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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Life & Walk
Добавлен 4 фев 2011
With Pleasure & Sensibility : Life & History in Seoul Korea, Travel, Walk, Display, Space, Hot Spot, Perfomance, Sports, Restaurant, Information, Royal Palace, Cheonggyecheon Stream, Duck, Birds, King Sejong, National Museum, Namsan, Healing, etc.
《창덕궁의 가을》 후원 20241121 궁궐은 늘 아름답다
#korea #seoul #서울명소 #가을#창덕궁 #유네스코세계유산 #단풍#후원#secret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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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가을》 후원 20241116 서울 단풍이 절정이었던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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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 Peter Singer 202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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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eoul #서울명소 #DDP#PeterSinger#피터싱어#동물해방 #비건#sdf#sbs
《남산공원》 가을에 20241101.1730 안중근기념관은 연말까지 내부 공사로 휴관중. 남산도서관, 백범 김구 광장, 남산타워, 구 힐튼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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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공원》 가을에 20241101.1730 안중근기념관은 연말까지 내부 공사로 휴관중. 남산도서관, 백범 김구 광장, 남산타워, 구 힐튼호텔
《경복궁역 광화문 맛집》 신안촌 20241030.11:30 산낙지연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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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역 광화문 맛집》 신안촌 20241030.11:30 산낙지연포탕
《프로야구》 2024 한국시리즈 5차전, KIA:삼성 202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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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2024 한국시리즈 5차전, KIA:삼성 20241028
《성북동에서 삼청동까지》한양도성길-와룡공원-북촌한옥마을-삼청동-송현공원 202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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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에서 삼청동까지》한양도성길-와룡공원-북촌한옥마을-삼청동-송현공원 20241027.
왕의 공간에서 산책하다 -창덕궁 후원- 서울의 단풍 절정은 지났으나 몇 사람을 초대해서 가벼운 해설과 함께 왕의 공간인 창덕궁과 후원을 걸었다. 궁궐의 단풍은 아름다웠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최고의 시기가 아니라도 갈 때마다 다른 감동이 있다. 오늘은 토요일에 비해 사람도 적었고, 날씨도 조금 쌀쌀해서 가을 느낌이 더해서 좋았다. #창덕궁후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세종의궁궐 #궁궐을걷는즐거움20241121
서산부인과 건물은 김중업 선생님이 하신건데.........
@@올리브-v8n 아~ 그런가요? 제가 잘못알았군요. 고맙습니다.
이제 남산에 물이 들었군요 감사합니다 😊
갈비찜 팔지말아야할것같다
갈비찜 맛이최악
멋지네요.남산에도 가을의 정취를 느껴집니다 잘 보았습니다🎉
@@koreatourbestplace7605 고맙습니다. 남산의 단풍이 아름답고, 사람도 많더군요.
해군 창설일. 오늘(11.11)은 해군이 창설된 날이다. 인사동길 북쪽 끝에 해군 창설했던 공간이 있고,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나는 인사동 부근에 나가면 역사의 공간을 찾아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대한민국 해군을 만들고 국가 방위에 헌신한 선후배님께 감사드린다. 국방이 무너지면 나라도 없고, 국민들이 당하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전쟁에 처하거나 나라를 잃은 후 후회 하지만, 그때는 때가 늦는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 중요성을 더욱 깨닫는다. 손원일(1909~1980) 제독은 해방 이후 해방병단을 설립했는데, 이날을 해군 창설일로 정해서 기념하고 있다. 손원일 제독은 1945년 8월 ‘조국 광복에 즈음하여 이 나라 해양과 국토를 지킬 동지를 구함’이라는 광고를 냈다. 