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검색한 내용을 비탕으로 히캬쿠(飛脚, 비각) 요금표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에도(토쿄) ~ 오사카 구간 기준이고요. 비용은 한화로 환산하였습니다. 환율 100엔 = 1,000원으로. 1. 나미빙(並便) - 출발 날짜를 정할 수 없음. 9일 배달. 6,000 원 2. 코오빙(幸便) - 출발날짜는 정기편이 정해져 있음. 9일 배달. 12,000 원 8일 배달. 20,000 원 7일 배달. 30,000 원 6일 배달. 320,000 원 (32만원) 3. 시타테(仕立) - 고객 물건, 편지 배송을 위해 즉시 출발. 6일 배달. 380만원 5일 배달. 450만원 4.5일 배달. 510만원 4일 배달.. 580만원 3.5일 배달. 960만원 2일 배달. 1,400 만원. 2일 배달. 570km를 2일 안에 주파. 평균 시속 12km로 달려야 가능하지요. 1,400 만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이지만,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부나 편지 한통을 위해 밤에는 2인 1조로 한 명은 등을 비추며 함께 달렸고, 약 70 명에 달하는 인원이 소요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용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막부말기, 사회혼란이 극에 달했을 당시 1,400만원 배송 서비스가 종종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에도와 오사카 사이에 52개 중계소가 존재했다 하니 풀가동 하면 1인 당, 시속 12km 정도로 한시간 정도만 달려주면 되지 읺을까요? 문제는 시간 로스를 줄이며 자연스럽게 릴레이 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중간에 심장마비로 쓰러진다면? 발목이 접질린다면? 짐승을 만나거나 산적을 만나서 공격을 당한다면? 편지가 젖어버리거나, 분실된다면? 의문은 끝이없네요.... 참고사이트 www.edojidai.info
관뿐 아니라 사설 기관이 서비스를 제공했던게 큰 원인이었던 듯 해요. 한국 파발 서비스의 원형인 중국에서도 명청대가 되면 상업이 발전하면서 표호, 표장, 전장, 객잔 같은 민간 은행, 대부, 숙박 서비스들이 발전하면서 전문적인 민간 딜리버리 서비스가 의외로 잘 발달되었더군요. 무협영화에 나오는 수많은 객잔과 표호가 그런 역할을 했고, 서비스 안정화를 위해 민간 가드집단을 고용하고,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사설 가디언 양성기관 - 무협영화에 나오는 각 문파. 도장 - 이 계약, 고용 관계를 맺는 등,,.상업의 발달은 다양한 서비스 직군을 탄생시키면서 사회를 다원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는것 같아요. 그래도 전문적으로 사람이 뛰는 것보다는 말을 이용한게 주류였던듯 하지만요. 수많은 전장, 표호, 객잔이 무협영화의 소재를 제공한 것처럼 일본 가부키에도 비각을 소재로 한 인간군상들을 그린 명작들이 적지 않아요. 대표적인게 "恋飛脚大和往来".
@@samurairomance 가볍게 준비하고 달리는 거만 작정하면 200도 가능하긴 한데, 저는 파발의 하루 움직임 거리가 항상 궁금했습니다. 오사카에서 교토까지 자전거로 움직여본적이 있는데, 그런 평지정도면 양호해도 산과 험한길 포함 평균 130킬로 정도라면 정말 대단합니다. 하코네나 시즈오카같는 곳도 다 산을 넘어가야할텐데 말이죠
우와아...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를 인력으로 달리다니... 그래서 飛자가 들어간 건지.. 어느 시대극이든 전령씬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뒤에 이런 고생이 있었을 걸 생각하니 눈물이...ㅠ 게다가 에도시대가 아니라 전쟁 시기였다면 갑주까지 차고 뛰어야 했을텐데 마음이 아픕니다. 앞으로 드라마 볼 때 감사하면서 볼게요 전령 여러분ㅠㅠ 에도시대 재밌는 이야기들 많이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에도시대 만담가나 오시오 헤이하치로 이야기도 해 주시면 너무 재밌을 것 같습니다😆 방학숙제 끝장내고 팬아트 달리고 있습니다ㅎㅎㅎ
사가와 큐빈은 한때 정치자금스캔들로 우리 언론에도 몇번 회자된걸로 아는데 ....굉장히 유서가 있는 기업이었네요 일본자본주의의 뿌리가 참 깊다는 생각이 또 듭니다. 저들은 이미 에도시대에 근대화를 상당히 이룬게 아닌가 싶어요. 서울부산보다 더 먼거리를 불과 5일안에 돌파했다니 ... 대단한 기록입니다. 그놈의 츄신구라는 이렇게도 만납니다그려.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할 경우 일반인이 그 거리를 뛰어가라는 것은 무리가 있지요. 하야카고를 이용하면 카고카키(駕籠舁, 카고를 메는 일꾼)를 바꿔가면서 더 많은 거리를 계속 이동할 수 있으니까요. 보통은 앞 뒤로 두 명, 그리고 호홉을 맞추는 구호를 외치는 인원 한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워낙 승차감이 안좋다보니, 소리에 호홉을 맞추어 아동해야 그나마 승객이 덜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근데 일본의 현대적 도로망은 발전이 상당히 더뎌서 일본 최초의 고속도로 메이신 고속도로가 1963년 개통입니다. 한국과 10년 차이도 안납니다. 64년 도쿄올림픽에 맞춰서 개통한 거죠. 태평양전쟁 내내 왕복 2차선 비포장국도 쓰면서 전쟁했죠. 인터넷에서 일본 국도변 옛날 사진들 찾아보면 좁아터진 국도에 트럭들이 질주하고 양쪽으론 민가와 상점이 빽빽하고 안습입니다. 철도 의존이 심해서 그랬나..근데 철도는 협궤라 표준 컨테이너 운송도 못하고 참 고난의 연속인데 잘도 극복해왔죠.
말은 금방 지치고 사람은 지구력이 강해서 우리나라에도 사람이 직접 뛰어 전하는 보발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보발이 있었으니 외국에도 있을거라 생각은 하는데... 가마를 매고 뛰다니 정말 충격적이군요. 가마꾼 보다 가마에 타고 이동하는 번사가 더 죽을 맛이겠군요. 저라면 가마를 타고 이동하느니 가마꾼들과 함께 뛰는 것이 더 편하겠어요. 18세기면 서양에서 체구가 큰 말이 많이 들어와 일본에도 기발이 발전했을거라 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니었군요. 대망에도 전령을 보내는 장면이 많은데 그럼 저런 방법으로 보냈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군요. ㅠㅠㅠ 말의 체국가 작고 말의 숫자가 적은 것도 문제지만 산이 많고 험해서 우리나라와 중국과는 다르게 기발이 발전하지 못한 점도 있을 것 같군요.
일본에 제대로된 편자가 없었던것도 말굽대신에 사람의 발을 선택한 원인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일본의 기병역사를 보면 근대 이전까지 제대로된 편자가 없었거나 관에서만 잠시 사용하는등 매우 제한적이었고, 짚을 이용해 임시방편으로 말굽을 보호하던것에 그친것을 보고 아무리 기병과 그리 친하지 않았던 나라라도 편자가 없었나 깜짝 놀랐었는데 그 영향도 있지 않을까요? 1811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던 유상필의 동사록을 보면 일본말은 5리나 10리마다 말의 짚신을 갈아 신겨야 하기 때문에 짚신을 짊어진 사람이 따라 다닌다라고 기록해 두었는데 편자 없이 짚신 만으로 말의 장거리 이동을 다루기엔 확실히 번거롭긴 한 모양입니다.
하.... 기억납니다. 사무라이 스피리츠에서 그런 장면이 있었지요... 제 오락실 인생의 황금기를 만들어 준 게임이었습니다. 제 인생에 누군가에게 둘러싸여 주목받은 거의 유일한 기억, 사무라이 스피리츠. 10연승, 20연승은 기본이었지요. 건너편에서 욕이 나오면서 담배연기가 올라오고, 기계를 발로 차기 시작하면, 이제 사라질 때가 됐구나... 생각하며 슬그머니 가방 들고 나왔던 기억이...
