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을 우리에게 주신이유 첫째 우리 삶의 푯대를 주시기 위해,둘째 우리가 십계명을 지킬수 없음을 알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로 갈수 있는것은 우리의 노력도 우리의 능력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 뿐 입니다.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은혜에 이끌려 가는것 입니다. 모두들 샬롬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창세기 1:1] 하나님 아버지 전국의 학교에 십계명이 읽혀지고 말씀과 기도로 모이게 하옵소서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 거룩한 다음세대로 살아가게 하소서 주님 탑차라는 도화지가 있습니다 이 탑차 도화지에 말씀과 히스토리 실고 전국 으로 말씀의 파도 기도의 파도 복음의 파도가 흐르게 하소서 그리하여 북녁땅 끝까지 흘러갈 수있도록 인도하소서 말씀에 육신옷을 입고 이땅 가운데 사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고 옳지않은 목회자들이 행위구원을 가르칩니다. 말로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해놓고 그사람의 행위를 통해 구원을 판단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저도 과거에 그로인해 내가 구원받은건가?내가 복음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믿지않은건가?라는 생각으로 불안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단계를 벗어난 지금 제가 구원에 대한 교제를 하다보면 내가 아직 믿음이 부족해서 노력이 부족해서 라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믿음으로의 구원은 얼마나 믿느냐 얼마나 노럭하느냐가 아닌 믿는 대상이 누군가인데 참 안타깝습니다. 율법은 설교 그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한 구별되기 위한 기준이지 구원을 얻기위해 주신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구원받았다고 막 살라는게 아닙니다. 행위는 믿음의 열매로 나타나지만 거꾸로 의로운행위가 있다고 해서 그걸로 구원을 판단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서신서에서 보면 항상 서두에 믿음을 얘기하고 뒤에 믿는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권면하지만 삶을 통해 교회의 구원을 판단하는 행위는 하지 않습니다.
아멘 입니다. 성경에서 구원의 핵심은 이신칭의 입니다. 원죄른 저지른 아담,술먹고 아들 저주한 노아,이스마엘을 낳은 아브라함,근친상간 저지른 롯,사기꾼 야곱,우상 숭배 야곱 가족들,세겜성 남자 다 죽인 야곱 아들들,나실인 계명 어긴 삼손,우상 조각 만든 기드온,살인과 가나안 땅에 못들어갈 징벌 받은 모세,이방인과 언약 맺은 여호수아, 살인교사,강간 다윗,예수님 부정 베드로,교회 탄압 바울. 행위로 구원 받으면 이들은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아무도 구원 받을수 없습니다
십자가 은혜를 깨닫기 전까지 저는 교회에서 완전 모범생으로 요구하는 모든 봉사와 섬김, 기준들을 모두 이루고자 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정죄, 판단이 귀찮아서 도덕적으로나 현대 교회의 제도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의무들을 해놓고 더 이상 상관하지 말라는 동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어느 것 하나 걸릴 것 없도록 한 상태에서 쉽게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본질상 죄인된 나를 죄에서 구속하신 구원자이자 왕이요 주로 믿고 나니, 마음 자체가 선을 행하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각 교단과 목회자의 성향에 따라 성도의 기준으로서 요구받는 기준이 유관순 수준의 옷차림부터 선지자 수준의 영성까지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배우고 난 이후에는 늘 십자가로 나아갑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면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며 오직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만 붙잡게 되고, 그 은혜가 감사해서 말씀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아 살고자 기도하며 주님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더 이상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몇몇 사역자들로부터 - 특히나 자신들이 뛰어난 사역자인양 드러내는 분들의 경우 - 많은 강요, 협박, 저주에 가까운 말들을 들었고, 그로 인해 제 삶은 완전히 피폐해졌습니다. 평신도로서 당할 재간이 없다는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도와줄 이지웅 목사님 같은 분이 없었던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었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아멘~!! 목사님 생각 나실때마다 기도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기본을 늘 든든히 해 주시는거 같아요.
말씀보고 싶은 맘이 막 생겨요.
더 많이 외쳐주시고, 가르쳐주셔요.
가암사, 감사합니다.
은혜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기본을 늘 든든히 해 주시는거 같아요.
말씀보고 싶은 맘이 막 생겨요.
더 많이 외쳐주시고, 가르쳐주셔요.
