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은 부자들이 커가는걸 원하지 않아요. 돈 가지고서 자기들 꼭대기에 오르는걸 곱게 보지도 않고, 자기 라이벌과 한패가 되거나 아니면 돈의 힘으로 스스로 세력을 키우는걸 두려워하니까요. 오늘 나온 요도야, 제가 쇼군이라도 그 가게 제거했을 겁니다. 목재업은 그렇다쳐도 (시체벗겨 한거지만) 무기상인에, 시카고거래소 같은 오사카 미곡시장을 장악하질 않나 이젠 부동산개발까지 손대는데 그것만 해도 경계 대상이죠. 안보 식량 부동산 이 세 개는 다른 업종과 달리 오늘날 어느 나라나 신경안쓸수 없는 중요한 분야인데 가게 하나가 다 걸쳐 꽉 잡으면 신경 안쓰일리 없죠. 그런데 더군다나 다이묘들 상대로 돈놀이 해서 은 1억관이라.....화페단위 중국의 량과 일본의 관이 얼마나 차이나는지 모르겠지만 청일전쟁 후 일본이 시모노세키조약으로 청에게서 은 2억냥이나 뜯어내어 엄청 남는장사 했던거 생각해 보면, 고작 기업 한개가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거 보면 얼마나 위험하게 보이겠습니까. 돈을 매개로 난리를 획책하고 소동을 일으킨다면 큰일이지요.(일본이 쌀을 매개로 주식시장 비슷한걸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부자가 3대를 못간다란 말이 문득 떠오르는데 이번 영상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돈을 흥청망청 쓰는 사치 때문에 망하는게 아니라, 부자라는 이유 때문에 주변에서 질투하거나 위에서 제거하려는데 눈치 못채고 설치고 다녀서. 그래서 자기가 너무 큰 권력이나 금력을 가지고 있다면 조금은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부자들은 많이 기부를 한다든지 최고지도자에게 보낼 선물을 자주 한다든지 국책사업에 자금을 댄다든지 성의를 보이며 부를 적당히 덜어내는 모습을 보이며 "나는 당신들 아래입니다"를 어필해줘야 하는데 그걸 안하거나 못하면 망할수도 있단걸 알아야합니다. 경주 최부자집이 몇백년 유지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거죠. 요도야처럼 너무 세 불렸다면 오래 못갔을 것입니다.
푸틴이 처음 집권시 올리가르히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여론이 워낙 나쁜데다 자기도 언젠가 교체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거의 다 숙청을 해 버리죠. 올리가르히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고, 살아남은 자들도 눈치나 보면서 권력 주변에는 얼씬도 못 했죠. 로만 아브라모비치도 푸틴이 '그는 돈이 많다면서 월드컵 시설에 투자할 수 있다'라는 요청 아닌 요청에 즉각 투자를 감행했죠.
11:24 '권력이 언제든 부를 빼앗을 수 있다'는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와 더불어 만고의 진리 / 돈이 늘 권력의 눈치를 살핀다는건 현재진행형임. 과거 유럽의 메디치/후거/로스차일드 가문처럼 여러 나라에 돈을 빌려 줄 수 있는 상황까지 간다면 권력이 금력을 쉽게 누리진 못했겠지만, 일본국내에선 쇼군의 힘만으로 금력은 깔끔하게 정리가능하니까... 요도야 집안은 권력이 뭔가 부족할때 쉽게 보이는 특정세력 제거에 당한거라고 보임.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당시 오사카 출신으로 편성된 근위 4사단인가 하는 부대는 현대 중국인들마저 "평화를 싸랑하던 일본인들의 집단 ㅋ"이라고 조롱을 할 정도인데, 그 이유가 실은 "국가나 높으신 분들에게 이용당하기 싫어하는 오사카 사람들의 성향" 때문이었다지요. 이렇듯 너무 많이 수탈을 당해서구나 싶네요.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겸사겸사 가포수변공원과 입곡저수지를 드론 영상으로 담아 왔습니다. 비 내린 직후라 날씨가 너무 좋아서 정말 예쁜 영상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편집 완료되면 라이브 영상 intro로 사용하려 합니다. 남쪽 나라라서 따뜻하니 산책하기도 좋더군요 !!