@@samurairomance ㅋㅋㅋㅋ 듣고 있으니까 어린시절 추억이 자동재생 되네요. 역시 그 시절 추억은 대부분 똑같은 환경인가 봅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저의 동내 오락실은 주인 아저씨가 소위 양아치들 관리를 이상하리만치 철저하게 했었습니다. 무슨 게슈타포도 아니고 수시로 돌아다니면서 애들 돈뺏는놈 없나 감시를 어찌나 하던지.. 나중에 알게된건데 자기 업장에 그런 놈들 들어오면 주 고객층인 아이들이 오락실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이유더군요. ㅋㅋㅋ
100km 달리기를 기준으로 본다면 인간이 가장 빠르다고 하네요. 실제로 과거 인간의 사냥이란게 무리지어서 대형동물을 창을 들고 싸워서 사냥한게 아니라 사냥감이 지쳐서 쓰러질때까지 계속 쫓아가는 방식이 대부분이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잠깐은 인간보다 앞서갈 수 있지만 쉬지 않고 쫓아오는 인간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육상동물은 없다고 합니다.
네 인간이 주로 사는 열대와 온대에서는 맞는 말씀이신데, 한대기후에서는 늑대한텐 밀려요 ^^.. 한대기후에 사는 늑대는 20시간넘게 쉬지않도 뛸 수 있습니다. 다만 온대기후만 와도 퍼지죠... 확실한 건 극서지와 극한지에서는 인간을 능가하는 지구력을 가진 동물은 없습니다.
국가가 멸망한 사태에다가 최종 결정권자 마저 먼 타향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하루 빨리 이 내용을 알려 현지 결정권자인 가로가 대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순리였겠지요. 아코번은 5만석 규모의 조그만 번이었지만 모두 실업자, 즉 낭인이 되는 상황에 직면한지라 반란을 일으키든, 성를 비우는 작업을 하든, 빨리 손을 써야 했을 검니다.
말씀하신대로 개인이 달려서 편지를 전달하는 비각(히캬쿠)이 가장 빨랐습니다. 막부에서 직접 운영하던 "막부 비각"은 주로 에도와 쿄토 사이의 공문서 전달에 사용되었고요. 그외에 다이묘들이 운영하는 "다이묘 비각", 나중에는 마을 쵸닌들이 상업화 해서 운영했던 "마치 비각" 등이 존재했습니다. 에도에서 오사카까지 2일 안에 정보전달을 보증하는 서비스 가격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우리돈으로 약 1,400 만원 정도 였다 합니다. 어마어마한 가격입니다만, 편지 한 통에 50 명이 넘는 비각 인원이 동원되는 상황이었음을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인간의 근섬유는 지근이라하여 유산소 운동에 적합하게 발달되어 근수축이 느려 세밀한 작업이 가능하고 순간적인 힘은 약하지만 지구력을 갖고 있으며 동물은 속근이라 하여 무산소운동에 적합하게 발달되어 근수축이 빠르고 세밀한 작업은 어렵고 순간적인 힘은 쎄지만 지구력은 약하다는...
일본에 마라톤 인기가 많죠!~ 진짜 어마어마 하다고 느낍니다! 근데 질문하나 있는데요~ 일본 전국시대 보면 기마부대가 있지 않습니까? 근데 일본의 말을 품종을 꺼내들면서 기마부대는 거짓이라는 분이 있어서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실제로 일본의 기마부대의 유무와 기병에 사용되는 말 그리고 그당시 일본전체의 말의 숫자 그리고 여몽전쟁 당시와 서양과 중국과 만주와의 교역으로 우수한 품종의 말이 일본에 수입되지 않았다는게 궁금하네요,,솔직히 저말품종이 다 동아시아 품종이라서,,우리나라 기병도 그닥일텐데,, 진짜 궁금하네요,.,,
일본 토종말의 체력과 덩치,스피드로 보병을 쓸어버리는 형태의 기마전술은 허구에 가깝다는 갓이 중론입니다. 실질적으로 기마부대는 전술 수단이라기 보다는 이동 수단에 가까웠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이 부분은 타츠오키(龍起)님께서 보족 설명 달아주실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본 토종말 크기가 어깨높이 기준으로 100~120cm 정도인데 자4은 말이 시속 20km ~30 km 정도 속도로 돌격해 오면... 당시 사람들의 작은 키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위협이 될만한 사이즈도 안되고, 말을 타고 전쟁을 치룰 정도의 고도로 숙련된 기술을 가진 자 역시 많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제각각 말을 타고 움직이면 지휘계통이 쉽게 전달되지 못한다는 점 등등으로부터 말을 타고 접근 한 후 말에서 내려 창 등을 들고 싸운 것이 현실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가마꾼(주력이 상당한 전문인들) 이용자는 번의 '핵심인물'이 편지, 중요물품을 직접 전달했어야 하므로 개인형태의 히캬쿠는 제외할 수밖에 없고(타인이 가져다 준 것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해당 번의 핵심인물이(일반인 체력이므로 직접 이동은 불가능에 가까움)직접 내용을 전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력이 상당한 전문인 가마꾼에 의존해서 가야함. 일반 평지도 달렸지만 산맥이 있는 경우 산등성이로 달렸고 산등성이에 이들을 대상으로 한 우동가게 벤또집 또한 존재했다고 함. 현재도 산 속에(현대에 들어서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다 종료// 도쿄 - 시즈오카 구간)그 루트가 남아있음(한 팀이 계속 주파하는 것이 아닌 요소요소 그 지역에서 팀을 수배하는 형태임. 번이 많아서 그 옛날에도 이런 형태의 서비스가 존재)
정확히는 어느 동유럽 국가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유럽전선의 몽골군의 보고서가 일주일 만에 칸에게 도착했다는 점을 볼 때, 단순히 말이 작은 게 문제는 아닌듯 합니다. 몽골의 말도 조랑말이니 아마 측대보와 같은 말 훈련법이 중요한 듯 합니다. 공적으로만 쓰는 조선이 몽골의 역참을 이어 받은 점을 볼 때, 마패의 말의 수만큼 제공되어 중간에 갈아탈 수 있었다는 점이 오히려 국가 통신망으로서는 안정적이었네요 90년만 지나서 법국과 교류가 있었다면 1시간 43분, 약 2시간 정도면 통신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텐데요. 그때 비전자방식 텔레그래프가 발명되었네요. 파리에서 릴 통신 구간이 225.3 km이고 1시간 걸렸으니, 도쿄에서 아코시까지 609. 2 km이니 약 1시간 43분이 걸리네요. 물론 알파벳이 다르니 어찌될 진 모르겠으나, 전기 없이 주간에만 가능한 통신이라면 어떨까 했네요. 뭐 빨리 전달했다고, 정신줄 놓은 사건을 막는 거도, 번에서 대비태세 갖춰서 싸울 것도 아니니 말이죠
유럽과 몽골 영토 사이는 스텝 및 평야지대라 말로 이동하기 편할 뿐더러 실크로드라는 도로망이 갖춰진 상태였고 몽골군은 이동할때 한번에 말 3~4마리를 같이 데리고 이동하다 타던 말이 지치면 즉시 데리고 있던 다른말로 바꿔서 이동속도를 계속 유지했기 때문에 그정도 속도가 나온거죠. 그리고 고려 및 조선의 역참제는 교통 통신망 역할로 사용되기 보단 조세운반, 중국 사신호송 목적으로 주로 쓰였고 말 관리도 역호=(마호)를 두어 백성들을 이주시키고 관군을 배치해 입마역을 부과했죠. 근데 항상 그렇지만 여러 부정부패 및 고된 노역으로 백성들이 도망가니 쉽지 않았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이트에서 검색해보시면 자세히 아실수 있을듯 싶네요. 결론적으로 조선의 역참은 통신 목적보다는 다른 용도로 더 많이 쓰였습니다.
