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Y STORY
BBY STORY
  • Видео 62
  • Просмотров 83 852

Видео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25] 백제는 누가 건국했는가?
Просмотров 3,9 тыс.Год назад
#역사그날 @역사 #온조 #비류 #백제 # 삼국시대 온조 설화 와 백제 설화 어느것이 보다 맞는것일까? 온조가 백제를 설립하였다고 하는데 비류가 주도적으로 백제성립에 기여를 하지않았는가?....... 참고자료 : 한국 고대사의 비밀(김은석) 인터넷 자료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24] 위만조선은 어떻게 성립하고 멸망했는가?
Просмотров 2,4 тыс.Год назад
#그날 #역사채널 #역사 #한국사 #조선 #고조선 #위만조선 BC.194년에서 BC.108년까지 86년간 존재했던 위만조선은 어떻게 성립하였고 멸망했는가 짧지만 그 영향력은 삼국성립의 기반이 되었다....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23] 부여의 성립과 멸망과정은 어떠했는가?
Просмотров 8 тыс.Год назад
부여는 북부여,동부여,졸본부여,남부여등으로 이름을 달리해가며 우리 역사의 중요한 흐름 가운데 오늘날까지 존재하고 있다... #역사 #역사채널 #그날 #지식창고 #부여사 #한국사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22] 살수대첩에대한 오해와 진실은 무엇인가?
Просмотров 3,6 тыс.Год назад
살수대첩의 승리는 수공으로 가능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나, 이는 가공된 이야기로 보인다. 오히려 수나라군의 식량등 물자부족으로 인한 요인이 보다 현실적인 이유인것으로 보인다........ #한국사 #을지문덕 # 살수대첩 #그날 #역사채널 #고구려 참조 : 한국 고대사의 비빌(김은석) 인터넷 자료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21] 기자조선은 한반도에 존재하였는가?
Просмотров 4,7 тыс.Год назад
기자가 중국에서 동래하여 조선의 왕이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가? 역사서에 쓰여진 모든 내용이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19] 선덕여왕이 분황사와 첨성대를 건립한 이유는 무엇일까?
Просмотров 1,4 тыс.Год назад
#역사 #역사채널 #그날 #선덕여왕 #첨성대 # 분황사 #모란꽃 #신라 분황사와 건립은 선덕여왕 본인이 당나라의 황제와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선포하고싶은 의자가 담겨있는 것으로보인다.... 참고자료 : 한국 고대사의 비밀(김은석) 인터넷 자료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20] 고구려는 왜 삼국통일을 하려하지 않았는가?
Просмотров 11 тыс.Год назад
고구려가 삼국 통일을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고구려는 북쪽에 인접한 국가들과의 관계에 관심이 많았고 남쪽에는 별도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역사 #역사채널 #광개토대왕 #고구려 #삼국통일 #통일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19] 이성계의 사병집단인 가별초에 대한 이야기
Просмотров 634Год назад
이성계의 무력과 정도전의 사상의 만남, 그 무력의 중심에 가별초가 있었다 #한국사 #역사 #역사채널 #세계사 #그날 #왕 #이성계 #정도전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17] 조선인들은 한국인의 3배이상을 먹었다
Просмотров 764Год назад
조선인들은 노동강도에 비해 특별히 단백질을 보충할 부분이 없는지라 그대신 밥을 만히 먹었다....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16] 조선시대 영조가 장수할 수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Просмотров 1,2 тыс.Год назад
조선시대 최장수 임금인 영조가 오랫동안 재위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왕들의 수명단축 요인들을 제거했기때문이다....... #역사 #역사채널 #지식창고 #한국사 #영조 #장수 # 조선 #왕 #한국사
[WORLD 세계사 뒷이야기 #3] 바이킹의 역사는 날씨때문에 생성과 소멸했다
Просмотров 86Год назад
#그날 #역사채널 #지식창고 #유럽 #바이킹 #스칸디나비아 반도#그린란드 %세계사 #날씨 바이킹 문명은 800년~1200년 사이 따뜻한 기후로 발전했다가 13세기 말부터 시작된 북유럽 소빙기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참고 : 서프라이징 세계사(반기성) 인터넷 자료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15] 해동성국이었던 발해는 왜 멸망했는가?
Просмотров 4,1 тыс.Год назад
926년 발해는 거란의 공격에 항복하고 멸망하게된다.멸망의 원인은 무엇일까?....... #지식채널 #그날 #당신이 #지식창고 #한국사 #발해 #대조영 #멸망 #역사 #대조영
[WORLD 세계사 뒷이야기 #3] 세상을 바꾼 길, 로마의 길이야기
Просмотров 1502 года назад
#길 #로마 #한국사 #한국 #유럽 #세상 #그날 #지식창고 #이야기 #역사채널 전세계 인구의 1/4을 자스리는 거대한 제국이었던 로마의 길이야기... 벽이 아니라 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참고도서 : 세상을 바꾼 길 (김 용만) 인터넷 자료
[FRANCE 세계사 뒷이야기 #2] 나폴레옹이 세계무대에 등장할수 있게된것은 날씨때문이다
Просмотров 652 года назад
"세계 문명의 흥망을 결정짓는 요소는 기후 변화였다" 나폴레옹이 위대한 장군이 될수 있었던것은 천부적인 재능, 그의 리더십등이 있었지만 날씨의 도움 또한 절대적이었다...... 참고도서 : 서프라이징 세계사(반기성) 인터넷 자료 #나폴레옹 #날씨 #역사채널 #그날 #세계사 #역사 #지식창고 # 프랑스 # 기후 #세계
[FRANCE 세계사 뒷이야기 #1] 나폴레옹이 세계무대에 등장할수 있게된것은 날씨때문이다(날씨가 역사를 만든다)
Просмотров 1222 года назад
[FRANCE 세계사 뒷이야기 #1] 나폴레옹이 세계무대에 등장할수 있게된것은 날씨때문이다(날씨가 역사를 만든다)
[WORLD 세계사 최신이야기 #1] 영국 여왕의 죽음에 대한 세계인의 반응
Просмотров 2912 года назад
[WORLD 세계사 최신이야기 #1] 영국 여왕의 죽음에 대한 세계인의 반응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14] 바이두에 나타난 고구려 역사에 대한 중국 네티즌의 반응은?
Просмотров 4392 года назад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14] 바이두에 나타난 고구려 역사에 대한 중국 네티즌의 반응은?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13] 조선의 임금이 시를 지은 목적
Просмотров 642 года назад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13] 조선의 임금이 시를 지은 목적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12]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설립된 이유는 무엇일까?
Просмотров 2252 года назад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12]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설립된 이유는 무엇일까?
[WORLD 세계사 뒷이야기 #3] 나치와 히틀러가 탄생하게된 가장 결졍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Просмотров 2332 года назад
[WORLD 세계사 뒷이야기 #3] 나치와 히틀러가 탄생하게된 가장 결졍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KOREA 한국사 뒷이야기#11] 한국 고유의 난방방식, 온돌의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Просмотров 4 тыс.2 года назад
[KOREA 한국사 뒷이야기#11] 한국 고유의 난방방식, 온돌의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WORLD 세계사 뒷이야기 #2] 봉건제 사회는 왜 신학이 중요시 되었는가
Просмотров 2,9 тыс.2 года назад
[WORLD 세계사 뒷이야기 #2] 봉건제 사회는 왜 신학이 중요시 되었는가
[KOREA 인물 한국사 #9] 김병연이 김삿갓(김립)이 되기 까지의 과정/ 그의 시에 대한 짧은 소개
Просмотров 1602 года назад
[KOREA 인물 한국사 #9] 김병연이 김삿갓(김립)이 되기 까지의 과정/ 그의 시에 대한 짧은 소개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10] 외국인의 시각에서 본 조선후기의 사회모습은 어떠했을까'?
Просмотров 3,4 тыс.2 года назад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10] 외국인의 시각에서 본 조선후기의 사회모습은 어떠했을까'?
[KOREA 한국사 인물 뒷이야기 #8] 정조대왕(Jeongjo of Joseon)의 좌우명 9가지는 무엇이 있는가?
Просмотров 1,3 тыс.2 года назад
[KOREA 한국사 인물 뒷이야기 #8] 정조대왕(Jeongjo of Joseon)의 좌우명 9가지는 무엇이 있는가?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9] 조선시대 왕(Monarchs/KOREA)은 주로 어떤 책을 공부했을까?
Просмотров 5862 года назад
[KOREA 한국사 뒷이야기 #9] 조선시대 왕(Monarchs/KOREA)은 주로 어떤 책을 공부했을까?
[WORLD 세계사 뒷이야기#1] 19세기 서유럽과 아시아의 경제력 차이가 크게발생하게된 근본 요인은 무엇인가?
Просмотров 1 тыс.2 года назад
[WORLD 세계사 뒷이야기#1] 19세기 서유럽과 아시아의 경제력 차이가 크게발생하게된 근본 요인은 무엇인가?
[UK 영국사 뒷이야기 #2] 영국은 팍스 브래태니카(Pax Bratannica, 영국의 평화)를 어떻게 실현했는가?
Просмотров 1352 года назад
[UK 영국사 뒷이야기 #2] 영국은 팍스 브래태니카(Pax Bratannica, 영국의 평화)를 어떻게 실현했는가?
[KOREA 인물 한국사 뒷이야기#8] 연개소문(Yeon Gaesomun)은 왜 김춘추(Munmu of Silla)의 평화협상 제의를 거부했을까?
Просмотров 5972 года назад
[KOREA 인물 한국사 뒷이야기#8] 연개소문(Yeon Gaesomun)은 왜 김춘추(Munmu of Silla)의 평화협상 제의를 거부했을까?

