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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해프닝
Южная Корея
Добавлен 1 июн 2024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해프닝들. 거기에 msg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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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만을 굶겨죽인 마오쩌둥의 한 마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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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이야기를 짧게 썰어드립니다. MSG 살짝 쳤어요. #마오쩌둥 #제사해운동 #대약진운동
고려제일검이었으나, 심성은 소인배였던 척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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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이야기를 짧게 썰어드립니다. MSG 살짝 쳤어요. #역사 #척준경 #소드마스터
마피아가 지독하게 미국 우유산업을 바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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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이야기를 짧게 썰어드립니다. MSG 살짝 쳤어요. #마피아 #알카포네 #우유
일본제국의 최종결전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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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이야기를 짧게 썰어드립니다. MSG 살짝 쳤어요. #2차세계대전 #태평양전쟁 #야마토
미국이 흑인에게 벌였던 생체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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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이야기를 짧게 썰어드립니다. MSG 살짝 쳤어요. #역사 #미국 #터스키기생체실험
축구 때문에 일어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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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이야기를 짧게 썰어드립니다. MSG 살짝 쳤어요. #축구전쟁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이름하여 튤립버블
어케이탈리아통일했냐
일본군 최악의 장군이라뇨.... 최고의 어둠의 독립군 장군한테
비싼 쓰레기만도 못했던 조선
ㅋㅋ 화살하나로 다섯마리는 ㅈㄹ
이성계의 활솜씨에 대해서는 정사와 야사에 걸쳐 수많은 기록이 있습니다. 적군의 왼눈만 골라서 쐈다든지, 고려군을 조롱하는 왜군의 엉덩이를 골라 맞췄다든지 끝이 없습니다. 물론, 조선의 왕이었기에 과장된 전과기록일 수 있음을 감안해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활솜씨는 최강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각성제 페르비틴의 주성분은 메스암페타민, 즉 마약이었습니다. 독일제였죠. 2차대전 당시 나치독일은 병사들에게 마약을 나눠주고 전력향상을 꾀했죠. 수뇌부도 예외는 아니어서, 히틀러까지도 마약에 의존했다고 전해집니다.
베트남은 정글이고 걸프는 사막전이였어요 이라크 쿠웨이트가 사막이나 산악지형이였으면 걸프전도 베트남전이나 아프가니스탄전이랑 똑같앗을거에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저는 단순히 전력을 다해 양군이 부딪치는 것만 생각했는데, 병력 투사하기 쉬운 지형도 영향이 있었겠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걸프전은 여러모로 현대전의 한 획을 그은 전쟁이었습니다. 제공권의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세상이 알게 되었고, 미군의 첨단기술력을 대단위로 시연한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이라크 군의 소련제 무기가 박살나는 모습을 본 소련과 중국은 충격에 빠졌고, 이후 세계적으로 군 현대화의 기점이 되었습니다.
테베의 신성부대는 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승은 제자의 본보기가 되려고 했고, 제자는 자신의 가치를 스승에게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자발적인 동기부여에, 강한 훈련으로 높은 전투력을 유지했습니다.
이탈리아 약하다는게 아프리카 부족장도 알고 있을 정도면
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은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이탈리아가 무리하게 시비를 건 것이었습니다. 절대적인 병력수도 부족하고 준비도 안되어있는 상황에서 본국은 전쟁하라고 윽박 지르고, 전투에서 이탈리아다운 실수를 하고, 상대는 제대로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탈리아의 판단미스였습니다.
참새가 곡식을 훔쳐먹는 것은 많지만, 그보다 생태계에 이로운 작용을 하는 동물이었습니다. 과학적 근거 없는 정책, 독재자의 한마디에 휩쓸린 관료들, 실적에 혈안이 된 하급 간부들의 콜라보가 대환장 파티를 만들어냈습니다.
마오쩌둥이 살아있을때는 참새들의 중요성을 몰랐습니다.
한국 역사에서 전략전술이 뛰어난 장수는 종종 보입니다만, 척준경처럼 순수 무력이 부각된 인물은 드물었습니다. 그냥 잘 싸운 것을 넘어, 개인의 퍼포먼스가 전황을 바꾸는 레벨이었습니다. 다만, 정말 순수한 무인에 가깝고, 생각이 짧아서, 이리저리 이용당하다가 버려진 안타까운 인물이었습니다.
랏치만 구룽은 오른팔만 잃은 게 아니었습니다. 안면과 오른 다리에도 부상을 입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총기는 리엔필드로 추정되는데, 4키로 정도되는 소총을 한 손으로 다루며, 탄창까지 교체하며 이룬 성과였습니다. 기적적인 전과를 올리고 나서 그는 2년 가까이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후유증으로 오른쪽 눈을 잃었습니다.
네팔인에게 구르카용병이라 하니 못알아 듣는데, 정식 용어가 뭔가요?