중세유럽의 역사를 보면 세속권력인 왕이나 기사 심지어 신성로마제국황제도 너무 빈번하게 상인 가문과 무역동맹들을 닦달하더군요. 초단기적인 이익추구 또는 중장기적으로 이들이 정치집단화 하는걸 막기 위함이었겠지만 예측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사업의 지속성이 끊임없이 도전받았을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스페인 제국의 상공업자들이 있는데, 탄압이적은 유럽 국가들이나 지역 그리고 도시국가들, 탄압이 비교적 덜한 오스만 등에 비해 상공업의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극단적으로 낮아지게 됩니다. 가격혁명을 일으킨 당사자이면서도 그 이점이 도리어 단점이 된 것입니다.
@@samurairomance 조선후기 의주상인으로 청나라와의 무역(특히 홍삼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입니다. 대중적으로는 MBC드라마 상도(商道)의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큰집을 짓고 살다가 법에 맞지 않아 집이 헐렸다는 일화라던가, 곽산군수 구성부사 등의 관직에 발탁되기까지 했지만 반대를 받았다는 등의 일화가 있어서, 아무리 돈이 많았다 하더라도 전근대 상인들의 신분적 한계를 알 수 있다는 점이 일본 요도야 가문과 비슷하다고 여겼습니다~
조선시대거상 임상옥도 청나라랑무역 특히 인삼무역으로 큰돈을 벌음 그런데 그배경에는 순조에 외척인 외삼촌인 우의정과결탁해서 그보호하에 무역하고 장사했음 그래서 상인계급들도 상급사무라이인중앙관리들이랑 싫던좋던 결탁을 많이 했어요 옛날부터 정경유착은 항상 존재했음 밉보이면 끝이 안좋기때문에 단순히 장사만해서 부만 축적할수밖에 없음 즉 비즈니스가 필수였던것임
지금도 저런 일은 일어나지요. 권력이 바뀌면서 멀쩡히 해외 차관 약속 잡아둔 걸 왜 외국돈 쓰냐 국내은행에서 빌릴 수 있게 해줄게 해놓고 해외차관 취소하자 말 바꿔서 흑자도산 당한 특정지역 중견 건설회사들도 있고, 그 정권에 들러붙어 10년간 영화를 누리다가 정권 바뀌면서 또다시 철퇴를 맞은 기업도 있지요.
이야기가 좀 깁니다. 요약하자면 오사카 요도야는 망했고, 분점을 냈던 마키타(牧田) 가문이 후에 다시 오사카에 점포를 내고 요도야를 부활시킵니다. 보신전쟁을 앞 두고 마키타와 요도야는 갑자기 사업을 접어버리고 자취를 감추죠. 정리한 재산을 신정부 쪽에 기부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도쿠가와에 대한 복수였다는 이야기도...
저희 어머니가 장사를 하시는데 얼마를 벌든 간에 항상 엑센트 타고 다니시면서 검약을 강조하셨지요. 니가 상류계급도 아니면서 돈많은 티 내봐야 좋은 거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 돈을 탐내는 파리들만 꼬인다더군요.
너무 커져 버린 건 맞군요. 서부지역 다이묘 전원이 빚을 졌다니… 당대 일본 소득의 10% 이상 쯤은 쥐고 있었을 텐데 너무 위험한 거죠.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은 부자들이 커가는걸 원하지 않아요. 돈 가지고서 자기들 꼭대기에 오르는걸 곱게 보지도 않고, 자기 라이벌과 한패가 되거나 아니면 돈의 힘으로 스스로 세력을 키우는걸 두려워하니까요.
