대전 영웅답지 않게
웨스트민스턴 사원에 안장도 못되고 자기 고향집 공동묘지에 안장이 되었으니......
그 놈의 자존심과 체면에 목을 맨 몽고메리로서는 자업자득이라고 해야 하나.......
@@만물상자TV전쟁의신 어떻게 보자면 최고사령관은 정치적인 능력이 없으면 맡기 힘들 것 같습니다.
마치 대기업의 CEO 처럼 말입니다.
여러 개성있는 부하들을 적제적소에 잘 써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야 하니까 말입니다.
진짜 아이젠하워 원수 그 분은 저 당시에는 진짜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탈모가 심해지셨는지도......
간만에 질문 올립니다.
1. 패튼이 소련군보다 먼저 베를린을 점령하자 했는데 아이젠하워가 이를 거절한 게 진짠가요?(옛날 외화 시리즈에서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2. 아이젠하워는 전술/전략에서는 구체적으로 얼마나 뛰어났나요?
3.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엘베강에서 조우한 미군과 소련군은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나요? (옛날에 대충 듣기론 소련 병사들이 M1A1 톰슨과 M1 개런드/카빈 그리고 총검에 대해 호평했다고 함, 요건 틀린 수도 있음)
1. 질문하신 것에 대한 답이 이미 본 영상, 아이젠하워 2부에 나와 있습니다. 답을 드리자면 패튼과 몽고메리 둘다 베를린에 들어가려고 환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젠하워는 먼저 베를린에 입성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15:05) 부분에 아이젠하워가 왜 베를린에 먼저 입성하기를 거부했는지 그 이유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영상을 보시면 모든 것을 저절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 이 영상에 나온 모든 내용은 아이젠하워 관련 서적에 나오는 팩트입니다!
2. 아이젠하워의 전술/전략은 만슈타인이나 롬멜, 구데리안과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아이젠하워 1부에 그 이유가 이미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아이젠하워 1부를 꼭 보시길 권합니다.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의 비교대상은 바로 히틀러입니다. 왜냐하면 독일군 총사령관이 히틀러였으니까요. 그런데 같은 총사령관이지만 아이젠하워가 히틀러와 달랐던 점은 세부적인 전략, 전술은 참견하지 않았고 커다란 가이드만 정해줬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임무형 지휘체계. 아이젠하워는 (12:08) 에 나온 것과 같이 넓은 정면 전략을 밀어붙였습니다. 이것은 승리를 위해 어느 한곳만 깊숙히 뚫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게 똑같이 자원배분해서 밀고 들어간다 이 개념입니다. 바로 이것 아이젠하워의 전략이었습니다. 반면 몽고메리 패튼은 집중돌파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이 대전략에서만큼은 몽고메리와 패튼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3. 엘베강에서 조우한 미군, 소련군. 그 시기가 1945년 4월쯤이었으니까 당연히 서로를 같은 편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스탈린, 루즈벨트 입장에서는 이념적으로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긴장감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일반병사들이야 그런게 있을리가 없었죠. 엘베강에서 조우했을 때 양측 병사들은 서로 담배도 나눠피고 미국 잡지도 같이 보고 화기애애한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아이젠하워 2부 영상에서도 다뤘지만 아이젠하워는 너무나 정치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아직 일본과의 전쟁이 진행 중이었기에 일본을 치는데 소련이 도움을 줄 수 있었기에 소련과 잘 지내고자 노력했던 것이 아이젠하워였습니다.
15:57 베를린 점령을 포기한 것은 정치적인 실수라는 견해도 (결과론이겠지만)..2023.09.23 오후 04시 07분
무슨 소리! 쏘련이 아니었으면 베를린 점령은 한참 뒤에나 가능했을 것임
@@sungminkim6309 < 무슨 소리! 쏘련이 아니었으면 베를린 점령은 한참 뒤에나 가능했을 것임 > ..제 댓글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 반론이시네요..차라리 미군의 베를린 점령 의도와는 상관 없이 어차피 소련이 먼저 베를린을 점령했었을 것이다..라고 반론하시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랬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저는 답변할 지식이 부족합니다만) ..2023.10.11 오전 10시32분
@@sungminkim6309 다음은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노르망디상륙 작전 후 미군이 마음만 먹었다면 소련보다 먼저 베를린을 점령할 수 있었을까요? > 에 대한 BARD, Chatgpt, CLOVA X 의 답변입니다..
