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진실] 31. 다시 찾은 발해(신라) 영토 - (1)발해 5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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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4 сен 2024
  • 조선후기 학자들이 축소시키고 근대 일본학자들이 동조한 발해국의 왜곡된 영역을 되찾는 영상입니다. 발해가 차지한 고구려, 옥저, 읍루, 예맥, 요동, 신라 정천군이 어디에 있었는 지 함께 살펴봅니다. 문의 : 010-8663-8758, yikihoon@daum.net
    키워드 : 고조선, 명도전, 발해, 대진국, 신라, 수혈, 압록강, 압록수, 요동, 옥저, 읍루, 예맥, 정천군

Комментарии • 241

  • @august7248
    @august7248 Год назад +72

    2번 3번을 보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발해영역에 관한 학문적 주장중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이고 적극적으로 지지합니다. 이로써 부여의 위치, 고구려의 위치, 그라고 동예, 옥저의 위치눈 물론이고 신라의 영역에 대한 이해도 얻었습니다. 열심히 연구하시는 이기훈 샘께 후원도 하고 싶습니다.

    • @yikihoon
      @yikihoon  Год назад +5

      감사합니다

    • @아이-p4g
      @아이-p4g Год назад

      @@yikihoon 라오스 하오

    • @박춘수-o9s
      @박춘수-o9s Год назад +5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 놈들이 선생 으로 있으니 역사가 이모양 이꼴이다

    • @김두훈-d1y
      @김두훈-d1y Год назад +1

      ​@@박춘수-o9s 아는데 중국이 한국역사쪽에 돈 엄청먹임 돈땜에 알면서도 이런사실 입닫는거뿐

    • @남박병인-l2z
      @남박병인-l2z Год назад

      **** 일제 마지막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우리나라를 떠나면서 한 말 *****
      ~~~ "조선은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은 더 걸릴 것이다. 조선의 역사를 섞어서 재 창조, 조작해 놨거든
      ....우리 일본은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 사학자를 심어놨다.
      조선인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서로 이간질하도록 식민교육,사학자를 심어 놓은 그 결과
      일제식민사학 추종자들이
      교육부, 강단사학계, 국사편찬위원회, 문화재청,등을 완전히 장악하여
      100년 가까이 일제때 일본식민사학자 쓰다소키치,이케우치 히로시,이마니시 류,가루베 지온,등이 두죽박죽 섞어버린
      거짓역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대지명을 한반도에서 못 찾으면 모른다고 하거나 아무데나 가져다 붙이는 겁니다.
      잃어버린 역사를 하나로 통일 정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구과정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잃어버린 역사도 하나로 통일될 수 있습니다.

      내 눈으로 보지 못한 수천년 전의 역사는 접근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연구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원인은 고대지명의 위치와 현 지명이 동일한가를 확정짓지 않은 상태에서 나만의 선입견을 갖고 연구를 하기 때문입니다.
      *** 우선 고대지명의 현 위치를 규명하고 역사적 기록이 규명된 지명과 합치되는가를 연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합니다.
      시대 별 중국과 경계는?
      고조선, 한사군,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왜의 강역과 위치는?
      고려. 발해의 강역과 위치는?
      조선의 북방 경계는?
      ***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고대지명의 현 위치와 강역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가 우선되는 게 바른 접근 방법으로 봅니다.
      고대지명의 위치조차도 명쾌하게 확정짓지 않은 상태에서
      선입견을 갖고 연구 한 결과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기 마련입니다.
      연구결과가 나와 좀 다르다 해서 배타적이 될 것이 아니라 그 동안의 노고와 연구실적은 서로 인정하시고
      고대지명의 현 위치. 강역 규명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처음부터 더 깊이, 함께 연구하시는 게 바른 접근 방법이 될 겁니다.
      이를 바탕으로 삼국사기 삼국유사 25사 등을 시대별로 모두 대조 연구 해서 하나의 통일된 교과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 그 기본틀 안에서 한 목소리로 방송하고 강의하면 ****전 국민에게 쉽게 전해질 수 있습니다.
      그후에야 식민사관이 폐기되고 우리의 역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서로 토론을 해서 내가 부족했던 점이나 오류는 받아들이는
      **** 대인의 풍모****가 필요합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만나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기는커녕 아집과 편견으로
      유튜브 한 구석에서만 서로를 매도하고, 물고 물어뜯는 영원한 개가 될 것입니다.

  • @GoldRichGold
    @GoldRichGold Год назад +45

    왜곡에 앞장섰던 원로들이 차차 송장이 되어 썩거나 불태워지는 시대.
    새로운 역사의 정리가 필요한 시절에 이런 진실한 강의는 천금보다 귀중합니다.
    정말 가치있는 소중한 노력에 마음깊이 고맙고 응원합니다.

  • @pae4451
    @pae4451 Год назад +68

    신라영토는 한반도에 한정되어 지는데 아쉽네여.. 중국 당나라시절에도 중국에 신라 영토가 있었죠.. 장보고가 세운 청해진이 산동반도에 있었고요... 양쯔강유역 중국동남부가 신라 영토 였죠.

