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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갤러리
Южная Корея
Добавлен 29 ноя 2017
한자의 세계로 오심을 환영합니다!(漢字의 메카)
사자성어/고사성어, 한시, 한자급수,한자의 서체,고대한자...
사자성어/고사성어, 한시, 한자급수,한자의 서체,고대한자...
#득롱망촉(得壟望蜀) - 농서 지방을 얻자 촉의 땅을 바라다 -
○ 득롱망촉(得壟望蜀)=득롱망촉(得隴望蜀)!
만족할 줄 모르고 계속 욕심을 부림.
1. 위나라 조조는 농 땅을 수중에 넣고 촉까지
욕심내지는 않았다는 데서 유래.
2. 후한의 광무제가 농을 평정힌 후에 다시 촉 지방까지
원하였다는 데에서도 유래.
[출전] : 《후한서(後漢書) 》
(유의어)
- 망촉(望蜀)
- 망촉지탄(望蜀之歎)
- 평롱망촉(平壟望蜀)
[참고]
- 고사성어대백과 이우영 편저
- 고사성어대백과 오문영 편저
- 한국어문회 사자성어 편
- 네이버한자성어
#득롱망촉(得壟望蜀)
만족할 줄 모르고 계속 욕심을 부림.
1. 위나라 조조는 농 땅을 수중에 넣고 촉까지
욕심내지는 않았다는 데서 유래.
2. 후한의 광무제가 농을 평정힌 후에 다시 촉 지방까지
원하였다는 데에서도 유래.
[출전] : 《후한서(後漢書) 》
(유의어)
- 망촉(望蜀)
- 망촉지탄(望蜀之歎)
- 평롱망촉(平壟望蜀)
[참고]
- 고사성어대백과 이우영 편저
- 고사성어대백과 오문영 편저
- 한국어문회 사자성어 편
- 네이버한자성어
#득롱망촉(得壟望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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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지색(傾國之色) - 한 나라가 기울어져도 모를 만큼 아름다운 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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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국지색(傾國之色)! 1.임금이 혹하여 나라가기울어져도 모를 정도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인. 2.임금이 주색에 빠지면 나라가 망조든다. [출전] : 《한서(漢書) 》 (유의어) - 경국(傾國) - 절세가인(絶世佳人) - 천하일색(天下一色) [참고] - 고사성어대백과 이우영 편저 - 고사성어대백과 오문영 편저 - 한국어문회 사자성어 편 #경국지색(傾國之色) #경국(傾國)
#목불견첩(目不見睫) - 눈으로 눈썹을 보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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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불견첩(目不見睫) ! 제 눈으로 바로 앞의 속눈썹을 보지 못한다. 1. 남의 흉이 하나면 내 흉은 열이다! * 睫=䀹(속눈썹 첩) [출전] : 《한비자(韓非子)》유로편(喩老篇) [참고] - 인문학 고사성어 사전 김원중편저 - 고사성어대백과 이우영 편저 - 네이버한자(사자성어/고사성어) - 한국어문회한자(고사성어/사자성어 편) #목불견첩(목不見睫) #한비자유로편(韓非子 喩老篇)
#공수신퇴(功遂身退) - 공을 이루었다면 몸은 뒤로 물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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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수신퇴(功遂身退) !.... - 교훈 - 1.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더 많은 것에 욕심을 부리지 말라! 2.부귀한 지위에 있으면서,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부귀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것이리라!! 3.성공을 이루었으면 그 공을 자랑치 말라! (유의어) ° 공성신퇴(功成身退) ° 급류용퇴(急流勇退) ° 지난이퇴(知難而退) [참고] - 인문학 고사성어 김원중편저 - 고사성어대백과 이우영 편저 - 인문고사성어 신동열 편저 - 네이버한자(사자성어/고사성어) #공수신퇴(功遂身退) #공성신퇴 #급류용퇴 #지난이퇴
#삼령오신(三令五申) - 세번 호령하고 다섯 번 거듭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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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령오신(三令五申) ! 몇번이고 되풀이 하여 명령하고 계고한다. 1. 반복 연습만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출전] : 《사기(史記)》손자오기열전(史記吳起列傳) *손자병법? 약 2400년 전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손무와 손빈이라는 두 명장이 저술한 만고불변의 병법서(兵法書)다. [참고] - 인문학 고사성어 사전 김원중편저 - 중국고사성어 대백과 오세경 편역 - 고사성어대백과 이우영 편저 - 네이버한자(사자성어/고사성어) - 한국어문회한자(고사성어/사자성어 편) #삼령오신(三令五申)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누란지위(累卵之危) - 알을 포개 놓은 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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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란지위(累卵之危) ! 쌓아 올린 달걀처럼 매우 위태로운 상황. * 범저(장록)의 대범함! '진나라의 정치가 쌓아 올린 달걀처럼 위태로우나 나를 들어 쓰면 안전할 것이다' * 雎(물수리 저) 睢(물이름 수/부릅떠볼 휴) (유의어) - 누란(累卵) - 누란지세(累卵之勢) - 위여누란(危與累卵) [출전] : 《사기(史記)》 범저열전(范雎列傳) [참고] - 고사성어대백과 김원중편저 - 고사성어대백과 이우영 편저 - 인문고사성어 정문섭 지음 - 한국어문회 사자성어 편 - 네이버한자성어(사자성어/고사성어) #누란지세 #누란지위 #위여누란 #누란
#조절간맹(蚤絶姦萌) - 간사한 싹은 일찍 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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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절간맹(蚤絶姦萌) :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 蚤(벼룩 조/손톱 조/일찍 조) 1. 화근의 조짐이 되는 것은 아예 싹부터 잘라내야 한다. 2. 사고나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한다. (유의어) ° 두점방맹(杜漸防萌) ° 방환미연(防患未然) [참고] - 고사성어 역사문화사전 김원중편저 - 고사성어대백과 이우영 편저 - 인문고사성어 신동열 편저 - 네이버한자(사자성어/고사성어) #조절간맹(蚤絶姦萌) #두점방맹 #방환미연 #외저설우상
