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장면에서 나무 판자 켜켜이 세워서 울타리 만들어 놓은 것 보고 북한관련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북한 어느 지역인줄 알았다 함경북도 회령 이런데 모습이랑(비록 티비에서 본 것 뿐이지만) 비슷해서 놀랐다 그래도 저시절에 저기 살던 사람들중에 상당수는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서울에 집도사고 자식들 서울로 유학도 보내고 했다던.... 지나가는 개도 만원짜리 물고 다녔다던 동네.... 새삼 대한민국이 많이 발전한것을 느낀다
도계 사택촌은 다수가 현재도 도로를 제외하고는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있고,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이런 사택촌은 철거하지 말고, 근대문화유산으로 남겼으면 좋겠네요. 지나다닐때 보면 풍경이 참 운치있고, 낭만있어요. 레트로 감성으로 카페 같은거 만들어서 활용해도 좋을 것 같고...
지금의 기준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 석탄업 활황기의 광부 급여는 요즘 현대차 생산직 못지 않게 높은 수준이었다 들었습니다. 나름 고소득 직종이었던 것 같은데 영상 속 주거지는 왜 저리 하자가 많아 보이는건지요? 전성기를 지난 시기에 촬영해서 그런건지... 잘 이해가 안가서요.
이젠 거진 다 없어지긴 했지만 저쪽으로 지나가다 보면 가아끔씩 빈집들이 보이긴 하죠. 그런 빈집도 사람이 살았었다는걸 보니 시간이 많이 흐르긴 흘렀네요.
40년전 옛추억이 나의 어린적에 그립네요.
친구도 보고 싶네요.
몇년생 이신가요
@@py7076전는61년생62입니다
전 어룡제2사택 저기 동네 살던사람 태어나서 다떠날때 까지 사택에서 머물었지요 20년가량 있다가 군대가면서 집도같이 경기도 구리로 이사같죠 구리에 형님이 맥콜 공장 취업하면서 참 그립고 보고싶네요 국민학교 학생수가 너무많어서 황지국민학교 가 태서국민학교로 나누어 지던시절 저때는 학생들이 너무많어서 하나만 나서잘 기르자 현수막도 생각나네요 태서초등1회졸업생 되고 참모교도 가보고싶고 저때살던 친구들 보고싶고
70년생 이라 탄광 흥하고 망하는걸 다보고 격은 사람
에효 다시 돌아가고싶네요
못살어도 좋왔던 시절 에효 보고싶다 모두들
태백 살 때 비슷한 곳에서 살았는데 공중변소 가는 게 제일 싫었죠. 그래서 그냥 산에 올라가서 쌌음 ㅎㅎ
👍🏻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
신문지가져가서 불붙이고 볼일봤었는데...
산 썩었겠네.
현명한 선택
저런거보면.................진짜 엄청나게 발전을했구나...대한민국... 대단하다...
지금도 남아있어요.사는 사람도잇고요
76년도 초등졸업할 때 까지 저사택이였는데 90년도 까지도 그대로였네요 지금은 싹밀고 아파트로 바뀌였드라고요 그래도 그때 잼 났어요 집은 그래도 풍요로웠죠 그동네가 이래도 80년 중반까지 사람 바글 바글 자녀들 대학 다 보내고 서울에 집사놓고 여기 살았다니까요
가난하긴 했어도 옹기종기 모여서 보리밥해먹고 죽쑤어서 나눠먹든 시절 내인생에 그시절이 제일 행복했든거 갔아요 고한 경일 사택 시절 애들도 많았고 사람냄세 나는 삶이었어요
저희아버지께서 경동에서 광부로 일하셔서 80년대 경동 상덕리 사택(삼척군 도계읍 상덕리 24반, 현재는 철거되었고, 지번으로는 현재의 삼척시 도계읍 상덕리 75번지 일대)에서 살았었는데, 경동에서 고사리에 경동 고사리아파트를 지으면서 도계읍 고사리로 이사를 갔었죠.
삼척을 떠나온 지금, 상덕리 24반에 있던 사택촌은 다 사라지고 고사리 아파트만 남았더라구요.
저는65~68년도까지 도계역앞과늑구리에서살았지요 그때는승용차 택시 버스는 책에서만봤지 도계태백이쪽으로는 전혀없었지요 오직 걸어다녔답니다 삼척 북평쪽으로는 국도도 없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희아버지도 경동에서 근무하시고 75번지보다 아랫동네 상덕리 사택에서 지내다가 하고사리로 이사갔습니다.
그 시절엔 도계 지역은 최전성기였죠.
어쩌면 저랑 같은 학창시절 지나가다 봤을수도 있을만한 연배가 아닌가 싶네요.
동덕초 91년 하반기에 하고사리로 이사가고 삼척을 92년도에 떠났으니요.
