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ju was Silla Dongdo. Bulguksa, Seokguram-dong Island Location/End of 1000-year controver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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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 фе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56

  • @kor1213
    @kor1213 Год назад +1

    잘보고 갑니다.

  • @최근탁-u9t
    @최근탁-u9t 2 года назад +30

    신라 경주가 동도 였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대륙을 기초로한 우리 역사를 확인케 됩니다. 감사 합니다

  • @paul8543
    @paul8543 2 года назад +26

    이런 분들이 주류 역사학계로 진출해서 역사왜곡에 강경대응해야 한다.

  • @ILovekorea365
    @ILovekorea365 2 года назад +8

    이런 영상은, EBS 에서 주구장창 방영되고
    교육부 산하기관 공무원,교사들이 필수 시청해야 하는데요~~~!!!

  • @user-star1
    @user-star1 2 года назад +7

    감사합니다
    황산벌과 함산이 있는 중원이 우리 역사의 주 무대 😊

  • @AdulA_1254
    @AdulA_1254 Месяц назад

    그럼 배타고 산동성에서 온건가요? 아니면 갈림(계림)에서 남하한것 일까요? 서울, 강원도. 지역등은 그럼 백제도 아니고 누구 땅일까요? 조문? 다른 종족? 고인돌. 모두 감사한데 의문점은 그렁 한반도는 빈땅이었나요?

  • @김태성-g2m6n
    @김태성-g2m6n 2 года назад +17

    선생님의 책과 선생님의 영상과 선생님의 댓글들을 통하여~
    광개토태왕릉비를 남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선생님!!!^^꾸벅

  • @parkpro9899
    @parkpro9899 2 года назад +11

    많은 연구 감사합니다..
    아직은 미미할지라도 올바른 역사찾는 큰발걸음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 @wind00999
    @wind00999 2 года назад +12

    신라의 본토는 대륙이고 후일 한반도 경주지역 동경 을 동도라 함은 타당하다봅니다
    그래서 지금은 멸종되었는지 혹 삽살개처럼 복원이 되었는진 몰라도 경주 동경이 개가 있다는 기록도 관련이 있겠죠.
    선생님 질문 하나 드려봅니다
    대륙신라 산동성 왕성을 기점으로 볼때
    진흥왕부터 선덕여왕에 건립이 된 황룡사 9층목탑에 대한건데요
    이 황룡사가 몽고침략때 소실 되고 그 9층 목탑 터 삼초석 아래에 찰주본기와 사리함을 발견되었다하나
    최초 그 찰주본기는 도굴이되어 나중에 찾아 수습했다하니 사기극인지 이해가 안됩니다
    그리고 황룡사 9층목탑이 수십년에 걸쳐 지어진 거대한 토목사업인데
    삼한대통을 한 신라가 거대한 토목사업의 하나인 9층목탑을 한반도 구석진 경주에 지었다는것도 좀 이해가 안됩니다.
    시기상으로 삼국사 기록을 보면 일식현상이 총 60회가 나타나고 그중 신라에만 30회가 나타나며
    그 신라의 일식현상 기록도 중국대륙에만 나타나다가 787년 이후부터는 한반도 경주에서만 일식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박창범 교수 저)
    그렇다면
    통일 신라 직전인 선덕여왕때 건립한 황룡사가 한반도에 짓는 것도 좀 이상하구요
    선덕여왕이 대륙신라에서 여왕으로 혹은 덕만공주로 있었다는건 역사 공부 좀 한다는 분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한반도로 비정한 역사 드라마나 다큐는 정말 아니라고봅니다만.
    또한
    70년대초 발굴된 백제 무녕왕릉도 사실 조작 흔적 및( 석실입구 최초 사진과 다름)
    그리고 석실 안에 나온 묘지석도 무녕왕 것이 아니라는 증거 등등)
    그렇다면 현 월지와 가깝고 또 경주 분황사 3층탑 바로 옆에 황룡사 절터라고 발굴 작업해 놓은 주춧돌 등등
    이 절터가 정말 황룡사 절터인지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몽고가 침략하여 황룡사를 정말 불태웠는지도 사실 증거가 희박하고 근거가 부족하다고 봅니다.
    대몽항쟁 때도 삼별초가 지금의 인천 강화도가 아니라 중국 대륙에 강화도 지명이 따로 있으며
    황하강과 패수등 바다같은 큰 강을 등지면서 항쟁 했다고 보는 설도 있습니다.
    길어졌지만 요지는 황룡사 9층목탑의 진짜 유적지는 어디인지 아시는지 여쭤 봅니다.
    선생님.오늘 강좌도 공부가 많이 되었습니다.
    아참 그리고 4~5세기 발굴한 서봉총이나 호우총에서 나온 은제합 바닥부분 명문에 태왕이란 글귀가 있고
    그 시기엔 신라 왕족들은 대부분 대륙에 있었는데
    황남대총 천마총 서봉총 등등 대부분 신라의 릉으로 말하지만
    조금만 연구한다면 그것들은 고구려 혹은 고구려 왕족이나 고조선의 유민이나 흉노가 세운 작은 소국들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2 года назад +4

