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Видео 7
- Просмотров 522 108
Tokyo Memories
Южная Корея
Добавлен 28 июн 2021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 이고 지금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입니다.👦
더 이상 일본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조금이나마 바로잡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습니다.
日本で生まれた韓国人です。今は韓国で高校に通っている学生(♂)です。👦
これ以上、日本に対する間違った情報を少しでも正しくするためRUclipsを始めました。
더 이상 일본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조금이나마 바로잡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습니다.
日本で生まれた韓国人です。今は韓国で高校に通っている学生(♂)です。👦
これ以上、日本に対する間違った情報を少しでも正しくするためRUclipsを始めました。
韓国、統治時代は祝福でした。食糧収奪の真実について韓国の高校生が証拠と根拠で説明します。
食糧収奪と韓国で主張していますがそれは収奪ではなく輸出でした。感情ではなく証拠で話します。
------------------------------------------------------------------------------------------------------
[フリーBGM DOVA-SYNDROME / FREE BGM DOVA-SYNDROME]
dova-s.jp/
[楽曲詳細情報・フリー(mp3)ダウンロード / information & free(mp3) download]
dova-s.jp/bgm/play2126.html
[作曲者情報 / Composer]
dova-s.jp/_contents/author/pr...
[音楽素材ライセンス / License]
dova-s.jp/_contents/license/
------------------------------------------------------------------------------------------------------
------------------------------------------------------------------------------------------------------
[フリーBGM DOVA-SYNDROME / FREE BGM DOVA-SYNDROME]
dova-s.jp/
[楽曲詳細情報・フリー(mp3)ダウンロード / information & free(mp3) download]
dova-s.jp/bgm/play2126.html
[作曲者情報 / Composer]
dova-s.jp/_contents/author/pr...
[音楽素材ライセンス / License]
dova-s.jp/_contents/license/
------------------------------------------------------------------------------------------------------
Просмотров: 37 268
Видео
徴用工の真実。軍艦島は幸運の島だった。賃金表を見たら日本人より高所得者だった。韓国の高校生が証拠で論破する!
Просмотров 20 тыс.2 года назад
徴用工の真実について分かると反日感情を持つ理由がありません。 彼らの賃金表を1度でも良いから見て下さい。 [フリーBGM DOVA-SYNDROME / FREE BGM DOVA-SYNDROME] dova-s.jp/ [楽曲詳細情報・フリー(mp3)ダウンロード / information & free(mp3) download] dova-s.jp/bgm/play2126.html [作曲者情報 / Composer] dova-s.jp/_contents/author/pr... [音楽素材ライセンス / License] dova-s.jp/_contents/license/
한국이 베낀 일본 과자. 새우깡 하나로 연간 700억엔씩 피해보는 일본기업.
Просмотров 23 тыс.3 года назад
모르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만든 영상입니다. 화내지 말고 천천히 봐주세요. [フリーBGM DOVA-SYNDROME / FREE BGM DOVA-SYNDROME] dova-s.jp/ [楽曲詳細情報・フリー(mp3)ダウンロード / information & free(mp3) download] dova-s.jp/bgm/play2126.html [作曲者情報 / Composer] dova-s.jp/_contents/author/pr... [音楽素材ライセンス / License] dova-s.jp/_contents/license/
한국에 노벨상이 안나오는 이유는? 일본 노벨상 수상자28인! 뭐가 다를까...
Просмотров 26 тыс.3 года назад
일본을 본받아 우리도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고등학생인 저 스스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양한 의견과 생각이 교류되는 대화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フリーBGM DOVA-SYNDROME / FREE BGM DOVA-SYNDROME] dova-s.jp/ [楽曲詳細情報・フリー(mp3)ダウンロード / information & free(mp3) download] dova-s.jp/bgm/play2126.html [作曲者情報 / Composer] dova-s.jp/_contents/author/pr... [音楽素材ライセンス / License] dova-s.jp/_contents/license/
일본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도 일본을 좋아합니다.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Просмотров 30 тыс.3 года назад
저희 가족에 대한 이야기 이지만 많은 분들이 이 영상을 보시고 한일관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Copy Start Song : Ivvi - 일별삼춘(一別三春) Follow Artist : bit.ly/3soGoXH Music promoted by DayDreamSound : ruclips.net/video/8Rro0ZmyoPE/видео.html Copy End [フリーBGM DOVA-SYNDROME / FREE BGM DOVA-SYNDROME] dova-s.jp/ [楽曲詳細情報・フリー(mp3)ダウンロード / information & free(mp3) download] dova-s.jp/bgm/play2126.html [作曲者情報 / Composer] dova-s.jp/_co...
독도는 우리땅 이라고 주장하기엔 세종실록 지리지는 오류 투성이 입니다. 반박 가능하시다면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Просмотров 169 тыс.3 года назад
독도는 일본땅입니다. 영상을 보신다면 아마... 납득 해주시겠지요? [フリーBGM DOVA-SYNDROME / FREE BGM DOVA-SYNDROME] dova-s.jp/ [楽曲詳細情報・フリー(mp3)ダウンロード / information & free(mp3) download] dova-s.jp/bgm/play2126.html [作曲者情報 / Composer] dova-s.jp/_contents/author/pr... [音楽素材ライセンス / License] dova-s.jp/_contents/license/
한일합방은 식민지가 아닌 축복이였다. 일제시대 산 증인의 증언
Просмотров 217 тыс.3 года назад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진실을 말하고자 만든 영상입니다. [フリーBGM DOVA-SYNDROME / FREE BGM DOVA-SYNDROME] dova-s.jp/ [楽曲詳細情報・フリー(mp3)ダウンロード / information & free(mp3) download] dova-s.jp/bgm/play2126.html [作曲者情報 / Composer] dova-s.jp/_contents/author/pr... [音楽素材ライセンス / License] dova-s.jp/_contents/license/
일본에 감사합니다.