Комментарии

  • @대대박-k3g
    @대대박-k3g 2 месяца назад

    그 이유를 알려 드릴까요

  • @김정태-s3u
    @김정태-s3u 3 месяца назад

    근거도 없는 가짜뉴스

  • @Kpp3ee
    @Kpp3ee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신번 ㅡ 도쿠가와 친척세력 •후다이번 ㅡ 친 도쿠가와 세력 •도자마번 ㅡ 반 도쿠가와 세력 번(사쓰마,조슈,도사) 260년 후에 도자마번 세력에게 패망하다니 역사는 참 아이러니..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 @cjy6496
    @cjy6496 Год назад

    같은민족아니여 우리는 누가봐도 여러부족집단들 통일나라세우면서 생긴거임

  • @scottpark4803
    @scottpark4803 Год назад

    삼국윽 통일한게 아니라 못한거지요. 만주부터 산동성과 중국 오월지역이 고조선 영역이구요. 신라와 백제가 한반도에 조그맣게 비정되니 역사적 오류가 생기는 것임. 백제 역시 엄청 거대란 제후국응 거느린 대제국이고, 신라역시 당나라와 수년간 전쟁을 치름 막강한 인구와 군사력이 있었음. 백제 마지막 전투인.황산벌이 저기 논산 일 것 같음? 거기는 황산도 없고 벌지역도 없음. 황산은 중국에 있는 황산이고, 거기옆에 벌지역이 있습니다. 개소리 같지요? 고구려 경계선이 애초에 잘못잡혀져 있으니깐~ 태행산맥과 황하지류가 중국과의 경계선이고, 거기에 고구려 고대명칭 다 있음. 황하지류가 백제와 중국과 고구려의 경계선이구요. 어떻게 연개소문이 당태종을 쫓아 산동성 몽룡포탑까지 만주에서부터 내려옴????

  • @user-xq9ch9yr8u
    @user-xq9ch9yr8u Год назад

    그래도 통일을 했었어야 햇다 그랫다면 역사는 다시 쓰여졌을 것이다

  • @맷집좋은이문과고창장

    그때 백제와 신라를 없애야 했는데 나중에 신라가 통수 쳐서 고구려 망하는데 기여

  • @gn.l3762
    @gn.l3762 Год назад

    부여의 해모수는 고조선 高씨 왕족으로 쿠데타로 집권해 난변에 도읍했다. 그곳은 길림성 백산시 장백현이다.ㅡ

  • @super-JEI
    @super-JEI Год назад

    장보고의 청해진은 중국 산동성 영청시 석도진에 있습니다. 1988년 중국정부는 한중 양국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적산법화원의 복원공사를 시작해 1990년 5월에 개관했고, 1994년 7월 25일 당시의 대통령이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장보고기념탑에 친필로 '張保辜紀念塔'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처럼 중국정부도 인정하는 청해진은 중국 산동성에 있는데,,,,,,,,,,무슨 완도에 가짜로 조성한 청해진 유적지에 말도 안되는 쇼입니다. 신라와 백제는 애초에 대륙에 존재햇고 신라가 대륙을 통일하고 통일신라 시대에 신라땅인 산동성에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건 당연한 것이지요. 중국의 진나라, 수나라, 당나라는 중국 서안지역 관중땅만 통일한 나라들이고 중국 동해안쪽 영토를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라들임을 아셔야 합니다. 중국이 처음으로 대륙을 통일하고 동해안에 진출한것은 명나라 때가 최초입니다.

  • @새파랑-x6n
    @새파랑-x6n Год назад

    위만 조선이 아니라, 위나라(위조선), 만 조선이 아니라 "막나라(막조선)입니다. 연나라는 "연조선"이 되고, "한나라는 "한조선 입니다. 위조, 막조, 연조, 한조, 진조, 오조, 노조등...모두 조선이라는 사실과 "역사를 날조 당한겁니다."

  • @조민수-x5o
    @조민수-x5o Год назад

    하려고 하지 않은게 아니라 못한거라고 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만 놓고 보면 가장 강하지만 백제와 신라와 달리 더 많은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으니깐요. 특히 수나라와 당나라 같은 서쪽의 중원 국가나 북쪽의 유목민족들의 국가도 경계해야 했기에 신라 보다 더 어려웠다고 봅니다. 신라는 가야를 먹은 순간 백제와 고려만 남지만 고구려는 백제, 신라는 물론 역대급 국력을 지닌 수나라, 당나라 같은 중원 국가들과도 싸워야 했기에...