참고로 75번지 위치는 회목사택으로 기억합니다.
저희아버님그시절 경동광업소 전기과장이셨읍니다
@@박영춘-p6y
도계역앞 도랑건너 마을지나 산밑에
살았내요. 거기서 저가 태어났구요
옛모습이 그리워집니다...저 동네를 자주 놀러갔던 깅ㅓㄱ이납니다..잘보고 갑니다...
흥전 상사택 76년생입니다.
대구 살아여..
흥전초등학교 졸업했어여
친구들
상사택 흥전2리 살던. 친구들 보고싶당
전두리 살앗습니다
70년까지 상사택 살았죠. 공동목욕탕 갔던 기억도...
저도 대구살고있습니다
80년생 저도 흥전초등 다녔어요
상사택 목욕탕 옆에 구판장 기억하시나여. ?? 구판장에서 맨날. 주말에 모여서. 티브 브이라는. 외국드라마 보고 그랬었는데!! 76년생 용띠. 보고싶다. 도계고등학교오빠들. 대구중앙로 정상에서라는 커피숍에서 한달에 한번 모임가졌다고 하는데!
내고향 도계가 최고임.
내고향 태백 화전
화전초교 아래 저도 살았습니다
미용실도 있었고
문방구도 있었ㅈᆢㄷ
혹시 화전 어룡 무궁화 아파트 아시나요?
@@동동이-k9q 알죠 저는 초막살았고 초막 밑에 무궁화 아파트가 있었죠
어룡이라고도 하고
제 고향도 화전입니다. 반갑습니다.
4학년때 타지로 이사갔어요
저때 태영사택 살았습니다ㅎㅎ
70. 8o년대광산지대 는 모두가 그렇게 살았던 추억이 생각나네요
오우....ㅜㅜ
광업소 사택은 1940~1950년대의 목조연립 사택으로 시작해서 1960~1970년대에는 시멘트블록 단층 연립사택으로 이어졌고, 1980년대 초기에는 3층 아파트로 시작하여 1980년대 중후반 들어서는 5층 아파트로 변모되었다.
70년대 저곳 겨울 영항 2~30도 기본일텐데. 공동 수돗물은 얼지 않았나요? 보일러 액셀 꽁꽁얼어 어떻게 보일러 가동했나요?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 생각나네요... 95년 시청률 최대의 드라마... 허준호의 광부역에 저런 사택촌도 나오고...
홍경인.전도연도 나오고...욘사마도 나왔던.......
정선은 고한역 건너편 산비탈에 층층이 계단식으로 사택을
그나마 사북아래 증산에 동원탄좌사택은 거의 호텔수준이였지.
나 살던집에 비하면 호텔급이네 가난이 싫어서 젊음을 돌려줘도 싫다 난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
도계 대한석탄공사 사택촌 나올때 지금이랑 변한게 가운데 도로 말고는 변한게없네요
사택촌 대다수는 철거되었고요. 석공이나 그 밖의 석탄회사들 사택이었던 아파트들도 적 잖이 철거되어 주공아파트 등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래도 80년대는 저기서도 서울연고대가 나왔었는데.....지금은 언감생심...
맞아요 고등학교는 강릉 춘천 동해로 나가서 다들 서울대 연고대 갔음
개천에서 용 나던시대는 왕년에 끝났지요
첫장면에서 나무 판자 켜켜이 세워서 울타리 만들어 놓은 것 보고 북한관련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북한 어느 지역인줄 알았다 함경북도 회령 이런데 모습이랑(비록 티비에서 본 것 뿐이지만) 비슷해서 놀랐다 그래도 저시절에 저기 살던 사람들중에 상당수는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서울에 집도사고 자식들 서울로 유학도 보내고 했다던.... 지나가는 개도 만원짜리 물고 다녔다던 동네.... 새삼 대한민국이 많이 발전한것을 느낀다
80년대?나는 60년대에도계에 살았습
니다 그때는?
어룡광업소 함께다니고 화전사택에함께살고해썼는데 그때정옥이엄마 사진아직도가지고있는데 손순익 엄마도보고싶구 손순익 아이가 지금쯤45세가되었겠내요 그때5살정도니가
저희 부모님과 아시는분일수도 있겠네요...80년도에 제가 태어난 곳이 여기고... 아버지께서 어룡광업소에서 일하셨는데
누구신지?성암쫌 저조진백동생
부모님 성함이 우리딸79년생인데 우리는 대구에살아요
그때는 애기엄마 이름불러서 어른들 성함기억잘못하실거에요 우리딸79년생 명희고 그때합동결혼식우리했던 정옥이엄마 기억도나고그러내요
도계 사택촌은 다수가 현재도 도로를 제외하고는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있고,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이런 사택촌은 철거하지 말고, 근대문화유산으로 남겼으면 좋겠네요. 지나다닐때 보면 풍경이 참 운치있고, 낭만있어요. 레트로 감성으로 카페 같은거 만들어서 활용해도 좋을 것 같고...