불행중 다행인게 조선이 망해서 신분제 폐지되고 이땅이 근대화 된게 일본덕이고 ~ 일본이 청일 러일전쟁에서 이겨서 그나마 이땅이 공산화 안된거지 청과 러가 이땅에 들어왔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괜찮아. 중국이 대신 복수 해 준다 😂😂😂
너무 좋은 영상이네요. 저는 일본이 좋고 중국, 북한이 너무 싫어요. 역사 왜곡으로 일본같은 훌륭한 나라에 폐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처음은 머리에 든게 없어 이런말 들으면. 미치고 팔짝뛰고 지랄발광부터 했는데. 역사를 제대로 배우니 이말이 불편한 진실였음. 결과론 적이지만. 전세계가 제국주의국가들이 온세계를 식민지화 하고 거대한 중국의 속국이 였던조선이. 중국까지 뜯어먹히던 시대에. 왕도정치에 노예제도 까지 있는 미개국가가 자립이 가능할수 있었을까? 호남지역의 노예층이던 농민들이. 불만이 극에 달하고. 동학운동발발. 사태제압도 못하던 조선 구식군대가. 청나와 일본을 끌여들어. 두국의 지배의 빌미를 제공하고. 청과 일본의 조선지배권 쟁탈에 청일 전쟁 반발. 일본의 승리로 조선은 국제적 독립국 대한제국을 건국하는데. 만약 이때 대한제국으로 독립못했고. 중국 치아에 살았더라만. 중국은 지금 대만처럼 영토권주장하거나. 광활한 공산대륙에.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으로 살았을것임. 창피한 역사를 남탓하는것 보다. 인지하고. 이런일이 없도록 제대로 가르치는게 교육입니다.
노비제 갑오개혁 폐지 했습니다 그리고 대륙에 지배받는 속국이 아닌, 동아시아라는 영향력의 아래에 있던 종속관계로서의 속국이자, 동시에 스스로가 주체인 국가권리들을 행사하는 국가였다" 라는 것이다. 이러한 종속관계의 입장은 조선뿐만이 아닌 동아시아에 속한 대다수의 국가들이 조선과 같은 입장에 놓여 있었음으로 딱히 부정적으로 생각할 요소는 아니다. 사회적·문화적 규모가 큰 나라에게서 주변국들이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 일은 동서양 어느 시대에서나 자주 일어나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논리로 중국의 조공국에 해당되는 나라는 조선뿐만이 아니었다. 조공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지금의 몽골, 카자흐스탄 같은 중앙아시아 일대, 베트남이나 시암 같은 동남아, 오키나와, 무로마치 막부 등 일본의 옛 국가나 정권 그리고 몽골족, 여진족들 또한 중국에 조공했다. 봉건제도의 영향으로 국가 간 위계질서가 훨씬 심했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더 해괴한 상하관계가 넘쳐나기도 했는데, 가령 명목상 프랑스 왕국의 속국인 노르망디 공국, 아키텐 공국, 브르타뉴 공국, 가스코뉴 공국 등의 공작위를 모조리 한 가문이 상속받아 프랑스 영토 절반 이상의 영지를 차지하고 프랑스와 동격의 왕국인 잉글랜드의 왕위까지 겸한다든지, 스페인 국왕이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겸한다든지 등등. 무엇보다 해당 조공국의 구조는 중국 직속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대월은 참파 등 중국의 손이 닿지 않는 더 남쪽에 있는 국가의 조공을 받았고, 조선은 대마도, 류큐, 큐슈, (중국보다 조선에 가까웠던) 여진족 일부, 무로마치 막부의 조공을 받았다. 구조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조선 통신사의 경우도 칙사를 조공국에 보내는 형태이기 때문에, 에도 막부 또한 조선의 조공국으로 취급하는 것이 가능하다
@@박정현-w1b 日本によって、奴隷制度を廃止した事実を知らない、無知な「 @박정현-w1b 」。 哀れである! @박정현-w1b は、共産主義者なのか? それとも、北朝鮮のスパイなのか?
어떻게 했길래 공산주의 사회주의 엮냐요. 노비제 갑오개혁 폐지 했습니다
@@박정현-w1b 日本によって、奴隷制度を廃止した事実を知らない、無知な「 @박정현-w1b 」。
비겁하고 정직하지 못한 조선인들...
근데 왜 대가리에 머 쓰고 씨부림? 얼굴까바바. 니 에미애비 충격받을까봐?
이때 서민들은 잘살았다 그저의 좃선은 노예가80%ㅎㅎ
세금 안 내는 자가 80%
부끄럽지만 당시 구한말 조선은 침략당하지 않을수없던 미개한 국가였음 부폐한 정부관료들 국민80%가 노비계급이었던 정말 미개한국가 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에게 식민지배 받은것을 부풀리고 그들을 악마화 시킬게 아니라 부끄러워하고 다시는 그런일이 없도록 강해져야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한국미국일본 동맹을 강화시켜야합니다 지금의 일본은 동맹국이지 과거 우리를 침략했던 일본이 아닙니다 세계역사상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맹은 없습니다
세금 안 내는 자가 80%
@@박정현-w1b お前のことか?
노비 세금 거두지 않습니다.
多い 情報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もしできるなら 日本語 ダビングも俺がやりたいんですけどいいですか
대한민국 교과서는 쓰레기입니다. 학문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이지요 나라 팔아먹는 동북공정에 무릎 꿇은 매국노 사학자들의 허무맹랑한 소설입니다.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 복귀해서 역사를 다시 개편했으면 좋겠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19], 거문도[20], 울릉도[21]를 포함한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에 대한 모든 권리, 자격, 영유권을 포기한다 이 조항에 울릉도는 있고 독도는 표기 되어 있지 않다고 그래서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우기는데 한심한 생각이지 제주도 하면 제주도와 그 부속도서 전부를 말 하는 것이고 거문도 하면 거문도 포함 거문도 부속 도서를 다 말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울릉도 하면 울릉도와 부속 도서 전부를 말 하는 것 독도 또한 울릉도의 부속 도서다 일본 주장 대로라면 일본이라 하면 일본 본토만 일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진배없다 당신들 이것을 맞다고 할 수 있나??? 그럼 지금부터 일본은 일본 본토만 일본이고 나머지 다른 부속 도서는 일본이 아니다 훗가이도와 오끼나와, 대마도등 모든 부서는 일본이 아니다 !!!!!