  • @chyondam
    @chyondam Год назад

    고조선 후손은 한반도 만주에 살았다 갱상도 신라는 중국 진나라 이민족이 마한 목지국의 허락으로 진나라 이름을 따 진한으로 하였다 ㅡ 동이전 삼국지 ㅡ ㅡ 갱상도인에게 중국처럼 성조가 있는이유

  • @두둥실-k5l
    @두둥실-k5l Год назад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한반도는 물론 만주까지 아우르는 대국이었을텐데 쌍도놈들이 다 망침

  • @연개소문-k8e
    @연개소문-k8e Год назад

    중국 역사는 전한 한무제때 사마천 사기로 인한 것인지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부터 우리들은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 전한 한무제시대와 비숫한 시기에 열국시대로 접어든 한민족의 역사는 역사기록없이 중국 역사에 기대워서 온통 건국신화로 나오고 열국시대와 삼국시대가 뭔가 앞뒤 안맞는 역사설만 난무한다. 가장 역사설이 난무하는 것이 이후 삼국시대를 연 열국시대의 건국관련 내용과 중국 한나라와의 국경선부분이다. 부여,고구려,백제건국신화는 모두 의문투성이다. 국경선도? 특히 한사군이 한반도에 까지 진출했다면 앞뒤 맞는 것 투성이다. 그런데 우리조차 중국, 일본뿐 아니라 통설로 받아들리고 있다. 소서노는 고구려의 후계자가 유리로 결정되자 주몽과 헤어지고 대규모 인원을 이끌고 요서(요서백제 건설 추정)를 통해 배를 타고 와 비류가 미추홀(지금의 인천)에 비류백제국을, 온조는 한강유역(금의 송파)에 온조백제국을 건설해서 비류백제국이 흡수한 것이 가장 많이 나오는 통설이다. 그런데 소서노를 포함 비류 온조는 미추홀과 한강유역에 올 수 있었을까? 식민사관에 의하면 고구려 미천왕이 지금의 평양유역을 수복할 때까지 한반도까지 한사군이 설치되었다는 것인데,...그 것을 대규모 인원이 어떻게 통과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미추홀과 한강유역은 과연 아무 세력도 없는 무주공산이었을까?

    • @gn.l3762
      @gn.l3762 Год назад

      한사군은 요서.요동지방에 있었습니다. 그것도 고대의 요서.요동지방입니다.ㅡ 313년에 고구려가 낙랑군을 점령하므로서 한군현은 없었졌다고 했는데 이는 거짓입니다. 북위 연화 원년 432년에 요동.낙랑.대방.현도등등 6군의 유민을 유주로 옮겼다고 했으니 313년 한군현이 없었진게 아니고 그 이후에도 뺏고 빼앗기고 하다가 비로소 고구려의 땅이 된것입니다.ㅡ 하사군이라는 말도 맞는 말이 아닙니다. 요서의 여러군과 요동의 여러군을 놓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기 때문입니다.ㅡ 그리고 전한 무제의 한군현 설치도 거짓말입니다. 한군현은 후한과 나라를 상실한 북부여 세력이 밀약을 맺고 태조대왕이 요서에 10성을 쌓은 이후 이들 연합군이 협공으로 요서.요동을 취하여 한군현을 설치하고 북부여 세력도 본국땅을 모두 회복한 것입니다.ㅡ

    • @gn.l3762
      @gn.l3762 Год назад

      한강을 경계로 북쪽의 낙랑국과 남쪽의 마한이 경계를 나누었는데 마한의 정권이 쇠퇴하자 경북지역의 진한이 독립해 신라를 건국했고 강원도쪽의 濊도 자립을 추구했으며 경남지방의 변한도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 마한은 자꾸 미약해지는 상황에서 요서의 가칭 비류국에서 온조가 소서노의 뜻에 반하여 한산 지금의 송파구에서 백제를 건국했고 머지 않아 비류가 죽고 또 소서노 마저죽자 그신민들이 온조를 모셔가 요서백제가 시작된 것입니다.ㅡ

  • @서성주-l9b
    @서성주-l9b Год назад

    고구려가 통일하지 못한거 많이 아쉬워 하던데, 신라도 엄청 호전적인 나라였음. 그 기세 덕분에 고려도 미친듯이 호전적이었고. 그냥 이씨 조선이 한반도 전투민족 끊어먹었다고 보면됨

  • @김정수-r4i2y
    @김정수-r4i2y Год назад

    그것이 그렇지 않고 복잡함 애초 백제는 대륙에서 건국함 원백제(백제이전의 백제 (구다라)로 있을때는 부리야트공화국 근처에 아주 오랫동안 이때부터 구다라와 코리는 트러불이 있었다 고조선에 대한 정통성은 구다라가 좀 더 있었기에 세력들이 많이 따름 환국시절에도 구다라형태로 옆에 코리국과 같이 유지되었다 아래로 마한으로 다시 내려옴 그리고 치우천왕이 관장했던 산둥반도 그주변의 마한의 대방을 그냥 가져가다시피하고 대방왕은 자동으로 직워가 소멸되게됨 즉 애초의 주인이 왔으니 되돌려주는 형태 한반도 만주 포함 상둥반도포함 대륙 동쪽전체가 전부 마한의 영역이였음 ) 1차건국때는(비류,온조,서소노)가 같이 있는 곳이 였으며 이곳은 북경쪽과 그 주변 넓은 전체지대가 포함됨 2차백제 건립때는 크게 영역이 확장되며 그것에 고조선때 담로운영지대들을 인수인계 받게되면서 더욱 방대해지게 됨(연타발은 여러단군 중 한 단군임) 2차때 비류와 온조가 각각 따로 지대를 관장함 (연타발은 여러단군중 한 단군임 이때 단군은 대게-선인 들로 불려지거나 또는 신인으로 불려짐 -고조선은 태-단군과 더불어 여러단군들이 각각 대륙들에 포진된체 각각의 영역을 책임운영형태임 잘하면 태-단군직에 오르게됨 단군은 기본적으로 삼일신고수행과 더불어 9단계의 수행과수도을 마치고 현묘지도와 천부경과 천부지도와 천부삼인과 도와이치와 천문과 역법과 맥통을 전부 이어받고 도와이치를 깨친자들에 한해서 단군이됨 단군들은 (신시+ 조시 +해시)외 366사를 같이 운영함) 고구려왕과 백제왕들은 그전에 각각 단군딸들과 결혼을 함 당시 단군깨서 다시 옛 영광을 부흥시키고 일으켜세우려했는데 그러할 수 있는 자질과 포부와 대담성이있는 자들을, 자신의 딸들과 결혼시켜 버린 것 그러면 영역뿐 아니라 각종-핵심세력들 까지 같이 인수인계되게됨 담로영역 운영권도 저절로 들어오게 됨) ------------- 고구려 태왕 주몽이 각각의 대륙 영토을 쪼개서 운영권을 각각의 인물들에게 분활해서 놔누워줌 이때 이에 비류와 온조에게도 대륙 영토을 크게 놔누워서 배정하며 국가형태로 관장하도록함 주몽은 소서노에게는 고구려궁성에 다시 되돌아와서 고구려를 같이 운영해보자고 소서노에게 권함 그것이 고구려 입지에도 좋으며 아직나이도 어리고 아직 입지력과 규합세력들의 지지도가 부족한 유리가 감당하기에는 버겁다고 보왔기에 소서노가 고구려궁에 입성해서 같이 운영해자고 권했고 이에 서소노는 응하게됨 그래서 주몽과 소서노가 같이 행차를 다니게됨