이때 장병 200여 명이 모였고, 이들이 11월 11일 11시에 인사동 (행정구역은 종로구 관훈동)에서 결단식을 가졌다. 해방병단의 설립은 1894년 7월 15일 조선 수군이 폐지된 지 51년 4개월 만에 우리 바다를 스스로 지키는 해군의 모체가 되었다. 이후 손 제독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1948년 12월 15일 정식 으로 발족된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을 맡았고, 1949년 4월 15일 해병대를 창설하였다. 이후 국방부 장관을 역임 하였다. 손원일 제독의 부인 홍은혜 여사는 우리나라 군인들이 일본 군가를 번안해서 군가를 부르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우리나라 최초의 해군가인 '바다로 가자'를 만들었다. 이곡은 지금도 불리워지는 명곡이다. "우리들은 이 바다 위해 이 몸과 마음을 다바쳤나니 바다의 용사들아 돛달고 나가자 오대양 저 끝까지" ※오늘은 'UN참전용사 국제 추모의 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파병, 목숨을 바친 분들을 추모하고, 대한민국을 도운 나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부산유엔기념공원에는 6.25에 참전해서 전사한 군인 2,300여 명이 아직도 묻혀있다고 한다. #해군창설일20241111 #유엔참전용사국제추모의날
잘 되는 식당 점심 시간에 약 40분을 기다렸다가 식사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모임하는 장소라서 기다려서 식사했다. 만두전골 식당인데, 버섯만두전골이 특별해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좋은 사례라서 세밀하게 관찰했다. 30테이블 120여 명 수용 가능한 식당인데, 50여 명이 대기중이다. 식사를 끝내고 나오는데도 대기 손님이 많았다. '몇시부터 손님이 있냐'고 여쭤보니, 10시 50분부터라고.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잘 되는 식당은 늘 있다. 모든 업종이 그렇다. 따라서 어려울 때 남탓, 세상탓을 하기보다는 고객에게 더 집중하고 더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 호황기에는 모두 생존하나 불황기에는 프로만이 생존한다. 성남시청 부근에서 유명한 추어탕 집 사장님이 청계산 부근에 만두전골집을 차렸다. 식당 운영의 핵심을 아는 분이다. 이제는 법인으로 운영한다. 식당은 청계산 가는 길에 있고, 앞에 큰 천이 흘려서 푸르름과 물을 볼 수 있어서 그 길에 좋은 식당들이 많은데, 분당과 판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나도 분당에서 근무할 때 지점 PB가 예약해서 고객을 모시고 이 길에 있는 쭈꾸미집에 갔었다. 소풍가는 기분으로~ 쭈꾸미집은 만두전골집 부근에 있는데, 이제 만두전골집에 주도권을 뺐겼다. 이 식당의 성공 비결은 차별화, 맛과 가성비다. 장사의 기본은 박리다매이다. 좋은 재료를 잘 고르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고수의 영역이다. 식당에 손님이 많이 오니, 식사 후에 포장으로 구매해 가는 사람도 많다. 마케팅에서 중요한 교차판매다. 소비자들은 주 상품의 가성비에 대해서는 면밀하게 따지지만, 교차판매 상품에 대해서는 비교적 덜 따진다. 그렇다고 신뢰를 잃으면 고객은 떠나간다. 나도 부모님 댁에 가려고, 인근 식물원을 둘러본 후 다시 가서 포장용으로 샀다. 식사 비용보다 포장으로 산 금액이 더 높다. 1인당 객단가가 매우 높은 식당이다. 1층은 판매 창구와 손님 대기 장소로 운영되고, 식당은 2,3층에 있다. 배울점이 많은 식당이다. #잘되는식당답사 #교차판매 #마케팅이야기20241107
아차산을 걷다. 아차산에서 일출을 보았다. 일출은 신년에만 보는 것이 아니다. 아차산은 일출 보기에 좋은 산인데, 야경도 일품이다. 5호선 광나루역에서 30분만 올라가면 볼 수 있어서 편하다. 덤으로 한강 조망과 많은 산도 함께 볼 수 있다. 오늘은 운무가 끼여서 더욱 아름다웠다. '월간 산'에서 김영미 여행작가는 아차산을 '7성급 호텔뷰를 볼 수 있는 산'이라고 묘사했는데, 나도 동의한다. 강화도의 마니산과 석모도의 해명산이 바다를 보고 걸을 수 있듯이, 아차산은 한강을 보며 걸을 수 있다. 나는 아차산 인근 초등학교에 다녀서 어릴 때부터 아차산에 자주 다녔다. 당시는 산이라기 보다는 뒷동산 정도로 생각했다. 이곳에 갈 때면, 친구들과 바위 산을 오르면서 개암나무 열매를 땄던 생각이 나곤 한다. 오늘은 용마산, 망우산까지 걸었다. 높지 않은 산이라서 부담이 없다. 걷다가 깔딱쉼터(570계단의 깔딱고개 앞)에서 7개월 된 딸을 배낭에 넣어 함께 온 씩씩한 아빠도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아이에게도 인사했다. 젊은 아빠에게 "안전하고 즐겁게 산행하세요!"라고 인사하고 계속 걸었다. #아차산을걷는즐거움20241006
무지 비싼집
한국시리즈 5차전, KIA:삼성 두 팀이 경기를 참 재미있게 한다. 물론 코칭스태프와 팬들은 애가 타들어 가겠지만. KIA가 3승 1패로 앞서가니, 삼성이 지면 KIA가 우승이다. KIA가 원태인을 무너뜨렸듯이 삼성은 1,3회에 양현종을 무너뜨렸다. 무려 5점을 뺐었다. 여기까지는 성공. 타자들은 할 일을 했다. 디아즈가 홈런 2개, 4타점 기록. KIA 불펜 투수들은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 그러나 삼성은 선발투수 2실점, 불펜투수가 4실점했다. KIA는 정규시즌 팀타율 1위였고, 거의 전 선수가 3할대 타율이었는데, 한국시리즈에도 타격이 압도적이다. 특히, KIA 김선빈은 한국시리즈 6할대 타율이다. 괴물이 탄생했다. KIA가 우승하면 MVP 예상. 7회초까지 KIA가 6:5로 앞서는중. 오늘 경기가 끝날까,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고 6차전으로 이어질까? 어떤 스타가 탄생할까?