    • @KO-JERRY
      @KO-JERRY Год назад +17

      대진과 신라가 백제 땅을 나눠 가졋다고 하니 한반도에만 백제가 없었겟죠. 중원에 백제,신라가 있었다고 봅니다.

    • @떡먹은고양이
      @떡먹은고양이 Год назад

      맞습니다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동남부를 백제가 차지하고 있었죠 백제 멸망 후 장보고가 거점으로 삼은 청해진도 완도가 아니라 상해 앞에 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엉터리죠 고구리 백제가 강성할 때는 백만대군에 육박하고 유,연,제,노를 침탈하고 서쪽으로 북평,태원까지 진출하였습니다

    • @jasonju6846
      @jasonju6846 Год назад +7

      @pae4451
      발해는 698~926, 신라는 bc57~935 천문기록에서 신라가 양자강 일대에서 기록되다가 한반도에 기록된 시기를 787년을 기점으로 본다면 발해 시대에는 신라가 한반도에 있는게 맞다고 봅니다만, 즉 신라가 처음엔 양자강 일대에 있었으나, 발해가 생성된 시기에는 한반도로 건너왔다고 봄.

    • @wisewealth9008
      @wisewealth9008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장보고 청해진은 산동 반도에 있는겁니다. 황하를 헤엄쳐 건너 당나라로 가 벼슬을 했죠...

    • @송현직-k9g
      @송현직-k9g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장보고가 만든 법화원이 산둥반도에 있죠.@@wisewealth9008

  • @들풀-i5t
    @들풀-i5t Год назад +39

    정말 귀한 영상입니다. 고증이 아주 충실해서 책으로도 남겨야 할 내용 같습니다.

  • @seon-gyoo238
    @seon-gyoo238 Год назад +34

    선생님 잘보고 갑니다. 문헌을 많이 연구하셨내요. 선생님의 학설이 우리 학계에 채택되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 주세요

  • @kevin60to30
    @kevin60to30 Год назад +19

    연구가 점점 깊어집니다 박수

  • @손종협
    @손종협 Год назад +21

    이기훈 선생님
    오늘도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영민-w9n3w
    @이영민-w9n3w Год назад +12

    베이징 주변에 .. 고려구 , 발해 , 고려 지명하고 성들 과 지명 이 몰려 있다고 하죠 !! 백제 찾으려면 .. 제나라 주변 지역 있다 .. 말도 있더군요..

    • @떡먹은고양이
      @떡먹은고양이 Год назад +2

      북경에 자금성도 19세기 중반까지는 고구리의 축성방식인 치가 있었는데 철거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신라의 흔적은 안휘성이나 절강성에 지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 @반두리
    @반두리 Год назад +20

    민족혼을 부할시키려는 이기훈선생님! 마음
    모아 응원합니다.건강하십시요.고맙습니다

  • @손강세
    @손강세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최고의 교수님

  • @lookinside4071
    @lookinside4071 Год назад +15

    소중한 해석 감사드립니다.

  • @skylark736
    @skylark736 Год назад +10

    진정한 학자이십니다. 감사합니다. 북한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한국사 지도를 보면 우리의 강역은 한국에서 말하는 고조선 고구려의 영토보다 훨씬 큰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 @이규룡-f5m
    @이규룡-f5m Год назад +34

    정말로 새로운 사실들입니다,,,,듣고 보니 맞습니다...
    고문헌을 기준으로 적확하게 풀었습니다...
    이 이상의 실증사학이 있을까요?
    북경인근에 숱하게 많은 발해와 고(구)려 관련 지명과 유적지들.....
    고려 중기 이후 부터 지배층들이 철저하게 속여 온 역사를 바로 찾아야 할때입니다...
    응원합니다..

    • @yikihoon
      @yikihoon  Год назад +6

      감사합니다

    • @Fighting1Wanderors1
      @Fighting1Wanderors1 Год назад +2

      김부식이 제일 문제죠.
      신라 중심 사고관이라 발해는 관심 밖이였으니.

  • @ymkk1747
    @ymkk1747 Год назад +4

    아주 잘 분석되었네요
    감사힙니다
    다만 진시황제가 왔던 갈석산은
    명나라 축조한 만리장성 끝자락이 아니라 압록수(현재 호타하)아래의 갈석산 같은데 살펴보아 주세요

