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강의 정말 감사합니다 예도선생님. 언제나 탁월한 강의 고마운 마음으로 듣고 있습니다. 인공적으로 창조된 폭력적 이데올로기 속에 빠져있던 저 자신에 대해서 자동적으로 반성하게 되는 강의였습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의 질문을 여쭙고 싶습니다. 저 자신의 판단에도 이데올로기적 필터가 있고,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습관화된 선판단이 저의 도덕에 끼어들어서 계속해서 저를 괴롭힙니다. 혹시 이것이 극복가능한 현상인지, 만약 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궁금합니다.
특정 대상을 숭배하기까지 이르르는 '동일시', '사랑에 빠짐'의 상태는 분열된 사랑에 다름아니다. 오직 zärliche Liebe(정애적 사랑)와 더불어 나르시즘적 대상 선택은 정말로 그것에 빠져있는 주체가 예속화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 3자는 리비도 대상과 주체의 관계를 당연히 이해할 수 없다. 이해는 언제나 이성적 이해•설명할 수 이해에 수준에서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굳이 존재론적 이해를 끌고와 제3자 역시도 언제나 이해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언급하는 것을 차치하고 서라도 또 다른 사랑인 Sinnliche Liebe(관능적 사랑)에 행방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언제나 그렇듯 최초의 사랑은 억압되어야만 하는 것이고 그것 역시 그렇다. 더군다나 숭배가, 겸손함이, 동일시가 더욱 큰 주체일 수록 억압은 더욱 커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것에 대상은 보잘것 없는 자, 천한 자, 가난한 자를 더욱 가학하는 방향으로 자리잡는다. 나는 묻고 싶다. 숭배하는 자들이여, 당신이 그렇게 숭배를 강하게 하면 할 수록 그래서 당신이 고상하게 보이고 겸손하게 보일 수록 그 반대편에 있는 당신으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대상이 궁금해진다.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아내?, 자식?,친구?,연인?,타자?,도구? 아니면 자기 자신의 양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자기를 학대하고 있는 것인가?
내용이 너무 좋습니다.
우리가 공범자다. 공감합니다.
좋은 강의 정말 감사합니다 예도선생님. 언제나 탁월한 강의 고마운 마음으로 듣고 있습니다. 인공적으로 창조된 폭력적 이데올로기 속에 빠져있던 저 자신에 대해서 자동적으로 반성하게 되는 강의였습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의 질문을 여쭙고 싶습니다. 저 자신의 판단에도 이데올로기적 필터가 있고,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습관화된 선판단이 저의 도덕에 끼어들어서 계속해서 저를 괴롭힙니다. 혹시 이것이 극복가능한 현상인지, 만약 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궁금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항상 건강하시고요 ❤
AI 정부가 들어섰으면 좋겠습니다. 챗GPT가 한국 정치인보다 1000배 낫습니다.
새해복많이받으세요 ~
잘들었습니다
욕망적 사회적 힘들의 투쟁 그사이 균형 위상 ㅡ도덕적 법적 색칠
자신의 초라한 목숨을 지키며 그는 타고난 방관자였다
추천합니다 🎉
특정 대상을 숭배하기까지 이르르는 '동일시', '사랑에 빠짐'의 상태는 분열된 사랑에 다름아니다.
오직 zärliche Liebe(정애적 사랑)와 더불어 나르시즘적 대상 선택은 정말로 그것에 빠져있는 주체가 예속화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 3자는 리비도 대상과 주체의 관계를 당연히 이해할 수 없다. 이해는 언제나 이성적 이해•설명할 수 이해에 수준에서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굳이 존재론적 이해를 끌고와 제3자 역시도 언제나 이해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언급하는 것을 차치하고 서라도
또 다른 사랑인 Sinnliche Liebe(관능적 사랑)에 행방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언제나 그렇듯 최초의 사랑은 억압되어야만 하는 것이고 그것 역시 그렇다. 더군다나 숭배가, 겸손함이, 동일시가 더욱 큰 주체일 수록 억압은 더욱 커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것에 대상은 보잘것 없는 자, 천한 자, 가난한 자를 더욱 가학하는 방향으로 자리잡는다.
나는 묻고 싶다. 숭배하는 자들이여, 당신이 그렇게 숭배를 강하게 하면 할 수록 그래서 당신이 고상하게 보이고 겸손하게 보일 수록 그 반대편에 있는 당신으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대상이 궁금해진다.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아내?, 자식?,친구?,연인?,타자?,도구?
아니면 자기 자신의 양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자기를 학대하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