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 일문과 출신인데 저 시절 부산 일문과 연합 체전이 산업대(경성대)에서 열렸다. 체육대회를 마치고 저녁에는 노래 대회가 밌었다. 그 때 산업대 여학생이 담다디를 불렀다. 그냥 가수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 때 산업대의 진짜 실력자는 나오지도 않았다. 그녀는 바로 전유나 저 시절 부산은 정말 대단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부산 80년대 부터 광장에서 스트리트 댄스가 대유행이었다. 지하철 용두산 공원 공간만 있으면 초중고 가출애들 다 모여서 광장서 힙합 댄스 뒷날 비보이 댄스 등 경연 대회 자유롭게 하고 그랫지. 그게 훗날 힙합과 BTS 등으로 발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이들과 건너건너 연결되어 잇던 학생이엇고 노래 동아리 활동햇엇슴다.. 1. 부산은 한국 제2의 도시로 문화적 욕구가 넘치는 도시입니다. 부산 특유의 정서라 할 수 있는, 감정과 감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기질이 좀 쎄요. 2. 뭔가 한 방 해야겟는데, 당시 가요제가 유일한 탈출구엿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동아리에 들어가서 단순하게 노래를 즐긴다는 생각보다, 가요제 준비하는 분위기가 아주 강햇습니다. 동아리 내에서도 팀 짤 때 경쟁이 심햇어요. 3. 은근히 대학 끼리의 경쟁도 한몫햇구요. 어, 저 대학 애들 입상햇네, 우리도 질 수 없지 .. 이런 ㅎ 4. 그런데 입상하고 나서 조금 티비에 나오다가 대부분은 가라앉아요. 서울 출신들과는 다른 현상이엇죠. 당시 서울에 살고 서울에 연고랑 연줄이 잇던 사람들은 그래도 활동을 이어나가기 쉬웟습니다. 지금과는 다르게 서울과 지방 차이가 컷어요. 노래 실력으로 치면 떳어야 할 친구들 많앗어요. 그러나 그런다고 다 가수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그게 인생입디다 ~~
그 당시 부산에서 학교 다녔던 사람입니다. 거의 모든 학교에 록밴드 동아리와 저런 가요동아리가 엄청 많았습니다. 동아리방 쪽으로 가면 항상 노래소리가 끊이지 않았었습니다. 거의 대부분 그런 동아리 출신들이더라구요. 옛날 생각나네요 ㅎㅎㅎ
저도 부산출신입니다 ㅎ
저두요 ㅎ
여운이 경성대 통기타 동아리 이름이였죠
88년 고딩 설악산 수학여행때 여관 마당에서 학교그룹사운드 한가람 공연때 떼창하면서 놀던 기억이.... 맞은편 여관의 밀양여고 애들도 창문에서 떼창을..
동아대노래의메아리 크레파스 동아리건물에 음악이끊이지않았어요 2004년때도유
[78년 2회 대학가요제 대상]
썰물(부산대) -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노래들도 하나같이...명곡!들~~~
마자요
우리나라 에너지가 집중되어있는 부산~
그래서 좋은그룹도 많음!!
진짜 좋은 노래가 많이 나오던 부산출신들...그시절이 그립네요.
저곡은 여운의 홀로된사랑하고
세트메뉴
둘다 너무 경쾌하고 좋아요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경쾌하고 신나는 느낌이죠!!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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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재의 진실이야 맞습니다.
여운 홀로된 사랑은 홀로 인듯한 외로움 달랠 길 없어~
전 86학번인데 오죽하면 저도 대학가요제 나간다고 당시 정동 문화방송국에서 예심을 보고ㅋㅋ 떨어져서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하하
따스한 봄날에 동의대 언덕에 오르면서 흩날리는 벚꽃 잎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조은 노래가 나올 수 밖에 없지..