    • @김정수-r4i2y
      @김정수-r4i2y Год назад

      *미추홀 위치를 먼저 알야야됨 미추홀은 고구려 태왕-주몽에게 배정받은 곳임 2차 백제때(비류와 온조가 같이 있다 떨어져나가는 시기) 이때 미추홀 산둥반도 서쪽 대륙 서쪽에 있는 곳임 ■미추홀위치 미추홀은 (하남성과 산서성) 경계근처방연에 미추홀이 있으며 살수강(황화강)이 수직문양으로 떨어지는 곳에 작은 곁가지형태의 수직문양로 비스듬하게 아래로 흐르는 강 아래 비옥하며 농사도 아주잘되는 넓은 터가 있으며 사람들이 터잡고 살기 아주 좋은 곳 . 그아래로 살수( 황화)가 하단에 모인는 곳에 페수-조선하가 존재하며 그리고 피빛처럼 붉은강물이 있으며 ((소금이 방대하게 놔는 곳 근처기도 하다)) 그 강줄기 북쪽 상부 산먝에는 개마(마자르)산이 있으며 당시 하남성도 백제가관장운영됨 당시 대륙 전체 지배자였던 고구려 주몽이 그렇게 배정해줌 그리고 이후 하남성아래로 이동해서 유지했던 여래갈래 신라중 한곳을 백제가 접수한다고 고구려태왕에게 알리고 아래쪽으로 넓혀나가게 됨

    • @김정수-r4i2y
      @김정수-r4i2y Год назад

      그런데 이당시 미추홀어 대자연재해가 발생됨 (미추홀뿐아니라 고구려 이외 대륙전체가 대 자연재해가 발생되었으며 특히 미추홀에는 더욱 심했으며 굶어죽는 자들이 속출하게 되었으며 미추홀 백제인들이 고구려로 많이 떠나거나 동쪽-'산둥반도쪽으로 떠나거나 핵심인물들이 만주나 한반도나 삼도(일본)쪽으로 가기도 하게됨 그리고 미추홀은 텅비워지게 되었으며 비워진 미추홀에 고구려에서 병역을 일부보내 유지되는 형태로 유지됨 이후 백제가 잘 유지되면서 기력이 회복되며 고구려에게 지난일에 대한 잘못함을 고하고 앞으로 잘 협력관계로 유지하자고 말하면서 화해신청을 하며 미추홀은 상징적우미가 있으니 꼭 되돌려 받았으면 한다고 간곡히 부탁을 함. 미추홀을 되돌려 준다면 북위를 반드시 쳐부스보 정복하겠다고 그리고 고구려는 미추홀을 되돌려주었고 백제는 북위를 격파 정복해버림

    • @김정수-r4i2y
      @김정수-r4i2y Год назад

      이후 고구려도 고비사막 서쪽과 청해 감숙성과 주변 이전 남부여중일부((내몽골)=당시 몽골은 없음)) 살수강(황화강)북쪽등에 고구려성들을 줄줄이 축조하게 됨 이후 고구려는 대륙서토 살수강(황화강)바로 아래에 자리한 수나라를 제후국으로 삼아서 왕권만 인정한체 수을 노예국처럼 직,간접적으로 압박 통치하게됨 백제는 대륙하단등을 관장하며 많은 고조선때 운영했던 담로들은 물려받야 관장운영하게됨

    • @김정수-r4i2y
      @김정수-r4i2y Год назад

      고구려백제 또는 삼국이전에 부여부터 알아야됨 옛부터 동서양에 국명보다 황금의나라또는 황금제국이라 불리워진 부여 부여는 제국으로서 대부여이며 대부여 안에 여러부여들이 작용되며

    • @김정수-r4i2y
      @김정수-r4i2y Год назад

      대-부리야트(대부여) ( 북부여 494년) (동부여 410년)=동 가섭부여 (갈사부여) (졸본부여) (연나부여)서부여 (남부여)=백제성왕 두막루(북부여 후계자 자처 410년 건국 720년 발해무왕에게 멸망) 부리야트(부여)국들 왕들= 동명,해모수,해부루,금와,대소,갈사, 도두, 부태,위구태,간유거,마여,의려,의라,현왕, 잔왕,(문자명왕) ------------------ 위구태도 왕이였음을 알 수 가 있음