      반갑습니다. 좋으신 말씀 감사합니다. 역사에 조예가 깊으시군요.
      사실 황룡사에 대하여 본인의 부족한 연구로는 사서 기록과 말씀 하신 한반도 경주 유적과의 차이 때문에
      섣불리 결론을 낼 수가 없어서 이를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말씀하신 바가 맞을 지도 모르나 확실히 검증이 안된 것을 말씀드릴 수가 없어서
      이에 대하여는 추가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보고 앞으로 계속 확인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으신 말씀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 @wind00999
      @wind00999 2 года назад +5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선생님께서도 이부분 100% 다짐을 하지않음은 그만큼 증거나 유물과 사료적기록이
      확실치 않으시니 그리 말씀하신것이라 사료되오니 저 역시 열심히 정보나 자료를 찾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dolgoddodolgo
      @dolgoddodolgo 2 года назад

      내가 찾아본 대륙의 강화도는 호남성 강화현입니다.

    • @UZKsongs
      @UZKsongs 2 года назад +2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기록을 보면 신라는 통일후 과도기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엄청난 천재지변을 암시하는 기록이 많은걸로 보아 지각변동으로 산동반도 쪽에 수도가 있다가 경주쪽으로 후대에 천도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닼

  • @무풍-f6w
    @무풍-f6w 2 года назад +20

    책보고님의 영상과도 일치합니다. 동도(東都)는 처음 봅니다.
    차후에 호태왕비의 해석도 부탁드립니다.
    한반도가 아니라 중원으로 비정하면 앞뒤가 맞을것 같습니다.

    • @kwonhyeonzu
      @kwonhyeonzu 2 года назад +5

      동의합니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유튭 조금씩 다른데 책보고님과 두분이 내용상 상통하는 걸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서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에 한 표 행사 합니다.

  • @sangmunoh4638
    @sangmunoh4638 2 года назад +6

    경주를 동경이라고 부르죠. 그래서 경주에 살던 꼬리 짧은 개를 동경이 또는 동견견이라고 불렀습니다. 요즘 개를 댕댕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예전에 동경이를 그 지역 사람들이 댕견이, 댕댕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퍼진 겁니다. 그리고 동경은 있는데 서경, 북경, 남경은 우리나라 어디에 있을까요? 한반도에는 그 지명이 없습니다. 평양을 서경이라고도 하는데 제 생각에 후대에 그렇게 불렀을 겁니다. 당시 정황상 중국 대륙에 북경, 남경, 서경이 있었다는 게 합리적입니다.

  • @healingjusin
    @healingjusin 2 года назад +2

    신라의 서울은 동도는 경주에 서도는 산동성 빈주에 있었고 고구리 졸본성은 산동성 덕주시 평원현에 백제의 하남 위례성은 산동성 태안시에 있었군요

  • @tjkim8002
    @tjkim8002 2 года назад +7

    대단합니다! 감사합니다

  • @SamuelSmith1221
    @SamuelSmith1221 2 года назад +3

    요동 요서야 말로 진정한 홍산문화의 중심이지..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2 года назад +2