성북동에서 삼청동까지. 시월의 멋진 날에 아내와 함께 성북동으로 갔다. 1.옛날중국집 옛날중국집에서 식사를 했다. 50년 된 중국집으로 '생활의 달인'에 나온 식당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요리하니 재촉하지 말라'는 안내 글이 인상적이었다. 1+등급 돼지 등심으로 만들었다는 탕수육을 먹었는데, 명동돈가스 먹는 것 같았다. 인생 탕수육!!. 그동안 내가 먹은 것중에 탕수육이 아닌 것이 많았구나.^^ 2.최순우와 전형필 성북동은 예술가의 마을이었고, 우리 문화에 기여한 분들이 많이 살았다. 최순우 선생과 전형필 선생이 대표적인 분이다. 최순우 선생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근무하면서(박물관장까지 역임) 우리 문화재를 보존 관리했음은 물론이고, 멋진 글로 우리 것을 아름답게 보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 분의 대표적인 책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학고재)' 이다. 우리는 유홍준 선생을 잘알지만 사실 최순우 선생이 원조이고, 우리 문화 측면에서 몇 배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최순우 선생의 우리 문화 사랑에 감동한 분들이 경제적인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많은 소장품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 2층 기증관에 그 작품과 이야기가 있다. 늘 감동한다. 최순우 옛집은 일요일, 월요일 휴관한다. 전형필 선생의 간송미술관에 갔다. 오랫동안 휴관했다가 10월 16일 재개관했다. 멋진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고려 공양왕의 서화 작품과 광해군에 의해 폐위된 인목왕후의 딸 정명공주의 글씨 '화정'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대단한 필력이었다. 우리 문화재를 모으고 지켜준 전형필 선생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보았다. 3.한양도성길과 와룡공원 가을 정취가 가득한 한양도성길과 와룡공원을 걸었다. 이곳에서 보는 성북동은 참 아름답다. 한성도성을 걷기에 좋은 계절이다. 성균관대 후문쪽 도로길을 따라 감사원까지 걷고 북촌 중앙고 옆길 따라 걸어 내려왔다. 4.북촌한옥마을 북촌한옥마을에는 외국인으로 북쩍거렸다. 홍보 화보에 나오는 길에 사진 찍으려는 사람이 몰렸다. 세종시대 정승 맹사성 집터를 살펴보고, 삼청동을 통해 내려왔다. 코로나 시기에 텅비었던 길에 외국인들이 많았다. 5.송현공원 계절에 맞게 아름다운 꽃을 심어서 언제가도 아름답다. #성북동 #삼청동 #서울인문여행20241027
시월의 멋진 날에 아내와 함께 성북동으로 갔다. 옛날중국집에서 식사를 했다. 50년 된 중국집으로 '생활의 달인'에 나온 식당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요리하니 재촉하지 마세요'라는 안내 글이 인상적이었다. 1+등급 돼지 등심으로 만들었다는 탕수육을 먹었는데, 명동돈가스 먹는 것 같았다. 인생 탕수육!!. 그동안 내가 먹은 것중에 탕수육이 아닌 것이 많았구나.^^
성북동에서 삼청동까지. 시월의 멋진 날에 아내와 함께 성북동으로 갔다. 1.옛날중국집 옛날중국집에서 식사를 했다. 50년 된 중국집으로 '생활의 달인'에 나온 식당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요리하니 재촉하지 말라'는 안내 글이 인상적이었다. 1+등급 돼지 등심으로 만들었다는 탕수육을 먹었는데, 명동돈가스 먹는 것 같았다. 인생 탕수육!!. 그동안 내가 먹은 것중에 탕수육이 아닌 것이 많았구나.^^ 2.최순우와 전형필 성북동은 예술가의 마을이었고, 우리 문화에 기여한 분들이 많이 살았다. 최순우 선생과 전형필 선생이 대표적인 분이다. 최순우 선생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근무하면서(박물관장까지 역임) 우리 문화재를 보존 관리했음은 물론이고, 멋진 글로 우리 것을 아름답게 보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 분의 대표적인 책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학고재)' 이다. 우리는 유홍준 선생을 잘알지만 사실 최순우 선생이 원조이고, 우리 문화 측면에서 몇 배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최순우 선생의 우리 문화 사랑에 감동한 분들이 경제적인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많은 소장품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 2층 기증관에 그 작품과 이야기가 있다. 늘 감동한다. 최순우 옛집은 일요일, 월요일 휴관한다. 전형필 선생의 간송미술관에 갔다. 오랫동안 휴관했다가 10월 16일 재개관했다. 멋진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고려 공양왕의 서화 작품과 광해군에 의해 폐위된 인목왕후의 딸 정명공주의 글씨 '화정'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대단한 필력이었다. 우리 문화재를 모으고 지켜준 전형필 선생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보았다. 3.한양도성길과 와룡공원 가을 정취가 가득한 한양도성길과 와룡공원을 걸었다. 이곳에서 보는 성북동은 참 아름답다. 한성도성을 걷기에 좋은 계절이다. 성균관대 후문쪽 도로길을 따라 감사원까지 걷고 북촌 중앙고 옆길 따라 걸어 내려왔다. 4.북촌한옥마을 북촌한옥마을에는 외국인으로 북쩍거렸다. 홍보 화보에 나오는 길에 사진 찍으려는 사람이 몰렸다. 세종시대 정승 맹사성 집터를 살펴보고, 삼청동을 통해 내려왔다. 코로나 시기에 텅비었던 길에 외국인들이 많았다. 5.송현공원 계절에 맞게 아름다운 꽃을 심어서 언제가도 아름답다. #성북동 #삼청동 #서울인문여행20241027