  • @김백준-b7y
    @김백준-b7y Год назад +12

    격하게 동의합니다.
    제 개인적인 연구결과와 거의 90% 이상 상통합니다.
    (1) 먼저 졸본부여 지역을 비정하면,
    상나라 시절 상나라에 협조하던 부족인 부여족은 산
    동성 임기 일대에 정착하였으며, 주나라 무왕의 동정
    으로 인한 전쟁의 피해를 피하여 한 지파는 하남성 내
    향현으로 또 다른 지파는 동북으로 옮겨 간 것으로 연
    구되었으바, 이 동북쪽으로 이주하여 집단적으로 거
    주하던 지역을 비정하면 하북성 계주로 추정되고 있
    습니다. 현재의 하북성 계주는 현 북경시 동쪽변 지역
    입니다만,
    개인적 사견으로 부여족이 이주후 거처하던 지역은
    발해(호수)를 건넌 석가장시 일대에서 현 북경시 동변
    의 현 계주지역까지 넓게 산재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바로 이 지역이 장래 부여족들의 본향이자 근본지역
    이 되는 졸본부여지역 입니다.
    그 이유는 부여족이 하북성 일대에서 오랜 세월동안
    머물면서, 인구증가 등으로 또 다시 이주하게 되는 데
    석가장 지역에서 태행산맥을 넘어 고대의 이동통로
    였던 태행산맥 골짜기를 따라 내몽고지역으로 이동하
    면서 부여족의 거주지역은 매우 넓게 분포하게 됩니다.
    부여족은 타 종족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그 일대의
    인구 규모에 기반하여, 비로소 원시적 국가의 형태
    를 갖추고 점차 발전된 것으로 사료됩니다(부여국 창
    업은 내몽골 및 적봉지역에 기반, 현재 국사교과서의
    부여국 위치는 실상 동부여로 사료됨).
    (2) 하남성 내향현으로 이동한 지파는 장래 신라의
    박혁거세가 나오게 됨. 박혁거세의 출신이 부여족
    공주의 아들로 보는 근거가 됨.
    (3) 아울러 주몽(추모)이 부여로부터 도망하여 거처
    하면서 여러 과정을 겪으면서 홀승골에서 고구려를
    창업하게 되는 바, 그 홀승골은 현 북경시 인근의
    산방산 계곡으로 사료됨.
    (4) 따라서 이러한 연유를 고려할 시, 고구려 패망 이
    후 고구려의 승계국임을 자처하는 발해국(진국)의
    강역도 제시와 세부 지도 내용은 그 신뢰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사료는 바 선생님의 주장에 적극 동의
    합니다..

  • @economechanism_kr
    @economechanism_kr Год назад +8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어색하기 그지 없게 느껴오던 제도권 역사 지도가 왜 그렇게 느껴졌었는지 확인해주셨습니다. 통일만이 제대로된 역사의 근간을 세우는 시작이 될 것임에 확신을 느끼고 갑니다.

  • @simje429
    @simje429 Год назад +13

    잘 시청하고 있습니다. 열하성과 관련된 옛지도를 보냈으니 참고하십시요. 또한 신강성 서쪽에 불열이 있음을 신당서, 옥해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발해 동서가 8천리라는 기록도 있음)

    • @yikihoon
      @yikihoon  Год назад +3

      감사합니다 교수님🙏

  • @journeylee
    @journeylee Год назад +6

    중국에 살고있는 한국사람으로서 많은걸 선생님으로부터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kohjuwon2549
    @kohjuwon2549 Год назад +11

    ㅡㅡㅡ 유튜버 "책보고"님 영상 보니까 천년간의 일식 기록 기준으로 신라는 대륙의 동쪽 양자강 황하쪽에 있었답니다. 물론 한반도 포함. 대륙에 신라 지명과 유적도 많고요. 그러면 남북 3천리 기록이 들어맞네요. 물론 고구려 백제도 그 쪽에 있었고요. 아라비아의 무역 주요대상국이었는데, 아랍 기록과 지도에도 신라가 중국 대륙에 있는 걸로 나온답니다.

    • @Slt-zb9nq
      @Slt-zb9nq Год назад +3

      저도 책보고님 모든 영상 정주행하고있습니다.
      이제는 숨길 수 없는 진실들이 다 들어나네요. 국사 교과서 바뀔 날도 머지 않았습니다.😊

    • @Dr_Sunshine91
      @Dr_Sunshine91 Год назад

      통일 신라의 영토가 북으로 봉래산(산동반도 북쪽) 남으로 방호산(취안저우)에 막혀 있다고 성덕왕때 기록이 있습니다.
      태백일사에도 21대 문자명왕때 취안저우까지 신라 백성들을 이주해 살게 했다는 기록들.
      용암 화산, 수많은 지진 기록, 원숭이 떼가 울고 메뚜기떼가 곡식을 갉아먹은 기록은 한반도로 설명이 안 되죠.

  • @쥬얼리-x4y
    @쥬얼리-x4y Год назад +5

    훌륭한 연구와 그에 못지않은 훌륭한 강의였습니다 !
    이기훈 선생께 감사드립니다 !!!!

  • @김상명-x4u
    @김상명-x4u Год назад +4

    아주좋아ㅡㅡ굿
    우리영토 꼭찿아야한다

  • @ILovekorea365
    @ILovekorea365 Год назад +3

    또 보구 있어요~
    영상 감사합니다.
    사방동 동굴은 진짜, 깜짝 놀랄만 합니다.

  • @김성철-h4k
    @김성철-h4k Год назад +12

    최근에 발해 왕성으로 추정되는 성이 훈춘 근처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당시 규모가 당나라의 장안보다 컸다고 하니 당나라의 지방정권은 말이 안되고, 당시에 연해주 땅에 있을 수 있는 국가는 발해 밖에 없기 때문에 고구려계 발해 유물을 고려하더라도 발해가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결국 여기가 크게 잡아 동경이거나 중경이어야 할 것 같은데요?