일본인한테서 배웠구나.
일본은 고마운 나라가 아닐까..
이게 팩트지.. 일반인은 조선 보단 일제시대가 더 살기 좋았을껄
조선이 다른 나라들보다 가혹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동학 농민 운동 당시에도 조정은 진압에 앞서서 다른 지방관을 파견하는 식으로 협상을 먼저 하려고 했고, 농민군에 의해 점령된 지역에서의 주민들의 자치를 인정해주는 등의 유화책을 벌이기도 했다. 당장 비슷한 시기인 산업 혁명기의 영국에서는 차티스트 운동이나 러다이트 운동같은 여러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학살극까지 벌이면서 잔혹하게 진압했고, 훨씬 이후인 1930년대에도 식민지인 영국령 인도 제국에서 총독부의 가혹한 통치에 저항하던 암리차르의 시민들을 무차별로 학살한 장군이 당시 국왕인 조지 5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전근대적인 인권침해는 있었지만 다른 나라들보다 딱히 비난의 대상이 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박정현-w1b 일본이 조선, 한국으로 한 일의 일부. ・노예제도를 폐지해 조선인민을 평등하게 했다. 포악한 양반을 폐지했다. ・조선을 병합해 막대한 세금을 투입했다. ・일본통감부는 새롭게 한국의 사법체계(형법, 형사소송법, 민법, 민사소송법 등)를 정비해 조선의 백성이 왕과 양반에 받은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 또 한국인 유학생을 받아들여 법조인을 키웠다. ・조선에 도로, 철도, 전기, 상하수도, 댐, 수력발전소, 농업용 저수지 등의 인프라 설비를 정비했다. ・조선에 현대적인 학교를 만들어 기초학력을 향상, 경제를 발전시켰다. ・그때까지 별로 사용되지 않은 한글을 보급시켰다. ・공자나 묘자의 교육밖에 하지 않는, 폐해가 많은 서당을 허가제로 했다. ・조선에 대학을 만들고 장래 조선을 이끄는 인재를 육성했다. ・조선의 문화재를 보호, 관리했다. ・하게산이었던 조선의 산에 식림해, 목재 자원을 확보했다. ・인구를 약 2배, 쌀의 생산성을 약 2배로 향상시켰다. ・제품, 쌀 등을 수입해 조선측의 소득 향상에 공헌했다. ・일본인이, 화학 공장, 석유 공장, 발전소, 전기 설비 등을 설립해 환경 만들기를 해, 조선의 공업화에 공헌. ・일본인(타카하시 승, 외)이, 농업 기술을 가르쳐 조선의 농업을 발전시켰다. 일본인(이마무라 토모: 당시 제주도의 도지사)가 고구마 재배법을 가르쳐 제주도의 기근을 구했다. ・식량난으로 굶어 죽었던 한국 국민을 돕기 위해, 한국측의 요청에 의해, 인스턴트라면의 기술을 무료로 제공했다. 또한 제조기기의 비용을 모두 지원했다. ・일본인이 식문화를 전해, 서양식 세트, 오므라이스, 카레라이스, 돈까스, 카츠카레, 커피(그 외 많이) 등을, 백화점의 레스토랑(미츠코시 백화점:현재 신세계 백화점)에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일본통치하 36년간에 만든 학교, 호텔, 백화점, 댐 등의 설비를 종전으로 조선에 재산을 남겨왔다. 재산가치의 합계는 당시 돈으로 북한에 29억 달러, 한국에는 23억 달러. 그 외 개인의 자산(토지, 집, 가재, 현금 등)도 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포기했기 때문에 불평은 없습니다. ・한일기본조약에 따른 대일청구권자금으로서 당시 돈으로 무상 3억 달러와 유상 2억 달러를 자금 제공. 고속도로, 포항제철소, 댐 등 많은 인프라를 만들 수 있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 일본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최근에는 교육하지 않았다는 것. ・삼성그룹의 요청에 대해 기술지원, 기술자 파견, 컨설팅지원, 설비지원, 경제지원을 실시. ・포스코(구 포항제철)에 대해서, 일본의 하치만 제철, 후지 제철, 일본 강관이 제조 장치의 공여, 기술 공여, 기술자 파견, 운용까지의 지원 등 실시. 상기의 대부분은, 존경하는 한국인의 분으로부터, 참조시키고 받았습니다.
교과서 사기임 완전 편향적임
そう、韓国の教科書は、嘘だらけである! だから、国民が歴史無知である。
대만도 일본이 지배했는데 은인으로 생각한다
台湾、パラオ共和国は、超親日国である。 なぜ、韓国だけが反日国であるか、良くわかるよね! 韓国政府が、約70年間、嘘を付いていたと言うことである!
한국인의 대부분은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했기 때문에, 지금의 한국이 있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만약 일본이 아니라 러시아가 한반도를 식민지화(병합이 아니라 식민지)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현재의 한반도에는, 조선인은 거의 없고, 러시아인 등(백인계)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조선인은 스탈린들에 의해 시베리아 등으로 강제 이송되었을 것이다. 한국인은, 시베리아에 강제 이송되고 있는 편이 좋았다고 말할까?