@@한도경-m2n 저도 겉핥기로만 알고 있어서, 제대로 된 답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고르카 혹은 고르칼리 혹은 구르카 라고 합니다. 정확히는 어떤 민족을 지칭하는 건 아니고, 네팔과 인도 북부 지역에서 온 용병들을 지칭한다 합니다.
@@worldhappeniing 네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따로 알아보도록 할게요^^
알카포네의 우유산업 진출은 결코 순수한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밀주 유통망을 고도화하면서, 검은 돈을 세탁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철저한 관리도 정부 측에게 꼬투리 잡히지 않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었지만, 그 과정은 결코 깨끗하진 않았습니다.
이런걸로 유투브 하겠다고 한심하다
사람은 쳐맞다보면 정신을차리는게 아니라 정신줄을놓아버린다 현대해전에서 전함이 쓸모없고 항모가 주력이될거란걸 가장먼져 알아챈 일본해군성은 태평양 전쟁이전까지 항모주력으로 운영하다 쳐맞고 대패당하고 하다보니 정신줄놓고 역행하눈 야마토를 만들고 무사시까지 만들어버림 정신줄을 놓아버린것임
물만두 호텔..
야마토의 내부 시설은 정말 호텔급이었다고 합니다. 보급문제로 일반군인이 주먹밥 하나 먹기 버거운 시절에, 카레라이스와 바나나가 일반식으로 나왔고, 냉동냉장시설이 잘 되어있어, 도미회, 맥주, 아이스크림, 탄산음료 등 없는 게 없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해당지역 의사와 보건소에 공문을 보내 피험자들이 방문하면 치료하지 말고 그냥 보내라고 지시를 하였으며, 해당지역 청년들이 군대 에 입대했을 때에도 육군에게 치료하지 말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일본군은 남대문 위에 기관총을 배치하고 있었고, 대한제국은 각각 10~15발의 총탄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길 수 없는 전투였지만, 정말 의기 때문에 일어난 전투였죠. 하지만, 그 뜻을 널리 알리고, 이후에 정미의병과 무장항일운동의 시초가 되었으니, 분명 그 의의가 있는 전투였습니다.
10~15발인 이유: 1870년대이후 나라가 비정상이여서다.
어자피 90프로가 노예였던 비정상적인 나라
사실 완후가 실존한 인물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널리 회자되고, 또한 나사까지 그를 기리는 이유는, 그 허무맹랑한 도전정신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돈키호테를 보고 비웃으면서도 뭉클해지듯이, 불가능한 꿈을 향해 도전한 그의 이야기는 한편으로 아름다워보이기도 합니다.
축구를 하기 전부터, 엘살바도르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온두라스로 몰려들며, 두 나라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2차 경기 도중에는, 선수들 숙소에 돌과 달걀을 던지고, 호텔요리사는 설사약을 넣은 요리를 내놓는 등 이미 분위기는 최악이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엘살바도르군은 비밀리에 온두라스를 침공할 생각이 있었는데, 축구경기가 도화선이 된 셈이죠.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살아남은 스파르타인이 있었는데, 온 스파르타 시민이 조롱하고 말도 섞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생존자는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모로 지독한 스파르타인들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섣불리 결투를 벌이기에는 너무 거물이었습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초대 재무장관으로 10달러 지폐에도 그의 얼굴이 새겨져 있으며, 애런 버는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성질 뻗쳤다고 서로 현피를 뜬 셈이죠.
님이 먹은 고기도 뱃속에서 고통받겠네여
재밌나봐
ㅂㅅ인가
이미 오래전에 소화되서, 똥으로 퐁당.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을 거에요
오페르트는 조선 방문 및 도굴 과정에서 영국인, 러시아인, 해군제독 등을 사칭하며, 천주교 사제와 함께 일을 꾸몄습니다. 그의 만행은 프로이센 신문에도 보도되어 모두의 분노를 샀고, 법정에서는 많은 혐의들이 증거불충분으로 무죄가 되었으나, 해군제독 사칭의 죄목이 인정되어 실형을 삽니다.
야마구치 쓰토무는 이후 새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으나, 그와 그의 가족이 방사선 피폭을 당한 것을 알게 됩니다. 가족 모두 암과 각종 질병에 시달렸죠. 이후 그는 죽을 때까지 핵무기 반대운동에 헌신했습니다.
100여년 전이군요!! 저의 조부모님이 젊었던 시절!!! 외조모님이 1919년 생이신데!!! 아주 먼애기 처럼 인식한다는… 슬픈 애기죠!! 그 때 애기를 간간이 들려주셨더랬는데…
제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도, 일제강점기 때 일화에 대해서 들려주곤 하셨어요. 정말 비극적인 과거가 가까이 있었죠. 😢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술 쳐묵.. 오해가 발생할 의사소통 장애 ㅋㅋ현실정치 우리얘긴가 ㅋㅋㅋ
어이없는 선택과 황당한 상황들이 넘쳐나는 게 세상일이라... 그래서 채널명도 '역사는 해프닝'입니다 😂
당시 오스트리아 군은 다민족이 섞여있었습니다. 더불어 술 때문에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죠. 겁을 주려고, '투르크!'라고 외쳤는데, 적이 왔다는 걸로 알아듣고, '멈춰!'라는 독일어를, '알라!'라고 잘못 알아듣고, 이래저래 대혼란이었습니다. 황제 요제프 2세는, 자기 마차를 시냇물에 버려가며 도망칠 정도였습니다.