고바우 오르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그 당시 부산의 여러 대학에는 음악 써클이 참 활발 했지요... 그 중 동의대 무드라는 음악써클은 그 실력이 출중했지요.. 학교 가요제에서 대상 받으면 본선 대학가요제는 입상을 따논 당상이라는 말이 나올정도 ... 대단했어요
대학의 낭만이 있던 시절 입니다.
2회 대학가요제 대상곡 부산대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와 부산 먼데 미쳤네 진짜 웬만해선 부산에서 명함을 못내밀정도네 대단하다 정말 ㅎ
예 자료를 찾을 수록 더 대단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겨울에도눈은몇면마다온데요!
우와~ 꼭 묻고 싶었던 제제 가수 이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혜빈 목소리 너무 매력적이에요. 너무 좋아하는 노래 진실이야.
진짜 부산 출신들이 휩쓸었네 80년대 대학가요제
오래간만에 듣는노래 진실이야 !
중독성있네요
그당시 부산 음악동아리들의 경쟁이 그만큼 치열했다는 증거ᆢ
키야~~~ 상당히 설득력이 있네요. 이정도 분들이 예선을 통과하려면 어느정도의 인프라가 있어야되는지 짐작이 되는 부분입니다
와우 진실이야 이 노래도 제가 참 좋아해요 진짜 묘하게도 부산출신 강변가요제 대학가요제 출신들이 노래를 너무나 잘하는것 같아요
예 노래도 잘하고 곡도 참 좋아요~~ 댓글 감사합니다~~~
지금도 부산출신 연예인들 많잖아요
부산은 산이고 바다고 놀러갈곳도 많아 학생들 공부에 집중하기도 힘들어요
ㅎㅎㅎㅎㅎ
부산이 부산했다!
그시절 해운대나 광안리 가면 백사장에 둘러 앉아서 술마시며 기타치고 띵가띵가 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음..
@user-bt3tu9nk1u낭자 까데기 받으시오.
@user-bt3tu9nk1u 당사자 입니다 ㅋ
@user-bt3tu9nk1u그랬네요.ㅎㅎ
어린 시절 어찌 한번 해보려고. 까데기ㅋㅋ
그리운 시절이네요
낭자~~까데기 받으시오~~ㅋㅋㅋ
저 당시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의 본선보다 지역 예선이 더 경쟁이 심했습니다.
특히 부산내 여러 대학교의 음악 동아리에서는 여러 팀들이 참가하기 위해 동아리 연합을 결성해 따로 출선 팀을 정할 정도로 많은 팀들이 있었습니다.
신이 부산에 노래를 주고 야구를 가져가셨네요
ㅋㅋㅋ
부산사람 동감~
신발끈 92년 우승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그넘의 명문구단? 개나 줘라 ㅎㅎ
야이 나쁜 사람아 ㅎㅎㅎㅎㅎ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대단했네요
부산 젊은이들이 감성이 풍부하고 정의를 갈구하던 시대였음 영화 말죽거리잔혹사 보다 더 추억이 많앟음~~
니니 안창마을 아나
부대 일문과 출신인데 저 시절 부산 일문과 연합 체전이 산업대(경성대)에서 열렸다.
체육대회를 마치고 저녁에는 노래 대회가 밌었다. 그 때 산업대 여학생이 담다디를 불렀다.
그냥 가수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 때 산업대의 진짜 실력자는 나오지도 않았다.
그녀는 바로 전유나
저 시절 부산은 정말 대단했다.
그당시가 진심그림습니다ㅠㅠ 60을 바라보며... 대학교 축제도 그립고요~부산대.동아대.산업대.부산외국어대.동의대 애들이 노래를 잘부르네요...😅
그당시 바닷가 모닥불 피우고 통기타로 밤새 노래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음. 해수욕장 노래방이 활성화된 유일한 부산
통기타 동아리에서 진실이야 &바다새를 목푸는 곡으로 썼는데 아~ 그때가 기억나네요
통기타 동아리!!