#당랑거철(螳螂拒轍) - 사마귀가 바퀴를 막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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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랑거철(螳螂拒轍) : 무모한 행동이나 허세를 경계하라! (유의어): - 당랑지부(螳螂之斧) - 당랑규선(螳螂窺蟬) - 당랑지력(螳螂之力) [출전] : 한시외전 8권 [참고] - 고사성어 대백과 오문영 편저 - 고사성어 대백과 이우영 편저 - 중국고사성어 오세경 편역 - 한국어문회 사자성어 편 - 네이버한자(사자성어/고사성어) #당랑거철(螳螂拒轍) #당랑지부 #당랑규선
#상가지구(喪家之狗) - 상갓집의 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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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가지구(喪家之狗) ! ¹.상가의 개(초상난 집의 개). ².몹시 초라하고 수척한 사람을 깔보는 표현. ³.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여 실의에 빠진 공자 자신. [출전] : 《사기(史記)》공자세가(孔子世家) [참고] - 중국고사성어 대백과 오세경 편역 - 고사성어대백과 이우영 편저 - 한국어문회 사자성어 편 - 네이버한자(사자성어/고사성어) #상가지구(喪家之狗)
#간담상조(肝膽相照) - 간과 쓸개를 서로 비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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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담상조(肝膽相照) : ¹. 간과 쓸개를 서로 비추어 볼 정도로 친밀한 사이. ². 사람은 어려운 지경에 처했을 때에야 비로서 진정한 절의(節義)가 드러나는 법이다. ³. 본래, 부정적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후에 와서는 서로 마음을 터놓고 지낸다는 긍정적 뜻으로 쓰이게 됨. (유의어) : * 피간담(披肝膽) * 지음(知音) * 막역지우(莫逆之友) (반의어) : * 면종복배(面從腹背) [출전] : 《한유(韓愈)》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 ※ 유종원(=유자후: 773~819) [참고] - 고사성어대백과 이우영 편저 - 고사성어대백과 오문영 편저 - 인문고사성어 신동열 편저 - 네이버한자성어/고사성어 - 한국어문회 사자성어/고사성어 편 #간담상조 #유자후묘지명
#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부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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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가호위(狐假虎威) :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자기 위엄으로 삼는다는 데서 유래! (유의어) ° 가호위호(假虎威狐) ° 차호위호(借虎威狐) ° 안자지어(晏子之御): 1.재상 안자의 말을 부리는사람의 위세. 2.하찮은 지위에 만족하여 뻐기는 못난 사람의 비유. [참고] - 중국고사성어 대백과 오세경 편역 - 고사성어대백과 이우영 편저 - 인문고사성어 신동열 편저 - 네이버한자(사자성어/고사성어) - 한국어문회 사자성어 편 #호가호위(狐假虎威) #가호위호(假虎威狐) #안자지어(晏子之御)
#과전이하(瓜田李下) - 의심받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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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전이하(瓜田李下) : 의심받기 쉬운 행동은 피하는 것이 좋다. (유의어):이하(李下) [출전] : 문선(文選)의 군자행(君子行) [참고] - 고사성어 대백과 오문영 편저 - 고사성어대백과 이우영 편저 - 한국어문회 사자성어 편 - 네이버한자(사자성어/고사성어) #과전이하(瓜田李下)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
#녹의사자 (綠衣使者) - 푸른 옷을 입은 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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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의사자(綠衣使者) : 말을 하는 앵무새! 기특한 앵무새에게 '녹의사자'란 벼슬 이름을 내림 [출전] :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史) [참고] - 중국고사성어 대백과 오세경 편역 - 고사성어대백과 이우영 편저 - 한국어문회 사자성어 편 - 네이버한자(사자성어/고사성어) #녹의사자(綠衣使者)
#망국지음(亡國之音) - 나라가 망해가는 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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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국지음(亡國之音): 춘추시대에 있었던 이야기! 멸망한 나라의 음악이란 뜻으로, 1. 음란하고 사치한 음악. 2. 나라를 망칠 음악. 3. 애조(哀調)를 띤 음악을 의미한다. ※ 예기 악기편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 "복수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망국지음 이다." ] [출전] : ¹.《한비자(韓非子) 십과편(十過篇)》 ².《예기(禮記) 악기편(樂記篇)》 (유의어): 망국지성(亡國之聲) 정위지음(鄭衛之音) 정음(鄭音) 정위상간(鄭衛桑間) [참고] - 고사성어대백과 이우영 편저 - 고사성어대백과 오문영 편저 - 사자성어 고사성어 양원한자교육회 - 인문고사성어 신동열 편저 - 네이버한자성어/고사성어 #망국지음(亡國之音) #정위지음(鄭衛之音)
#건곤일척(乾坤一擲) - 하늘과 땅을 걸고 한 번 주사위를 던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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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곤일척(乾坤一擲) : 하늘과 땅을 단 한번의 승부에 걸다. 1.주사위를 휙 던져 승패를 걺. 2.운명을 걸고 단판걸이로 승부를 겨루는 일. (유의어) : 일척건곤(一擲乾坤) [출전] : 한유(韓愈)의 시 ※ 주문(籒文=전주篆籒) : 주나라 선왕 때에, 태사였던 주籒가 만든 한자의 자체로, 소전체의 전신격인 대전大籒이라고도 칭한다. [참고] - 중국고사성어 대백과 오세경 편역 - 고사성어대백과 이우영 편저 - 네이버한자(사자성어/고사성어) - 한국어문회 사자성어 편 #건곤일척(乾坤一擲) #과홍구(過鴻溝) #일척건곤(一擲乾坤)
유익한 한자공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경국지색! 감사합니다아
애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목불견첩!
내면의 아름다움은 미련을 두지않는 것이 아닐런지요^^
감사합니다 ❤
이해가 잘 되어 재밌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공수신퇴!