근데 그것들도 다 돈이 많이 들어감. 저 폐사택들이 평당 5~9평밖에 안될텐데
그걸 넓히고 새로 리모델링 하는것도 만만찮은 돈이 들 테고..
또 근처의 재래식 화장실을 철거하고 안에 수세식으로 바꾸는 것 또한 적잖은 예산이 소요됩니다.
당신한테는 그렇지만 예산은 돈은 꽁으로 오나요,
70년대에도 광부 가족님들 삼겹살 마음놓고 먹었나요? 나는 80년대 후반 처음 삼겹살에 참기름장에 찍어 먹어봤네요
구동사택이다
단열이 안되서 겨울에 엄청나게 추웠답니다
도계 육칸사택살았던사람입니다
저도 60년대초 육칸사택 제일앞줄에살았는데 아버닝이 대한석탄공사 전기계장이셨는데 사칸사택은과장급 ㅎ
여기사택에서 살은곳같은데 다리건너자마자 공판장이 있고 이사택 화전사택맞는지예 사택뒷쪽 동굴이 있었는데 맞는지 궁금하고 기억나시는분있다면 연락주셔요 애기나누고싶어요
5:17
저화전에서살아서요 우씨내경자내다알지요 조진천 조진옥
손순익 엄마 정옥이엄마 아시는분 명희엄마입니다
어룡광업소 다니고 사택에 앞동 됫동 살고 그때 생각나 꼭손순익 엄마 딸하나 아들하나 정옥이엉마는 그때 딸 정옥이 만 있었는데 연락하고싶어요 명희엄마에게 여낙주셔요 난 대구살고있어요
사택에 사셨구나 반가워요
도계뿐만 아니고 저 시절엔
장성 화광동이나 협심동 호암동 계산동 도 저렇게 길쭉한 사택이였습니다
그런데 저런 사택들 일본사람들이 지었다내요
대한민국 저시절이
지금 북한하고
똑같네!
그리고 저시절이
더 공정했어!
지금은 없어진 울동네네
지장사택은 나오지도 않네 넘 산골이었지
지금의 기준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 석탄업 활황기의 광부 급여는 요즘 현대차 생산직 못지 않게 높은 수준이었다 들었습니다. 나름 고소득 직종이었던 것 같은데 영상 속 주거지는 왜 저리 하자가 많아 보이는건지요? 전성기를 지난 시기에 촬영해서 그런건지... 잘 이해가 안가서요.
저 당시는 주택보급률이 낮았고 인프라를 본게 아닌 일자리를 보고 갔었어요. 지금은 일자리가 괜찮아도 지역 인프라가 별로면 안가는 사람도 많지만요
ruclips.net/video/iD8Ka7XXN-4/видео.html 당시 강남 마트 허허허
원폭 투하된 1964년의 히로시마 쪽이 훨씬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ruclips.net/video/PsasT09jEHw/видео.htmlsi=2S4IeTsACYN_E6A9
와... 일본의 30년대 탄광사택보다 더 구리다...
요즘 북한 같군요.
저때는 대부분 저랬습니다. 집은 지금의 북한 농촌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있지요, 정이 있고 자유가 있으며 희망이 있지요.
난민촌 아님??
아님
거지처럼 살았구나
집은 저래도 거지아니였어요 7 80중반까지 잘 나가던 동네였다니까요 자식들 대학 다 보내고 서울에다 그때 집 사놓고 그러고 살던 동네라니까요 강아지도 돈물고 다니던 동네였다니까요
@@권헤라-i6q댓글. 답하실 가치 없는댓글입니다~무시하세요ㅎㅎ
그시절누구때문에 따뜻하게 지냈는지 잘생각해보세요 그분들은. 가족을위해 목숨걸고 피와 땀과 한이맺힌곳이죠
와 어룡광업소 사택...1980년도 내가 태어난곳ㅠㅠ
40여년 만에 보는데 기억이 나네ㅠㅠ
다리옆 구판장ㅠㅠ 와 진짜 그립다
누구신지 전그동네 살던사람70년생 마지막 몇집 안남고 경기도 구리로이사 해서 지금까지 살고있습니다
@@py7076 의한 봉한이라고 아실라나 모르겠네요
석공 도계ㆍ장성ㆍ함백광업소 영원하라!
저당시 천장은 도배해도 애그리 추~욱 쳐졌었는지~
거기다 쥐들의 운동회
캬~~ 정말 지긋지긋 했었는데~
그래도 이웃간 형제보다 더 진한 믿음과 정이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