  • @annyoo3541
    @annyoo3541 Год назад

    중국25사는 단군조선 기사를 왜곡하고 조작해 놓아서 이를 인용한 한국 사서들도 위사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진실한 기사는 <단군세기>를 참조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 근래 <단군세기>를 인용한 국내외 논문들도 많습니다. - 중국25사는 왜곡의 대명사입니다. 스스로 왜곡하겠다고 밝히는 사서는 세계적으로도 유일합니다. 춘추필법이 그것입니다.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의한 역사 기록의 원칙은 존화양이(尊華攘夷·중화를 높이고 이족은 깎아내린다), 상내약외(詳內略外·중국역사는 상세히 외국역사는 간단히), 위국휘치(爲國諱恥·나라를 위해 중국의 수치를 숨긴다)입니다. - 46세 보을단군(BCE 341)에 연나라가 보낸 자객에 번조선 왕 해인(解仁)이 시해를 당했고 오가가 권력을 다투었다. 이러기를 18년, 46세 보을단군(BCE 323) 읍차 기후(箕)가 번조선 궁에 진입하여 스스로 70세 번조선 왕이 되고 윤허를 청하자, 보을단군이 윤허하고 연나라에 대한 방비를 강화하게 하셨다.<단군세기> 기후(70세)-기욱-기석-기윤-기비-기준(75세) 기자의 성은 자성(子)이고 이름은 서여 또는 수유(須臾)이다. 상나라가 망하자 기자 일족은 번조선의 서쪽인 북경 일대에 단군조선의 작은 제후국으로 존재했다. 수유국도 마찬가지로 대대로 기씨가 왕이었다. 이 수유국은 <단군세기>에 의하면 번조선과 연나라의 전쟁에 자주 동원된 것으로 나온다(36세 매륵단군). 또한 46세 보을단군 때는 한개의 난에 수유의 군사가 이용되기도 했다. 47세 고열가단군이 제위를 반납하고 입산하자, 6년 간 오가들의 공화정이 실시되었는데, 해모수가 수유국과 약속을 하고 백악산(아사달)로 들어가 오가들을 설득하여 제위를 넘겨받아 북부여 1세 단군으로 즉위하고 논공행상할 때 수유국 기비를 올려 세워 번조선 왕으로 삼아 상하운장을 지키게 하였다(BCE 232).<단군세기> 정리하면... 1) 기자 일족이 주나라를 떠남 2) 단군조선에 의탁하여 북경 근처에 수유국을 세움(단군조선의 거수국). 3) 46세 보을단군 때 번조선 왕이 시해당하고 종사가 어지러워지자 읍차 기후가 번조선 궁에 들어가 스스로 70세 번조선 왕이 되자 보을단군이 사후 윤허함. →읍차 기후는 번조선의 벼슬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수유국과 관련이 없음. →기자와 기후는 같은 箕씨인 것으로 미루어 기후는 기자의 자손인 것으로 추정됨. 왜냐면 당시는 성씨를 가지는 것이 귀했기 때문에 일족이 아닌데 같은 성씨가 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임. 4) 해모수가 북부여 1세 단군이 될 때 협력한 수유후 기비가 번조선 왕으로 임명됨. →기후는 기욱-기석-기윤으로 이어지다가 해모수의 명령으로 같은 기씨인 기비에게 번조선 왕을 양위하게 된 것임. →사실 기후가 번조선 왕이 된 것은 절차상 하자가 있는 것임. 따라서 해모수에 의해 나라의 기강이 바로 잡힌 시점에 이 과오를 바로잡은 것으로 생각됨. 5) 번조선 마지막 왕 기준(75세)는 기비의 아들로 위만에게 속아서 나라를 빼앗기고 막조선 땅 전북 익산으로 들어와서 마한을 세움. 결론적으로... 1) 주무왕이 기자를 단군조선 왕으로 봉했다는 것은 위사임. 2) 기자 일족은 단군조선의 아래인 번조선의 제후국, 수유국을 세운 것임. 3) 그리고 단군조선 말기인 46세 보을단군 때 기후가 번조선 왕이 된 것임. 따라서... 1) 중국 사가들은 기자의 먼 후손이 번조선 왕이 된 것을 이용하여 마치 주무왕이 기자를 단군조선 왕으로 봉한 것으로 조작한 것임. 2) <단군세기>에는 'BCE 1122년에 상나라가 망하자 기자가 태항산 서쪽에서 살다가 BCE 1114년에 하남성 개봉 남쪽으로 옮겨 살면서 인사를 일체 사절했다'라고 하여 실제의 기자는 계속 중국에 살았고, 그 일족이 단군조선 지역으로 이동해서 수유국을 세운 것을 알 수 있음. 따라서 실제의 기자는 단군조선과도 일체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음.

  • @이나송-k2z
    @이나송-k2z Год назад

    고구려가 북부여였어요 동부여를 멸망시키고

    • @gn.l3762
      @gn.l3762 Год назад

      고구려는 졸본의 대부여를 계승해 고구려라 했던 것입니다.ㅡ 본래 고조선의 국명을 바꾼 대부여는 요양쪽에 있던 단군 고열가태왕 시기 해모수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해 난변 지금의 백산시 장백현에 도읍 대부여를 계승해 대부여라했고 이를 동명왕이 계승해 졸본의 대부여가 시작된것입니다.ㅡ 이과정에서 해부루를 제후로 삼아 가섭원 지금의 송화강가로 옮기게하니 이나라가 북부여(여러 사서들은 동부여)이고. 대소왕이 전쟁에서 죽자 친동생이 갈사수 지금의 두만강가에 세운 갈사부여가 동부여입니다.ㅡ

  • @sungkilcho7210
    @sungkilcho7210 Год назад

    고구려는 백제를 밀어부치고 총력을 다했다면 통일이 가능했을수도 있겠지만, 중국과 북방유목민까지 방어해야 할 입장에서 불가능한일! 신라가 백제를 복속한것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치려고 하니 잘 안되니까...신라의 요청에 따라서 백제를 치니, 고구려도 자연스럽게 이길수 있었음....이후로 신라가 당나라를 물리친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만 당나라 입장에서는 서쪽의 이민족이 쳐들어오니, 포기할수밖에....사실 당나라입장에서는 한반도까지 관리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움...물론 한반도의 강한 민족성으로 복속 시키는 것도 쉽지 않음..

  • @mnmnnnmnmn
    @mnmnnnmnmn Год назад

    부여도 우리나라 역사인데 너무 자료가 없는 역사다 ..

  • @간송얼
    @간송얼 Год назад

    고구려는 백제 신라를 경쟁자로 보지않았다 그저 지방세력이었던것이다 중국과 라이벌관계로 항상대치하다보니 뒤에있는 지방세력 긁어 부스럼일으키기 싫었던거지 결국 부스럼을 방치하여 외국에서 들여온 바이러스와 섞여 암덩어리가 된거고 ㅡㅡㅡ

  • @jkim949
    @jkim949 Год назад

    광개토가 5만 끌고 내려와서 신라 구원해주다가 가야를 밀어내기는 했는데 부산,양산까지 내려왔다가 가야에게 대패당해서 병력의 절반이상 사상자가 나와서 도망감... 신라를 먹고 가야도 먹을 심산이였는데...5만 대병 끌고 왔다가 전사자가 수두룩하게 나와서 고구려도 백제,후연등 변방을 방어할 병력이 없어서 신라도 못먹고 돌아감. 가야의 중추였던 금관가야도 심한 타격을 받고 휘청하고 결국 수장자리도 대가야로 넘어가고 금관가야 왕족은 대가야를 피해 신라에 귀의하여 흡수됨.

  • @user-vj5hx2sj3z
    @user-vj5hx2sj3z Год назад

    그리고 부여의 성립시기는 bc208년 고조선과 흉노와의 전쟁시 고조선이 패함으로서, 그 지 배층의 무리들 중 일부가 내몽고지역으로 피신 하여 성립되었습니다. 우리 역사학계는 고조선과 부여 등 고대사를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날 부여지역으로 일컫는 부여는 실상 동부 여 입니다.

  • @user-vj5hx2sj3z
    @user-vj5hx2sj3z Год назад

    그리고 부여는 내몽고 지역 일대입니다. 송화강은 숙신지역으로 부여의 일부일 뿐 입니다.

  • @user-vj5hx2sj3z
    @user-vj5hx2sj3z Год назад

    부여는 예족입니다. 피지배종족으로 맥족도 포함되었을 수도 있으나, 지배종족은 예족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 @김태선-y2u
    @김태선-y2u Год назад

    매국노 당신 아직도 이런 영상 돌리냐

  • @lifeisshort99
    @lifeisshort99 Год назад

    김삿갓의 외할아버지는 홍경래 난의 공신이라 목슴읗 부지함.

  • @고소미-n9s
    @고소미-n9s Год назад

    북경 한중일 고대유물 전시회에 의도적으로 부여를 뺀 국립중앙박물관 식민사학자들

  • @holicsoo4431
    @holicsoo4431 Год назад

    페르시아에서 부여가 나왔다 페르시아=파사=부루 엘람드라비다어는 한국어와 가장 유사하다. 김수로 김알지 석탈해 이사금 거서간 모두 그지역 명칭과 관직이름입니다.