문학적으로 바꾸면, "박수칠 때 떠나라"군요?^😊^
감사합니다 💕
손자 손무에 관하여는 생몰연대부터 학설이 난무하여 종잡기가 어려운 인물이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설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진을 친다'는 '진'나라의 왕족 출신인 점은 맞아 보이고, 중국 역사상 4대 미녀를 다 합쳐도 못 따라간다는 초일류미녀 '식부인'과 같은 '규성'으로 알려져 있네요^^ 약소국 '진나라'의 왕성인 '규성'이나 진나라에 내란이 일어난 시절 인근 제나라로 가족들이 망명하였고 후대에 전씨 제나라로 역성혁명이 일어났을 때 아버지의 공이 커서 '손씨'로 사성을 받았다고 하네요. 그러다 '전씨 제나라 환공'(잘 알려진 '제환공'은 강씨 제나라 때구요)이 수양대군 마냥 정변을 일으켜서 정권을 잡았을 때 기존 파벌에 속해서 숙청되었던 듯 추정됩니다. 그 당시 손무는 청년 시절이었던 듯 추정되고, 오나라 지역으로 망명했었던 듯 추정됩니다. 그런 숙청 과정의 후유증이 남아서 예전 이 채널에서 다루어주신 고사로 "오이밭에서 신발끈 묶지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매지말라"는 '과전이하' 고사가 아니었을까 추정됩니다. 전씨 제나라 환공 다음 세대인 제나라 위왕 시절 제위왕과 재상 주파호 간의 파워게임과 공신들간의 알력이 뒤얽혀 생긴 게 '과전이하' 고사로 남아있는 거겠죠?^^ 불초하지만, 제가 이 채널 '과전이하' 고사 영상에 댓글로 소감을 올렸던 걸로 기억이 나네요. 국제정치학 용어인 '투키디데스의 함정' 이론이 국제정치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어쩜 사회단체, 심지어 '가족간에도 적용될 여지'가 큰 '일반 투키디데스의 함정 이론'으로 확대해 제반 갈등관계를 조명해 보았던 취지로 기억이 납니다^🙆♀️^ '손무'의 손자로 알려진 '손빈'이 bc 341년? 마릉전투에서 위나라 방연의 대군을 격파한 사건은 손빈 개인의 통쾌한 복수극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은 춘추전국시대 중 전국시대로 진입하면서 패자를 향해 일취월장하던 위나라(양나라) 양혜왕('맹자' 양혜왕편의 그 양혜왕, '장자'에 나오는 '포정해우'에 언급되는 '문혜군')이 패자로 올라서기 직전 '비류직하 삼천척' 마냥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여 힘의 균형추가 서쪽 진나라 즉 진시황제의 5대조 할아버지 진효공에게 기울도록 만든 역사적 전환점으로 작용하였기에 '손빈'이 '손무'의 손자라는 학설이 신빙성이 크다고 봅니다^^ 오늘 영상 '3령5신' 고사는, 손무의 화려한 데뷰 무대를 잘 극화한 이야기이지만서도 손무가 오왕 합려를 패자로 만들었음에도 결국 산 속으로 은퇴하여 몸보신을 걱정해야 할 미래를 예견하는 듯 보이고(손무가 '3령5신' 고사에 나타난 신공을 펼쳤어도 당시까지만 해도 사병 위주로 편제되어 있던 군대 개념이 군주의 군대 즉 국가 상비군 체제로 전환되어가던 시절임을 감안하더라도 손무의 급진적인 처신은 향후 왕권을 위협할 소지가 있었기에 수많은 견제를 받았을 여지도 크게 보이구요), '손빈'도 마릉전투로 천하에 명성을 떨쳤음에도 절정기 때 전격적으로 물러나 산속에 칩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몰렸던 걸 이해할만한 가늠자가 아닐까 추정됩니다^^ 사족이지만, 손빈과 '쏘울메이트'이자 호위무사였다는 '종리춘'이 제선왕의 왕후 역할을 그만 두고 고향으로 물러난 뒤, 범려의 전례를 벤치마킹하여 제3의 장소(예로 태행산 산속이나 장가계 어느 깊은 골짜기?)로 이동하여 '오붓한 여생'을 보냈으리라 추정됩니다^^ 그 무렵엔 두 사람 다 60대 중반이 넘었기에, '신선술 수련'에 집중하였을 것이고, 후대에 이르러 장량이 만났다는 '황석공' 등이 귀곡자. 손무. 손빈 등의 후학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됩니다. 제선왕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직하학궁'에서 결국 노장사상과 병가. 법가를 융합해 '황노학'으로 통합된 학문을 이루어 한나라 대에서 '문경지치' 태평성대까지 이룬 배경에도 손무. 손빈 등의 공로가 미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오늘도 훌륭한 영상에 감사드립니다🙆♀️🙆♀️🙆♀️
잘 시청하고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
누란지위! 어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계란' 이야기가 유명해지게 된 계기가 여기에 있었나 보군요?^^ '계란'이 완전식품이라서 계란 완전식품 찬양론부터서 '콜레스테롤의 보고'라는 약평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한 식품인데, 법륜 스님의 법문장(전주 지역)에서 어느 중년여성이 흥미로운 질문을 했었는데 질문과 답변이 창과 방패 같아 흥미로웠던 기억이 생생해 여기 소개해 보것습니다. 질문 : 스님! 불교 경전에선 살생하지 말라 해서 저는 계란 후라이를 할 때마다 마음이 찜찜합니다! 계란 후라이도 살생인가요?(일동 폭소~~^^) 답변 : 계란도 살아있는 생명체인 건 분명하니, 계란 후라이를 해 드시는 것도 살생으로 볼 여지는 있것고 마음이 찜찜하다니 참~ 착한 보살님이시네~^^" (일동 더 폭소를 터뜨림~^^) 스님 질문 : 평소 계란 후라이 좋아하세요?^^ 보살 대답 : 예, 아이들이 더~ 좋아하죠! 스님 : 혼잣말로 (마음이 찜찜하다 이거지?^^) 그렇담 앞으론 유정란 계란은 후라이하지 말고, 무정란 계란으로 후라이 해드세요! ^^ (일동 또 폭소~^^) 보살 : 잘 알것습니다, 스님! ^^ (일동 또 큰 폭소~~~ 터짐) 스님 해설 : 저 보살님 마음이 정말 예쁘죠? (일동 '네~~' 박수) 저런 이쁜 마음으로 살아가는 보살님에게 어떻게 계란후라이를 못 먹게 하면 쓰겠노? 부처님은 그렇게 꽉 막힌 분이 아니에요~! 찜찜한 분들은 무정란 계란으로 후라이해 드세요잉~ 유정란으로 후라이 해버리면 후손이 없어지잖아! ^^ (대대적인 박수갈채~) * '누란지위' 고사에서 투자 기법 속담인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말라'는 포트폴리오 투자기법 속담이 나왔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사실 '누란지위' 고사는 실은 후에 진나라 재상에 오르는 범저가 진나라 소양왕(진시황제 증조부) 앞에서 펼친 출세전략 오디션에서 '강력한 인상을 심어줘서 자신을 기억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노이즈마케팅 광고기법의 변형'이었지 않았을까요?^^ 요즘 정치판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어쩜 24시간 365일 펼치고 있는 일종의 마스케임 같아 흥미롭고, 아찔하네요^🙆♀️^