그때 이 곡들로 목을 푸셨군요~~~
추억의 한 페이지를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당시 가수들은 모두 시인이었음
와~~ 맞는 말씀이네요
시처럼 멋진 말들도
가사를 썼으니까요
그만큼 부산 학생들은 공부보다 노래를 사랑했다.
노래방이 부산에서 시작했음. 동아대 앞에서...
@@michaelSeol 몇년도
동아대앞에서 했나요? 부대에선 91년도에 생겼는데 노래방.
@@하나-t1t 여기도 91년도에 생겼었습니다. 로얄전자오락실. 동전을 넣는 형태의 기계였다는군요. 여기가 최초 맞습니다.
@@michaelSeol 부대에선 오락실이 아니고 동전노래방.
이런 멋진곡이 우와 이곡 색소폰으로 불어 보고 싶어요
부산출신이 싹슬이 햇었죠~나도 부산출신이라 방송보면서도 항상 뿌듯함이 있었는데
부산은 일본과가까워서 발전 자체가 매우빨랏고 그당시에는 영남권경제발전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보니 일본문화 그리고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남달라 유능한예술인들이 많이 나올수밖에 없엇습니다~즉 경제발전의 선수적 효과입니다
가라오케도 부산에 유행처럼 생기고나서리 서울로올라간 케이스
80년대는 가라오케 90년대 이후 건전한 분위기에 노래연습장이 처음생겼고 도우미 출현할때 부터 술을 팔수있는 노래방 개념으로 분류가 됐었죠 ㅋ ㅋ
예전에 어느애가 그러더군요. 그어디가도 들어본적이 없는데 부산가면 서울을 촌놈취급한다고. 그래서 그랬죠. 컴퓨더도 없는 시절 그나마 선진문물이라는 일본문화가 제일 먼저 들어오고 유행을 선도하고 부산인데 다른 도시사람들이 촌놈으로 보이는건 당연하다고
맞읍니다~ 가라오케도 부산에먼저 퍼지고 난다음 서울로퍼지고 쭈루륵 소도시로퍼졌죠~
맞아요ᆢ그시절 웨딩사진 .패션등 모든것들이 일본에서 부산을거쳐 전국으로 퍼져 나갔어요ᆢ
부산 사람들은 동네 부심이 타 지역 사람들보다 훨씬 큰것도 한 몫
그랬던 부산이 지금은 쇠락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
공감
이때는 동의대가 강변가요제 씹어 먹었던 시절이네
당시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에 부산출신들이 많이 입상하니 안동 고3 반친구가 강변가요제 나가겠다고 부산 동의대인지 동아대인지 원서내겠다고 우겨 담임선생님이 넌 안된다고 잔소리했던 기억이 나네. 완전 농땡이에 성적이 거의 꼴찌였던 애였음.
부산 경상도 쪽이 유명작사가 작곡가들이 많다
무뚝뚝한 말속에 은근 풍류를 즐긴다
동의대 정말 대단했다.
맞습니다 어떻게 이런일이? 싶을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부산지역 대학교 각 학교별 동아리뿐만 아니라 연합 동아리도 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부산 통기타 연합써클 동그라미
대학동아리는 부산외대 미네르바,경성대 여운
동의대 mood, 부산대 썰물...
그룹사운드는 수산대 모비딕
기억납니다
썰물 리더싱어 잘계시는지?
바다새도 명곡입니다
저땐 부산에 인구가 정말 많았고 뛰어난 인재들이 모두 서울로만 가지않던 시절이었음.
이노래 형이듣던 가요테이프 듣다가 알게됐는데 기억에 자꾸만 맴돌더라구요.. 계속듣다보니 아주좋아하게됐습니다ㅎ
부산이.흥이.믾고..동전 노래방이.한극서 젤 처음 들어왔다.. 80년대 중후반 노래방
부산이 대단했지
오늘도 출첵
출첵 환영합니다~~
^____^
다시 대학 가요제 부활 시키자~~
참 낭만이 있어는데~~
아름답기 까지~~
그립다~
노래방이 제일먼저들어와서 먼저 자기소릴듣게된거죠 ㅎ
정답 ~~~~~
뭔소리냐 저당시엔 노래방이란게 없었다.