성북동에서 삼청동까지. 시월의 멋진 날에 아내와 함께 성북동으로 갔다. 1.옛날중국집 옛날중국집에서 식사를 했다. 50년 된 중국집으로 '생활의 달인'에 나온 식당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요리하니 재촉하지 말라'는 안내 글이 인상적이었다. 1+등급 돼지 등심으로 만들었다는 탕수육을 먹었는데, 명동돈가스 먹는 것 같았다. 인생 탕수육!!. 그동안 내가 먹은 것중에 탕수육이 아닌 것이 많았구나.^^ 2.최순우와 전형필 성북동은 예술가의 마을이었고, 우리 문화에 기여한 분들이 많이 살았다. 최순우 선생과 전형필 선생이 대표적인 분이다. 최순우 선생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근무하면서(박물관장까지 역임) 우리 문화재를 보존 관리했음은 물론이고, 멋진 글로 우리 것을 아름답게 보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 분의 대표적인 책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학고재)' 이다. 우리는 유홍준 선생을 잘알지만 사실 최순우 선생이 원조이고, 우리 문화 측면에서 몇 배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최순우 선생의 우리 문화 사랑에 감동한 분들이 경제적인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많은 소장품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 2층 기증관에 그 작품과 이야기가 있다. 늘 감동한다. 최순우 옛집은 일요일, 월요일 휴관한다. 전형필 선생의 간송미술관에 갔다. 오랫동안 휴관했다가 10월 16일 재개관했다. 멋진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고려 공양왕의 서화 작품과 광해군에 의해 폐위된 인목왕후의 딸 정명공주의 글씨 '화정'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대단한 필력이었다. 우리 문화재를 모으고 지켜준 전형필 선생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보았다. 3.한양도성길과 와룡공원 가을 정취가 가득한 한양도성길과 와룡공원을 걸었다. 이곳에서 보는 성북동은 참 아름답다. 한성도성을 걷기에 좋은 계절이다. 성균관대 후문쪽 도로길을 따라 감사원까지 걷고 북촌 중앙고 옆길 따라 걸어 내려왔다. 4.북촌한옥마을 북촌한옥마을에는 외국인으로 북쩍거렸다. 홍보 화보에 나오는 길에 사진 찍으려는 사람이 몰렸다. 세종시대 정승 맹사성 집터를 살펴보고, 삼청동을 통해 내려왔다. 코로나 시기에 텅비었던 길에 외국인들이 많았다. 5.송현공원 계절에 맞게 아름다운 꽃을 심어서 언제가도 아름답다. #성북동 #삼청동 #서울인문여행20241027
서울 인문여행 친구와 서울 인문여행을 했다. 같은 공간을 여행하더라도 그곳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있으면 즐거움이 커진다. 1. 청계천 영도교에서 만났다. 이 다리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갈 때 지나갔던 다리인데, 이 다리에서 단종은 정순왕후와 이별했다. 조선의 암행어사가 쓴 일기를 보면, 지방으로 떠나던 어사도 이 영도교를 건너갔다. 2. 신당동 서울중앙시장에서 식사했다. 맛집들이 많다. 우리 옆자리에는 6명의 단란한 가족이 있었다. 부부가 자매 및 외손주와 함께 식사했다. 미혼으로 보이는 동생이 조카가 너무 이쁜지 조카가 귀여운 얼굴 표정을 지을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식사 후에 커피를 하나 사서 들고 인근을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청계천으로 갔다. 3. 동묘에 갔다. 동묘는 청계천 영도교 부근에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를 위해 관우를 모신 사당으로 동묘를 만들었다. 조선 후기의 암행어사로 임명을 받으면 임명 교지를 받게 되는데, 그 교지는 흥인지문(동대문)을 지나서 열어 보아야 했다. 암행어사들은 동대문을 지나 동묘에 와서 그 교지를 보고, 암행지역, 주의사항 등을 확인했다. 한때는 닫혀있었던 허름한 사당이지만 우리 역사에서 의미있는 공간이다. 4. 인근은 동묘시장이다. 오래된 물건들이 거래되고 있다. 걷다가 중고책방에 있는 책을 보다보니, 내가 대학에 입학해서 필독 인문학 도서라서 학교 출판부에 나온 문고판 몇 십권을 샀었는데, 그 책들도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여성 두명이 그런 책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태어나기 오래 전의 책들이니. 주로 나이든 분들이 동묘를 많이 찾지만 2030세대나 외국 관광객도 많이 찾고 있다. 레트로 감성에 맞는 물건, 빈티지샵 등이 많다. 5. 화가 박수근이 살던 집 터에 갔다. 동묘앞역 사거리에서 청계천쪽으로 가다보면 순대국집 옆 골목에 있다. 이곳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문화 유산답사기 서울편에도 나온다. 박수근은 양구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여러 지역에서 살다가 전쟁이 일어나고 서울에서 살았다. 그림으로 상도 받았으나 당시 생계를 위해 미8군 초상화부에 근무하면서 미군 등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는 그 돈으로 창신동 이곳에 처음 집을 마련해서 12년 동안 행복하게 살면서 많은 작품을 그리기도 했었다. 3년 전의 박수근 작품전에 이집에서 찍은 사진도 전시되었었다. 박수근이 미8군에서 초상화를 그릴 때 관리 직원이 박완서(후에 작가)였다. 당시 20살 갓지난 박완서는 화가들을 무시했었다고 고백했다. 사람은 누구나 작은 권력이라도 가지면 그런 경향이 있다. 어린 나이에는 더욱 그렇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런 사람이 많은데.. 그런데 어느 날 박수근이 그의 작품을 보여주었다. 그때 그가 극장 간판이나 그리는 화가가 아니고 큰 상을 받은 실력있는 화가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고 한다. 박완서는 그곳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아이를 여럿 낳고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박수근이 사망하고 유작전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러갔다가 그의 이야기를 논픽션 전기 형태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한계에 봉착한다. 