스탈린이 서명한 문서에도 적시되었듯이 극동 지역에서 있을 지도 모르는 일본 첩자의 활동을 미연에 방지하는데 있었다. 외모에서 고려인과 일본인이 서로 유사하기 때문에 일본 첩자를 가려내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극동주의 전 고려인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는 논리이다. 두 번째는 극동주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들의 규모가 생각보다 컸고 특히 한반도와 경계를 이루었던 포시에트 군의 경우는 고려인들이 절대 다수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전에 고려인들의 자치구 요구가 비등하였고 향후에도 영토적 자치요구가 있을 것으로 본 중앙 당국에서는 미래에 있을지 모르는 이러한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필요성이 있었다. 1934년에 이미 극동주 지역에 유태인 자치주가 설립된 점이 참고될 만하다. 결국 1938년에 포시에트 군 공산당 지구당 제1서기였던 김 아파나시가 극동주를 소련에서 분리하기 위한 무장봉기를 획책한 혐의로 총살되었다. 세 번째는 소련에서 실시된 농업집단화 정책으로 자체 인구가 급감하게 된 카자흐 공화국 등 중앙아시아 지역에 인구를 공급하고 아울러 농업생산력 증대를 위한 노동수요가 있었고 이를 충족하기 위하여 인위적인 인구유입책이 필요하였다. 사실 극동 지역에서 카자흐 공화국으로 초청된 농업전문가들이 이미 1928년에 이주하여 활동하면서 벼농사를 성공시키고 있었다. 농업기술을 가진 극동 거주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 지역의 농업생산력 향상을 위해 적합한 민족으로 판단되었던 것이다.
@@박정현-w1b 스탈린 정권 하에서는 폴란드인(1939년 - 1941년, 1944년 - 1945년), 콜라 노르웨이인 (1940년 - 1942년), 루마니아인 (1941년, 1944년 - 1953년), 에스토니아인, 라트비아인 , 리투아니아인 (1941년, 1945년 - 1949년), 볼가 독일인 (1941년 - 1945년), 잉글리아 핀인 (1929년 - 1931년, 1935년 - 1939년), 칼레리아의 핀인 (1940) 년 - 1941년, 1944년), 크리미아 타타르인, 크리미아 그리스인 (1944년), 코카서스 그리스인 (1949년 - 1950년), 칼무이크인, 발칼인, 크리미아 이탈리아인, 카라차이인, 메스헤티아 터키인, 칼라파박인, 조선인(1930년 - 1937년), 체첸인, 잉구시인(1944년)이 강제 이송 대상 되었다.
@@박정현-w1b 소비에트 연방에서의 조선인의 강제 이주에서는 1930-1937년에 연해주 등 극동 러시아에 사는 조선민족의 거의 전원(171,781명 또는 17만 5000명)이 카자흐 SSR이나 우즈벡 SSR에 추방되어 소련 연방에서 첫 대규모 강제 이송이 되었다.
@@박정현-w1b 한반도는 러시아에 비해 따뜻한 기후가 된다. 러시아인은 좋은 장소(따뜻한 장소)로 이주하고, 조선인은 추운 지방(시베리아 오지)에 강제 이송이 되었을 것이다.
이유 알고 말하세요
韓国人の多くは、日本が朝鮮を併合したことを不満に思っているようだ。 日本が朝鮮を併合したので、今の韓国がある事実を知らないようだ! もしも、日本ではなく、ロシアが朝鮮半島を植民地化(併合ではなく植民地)していたら、今はどうなっていただろうか? 現在の朝鮮半島には、朝鮮人はほとんどいなく、ロシア人等(白人系)が住んでいただろう! 朝鮮人は、スターリン達によって、シベリアなどに強制移送されただろう。 韓国人は、シベリアに強制移送されていたほうが良かったと言うだろうか?
저는 좌파를 정말 싫어하는 우파이지만 단정적으로 진실이라 하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료자체가 한쪽 것이니까요. 그리고 설령 일부 사실이 있어도 진실은 아닙니다. 게다가 일부 사실을 말하려 해도 상대인 일본이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데 피해자인 우리가 뉴라이트처럼 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도 거의 모든 언론이 중국자본에 넘어가 일부의 사실로 진짜 진실을 감추고 있는데 하물며 식민지 시대의 기록이 전부 사실일리는 없다는 것이죠.일본은 지금도 자국의 치부는 감추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자국의 치부가 드러나면 일본이 그리 좋아하는 외국에서 일본영화가 상을 받아도 그런 일은 없다면서 영화를 욕하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그때 조선에 저질렀던 치부는 기록할 리 없잖아요. 그에반해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기록이 정확해서 다른나라에 비해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이 많아요.서로 잘못을 지적하면서 잘 싸우고 또 전반적으로 잘못도 인정하는 편이라 사회부조리를 다룬 영화도 많구요. 다시읽는 사회과부도님이 틀린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님이 일본을 좋아하는 이유가 애니때문이든 한녀가 싫고 일본여자에게 호감이 있어서이든 존중합니다.그리고 역사를 보는 자신만의 시각도 이해하구요 그러나 님의 생각이 마치 사실인 척 진실인 척은 하지 마세요. 당신은 그시대 조선사람들의 고난과 고통을 본인은 모르는 것입니다.님의 의견대로의 상황을 설정하여 좋은 상황을 가정해도 은은한 차별과 무시를 님은 모르는 것입니다. 인간은 먹고 사는 것만 해결되면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분명한 것은 님이 생각하는 모든 것은 현재의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고 님은 잘살게 되고 K문화의 발전으로 달라진 전세계 특히 일본의 달라진 대접을 받고 있고 그에 맞추어 하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옛날에 뉴라이트가 많은 서울대의 전자도서관 관련 자료 본 적있는데 생체실험 등도 분명 있었고 그것도 일본자료였습니다. 일본이 계급을 없애줬다는 사람들도 많던데 그렇다면 지금까지도 차별해왔던 아이누족은 뭐라 설명하실 것인가요? 우리나라의 차별은 기독교 문화가 정착되면서 없어진 것입니다.본인의 의견을 가질 수는 있지만 옳은 척은 하지마세요