  • @gn.l3762
    @gn.l3762 Год назад

    아사달(고대 요동으로 적봉시 영성현)에 있던 고조선은 춘추전국시대 현 요양으로 옮겨 대부여라 했고 해모수는 쿠데타로 대부여를 계승해 난변 지금의 백산시 장백현에 도읍했고 동명왕 고두막한이 졸본 지금의 본계시 환인현에 도읍하고 대부여를 계승하고 해부루는 제후로 낮춰 분릉 지금의 송화강가로 옮기게 하니 이나라가 북부여임.ㅡ 졸본의 대부여는 고주몽이 壻양자로서 계승하고 고구려라함.

  • @annyoo3541
    @annyoo3541 Год назад

    부여에 관한 최고의 역사책은 <환단고기>입니다. 이 책에 <환빠> 프레임을 걸은 식민사학 이론가들의 작전이 먹혀서 연구자들이 이 책으로 부여에 관해 쓰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죠.

    • @annyoo3541
      @annyoo3541 Год назад

      1. 대부여 : 단군조선의 43세 물리 단군 때 우화충의 난이 발생하여 물리 단군 사망. 그 전에 스키타이족은 서진하다가 등자를 발명함. 화려한 기마 궁술로 유럽 대륙 강타. 그리스의 켄타우로스 전설을 만듦. 스키타이족은 다시 동진하여 단군조선을 강타. 이것이 <환단고기>의 우화충의 난임. 이때 단군조선은 등자와 기마 궁술을 도입하여 후에 고구려가 중원을 휩쓰는 기반이 됨. 욕살 구물 장군이 우화충을 무찌르고 비어있던 단군 제위에 추대를 받아 44세 구물단군이 됨. 구물단군은 국호를 조선에서 대부여로 변경. 2. 북부여 : 해모수가 웅심산에서 북부여 건국. 47세 고열가 단군이 제위를 내려놓고 산에 들어가 수도 생활. 6년 간의 오가들의 공화정 실시. 해모수가 오가들을 설득하여 제위를 넘겨 받고 북부여 1세 단군이 됨. 북부여는 1세 해모수-2세 모수리-3세 고해서-4세 고우루-5세 고두막한(동명왕)-6세 고무서 단군을 지나서 고무서 단군의 사위 고추모에게 제위를 넘겨서 고구리(=졸본부여) 1세 추모대왕이 됨. 이게 국통맥이고요.

    • @annyoo3541
      @annyoo3541 Год назад

      이제는 사이드입니다. 1. 동부여=가섭원부여 : 북부여 5세 고두막한의 혁명에 의해 가섭원 땅으로 옮겨 세운 나라. 고두막한은 단군조선의 마지막 단군 47세 고열가단군의 후손이다. 따라서 해모수에게 국통을 빼앗긴 단군조선의 부활이라 볼 수 있다. 고구려 1세 추모대왕은 북부여 2세 모수리 단군의 차남 고진의 후손이므로 북부여에 의탁하지 않고 같은 해모수 계통의 친족인 동부여에 의탁한 것이다. 후에 동부여 3세 대소왕이 고구리군에 전사함에 따라 소멸되었다. 2. 갈사부여 : 동부여 3세 대소왕이 전사한 뒤 고구리군에 항복하지 않고 대소왕의 아우가 갈사수로 달아나 세운 나라. 갈사부여 3세 도두왕이 고구리가 날로 강성해짐을 보고 나라를 바치고 항복하여 소멸하였다. 고구리는 도두왕을 흔춘을 식읍으로 주어 동부여후로 봉했다. 3. 연나부부여=서부여 : 갈사부여가 항복하던 해 대소왕의 종제가 백성 1만여 명과 함께 고구리에 투항하니 고구리에선 그를 개원 지역의 연나부왕으로 봉했고, 낙씨성을 내려 주었다. 그 후에 차츰 차립하여 백랑산 계곡으로 옮겨갔는데 연나라와 가까운 곳이었다. 자립이라는 것은 독립국을 자칭하는 것이다. 하여 고구리 21세 문자명태왕이 정복하여 마침내 연나부 낙씨가 멸망했다. 4. 남부여 : 백제 성왕 때 잠시 백제를 남부여로 개칭하였다. 이것은 단군조선의 국통맥을 이은 고두막한(=동명왕)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것이며, 고구리가 고두막한의 후손이 아니라 단군조선의 국통맥을 빼앗은 해모수의 후손임을 강조하여 고구리를 거역하는 조치이다.

    • @gn.l3762
      @gn.l3762 Год назад

      식빠는 가짜 역사죠.?

    • @annyoo3541
      @annyoo3541 Год назад

      @@gn.l3762 그럼요. 국사 교과서 자체가 조작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 @rkfjfjdnxnzjajk
      @rkfjfjdnxnzjajk Год назад

      ㅋㅋㅋㅋㅋㅋ 아직도 유사역사서 믿는 ㅂㅅ들이 있네

  • @gn.l3762
    @gn.l3762 Год назад

    고구려는 고조선에서 대부여로 대부여에서 고구려로 계승된 종주국으로 신라나 백제는 지방 자치정부로 생각했다 보입니다.

    • @gn.l3762
      @gn.l3762 Год назад

      @@rising_goon 광개토태왕 비문에도 써있는 내용입니다.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의 속민이었다고 즉 고대에는 완전 병합해서 그지역의 지도층을 없애려 하지 않고 복종시켜 따르게 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고구려는 북부여. 동부여.서옥저.동옥저등 여러 지방정권을 유지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이런 관습은 모용씨의 선비족 침입이후 얕아지기 시작해 장수왕때쯤에는 거의 사라진겁니다. 모본왕때 산서성 태원을 침공했다는 것은 고구려가 초기부터 강대한 제국을 이어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분명한건 고주몽의 고구려는 졸본부여를 이어받았다는 것입니다. 壻양자로서.ㅡ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Год назад

      @@rising_goon 전쟁이 아니고, 반란군 진압 이죠.

    • @이관호-f7t
      @이관호-f7t Год назад

      그래서 내려왔는데 나제동맹으로 못내려왔잔여

    • @gn.l3762
      @gn.l3762 Год назад

      @@이관호-f7t 대륙세력을 견제해야 되기 때문에 많은 병력을 북서쪽의 유연.돌궐과 지나세력을 견제 하는데 투입해야 했죠.ㅡ 그러나 요서백제에서 대륙백제로 성장한 백제의 대륙땅을 문자명왕 명치 11년 즉 502년에 다 장악했답니다.ㅡ 남조사의 양서 통감 원년(502년) 백제가 고구려에 크게 패해 남은 백제인들이 모두 南韓(한반도 백제)으로 옮겨가 살았다. 최치원 열전의 백제.고구려는 강성할때 1백만 대군을 보유했고 북으로 유연제노를 장악하고 오월을 침범했다.ㅡ

  • @황성태-w6m
    @황성태-w6m Год назад

    기자는 탱그리쥬신 서쪽 변방 번조선에 와서 망명 다시 듕국 제 땅으로 가서 디졌다 그 뒤 위만이란 양아치가 빤쥬신 말 왕 기준을 내쫓고 닛금 노릇하던 쿠데타 폭거 정권인 위민정권이 있었을 뿐 탱그리됴선의 정통을 이은 위민조선 따위는 아예 없었느니라여~~

  • @金剛夜叉-n6j
    @金剛夜叉-n6j Год назад

    한반도 안에서만 삼국을 보면 안된다 대륙에도 삼국이 있었으니

  • @스마트-w5e
    @스마트-w5e Год назад

    초등학교 100만대군을 물로만 이겼다. 말도안되게 병신같이갈켯지. 그때 초딩때난 존나의문이였음. 말고안되는걸 밑고있엇죠 ㅋㅋ 시험에도나와 ㅋㅋ 100만대군 물리친 살수대첩 장군은 ㅋ

  • @crankylim7365
    @crankylim7365 Год назад

    지리적 위치가 이상하네요!