오늘 나온 요도야, 제가 쇼군이라도 그 가게 제거했을 겁니다. 목재업은 그렇다쳐도 (시체벗겨 한거지만) 무기상인에, 시카고거래소 같은 오사카 미곡시장을 장악하질 않나 이젠 부동산개발까지 손대는데 그것만 해도 경계 대상이죠. 안보 식량 부동산 이 세 개는 다른 업종과 달리 오늘날 어느 나라나 신경안쓸수 없는 중요한 분야인데 가게 하나가 다 걸쳐 꽉 잡으면 신경 안쓰일리 없죠.
그런데 더군다나 다이묘들 상대로 돈놀이 해서 은 1억관이라.....화페단위 중국의 량과 일본의 관이 얼마나 차이나는지 모르겠지만 청일전쟁 후 일본이 시모노세키조약으로 청에게서 은 2억냥이나 뜯어내어 엄청 남는장사 했던거 생각해 보면, 고작 기업 한개가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거 보면 얼마나 위험하게 보이겠습니까. 돈을 매개로 난리를 획책하고 소동을 일으킨다면 큰일이지요.(일본이 쌀을 매개로 주식시장 비슷한걸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부자가 3대를 못간다란 말이 문득 떠오르는데 이번 영상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돈을 흥청망청 쓰는 사치 때문에 망하는게 아니라, 부자라는 이유 때문에 주변에서 질투하거나 위에서 제거하려는데 눈치 못채고 설치고 다녀서.
그래서 자기가 너무 큰 권력이나 금력을 가지고 있다면 조금은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부자들은 많이 기부를 한다든지 최고지도자에게 보낼 선물을 자주 한다든지 국책사업에 자금을 댄다든지 성의를 보이며 부를 적당히 덜어내는 모습을 보이며 "나는 당신들 아래입니다"를 어필해줘야 하는데 그걸 안하거나 못하면 망할수도 있단걸 알아야합니다. 경주 최부자집이 몇백년 유지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거죠. 요도야처럼 너무 세 불렸다면 오래 못갔을 것입니다.
푸틴이 처음 집권시 올리가르히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여론이 워낙 나쁜데다 자기도 언젠가 교체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거의 다 숙청을 해 버리죠. 올리가르히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고, 살아남은 자들도 눈치나 보면서 권력 주변에는 얼씬도 못 했죠. 로만 아브라모비치도 푸틴이 '그는 돈이 많다면서 월드컵 시설에 투자할 수 있다'라는 요청 아닌 요청에 즉각 투자를 감행했죠.
저는 현재 일본 3대 재벌 중 하나이 미츠이 그룹 설립자인 미츠이 다카토시가 1600년대 1700년대 에도막부 시절 오사카 제일 거부로 알고 있었습니다.
선물 거래의 시초라 하니 사업능력이 대단했네요. 권력의 힘이란 예나 지금이나 대단하죠. 현대그룹 고정주영 회장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권력을 향해 본인의 위치를 알리려 했으니까요.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에도시대의 발전상이 조선이랑 비교되서 씁쓸하기도 하지만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는거 보면 그래도 결국 양국 다 사유재산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전근대시대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ㅋ
로마시대부터 민법을 통해 개인의 사유재산권이 철저하게 지켜졌던 서양과는 달리 이런 한계가 있던 동아시아
그래서 중앙관리들이랑많이결탁했어요 그옛날에도 접대라는 비즈니스문화가 항상 있었습니다
겟쇼를 당한 상인들의 이후 삶이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보험 들어둔 곳에 가서 평범하지만 그래도 부유한 삶을 살았는지 아지면 완전 서민으로 추락했는지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사실 저 정도 규모로 사업을 하는 가문이면 막부나 공가쪽에다가 연줄을 여러 개 잡아 놔야 하지 않았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과 권력의 이야기는 늘 흥미로운거같네요
논문 수준의 일본 에도 시대 재벌 이야기
잘 시청했씁니다. 🌻
컨텐츠 질도 높은데 스펙트럼이 정말 넓으시네요
늘 감탄하게 됩니다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다른 유튜버들과 달리, 뒤에서 자료의 출처까지 공개하시니 내용의 신뢰도도 더 높아지는 듯합니다! 항상 수고가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거의 대부분 일본책이기는 하지만 흥미있으신분들이 직접 찾아 읽으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대망에도 등장했던 그 상인이군요
오사카로 들어가는 목재 중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었을 만큼 위세가 컸다는데 말이죠
요도야 이외에도 무사 가문 출신의 상인이 많지요 ㅎㅎ
요즘으로 치자면 마윈의 알리바바가 금융분야까지 손대려 하자 시진핑이 조져버린 격이겠네요
덕분에 조금 더 이해가 쉽게 되었습니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매번 대단한 컨텐츠!