감사합니다 😀
솔직히 앞 부분만 알고 뒤에 모르는게 있네요. 지인이 들었으면 욕 할듯..ㅎㅎ 하지만 내가 그 지인들보다 안보, 경제, 외교, 정치, 지리는 훨씬 관심도 많아 아는 것도 많은데... 잘 봤습니다. ㅎㅎ 뒤에 잘못 알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
전국시대 4군자 중 한 명으로 치는 '춘신군'에게 이런 일화가 있었네요^^ 진시황제의 여불위 아들설을, 저는 춘신군이 지어내(주작한) 퍼뜨린 '전국시대판 쥴2사건'으로 보고있는데~ 여기서 그 근거를 다 설명할 수는 없구요. 그러자 여불위 쪽에서 초나라 마지막 왕들, 즉 부추. 유왕. 애왕? 등등은 '춘신군의 자식들'(조선판 우왕. 창왕 신돈 아들설?)이란 유언비어로 맞대응한 정황이 차고넘쳤는데~ 후대에 사마천이 '사기' 역사책을 나름 객관성있게 기술한다는 취지로 사기에다 '진시황제 여불위 아들설', '12개월 잉태설'도 같이 기록하고 '초나라 마지막 왕 3명의 춘신군 아들설'도 기술해서 후대에 진위파악 하도록 여지를 남겼었는데, 저는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 진짜 이유는 이것 때문이라 보거든요^^ 당시 한나라 지배층들은 모두 과거의 초나라 출신들이었기에, '초나라 마지막 왕들의 춘신군 아들설'을 그 진위와는 상관없이 역사서에 싣는 그 자체가 당시 한나라 집권층들에겐 '역린'이었을 테지요?^^ 사마천이 흉노에 항복한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한무제의 격노를 샀다는 건 핑계였고, '초나라 왕들의 춘신군 아들설'이 설사 근거없는 유언비어일 지라도 그런 게 있었다는 걸 싣는 그 자체가 당시 집권층들에겐 "한국인들은 곰의 자손"이라 놀리는 거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진 않았을 듯요^^ 춘신군은, 유학 쪽에서 청나라가 들어서기 전까지 2,000여년간 이단으로 몰아서 금서화시켰던 '순자'를 난릉(난징) 현령으로 초빙해 돗자리를 펴줬던 주모자로 취급받았었기에, 유학이 지배이데올로기가 된 한무제 시대부턴 춘신군도 순자와 함께 백안시 당했었고, 춘신군의 신원복권에 관심을 가질 세력도 전혀 없었을 겁니다. 중드 미월전에서, 주인공 미월 즉 선태후(진시황제의 고조할머니)가 어릴 때 춘신군과 초나라 궁중에서 '신랑 신부 놀이'하면서 어울렸다는 설정을 했지만, 5살 꼬마 남자애와 50대 할머니가 '로맨스'를 벌였다는 설정이라서 102% 역사왜곡이거든요^😂^ 이 영상에 나오는 '조절간맹' 고사성어도 팩트체트할 방법이 없어 진위 파악은 어렵지만, 전국시대말 진시황제 진나라와 초나라가 마지막 패권투쟁을 벌이던 당시(진시황제가 등극하고서 10년쯤 되던 해 춘신군은 초나라 내부 권력투쟁 와중에 암살되었구요), 상대방을 마타도어로 헐뜯기 위해 벌이던 심리전과 이간계가 난무했던 흔적으로 추정됩니다(요즘 우리나라 정치판과도 흡사해 놀라웁기 그지 없어보이구요) ^🙆♀️^
100개맟움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이 '상갓집 개' 고사는, 공자가 14년 주유천하를 사실상 실패로 끝낸 후 노나라로 돌아가려 했을 때 다시 돌아가더라도 삼환씨들에게 정치적 라이벌이 되진 않을 거란 걸 3환씨들에게 보여주려고 '여론플레이'용으로 기획해 연출한 시나리오였을 거라 추정됩니다^^ 당시는 공자가 14년간 주유천하를 사실상 끝내고서 노나라로 돌아가려고 시도하고 있던 시기였고, 아직도 정치적 앙금이 남아있던 삼환씨 특히 계손씨 가문의 반대로 귀국에 난항을 겪고 있던 시기라서 '공자가 나이도 많아졌고 노나라로 귀국하더라도 정치적 재기를 노리거나 비슷한 제스춰를 취해 삼환씨에게 정치적 위협이 되진 않을 거라는 걸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필요했을 것이기에' 우씨왕후 드라마 같이 뭔가 '눈물의 씨앗' 같은 한 편의 드라마로 연출했던 성 추정됩니다^^ 물론 공자가 기획하거나 연출한 건 절대 아니었을 테고요, 다국적 기업 CEO였던 자공이 혼자서 기획. 연출. 감독. 제작비를 다 대고 '(공자의 체면을 감안해) 우연을 가장해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해' 귀국을 성사시켰던 정황으로 보입니다. 제자 염유가 전쟁에서 노나라가 승리 하도록 하고 이 승리를 '스승 공자의 공으로 돌려' 공자의 귀국을 도운 것도 사실은 공자의 귀국을 성사시키기 위해 자공이 뒷작업을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자 자로는 공자보다 9살 아래이고, 염유는 29세 아래로 알려져 있는데 자로는 공자의 보디가드 역할로 충성을 다 했으나, 염유는 평소 공자의 학문이 비현실적이라 평해 공자로부터 '사실상 제명 당한 처지'였음에도 공자가 노나라로 다시 귀국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공자 10대 제자에 들었는데 실은 그 기획 조정자가 반장 자공이었을 거라 추정됩니다^^ 공자가 68세에 돌아온 이후 공자 자신은 일체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학문적 정리 작업에만 전념하면서 계손씨 가문을 자극하지 않았는데다 계손씨 가문의 가신으로 있던 제자 염유가 곤란에 처하지 않도록 배려했지만 이미 멸망의 길로 깊숙히 들어선 노나라의 애공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공자를 