이승만 각하 감사합니다
3:15 너희 내가 잘못안거잖아
2:45 친일파나 그렇게한거고
진짜 좌파들 여기서도 나대네ㅋㅋ
북한하고 통일할 때 한국이 북한한테 똑같이 함
난 우파인데 님의 이런 생각이 걱정됩니다. 님 방학숙제 님이 직접 해내는 것과 엄마 아버지 형이 대신 해주는거.. 그래서 좋은 평가를 받는거 어느쪽이 맞죠? 일본도 메이지유신 전까지는 조선과 별다를게 없었죠. 오히려 칼 찬 사무라이들이 사람 목숨 쉽게 생각하는 낙후된 나라. 우리도 지금 이렇게 살듯 그때 사람들도 시간만 좀 더 쥐어졌다면 충분히 스스로 나라를 바꿀 수 있었습니다. 무능했다지만 고종이라는 작자도 전기를 들여오고 전차 철도를 들여오고 나름 개혁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었어요. 찾아보세요. 꿈쩍도 안 하고 있는데 일본이 먹고 나서 하나하나 다 세워주고 깔아주고 바꿔준게 아닙니다. 이미 하던 사업을 받아서 더 키운것도 많아요. 우리나라 철도 철로 사이즈가 일본과 다른 이유도 그 예입니다. 고려라는 왕국이 그 많은 외침과 내란속에서도 450년이나 지속됐지만 결국 우리민족 스스로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만들었잖아요? 조선 이라는 왕국도 우리 손으로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만들 수 있었는데 일본이라는 나라가 무력으로 병합했습니다. 뭔 전쟁 없이 합병 이러는데... 아무리 망할 나라라지만 남의 나라 왕궁과 정부청사에 자기네 무장 병력을 들여보내 점거하고 겁박하는게 무력투사가 아니면 뭔가요? 아무리 일본이 발전을 시켜줬다기로소니 세상에 공짜가 있습니까? 지금 우리가 열을 벌어 둘을 나라에 내고 발전하는것과 중국 미국과 죽어라 싸우고 있는 일본에 내야 하는게 같았겠어요? 구한말 이씨왕국 보다야 낫죠. 그런데 이씨왕조 우리손으로 못 끝내니 남의 나라가 끝내주고 그 아래 사는게 차라리 나은 선택이었다는 결론이라면 지금 여기에 살지 말고 일본으로 가던가 미국이 우릴 통치해 달라고 시위라도 하던가 하세요. 말도 일어 영어만 쓰시구요.
님 한국이 통일하게 되면 일본처럼 북한에 똑같이 할거임
친일매국노들ㅉㅉ
그럼 2차 한일합방 하던가 친일매국노들아
아이고! 뉴라이트들 창피한 줄 알아라~~!
그냥 소중국ㅋㅋㅋㅋ 조선인들 14억 모이면 그게 중국임
2024年、韓国もヌーヴェル賞受賞しました! まだ道のりは長いけど...。😅
독도는 한국땅!!!!!!!!!!
조선인 대다수는 그런대로 순응하면서 살았음 왜냐하면 최소한 먹고는 살 수는 있었거든
우리 조상들에게 강점기는 이씨괴로 싸이코패스 양반빨갱이 헬조선이 진짜 강점기이고...일본에 의해..헬조선으로부터 노예 해방된것이 진짜 해방이고 광복입니다. 과거 시대 현실과 강점기의 의미를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린 일제 강점기란 말쓰면 안됩니다. 헬조선은 우리 조상들의 나라가 아닙니다. 이씨괴뢰 조선은 노비 종모법으로 우리 조상님들을 500년간 노예로 사육했던..폭력 괴수 집단이였습니다. 지금 인민을 노예로 부리는 북괴 김씨조선 처럼 말이죠. 일본이 우리 조상들에 나쁜짓을 했다손쳐도..헬조선의 악행에 비하면..발가락 발톱 수준이고..일본은 노에로 길들여져서..너무 무지했던..우리 조상들에게 개인 인권을 찾아주고..근대화 교육을시켜준 은인입니다. 조선의 성군이라는 세종이란 놈이 만들었다는 훈민정음은 중국어 발음 교육용으로 만든 겁니다. 훈민정음 받침은 고조선때 만들어진 가림토 문자받침들입니다. 세종이 순수 창작한게 아닙니다. 한글교육도..조선 총독부에서 교육자료를 만들어서..일어,영어와 함께 교육시켜주었습니다. 단 일본 영어 교사들의 영어발음이 안 좋아서 배우는 학생들이 불만이였다고 합니다. 3.1운동은 순수한 민족 독립,국권 회복을 위한 운동이 아니였고...독립운동한답시고..자국민 뜯어먹던 헬조선의 반일 양반 빨갱이들이 조장한 폭동이였습니다. 우리 조상들 다시..노예조선,헬조선으로 돌아가겠금..헬조선 괴뢰정권을 복원하자는 폭동이였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 증언에 의하면... 당시 일본 경찰들은..하늘에대고 총을 쏘았지만... 조선인 경찰들이..폭도들에게 조준 사격했다고 합니다. 미스터 션샤인..드라마에서... 노비출신인 이병헌이..양반 아씨에게...조선이 내 나라가 맞냐고...묻죠. 노비의 조선에서의 정체성은 사람 아닌 가축이여서..노비를 헤아릴때는 사람인이나 명이 아닌...입구자의 구를 사용했습니다. .. 노비,천민은 조선 백성이 아니였습니다
조선이 다른 나라들보다 가혹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동학 농민 운동 당시에도 조정은 진압에 앞서서 다른 지방관을 파견하는 식으로 협상을 먼저 하려고 했고, 농민군에 의해 점령된 지역에서의 주민들의 자치를 인정해주는 등의 유화책을 벌이기도 했다. 당장 비슷한 시기인 산업 혁명기의 영국에서는 차티스트 운동이나 러다이트 운동같은 여러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학살극까지 벌이면서 잔혹하게 진압했고, 훨씬 이후인 1930년대에도 식민지인 영국령 인도 제국에서 총독부의 가혹한 통치에 저항하던 암리차르의 시민들을 무차별로 학살한 장군이 당시 국왕인 조지 5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전근대적인 인권침해는 있었지만 다른 나라들보다 딱히 비난의 대상이 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박정현-w1b 한국인의 대부분은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했기 때문에, 지금의 한국이 있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만약 일본이 아니라 러시아가 한반도를 식민지화(병합이 아니라 식민지)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현재의 한반도에는, 조선인은 거의 없고, 러시아인 등(백인계)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조선인은 스탈린들에 의해 시베리아 등으로 강제 이송되었을 것이다. 한국인은, 시베리아에 강제 이송되고 있는 편이 좋았다고 말할까?
