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풍수] 제01화 "주세붕 1부 - 소수서원 ,백운동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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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4 ноя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5

  • @불사조-o6b
    @불사조-o6b 3 года назад +3

    저는 함안쪽인 아닌 창녕군 노리가 집성촌이라고 합니다 한번 봐주시겠어요!??

  • @불사조-o6b
    @불사조-o6b 3 года назад +3

    상주주씨 박사공파 20대손 입니다
    周成雄

  • @레드우드-q9q
    @레드우드-q9q Год назад +2

    소수사원 자리는 원래 신라시대 숙주사가 있었던 터라 합니다. 서원 입구에 서있는 당간지주는 부석사 당간지주와 같은 모양새로 숙주사의 것입니다. 둘 다 1964년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읍니다. 그곳에 있었던 숙주사는 과거 어떤 재난으로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건 아마 큰 홍수였을 것이다(그때에는 순흥저수지가 없었어요.) 원래 건물이나 마을은 냇가에서 벗어나 지어야 하합니다. 50년 또는 100년 넘어 한번씩 발생할 수 있는 홍수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또 소수서원을 지었다고 합니다. 당대의 뛰어난 유학자분들은 왜 그러셨을까요? 그 곳 하류에 위치한 무섬 마을도 큰 홍수로 마을 대부분 잃어 버렸던 역사가 있다 하던데^^^
    생각은 좋았겠지요. 그런데 물가에 서원을, 무섬마을을 짓는 현실감 없는 생각을하던 유학자들은 조선을 병들게 하고, 당시 백성들을 더욱 힘들게 했던 원인 제공자이기도 합니다.
    그분들이 우리 조상님 이시더라도...
    하여간 지나치게 유학자들을 칭송하는 자세는 우리가 가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글 읽으신 분 기분 나쁘게 하려 하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부디 헤아려 주세요.

    • @FightingKorea
      @FightingKorea  Год назад

      의견 감사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 @우리미술과문화
      @우리미술과문화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서원은 공부하는 곳이니 경치좋은 냇가 옆에 지으면 학생들이 공부하다가 머리 식히기 좋습니다. 소수서원만 그런게 아니라 다른 서원들도 대부분 그렇습니다.
      홍수라는건 자연재해이기 때문에 예측이 어렵죠. 평소에 대비를 잘해놓아도 비가 퍼부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그런 곳에 마을을 만들고 살았던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농사를 지을때도 물을 대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니 그랬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옛날 사람들도 다 생각이 있으셨겠지요. 조상들의 실수가 있었다면 후손들이 교훈으로 삼아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숙주사가 아니라 숙수사로 알고 있습니다. 숙수사가 없어진 이유는 홍수가 아니고 단종 복위운동의 실패에 따른 보복차원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