유튜버로서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돈을 빌려주기만 하면 안되고, 돈을 빌려받아두기도 해야하는 이유지요.내가 가진 빚은 나를 위협하는 적에게 위협할 수단이 된다는 거지요. 너 나 찌르면 돈 안갚는다? 하고 말이지요.
11:24 '권력이 언제든 부를 빼앗을 수 있다'는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와 더불어 만고의 진리 / 돈이 늘 권력의 눈치를 살핀다는건 현재진행형임.
과거 유럽의 메디치/후거/로스차일드 가문처럼 여러 나라에 돈을 빌려 줄 수 있는 상황까지 간다면 권력이 금력을 쉽게 누리진 못했겠지만, 일본국내에선 쇼군의 힘만으로 금력은 깔끔하게 정리가능하니까... 요도야 집안은 권력이 뭔가 부족할때 쉽게 보이는 특정세력 제거에 당한거라고 보임.
요즘은 매력이 모든 힘의 으뜸이 됨
권력자에게 밉보이면 어찌되는가..왠지 한국의 국제그룹 사건이 생각나네요.
전 특정 정치집단이 삼성을 못잡아먹어서 안달난 게 생각났어요 ㅋ
청나라 시대 중국에선 부임하는 관리들이 지방의 거상들을 어마어마하게 뜯어먹었지만 망하게 하지는 않았는데 일본은 살벌하네요.
호설암(胡雪巖), 성선회(盛宣懷) 및 장건(張謇)등 청나라 말기 아주 유명한 거상이지만
권력으로 한방에 거지 만들었음 아편전쟁 때도 광동 13행과 세계 부자 오병감등 한방에 감
@@xmadhkd 오병감... 포브스의 양아버지이자 아편전쟁 배상금의 1/3을 혼자 냈다는 그 전설적인 부자 말이군요.
단일국가에만 뿌리내린 개인은 권력앞에서 순식간에 개털이되네. 유럽 영국 신대륙을 넘나들며 초국가적인 경제력으로 권력위에 군림하는 로스차일드와 비교되네.
언제나 재밌게 보고 갑니다.
과유불급 돈을 어떻게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 즉
잘쓰는것도 중요하죠 노블리스
오블리쥬와 권력자들의 눈밖에 나지않는 처세술이 상인이 지속될수
있는 덕목
1억(億)을 10만으로 계산하는 한문 용법이 있으니 요도야의 1억관은 요즘으로 하면 2조를 좀 넘는 규모가 아니었을까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당시 오사카 출신으로 편성된 근위 4사단인가 하는 부대는 현대 중국인들마저 "평화를 싸랑하던 일본인들의 집단 ㅋ"이라고 조롱을 할 정도인데, 그 이유가 실은 "국가나 높으신 분들에게 이용당하기 싫어하는 오사카 사람들의 성향" 때문이었다지요. 이렇듯 너무 많이 수탈을 당해서구나 싶네요.
로망스님. 오늘도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처가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겸사겸사 가포수변공원과 입곡저수지를 드론 영상으로 담아 왔습니다. 비 내린 직후라 날씨가 너무 좋아서 정말 예쁜 영상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편집 완료되면 라이브 영상 intro로 사용하려 합니다. 남쪽 나라라서 따뜻하니 산책하기도 좋더군요 !!
@@samurairomance 아름다운 영상 부탁드려요.^^
So incredible!!