다시 정계로 끌어내어 보려고 필사의 노력을 했던 정황이 '장자'에 수록된 '위나라 애태타 우화'였을 걸로 추정됩니다^^ 노나라 애공이 나서서 공자의 출사를 강력히 종용한 사실이 계손씨 일파에게든 여타 삼환씨들에게 알려지면 공자가 귀국 조건 위반이 되어 목숨도 위태로워지고, 노나라 군주 애공 자신도 삼환씨의 쿠데타를 부채질하는 꼴이 될 수 있는데다 노나라 정국 불안을 야기해 제나라에 먹힐 위험도 있었기에 노 애공이 '위나라 애태타'라는 가짜 인물을 공자 대타로 내세워 비유적으로 공자의 출사를 타진 내지 요청해 봤던 듯 추정됩니다 ^🤣^ '상갓집 개' 고사도 주유천하 후 당시 공자가 처했던 정치적 상황을 타개해서 순조로운 귀국을 성사시키기 위해 공자스쿨 학생들이 반장 자공의 지휘 아래 일사분란하게 펼친 한 편의 '마스게임'이었고, '애태타 우화'는 장자 학원 원장 장자가 그런 공자스쿨의 당시 모습을 재현해 스케치한 한 편의 삽화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
감사합니다 ^^ 💕
한자갤러리님. 멋지십니다!❤
감사합니다 ^^ 😄
오늘도 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호가호위' 고사의 시대적 배경을 더 살펴보던 중에 나무위키에서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네요. 초선왕 7년(기원전 363년) 초나라는 파나라 땅에 한중과 검중을 설치했다. 초선왕 12년(기원전 358년) 초나라가 위(魏)나라를 황하의 장원에서 쳤다. 초선왕 17년(기원전 353년) 초나라는 경사로 하여금 위를 치게 했는데, 위는 조나라의 한단을 공략하느라 초나라는 수예 땅을 얻었다. 그래서 초나라의 위엄이 중원에 다시금 울리게 되는데, 이때 초선왕은 재상인 소해휼이 북방에서 그를 두려워하자 소해휼을 마뜩치 않게 여기던 차에 심복인 '강을'을 불러 그 일에 대해 물으니 강을은 소해휼이 두려운 게 아니라 왕인 초선왕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이것이 '호가호위'의 고사다. 주석을 더 둘러보니, '강을'은 위나라에서 사신으로 초나라에 왔다가 눌러앉은 케이스로 이후 초선왕의 총신이 되었다는데, 다른 주석엔 '호가호위' 발언이 위나라의 지령을 받았을 거라네요^^ 즉 '강을'은 위나라 스파이였을 거라는 뉴앙스네요. '호가호위' 고사는 '이간책'에서 나온 첩자의 농간이었단 거지요^😂^ '맹자 양혜왕 편'엔, 양혜왕(위혜왕=문혜군)이 맹자에게 '제나라에게 태자가 죽고, 진나라에 700리 땅을 빼앗기고, 초나라에게도 땅을 뺏겼다'는 대목이 나오는데요. '제나라에게 태자(신)가 죽고'는 bc 341년 마릉전투에서 손빈에게 방연이 패하면서 태자 신이 생포되었고 태자 신은 제나라에 끌려가 치욕을 당할까 두려워 자결을 했었던 일을 거론한 듯 보이고, '진나라에 ~'는 마릉전투에서 위나라 군대가 섬멸당하자 이를 기회로 진나라 상앙이 바로 군대를 일으켜 위나라를 쳐들어가 공자 앙의 항복을 받아내고 성 15개인가를 빼앗아 돌아온 걸 말하는 듯 보이고, '초나라~' 부분은 저로선 그간 확인하기 어려웠었는데 초선왕 12년 bc 358년 황하 유역의 위나라 땅 '장원'을 빼앗겼고 초선왕 17년 bc 353년 위나라 땅 수예 지역을 초나라에게 빼앗긴 걸 언급했던 듯 추정됩니다^^ 양혜왕이 재위 초기에 초선왕에게 많이 패해 땅을 꽤 뺏겼던가 보네요^^ 이런 사유로 위나라에선 '강을'을 강화 특사로 보냈고 '강을'은 아예 초나라에 눌러앉아 스파이 역할을 했던가 추정됩니다. 고려 광종 때 과거제를 건의했다는 쌍기와 비견되는 케이스인데, 쌍기는 당시 중국의 혼란스런 상황을 피해 귀화한 케이스라면 '강을'은 스파이형 가장 귀화였던가 보네요^^ BC 341년 마릉전투에서 손빈이 대승하면서 전국시대 판도가 요동치기 시작했고, '맹자'를 중심으로 지식층들도 이합집산하면서 지식인 빼오기 전쟁도 치열해져 갔었는데 bc 318년경 제나라 선왕 때 직하학궁을 재건하면서 제나라 임치가 제자백가의 요람으로 거듭 나면서 제나라, 서쪽 진나라, 남쪽 초나라가 3강 체제를 구축하면서 천하통일을 주도하기에 이른 듯 추정됩니다^^ '호가호위' 고사는 3강체제 속에서 서로 첩보전과 이간책도 난무했던 역사적 흔적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싶네요^🤣^ '맹자 양혜왕(위혜왕) 편'에선, 각 구절의 하나하나가 시대적 상황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마치 한 날 한 시에 있었던 양 편집해 놔서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적이 있었는데, 오늘 '호가호위' 고사를 뜯어보다가 bc 341년 마릉전투 이전의 이야기와 마릉전투 이후의 이야기가 최소한 분리되어 논의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약하면, 맹자가 '맹모3천지교'가 한창이던 10대 초반에 타국 위나라에 있었던 전혀 알 리도 없고 알 바도 없고 관심도 없었을 전쟁 내용을 양혜왕은 (맹자는 영리한 자라서 당연히 알고 있었으리라 지레짐작하고서) '제나라. 진나라. 초나라와 있었던 옛날 전쟁에서 진 원한을 맹자 니가 갚아줄 래?' 하는 식으로 질문을 해대서 황당했을 맹자는 '오십보 백보' 얘기로 고무다리 긁는 얘기나 하면서 밥이나 한끼 잘 먹고 헤어졌던 듯 추정됩니다 ^😭^ 워렌 버핏과의 50억짜리 점심 먹으면서, 양혜왕은 '푸념'만 늘어놓고 말았단 게지요^^ 맹자와 양혜왕이 만난 다음해 양혜왕이 죽었다는 대목이 '맹자' 책에 언급되어 있으니, bc 320년 맹자가 52세, 양혜왕이 66세 무렵 만난 건 확실해 보이나 양혜왕편 여러 구절로 미루어 맹자가 36세 무렵부터 몇 차례 더 만났을 정황이 많기에 '맹자 양혜왕 편'에 나오는 구절들을 해석할 땐 주의해야 할 포인트가 아닐까 싶네요^😊^ 전국시대 초나라가 무섭게 강국으로 치고 올라오던 정점 시기가 초선왕 그리고 그 아들 '초위왕 시기(월나라를 합병시킴)'이기에, '호가호위' 고사를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살펴보니 흥미롭네요 ^🙋♀️^ '장자' 책엔, '초위왕이 장자를 재상으로 영입하려고 제의했는데 장자가 거절해서 무산되었다'는 대목은 102% 가짜뉴스이고, 노이즈마케팅으로 주가조작하는 방식의 '뻥카'로 추정됩니다^^ 그전엔 쓸모없었고 돌멩이였던 다이아몬드를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포장하여 팔아먹기 위해 헐리우드 시상식에서 유명 여배우 입을 통해 '브랜드 스토리텔링 마케팅 기법'으로 성공시킨 케이스와 유사하다고 추정됩니다 ^🙋♀️^