30년전원탁 가라오게가 지금노래방 입니다 가라오게랑 코인노래방이 저때 첨들어왔었답니다
@@아비오-d7k 모르면 좀 배우시고
@@jmtube111 가라오케랑 노래방은 다른거란다. 가라오케는 룸이 따로 없고 그냥 무대 나가서 부르는 시스템이야. 그리고 가라오케는 주류 판매를 같이 해서 학생은 출입불가다. 시스템이 다른걸 뭘 지금의 노래방이랑 같다고 우기나? 저런 가라오케에서 노래연습이 되겠냐?
Excellent
아무래도 여러 문물이 빠르게 접하죠 부산이 또 새벽에 듣을수있는 am 라디오 일본 방송 bs1 bs2
등등 많았음 동의대 가 또 대모로 유명함 가창력은 기본 에코 1도 없는 마이크 에 생노래 부르기 잘할수 있는 조건과 연습이겠죠
@@이재원클라써
1. 지리적 이점 : 문화, 문물 습득이 용이
2. 다양한 방송 : 국외의 방송 청취 가능
3. 스파르타식 시스템 : 가창력이 좋을 수 밖에 없는 환경
감사합니다~~~
사투리가 강해서 노래부르는 소리가 다른지역사람보다 성량이 좋음 ㅋㅋ
풋풋한 20대초반 젊은이들이
저렇게 프로페셔날틱한감성을
뿌어내다니
당시 노래 상당수가 높은음자리 김장수 작곡 동의가요제 수준이 대학 가요제보다 높았다고 함
거의 예비역 김장수곡
구리쪽에서 라이브카페하시는 김장수사장님!
그때가 그립네요!
대학가요제 부활되길👍
이분들 다들 궁금하네요, ^^
대상 문희경(현재 배우), 금상이 제제, 은상이 여운 이네요? 우와~ 87년 강변가요제 화려했네요. 백희님 감사합니다. 요래 찾아보며 그시절 감성을 느껴보는게 진실일지도~ ^^ ❤❤❤❤
예 정말 87년이 화려했지요~~~~ 그 시절 감성을 느끼는 마음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에 문희경배우님이 가요제대상이란거 알게되고 깜짝 놀랐었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부산 80년대 부터 광장에서 스트리트 댄스가 대유행이었다. 지하철 용두산 공원 공간만 있으면 초중고 가출애들 다 모여서 광장서 힙합 댄스 뒷날 비보이 댄스 등 경연 대회 자유롭게 하고 그랫지. 그게 훗날 힙합과 BTS 등으로 발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예 정말 잘 몰랐던 부분입니다.
특히 스트리트 댄스 부분이요.
좋은 이야기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시 이들과 건너건너 연결되어 잇던 학생이엇고 노래 동아리 활동햇엇슴다.. 1. 부산은 한국 제2의 도시로 문화적 욕구가 넘치는 도시입니다. 부산 특유의 정서라 할 수 있는, 감정과 감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기질이 좀 쎄요. 2. 뭔가 한 방 해야겟는데, 당시 가요제가 유일한 탈출구엿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동아리에 들어가서 단순하게 노래를 즐긴다는 생각보다, 가요제 준비하는 분위기가 아주 강햇습니다. 동아리 내에서도 팀 짤 때 경쟁이 심햇어요. 3. 은근히 대학 끼리의 경쟁도 한몫햇구요. 어, 저 대학 애들 입상햇네, 우리도 질 수 없지 .. 이런 ㅎ 4. 그런데 입상하고 나서 조금 티비에 나오다가 대부분은 가라앉아요. 서울 출신들과는 다른 현상이엇죠. 당시 서울에 살고 서울에 연고랑 연줄이 잇던 사람들은 그래도 활동을 이어나가기 쉬웟습니다. 지금과는 다르게 서울과 지방 차이가 컷어요. 노래 실력으로 치면 떳어야 할 친구들 많앗어요. 그러나 그런다고 다 가수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그게 인생입디다 ~~
우와 진실이 밝혀진 것 걑은데요? ^___^
댓글 감사합니다!!