    • @yikihoon
      @yikihoon  Год назад +10

      신당서에 신라 남북거리 3천리를 학계에서 인정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신라 영토를 당척 3천리로 환산하면 훈춘보다 북쪽이어야합니다 여진족 청나라 왕실 정사 흠정만주원류고에 왜 여진족이 신라의 백성이었다고 스스로 기록했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 @김성철-h4k
      @김성철-h4k Год назад

      @@yikihoon blog.naver.com/bulgirya/222970387348 아래 블로그님의 주장에 의하면 니하가 신라-발해의 국경이라고 하는데 니하는 현재 하얼빈 근처로 초기의 국경이다가 나중에 발해의 땅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래야 사할린, 연해주, 훈춘에서 발굴된 유적들이 설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신라의 경주에서 올라가면 지형이 하도 험해서 한반도가 남북 3천리가 될 수도 있겠죠.

    • @마라도나-d6b
      @마라도나-d6b Год назад +10

      @@yikihoon 선생님의 말씀에동의합니다 !!
      신라의 국경은 만주에 걸쳐있었습니다
      여진이 훗날에 왜 신라를 자신들의 역사나 전신이라하는지도 충분히 공감이됩니다
      어떻게 통일신라나 고려국경선 모두 맞지도않는
      역사를 가르쳐왔는지 이나라 역사는 아직도
      일제에 날조되고 왜곡된거짓역사 투성이입니다
      선생님같은분들이 더욱분발해주셔야겠습니다

  • @jaypark66773
    @jaypark66773 Год назад +15

    이기훈씨 제대로된 연구하셨네요

  • @자두뽕
    @자두뽕 Год назад +2

    산둥반도까지도 발해영토입니다. 그거또한 올바로 명시해줬으면 좋겠습니다.

  • @danielhhlee
    @danielhhlee Год назад +11

    선생님 신라는 한반도에만 있던게 아니에요
    현 중국 쪽에 본토가 있었고 하반도 신라는 동경(현 경주)을 위시한 동부 영역으로 보여집니다
    대륙에 옛 신라 땅을 보면 증거와 자료들이 우수수 나옵니다

    • @떡먹은고양이
      @떡먹은고양이 Год назад

      맞습니다 일식기록도 그렇고 동남해안 부근 신라 동남중부 해안 백제 그리고 지금의 북경과 연해주까지 동서로 연결되고 북으로는 내몽고와 흑룡강성 이북을 아우르는 타원형의 거대한 영토가 고구리의 땅이었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또는 고서적에 나오는 지명을 한반도에서 찿으려하는 반도사관 식민사관에 찌든 강단사학자들 다 제명하고 진짜 한국사를 다시 배워야 합니다

  • @chunheungpark9013
    @chunheungpark9013 Год назад +9

    고구려의 재상 을파소는 압록곡 출신입니다.
    중국의 현재지도에도 나와있는 얄루고 (암록곡) 은 북경지방에 있읍니다.

  • @RuneSaint
    @RuneSaint Год назад +4

    책보고님 지도와 영상도 확인하시면 더 좋으실것 같네요

  • @고향생각-j6t
    @고향생각-j6t Год назад +13

    정확한 사실을기반으로 역사를 가르쳐야 어린학생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가집니다.수고가 많으시네요.화이팅입니다.

  • @SG_327
    @SG_327 Год назад +3

    이기훈 선생님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유튜버 책보고님이 말씀하시는게 일리가 있는 것인지.. 어디부터가 맞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 @togetherbrown4969
    @togetherbrown4969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선생님 오랜만에 와보니 멋지십니다.역사를 제대로 잘 가르치십니다.발해만앞에는 상직적이라면 발해의 땅이 있습니다.항상 상식선 과학적으로 풀어야 하지요.

  • @쥬얼리-x4y
    @쥬얼리-x4y Год назад +1

    훌륭하십니다 !!!
    진심 경의를 표합니다 ! ^^*

  • @금빛무한햇살
    @금빛무한햇살 Год назад +5

    만주원류고에는 계림이 신라땅!

  • @KoreaChurchWorship
    @KoreaChurchWorship Год назад +6

    발해 서경도 고려 서경도 현 북경이었군요. 어쩐지 북경 가면 남의 동네 같지 않더라니...

  • @하진-t3b
    @하진-t3b 3 месяца назад +1

    감사합니다

  • @park5294
    @park5294 Год назад +1

    안지 몇일 안됏지만
    항상 잘 보구있습니다.
    동이한국사도 주문해서 방금 받았네요.
    잘 읽겠습니다.

  • @taekyeonglee4599
    @taekyeonglee4599 Год назад +2

    신라 3천리를 한반도로 국한하니 아무리 꼬아도 3천리가 안나오네요
    책보고님 유튜브를 참고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일식기록도 보시면 좋을거 같고요

  • @하늘노을-s7v
    @하늘노을-s7v Год назад +16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려는 이런 분들이 넘쳐나야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 지켜나갈수 있을겁니다..