감사합니다 💜
@@HanJa_gallery 🙏
역시 죄는 무서운 것이다
감사합니다~~ 💕
지금 같으면, 앵무새의 진술만으론 증거능력 자체가 없어 체포영장 조차 발부되지 않았을 듯요. 춘추시대 진문공 시대가 지나서쯤이던가 난영 일족이 몰살당했던 때 부인 난기가 집안 일을 보는 집사 하무라던가와 바람이 나서 하필 그 통정 현장을 아들에게 들켰었는데, 그 아들이 20대였음에도 혹시 지 아버지에게 고자질할까봐 제발이 저려서 친정아빠 범개(당시 중군 원수급 재상)인가한테 가서 "아빠, 난서방이 오늘 내일쯤 반란을 일으킨데요, 아빠랑 다 죽인데요~" 라고, 거짓정보로 고자질 하자 범개는 사위놈이 요즘 행동이 수상하더라 해서 즉각 군대를 동원해 그 집 개미새끼까지 다 죽인 사건이 있었지요😢 이때 그 문제의 아들은 화장실 바닥에 숨어있다 살아났지만 빼꼼이 나와 초나라로 달아나려고 짐챙기다 걸려 그 아들도 죽었는데~나중에 아빠 범개가 딸 난기에게 속은 걸 알고, 딸 난기는 살려두고 상간남만 몰래 암살해서 개밥으로 줬다는데요. 이 사건이 후대에 범씨는 멸족되고, 위. 조. 한 세 성씨만 3진으로 나눠가지면서 전국7웅으로 올라선 거 아닌가 싶더군요. 제환공이었다면, 딸 난기도 죽였을 듯요. 어쩜 난기는 앵무새를 날려보냈을 지도 모르것네요. 그래야 완전범죄가 될 줄 알았을까요? 앵무새는 키우면 안 되것네요. 한 마리 키워 볼까 했더만유. 그만 둬야것슈~^😊^
감사합니다 💕
화랑집그림
감사합니다 💜
이 정도면 중국 고대엔 모짜르트급 음악 천재들이 천지빠까리였다는 거네요^🤣^
감사합니다 💕
유익한 사자성어 자주 올려주세요 ㅎㅎ
네 감사합니다 사랑 💕
잘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종중좌빨?
재밌어요🙆♀️🤗
감사합니다^^ 💕
좋아요
감사합니다 💕
한편 생각해 보면, 항우군이나 유방군이나 처음 의거군과 주력군은 똑같이 초나라 출신이란 공통분모가 있었는데 초나라 노래가 뭔 특이할 게 없었을 듯 싶거든요^^ '초가'를 강조한 배경엔, 후대에 어떤 차별화 목적으로 정치적 목적으로 스토리텔링한 이야기 즉 한신의 처형을 정당화시키는 내지 여론의 악화에 물타기 하는 등으로 시선돌리기용으로 진평 등이 만들어퍼뜨린 성 싶은 냄새가 짙게 풍기네요^😂^
감사합니다 ^^
@@HanJa_gallery 우린 사자성어가 나온 시대적 배경까진 대개 잘은 모르니까 누가 뭐라면 그런가보다 하고 따라쟁이로 외워서 써먹어 왔었지 않나 싶거든요^^ 근데 중국인들도 우리가 알고있는 의미로 쓸까도 의문이고, 예로 '황산벌' 영화에서 백제 사투리? "거시기"를 신라 군에서 '혹시 무슨 암호가 아닐까' 싶어 암호팀들이 분석하는 대목이 나오던데 "거시기를 해석상으로 128,000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풀이하는 장면이 그 영화에서 압권이었듯이요^^ 초나라 지역만도 한반도 10~20배 크기일텐데 거기서는 '거시기'를 1,280,000가지가 될 수도 있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꼭집어 '진평'이 범인?이 아니더라도 진평 급이 128,000명이 있었을 수는 있것네요^😀^
@@화타-m2i 감사합니다 💕
"귤이 변해 탱자가 된다"는 '귤화위지' 고사는, 초영왕과 제나라 재상 안영 간의 말빨 대결 고사로 알려져 있으나 좀 석연찮은 부분이 없지 않은 고사로 보입니다. 초영왕은 '초나라판 수양대군'으로 볼 수 있는, 조카를 죽이고 찬탈한 군주였는데 즉위식에 제후들이 아무도 축하사절을 보내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나라 재상 안영이 어떤 외교적 임무로 초나라에 파견되었는지는 불명하나 제나라와 초나라는 지금의 상해 인근이 국경이었기에 국경분쟁 조정차 방문하지 않았을까 추정됩니다. 즉, 초영왕 입장에선 즉위식에 축하사절단을 보내주지 않은 제나라에 서운한 감정도 있었겠고, 국경분쟁으로 추정되는 외교현안 협상에서 기선제압을 해둘 필요성에서 이런 '정치개그'를 준비했던 듯 추정되네요. 위도상 제나라가 북쪽이고 초나라가 남쪽이기에 '남귤'은 초나라 특산물이라서, 비유가 반대로 설정된 게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즉 제나라 양민이 초나라에 와선 도둑으로 변했다는 뜻이라면, "북귤남지"로 표현해야는데, "남귤북지"라서, 의문이네요^^ 귤보다 약초로 쓰는 탱자가 더 비싼 때였던 건지도 의문이고요^^ 이런 몇 가지를 종합해 보자면, 양국간의 국경분쟁을 귤산지와 탱자산지 기준으로 하자는 제안을 안영이 제안하고 싶었고 초영왕이 이를 전격 수용하면서 초영왕의 찬탈을 제나라는 문제삼지 않기로 하고, 일종의 인준을 해주고, 앞으로 우회관계를 회복한다는 외교적 결단을 서로 주고받은 일종의 밀약을 맺는 과정을 스토리텔링화시키는, 이를 제나라 분쟁지역 백성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홍보용 전단지 모냥으로 제작된 이야기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