      반갑습니다.
      요동, 요서의 위치는 본인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원래는 하북성 호타하 인근인 지금의 석가장시
      북쪽과 동쪽에 걸쳐 요동군이 있었고, 석가장시 바로 북쪽인 하북성 석가장시 정정현 일대와
      그 서남쪽에 요서군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러한 것을 나중의 당나라를 거쳐 요나라 시기에 하북성의 요수가 요령성 요하로 바뀌면서
      요하 서쪽을 요서, 요하 동쪽을 요동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러나 홍산문화는 지금의 요령성 조양시 서북부의 내몽골 자치구의 적봉시 인근에 있었던 것을
      후대의 사람들이 '요하문명'으로 명칭을 변질시켜 중국측은 자신의 문명으로,
      우리 주류 강단 사학계는 그들의 한반도 고착화 논리 유지를 위해 중국 문명으로 인정해 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따라서 이 홍산문화의 주인공인 이 문명상의 하가점 하층문화의 주역인 고조선 세력이 이동하여
      한 부류는 하북성을 거쳐 더 서쪽으로 들어가 황하문명을 일으키고, 한 부류는 하북성으로 가거나 남쪽
      산동성으로 가서 고조선 세력으로 되고, 다른 부류는 동쪽 요령성과 한반도로 가서 역시 같은 고조선
      세력이 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로는 요동, 요서는 원래의 홍산문화의 중심지가 아니라 여기서 서쪽으로 이동된
      고조선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고 사료됩니다.
      감사합니다. ^-^

    • @달이달이동동
      @달이달이동동 Год назад +1

      선생님,
      혹시 홍산문화가 하북성, 산둥반도에서 이동한 것은 아닐런지요? 시안근처의 피라미드(?)가 고조선일거라고 저는 보고 있어서요.

  • @코르누코피아-z3u
    @코르누코피아-z3u 2 года назад +5

    미국에 뉴요크 뉴암스테르담 있잖아요. 이주민들이 과거 살던곳 지명 고대로 붙임.

  • @jailson5884
    @jailson5884 Год назад +1

    강아지 이름이 *동경이*입니다.

  • @경동조
    @경동조 2 года назад +7

    감사합니다 선생님

  • @김종엽-m8t
    @김종엽-m8t 2 года назад +6

    신라본기에 초기신라의 일식기록은 최적관측지가 양자강유역으로 박창범교수가 밝혔는데, 산동성 서도와는 어떤관계인지요?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2 года назад +6