< BARD >
짧은 답변은 "가능했다"입니다. 미군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빠르게 전진하여 1945년 4월에는 베를린까지 진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연합군의 최고 사령관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소련과 협력하여 독일을 점령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미군은 베를린을 향해 전진하는 속도를 늦추고 소련군과 협력하여 독일을 점령했습니다.
더 긴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군이 마음만 먹었다면 소련보다 먼저 베를린을 점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군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독일군을 빠르게 격퇴하고 전진했습니다. 1945년 4월에는 이미 베를린까지 진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미군은 소련군보다 더 많은 병력과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미군은 공군력에서 소련군보다 우세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연합군의 최고 사령관인 아이젠하워는 소련과 협력하여 독일을 점령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련군은 이미 동부 전선에서 독일군을 격퇴하고 베를린에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소련과 협력하여 독일을 점령하면 전쟁을 더 빨리 종결하고 전후 유럽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 Chatgpt >
제2차 세계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연합군(주로 미국, 영국, 캐나다)이 나치 독일을 서유럽에서 밀어내고 독일을 패배시키기 위한 중요한 작전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만 먹었다고 해서 미군이 소련보다 먼저 베를린을 점령할 수 있었을지에 대한 여러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전략적 위치: 노르망디는 독일과 베를린에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베를린은 소련의 진영에 더 가까웠습니다. 미군이 노르망디에서 베를린으로 진격하는 동안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 했고, 이것은 공급선과 통신 라인을 길게 만들어서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소련의 공격력: 소련은 독일 동부에서 상당한 규모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베를린으로의 진격에 큰 규모의 군사 및 물자를 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공격력과 결정력은 독일 수도를 점령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연합군 내부의 협력과 계획: 연합군은 연합작전을 수행하기로 결정했으며 서로 협력하여 독일에 대합한 전략을 개발했습니다. 미군, 영국군, 캐나다군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소련과의 연결을 유지하며 독일을 패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과 연합군의 전략적 목표: 미국과 연합군의 전략적 목표는 독일을 패배시키는 것이었지 베를린을 가능한 한 빨리 점령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과 연합군은 독일의 복수분열과 안전한 투항을 보장하는 것에 중점을 뒀으며, 베를린을 먼저 점령하는 것이 그 목표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미군이 노르망디에서 베를린을 먼저 점령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어렵고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연합군은 서로 협력하여 독일을 패배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베를린의 점령은 소련군이 주도했습니다.
< CLOVA X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베를린을 먼저 점령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존재하지 않지만, 당시 미군이 베를린으로 진격할 의지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베를린으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과 긴 보급로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미군이 베를린을 점령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당시 미국과 소련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베를린 점령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베를린을 먼저 점령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소련과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미군이 베를린을 먼저 점령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2023.10.11 오전10시 45분
오늘 산 책에 관련 내용이 있어서 옮겨 봅니다..
『 85. 쓸모없는 협약에 집착하다 - 엘베(Elbe)에서 멈추다..
...(전략)...중요한 문제는 아이젠하워 장군이 어디까지 밀고 들어갈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패튼 장군과 다른 지휘관들에게는 불만이겠지만, 베를린에서 나와 사실상 동유럽까지 진출한 부대를 빼라는 결정이 내려왔다....(중략)..이 명령은 루즈벨트에게서 내려왔고, 미군은 사실상 동유럽을 소련에게 양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중략)..미국이 저지른 진짜 실수는 소련이 그 어떤 조항도 이행할 의도가 없다는 점이 이미 분명해진 상황에서, 협약에 대한 자국의 입장만 충실하게 이행한 것이다...(중략)..미국 대통령과 미군이 냉전을 예건할 선견지명이 있었다면 아이젠하워 장군은 계속 밀고 들어가라는 명령을 내렸을지 모르다 그의 부대는 독일의 저항세력을 경계하면서 베를린에 가장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 기동성이 상당히 뛰어난 미국의 기계화 부대는 오스트리아, 베를린, 알바니아, 불가리아, 그리고 어쩌면 체코슬로바키아에도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후략)』
- -빌 포셋 지음/권춘오 옮김, 역사를 바꾼 100가지 실수 ①, 매일경제사, 2013.