  • @annyoo3541
    @annyoo3541 Год назад

    내용은 좋은데요. 평양 위치가...? ㅠㅠ 현 요양이 장수왕 천도 평양임이 인하대 연구소의 최신 연구 결과입니다. 지킬 곳이 있는 곳에 산성을 만듭니다. 현 압록강 기준으로 중국 쪽에 산성이 있고 한국 쪽에 산성이 없습니다. 요하 서쪽과 요동 반도의 수백 개의 산성이 현 요양을 중심으로 중국 방향으로 몰려 있습니다. 일제가 만들어 놓은 반도사관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 @gn.l3762
      @gn.l3762 Год назад

      유튭.ㅡ 역사돋보기에는 사대사관의 강단사학을 신봉하는 자들이 넘 많더군요.

    • @annyoo3541
      @annyoo3541 Год назад

      @@gn.l3762 그분들은 잠재적인 같은 편이라 오히려 반갑던데요. ▶<국뽕, 환빠, 유사역사학> 프레임을 덮어 씌워서 고대사에 국민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는 식민사학이론가들의 꼼수에 걸려들면 안됩니다.◀ 식민사학이론가들의 이 흑수에 현혹되신 분들은 이런 문구로 차츰 눈에 덮힌 안개를 걷어내 드리면 오히려 우군이 되실 겁니다. ^^

    • @gn.l3762
      @gn.l3762 Год назад

      @@annyoo3541 한번 들어갔다가 모기때처럼 달라들 더군요. 요몇일세 고조선에 대해 방송하거든요. 2편에 환빠 지도 아니냐고 독자들 난리던데요.ㅡ저는 유튭.책보고는 아니라고 보는데 그곳에 들어가보라고 댓글 달았는데 하루지나서 반응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 @gn.l3762
      @gn.l3762 Год назад

      @@annyoo3541 유사역사학.골수식빠들이 지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때문에 만들어낸 허구논리라고 반박했지요.

    • @annyoo3541
      @annyoo3541 Год назад

      @@gn.l3762 좀 전에 그 유튭 답글 달고왔는데.^^;; 그분들은 일반인이라기보다는 식민사학 이론가들의 하수인들일 가능성이 좀더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목적이 있어서 댓글 다는 분들이기에 그 목적을 이룰 수 없게하는 답글을 달면 더이상 답글을 안 다는 것일테니 말이죠.

  • @user-dt6es4ri3q
    @user-dt6es4ri3q Год назад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 했다면 거대한 독립국가로 발전되어 일본에 대한 식민지도 6,25의 동족상잔의 비극도 없었을 것이고 셰계2위 아님 3위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보유한 초강대국이 되었을 것이다

    • @rkfjfjdnxnzjajk
      @rkfjfjdnxnzjajk Год назад

      애초에 전근대시대에 만주랑 한반도 통일한다는거 자체가 불가능이다

    • @gn.l3762
      @gn.l3762 Год назад

      말갈족이 별도로 분리된데서 만주를 상실하게 된것이다.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Год назад

      중국은 통일이 안되어서 다시 북방 소수민족에게 여러차례 점령당했나? 그리고, 청나라 황제의 명으로 쓰여진 만주족의 역사서 "만주원류고" 에보면, 만주족은 자기 조상이 "삼한 , 부여, 백제, 신라, 발해, 숙신, 말갈, 여진" 이라고 했다.

  • @annyoo3541
    @annyoo3541 Год назад

    중국25사는 단군조선 기사를 왜곡하고 조작해 놓아서 이를 인용한 한국 사서들도 위사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진실한 기사는 <단군세기>를 참조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 근래 <단군세기>를 인용한 국내외 논문들도 많습니다.

    • @annyoo3541
      @annyoo3541 Год назад

      중국25사는 왜곡의 대명사입니다. 스스로 왜곡하겠다고 밝히는 사서는 세계적으로도 유일합니다. 춘추필법이 그것입니다.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의한 역사 기록의 원칙은 존화양이(尊華攘夷·중화를 높이고 이족은 깎아내린다), 상내약외(詳內略外·중국역사는 상세히 외국역사는 간단히), 위국휘치(爲國諱恥·나라를 위해 중국의 수치를 숨긴다)입니다.

    • @annyoo3541
      @annyoo3541 Год назад

      46세 보을단군(BCE 341)에 연나라가 보낸 자객에 번조선 왕 해인(解仁)이 시해를 당했고 오가가 권력을 다투었다. 이러기를 18년, 46세 보을단군(BCE 323) 읍차 기후(箕)가 번조선 궁에 진입하여 스스로 70세 번조선 왕이 되고 윤허를 청하자, 보을단군이 윤허하고 연나라에 대한 방비를 강화하게 하셨다.<단군세기>

    • @annyoo3541
      @annyoo3541 Год назад

      기후(70세)-기욱-기석-기윤-기비-기준(75세) 기자의 성은 자성(子)이고 이름은 서여 또는 수유(須臾)이다. 상나라가 망하자 기자 일족은 번조선의 서쪽인 북경 일대에 단군조선의 작은 제후국으로 존재했다. 수유국도 마찬가지로 대대로 기씨가 왕이었다. 이 수유국은 <단군세기>에 의하면 번조선과 연나라의 전쟁에 자주 동원된 것으로 나온다(36세 매륵단군). 또한 46세 보을단군 때는 한개의 난에 수유의 군사가 이용되기도 했다. 47세 고열가단군이 제위를 반납하고 입산하자, 6년 간 오가들의 공화정이 실시되었는데, 해모수가 수유국과 약속을 하고 백악산(아사달)로 들어가 오가들을 설득하여 제위를 넘겨받아 북부여 1세 단군으로 즉위하고 논공행상할 때 수유국 기비를 올려 세워 번조선 왕으로 삼아 상하운장을 지키게 하였다(BCE 232).<단군세기>

    • @annyoo3541
      @annyoo3541 Год назад

      정리하면... 1) 기자 일족이 주나라를 떠남 2) 단군조선에 의탁하여 북경 근처에 수유국을 세움(단군조선의 거수국). 3) 46세 보을단군 때 번조선 왕이 시해당하고 종사가 어지러워지자 읍차 기후가 번조선 궁에 들어가 스스로 70세 번조선 왕이 되자 보을단군이 사후 윤허함. →읍차 기후는 번조선의 벼슬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수유국과 관련이 없음. →기자와 기후는 같은 箕씨인 것으로 미루어 기후는 기자의 자손인 것으로 추정됨. 왜냐면 당시는 성씨를 가지는 것이 귀했기 때문에 일족이 아닌데 같은 성씨가 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임. 4) 해모수가 북부여 1세 단군이 될 때 협력한 수유후 기비가 번조선 왕으로 임명됨. →기후는 기욱-기석-기윤으로 이어지다가 해모수의 명령으로 같은 기씨인 기비에게 번조선 왕을 양위하게 된 것임. →사실 기후가 번조선 왕이 된 것은 절차상 하자가 있는 것임. 따라서 해모수에 의해 나라의 기강이 바로 잡힌 시점에 이 과오를 바로잡은 것으로 생각됨. 5) 번조선 마지막 왕 기준(75세)는 기비의 아들로 위만에게 속아서 나라를 빼앗기고 막조선 땅 전북 익산으로 들어와서 마한을 세움.