모르는 사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박완서는 이글을 동아일보 여성작가 공모전에 출품하려고 했는데, 결국 소설로 바꿔서 다시 썼다고 한다. 그 소설이 당선되어서 박완서가 작가의 삶을 살게 되었다. 당시 박완서의 나이는 40세였고, 소설의 제목은 '나목'이었다. '나목'은 벌거벗은 앙상한 나무를 말하는데, 박수근의 작품에 많이 등장한다. 박완서는 '나목'의 후기에서 전쟁의 상황에서도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치않고, 가족의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살았던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예술가의 삶'을 증언하고 싶었다고 했다. 약 3년 전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박수근 작품전이 열렸는데, 그 작품전의 부제가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었다. 6. DDP에 갔다. 'SEOUL DESIGN 2024'가 열리고 있었다. DDP에 처음왔다는 친구와 DDP를 둘러보았다. DDP에서는 요즘 좋은 전시, 행사를 많이 한다. 이곳은 동대문야구장과 운동장이 있던 공간이었다. 야구부 중에 운동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학교가 장충고였는데, 전국대회 우승하면 이곳부터 약수역 부근 학교까지 응원가와 교가를 외치면서 행진하곤 했었다. 며칠 전에 장충의 영원한 응원단장인 박정남단장께서 당시 사진 몇장을 보내주었다. 2007년에 전국대회 우승하고 에이스였던 최원제 선수 (김하성 선수 개인 코치)가 최우수선수상도 받았는데, 우승 깃발을 들고 행진하던 사진이었다. 회사 업무 끝나고 결승전에 늦게 참석했던 내가 양복에 빨간 넥타이 메고 동대문야구장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도 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가 없어지고 조명탑 하나만 기념으로 남아있다. 그 자리에 멋진 디자인으로 건물을 만들었고, 내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아름다운 공간이 되었다. #서울인문여행20241026
서울 인문여행 친구와 서울 인문여행을 했다. 같은 공간을 여행하더라도 그곳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있으면 즐거움이 커진다. 1. 청계천 영도교에서 만났다. 이 다리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갈 때 지나갔던 다리인데, 이 다리에서 단종은 정순왕후와 이별했다. 조선의 암행어사가 쓴 일기를 보면, 지방으로 떠나던 어사도 이 영도교를 건너갔다. 2. 신당동 서울중앙시장에서 식사했다. 맛집들이 많다. 우리 옆자리에는 6명의 단란한 가족이 있었다. 부부가 자매 및 외손주와 함께 식사했다. 미혼으로 보이는 동생이 조카가 너무 이쁜지 조카가 귀여운 얼굴 표정을 지을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식사 후에 커피를 하나 사서 들고 인근을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청계천으로 갔다. 3. 동묘에 갔다. 동묘는 청계천 영도교 부근에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를 위해 관우를 모신 사당으로 동묘를 만들었다. 조선 후기의 암행어사로 임명을 받으면 임명 교지를 받게 되는데, 그 교지는 흥인지문(동대문)을 지나서 열어 보아야 했다. 암행어사들은 동대문을 지나 동묘에 와서 그 교지를 보고, 암행지역, 주의사항 등을 확인했다. 한때는 닫혀있었던 허름한 사당이지만 우리 역사에서 의미있는 공간이다. 4. 인근은 동묘시장이다. 오래된 물건들이 거래되고 있다. 걷다가 중고책방에 있는 책을 보다보니, 내가 대학에 입학해서 필독 인문학 도서라서 학교 출판부에 나온 문고판 몇 십권을 샀었는데, 그 책들도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여성 두명이 그런 책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태어나기 오래 전의 책들이니. 주로 나이든 분들이 동묘를 많이 찾지만 2030세대나 외국 관광객도 많이 찾고 있다. 레트로 감성에 맞는 물건, 빈티지샵 등이 많다. 5. 화가 박수근이 살던 집 터에 갔다. 동묘앞역 사거리에서 청계천쪽으로 가다보면 순대국집 옆 골목에 있다. 이곳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문화 유산답사기 서울편에도 나온다. 박수근은 양구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여러 지역에서 살다가 전쟁이 일어나고 서울에서 살았다. 그림으로 상도 받았으나 당시 생계를 위해 미8군 초상화부에 근무하면서 미군 등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는 그 돈으로 창신동 이곳에 처음 집을 마련해서 12년 동안 행복하게 살면서 많은 작품을 그리기도 했었다. 3년 전의 박수근 작품전에 이집에서 찍은 사진도 전시되었었다. 박수근이 미8군에서 초상화를 그릴 때 관리 직원이 박완서(후에 작가)였다. 당시 20살 갓지난 박완서는 화가들을 무시했었다고 고백했다. 사람은 누구나 작은 권력이라도 가지면 그런 경향이 있다. 어린 나이에는 더욱 그렇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런 사람이 많은데.. 그런데 어느 날 박수근이 그의 작품을 보여주었다. 그때 그가 극장 간판이나 그리는 화가가 아니고 큰 상을 받은 실력있는 화가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고 한다. 박완서는 그곳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아이를 여럿 낳고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박수근이 사망하고 유작전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러갔다가 그의 이야기를 논픽션 전기 형태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한계에 봉착한다. 