  • @김성태-i6b6j
    @김성태-i6b6j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선생님 같은 분이 계시다는것은 우리 민족에게 희망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 @내안의마음
    @내안의마음 Год назад +4

    우리역사학자 라고하는 사람들은 한세기동안 숨기는것인지 역사학자라는 타이틀을 모두 반납해야 하지 않나?😅

  • @박상현-r6k
    @박상현-r6k Год назад +4

    책보고람 유투버 아시나요? 유투브채널보면서 비정지가 겹치는건 두분밖에 없는듯하네요 힘을 합쳐보시는건 어떨까요?

  • @SCLee-hc3wq
    @SCLee-hc3wq Год назад +1

    1천5백년전의 대륙지형은 지금과다릅니다. 이런 부분도 검토해봐야할듯

  • @강신보-c6y
    @강신보-c6y Год назад +4

    이젠 말을 할때죠
    신라의 위치가 틀리다 !

  • @jeanpark8638
    @jeanpark8638 Год назад +1

    감사합니다 이선생님

  • @ernieelseungsu
    @ernieelseungsu Год назад +3

    대진과 신라가 백제의 영토를 나눠가졌다는 기록에 의하면 영상에 나온 신라의 영토는 한반도에 국한되기 때문에 기록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삼국의 영토에 대해서도 더 많이 공부하시고 영상 제작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kygo1781
    @kygo1781 Год назад +10

    예맥의 선조들이 기뻐할 훌륭한 학자십니다
    좋은 시절이 와서 이 연구들로 후손들이 역사를 제대로 배우길 바랍니다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Год назад +10

    중국 고대 문헌에 대해 상당히 고찰이 잘된 설명입니다(♥재야 사학계에서♥ 고구려/발해 영토 비정의 이정표가 될 같습니다)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Год назад +1

      하지만 개마대산과 단단대령의 위치 비정이 옥의 티로 보입니다(정사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 내용의 고찰이 필요해 보입니다)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Год назад

      단단대령을 먼저 비정하고, 개마대산을 비정해야 합니다 [삼국지 동옥저] 옥저성으로 현도군을 삼았고....현을 고구려현 서북쪽으로 옮기니. .... 옥저는 낙랑군에 속하게 되니 ♥단단대령 동쪽(동옥저)에 있는 지역을 나누어 낙랑군 동부도위를 설치했다 ---> ♥따라서 지도에서 개마대산으로 비정한 노노아호 산맥이 단단대령입니다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Год назад +1

      한무제가 창해군을 설치한 예(동예=동이족의 예)의 위치가 하북성 창주시이고 예(동예) 북서쪽에 고구려, 북동쪽에 동옥저(옥저) 가 있습니다
      고구려와 동옥저 사이에 개마대산이 있으니 ♥개마대산은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시 갈석산입니다(갑주를 씌운 말의 형태이니 개마대산입니다)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Год назад

      하북성 진황도시 갈석산이 갈석산으로 불리운 것은 고구려가 멸망시킨 후에 당나라 학자들입니다
      진황도시 갈석산 지역에 갈사부여가 있었고 갈사부여 지역의 돌로 된 산이니 갈석산(葛石山)이었는데 하북성 갈석산이 수나라 당나라 시기에 사라졌으니 진황도시에 있는 갈사부여 지역의 돌로 된 산인 갈석산(葛石山)을 갈석산(碣石山)으로 알고 북송학자들도 갈석산(碣石山)으로 기록하면서 지금까지 엄청난 혼란이 생기된 원인이 되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Год назад +2

      마지막으로 요동 위치 비정 내용에서 산서성 요주 위치가 요동성이라고 하였는데 ...
      [신당서 동이열전]에 따르면 당태종이 요동성을 합락시키고 요주를 설치했고 당태종이 퇴각하면서 요주 백성들도 이주시켰습니다 따라서 ♥산서성의 요주는♥ 요동성 백성들이 새로 이주한 지역이지 고구려 요동성의 위치가 될 수 없습니다

  • @mjk4660
    @mjk466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훌륭하십니다. 고증을 통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강역표기가 교과서에 제대로 반영되기를 학수고대 합니다. 식민사학은 빨리 퇴출되어야 합니다.

  • @ack3145
    @ack3145 Год назад +3

    당시 고대 중국인들이 사방 몇천리다 이런걸 어떻게 계산했을까요? 톱니 메커니즘을 사용한 기리고차(記里鼓車)같은 걸 이용했을까요?

    • @깐돌이-o7k
      @깐돌이-o7k Год назад +2

      강하고 산가지고 아는거죠 성하고

  • @paulcho9053
    @paulcho9053 Год назад

    귀한 정보 감사합니다 ^^

  • @손강세
    @손강세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여기 한국 최고 교수님 계시네요

  • @가르시아-e6y
    @가르시아-e6y Год назад +3

    발해 몇차례 부흥 200년 하는거 대단했더만요 강인한 정신력 고구리 강역 영토 되찼네 ㅎㅎ

  • @홍영상-c9c
    @홍영상-c9c Год назад +1

    역사를 모두 지우고 새로 써야합니다.
    좋은 강의 잘 들었습니다.

  • @kyunghwason3811
    @kyunghwason3811 Год назад

    님의 논리 상당한 믿음이 가네요 항상 응원합니다

  • @Allen-di7ze
    @Allen-di7ze Год назад +2

    반도사관에서 늘 떠들어대면서 위치도 특정못하는 국동대혈 아마 그 동굴일 가능성이 매우 높네요 우리나라 썩은 사학자들보다 백배는 훌륭하십니다. 언제쯤 우리는 진실된 역사와 마주할수 있을지..