달려서 사람 메고 ㄷㄷㄷㄷ 제가 대전 야구장에서 대구 북구 끄트머리 관음동까지 순수주행시간만 5시간 걸렸더랬습니다 ㄷㄷㄷ 밥도 먹고 물도 먹고... 안장에 다시 앉기까지 하루 정도 회복해야 하는데요. 주야 안 따지고 하루 100km 이상이라;;; 사람이 아니네요 저분들...
옛날 한국, 일본, 중국 농민들 흑백사진 보면 갸날픈 체구에 어마어마한 쌀짐이나 땔깜을 메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여서 깜짝 놀란다는... 메는 도구는 지게, 뒷바구니, 앞 뒤로 길게 늘어진 멜대 등 지역별로 다양해도 저 체구에 어떻게 저걸 멜까? 라는 생각에 아연실색하게 되더라구요. 현대인들은 신체의 기능을 극한으로 사용할 정도의 상황에 처하는 일이 별로 없으니 - 전문적인 운동선수를 제외하면 - 상상하긴 힘들긴 하겠죠,, 그런데 그렇게 일상적으로 신체기능을 극단적으로 사용하다보면 장수하긴 참 힘들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긴 해요
행군과는 다르게, 가마를 메고 뛰는 사람은 중간에 계속 교체되었기 때문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인계되어 시간절약에 도움이 되느냐가 관건이지, 인부들 1인당 실질적 이동거리는 행군거리에 미치지 못했을 겁니다. 중간에 휴식하고 잠도 자고 하면 좀 낫지만, 휴식시간이 짧을 경우 오히려 탑승자가 죽어날 것 같습니다.
릴레이 방식이 매우 비슷하지요. 역전마라톤같은 릴레이 마라톤 개념은 히캬쿠 개념에서 출발해 일본에서 나온거라고 이야기하던데 일본이 세계최초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릴레이 개념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도 수백 킬로미터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이라고 있지요. 중간에 택시타고 이동하다 걸린 사람도 있고 했던 것 같은데... 10여년 전, 명동의 울트라 검도관애서 수련했을 때, 관장님이 울트라 마라톤 선수를 겸하고 계셔서 무한 체력 대련에 죽다 살아난 기억이 납니다. 무엇보다 명판에 큰 글씨로 써있는, "울트라 검도관"이라는 글씨가 쪽팔렸던...
@@milchholstein884 중국 등 전근대 여러 나라들이 말을 이용하는 역참 시스템으로 장거리 통신을 했습니다. 몽골은 이 역참제도를 이용한 전령으로 하루에 수백km씩 달려 넓은 제국에서도 신속한 통신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몽골의 유럽 정벌당시 동유럽 전선에서 출발한 몽골 파발이 대도(지금의 베이징)에 이르는데 2주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350km 이상의 거리를 주파한 겁니다. 사람이 장거리 통신에 더 유리했다면 중국에서도 역과 역 사이를 말이 아닌 사람이 달려갔겠지요. 말은 매우 비싸고 귀했고, 그에 비해 사람 품삯은 저렴했던 일본의 환경 덕분이지 말보다 사람이 낫다고 일반화 할 바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agm1144 말을 비교적 구하기 쉬운 중앙집권국가에서 역참을 전국적으로 운용하며 중요한 공문서를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가성비 안따지고 운용하면 사람이 뛰어야 할 이유가 없고 더 빠르겠죠. 하지만 에도시대에는 수백개의 번이 에도에서 각 번으로 빠르게 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역참을 30km마다 두는게 비용과 시간단축 측면에서 해야 할 이유가 없었을 거라는 겁니다. 비용 줄이겠다고 50, 100km 간격으로 두거나 에도에서부터 말을 타고 가는 것도 별 의미가 없다는 거죠. 그렇게 말이 대중화 되어 있지도 않았고.
인터넷에서 검색한 내용을 비탕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에도(토쿄) ~ 오사카 구간 기준입니다. 비용은 한화로 환산하였습니다. 1. 나미빙(並便) - 출발 날짜를 정할 수 없음. 9일 배달. 6,000 원 2. 코오빙(幸便) - 출발날짜는 정기편이 정해져 있음. 9일 배달. 12,000 원 8일 배달. 20,000 원 7일 배달. 30,000 원 6일 배달. 320,000 원 (32만원) 3. 시타테(仕立) - 고객 물건, 편지 배송을 위해 즉시 출발. 6일 배달. 380만원 5일 배달. 450만원 4.5일 배달. 510만원 4일 배달.. 580만원 3.5일 배달. 960만원 2일 배달. 1,400 만원. 2일 배달. 570km를 2일 안에 주파. 평균 시속 12km로 달려야 가능하지요. 1,400 만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이지만,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부나 편지 한통을 위해 밤에는 2인 1조로 한 명은 등을 비추며 함께 달렸고, 약 70 명에 달하는 인원이 소요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용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막부말기, 사회혼란이 극에 달했을 당시 1,400만원 배송 서비스가 종종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참고사이트 www.edojidai.info
@@부엉이형-r8t 어차피 유목국가가 역참제도를 정비한 시점에서는 다민족국가가 되니깐 유목민족 만으로 역참을 구성하지는 않습니다. 뭐, 애초에 유목민들에게 혈통이라는 개념이 민족을 구분하는 개념은 아니지만요. (혈통이 중요하지 않은건 아닙니다만, 중요 가문 간의 우열과 정통성에서는 몰라도 단순한 민족 구분만 두고 보면 혈통은 그다지 따지는 편이 아닙니다.) 이 쪽은 나름 부전공이라서 잘 알죠.
"일본 가마"라기 보다는 "하야카고 가마"인 것이지요. 산킨코오타이 또는 에도성 등성을 위해 고관대작이나 다이묘들이 이용한 가마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야카고를 고관대작이 이용할 리도 없죠. 아랫사람을 활용하는 것이니까. 목적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이니, 인부들의 체력문제 등도 고려, 그 목적에 맞게 가볍고 심플하게 설계됨이 정답일 겁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내용을 비탕으로 히캬쿠(飛脚, 비각) 요금표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에도(토쿄) ~ 오사카 구간 기준이고요. 비용은 한화로 환산하였습니다. 환율 100엔 = 1,000원으로.
1. 나미빙(並便) - 출발 날짜를 정할 수 없음.
9일 배달. 6,000 원
2. 코오빙(幸便) - 출발날짜는 정기편이 정해져 있음.
9일 배달. 12,000 원
8일 배달. 20,000 원
7일 배달. 30,000 원
6일 배달. 320,000 원 (32만원)
3. 시타테(仕立) - 고객 물건, 편지 배송을 위해 즉시 출발.
6일 배달. 380만원
5일 배달. 450만원
4.5일 배달. 510만원
4일 배달.. 580만원
3.5일 배달. 960만원
2일 배달. 1,400 만원.
2일 배달. 570km를 2일 안에 주파. 평균 시속 12km로 달려야 가능하지요. 1,400 만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이지만,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부나 편지 한통을 위해 밤에는 2인 1조로 한 명은 등을 비추며 함께 달렸고, 약 70 명에 달하는 인원이 소요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용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막부말기, 사회혼란이 극에 달했을 당시 1,400만원 배송 서비스가 종종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에도와 오사카 사이에 52개 중계소가 존재했다 하니 풀가동 하면 1인 당, 시속 12km 정도로 한시간 정도만 달려주면 되지 읺을까요?
문제는 시간 로스를 줄이며 자연스럽게 릴레이 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중간에 심장마비로 쓰러진다면? 발목이 접질린다면? 짐승을 만나거나 산적을 만나서 공격을 당한다면? 편지가 젖어버리거나, 분실된다면?
의문은 끝이없네요....
참고사이트 www.edojidai.info
근대 들기전까지 최고의 전달수단이 말인줄 알았는데 해당지역의 말의 특징때문에 꼭 그렇지만은 않군요.사람을 가마에 태우고 100km 넘게 하루에 가다니 어마어마 하네요.