      반갑습니다.
      신라의 영역에 대하여는 다른 분들도 많은 의견이 있는데 거의 유사하군요.
      이는 지도상의 지명 및 일식기록에 의한 것이고 주로 어느 유튜버에 의한 것으로 아는데,
      사서 기록에 의하면 신라의 영역과 관련해서는 산동성 이외에는 확인되는 것이 없습니다.
      물론 사서 기록의 왜곡 조작이 있었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이를 무시해서는 아니 된다고 사료됩니다.
      이에 대한 지도상의 지명 및 일식기록에 의한 명칭은 오히려 나라의 정식 영역이 아닌,
      잠시 세력을 펼치거나 거주하던 곳에 명칭이 남긴 것이거나,
      이 명칭을 후대에 신라인이 사용하던 것이거나 여러 사실에 의하여
      배척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서 기록상의 양자강 유역에 대한 영역은
      신라가 아닌 백제의 것으로서는 명확히 사서인 당서에 기록되어져 있는 것이 확실한 것입니다.
      역사학의 기본은
      1)문헌학적 근거,
      2)고고학적 근거
      입니다.
      이를 무시한
      지명 그리고 지도 지명에 의한 역사적 위치의 설정은 그야말로 비과학적인 것으로써
      역사학에서 배척되는 것입니다.
      박창범 교수의 일식기록에 의한 위치 설정 결과 통일신라 후반기에 한반도로 옮겨 온 것으로
      연구되었지만 , 본인이 박창범 교수 연구를 본인의 연구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기본적인 위치 설정이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반도가 아닌 중국 대륙인 것은
      본인의 사서 기록 연구 결과와 동일하나,
      상세한 위치가 맞지 않은 뿐 아니라
      한반도로 이주해 온 시기도 박창범 교수의 통일신라 후반기인 것에 반하여
      본인의 사서 연구결과에 의하면 고려 말기까지 대륙에서의 활동으로
      사서에 기록되어져 있다가 고려말 몽고 간섭기 이후 한반도에서의 기록으로
      확인되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박창범 교수의 연구 결과에 의한
      고구려의 경우 현재의 내몽골 자치구역 지역,
      백제의 경우 요서지방(지금의 천진시 서부이자 북경시 남부 지역),
      신라의 경우 (~201년)는 양자강유역, (787년~)는 경주지역이라는 결론만을 접하였으나,
      본인의 사서 기록에 의한 대륙에서의 위치 비정 지역인,
      고구려의 경우 위치비정인 하북성 보정시 서남부(하북성 평양성)과
      산동성 덕주시 평원현(산동성 평양성(하평양, 남평양, 졸본성)),
      백제의 경우 산동성 비성시 일대 및 요서지방(하북성 석가장시 일대)
      그리고 신라의 경우 산동성 빈주시 일대
      로 비정하는 본인의 연구결과와는 달라 전혀 이를 본인의 서책(전 10권)에도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의 연구 과정과 결과는 완전히 사서 기록 교차 검증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박창범 교수의 일식기록에 의한 위치비정은 신라의 양자강 유역은 물론 특히 고구려의
      내몽고 자치구역 그리고 백제의 요서지방 위치 비정은 본인이 연구한 바와도 다르거니와
      모든 사서 기록은 물론 수많은 모든 역사적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데도 전혀 사서 기록은 개의치 않고 이를 신뢰하거나 이것만을 주로 내세운 채
      전혀 전문적인 지식이나 전문적인 연구 없이 사서 기록과는
      연관시키지 않거나 연관시키더라도 제대로 전문적으로 하지 않는
      일부 조회수가 많은 유튜버를 그대로 신뢰 하는것은 역사에 조예가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특히 박창범 교수의 경우 상당한 반론이 있는데 이들 일식 기록이 여러 중국사서에 기록된 것을
      삼국사기가 그대로 베낀 것이라는 반론도 있고, 특히 양자강 유역의 경우 일시적으로
      신라 사람들이 진출하여 거주한 곳에 자기들의 지명을 붙인 것으로써
      신라의 영토와는 거리가 먼 사항으로써
      실제 사서 기록상에 백제는 월주에 영토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신라의 경우에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역사상의 모든 사항은 수많은 사서 관련 기록에 합당한 곳으로 모든 검증을 통하여 합당한 곳을
      비정하여야 하는 것이지 이러한 사서 기록과의 검증이 없이 잘못된 사서 적용이나
      이들을 무시하거나 없이 어느 지도상의 명칭만을 가지고 비정하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비 학문적인 비정으로 배척되어야 하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물론 이러한 지명이 위의 역사학의 기본인 1)문헌학적 근거, 2)고고학적 근거에 의하여 입증이 된다면
      더욱 바람직스러운 것일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역풍의 우려가 있어 우리 고대사가 바로 서는데 커다란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이를 자제하여야 하고 또한 이를 너무 신뢰한 채 역사학의 기본을 무시하면 조그마하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간단한 반론에도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박창범 교수의 위치비정은 전혀 사서 기록과 역사적 사실과 다르며,
      그렇기 때문에 신라 서도 지역이 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역사적 사실에 의하여 신라는 삼한 지역, 삼수지역, 삼국의 활동지역(말갈, 낙랑, 왜) 등
      모든 것에 의하여 산동성 황하, 패수, 대수 3강이 같이 나란히 흐르는 지역임이 분명합니다.
      이를 부정하려면 부족하지만 본인의 유튜브 동영상 내용 전체나 본인의 집필본 10권 내용을
      전부 이해하고 이에 대하여 반론이 조목조목 합리적으로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현재 대학 강단에 있는 고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참고로 본인의 집필본과 이 동영상은 이들 교수들 그동안의 역사논리 전체를 비판하고
      반론을 제기하면서 연구한 내용이고 결과임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 @dragon9947
    @dragon9947 2 года назад +2

    책 발간된 건 없나요 ?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2 года назад +1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는 일마다 다 잘되시길 빌면서,
      또한 우리 고대 역사가 올해에는 반드시 바로 정립되는데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반갑습니다.
      현재 전10권 중 제1권~제3권이 출판되어 있고,
      제4권이 조만간 출판될 예정으로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 @성성봉-t6z
    @성성봉-t6z 2 года назад +4

    선생님 감사합니다
    긴세월 절차탁마 각고의
    노력으로 누구도 마음만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해내지 못 한
    우리 고대역사의 치밀한 정리
    그 위대한 노고 감사드리고
    기쁩니다!
    중고등대학학창시절
    그후 사회생활중
    늘 마음속에 편치않은 궁금증으로
    의심하던 부분!
    신라 수도가 한반도 경주라?
    멀어도 너무 먼 시안에 수도를 둔 당나라와 연합했다?
    이런 의문들이 싹다 풀리는
    참으로 귀한 영상자료입니다
    언젠가 만나 뵙고 같은 방향을
    보는 분들과 힘 합칠날 기대합니다
    교류연합했다?