2023.11.17 오후 07시12분
솔직히 몽고메리 따위가 패튼, 롬멜이랑 비교가 되나...?
아이젠하워 1~2부를 모두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몽고메리는 이탈리아 시실리 침공당시부터 실수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 후 캉 전투에서도 명성과는 다르게 실망스런 전투를 펼쳤죠. 그런데 자존심은 엄청나게 강했습니다. "나는 전설적인 롬멜을 격파했다" 이 말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벌지전투 후에 고생고생해서 미군이 승리하니까 사실 나 때문에 아이젠하워와 미군이 이긴 것이다! 라는 말을 했다가 열받은 아이젠하워에게 짤릴 뻔합니다.
엘 알라메인의 영웅이 된 것도 공격을 하려고 물자를 집적하며 공격기회를 기다린 전임자가 공세물자를 충분히 비축했기 때문이고 공격하려고 작전짜는데 정치력으로 밀어내고 차지해서 그 물자로 이김.
그 물자로는 아무리 독일군이 정예라고 해도 이길 수 있는 양이었고 작전설명을 몽고메리이하 영국수뇌부에 보고했지만 들들 볶는데 몽고메리도 참여해서 성공 직전에 공을 가로챔
몽고메리는 고집과 정치력만 좋았죠 그보다 좋았던 영국장성들수는 충분했지만 계급이 밀렸죠
하나 더 달께요.
몽고메리 말고 다른 장군으로 영국군 최고선임이 바뀌었어야 했습니다, 엘 알라메인 이전에요.
후임 장군이 열심이 일해서 만들어놓은 무조건 이기는 조건을 보고 후임의 승리를 홈치다니 예의도 없고 염치도 없는 양아치짓이죠.
비난하는 이유는 엘 알라메인이 롬멜에게 함락되기 전부터 함락되어 재요새화되고 승승장구할 때 이 기를 꺽기위해 북아프리카 총사령관으로 임관해 달라는 요청을 여러차례 거절함.
아이젠하워가 몽고메리한테 전쟁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싫어했죠.
아이젠하워에게 욕을 한 이유가 바로 그 유명한 마켓가든 작전 때문이었습니다. 하여간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아이젠하워가 끝까지 인내했지만 막판에 사람좋은 아이젠하워도 결국 터져버리죠. 바로 벌지전투가 영국군의 공이 가장 컸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젠하워가 참고 참았던 이유는 결국 대외적 이미지때문이었습니다. 연합군 자체가 분열되어버리는 사태만은 반드시 막고 싶었던 것입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패튼장군이 돌아기신게 다시봐도 안티깝네요ㅠㅠ
아이젠하워가 패튼 암살했다는 소문도있는데 맞을까요?
@@만물상자TV전쟁의신 패튼장군 멋집니다
@@Eirk99975 사실 확률이 높지 않습니다만 그런 썰이 없지는 않습니다.
조지패튼이 교통사고가 난 것도 아이젠하워가 해임시킨 직후였거든요.
장성들의 세계는 전투보다는 정치가 우선이군요.
원래 전쟁이라는 것은 무조건 싸워 이기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미국의 2차대전 첫 전투는 일본과의 전투 아닌가요?
시간대를 알려주시면 더 명확히 알려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첫 전투는 유럽 지역 그 중에서도 지상전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진주만 기습은 지상전이라고 말하기 어려우니까요.
@@만물상자TV전쟁의신 네.. 그렇습니다.
아이젠하워 대단한 사람이지. 맥아더의 부관으로 뒤치다꺼리하고 패튼 뒤치다꺼리하고 또 연합군들 사이를 중재하고 얼마나 힘들겠나
아이젠하워를 가장 골아프게 한 사람이 빠졌네요.
그 사람의 이름은 바로 몽고메리였습니다.
패튼은 어짜피 자기의 수하니까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상관인 맥아더는 떠나면 그만이었지만
몽고메리는 연합국인 영국의 장군이었기에 아이젠하워 맘대로 다룰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그러네요 몽고메리도 어지간히 거만해서 ㅉㅉ
그나저나 패튼이나 몽고메리는 사실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고 여겨집니다.영상으로 볼때 서로를 존중해주는 모습들이 보여요.성격이 같았다...라고 밖엔..