@@tarokin-t7d스탈린이 서명한 문서에도 적시되었듯이 극동 지역에서 있을 지도 모르는 일본 첩자의 활동을 미연에 방지하는데 있었다. 외모에서 고려인과 일본인이 서로 유사하기 때문에 일본 첩자를 가려내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극동주의 전 고려인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는 논리이다. 두 번째는 극동주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들의 규모가 생각보다 컸고 특히 한반도와 경계를 이루었던 포시에트 군의 경우는 고려인들이 절대 다수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전에 고려인들의 자치구 요구가 비등하였고 향후에도 영토적 자치요구가 있을 것으로 본 중앙 당국에서는 미래에 있을지 모르는 이러한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필요성이 있었다. 1934년에 이미 극동주 지역에 유태인 자치주가 설립된 점이 참고될 만하다. 결국 1938년에 포시에트 군 공산당 지구당 제1서기였던 김 아파나시가 극동주를 소련에서 분리하기 위한 무장봉기를 획책한 혐의로 총살되었다. 세 번째는 소련에서 실시된 농업집단화 정책으로 자체 인구가 급감하게 된 카자흐 공화국 등 중앙아시아 지역에 인구를 공급하고 아울러 농업생산력 증대를 위한 노동수요가 있었고 이를 충족하기 위하여 인위적인 인구유입책이 필요하였다. 사실 극동 지역에서 카자흐 공화국으로 초청된 농업전문가들이 이미 1928년에 이주하여 활동하면서 벼농사를 성공시키고 있었다. 농업기술을 가진 극동 거주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 지역의 농업생산력 향상을 위해 적합한 민족으로 판단되었던 것이다.
나왔다 이 자식아 ㅋㅋㅋㅋㅋㅋㅋㅋ 말도 안되는 논리로 깝치더니 꼴 좋노
평화 문학 경제 세가지 부문 상은 국제적으로 페이크 노벨 프라이즈로 취급 받습니다. 그냥 전국노래자랑에서 아차상 같은 쩌리 개념입니다. 물리 화학 의학 상이 리얼 노벨 프라이즈 입니다. 평화 문학 경제는 저기 미개한 아프리카 원주민 애들도 받는 개쩌리 페이크 노벨 입니다.
님 착각 하지마세요… 님이랑 같은 생각을 한국인들이 많은게 아니라 사회에서 혼자 사회부적응자 같은 생각만 하다가 이런 채널 만들어지니 이때다 싶어서 친일하는거임. 이해가 안가네
친일파 한국인 말은 안들음ㅋㅋㅋ 아버지 유언대로 일본 가서 고등학교 다니지 그랬어ㅠ
最近Tokyo memories さんの動画を拝見し、登録させていただきましたが。更新が止まっているようですね。 心配です。無事日本に留学されたのでしょうか。
못살때야 그럴수있었다(옹호하는건아님)치고 지금은 반성하고 정정당당히 라이센스 지불해야지 …..이러니 짱깨 욕할게아님..
더 잘살았을지 누가알어? 그리고 지금의 남북분단은?
우리가 얼마전까지 쓴 지번도 일제가 정리함. 😊
여기 매국노들 천지네
그렇다 해도 일제강점기때 수탈한 자원과 강제노동의 대가로 우리가 가져가도 되지 않을까요
日本は多額の税金を使っていて、完全な赤字だけどね! 本来、他の地方で使うべき税金を無駄にしてしまった! 韓国を併合したのは、日本の最大の黒歴史だね。 税金を無駄にした!