  • @user-su5ri2bt2b
    @user-su5ri2bt2b 7 месяцев назад

    공감하면서 계속 소중한 우리가 잘못 알았던 지식을 알려주시기를 부탁합니다

  • @정신일도-n4e
    @정신일도-n4e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예전 치수에서는 1리를 대략 5km로 잡았었다는 얘기도 들었었는데.

  • @영동김-v6n
    @영동김-v6n Год назад

    우선 우리 고대사에 대한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한편 하북지방 고구려 영역 아래 산동성 영역에 백제와 신라가 있었고, 백제는 북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요서 진평 지역을 장악했으며, 신라는 삼국통일후 발해와 하북지방 압록강 또는 니하를 경계로 하였다는 주장이 있ㄴ ㄴ 것으로 알고 있습미다.
    선생님께서는 해당 지역에 당이라고 기재하고 계신데 위 주장을 부정하시는지요?
    그렇다면 다음에 그에 관한 동영상을 올려주실 수 있을까요?
    아무튼 감사드립니다!!!

  • @형님-y1h
    @형님-y1h Год назад +1

    보하이만 이라하죠? 아직도 ...발해만 중국 산둥반도와 요동반도 사이 그것만봐도 발해의 강역이 짐작됩니다

  • @PUP1002
    @PUP1002 Год назад +3

    신라의 영토도 다시 봐야할듯 합니다. 경주 토함산 등 대부분이 양자강유역입니다. 한번 더 봐주세요

  • @jckim3383
    @jckim3383 Год назад +2

    통일 신라의 영역이..대륙 동부지역까지 있었다고..봐야지요...아쉬운부분이 있지만 영상 감사함다..~

  • @오동진-i1l
    @오동진-i1l Год назад +2

    강의 중간쯤에서 한나라 낙랑군 위치를 언급하셨는데 선생님의 저서 에는 낙랑군이 평양이라고 주장했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 @yikihoon
      @yikihoon  Год назад +8

      네 기존학계의 관점으로 판단했는데 원인은 중국문헌의 기록을 비판없이 수용해서 그랬습니다 현 학계도 그런점에서 비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후 중국사서의 자국중심 기록의 문제점에 대해 이해하고 관점을 수정했습니다 재판 시에는 교정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ruclips.net/video/yVQuLkWkTwM/видео.html

    • @홍영상-c9c
      @홍영상-c9c Год назад

      멋져요

  • @msk2808
    @msk2808 Год назад +1

    옛 사람들이 큰 호수를 바다로 불렀던 것은 동서양이 같았던듯 합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큰 물에 해당하는 바다와 호수를 구분하는게 굳이 필요 없기도 하거니와 바다와 구분 자체가명확하지 않았을거라고 생각.
    독일의 남부 지역 내륙에 있는 유명한 관광지인 Konlgs See가 있는데, 왕의 바다(호수)라는 뜻.
    여기서도 호수를 바다라는 뜻의 '제 See' 라고 부름.

  • @마라도나-d6b
    @마라도나-d6b Месяц назад +1

    선생님 궁금한게있는데 발해가 문헌기록상 동서 6천리있었다면 고고학적으로 발해의 유물이나 유적이 하북성이나 내몽골쪽에서 발견이된 사례들이있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혹시 있다면 어떤것들이 있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라마-p7j
    @라마-p7j 12 дней назад

    서경압록부는 중경현덕부 서쪽 200리라는 기록이 있지요. 80~90km 정도입니다. 조양시 또는 금주시를 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 @hankugminkan9047
    @hankugminkan9047 Год назад +3

    맞습니다
    이병도제자들인사학자들믿지도않는다왜냐고맨날하는소리가증거가잆다는소릴하지

  • @fun-my1995
    @fun-my1995 Месяц назад

    구독했습니다.

  • @AidenDKim
    @AidenDKim Год назад +3

    발해라.....그들은 자기 자신을 고리라고 했다는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 @ernieelseungsu
      @ernieelseungsu Год назад

      발해 무왕이 일본에 보내는 국서에 옛 고려의 영토를 회복하였고 부여의 풍습을 갖고있다 하였고
      속일본기에 발해는 옛 고려국이라 기록되어있습니다
      즉 발해는 부여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을 증명합니다

    • @SCLee-hc3wq
      @SCLee-hc3wq Год назад

      나라이름 고리입니다. 장수왕은 고구리를 고리로 바꾸죠

    • @ernieelseungsu
      @ernieelseungsu Год назад

      @@SCLee-hc3wq 네~ 발음이 고구리, 고리가 맞습니다 고구려, 고려가 입과 손에 붙어 그렇게 써지네요~ 같은뜻으로 사용하였습니다

  • @휴림-f3n
    @휴림-f3n Год назад

    한 가지 여쭈어 보겠습니다.... (전공은 기계설계 엔지니어)
    혹시, 옛날의 거리 개념은 사람이 걷는 길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지 궁금합니다.
    큰 산이나 큰 강을 돌아가고 조금은 구불구불 하더라도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을 중심으로 하는 건지요?