  • @Jangjaehun
    @Jangjaehun 2 года назад +2

    경주는 개이름조차도 동경이 임.

  • @박성호-f1j
    @박성호-f1j 2 года назад

    한반도 땅에는 어떤나라들이 있었나요?
    삼국이 대륙에 있었다는 주장은 수긍이 가는 데 고려시대 이전에 한반도에는 어떤 세력들이 있었는 지 궁금하네요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2 года назад +3

      많은 관심과 응원 그리고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아주 좋은 말씀과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이미 다른 분의 댓글 답변이나 본인의 이미 방영된 유튜브 동영상에 설명도 드렸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여 말씀드리면.
      역사학 정립의 기본은 1)문헌학적 자료, 2)고고학적 자료(유물, 유적) 입니다.
      이것이 상호 입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까지는 역사학의 기본이 되는 두 가지 사항 즉,
      1)문헌학적으로는 명백히 산동성, 하북성이고,
      2)고고학적으로는 한반도와 인근 입니다.
      그러므로 둘 다 맞는 것입니다.
      실제로 1)문헌학적 자료에 의한 사항은
      많은 중국사서가 이를 왜곡하여 알리지도 않아 왔고 은폐하거나 왜곡하였지만 이를 밝혀내어 이미 신라 기록에서 확인되었지만
      삼국 모두 대륙과 한반도 2군데로 기록된 역사를 한반도로만 왜곡 조작하여 해석해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2)고고학적 자료에 의한 사항은
      어느 순간부터 한반도에만 살고 있는 관계로 인하여 이에 의한 고고학적 자료만 내 세운 채 이를 이미 왜곡시켜 한반도로 비정한
      문헌학적 자료에 맞추었지만,
      실제로 우리가 접근이 가능하거나 중국측의 동북공정이 심하지 않은 해방전에는 중국 산동성 및 하북성 지역에 동이족 및
      고조선 유적 유물인 고인돌, 빗살무니 토기, 적석총, 비파형 동검이 해방 전에 이미 발견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이후에 발견된 명백한 우리 민족국가의 유적, 유물의 경우에는 발굴을 안하거나 조사결과 보고를 왜곡 조작하거나
      발표조차 안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의 대표적인 것이 고구려의 평양성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보정시 만성구 지역에서 발견되어 발굴된 ‘만성한묘’의 경우에는
      명백한 고구려 계통 왕의 무덤인데도 불구하고 중국 전한시대 봉국 중산정왕 유승 부부의 합장묘라고 왜곡 조작하여 발표하는가 하면,
      황제를 나타낸 황후로 표시된 문왕의 황후 효의황후의 묘를 발굴하고도 발표를 안하는 등 중국 각지에 우리 고대사의 유적,
      유물이 있음에도 알려지지 않고 있는 반면,
      신라의 경우 경주에 궁전터가 없는 한편 대능원 등 수많은 왕릉급 무덤이 있으나 사서 기록과는 맞지 않고 있고,
      고려 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신라 시대에 경주를 동도(동쪽의 도읍)라 칭하고, 불국사, 석굴암, 황룡사 등이 동도에 설치한
      것이라고 기록함으로써 서도가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고,
      백제의 경우에는 오랜기간 동안 있는 것으로 주류 강단 사학계가 설정한 서울 한성 지방에서는 궁전터가 없거나
      완전히 왕릉급 무덤이 근초고왕으로 비정하는 무덤터를 제외하고는 전혀 없는 반면, 공주나 부여에서도 궁전터가 전혀 없으며
      무령왕릉을 제외 하고는 왕릉의 존재가 발견되지 않는 한편, 무령왕릉의 경우에도 조작설 내지는 분국 왕급 무덤으로
      파악되기도 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경우 말씀하신 한반도 북부 길림성 집안시 일대의 집단 고분 유적들은 고구려가 296년 서천왕릉과 342년 미천왕릉에
      각각 훼손 사건이 있어 이후에 안전한 곳으로 여겨지는 뒷마당 같은 이곳 한반도 북부 만주지방에 무덤을 조성한 것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류 강단 사학계에 의하여 고구려의 수도였다고 비정한 졸본성의 요령성 환인시나 이후 국내성이었다고 비정하는
      길림성 집안시에는 이 시기에 해당되는 고구려 유적, 유물은 고분군과 광개토대왕비문을 제외하고는 왕릉터를 비롯하여
      전혀 발굴되지 않아 졸본성과 환도성을 정한 일제 식민사학자들도 의구심을 가진 것으로 조사 보고서에 의하여 확인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 삼국의 경우 문헌학적으로 백제의 경우 뚜렷하게 동서 두성을 기록하는가 하면 왜곡되어 해석하였지만
      바르게 해석하면 하북성, 산동성 영역과 한반도 영역 두 군데를 기록하고 있는 것, 그리고 궁전터를 제외한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고분의 경우 분국 형태로써 본국은 하북성과 산동성에 있으면서 이들 분국의 왕급 지배자가 한반도 지역을 다스리다가
      이곳에 묻힌 것으로 파악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문헌학적으로는 한반도와는 전혀 맞지를 않습니다만 현재까지의 고고학적 자료는 일부 대륙에서도
      발견된 것을 제외하고는 부족하고 맞지를 않는 점도 많지만 거의 한반도 및 인근에서만 확인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모두 인정하되. 백제와 같이 본국과 분국 형태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궁금하신 질문에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홍규이-e3h
    @홍규이-e3h 2 года назад +12