    • @annyoo3541
      @annyoo3541 Год назад

      결론적으로... 1) 주무왕이 기자를 단군조선 왕으로 봉했다는 것은 위사임. 2) 기자 일족은 단군조선의 아래인 번조선의 제후국, 수유국을 세운 것임. 3) 그리고 단군조선 말기인 46세 보을단군 때 기후가 번조선 왕이 된 것임.

  • @annyoo3541
    @annyoo3541 Год назад

    고구려가 통일했고, 백제와 신라는 속국이었는데, 고구려말에 갑자기 속국인 백제와 신라가 황제국을 참칭하고 고구려에 대든 것 아닐까 하네요.

    • @annyoo3541
      @annyoo3541 Год назад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구원하고 동성대왕이 대륙 땅을 다시 주시면 북위를 깨뜨리겠다고 하고... 모두 신라와 백제가 고구려의 속국이란 증거죠. 중국에서도 자주 있는 현상입니다. 후한 말기 요동태수였던 공손탁이 독립을 선언하고 요동왕이 된다던지 초한쟁패시 한신이 제나라왕을 선언한다던지 말이죠. 고구려가 수와 당의 침략으로 한반도에 신경쓸 겨를이 없을 틈을 타서 신라가 독립을 선언하고 백제도 질세라 독립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전엔 당연히 속국이었고. 그래서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를 폐하지 않은 것이죠.

    • @rkfjfjdnxnzjajk
      @rkfjfjdnxnzjajk Год назад

      나제 동맹 안배웠어? 신라 백제가 동맹 맺고 방어선 구축하니까 더 밀고 못들어온거임

    • @annyoo3541
      @annyoo3541 Год назад

      @@rkfjfjdnxnzjajk 함부로 반말하지 말고. 내 글을 다시 읽고 답글 달기 바람. 이미 통일된 상태였으니

    • @이관호-f7t
      @이관호-f7t Год назад

      고구려는 광개토때 통일할시기를 놓쳤음 그후나제동맹이되고 그시기를 완전히놓치고 이때신라가 마립칸 시기끝나고 지증왕때부터급성장한 원인때문임

    • @이관호-f7t
      @이관호-f7t Год назад

      @@utuv7879 역사인식...참 신라라는 나라자체가없었다?? 그럼 고려 조선은있었나

  • @user-of4pf4c
    @user-of4pf4c Год назад

    아마 대인선이 나라를 잘 다스려다가 나중에 거란을 약보고 나라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발해의 내분이 일어난거 같기도 하네요 들어긴 했는데 924년에 흑수와 달고가 이탈했다고 하는데 925년 9월 발해인 수백 다음 12월에는 수천이 고려로 망명해죠

  • @김재인-g7s
    @김재인-g7s Год назад

    광개토대왕비문 일구절인 백잔신라구시속민에서 백제와 신라는 옛부터 고구려의 속민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고구려는 배제 신라를 하나의 나라 안에 있는 지방정권으로 봤어요.

  • @gn.l3762
    @gn.l3762 2 года назад

    발해 내부의 분열과 이로 인한 발해의 지배에서 벗어난 세력 들을 여진족이라 부르게된 거란의 침공으로 서부의 여진화된 발해인들이 거란에 복속되어 많은 영토를 상실하고 이에 자신을 얻은 거란의 야율 아보기의 침공을 막지 못한데 있다고 봅니다.?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Год назад

      거란과 여진은 다른 종족임. 여진은 말갈족. 청나라 황제의 명으로 쓰여진, 만주족의 역사서, 만주원류고 에 보면, 자기들의 조상되는 종족들을 나열했는데, 부여, 삼한, 백제, 신라, 발해, 숙신, 말갈, 여진 이라고 했고, 고조선과 고구려는 왠일인지 빼놨씀. 그리고, 흉노, 선비, 돌궐, 거란, 몽골 도 껴주지 않았씀.

    • @gn.l3762
      @gn.l3762 Год назад

      @@davidjacobs8558 맞아요. 당연히 틀리죠.ㅡ 거란은 鮮卑족이 황하쪽으로 내려가고 그잔여 무리들이 卑麗(稗麗)라 불리다가 거란족으로 불린거고. 여진은 말갈족들이 고구려 경내로 들어와 고구려.발해에 복속되어 있다가 말갈계 발해인과 고구려계 발해인들을 모두 여진족으로 부른것입니다. 특히 말갈계가 금나라(시조는 완안 아골타로 신라의 왕족 김함보의 후손)를 세우자 모두 말갈의 후예 여진족이라 부른 것입니다.

    • @gn.l3762
      @gn.l3762 Год назад

      @@davidjacobs8558 본래 이들 즉 선비족은 아무르강 중상류지역이 고향이고 말갈족은 아무르강 중하류지역이 고향입니다.ㅡ 돌궐족은 알타이산맥의 서쪽에 있었던 아리안들의 백인계와 몽골계(선비계)가 혼혈된 종족이라 봅니다.

    • @gn.l3762
      @gn.l3762 Год назад

      @@davidjacobs8558 우리민족의 조상 예맥족은 아무르강 상류의 북방에서 내려온 맥족과 한반도쪽에서 올라간 예족이 요하유역에서 만나 예맥족이 되어 우리민족의 근간이 된것입니다.

  • @yoonhwajung4231
    @yoonhwajung4231 2 года назад

    지금 정국하고 비슷허네요

  • @manstein4017
    @manstein4017 2 года назад

    고구려는 고구려의 역사다

  • @jessica2496
    @jessica2496 2 года назад

    영상이 바뀌는 장면이 독특하네요~^

  • @egmont9852
    @egmont9852 2 года назад

    신학의 정체는 거짓말을 체계화 한 것!

  • @user-nc7ti3ef4g
    @user-nc7ti3ef4g 2 года назад

    컨텐츠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좋네요

  • @정광용-w4w
    @정광용-w4w 2 года назад

    지난 결과를 받아 들이고 새로이 시작 한다면 우리도 더 나아지리라 믿어요^^

    • @bbystory4156
      @bbystory4156 2 года назад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광용-w4w
    @정광용-w4w 2 года назад

    배움은 인생의 연속인것 같네요.고맙습니다

    • @bbystory4156
      @bbystory4156 2 года назад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