모르는 사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박완서는 이글을 동아일보 여성작가 공모전에 출품하려고 했는데, 결국 소설로 바꿔서 다시 썼다고 한다. 그 소설이 당선되어서 박완서가 작가의 삶을 살게 되었다. 당시 박완서의 나이는 40세였고, 소설의 제목은 '나목'이었다. '나목'은 벌거벗은 앙상한 나무를 말하는데, 박수근의 작품에 많이 등장한다. 박완서는 '나목'의 후기에서 전쟁의 상황에서도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치않고, 가족의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살았던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예술가의 삶'을 증언하고 싶었다고 했다. 약 3년 전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박수근 작품전이 열렸는데, 그 작품전의 부제가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었다. 6. DDP에 갔다. 'SEOUL DESIGN 2024'가 열리고 있었다. DDP에 처음왔다는 친구와 DDP를 둘러보았다. DDP에서는 요즘 좋은 전시, 행사를 많이 한다. 이곳은 동대문야구장과 운동장이 있던 공간이었다. 야구부 중에 운동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학교가 장충고였는데, 전국대회 우승하면 이곳부터 약수역 부근 학교까지 응원가와 교가를 외치면서 행진하곤 했었다. 며칠 전에 장충의 영원한 응원단장인 박정남단장께서 당시 사진 몇장을 보내주었다. 2007년에 전국대회 우승하고 에이스였던 최원제 선수 (김하성 선수 개인 코치)가 최우수선수상도 받았는데, 우승 깃발을 들고 행진하던 사진이었다. 회사 업무 끝나고 결승전에 늦게 참석했던 내가 양복에 빨간 넥타이 메고 동대문야구장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도 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가 없어지고 조명탑 하나만 기념으로 남아있다. 그 자리에 멋진 디자인으로 건물을 만들었고, 내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아름다운 공간이 되었다. #서울인문여행20241026
서울 인문여행 친구와 서울 인문여행을 했다. 같은 공간을 여행하더라도 그곳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있으면 즐거움이 커진다. 1. 청계천 영도교에서 만났다. 이 다리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갈 때 지나갔던 다리인데, 이 다리에서 단종은 정순왕후와 이별했다. 조선의 암행어사가 쓴 일기를 보면, 지방으로 떠나던 어사도 이 영도교를 건너갔다. 2. 신당동 서울중앙시장에서 식사했다. 맛집들이 많다. 우리 옆자리에는 6명의 단란한 가족이 있었다. 부부가 자매 및 외손주와 함께 식사했다. 미혼으로 보이는 동생이 조카가 너무 이쁜지 조카가 귀여운 얼굴 표정을 지을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식사 후에 커피를 하나 사서 들고 인근을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청계천으로 갔다. 3. 동묘에 갔다. 동묘는 청계천 영도교 부근에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를 위해 관우를 모신 사당으로 동묘를 만들었다. 조선 후기의 암행어사로 임명을 받으면 임명 교지를 받게 되는데, 그 교지는 흥인지문(동대문)을 지나서 열어 보아야 했다. 암행어사들은 동대문을 지나 동묘에 와서 그 교지를 보고, 암행지역, 주의사항 등을 확인했다. 한때는 닫혀있었던 허름한 사당이지만 우리 역사에서 의미있는 공간이다. 4. 인근은 동묘시장이다. 오래된 물건들이 거래되고 있다. 걷다가 중고책방에 있는 책을 보다보니, 내가 대학에 입학해서 필독 인문학 도서라서 학교 출판부에 나온 문고판 몇 십권을 샀었는데, 그 책들도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여성 두명이 그런 책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태어나기 오래 전의 책들이니. 주로 나이든 분들이 동묘를 많이 찾지만 2030세대나 외국 관광객도 많이 찾고 있다. 레트로 감성에 맞는 물건, 빈티지샵 등이 많다. 5. 화가 박수근이 살던 집 터에 갔다. 동묘앞역 사거리에서 청계천쪽으로 가다보면 순대국집 옆 골목에 있다. 이곳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문화 유산답사기 서울편에도 나온다. 박수근은 양구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여러 지역에서 살다가 전쟁이 일어나고 서울에서 살았다. 그림으로 상도 받았으나 당시 생계를 위해 미8군 초상화부에 근무하면서 미군 등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는 그 돈으로 창신동 이곳에 처음 집을 마련해서 12년 동안 행복하게 살면서 많은 작품을 그리기도 했었다. 3년 전의 박수근 작품전에 이집에서 찍은 사진도 전시되었었다. 박수근이 미8군에서 초상화를 그릴 때 관리 직원이 박완서(후에 작가)였다. 당시 20살 갓지난 박완서는 화가들을 무시했었다고 고백했다. 사람은 누구나 작은 권력이라도 가지면 그런 경향이 있다. 어린 나이에는 더욱 그렇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런 사람이 많은데.. 그런데 어느 날 박수근이 그의 작품을 보여주었다. 그때 그가 극장 간판이나 그리는 화가가 아니고 큰 상을 받은 실력있는 화가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고 한다. 박완서는 그곳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아이를 여럿 낳고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박수근이 사망하고 유작전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러갔다가 그의 이야기를 논픽션 전기 형태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한계에 봉착한다. 