  • @모루한54
    @모루한54 3 месяца назад

    압록강과 평양 때문에 중세/근세의 학자들도 헷갈렸던 같습니다. 평양은 여러군데 있었다는 게 체계적으로 연구된 것 같은데, 압록수 또는 압록강에 대해서는 미흡하다고 봅니다. 시대별로 어떠했는지 연구발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그걸 기준으로 다른 연구가 펼쳐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고도리햇반
    @고도리햇반 Год назад +1

    고대사는 너무 신비롭습니다.
    두근두근 하네요

  • @박상율-y8y
    @박상율-y8y Год назад +1

    인정합니다..
    이제 일본 핑계대지말고 어떻하면 우리 고토를 찾을수 있을까요?...

  • @이기용-p6l
    @이기용-p6l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발해 영토는 산동반도 지역까지 포함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발해라고 불릴수 있는것이지요.
    또. 거란이 발해를 접수한후의 거란 영토가 이해됩니다.

  • @choihyun662
    @choihyun662 Год назад

    응원합니다

  • @Redbackkk2A7K2AS21
    @Redbackkk2A7K2AS21 Год назад

    땡큐 ^^

  • @최해진-u7f
    @최해진-u7f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지금도 북경 앞바다 공식명칭이 발해만 이다.
    다시말해 발해가 북경지역을 지배하지 않았더라면 있을수 없는 일이다.

  • @janggrae1
    @janggrae1 Год назад +1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도 매우 왜곡되어 있습니다.

  • @bangbang-if3ey
    @bangbang-if3ey 2 месяца назад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항상 드는 의문이 "왜 요동반도 끝에도 미치지 못한 국가를 발해라고 부를까?" 였습니다. 다른 나라가 발해라고 불렀다면 당연히 발해만을 차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 산동에 사는 사람을 북경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죠. 교과서 쓰는 사람은 그것이 이상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 @singsket2778
    @singsket2778 Год назад +4

    점점 왜곡우리나라 역사를 타파하고 진실된역사를 발견하고 연구하는 분들이많아지는거같아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은거같네요

  • @splitk6160
    @splitk6160 Год назад +2

    발해왕은 일본왕에 문서를 보냈을때 자칭 고려왕이라고 했음.
    발해는 고려라고 보면됨.

  • @이명수-h1l
    @이명수-h1l Год назад

    하얼빈 목단강 동경성 에 발해 유적지도있어요

  • @타미드LOG
    @타미드LOG Год назад

    그렇다면 현재 발해 상경용천부로 알려진 곳에 성곽과 왕궁터는 무엇일까요? 오랜 수도였던 상경성 유지가 나와야만 확실하게 인정받을 수 있을듯 합니다.

  • @hanhan4980
    @hanhan4980 2 месяца назад

    멎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신라를 직선거리로 하면 안되나요

  • @friendsmr3177
    @friendsmr3177 Год назад

    흠 한가지 우려되는부분은 고대의 방위를 현재와 같은 기준으로 보고 판단하는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동서남북의 기준은 예나지금이나 같긴하지만(정동/정서/정남/정북)방향은 고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변화하면 현재의 관점으로 자리를 잡은것이죠..예컨대 과거에는 개성~한성간을 동서혹은서동 간으로 본다던가.. 한양과 부산을 동서혹은 서동 간으로 본다던가..임진왜란당시 부산진과대마도를 정동 혹은 정서 방향으로 본다던가..

  • @user-kkxi3qh1ut4e
    @user-kkxi3qh1ut4e Год назад +2

    제대로 우리 역사를 연구해서 우리 사관에 줄기를 세우고 서술해야 한다

  • @Jirokeum
    @Jirokeum Год назад

    고대사 맛집 👍

  • @s.yjoung5190
    @s.yjoung5190 Год назад +2

    이바원이예종때까지 모든역사서를강압적으로끌어모아불태우는만행을저질러서 후대우리학자들이 볼수가없게만들었다

  • @uhmmaa3
    @uhmmaa3 Год назад +3

    잘봤습니다.
    그래도 많이 발전하네요.
    ruclips.net/video/g0hB5JS2xV4/видео.html

  • @Yeulyeul2
    @Yeulyeul2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압록강 = 암노강 (아예강) 청오리강 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밀강(현 두망강이 아니라면 어딜까요?)