그에 반해 아이크는 영상으로 봤을때 가게의 지배인? 니네들은 날아봤자 내 손아귀야 라는 느낌?
제가 10달 정도 상점의 점원일을 해봐서 ...확 와닿더군요.
패튼이나 몽고메리가 서로를 존중해줬다고?! ㅎㅎㅎ
역시.....괜히 향후 대통령까지 한 사람이 아니죠. 포용력 리더쉽!
몽고메리.. 엄연히 자신의 부하였는데 그 부하가 흥분하여 자신의 면전에서 욕을 하는데도 침착하시라고 다독인 사실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쓰레기 는 몽고메리야스
몽고메리 관련 shorts영상 (ruclips.net/user/shortsA-2e4Ynxd9w?feature=share) 을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에서도 몽고메리에 대한 당시 미군 병사들의 평가가 나오는 흥미로운 장면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몽고메리 그놈은 능력없어."
각자 자존심때문에 싸운것뿐입니다.그 당시 세계 각국 각군 어느 누구도 쓰레기는 없었습니다...아 !한 장군 있었죠..ㅋ 일본 육군의...어떻게 그런 인물이 별까지 달았는지?;;;
아이젠하워 군인으로선 좀 별로네요 저때부터 정치인이 되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일지도...만약 연합군이 베를린 점령했다면 세계의 양상이 달라졌고 한반도도 비극을 겪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제 말이 그말입니다. 아이젠하워는 정치감각은 확실히 대단했지만 군인으로서는 아니었다는 판단입니다.
하지만 그 말 많은 패튼, 몽고메리를 잘 이끌었던 리더십 하나는 대단했습니다. 사실 그 장점 때문에 총사령관이 된 것입니다. 그는 불과 1942년만해도 육군 준장에 불과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패튼이나 몽고메리는 머랄까?...고집이 센 어린 아이 같다고나 할까요...순수하기도 하고
어리광쟁이 라고 할까나...
술만 처먹는 지도자도 있는데.
술처먹고 음주운전전과있는 어떤새끼?
영웅은소리없이나타나서전쟁을승리로이끌고 대통령까지오르죠아이크
위대한 업적과전설으남겼죠
아.. 1부부터 보셨군요. 아이젠하워. 보통 그 사람이 대체 한게 뭐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 컨텐츠는 아이젠하워 평전 2권을 총 2부작으로 녹여낸 영상입니다.
동료들은 모두 전투부대를 지휘하는데 아이젠하워는 오랫동안 맥아더의 부관, 마셜의 부관만 했었죠.
참으로 드라마틱한 것은 자신의 부인에게 "여보 나는 영국으로 떠나게 될거야" 라고 말하자 부인이 드디어 전투부대를 맡은거 아닌가 싶어 축하인사를 하자
아니. 나는 연합군 전체를 맡게 되었다고 대답하죠. 세상에 이것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이 있을까 싶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제생각인데...루즈벨트가 아이젠하워를 뽑은 게...아마도...그것도 정치적 이유?...미국이 영국에게서 나왔지만 그것도 귀족도 아닌 평민뿐이었지만 오히려 지금은 우리 아메리카가 더 강하다.....라는 어필?...사람의 무의식이란건 참 알수 없는거죠.
미국이강하다는건 여기서도알수있다적재적소에사람을배치효율적으로국가시스템을유지하기때문이고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아이젠하워 1부에 나오는 장면인데 참으로 인상 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1942년 당시 마셜 육참총장, 그 당시에 아이젠하워는 겨우 마셜의 부관에 불과했습니다. 마셜이 아이젠하워에게 연합군 총사령관 후보 명단을 제출하라고 시켰고 아이젠하워는 마셜에게 보고서를 제출하죠. 그 때 마셜이 한말.
연합군 총사령관은 아마도 자네가 가장 적임자일지도 모르지.
이미 그때 벌써 루즈벨트는 쟁쟁한 장군들을 제치고 아이젠하워를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낙점했던 것이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루즈벨트도 명문가의 사람은 아...니었죠?
정치계에서 명문가라면...처칠이나 케네디?또 누구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