제나라 재상이던 안영이 초나라를 방문한 이 시기를 나름 살펴본 바, 초영왕이 나중에 초평왕이 되는 동생을 보내 제나라 권신 경봉을 멸한 시기 전후로 추정됩니다. 그 무렵 전후에 초-오 전투, 초-진 맹약, 제후대회 등으로 중원 국가들 간의 국제정세가 요동치던 시기로 추정되고, 오왕 합려가 세력을 키워가던 시기. 제환공의 패권시대를 다시 열고자 노력하던 제나라는 내부 상하 권력투쟁이 치열해 군후들끼리 신하들끼리 군후와 신하들이 얽혀 죽이고 살리는 살육전에 초영왕이 끼어들어 제나라 내부 권력투쟁을 한방에 정리해 주던 시기로 추정됩니다. 당시 제나라엔 안영이 사실상 실권을 쥐고 좌지우지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던 시절이라서 비유컨대 '요즘의 미-중 패권경쟁의 축소판'으로 치고보면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달까요? 초영왕으로선, 제장공을 죽이고 그 동생이자 당대 군후인 제경공을 군위로 세웠던 최저와 경봉이 권세를 독단하다 다시 경봉이 최저의 집안싸움을 이용해 최저 가문을 몰살시킨 내란을 평정시켜준 셈이라, 제나라 국력이 흔들리는 이때 제경공이 다스리는 제나라를 속국으로 삼으려는 욕심이 났을 테고, 반면 나름 제환공의 패권을 다시 일으켜보려던 제경공과 안영은 내부혼란을 모처럼 잠재운 이때 초영왕의 속셈을 정확히 진단하고서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듯 스탠스를 잡아야 했기에 '친선차 방문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제 '수 싸움'은 적벽대전을 앞두고 제갈량과 오나라 고위관료들과의 논전을 방불케 하는 설전이 벌어진 게 아니었을까 추정됩니다^^ 팩트체크하자면, 이 내용이 수록된 '안자춘추'는 후대에 '논어 마냥' 안영의 제자 내지 후손들이 정리 편찬한 '일종의 문집' 성격이 강하고 당연히 '안영판 용비어천가'로 볼 여지가 커보이고, 그 당시 실질적 회담결과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고 ~ 뭐 국경분쟁을 이래저래 조정했다거나, 경봉을 주살해준 은혜 보답으로 성 몇개를 바치고 끝냈다거나, 초영왕이 제나라가 속국이 되란 요구를 물리치고 '양피 다섯 장'?으로 퉁쳤다거나 등등 전혀 기록이 없는 점으로 보아 "말빨로 코를 납작하게 해줬다"는 무협소설 마냥 무용담으로 끝낸 '일종의 정신승리 기록'인 점으로 미루어 무언가 역사적으로 감출 수 밖에 없는, 즉 예를 들어 속국요구를 조공바치기로 퉁쳤다는 물타기용으로 또는 앞으로 초나라와 패권경쟁을 접겠다는 사실상의 항복 등이 있었는데 이를 쉴드 치는 목적으로 '말빨로 이겼다'는 식의 정신승리 기록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입니다^^ 요즘도 '오물풍선'을 날려 내부결속을 노리고, 미국 대선 국면을 이용하려는 저의와 닮아 보이네요^^ 사족이지만, 소설 삼국지 상의 그 화려한? 적벽대전 자체가 실은 '사실상 9라'이고, 더더욱 제갈량의 그 현란한 말빨은 그 자체가 전혀 없었다는게 역사적 팩트라기에, 제갈량의 그 유명한 말빨 기록의 기원이 이 안자춘추의 기록을 좋게말해 벤치마킹했던 거로 추정됩니다 ^🤣^
이릉 소무 사마천 등이 인연으로 그리 얽혀 있었었네요^^ '절개'란 말도, 어쩜 '고도의 통치술 목적으로 지어낸 가스라이팅의 파편'이 아닐지~~? 싶네요. 와각지쟁에서 나온 그 대진인? 말마따나, '우주에서 보면'요?^🤣^ 70년 살아보니~ "말장난에 농락당해온 게 인생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단 생각이 가끔씩 든답니다^😅^
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 💚
채널 자체가 예술이네요^🤗^ 한자가 발전해온 모습을 보여주시는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구요👍 '비방지목' 고사에서, '신문고' 제도가 벤치마킹 되었나 봅니다. 요순시대 요순시대~ 해서 '뉴욕 맨하탄'보다 화려했나 싶었더니 우리 어릴 때 시골 집보다 못한 누옥에서 살았던가 보네요^^ 도올 교수가, "요즘으로 치면 '시골 이장' 정도의 세력이었고, 규모도 이장이 다스리는 정도였을 거"라더니~ 폄훼하려는 강의가 아닌 듯 추정됩니다 ^🤣^ 요순시절이나 예전 시골 생활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보이는데, 왜 요순시절은 '태평성대'라 칭송하는 지 궁금하네요^^ 성경에서 창세기 에덴동산을 지상낙원으로 설정하듯, '통치술'의 일환은 아니었을까요? 정치든 역사든 종교든 '가스라이팅' 과정인 면도 부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왔기에요^😄^ 채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
감사합니다^^ 💕
😅
감사 합니다 💕
감사합니다~! 좋아요!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결초보은' 고사는 고대엔 당연시 되었던 '순장 제도'와 연관되어 있는 고사이고, 춘추시대 말엽 즉 아직 전국시대가 시작되기 이전의 전쟁 관련 고사이기에 역사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춘추5패 중 1명으로도 치는 '오나라 합려 왕'이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딸이 요절하여 장례를 치를 때 당시 무덤을 조성하던 인부1만명을 같이 묻어 순장했다는 설도 전해오고, 오자서가 불구대천지 원수 초평왕의 무덤을 파내 매질할 때 그 무덤의 위치를 알려준 노인이 "실은 내가 그 무덤을 조성한 인부였소. 50여명이 같이 무덤을 만들었었는데, 나는 미리 낌새를 채고 전날 달아나 살았지만 나머진 다 순장시켰다오. 동료 50명의 원한을 갚을 길이 없었는데, 장군이 내 대신 원수를 갚아주셨으니, 동료들이 편히 눈을 감을 성 싶어 감사하오~"라는 대화가 '동주열국지(풍몽룡 저)'에 수록되어 있구요. 진시황제의 여산릉을 조성할 때 인부 30만명을 같이 묻어 순장시켰다는데, 과장이 있을 법하지만 '순장'이 있었을 거란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근래 십여년 전후에 발굴된 진시황제 진나라에선 '진목공(진시황제의 10대 조상?)'의 묘에서 177명, 또 다른 묘엔 300여명의 순장 흔적이 발굴되기도 했다니~ '결초보은' 고사는 속칭 전국 7웅 '진 초 연 제 조 한 위'로 전국시대 판도로 개편되기 이전으로 '조 한 위' 3개 나라가 '진'이란 나라로 합쳐져 있던 시기라서, 당시 '순장 제도'에 관한 지도층의 인식변화와 함께 마치 종교개혁 마냥 지도층 내부에서 갈등관계도 엿볼 수 있다 하겠습니다^^ '결초보은' 고사에서 형 위과. 