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뒤집어 보기, 역썰 시즌2 / 2회 위만조선 낙랑군과 패수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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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3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14

  • @ms-bt8dc
    @ms-bt8dc Год назад +3

    명쾌하고 쉽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노해주시니 속이 다 시원합니다
    멍멍소리하는 한국사학계...

  • @superjang9955
    @superjang9955 2 года назад +3

    비밀지도를 찾아가듯이 들을수록 재미있습니다 ^^😀

  • @stunnig_
    @stunnig_ 2 года назад +3

    덕분에 역사공부도 하네요ㅎㅎ
    흥미진진해요!!

  • @spacepark6830
    @spacepark6830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울분이 끓습니다.
    이병도, 친일매국사학자들 중 죽은 놈들전부 부관참시해야 합니다.

  • @이고동뿌사리
    @이고동뿌사리 2 года назад +3

    간단 명료하네요. 감사합니다.

  • @김성태-i6b6j
    @김성태-i6b6j 2 года назад +3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하는 역사 독립군!
    매림 채널.

  • @l.p.p2879
    @l.p.p2879 Год назад +3

    조선총독부-경성제국대학(서울대)-제자 이병도 박사-제자-제자-제자........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 @hoyayang7052
      @hoyayang7052 Год назад

      그런놈들이 사학계에 있으니 참 아이러니 하네요 친일파 시키들

  • @고맙습니다-r8r
    @고맙습니다-r8r 2 года назад +2

    우리역사는 상생방송 유트브로 배워야 할까봐요^^

  • @내곰돌이
    @내곰돌이 Год назад +1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 등록된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낙랑군이 평양이다 라고 나와 있네요)
    시대 고대/초기국가
    건립시기 낙랑시대
    성격 성곽, 토축성
    유형 유적
    소재지 평안남도 대동군 대동면 토성리
    분야 예술·체육/건축
    요약 평안남도 대동군 대동면 토성리에 있는 낙랑시대의 토축성.
    내용
    현재 성벽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성 안에 건물터·도로·하수구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성은 대동강 남쪽의 언덕에 있으며, 성 안의 땅은 고르지 않지만 북쪽으로 강줄기가 나고 동쪽으로도 강의 지류가 흐르고 있어 천연적인 참호구실을 하게 되어 있다. 또, 주위에는 넓은 평야가 있어 평지에 성을 쌓는 중국식 터잡음[城基]을 엿볼 수 있다.
    토성은 동서 약 709m, 남북 599m의 크지 않은 정방형으로 이루어졌는데, 보루의 붕괴가 심하다. 성 안에서는 집터·관청·도로·하수도 등의 자취가 발굴되었고, 유물로는 막새기와·벽돌·봉니(封泥)·거울·화폐와 화폐를 주조하였던 틀, 구리화살촉·장신구 등이 발굴되었는데, 특히 글자가 새겨진 기와·벽돌·거울·도장 등이 많이 나왔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 성은 낙랑의 중심지이자 조선현(朝鮮縣) 지역의 땅으로서 낙랑군청과 조선현청이 모두 이 성 안에 있었고, 후기낙랑 시대에는 동부도위(東部都尉)와 남부도위(南部都尉)의 모든 현까지도 관할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토성을 중심으로 동서 20리, 남북 10리 주변에는 약 1,300기의 크고 작은 고분들이 흩어져 있는데, 중국 한대(漢代)의 묘제를 따른 목곽·토곽묘들이 대부분이며, 화려한 장신구들을 포함한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의 문화수준을 잘 나타내고 있다.

  • @안순용-g9r
    @안순용-g9r 2 года назад +2

    옛날 연나라 위만이 패수 서!쪽! 으로부터 조선에 이르렀다!!

  • @bamas26
    @bamas26 3 месяца назад

    2009년 평양에서 낙랑군 호적구 가 발견 됐어요. 어쩌라고. 이미 끝난이야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