    감사합니다
    잘 풀리고 있습니다

  • @2f5lofbread57
    @2f5lofbread57 2 года назад +1

    우리가 알고있는 경주는 신라시대에는 동경 이 맞고요~
    현재 불리고 있는 경주는 고려 태조 왕건이 내려준 지명이라고 합니다~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2 года назад +2

      반갑습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삼국사기 및 고려사에 "신라국을 폐지하여 경주(慶州)라 하고,"라 하여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과연 현재의 경주가 이것인지는 상당히 사서 기록에 의하여만으로는 해석이 곤란합니다.
      이때의 신라국은 분명히 산동성 신라국입니다. 그렇다면 이 경주도 산동성 위치인데,
      다른 기록을 보면, 동여진이 침공했다느니, 황룡사가 위치한다든지에 의하면 현재의 한반도 경주인 가능성도 있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즉 동여진이 침공하면 한반도인데 과연 기마민족이 동 만주지방에서 경주까지 배를 타지 않고는 공격하기 힘든데.....
      물론 동여진이 한반도 동북부 만주 지방 위치 여부가 관건이지만.......
      그리고 현재의 한반도 경주에 있는 황룡사 터가 진짜 사서 기록상의 황룡사인지 여부가 관건이지만.....
      후대의 사서 기록 왜곡으로 인하여 후대에 바른 역사를 세우는 것이 힘드는군요.
      좋으신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으신 말씀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

  • @노마드노마드-d5c
    @노마드노마드-d5c 2 года назад +5

    광개토태왕비 위치는 어떻게 봐야 하나요...???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2 года назад +5