내가 초딩땐데 나도 느꼈음..당시 강요제 유난히 부산출신 노래가 힘있고 강렬해서 초딩들도 따라 불렀음. 오히려 마지막 이상우는 전통적인 부산분위기는 아니였음. 서울스타일 발라드
전국에서 노래 잘하는 학생들이 부산으로 다 몰려 들었지 우리 모두 부산가서 노래 부르자 부산으로 가면 된다라고 외치면서 부산으로 몰려 들었지 부산 출신이 많은 이유가 되었지 정말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은 대회에 참가 하여서 상을 많이 받아 왔지 정말 대단했다
고등학교도 부산 의 독주.
88년도
제1회 고교생가요제
부산 소년기공 4인조중창단 금상.
현장에서 대상으로 발표되었으나
학교특성으로 인해 2등으로
수정된 전대미문의 해프닝.
동의대가 대단했죠
저 노래만 동의대고, 경성대 '여운'음악동아리 출신들이 대단했던걸로 아는데?
부산대 밀물과 썰물
동아대 이상우
경성대
동의대
등등..
여운은 홀로된사랑
동의대 무드는
높은음자리,제제,도시의그림자,소꿉친구,바다새,밤에피는 판수 ㅎㅎ 등등 거의 휩쓸었다 봐야됨
@@김김남우-f7m네..그당시 무드들어가기위해 동의대 지원한 사람들도 꽤 있었죠..내친구도요
한가지 궁금한게 있어요!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느껴지는 노래는 혹시 없을까예?
^___^ 요즘 노래 중에는 간혹 있습니다.
한곡 추천 드릴까예? ㅎㅎㅎㅎ
ruclips.net/video/r6z1KvAbp8s/видео.html
오홋? 저는 딱 이 노래 생각나던데
ruclips.net/video/CON6PaUq90o/видео.html
저시절 동의대 밑에서 코인노래방 최초로 우리가족이 했답니다
상큼발랄.시원함이묻어난다.애써꾸미고가꿈없이.순수함도보인다.
미투입니다
아름다운 시절이여~~~
78년도 대학가요제 대상, 부산대 "밀려오는 파도소리에"도 기억나네요.
남쪽 사람들이 바닷가 파도속리처럼 목소리 득음한 사람이 많음~
신라 후손들,,,
일본과 가까웠기에 가라오케가 부산에서 번성 했지요.
이 제제 노래는 좋네요 근데 요즘 방송에 보이는 제제는 완전 뽜야
전국노래자랑 부산시 경산도 편에서보면,,
확실히 이쪽분들이 노래잘하셔..!!
내가 대학1학년때이네요! 이때가 그립습니다! 젊은이들도 많았고 모든게
부산 애들이 목소리가 크거든 그냥 이야기해도 싸우는거 같음 생활 자체가 보컬 트레이닝
맞아!
ㅋㅋㅋㅋ
반박불가한 진실
ㅋㅋㅋ
진실이야
80년대 가요제..그리고 지금 소개된 팀중 많은 팀이 부산 음악동아리 무드 출신들...
작금의 부산은 큰기업 공단이 사라지고 소비 대도시로 80년대 일본에서 직수입한 가라오케 음주가무 르네상스 였죠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일본의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76년생인데, 부산 출신 형, 누나들이 상을 타니 저희 아버지왈 "부산 사람들이 생선을 많이 먹어서 성대 좋아 노래를 잘하는기다." 라고 하셨어요.
말도 안되는 말씀이였지만 진짜 그때는 부산사람들이 다 휩쓸었어요.