넘 재밌어요😊😊 중간중간 제가 아는내용이 나오면 새롭고 반갑네요. ㅎㅎ 언제나 좋은영상 감사드립니다.
오래된 영상인데. ㅋ. 감사합니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충신장이라는 영화에서 하야카고라는걸 잘 보여주던군요. . 오늘도 귀중한 정보감사합니다. .
츄신구라 영화, 드라마는 리메이크가 너무 많더라고요. 몇 편 보지는 안았습니다만, 키무라 타쿠야가 나와서 그런지 "츄신구라 1/47"을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 합니다.
사진의 히카쿠가한 이레즈미 대단하네요ㄷㄷ
현대의 이레즈미와 에도시대의 이레즈미가 갖는 인식이나 이미지에 대해서도 알고싶네요🤔
좋은 테마가 될 것 같네요. 주제 정리 노트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samurairomance 재밌는 영상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대단히 흥미로운 영상이네요. 사람이 말보다 빠르다는 것!!!!
오늘도 새로운 정보 감사합니다. 편견을 깨는 내용이네요.😀
앗... 편견이라 하심은??
@@samurairomance 말이 최고로 빠르다는... 최고다... 이런거요 ㅋㅋㅋㅋㅋㅋㅋ
많은 분들 중론이 장거리가 되면 동물들 중 인간 체력이 최고라고들 하시네요.
@@samurairomance 그런거 같아요.^^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없죠.^^
확실히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우위를 가지는 부분이 바로 지구력. 고대로 부터 동물을 사냥할때 계속 동물을 몰아서 동물이 지쳐 쓰러지게 되면 사냥하는 것.
굉장히 새롭고 소중한 정보네요.
정말 유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기다리고있었습니다!!좋아요 먼저 누르고 볼게요~~~
좀 더 일찍 올리고 싶은데 잘 안되네요. 재미있게 보세요 !
이십여년전 오다노부가나 일대기, 대망을 읽고 센카쿠 시대에 흥미가 생겨서 일본사나 사무라이에 대해서 찾아 봅니다. 우연히 알게된 채널인데 매주 재미난 소재로 연재해서 잘 즐기고 있습니다. 다음주도 기대하겠습니다.
저도 시작은 히데요시의 일대기를 다룬 요시카와 에이지의 "쇼군"+ "신장의 야망" 게임 이었습니다. 다들 비슷하더라고요.
드라마 료마에 보면 료마가 본가와 편지를 주고 받는 장면에서, 에도시대 일본의 우편서비스가 궁금했는데 히캬쿠라는 것이었군요. 오늘도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등의 장면에서 영감을 받는 궁금증을 많이 다룰 생각입니다. 2021년에는 좀 더 대중지향적 영상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주고쿠 대반전을 보여주더니 일본인들은 인력만으로도 엄청난 기동력을 보여주네요. 영상 재미있게 봤습니다 ㅎㅎ
개인적으로는 릴레이 마라톤인 역전마라톤에의 영향성도 흥미롭기도 하고, 비각(히캬쿠)과 우편집배원이 공존했던 메이지 초기 환경도 재미있었습니다.
@@samurairomance 왠지 초기 집배원은 비각에게 속도로 밀렸을 것 같은건 기분탓인가. 집배원이 도저히 저걸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네요 ㅋㅋㅋㅋ
오늘도 감사히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일본 역전마라톤 대회는 NHK에서 중계하는 큰행사인데 그 뒤에 이런 역사가 있었군요.
에도로 수도를 옮기고 생겨난 전국도로 고카이도 五街道와 宿場에 대한 글도 부탁드립니다.감사합니다
ㅇ최근 "일본 도로를 알 수 있는 사전" 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요. 말씀하신 도로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더라고요. 나중에 이 책 내용 중 흥미로운 부분도 제작해 올리겠습니다.
파발이면 당연히 말인줄 알았는데 세상에 이런 사실이;; 놀랍고 감사합니다! 인력으로 릴레이 뛰는것도 놀랍지만 전할 이야기가 중대한거면 중요인물을 메고 뛰는건 정말 몰랐습니다.
저런 가마를 타고 이동하는 것 또한 극한의 인내력을 요했을 것 같아요. 몇 키로만 달려도 멀미 날 듯...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비슷한 시스템이라도 공문서 전달이라는 용도로만 썼던 우리나라와는 또다른 차이가 있네요.
"막부 비각", "다이묘 비각"에 이어서 에도 서민들도 이용 가능한 "마치 비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발전하게 되지요.
관뿐 아니라 사설 기관이 서비스를 제공했던게 큰 원인이었던 듯 해요. 한국 파발 서비스의 원형인 중국에서도 명청대가 되면 상업이 발전하면서 표호, 표장, 전장, 객잔 같은 민간 은행, 대부, 숙박 서비스들이 발전하면서 전문적인 민간 딜리버리 서비스가 의외로 잘 발달되었더군요. 무협영화에 나오는 수많은 객잔과 표호가 그런 역할을 했고, 서비스 안정화를 위해 민간 가드집단을 고용하고,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사설 가디언 양성기관 - 무협영화에 나오는 각 문파. 도장 - 이 계약, 고용 관계를 맺는 등,,.상업의 발달은 다양한 서비스 직군을 탄생시키면서 사회를 다원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는것 같아요. 그래도 전문적으로 사람이 뛰는 것보다는 말을 이용한게 주류였던듯 하지만요. 수많은 전장, 표호, 객잔이 무협영화의 소재를 제공한 것처럼 일본 가부키에도 비각을 소재로 한 인간군상들을 그린 명작들이 적지 않아요. 대표적인게 "恋飛脚大和往来".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와 대단하네요. 130킬로씩 하루에 움직이는건, 자전거여행 평균거리랑 비슷한 수준인데 말이죠
저는 자전거로 100키로 씩 달리는 사람들도 입이 벌어지던데요....헐.
@@samurairomance 가볍게 준비하고 달리는 거만 작정하면 200도 가능하긴 한데, 저는 파발의 하루 움직임 거리가 항상 궁금했습니다. 오사카에서 교토까지 자전거로 움직여본적이 있는데, 그런 평지정도면 양호해도 산과 험한길 포함 평균 130킬로 정도라면 정말 대단합니다. 하코네나 시즈오카같는 곳도 다 산을 넘어가야할텐데 말이죠
재미있는 소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누구나 가볍게 접할 수 있는 소재의 배경에 얽힌 일본 역사 이야기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좀 전환해 보려 합니다. 결국 보는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니까요.
8:43 이야...다리근육이 어마어마하시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감사랍니다.
우와아...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를 인력으로 달리다니... 그래서 飛자가 들어간 건지.. 어느 시대극이든 전령씬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뒤에 이런 고생이 있었을 걸 생각하니 눈물이...ㅠ 게다가 에도시대가 아니라 전쟁 시기였다면 갑주까지 차고 뛰어야 했을텐데 마음이 아픕니다. 앞으로 드라마 볼 때 감사하면서 볼게요 전령 여러분ㅠㅠ
에도시대 재밌는 이야기들 많이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에도시대 만담가나 오시오 헤이하치로 이야기도 해 주시면 너무 재밌을 것 같습니다😆
방학숙제 끝장내고 팬아트 달리고 있습니다ㅎㅎㅎ
방학숙제를 벌써 다했습니까?? 빠르네요. 우리 애들은 시작도 안한 것 같은데...
😮정말 목숨 걸고 달려야 하는 상황 이었네요. 일본 말이 체구가 비교적 작다는 것 생각도 못 했습니다.
사극에 등장하는 말들은 결국 현대의 말들이라 덩치가 크고 멋있는가?
제주도 조랑말 정도 생각하시면 비슷하려나요. 재래말 중 하나인 키소(木曽) 말의 경우, 어깨까지 높이가 130cm 정도입니다. 전국시대 기마부대의 전술도 돌격이 아니라, 빠른 이동에 이은 하마 후 공격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samurairomance 댓글로 보충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가와 큐빈은 한때 정치자금스캔들로 우리 언론에도 몇번 회자된걸로 아는데 ....굉장히 유서가 있는 기업이었네요 일본자본주의의 뿌리가 참 깊다는 생각이 또 듭니다. 저들은 이미 에도시대에 근대화를 상당히 이룬게 아닌가 싶어요.