      좋으신 말씀 감사합니다.
      광개토대왕 비문은 그동안 이에 대하여는 별로 연구가 없었지만 현재 위치에 있어도 위의 설명에 의하면 문제가 없지만 더욱 더 그 형태상 위의 머리부분 덮개가 없고 마모가 된 점 등 어디서 옮겨온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옮겨온 시점 및 출발점. 당사자, 의도 등이 본인이 연구한 하북성과 산동성 연구가 없거나 이에 대한 확신이 없어 그동안 이 옮겨온 것에 대한 연구가 없었던 것이지 이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 진행 되어져야 한다고 사료됩니다.
      하지만 분명히 광개토대왕비문상의 기록은 한반도에는 맞지 않고 하북성과 산동성이라는 사실은 본인의 연구결과 확실합니다.
      이외에도 만주 지방과 한반도가 고구려의 초기 영역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이를 비정한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유적 유물 발굴 조사보고서 및 이후에 이루어진 오녀산성, 환인성, 집안의 국내성 등의 유적 유물 발굴 조사 보고서에 의하여도 확실히 스스로 입증되는 것으로 명백히 확인되었습니다. 심지어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고구려 수도 비정 당시에 이들 유적 유물이 없어 서로간에 논란이 심하였으나 이를 강행한 사실이 조사 보고서상에 명백히 있는 것입니다. 즉 위의 4가지 사항외에는 각 수도로 비정한 졸본성, 환도성, 평양성 등 각 유적지에서는 왕궁 유적과 유물을 비롯하여 각 해당 시기의 유적 유물이 전혀 발굴이 안되고 후대 심지어 통일신라나 발해 시기의 유적 유물만이 발굴되는 것으로 확인된 것입니다.
      말씀하신 광개토대왕비문의 만주 집안시 위치에 대하여는 위의 사항이 비록 합리적이라고 하더라도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좋으신 말씀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관심과 응원 그리고 좋은 말씀 계속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노마드노마드-d5c
      @노마드노마드-d5c 2 года назад +4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감사합니다

    • @장02
      @장02 2 года назад

      거대석물의 위치를 옮길수있는 세력 마침 철도가개설되고 신라의비석 3등분되고 불상들은 머리가 잘려있고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대륙에서 해체 이동 반도에 다시 복원한것임 반도로 역사를 옮기려는 반도사관 의도도 분명함 주체도 분명함 조선은 대륙에서 일제와 반도로 넘어온것임 대륙에서 유학파에게 쫏겨 왕정파(사대부명문가문)와 고종 조선 종묘사직이 넘어온것 그리고 일제가 역사를 조작하고 고종과 니즈가 맞아서 고종이 원한것같아보임 고종의 입장에서는 중원을 뺐겼지만 역사를 왕이있는곳으로 옮겨주고 국호도 조선으로 유지해주니 거부할이유가 없었을듯 그러나 대륙의 황제였을때 일본은 옹립을원하지만 반도의 왕이된후에는 일제에게 팽당한것임. 그리고 일제를위해 세팅된 역사위에 대한민국이 들어선것. 상해를대표하던 대륙에 다시조선의부활 독립을 노력하던 대륙세력이 반도로 넘어온것.

  • @mind1754
    @mind1754 2 года назад +3

    이런 채널은 구독 좋아요 필수지~~

  • @musoppul
    @musoppul 2 года назад

    9주5소경(小京) 중원경(中原京) 금관경(金官京) 북원경(北原京) 남원경(南原京) 서원경(西原京) 어라?동원경(東原京)이 없네? 계속 京이라서 原자를 넣을 필요 없음. 서라벌=동경(東京)=동도(東都)->경주

  • @PARK080
    @PARK080 2 года назад +4

    대륙신라의 수도가 서경 한반도에 수도 동경 이 동경이 일본열도에 동경 = 도쿄아닌가요?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2 года назад +4

      반갑습니다.
      한반도 경주가 동경인 것으로 사료됩니다.
      감사합니다.

    • @PARK080
      @PARK080 2 года назад +2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감사합니다

    • @숲속의호수-s7d
      @숲속의호수-s7d 2 года назад +2

      일본의 동경은 백제의 동경이란 의미가 아닐까요. 대륙백제가 황제의 경도이고 일본 동경은 왕의 경도로 보입니다. 소설같지만

  • @남정훈-l8b
    @남정훈-l8b Год назад

    의문 1.삼국시대에 적대적 관계가 심했다고 나오는데 서로 도읍을 그리 가까이 두웠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Год назад +2

      반갑습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세나라의 상황상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서 기록에 의하면 이것이 맞습니다.
      즉 고구려, 백제, 신라는 산동성의 세강, 즉 한수, 패수, 대수 사이에서 서로 쟁패를 벌이는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초기 시대이고, 이후 고구려는 북으로 확장하여 하북성, 요령성, 한반도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백제 역사 고구려가 하북성이 요동에 진출하자 같은 하북성 요서 지방에 진출하고, 한반도에도 진출하며,
      신라 역시 산동성 남쪽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길림성, 한반도까지 진출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