딴거없고..부산사람들이 노래를 잘불러
부산예선 통과가 서울본선 입상보다 어려웠던 시절.
대한민국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이 국제대회 입상보다 어려운것과 같지
경성대가 유명했죠. 대부분 음악동아리에서 활동한걸로.
79학번인데 티비에 일본방송이 나왔고 쮸쮸바 광고 일본광고 똑같이 우리나라서 카피한것 ?기억이 아물아물 하넹ᆢㄷ
부산 출신이 대학, 강변가요제 휩쓸던 시절인데 가창력 원탑은 도시의 그림자가 아닐까...
대학 그룹 사운드와
학교 축제때
가수 초대보다는
각 대학 그룹 사운드들이
초대되어 인기를 많이 끌었죠.
키야~~~ 각 대학의 그룹사운드들이
초대되어 공연을 했군요~~
그런 분위기가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 수상의
큰 밑거름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부산이 저때 수입금지되었던 일본 문물이 많이 들어와서 그 영향도 있었을거같음. 표절 그런 얘기가 아니라 당시 문화의 르네상스였던 일본의 다양한 음악과 만화 등을 접할 수 있어서 아무래도 수준이 높아질 수밖에.
8090년대 유명 만화가들도 경상도 쪽에 많았고.
제생각에는 그때 부산이 일본방송을 볼수있어서요 저는 서울살아는데 부산가서 일본방송을 처음봐서요 기억이 너무 생생합니다 다른나라문화을 볼수있는기회가 없어는데 부산는 달라서요
와, 정말 신기하네요! 부산에서 일본 방송을 보셨다니! 😮
부산사람들의 호탕하고 흥이 많은 기질이 가수나 배우를 많이 배출해 냈던것 같아요~~
맞아요~
나훈아. 정훈이. 문주란. 등등
확실히 바닷가 사는 사람들이 감성남다름
동아리들이 많았으면 아무래도 이득이 있겠지 ~ 평상시 연습을 밥먹듯이 하니 실력들이 좋아지는건 당연 ~ 노래방이 많아지니 시민들이 잘 불러지는거와 같은거 ~
당시 부산엔 통기타 써클 MOOD가 있었지.
이게 진실이야.
무지 예쁘시다❤
노래들이 모두 창의적이어서 놀라움
도시의 그림자..아 옛날이여
제제도 도시의 그림자도
참 멋진 분들입니다.
이 머선일이고, 도대체가!!!
지금은 노인과 바다밖에 없는 부산이지만 그 당시엔 대학가요제 수상자들이 참 많았죠ᆢ
그때 울 나라 대무역의 시대..그 중심지는 부산..
그때가그립다
높은음자리대박곡이지요
먹어본 놈이 안다고 상타본 선배들 노하우가 전수 된거지....
김화란님 다시 노래하고싶어하는데 방송국 누가 이끄러줄사람 없을까요?
김화란님 연락처가 있으시면 꼭 알려주십시요. 부탁드립니다.
80년대 일본 문화의 첫발이 부산. 구체적으로 음악계의 작곡과 발성, 기타등등..
70 80년대 대중예술중 음악과 패션은 일본의 영향력이 매우 강했어요
부산과 경남 일대는 일본음악과 패션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곳이라 당시 미군방송 AFKN으로 대변되는 미국 영향력과 더불어 가장 먼저 유행을 선도하는 곳이었죠
이건 당연히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봐야죠
부산출신인데 그대 그동네 노래써클 들어 가기도 경쟁이 치열했고 지금 기획사 처럼 스파르타식으로 가수 만들었음
저 패션 지금 입어도 멋지겠어요 유행은 돈다더니 세련되보이네요
와~~ 저도 그 생각을 했거든요.
제 눈에만 멋져보이나~싶었죠.
댓글 감사합니다.
나도저때대학생😂
와~~ 저 당시에 대학생이셨군요~
그야말로 시대와 함께 해 오셨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부산 사투리 목청 좋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