서울부산보다 더 먼거리를 불과 5일안에 돌파했다니 ... 대단한 기록입니다.
그놈의 츄신구라는 이렇게도 만납니다그려.
막번체제 하에는 관소도 많았고
각 번의 요지나 관문을 지나갈 때
허가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개인사업자에게 막부가
어떤식으로 허가를 내줬나요?
허가를 주고 받는 과정에 대해서는 제가 지식이 없네요. 다만 말씀하신대로 1600년대에 시작된 민간영업 분야의 "마치비캬쿠(町飛脚)"는 막부의 허가를 득한 후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관소를 통과할 수 있었겠지요.
@@samurairomance 바쁘신데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헛헛.별루 안바뻐요. ㅠㅠ
하야카고는 사람과 가마를 하나 지고가야하니 히카쿠에 비해 느리고 힘들었을 것 같은데, 그냥 가마에 탔을 사람이 달리는 것으로는 안됐을까요? 그리고 가마는 두명 이상이 들고가야할것 같은데(+가마에 타는사람도 한명있으니 총 세명) 어떻게 1진, 2진 모두 두명뿐이었나요?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할 경우 일반인이 그 거리를 뛰어가라는 것은 무리가 있지요. 하야카고를 이용하면 카고카키(駕籠舁, 카고를 메는 일꾼)를 바꿔가면서 더 많은 거리를 계속 이동할 수 있으니까요.
보통은 앞 뒤로 두 명, 그리고 호홉을 맞추는 구호를 외치는 인원 한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워낙 승차감이 안좋다보니, 소리에 호홉을 맞추어 아동해야 그나마 승객이 덜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근데 일본의 현대적 도로망은 발전이 상당히 더뎌서 일본 최초의 고속도로 메이신 고속도로가 1963년 개통입니다. 한국과 10년 차이도 안납니다. 64년 도쿄올림픽에 맞춰서 개통한 거죠.
태평양전쟁 내내 왕복 2차선 비포장국도 쓰면서 전쟁했죠.
인터넷에서 일본 국도변 옛날 사진들 찾아보면 좁아터진 국도에 트럭들이 질주하고 양쪽으론 민가와 상점이 빽빽하고 안습입니다.
철도 의존이 심해서 그랬나..근데 철도는 협궤라 표준 컨테이너 운송도 못하고 참 고난의 연속인데 잘도 극복해왔죠.
역전마라톤에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었군요.
말은 금방 지치고 사람은 지구력이 강해서 우리나라에도 사람이 직접 뛰어 전하는 보발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보발이 있었으니 외국에도 있을거라 생각은 하는데... 가마를 매고 뛰다니 정말 충격적이군요. 가마꾼 보다 가마에 타고 이동하는 번사가 더 죽을 맛이겠군요. 저라면 가마를 타고 이동하느니 가마꾼들과 함께 뛰는 것이 더 편하겠어요.
18세기면 서양에서 체구가 큰 말이 많이 들어와 일본에도 기발이 발전했을거라 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니었군요. 대망에도 전령을 보내는 장면이 많은데 그럼 저런 방법으로 보냈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군요. ㅠㅠㅠ 말의 체국가 작고 말의 숫자가 적은 것도 문제지만 산이 많고 험해서 우리나라와 중국과는 다르게 기발이 발전하지 못한 점도 있을 것 같군요.
하루에 몇시간을 뛰길래 138km가 가능하죠..? ㄷㄷ 서울-대구 거리를 이틀에 주파한다는 것인데...
가마를 메고 가니 대충 평균 시속을 도보의 두 배보다 살짝 빠른 10km 정도로 잡으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하야카고 짐꾼을 교체해가며 뛰면, 하루에 취침 포함 10시간 휴식하고 나머지 시간은 계속 달렸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일본에 제대로된 편자가 없었던것도 말굽대신에 사람의 발을 선택한 원인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일본의 기병역사를 보면 근대 이전까지 제대로된 편자가 없었거나 관에서만 잠시 사용하는등 매우 제한적이었고, 짚을 이용해 임시방편으로 말굽을 보호하던것에 그친것을 보고 아무리 기병과 그리 친하지 않았던 나라라도 편자가 없었나 깜짝 놀랐었는데 그 영향도 있지 않을까요? 1811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던 유상필의 동사록을 보면 일본말은 5리나 10리마다 말의 짚신을 갈아 신겨야 하기 때문에 짚신을 짊어진 사람이 따라 다닌다라고 기록해 두었는데 편자 없이 짚신 만으로 말의 장거리 이동을 다루기엔 확실히 번거롭긴 한 모양입니다.
히캬쿠의 존재를 처음 알게된건 오락실에 있던 사무라이스피릿츠를 통해서였습니다.
게임중에 뒷 배경에서 누군가가 열심히 달려가면서 여러가지 아이템을 던져주고 그대로 갈길 가던 모습이 뭔가 짐꾼같은 느낌을 받긴 했었네요.
하.... 기억납니다. 사무라이 스피리츠에서 그런 장면이 있었지요...
제 오락실 인생의 황금기를 만들어 준 게임이었습니다. 제 인생에 누군가에게 둘러싸여 주목받은 거의 유일한 기억, 사무라이 스피리츠.
10연승, 20연승은 기본이었지요. 건너편에서 욕이 나오면서 담배연기가 올라오고, 기계를 발로 차기 시작하면, 이제 사라질 때가 됐구나... 생각하며 슬그머니 가방 들고 나왔던 기억이...
@@samurairomance ㅋㅋㅋㅋ
듣고 있으니까 어린시절 추억이 자동재생 되네요.
역시 그 시절 추억은 대부분 똑같은 환경인가 봅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저의 동내 오락실은 주인 아저씨가 소위 양아치들 관리를 이상하리만치 철저하게 했었습니다.
무슨 게슈타포도 아니고 수시로 돌아다니면서 애들 돈뺏는놈 없나 감시를 어찌나 하던지..
나중에 알게된건데 자기 업장에 그런 놈들 들어오면 주 고객층인 아이들이 오락실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이유더군요. ㅋㅋㅋ
그립네요 사무라이 스피리츠 ㅋㅋㅋㅋ 죽어도 나코루루만 골랐는데 결국 오타쿠가 됨...
장거리는 말보다 사람이 더 빠르다는 점에 깜짝 놀랐습니다.
비각분들 하루고용비는 얼마였는지 궁금해여~
이 부분 잘 모르겠네요... 비각사업이 조직화되어 있어서 비각 개개인은 급여를 받기는 했을겁니다만.. 육체노동자들이 1일 500문(文) 정도 받았다고 하니 비슷한 개념으로 보고, 1문을 15엔 정도로 환산하면 우리돈으로 7만원 ~ 8만원 정도 볼 수 있을까요..
@@samurairomance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지금과다르게 인건비가 엄청싸긴 싸네요!
100km 달리기를 기준으로 본다면 인간이 가장 빠르다고 하네요. 실제로 과거 인간의 사냥이란게 무리지어서 대형동물을 창을 들고 싸워서 사냥한게 아니라 사냥감이 지쳐서 쓰러질때까지 계속 쫓아가는 방식이 대부분이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잠깐은 인간보다 앞서갈 수 있지만 쉬지 않고 쫓아오는 인간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육상동물은 없다고 합니다.
역시 인간은 위대합니다. 이제 1km도 제대로 못달리는 저로서는...
네 인간이 주로 사는 열대와 온대에서는 맞는 말씀이신데, 한대기후에서는 늑대한텐 밀려요 ^^..
한대기후에 사는 늑대는 20시간넘게 쉬지않도 뛸 수 있습니다. 다만 온대기후만 와도 퍼지죠...