일제강점기 문제 경제문제 :무역적자 중일본에 대한 비중이 75%였습니다. 자본주의 일본의 상품시장으로 변한 국내경제는 가득이나 열악한 산업기반 속에서 파탄지경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쌀 생산량이 늘었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늘어난 쌀은 조선인들이 아닌 일본에 팔아야 했습니다. 낮은 가격으로 일본에 쌀을 수출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인들의 식량, 입을 옷은 다시 일본에서 비싼 가격으로 수입해야 했습니다. 조선은 일본에게 잉여가치를 증대하고 풍부한 농산물을 싼 가격에 제공해줄 노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일본에 대한 조선의 무역의존도는 82.6%였습니다.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려해도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주권을 일본에게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우리나라의 주권 중 가장 먼저 빼앗은 주권이 외교주권입니다. 전 세계로부터 우리나라를 고립하는 것을 통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교류할 자유, 그리고 이를 통해 스스로 경제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박탈했습니다. 일제에 의해 한반도 주민들이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워졌다고 하셨는데, 1920년 이후로 지주(자소작농)의 수는 급감한 반면 소작농 수는 급증했습니다. 토지나 자본과 같은 생산수단은 일본인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이는 곧 민족별생산수단의 불평등이 확대되고 지속되는 '식민지적 경제구조'였습니다. 또한 길거리에 버려진 기아 발견수는 1910년에 5명, 1939년에 303명, 1943년에 235명이었습니다. 자살자도 증가했습니다. 1910년 474, 1937년 2,816명, 1943년 2,027명이었습니다. 자살의 요인은 형고 22%, 생활곤란 16.2%, 정신착란 15.7%, 가정불화 11.8%, 기타는 13.1%였습니다. 일제로 인해 먹고사는 문제가 나아졌다면 기아와 병고, 생활곤란으로 인한 자살이 증가하면 안되는거 아닌가요?교육 문제 학교 수가증가한 자료를 근거로 사용하셨네요. 그 교육기관에서 교육 받을 수 있던 한국인이 얼마나 됐는지 따져봐야합니다. 1930년 전문학교 이상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인 학생은 인구 10만명당 고작 9명이었습니다. 43년에는 18명 정도였습니다. 한국인의 입학을 제한하는 정책이 시행됐고, 학력이 아닌 경찰의 신분조사가 수험자격이 됐습니다. 또한 당시 국민학교를 다닌 아동 비율은 약 30%정도였습니다. 이 수치는 일본 아동이 포함되어있고, 일본 아동들의 국민학교 진학률이 99.9%였던걸 감안하면 우리나라 아동 대부분이 국민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등교육은 그 수치가 더욱 낮습니다. 전체 국민의 0.3%만 중등교육을 받았다는 자료도 있습니다.실업학교와 사범학교의 경우에는 입학자격제한이 덜하여 많은 한국인들이 이런 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국인 학생수가 일본인 학생수의 2배도 되지 않았고, 또한 선발 시험에 일본어가 필수 응시 과목이었습니다근대 교육기관에 입학하더라도 출업한 한국인들은 매우 적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에서는 '경성제대 예과의 시험은 학력보다 사상 입학 고사이다'라고 비판하며 만세 운동 관련 학생 대부분이 불합격된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내 고등교육기관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의료 문제 당대의우리나라의 현실을 외국인들이본 시각을 근거로 설명하셨네요. 가지고 오신 서양인들의 책을 다 찾아봤습니다. 공통적으로 서양에서 조선에 방문한 이들이 남긴 기록에서 한국의 위생이 더럽다고 표현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상류층은 깨끗하고 탄정하다고 묘사됩니다. 이건 서양이라고 달랐을까요? 조선인이 서양에 갔었도 똑같이 더럽고 냄새난다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당시에 조선이나 서양이나 위생은 상류층, 귀족층에 급속하게 수용된 것이지 빈민이나 노동자 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먼 이야기였으니까요. 가져오신 서양인들의 여행기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 언론인 메리 크라웃이 런던시민들이 더러움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찰스 디킨스도 미국을 여행하고 "미국인들은 야만인도 천성적으로 지니고 있는 자연스러운 예의가 없고 다른 사람을 역겹게 해서는 안된다는 기본적인 가르침조차 없는 족속이다"라고 썼습니다. 반대로 '러시아국립해군성문서'에서는 제물포의 위생 조건이 다른나라에 비해 양호하다는 평가를 내린 기록도 있고 'The Boston Medical and Surgical Journal'에서는 인천이라는 도시가 양호한 위생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 일제강점기 시기에도 병원과 의사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사립의원은 물론 진료비가 비싸지않은 도립의원에 마저 한국인 이용자수는 해를 거듭할 수록 적어졌습니다. 반면에 일본인의 경우는 매년 병원 이용자가 늘었고요. 이렇게 병원을 이용하는 한국인들이 계속 줄어들었던 이유는 한국인들이 아픈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병원비가 한국인에게는 너무 비싸고, 의사들이 대부분 일본인이어서 말이 통하지 않아 진료받기도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한 번 진료를 받고,약을 받는데 드는 비용이 쌀 18kg 가격과 비숫했습니다. 이는 조선인 노동자 한 달 월급과 비숫했고요,전염병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는데, 전염병은 일제강점기 시대에도 크게 창궐했습니다. 1920년에는 말라리아, 1930년부터 1940년 까지 장티푸스와 같은 급성전염병에 한해 2만명 정도가 감염됐습니다 1인당 영양 공급량도 1910년부터 1918년까지는 증가한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1945년 독립 직전까지는 계속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일제강점기 시기 중 8년이라는 기간에 발생한 일을 근거로 그 기간 전체를 옹호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해방 뒤에 급속한 증가를 보었습니다. 인권 문제 인간으로서 태어났기에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한 인식이요? 개인으로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됐다고요? 사회가 단순히 신분의 힘으로 돌아가지 않게됐다고요? 고문, 인체실험, 한국어와 문화 탄압, 강제동원, 성노예, 조선인만을 대상으로 한 태형, 일본경찰의 즉결 처분권. 일제강점기 시대에 우리 민족이 당해야 했던 부당한 것들입니다. 사법제도로 인해 우리나라 국민들이 공평하게 재판을 받을 수 있었나요. 강제수사가 빈번했고 예심에서 미결 상태로 피의자를 구류할 수 있는 기간이 3개월이나 되고, 2개월마다 연장이 가능했습니다. 이로인해 예심이 미결임에도 1년~2년 이상 장기 구금이 가능했습니다. 피의자 신문서가 재판에서 절대적 증거로 수용되었고, 이로인해 고문을 통해 그들 입맛에 맞춘 진술을 받아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시던 분들께서 고문때문에 고통받고 돌아가신걸 다들 잘 아시지않나요? 또한 즉결 처분권을 통해 재판소에 가지도 못하고 태형에 처하는 조선인들이 많았습니다. 일본이 한국이 발전하기위한 근대화를 준거다 라는 그 설 말이죠? 그럼 전후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보면 되잖습니까? 1945년에서 한국전쟁이 벌어진 50년까지 일본과 한국을 비교해보라구요 태평양 전쟁때 일본은 전투기와 항공모함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 기술력의 백분의 일이라도 한국이 갖고 있었습니까 그 말은 기술력 0 상태에서 배우면서 시작했다는겁니다. 일본의 유산같은게 아니라는거에요. 근대화설을 주장하시려면 밑거름이 될만한게 뭐가 있었는지를 말하셔야죠? 산업인프라도 없고 기술자도 없고 뭐가 근대화이죠?