어디 이 놈들 뿐일까? 수도 없이 많았다. 이런 일본을 국짐당 놈들은 동맹이란다.
저래도 여행가고 일본차 타고 다한다
적군이 아니라 난징 시민을 상대로 무차별 살륙 한거임.....
맞는 말씀입니다. 100인 참수경쟁이라는 미친 짓도 난징대학살의 일부였을 뿐이죠. ㅠㅠ
에어푸르트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일어난 이 사고는, 귀족 간의 영토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귀족들은 혹시나 모를 칼부림에 대비해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똥물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하네요.
당시 신문기사 내용은 참혹했습니다. 경쟁 중인 장교들이 어떤 명검을 쓴다든지, 기사를 보면 신부후보들이 줄을 설 거라는 등, 학살을 떠나서 검으로 적을 베는 행동 자체를 마치 스포츠 경기 중계하듯 행동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우스웠으나, 그의 삶은 대단했습니다. 그리스 비극 3대 작가 중 한 명으로서, 그리스 비극의 토대를 다진 인물입니다. 그 마찬가지로 3대 비극작가인 소포클레스의 스승이기도 하지요.
시모 해위해가 대단한 사실은 저격기록으로 사살한 적군들이 불가 수개월동안만 활동하고 추가로 기관단총으로 적을 추가로 사살했는데 이는 공식적으로 밝힌 사실이고 비공식으로 사살한 적들은 이보다 더 많은것으로 보는 것으로 알려진 전설의 저격수인데
시모 해위해는 망원조준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스코프의 반사광으로 적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겨울에 입김으로 위치 노출이 될까봐 입에 눈을 물고 있었다고 하네요. 정말이지... 사냥꾼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이야기인지...
짧게 요약하다보니, 내용 전달이 잘 안되었네보네요. 😅 중국과 러시아간 국경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이야기입니다. 국경의 섬을 두고 소유권을 다투다가, 양쪽 국경수비대끼리 사이가 엄청 안좋아졌습니다. 이게 패싸움으로 발전하고, 서로 자존심 때문에 패싸움에서도 어떻게든 이기려고 권투선수 출신을 투입하네, 무술가를 투입하네, 하며 매일 같이 싸워댔습니다. 나중에 감정의 골이 깊어져 양국 간 전쟁으로 이어질 뻔 했죠.
영국은 전쟁 배상금으로 전쟁에 쓰인 비용을 지불할 것을 요구했으나, 막상 영국이 받을 것은 포탄 비용밖에 없었다고 해네요.
피델 카스트로에게 미인계를 시도한 스파이는, 과거에 카스트로와 사귄 적이 있었던 여자였습니다. 카스트로에 대한 원한으로, CIA와 협조하여 그를 제거하려 하였으나, 막상 총구를 겨누고 보니, 옛 감정이 되살아나 죽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우옢 선수였네
내용에 살짝 오류가 있어 바로 잡습니다. ;;;;; 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이 아닌, 미국 레슬링 협회의 명예의 전당입니다. ^^;;;;
1패는 누구인가요 ㄷㄷ
나도 이거 말하려고 했는데ㅋㅋ
군대에서 중대장으로서 타부대 병사와 붙다가 1패를 기록했다고 전해집니다. 행크 톰슨이라는 링네임이었어요. @@당신의선택지
짧게 줄이느라 많은 게 생략되었습니다. 처음은 패싸움이었으나, 나중에는 박격포 공격, 전차 전투로 이어졌고, 핵공격까지 고려될 정도로 긴장은 고조되었습니다.
Fue llamada la Guerra del Guano o del Pacifico, el motivo principal fue Bolivia aumentando precios en 10 centavos, y como ellos son Bolitas son cobardes se retiraron en plena guerra ese es el resumen de como comenzo
이후에도 놋쇠황소는 역사 속에서 종종 등장합니다. 남유럽을 중심으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쪽 문헌에 종종 등장하여 그 끔찍함을 과시하곤 했습니다. 더불어, 이 고문기계가 금관악기의 기원이라는 설도 있네요 ;;;
ㅈ가튼 뇨 나. 관심없다고 신 벨 려나
지금 벨기에의 도시들이 아름다운 것에는 레오폴드 2세의 영향이 크다고 합니다. 콩고를 수탈하여 벌어들인 돈으로 본국의 건축에 힘을 써서, 건설왕이라는 별명이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