확실한 건 극서지와 극한지에서는 인간을 능가하는 지구력을 가진 동물은 없습니다.
하나 궁금한게 자신의번에 왜 영지몰수와 번주의 할복소식을 저렇게 빠르게 알리려고 했을까요??? 물론 빨리 알면 이득이 되는 부분도 있었을꺼 같지만 번에 살고있는 사람들한테는 크게 달라지는게 없었을꺼 같은데...
난데 없이 막부에서 무장한 군대가 와서
0. 너네 영주가 잘못해서 할복함
1. 너네 땅 몰수함
이러면 이사준비하기 애매해 지지 않을 까요?
국가가 멸망한 사태에다가 최종 결정권자 마저 먼 타향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하루 빨리 이 내용을 알려 현지 결정권자인 가로가 대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순리였겠지요.
아코번은 5만석 규모의 조그만 번이었지만 모두 실업자, 즉 낭인이 되는 상황에 직면한지라 반란을 일으키든, 성를 비우는 작업을 하든, 빨리 손을 써야 했을 검니다.
@@samurairomance 답변 감사합니다.!!
당연히 말을 이용한 파발이 빠르겠거니 했는데 인편이 더 빨랐군요 ㄷㄷㄷ 가마를 이용하는거보다 개인이 달려가는게 더 빨랐겠죠?
말씀하신대로 개인이 달려서 편지를 전달하는 비각(히캬쿠)이 가장 빨랐습니다. 막부에서 직접 운영하던 "막부 비각"은 주로 에도와 쿄토 사이의 공문서 전달에 사용되었고요. 그외에 다이묘들이 운영하는 "다이묘 비각", 나중에는 마을 쵸닌들이 상업화 해서 운영했던 "마치 비각" 등이 존재했습니다.
에도에서 오사카까지 2일 안에 정보전달을 보증하는 서비스 가격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우리돈으로 약 1,400 만원 정도 였다 합니다. 어마어마한 가격입니다만, 편지 한 통에 50 명이 넘는 비각 인원이 동원되는 상황이었음을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samurairomance 사설로 첨언을 하면 제대로 된 통신 보안 서비스 가격이 그정도 합니다. 예나지금이나 차이가 없네요?
오오.. 그렇군요. 업계에 계신가봐요? ㅋ
인간의 근섬유는
지근이라하여 유산소 운동에 적합하게 발달되어
근수축이 느려 세밀한 작업이 가능하고
순간적인 힘은 약하지만 지구력을 갖고 있으며
동물은 속근이라 하여
무산소운동에 적합하게
발달되어 근수축이 빠르고 세밀한 작업은 어렵고
순간적인 힘은 쎄지만 지구력은 약하다는...
자연과학적 접근 이네요. 감사합니다.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어떻게 보면 일종의 퀵서비스네요. 대신 차량 없이 사람이 직접 뛰거나 가마를 통해 이동을 해 물품/소식을 전하는...ㅋㅋㅋ
맞습니다. 히캬쿠 상인의 후예들 역시 물류업자로 변신했고, 또다른 업체인 "사가와 큐빙(佐川急便)" 역시 물류 업체이지요.
일본에 마라톤 인기가 많죠!~ 진짜 어마어마 하다고 느낍니다! 근데 질문하나 있는데요~ 일본 전국시대 보면 기마부대가 있지 않습니까? 근데 일본의 말을 품종을 꺼내들면서 기마부대는 거짓이라는 분이 있어서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실제로 일본의 기마부대의 유무와 기병에 사용되는 말 그리고 그당시 일본전체의 말의 숫자 그리고 여몽전쟁 당시와 서양과 중국과 만주와의 교역으로 우수한 품종의 말이 일본에 수입되지 않았다는게 궁금하네요,,솔직히 저말품종이 다 동아시아 품종이라서,,우리나라 기병도 그닥일텐데,, 진짜 궁금하네요,.,,
일본 토종말의 체력과 덩치,스피드로 보병을 쓸어버리는 형태의 기마전술은 허구에 가깝다는 갓이 중론입니다.
실질적으로 기마부대는 전술 수단이라기 보다는 이동 수단에 가까웠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이 부분은 타츠오키(龍起)님께서 보족 설명 달아주실 것으로 예상됩니다.
@@samurairomance 다케다 신겐의 기마부대가 유명한걸로 알고있었는데 이것도 허구에 가까운가요?
@@ilovemath-MAISON4300 기병이 핵심 역할을 했다 하더라도 영화에서 묘사되는 모습은 허구에 가깝다다는게 중론인것 같습니다.
일본 토종말 크기가 어깨높이 기준으로 100~120cm 정도인데 자4은 말이 시속 20km ~30 km 정도 속도로 돌격해 오면... 당시 사람들의 작은 키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위협이 될만한 사이즈도 안되고, 말을 타고 전쟁을 치룰 정도의 고도로 숙련된 기술을 가진 자 역시 많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제각각 말을 타고 움직이면 지휘계통이 쉽게 전달되지 못한다는 점 등등으로부터 말을 타고 접근 한 후 말에서 내려 창 등을 들고 싸운 것이 현실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좋은정보네요^^
😎👏
가마꾼(주력이 상당한 전문인들) 이용자는 번의 '핵심인물'이 편지, 중요물품을 직접 전달했어야 하므로 개인형태의 히캬쿠는 제외할 수밖에 없고(타인이 가져다 준 것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해당 번의 핵심인물이(일반인 체력이므로 직접 이동은 불가능에 가까움)직접 내용을 전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력이 상당한 전문인 가마꾼에 의존해서 가야함. 일반 평지도 달렸지만 산맥이 있는 경우 산등성이로 달렸고 산등성이에 이들을 대상으로 한 우동가게 벤또집 또한 존재했다고 함. 현재도 산 속에(현대에 들어서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다 종료// 도쿄 - 시즈오카 구간)그 루트가 남아있음(한 팀이 계속 주파하는 것이 아닌 요소요소 그 지역에서 팀을 수배하는 형태임. 번이 많아서 그 옛날에도 이런 형태의 서비스가 존재)
지금은 NTT, KDDI, SB가 일본내 정보전달을 담당하죠 ㅋ
정확히는 어느 동유럽 국가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유럽전선의 몽골군의 보고서가 일주일 만에 칸에게 도착했다는 점을 볼 때, 단순히 말이 작은 게 문제는 아닌듯 합니다. 몽골의 말도 조랑말이니 아마 측대보와 같은 말 훈련법이 중요한 듯 합니다.
공적으로만 쓰는 조선이 몽골의 역참을 이어 받은 점을 볼 때, 마패의 말의 수만큼 제공되어 중간에 갈아탈 수 있었다는 점이 오히려 국가 통신망으로서는 안정적이었네요
90년만 지나서 법국과 교류가 있었다면 1시간 43분, 약 2시간 정도면 통신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텐데요. 그때 비전자방식 텔레그래프가 발명되었네요. 파리에서 릴 통신 구간이 225.3 km이고 1시간 걸렸으니, 도쿄에서 아코시까지 609. 2 km이니 약 1시간 43분이 걸리네요. 물론 알파벳이 다르니 어찌될 진 모르겠으나, 전기 없이 주간에만 가능한 통신이라면 어떨까 했네요.
뭐 빨리 전달했다고, 정신줄 놓은 사건을 막는 거도, 번에서 대비태세 갖춰서 싸울 것도 아니니 말이죠
유럽과 몽골 영토 사이는 스텝 및 평야지대라 말로 이동하기 편할 뿐더러 실크로드라는 도로망이 갖춰진 상태였고 몽골군은 이동할때 한번에 말 3~4마리를 같이 데리고 이동하다 타던 말이 지치면 즉시 데리고 있던 다른말로 바꿔서 이동속도를 계속 유지했기 때문에 그정도 속도가 나온거죠.