  • @s.yjoung5190
    @s.yjoung5190 Год назад +1

    발해만이란이름이 공연히지어졌을가

  • @yoonjk81
    @yoonjk81 Год назад +2

    베이징에서는 고구려유물과 유적이 많이 발견되는데 비해 그 당시 중국유물,유적은 하나도 나오지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베이징시민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그들이 밖에다 내놓고 말하지는 않기 떄문에
    한국에는 이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이것은 바꿔 말하면 당시 북경이 고구려영토였다는 뺴박 증거라는 겁니다.
    북경인근에서 나도는 고대,유물 유적은 사실은 모조리 고조선,고구려유물,유적이라는 사실.중국꺼는 하나도 없고.
    그래서 모택동이 북방민족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문화혁명을 했던거고 공자도 북방민족이라고 공자묘까지 폭파한게 문화혁명.
    그래서 북방민족의 중국통치역사가 수치스러워 모택동은 역사과목을 학교에서 없애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화혁명후 반세기가 지나 다시 역사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옛날걸 그대로 가르칠 수는 없고 역사를 새로 만들었습니다.그 작업이 동북공정,서남공정,서북공정 등.
    사실과는 거리가 먼 새롭게 날조된 역사입니다.
    그런데 그런 거짓말을 아이들에게 가르쳐봐야 아무 도움 안됩니다.거짓말은 아무리 공부해봐야 거짓말일 뿐,진리와는 거리가 멀기떄문에.
    중국도 독일이나 프랑스 등 선진국처럼 역사를 좋은 사건이건 나쁜 사건이건 그대로 가르쳐야 미래에 발전이 가능합니다.
    거짓말은 아무리 공부해봐야 발전으로 연결될 수가 없기ㅣ떄문에.

  • @user-fb2me3th6z
    @user-fb2me3th6z Год назад

    광개토대왕비의 현위치를 참고하면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ㅜ

    • @yikihoon
      @yikihoon  Год назад +1

      고구려는 선왕의 묘가 두 번이나 파헤쳐지는 수모를 당합니다.
      296년에 서천왕릉은 모용외(慕容廆)가 쳐들어왔을 때 도굴당했고, 343년 모용외의 아들 모용황(慕容晃)은 고국원왕의 아버지(미천왕)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까지 가져갑니다. 이에 고국원왕은 아버지 미천왕의 시신과 끌려간 어머니를 되찾기 위해 1,000여 가지의 보물을 바치면서 '스스로를 신하'라고 칭하며 수모를 당합니다.
      고구려는 사후세계에 대한 신념이 강하여 장례를 성대히 하기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현세보다 내세를 중시했던 고구려에게 무덤이 파헤쳐지는 일은 현대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재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용황이 미천왕 시신을 가져갔을 때 '신하'로 자처하는 굴욕을 당한 뒤 무덤을 최대한 고구려 서쪽 영토로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그곳이 바로 '고구려 영역에 속했던' 단단대령(千山산맥) 동쪽 남옥저, 즉 현 압록강 근처 집안 지역입니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강 상류까지 가야 비로소 도착하는 외진 곳에 선왕의 묘를 둔 것이지요.
      342년 미천왕 시체 도굴 사건이 있은 지 불과 30년 뒤인 374년 태어난 광개토대왕이 스스로의 묘를 자신들의 원수이자 강성한 모용선비(前燕, 태항산맥 중부, 현 化順으로 추정) 인근, 즉, 고구려 중심지인 현 북경~승덕 주변에 조성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역사를 통해 두 번이나 커다란 재난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집안 근처에서 발견된 관구검기공비는 개인적으로 진품이라고 생각합니다. 245년 동천왕이 도망간 옥저가 북옥저(매구루, 매구, 치구루)였으므로, 압록강 유역(남옥저)까지 관구검 쫓아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압록강 집안 인근이 고구려 수도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관구검은 동천왕을 쫓아 고구려 땅을 넘어 숙신을 지나 옥저까지 이르러 기공비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곳(압록강 유역, 집안)은 고구려 땅이 아닌 옥저 땅입니다. 관구검기공비가 세워진 압록강 유역은 고구려 본토가 아닌 고구려에 속한 옥저(북옥저)라고 보아야 합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 @박경옥-f9s
    @박경옥-f9s Год назад +2

    대한민국 중국 본토공정 새로 써야겠습니다.

  • @사리-y2c
    @사리-y2c Год назад

    발해가 어디인가 띄어보니 사막의 네모난 부분이 살수대첩과연결됨.

    • @사리-y2c
      @사리-y2c Год назад

      발해는 발로 춤을 추는 위그르족이 있는곳이고 그 오른쪽이 고구려 임.이들은 조선의 관할이었을 것으로 보임.

  • @깐돌이-o7k
    @깐돌이-o7k Год назад +1

    위나라:상나라 아닐까요? 상나라가 읽으면 위나라인데 고구려 왕족도 위나라 황제가 됀적이 있어요 이덕일교수님이 그러던데요 은 진 한등 읽으면 바람 입니다 이말은 은나라 진나라 한나라가 같은 나라라는 이야기죠

  • @국익대한
    @국익대한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씨 조선의 영토가 두만강 북쪽.700리 라고 햇으니,,한반도 2300리 합하면,,삼천리 강산,,이씨조선 당시는 3천리.엿던거 같어요

  • @Slt-zb9nq
    @Slt-zb9nq Год назад +1

    책보고님 영상 추천합니다.

  • @김철수-b2w
    @김철수-b2w Год назад

    北海는인공호입니다.력사연구하는분이 ?

    • @yikihoon
      @yikihoon  Год назад

      호수를 바다로 표현했다는걸 강조한겁니다 인공호건 자연호건

  • @아두은인
    @아두은인 Год назад

    북경지역이 요나라 땅이니
    연운16주가 어디일까

  • @seha631
    @seha631 Год назад +1

    신라는 제주도부터 거리를
    재야 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