모르는 사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박완서는 이글을 동아일보 여성작가 공모전에 출품하려고 했는데, 결국 소설로 바꿔서 다시 썼다고 한다. 그 소설이 당선되어서 박완서가 작가의 삶을 살게 되었다. 당시 박완서의 나이는 40세였고, 소설의 제목은 '나목'이었다. '나목'은 벌거벗은 앙상한 나무를 말하는데, 박수근의 작품에 많이 등장한다. 박완서는 '나목'의 후기에서 전쟁의 상황에서도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치않고, 가족의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살았던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예술가의 삶'을 증언하고 싶었다고 했다. 약 3년 전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박수근 작품전이 열렸는데, 그 작품전의 부제가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었다. 6. DDP에 갔다. 'SEOUL DESIGN 2024'가 열리고 있었다. DDP에 처음왔다는 친구와 DDP를 둘러보았다. DDP에서는 요즘 좋은 전시, 행사를 많이 한다. 이곳은 동대문야구장과 운동장이 있던 공간이었다. 야구부 중에 운동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학교가 장충고였는데, 전국대회 우승하면 이곳부터 약수역 부근 학교까지 응원가와 교가를 외치면서 행진하곤 했었다. 며칠 전에 장충의 영원한 응원단장인 박정남단장께서 당시 사진 몇장을 보내주었다. 2007년에 전국대회 우승하고 에이스였던 최원제 선수 (김하성 선수 개인 코치)가 최우수선수상도 받았는데, 우승 깃발을 들고 행진하던 사진이었다. 회사 업무 끝나고 결승전에 늦게 참석했던 내가 양복에 빨간 넥타이 메고 동대문야구장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도 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가 없어지고 조명탑 하나만 기념으로 남아있다. 그 자리에 멋진 디자인으로 건물을 만들었고, 내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아름다운 공간이 되었다. #서울인문여행20241026
😂
영상잘보고 갑니다 응원드립니다 계속좋은 영상 기대 할게요!!
@@empirekorea 고맙습니다.
너무 조으다
오리도 너무많으면언젠가 공해가되니 미리숫자를
이제는 다 큰 새끼 오리들
오리친구보니즐겁네요.
모나카 아이스크림❤ 일반빵도 맛날듯요. 코코넛 쿠키.
콩 까는 사람들 경동시장에 가서 본 재미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시장 후미진 곳에 안 깐 콩을 파는 가게들이 보이고, 그 옆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서 콩을 까는 분들이었다. 나는 그냥 지나쳤던 장면인데, 아내가 그 것을 보고 '콩 까는 알바하는 분들같다'면서 신기 하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다시 그곳에 가서 직원에게 '저 분들은 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여쭤보았다. 그 분들은 안 깐 콩을 사서 콩을 까는 것이라고 했다. 깐 콩보다 안 깐 콩이 싸니까 안 깐 콩을 사는데, 집에 가서 까면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니 구입한 곳에서 직접 까는 것이다. 주로 아주머니들이다. 가끔 짐꾼으로 부인을 따라왔을 아저씨도 보인다. 한푼이라도 아껴서, 몸에 좋다는 콩을 가족에게 먹일 생각에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도 힘든지 모르고 콩을 까는 분들은 우리들의 위대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10월 5일에 아버지와 자전거 타고 가다가 본 광경이 떠오른다. 젊은 엄마와 아들딸 세명이 자치단체 행사에 참석했다가 걸어서 집에 가는 장면이었다.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나 행복하게 보였다. 엄마와 함께 한다는 것이 최고의 안전이고 행복이다. 엄마는 위대한 분이다. #콩까는사람들 #경동시장 #어머니의위대함 #살며사랑하며배우며20241013
홍릉숲 아내가 말했다. "홍릉숲에 갈까?" 바로 집을 나섰다. 홍릉숲은 처음이다. 그 앞을 지나간 적은 많지만. 바로 앞이 (사)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있는 세종대왕기념관이다. 고려대역에서 경희대로 가는 길에 있다. 홍릉숲은 평일에는 예약제로 운영되지만, 토, 일요일에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이용에 제한사항이 있어서 사람이 많지 않고 호젓했다. 서울의 숲으로 드물게 '대한민국 100대 숲'으로 지정된 숲이다. 모든 자연이 그렇듯이 완전 개방된 곳이 아니라서 잘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 국립산림과학원이 있다. 1922년 이곳에서 임업시험장으로 출발했다고 하니, 이곳에서 산림 연구한지 100년이 넘었다. 대한민국의 산림을 연구해서 아름답게 만든 산실이라고 생각하니 매우 소중하게 여겨졌다. 아무 생각없이 지나치기만 했다가 아내 덕분에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이곳의 이름은 홍릉이지만, 사실 이곳에는 능이 없다. 고종황제의 왕비였던 명성황후가 을미사변(1895년)에 시해된 후 이곳 천장산 산줄기에 22년간 묻혔다가 고종 사후에 남양주 금곡동의 홍릉으로 합장되었다. 따라서 지금은 그 터만 쓸쓸하고, 초라하게 남아있다. 부근에는(세종대왕기념관 옆) 고종의 후궁인 순현황귀비 엄씨 (영친왕의 어머니)가 묻힌 영휘원이 있고, 옆에 손자 이진(영친왕의 아들)이 묻힌 승인원이 있다. #홍릉숲대한민국100대숲 #걷는즐거움20241012
멋져멋져
즐감합니다 구독하고갑니다 응원합니다
@@우보천리여종구 감사합니다
그대들이.있어.행복.해요
뒤통수만 10분 이상 보네😢😢😢😢
꼭꼭 숨겼던 문재인의 국군. 이제 더 이상 당나라 군대가 아닙니다 국군 장병 여러분 그리고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님 감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국군의 날 행사로 우리 국민에게 자긍심을 찾아 주셨습니다.