동생 위기 형제 간에도 아버지 '위주'의 '순장 유언'을 두고 견해차이가 있었다는 게 나타나는데 형 위과가 평상시의 아버지 위주의 유언과 임종시의 유언이 달랐던 점을 두고, 동생 위기는 아버지가 임종시 유언이 "서모를 순장시켜라" 였기에 '서모'를 죽여 순장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형 위과는 "아버지가 정신이 온전할 때 '서모를 개가시켜라'고 말씀하셨는데 막상 임종시에 '서모를 순장시켜라'라고 한 건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라서 정신이 온전할 때 한 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여 '서모를 개가시켰었었는데', 전쟁에 형제가 장군으로 나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서모의 친정아버지 혼령이 '결초보은' 하여 적장을 쓰러뜨려 줘서 승리하게 되었다는 취지의 설화입니다^^ 진시황제의 통일 전쟁 때 장평대전에서 40만 조나라 병사 포로를 생매장시킨 '백기 장군'이 비참한 최후를 맞는 이야기, 진시황제의 여산릉 조성 때 30만명 인부를 생매장시켰었다는 고사, 항우가 20만 진나라 병사 포로를 '반란의 위험이 있고 군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생매장 시킨 일로 결국 패망한 초한지 결론, 제갈공명이 상방곡 계곡전투에서 사마의 3부자를 태워죽이려 할 때 갑자기 비가 쏟아져 사마의 3부자가 살아나는 이야기 등등은 그게 종교적으로 포장된 '순장'이었던 심청전 속의 '인신공양'이었든 뭐든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가~ 돌아보게 하네요. 고조선. 부여 등 시대엔 대규모 순장이나 인신공양이 행해지던 종교행사로, 삼국시대 중반까진 순장 제도로, 최근까진 무덤 앞에 무신상 문인상 등을 세우는 거로, 이젠 납골당. 수목장 등등으로 '풍습'이 변하면서 점차 폭력적인 외형을 순화시키면서 '통치' 방식만 바꾼 거 아닐까요?^^ 구약 성경 속에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죽여 번제로 올리려다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양으로 대체하는 이야기는 '인신공양'에서 '희생제'로 바뀌는 '종교개혁'으로 해석되는데요, 그 하느님의 음성이 다른 사람에겐 안 들리지만 아브라함 혼자는 들을 수 있었다는 게 신기방기 하잖아요?^^ 예전에 사극 드라마 '바람의 나라'에서, 고구려 유리 왕이 갓태어난 아들을 희생제물로 바치려고 상자 속에 아이를 넣어두고 보검으로 찌렀는데 '죽지 않자' 살려줘서 고구려 3대 왕 대무신왕으로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돌아보면 '인신공양'이 사라지는 과정이 루터의 종교개혁 못지 않게 엄청 어려운 과정을 겪었던 성 싶구요^^ '결초보은' 고사는, 어쩜 위과. 위기 형제의 후손들이 후대에 전국7웅의 하나인 '위나라'를 세우고서 왕족으로 성장한 이후에 만들어진 "적선지가 필유여경"으로 합리화시킨 즉 '위나라판 용비어천가'로 볼 "만들어진 설화"일 가능성이 99.99%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대서사시도 실은 100% 조작된 역사로, '로마판 동북공정용' 또는 ' 로마판 용비어천가'로 보여지는 "100% 문학 소설"이기에요^🤗^
@@화타-m2i 깊은 공감 ~~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저는 와각지쟁 고사가 "위나라 수도가 대량"이란 대목에 더 눈길이 가네요. 위혜왕('맹자' 책에 등장하는 '양혜왕')이 BC 342년 마릉전투에서 위나라 원수 방연이 제나라 군사 손빈에게 대패하고서 방연과 태자가 죽은 이후 곧이어 진나라 상앙이 위나라를 공략하여 위나라는 수도를 동쪽 지역 대량으로 옮기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으면서 양혜왕으로선 '큰 거 한방'을 노릴만한 시기였을 법 추정됩니다 ^^ 저는, "결초보은" 고사를, '양혜왕이 이복 서형을 죽이고 등극한 터라 백성들에게 정통성을 부각시키고, 분위기를 일신시키고자 '사실상 중시조격인, 진문공 중이의 경호실장 역할을 했던, 위주와 그 장남 위과의 꿈 이야기인 결초보은' 고사를 만들어 마치 정도전이 '몽금척' 이야기를 지어냈듯, 이성계가 황산대첩을 마치고 전주에서 '패풍가'를 부르자 정몽주가 왕조찬탈의 의도를 간파하고 자리를 떴다는 스토리텔링을 했듯, 양혜왕이 지어내 만든 '양혜왕판 용비어천가'로 보는데, 와각지쟁 고사로 미루어 양혜왕의 정복전쟁 재개에 국제적으로 견제가 많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양혜왕은 마지막 희망으로 당시 일타강사로 유명하던 맹자를 초청해 '한방'을 기대했다가 쫑쿠만 먹고서 의욕까지 상실하자 맹자와 헤어진 후 1년도 안 되어 사망했다고 하니, 맹자 대신 장자에게 물었더라면 "너무 애쓰지 마라"라는 위로라도 받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동이족의 근간을 만든 동이 구이 구려 고려족은 왜 아홉 구를 이집트 코페쉬 검을 응용했는지 본인도 궁금함 ^^
좋아요!
감사합니다 ^^😀
너무 유익합니다
감사합니다^^ 💕
속과 겉이 다른사람들을 조심해야죠^^
네! 감사합니다 ~
구독합니다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많이 성원해 주세요"
'우리 조상 東夷族은 현재 세계 인구의 1/4 이상이 사용하는 뜻글(表意文字}인 漢字의 원형 甲骨文字를 만들었고, 세종대왕은 인류역사상 가장 우수하고 가장 간편한 소리글(表音文字)인 訓民正音을 創製하였다.'
감사합니다 💕
오늘도 감사해요 ❤
감사합니다 💕
많은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사물의 시초가 남상에서 왔군요!
감사합니다 ♡♡❤
잘 배우고 갑니다!
애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잘보고 갑니다~
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 오랜만에 들어와서 영상 보고 좋은 내용 배워갑니다 ^^ ! 배경음악 , 영상기술 점점 더 좋아지는 거 같습니다 🙂 ~ 다음 영상도 기대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