그리고 고려 및 조선의 역참제는 교통 통신망 역할로 사용되기 보단 조세운반, 중국 사신호송 목적으로 주로 쓰였고 말 관리도 역호=(마호)를 두어 백성들을 이주시키고 관군을 배치해 입마역을 부과했죠. 근데 항상 그렇지만 여러 부정부패 및 고된 노역으로 백성들이 도망가니 쉽지 않았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이트에서 검색해보시면 자세히 아실수 있을듯 싶네요. 결론적으로 조선의 역참은 통신 목적보다는 다른 용도로 더 많이 쓰였습니다.
@@invitebyte3278 뭐... 원제국이 방계인 칸국들보다 먼저 무너지게 된 원인도 역참의 입마역때문인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명의 건국도 한 몫을 했겠지만요
@@invitebyte3278 그리고 또 다른 용도로 암행어사의 동원 가능한 인력(?)이기도 했죠 ㅋㅋㅋ
일본 사극에선 어찌 다루는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극에선 전령이 말타고 오고 그러던데 그럼 말보다 사람이 빠른 상황은 일본에만 국한된건지 아님 다른나라도 그랬는지 궁금해지네요.
그건 그렇고 4,5일만에 저정도 거리를 주파하려면 사람들이 얼마나 체격이 좋은건지...ㄷㄷ
인력꾼들은 역참마다 바뀌었을테니 20~30km 정도만 달릴 수 있으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가마에 타는 사람이 오히려 죽을 것 같지 않았을까...
@@samurairomance 그러니까 영상속 표현을 빌리면 일류 마라토너 수준의 속도를 사람 실은 가마를 맨체 유지했다는게...마라토너들은 뭘 들고 뛰지 않으니까...그래서 놀란거...
우리나라에서 매년개최되는 역전마라톤대회 도 일본의 영향을 받은거라 볼 수있네요
"역전"이라는 용어 자체가 우리 고유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니까요.
야쿠덴!
아니 뒷이야기 알려주셔야죠.. 쥰나궁금하네..
뒷이야기라니요? 뭔가 마무리되다 만 것이 있는??
@@samurairomance 번주 사망이후 ㅋㅋㅋ 저곳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 ㅋㅋㅋ 진짜 그거없는거 답답
@@유진이-o3x 너무 유명한 이야기라 따로 암말안하신듯합니다.. 일본사 겉핥기로 배워도 충신장 모르는게 힘드니까요.
짱구 세계관의 택배 캐릭터도 백마가 이런 복장했지요. 조선도 이런 시스템이 후기에 생겨났지만 에도시대의 경우 조선에 비해 티오피급으로 발전했지요.
아.. 짱구에도 이런 그림이 나왔나보네요.
잠들면 굴러 떨어지는 하야카고는 현대판 총알택시 ㅎㅎㅎ
총알택시도 무서워서 잠 못 잠...과속에,신호위반에...ㅋ
10여 년 전 중국에서 택시타신 아버지 말씀으로는 바닥이 찢어져서 도로면이 보여서 타는 내내 긴장을 놓지 못하셨다했는데... 총알택시와의 비유도 매우 적절하네요.
달려서 사람 메고 ㄷㄷㄷㄷ
제가 대전 야구장에서 대구 북구 끄트머리 관음동까지 순수주행시간만 5시간 걸렸더랬습니다 ㄷㄷㄷ 밥도 먹고 물도 먹고...
안장에 다시 앉기까지 하루 정도 회복해야 하는데요.
주야 안 따지고 하루 100km 이상이라;;; 사람이 아니네요 저분들...
사람은 바꿔가면서 가는 것이지요. 역참(슈쿠바)에서 인원 교채 후 출발. 타는 사람만 그대로...
그나저나.. 뭔 일로 대전 야구장에서 사람을 들춰메고 5시간을...
한화이글스 팬이기에 역경과 고난을 묵묵히 씹어 드신 것은 아니신지요. 나는 행복합니다 외치며...
가마에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것이 아무리 교대를 하면서 간다지만 어떻게 말보다 지구력이 좋을 수 있지? 옛날 사람들의 체력이란 정말 상상 이상인 듯 해요
옛날 한국, 일본, 중국 농민들 흑백사진 보면 갸날픈 체구에 어마어마한 쌀짐이나 땔깜을 메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여서 깜짝 놀란다는... 메는 도구는 지게, 뒷바구니, 앞 뒤로 길게 늘어진 멜대 등 지역별로 다양해도 저 체구에 어떻게 저걸 멜까? 라는 생각에 아연실색하게 되더라구요. 현대인들은 신체의 기능을 극한으로 사용할 정도의 상황에 처하는 일이 별로 없으니 - 전문적인 운동선수를 제외하면 - 상상하긴 힘들긴 하겠죠,, 그런데 그렇게 일상적으로 신체기능을 극단적으로 사용하다보면 장수하긴 참 힘들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긴 해요
ㅋㅋㅋ 할아버지 세대만 해도 웬간한건 인력으로 해결하던 시대여서.. 저희 시골에 있는 오래된 물레방아도 다 인력으로 만든거라던데..
왜 비각들이 빤쓰만 입고 런 하는지 알것 같습니다. 저런 거리를 뛰라고 하면 더운데 땀도 나겠다 홀딱벗고 뛰는게 가장 효율적일수밖에 없네요. 게다가 일본은 한국보다도 여름이 무더운 나라이니
행군 40km하고 죽을뻔했는데 하루에 138km라니ㄷㄷㄷ
행군과는 다르게, 가마를 메고 뛰는 사람은 중간에 계속 교체되었기 때문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인계되어 시간절약에 도움이 되느냐가 관건이지, 인부들 1인당 실질적 이동거리는 행군거리에 미치지 못했을 겁니다.
중간에 휴식하고 잠도 자고 하면 좀 낫지만, 휴식시간이 짧을 경우 오히려 탑승자가 죽어날 것 같습니다.
역전 마라톤이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라는걸 배우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릴레이 방식이 매우 비슷하지요. 역전마라톤같은 릴레이 마라톤 개념은 히캬쿠 개념에서 출발해 일본에서 나온거라고 이야기하던데 일본이 세계최초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릴레이 개념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도 수백 킬로미터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이라고 있지요. 중간에 택시타고 이동하다 걸린 사람도 있고 했던 것 같은데...
10여년 전, 명동의 울트라 검도관애서 수련했을 때, 관장님이 울트라 마라톤 선수를 겸하고 계셔서 무한 체력 대련에 죽다 살아난 기억이 납니다.
무엇보다 명판에 큰 글씨로 써있는, "울트라 검도관"이라는 글씨가 쪽팔렸던...
말이 사람보다 느린게 아니라 에도 시대 일본의 역참시설의 미흡함이 문제였네요. 역마다 말을 상시 준비해두고 수시로 말을 바꿔타서 달리면 당연히 말이 더 빠르죠.
역참 간격이 가까우면 비용이 감당 안되고 거리가 멀면 사람과 시간차이가 별로 안났을 겁니다. 인간의 장거리 달리기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분들이 많은데 약 50~70km 이상의 거리가 되면 인간을 이길 수 있는 동물은 아마 없을 겁니다.
@@milchholstein884 중국 등 전근대 여러 나라들이 말을 이용하는 역참 시스템으로 장거리 통신을 했습니다. 몽골은 이 역참제도를 이용한 전령으로 하루에 수백km씩 달려 넓은 제국에서도 신속한 통신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몽골의 유럽 정벌당시 동유럽 전선에서 출발한 몽골 파발이 대도(지금의 베이징)에 이르는데 2주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350km 이상의 거리를 주파한 겁니다. 사람이 장거리 통신에 더 유리했다면 중국에서도 역과 역 사이를 말이 아닌 사람이 달려갔겠지요. 말은 매우 비싸고 귀했고, 그에 비해 사람 품삯은 저렴했던 일본의 환경 덕분이지 말보다 사람이 낫다고 일반화 할 바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agm1144 말을 비교적 구하기 쉬운 중앙집권국가에서 역참을 전국적으로 운용하며 중요한 공문서를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가성비 안따지고 운용하면 사람이 뛰어야 할 이유가 없고 더 빠르겠죠.