우와 너무 멋지다 감동🎉🎉🎉🎉🎉
의정부 조선 초기 세종시대에 의정부 삼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근무지는 어디였을까? 경복궁이었을까? 아니다. 광화문을 바라보고 오른쪽,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옆에 있는 터가 의정부였고, 삼정승은 이곳에서 근무했다. 광화문 거리를 육조거리라고 했고,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의 건물도 이 거리에 있었다. 의정부터가 있던 '의정부지'는 2020년 사적으로 지정된 후 발굴 조사가 진행되어 당시 각 전각의 규모와 위치가 확인되었다. 임진왜란 때 궁궐과 함께 소실된 이후 현재까지 여러가지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발굴 조사를 거친 후 최근에 터를 복원했는데, 의미가 크다. 당시 국정최고기구였기에 이곳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조선왕조실록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올해 월대를 복원한 광화문은 더욱 품위있고 아름답다. 복원 이후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이곳에서 사진을 촬영해서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경복궁 #광화문 #월대 #의정부지 #궁궐걷는즐거움202410004
참으로감격입니다.대한민국할머니로서넘행복합니다.눈물이나네요. 만세~~만세 국군장병.....!!! 대통령만세~~!!!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럽고 기뻤어요. 수고해 주신 국군장병 여러분, 감사합니다~♬
너무멋지다 그동안이런걸못봣다니 나라를위한건데 자유대한민국대통령님 만세 화이팅
우째 이리아름다울까요❤❤❤
폴란드 수출간 F 50 태클당했다는데?
. 이게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정 말 멋집니다 최고다 최고
최고 화이팅!!!!!
대한민국나의조국 대한민국나의조국 대한민국나의조국 대한민국나의조국 대한민국나의조국 대한민국나의조국
🇰🇷🇰🇷🇰🇷🇰🇷🇰🇷🇰🇷🇰🇷🇰🇷🇰🇷🇰🇷❤️❤️❤️❤️❤️❤️❤️❤️❤️❤️👍👍👍👍👍👍👍👍👍👍👏👏👏👏👏👏👏👏👏🥰
최고최고최고🎉🎉🎉🎉🎉🎉
약속이 있어서 광화문에 나갔더니 날씨가 맑고 좋았습니다. 경복궁 뷰가 가장 좋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8층 옥상정원에 올라갔더니 군인(공군)들이 많이 있어서 무슨 일인지 여쭤보니, 국군의 날 비행 연습 점검 이라고 하더군요. 덕분에 준비하는 군인과 비행하는 모습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영도교에서 귀양가는 단종을 배웅했고, 이후 동망봉에서 영월 방향을 보고 매일 기도하고 단종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답사 코스> 1,6호선 하차 후 도보로 갈 수 있으나 6호선 창신동역에서 이동시 더 가깝다. 정업원 터를 거쳐서 동망정과 인근 공원에 정순왕후 기념 전시물을 본 후, 동묘로 내려가서 청계천 영도교를 볼 수 있다.
Wow! Beautiful ❤❤❤🇧🇷
@@venuslilith Thank You!!
자전거 타기 좋은 날 아내와 청계천에서 따릉이 (서울시 공공자전거)를 탔다. 집앞 따릉이 대여소에는 자전거가 텅비어 있어서 근처 다른 대여소에서 빌렸다. 청계천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그 이유를 알았다. 날씨가 좋으니, 가족 단위로 따릉이 타고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쉼터인 용비쉼터까지 가서 잠시 쉬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왔다. 이 쉼터는 한강, 중랑천, 청계천 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다. 오늘은 늦은 시간이라서 쉼터에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낮 시간 에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로 장관을 이루곤 한다. 자전거 타기에 좋은 날이다. #자전거타는즐거움2024928
와 신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