재밌네요 ㅎㅎ
인간사 다 똑같네요
잘 보고 갑니다
소설 대망을 읽고있어서 도움되네요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림이 너무 이쁩니다,,,,,,ㅎ
대마불사란게 옛날에는 통용이 안됫구나ㅜㅜ
프랑스왕 루이 16세가 바보천치였던게 얼마든지 저런 방법을 써서 귀족과 교회에게서 돈을 뜯어내서 재정난을 넘길 수 있었음에도 물정 파악하는 능력이 없었던 건지 가만히 있다가 제 목이 날아갔죠
18세기 중반 서구 금융시스템은 메이지 유신 이전 일본이랑은 다릅니다; 그런 짓 했다간 루이 16세의 목은 더 빨리 달아났죠.
왜 기를 쓰고 조선 후기 거상들이 양반 자리 꿰차려고 애썼는지 알 수 있는 사례군요. 인삼장사 김상옥도 홍경래의 난때 참전하여 조방장을 역임했었죠.
에도시대 상인하면 악대관이 생각나네요. 과자상자에 담은 금화를 대관에게 바치고 청탁하는 그 모습 ㄲㄲ "그대도 악하구려 / 아닙니다 아닙니다 대관님만 하시겠습니까?" 근데 암만 에도시대가 상업이 발달했다 해도 역시 칼잡은 놈들에게 비빌정도는 못되었군요.
무사 출신의 상인 유명한게 야마나카 시카노스케의 아들이 유명하죠
요도야 1대 당주 태합입지전5에서 본듯 하네요
초과이익환수제도 같아요 ㅋㅋ
중세유럽의 역사를 보면 세속권력인 왕이나 기사 심지어 신성로마제국황제도 너무 빈번하게 상인 가문과 무역동맹들을 닦달하더군요.
초단기적인 이익추구 또는 중장기적으로 이들이 정치집단화 하는걸 막기 위함이었겠지만 예측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사업의 지속성이 끊임없이 도전받았을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스페인 제국의 상공업자들이 있는데, 탄압이적은 유럽 국가들이나 지역 그리고 도시국가들, 탄압이 비교적 덜한 오스만 등에 비해 상공업의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극단적으로 낮아지게 됩니다. 가격혁명을 일으킨 당사자이면서도 그 이점이 도리어 단점이 된 것입니다.
왠지 우리나라 임상옥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ㅎㅎ 잘 봤습니다 ^^
임상옥이 누군지 설명해 주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samurairomance 조선후기 의주상인으로 청나라와의 무역(특히 홍삼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입니다. 대중적으로는 MBC드라마 상도(商道)의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큰집을 짓고 살다가 법에 맞지 않아 집이 헐렸다는 일화라던가, 곽산군수 구성부사 등의 관직에 발탁되기까지 했지만 반대를 받았다는 등의 일화가 있어서, 아무리 돈이 많았다 하더라도 전근대 상인들의 신분적 한계를 알 수 있다는 점이 일본 요도야 가문과 비슷하다고 여겼습니다~
그 당시는 조선 후기 나라가 어려웠던 세도 정치 시대라 조정에서 임상옥에게 돈을 빌리는 게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임상옥이 상인 신분으로 종 3품 관직을 받은 이유도 조정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서 대신 준 거라는 썰도 있어요.
왕에 외척이랑 철저하게 결탁했습니다 그래서 그보호하에서 무역도하고 장사도했음 그옛날에도 비즈니스접대문화가 엄연히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속담에 사람은 큰나무그늘에서 쉬어야지 편하다는말은 나한테 큰배경이 있어야지 안전된생활을 할수있다는말임
조선시대거상 임상옥도 청나라랑무역 특히 인삼무역으로 큰돈을 벌음 그런데 그배경에는 순조에 외척인 외삼촌인 우의정과결탁해서 그보호하에 무역하고 장사했음 그래서 상인계급들도 상급사무라이인중앙관리들이랑 싫던좋던 결탁을 많이 했어요 옛날부터 정경유착은 항상 존재했음 밉보이면 끝이 안좋기때문에 단순히 장사만해서 부만 축적할수밖에 없음 즉 비즈니스가 필수였던것임
권력이 돈을 뺏고 재벌을 좌지우지하던 5공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네요. 이제는 금력과 권력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되었지만요..