하지만 에도시대에는 수백개의 번이 에도에서 각 번으로 빠르게 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역참을 30km마다 두는게 비용과 시간단축 측면에서 해야 할 이유가 없었을 거라는 겁니다. 비용 줄이겠다고 50, 100km 간격으로 두거나 에도에서부터 말을 타고 가는 것도 별 의미가 없다는 거죠. 그렇게 말이 대중화 되어 있지도 않았고.
최근 유명한 혐일 유투버 롯본기김교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런 분이 있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만, 영상을 본 적은 없습니다. 일본을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지요.
일본넘들이 참 대단해요..
요즘 같으면 단체로 생활의 달인에......
세상에 이런일이에도...
예전에 중앙일보에서 경호역전마라톤대회라는 것을 열었었는데, 사실 역사적 근거는 일본이었군요...
많은 근대화의 유물이 일본에서 온 겁니다. 우리가 잘 모를 뿐이지요....
사가와 택배 한국에도 들어왔었죠 ㅋㅋㅋ
지금은 철수했나요?
@@samurairomance 이름바꿔서 영업하는거로 알고있습니다. 찾아보니 sc로지스로 이름이 바뀌었고 대한통운에 합병되었네요.. 아마 sagawa-cj 로지스의 약어인듯합니다.
이런점에서 몽고의 역참제가 대단하긴 하군요
몽고 역참제 언급이 많아 나오네요. 확실히 비교가 되는 부분이 있으봅니다. 혹시 몽고 역참제에 대해서 좀 상세한 정보가 있으시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samurairomance 제가 아는 선에서 말씀드리면 유럽이나 중원전선의 전리품이 집까지 집까지 탁송되고 명령서는 제국전역에 이주안에 송달될정도였다고 하네요. 일본 열도내 통신도 어려운데 대륙특송이 가능한 수준이면 영상에 비추어 볼때 엄청난 것이지요. 게다가 시대적으로 수백년 앞서 있었으니까요.
@@samurairomance 파발꾼 파발마가 일정거리마다 역참이란곳에 상주하고 릴레이 하는 방식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운송업은 항상 인력이 남아 도네요
옹?? 운송업이 사람이 남아도는 분야인가요??
사가와 택배의 마스코트인 그양반들이군요 ㅎㅎ
역참시스템이 가장 잘 갖췄던 나라 몽골임. 몽골에서 유럽전선까지 말타고 1주일이면 도착함.
영화 오니노츠메를 보면 번에 위급한 일이 생기자 에도에 있던 가로가 가마에 타고 급히 번의 성에 왔는데 내리자 마자 기진맥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이유가 있었군요..
하야카고 가마 생김새를 보면 탑승하는 것 보다 차라리 20km 정도 뛰고 교대하는게 나을 것 같아요.
제가왜?일본을 가깝고도 먼나라라고 하면요.
일본을 너무들. 모른다는겁니다.
유익하게 잘보고 있어요.
장관이란者가 죽창이나 운운.
프사하고 닉이 또 비뀌셨네요. ㅋㅋ. 일본 가깝고도 멀기도 하고... 두려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samurairomance 네ㅡ정치적인 댓글은 조심해야겠어요.
너무감사히 듣고있어요.
@@아나사스타샤 네. 감사합니다. 죽창...에휴... 21세기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요....
히캬쿠 사진 굉장히 멋진 옷을 입었나 하고 다시 봤더니 죄 문신이고 훈도시만 입고 있네;; ㅋㅋㅋㅋ
편지 전달비용이 비싸겠는데요
인터넷에서 검색한 내용을 비탕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에도(토쿄) ~ 오사카 구간 기준입니다. 비용은 한화로 환산하였습니다.
1. 나미빙(並便) - 출발 날짜를 정할 수 없음.
9일 배달. 6,000 원
2. 코오빙(幸便) - 출발날짜는 정기편이 정해져 있음.
9일 배달. 12,000 원
8일 배달. 20,000 원
7일 배달. 30,000 원
6일 배달. 320,000 원 (32만원)
3. 시타테(仕立) - 고객 물건, 편지 배송을 위해 즉시 출발.
6일 배달. 380만원
5일 배달. 450만원
4.5일 배달. 510만원
4일 배달.. 580만원
3.5일 배달. 960만원
2일 배달. 1,400 만원.
2일 배달. 570km를 2일 안에 주파. 평균 시속 12km로 달려야 가능하지요. 1,400 만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이지만,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부나 편지 한통을 위해 밤에는 2인 1조로 한 명은 등을 비추며 함께 달렸고, 약 70 명에 달하는 인원이 소요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용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막부말기, 사회혼란이 극에 달했을 당시 1,400만원 배송 서비스가 종종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참고사이트 www.edojidai.info
@@samurairomance고맙습니다.
몽골 거란 만주족은 그걸 해내는데 일본에서는 무린가 보네요
평화시대의 정보전달 수단으로 말의 활용도라는 측면에서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참에 말을 상시 대기시킬 수 없을 만큼 말이 부족한 것도 있고 일본도 산지가 대부분이라 말의 효율이 중국 지역보다 떨어지긴 할 듯 합니다.
@@마스터마구니-e7n 그런것도 있겠지만 단순이동 수단으로 말을탄 일본인과
어릴때 부터 말잔등에서 자란 유목민과의 차이는 있지 않을까요
하긴... 몽골인들은 말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보면 태생적으로 말 친화적 환경이 달랐을 것 같기도 하네요.
@@부엉이형-r8t 어차피 유목국가가 역참제도를 정비한 시점에서는 다민족국가가 되니깐 유목민족 만으로 역참을 구성하지는 않습니다. 뭐, 애초에 유목민들에게 혈통이라는 개념이 민족을 구분하는 개념은 아니지만요. (혈통이 중요하지 않은건 아닙니다만, 중요 가문 간의 우열과 정통성에서는 몰라도 단순한 민족 구분만 두고 보면 혈통은 그다지 따지는 편이 아닙니다.) 이 쪽은 나름 부전공이라서 잘 알죠.
극한직업이네
에어 쿠션 빵빵한 나이키 런닝화에 아스팔트도 아니고, 울퉁불퉁 흙길, 산길에 와라지(草鞋)라는 짚신 신고 달렸던 시대이니 더 후덜덜하네요.
몽골 제국은 말을 이용하는 전국적인 파발망을 운영했죠. 지구력이 뛰어난 몽골말의 특성, 여러 말을 갈아 타며 뛰는 기수의 능력 등도 영향을 줬겠지만 무엇보다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운영할 수 있는 중앙집권적 정부의 여부가 일본과의 차이를 만든 것 같습니다.
일본말 작은 것이 제주 토종마하고 비슷한 종 같아 보이는군요.
비슷할 겁니다. 어쌔까지 높이가 120cm 남짓이니까요.
저 시대 때 만약에 올림픽이 있었다면 일본이 마라톤에선 독보적이 었겠네ㅎㅎㅎ
역전 마라톤 등으로 마라톤 인구가 많은 것도 그런 역사에 기인하지 않을까 싶어요.
말그대로 하야cargo
오오. 말 되네요. 아이디어 쌈빡 !
ruclips.net/video/2p_v-KoJsd4/видео.html
츄신구라에 대한...
기묘한 이야기
조선은 호랑이,산적, 험한 산길과 혹독한 날씨, 가난 ,부폐 때문에 이런 시스템은 상상도 할수 없었음
네? 조선의 파발제라고 검색엔진에 쳐보세요.
ㅋㅋ 날조하지 마세요
일본 가마 수준이...
"일본 가마"라기 보다는 "하야카고 가마"인 것이지요.
산킨코오타이 또는 에도성 등성을 위해 고관대작이나 다이묘들이 이용한 가마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야카고를 고관대작이 이용할 리도 없죠. 아랫사람을 활용하는 것이니까.
목적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이니, 인부들의 체력문제 등도 고려, 그 목적에 맞게 가볍고 심플하게 설계됨이 정답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