가암사, 감사합니다.🎉🎉
은혜 나눠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십계명을 우리에게 주신이유 첫째 우리 삶의 푯대를 주시기 위해,둘째 우리가 십계명을 지킬수 없음을 알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로 갈수 있는것은 우리의 노력도 우리의 능력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 뿐 입니다.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은혜에 이끌려 가는것 입니다. 모두들 샬롬입니다
귀한 은혜 나눠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만이 주실수 있는 사랑과 은혜 늘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창세기 1:1]
하나님 아버지 전국의 학교에 십계명이 읽혀지고 말씀과 기도로 모이게 하옵소서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 거룩한
다음세대로 살아가게 하소서
주님 탑차라는 도화지가
있습니다 이 탑차 도화지에 말씀과 히스토리 실고 전국
으로 말씀의 파도 기도의 파도 복음의 파도가 흐르게 하소서
그리하여 북녁땅 끝까지 흘러갈 수있도록 인도하소서
말씀에 육신옷을 입고 이땅 가운데 사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늘 주님 주시는 은혜들로 가득한 일상 되시길 소망합니다.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고 옳지않은 목회자들이 행위구원을 가르칩니다. 말로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해놓고 그사람의 행위를 통해 구원을 판단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저도 과거에 그로인해 내가 구원받은건가?내가 복음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믿지않은건가?라는 생각으로 불안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단계를 벗어난 지금 제가 구원에 대한 교제를 하다보면 내가 아직 믿음이 부족해서 노력이 부족해서 라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믿음으로의 구원은 얼마나 믿느냐 얼마나 노럭하느냐가 아닌 믿는 대상이 누군가인데 참 안타깝습니다. 율법은 설교 그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한 구별되기 위한 기준이지 구원을 얻기위해 주신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구원받았다고 막 살라는게 아닙니다. 행위는 믿음의 열매로 나타나지만 거꾸로 의로운행위가 있다고 해서 그걸로 구원을 판단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서신서에서 보면 항상 서두에 믿음을 얘기하고 뒤에 믿는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권면하지만 삶을 통해 교회의 구원을 판단하는 행위는 하지 않습니다.
은혜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쓰신 내용 전적으로 동의하고 공감합니다. 행위로 그 사랑이 변하셨다면 이미 영원한 죽음 안에 있었을 것입니다. 누구라도 하나님 사랑이 의심스러울때 보라고 하신 보증이 골고다 십자가 아니겠습니까....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아멘 입니다. 성경에서 구원의 핵심은 이신칭의 입니다. 원죄른 저지른 아담,술먹고 아들 저주한 노아,이스마엘을 낳은 아브라함,근친상간 저지른 롯,사기꾼 야곱,우상 숭배 야곱 가족들,세겜성 남자 다 죽인 야곱 아들들,나실인 계명 어긴 삼손,우상 조각 만든 기드온,살인과 가나안 땅에 못들어갈 징벌 받은 모세,이방인과 언약 맺은 여호수아,
살인교사,강간 다윗,예수님 부정 베드로,교회 탄압 바울. 행위로 구원 받으면 이들은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아무도 구원 받을수 없습니다
십자가 은혜를 깨닫기 전까지 저는 교회에서 완전 모범생으로 요구하는 모든 봉사와 섬김, 기준들을 모두 이루고자 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정죄, 판단이 귀찮아서 도덕적으로나 현대 교회의 제도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의무들을 해놓고 더 이상 상관하지 말라는 동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어느 것 하나 걸릴 것 없도록 한 상태에서 쉽게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본질상 죄인된 나를 죄에서 구속하신 구원자이자 왕이요 주로 믿고 나니, 마음 자체가 선을 행하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각 교단과 목회자의 성향에 따라 성도의 기준으로서 요구받는 기준이 유관순 수준의 옷차림부터 선지자 수준의 영성까지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배우고 난 이후에는 늘 십자가로 나아갑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면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며 오직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만 붙잡게 되고, 그 은혜가 감사해서 말씀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아 살고자 기도하며 주님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더 이상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몇몇 사역자들로부터 - 특히나 자신들이 뛰어난 사역자인양 드러내는 분들의 경우 - 많은 강요, 협박, 저주에 가까운 말들을 들었고, 그로 인해 제 삶은 완전히 피폐해졌습니다. 평신도로서 당할 재간이 없다는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도와줄 이지웅 목사님 같은 분이 없었던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었습니다.
귀한 은혜 나눠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후에 이 메세지는 목사님께 전달 드릴수 있는 기회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늘 하나님 은혜 풍성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