구독 시마시타 헤
오늘 얘기 보면서 전두환정부가 아작넨 국제그룹이 떠오르네요 ㅠ ㅠ
아싸! 1등!
자본주의 사회 들어와서 부에게 권력이 주어진것 같네요 ㅋㅋㅋ 권력없는 부는 어떻게 되는지 중국에서 볼 수 있죠 ㅋㅋ
판빙빙...
일본을 처벌이 잔인하네요
토지 몰수나 재산 몰수라니 ㅠㅠ
능력이 있으면 신분에 관계없이 부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결국 "피지배층"이라는 핸디캡이 이런 곳에서 크게 한 방씩 터지는 거죠.
@@samurairomance 어떻게 보면 조선 시대가 평민으로서는 괜찮을 수도 있겠네요
안되는 건 많지만 세금은 약하니까요
그렇게 잔인한 처분은 꺼리기도 하고
재미있어요 사무라이가 신분이 낮은 상인이
되다니, 한국 같으면 재벌가가 정치 권력층과
사돈을 맺거나 검찰계통과 끈끈한ㅊ관계를
맺는 방법이 있는데..
지금도 저런 일은 일어나지요. 권력이 바뀌면서 멀쩡히 해외 차관 약속 잡아둔 걸 왜 외국돈 쓰냐 국내은행에서 빌릴 수 있게 해줄게 해놓고 해외차관 취소하자 말 바꿔서 흑자도산 당한 특정지역 중견 건설회사들도 있고, 그 정권에 들러붙어 10년간 영화를 누리다가 정권 바뀌면서 또다시 철퇴를 맞은 기업도 있지요.
일본이 현대에도 저 겟쇼를 안할까??? 난 아니라고 봄... 일본이 지금 채무가 엄청나게 증가해도 별 걱정 안하는건 저 겟쇼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봄.
이미 패전이후에 한번 기업들한테 빌린돈 거하게 떼먹었어요ㅋ
@@ELBUG-ku1iq 메이지 유신 이후 저 겟쇼 같은 예금 몰수를 2번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략 주기가 60에서 70년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하는거 보면 곧 한번 더 할거 같기도 합니다.
@@liddel382 일본의 노인들이 집에다 금고를 두고 현찰을 보유하는 이유가 바로 2차 대전 시기에 예금 몰수 한 일을 기억해서 그렇다고 하네요.
2등
그럼 요도야 가문은 이 일로 완전히 망해버린 건가요? 그 이후에 이야기도 좀 알려주세요.
이야기가 좀 깁니다. 요약하자면 오사카 요도야는 망했고, 분점을 냈던 마키타(牧田) 가문이 후에 다시 오사카에 점포를 내고 요도야를 부활시킵니다.
보신전쟁을 앞 두고 마키타와 요도야는 갑자기 사업을 접어버리고 자취를 감추죠.
정리한 재산을 신정부 쪽에 기부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도쿠가와에 대한 복수였다는 이야기도...
@@samurairomance 아무리 빚을 갚기 싫어도 그렇지. 대놓고 정부에서 도적질을 하다니! 너무 하네요.
동쪽의 혼마 가문이 자기네 번에 통 크게 돈을 쓴 이유도 아무래도 정부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네요.
궁금한게 가이에키로 짤리는 다이묘가 있으면
반대로 새로 임명되는 다이묘도 있었나요?
네 당연하죠. 새로 임명되는 경우는 주로 후다이 다이묘가 은퇴하면 좀 떼서 영지로 주거나, 도쿠가와 가문의 방계에게 주거나, 아니면 에도에 가까운 후다이 다이묘를 전봉을 시키고 하타모토들한테 떼어주고 그랬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