일제강점기 문제 경제문제 :무역적자 중일본에 대한 비중이 75%였습니다. 자본주의 일본의 상품시장으로 변한 국내경제는 가득이나 열악한 산업기반 속에서 파탄지경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쌀 생산량이 늘었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늘어난 쌀은 조선인들이 아닌 일본에 팔아야 했습니다. 낮은 가격으로 일본에 쌀을 수출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인들의 식량, 입을 옷은 다시 일본에서 비싼 가격으로 수입해야 했습니다. 조선은 일본에게 잉여가치를 증대하고 풍부한 농산물을 싼 가격에 제공해줄 노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일본에 대한 조선의 무역의존도는 82.6%였습니다.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려해도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주권을 일본에게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우리나라의 주권 중 가장 먼저 빼앗은 주권이 외교주권입니다. 전 세계로부터 우리나라를 고립하는 것을 통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교류할 자유, 그리고 이를 통해 스스로 경제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박탈했습니다. 일제에 의해 한반도 주민들이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워졌다고 하셨는데, 1920년 이후로 지주(자소작농)의 수는 급감한 반면 소작농 수는 급증했습니다. 토지나 자본과 같은 생산수단은 일본인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이는 곧 민족별생산수단의 불평등이 확대되고 지속되는 '식민지적 경제구조'였습니다. 또한 길거리에 버려진 기아 발견수는 1910년에 5명, 1939년에 303명, 1943년에 235명이었습니다. 자살자도 증가했습니다. 1910년 474, 1937년 2,816명, 1943년 2,027명이었습니다. 자살의 요인은 형고 22%, 생활곤란 16.2%, 정신착란 15.7%, 가정불화 11.8%, 기타는 13.1%였습니다. 일제로 인해 먹고사는 문제가 나아졌다면 기아와 병고, 생활곤란으로 인한 자살이 증가하면 안되는거 아닌가요?교육 문제 학교 수가증가한 자료를 근거로 사용하셨네요. 그 교육기관에서 교육 받을 수 있던 한국인이 얼마나 됐는지 따져봐야합니다. 1930년 전문학교 이상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인 학생은 인구 10만명당 고작 9명이었습니다. 43년에는 18명 정도였습니다. 한국인의 입학을 제한하는 정책이 시행됐고, 학력이 아닌 경찰의 신분조사가 수험자격이 됐습니다. 또한 당시 국민학교를 다닌 아동 비율은 약 30%정도였습니다. 이 수치는 일본 아동이 포함되어있고, 일본 아동들의 국민학교 진학률이 99.9%였던걸 감안하면 우리나라 아동 대부분이 국민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등교육은 그 수치가 더욱 낮습니다. 전체 국민의 0.3%만 중등교육을 받았다는 자료도 있습니다.실업학교와 사범학교의 경우에는 입학자격제한이 덜하여 많은 한국인들이 이런 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국인 학생수가 일본인 학생수의 2배도 되지 않았고, 또한 선발 시험에 일본어가 필수 응시 과목이었습니다근대 교육기관에 입학하더라도 출업한 한국인들은 매우 적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에서는 '경성제대 예과의 시험은 학력보다 사상 입학 고사이다'라고 비판하며 만세 운동 관련 학생 대부분이 불합격된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내 고등교육기관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의료 문제 당대의우리나라의 현실을 외국인들이본 시각을 근거로 설명하셨네요. 가지고 오신 서양인들의 책을 다 찾아봤습니다. 공통적으로 서양에서 조선에 방문한 이들이 남긴 기록에서 한국의 위생이 더럽다고 표현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상류층은 깨끗하고 탄정하다고 묘사됩니다. 이건 서양이라고 달랐을까요? 조선인이 서양에 갔었도 똑같이 더럽고 냄새난다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당시에 조선이나 서양이나 위생은 상류층, 귀족층에 급속하게 수용된 것이지 빈민이나 노동자 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먼 이야기였으니까요. 가져오신 서양인들의 여행기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 언론인 메리 크라웃이 런던시민들이 더러움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찰스 디킨스도 미국을 여행하고 "미국인들은 야만인도 천성적으로 지니고 있는 자연스러운 예의가 없고 다른 사람을 역겹게 해서는 안된다는 기본적인 가르침조차 없는 족속이다"라고 썼습니다. 반대로 '러시아국립해군성문서'에서는 제물포의 위생 조건이 다른나라에 비해 양호하다는 평가를 내린 기록도 있고 'The Boston Medical and Surgical Journal'에서는 인천이라는 도시가 양호한 위생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 일제강점기 시기에도 병원과 의사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사립의원은 물론 진료비가 비싸지않은 도립의원에 마저 한국인 이용자수는 해를 거듭할 수록 적어졌습니다. 반면에 일본인의 경우는 매년 병원 이용자가 늘었고요. 이렇게 병원을 이용하는 한국인들이 계속 줄어들었던 이유는 한국인들이 아픈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병원비가 한국인에게는 너무 비싸고, 의사들이 대부분 일본인이어서 말이 통하지 않아 진료받기도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한 번 진료를 받고,약을 받는데 드는 비용이 쌀 18kg 가격과 비숫했습니다. 이는 조선인 노동자 한 달 월급과 비숫했고요,전염병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는데, 전염병은 일제강점기 시대에도 크게 창궐했습니다. 1920년에는 말라리아, 1930년부터 1940년 까지 장티푸스와 같은 급성전염병에 한해 2만명 정도가 감염됐습니다 1인당 영양 공급량도 1910년부터 1918년까지는 증가한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1945년 독립 직전까지는 계속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일제강점기 시기 중 8년이라는 기간에 발생한 일을 근거로 그 기간 전체를 옹호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해방 뒤에 급속한 증가를 보었습니다. 인권 문제 인간으로서 태어났기에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한 인식이요? 개인으로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됐다고요? 사회가 단순히 신분의 힘으로 돌아가지 않게됐다고요? 고문, 인체실험, 한국어와 문화 탄압, 강제동원, 성노예, 조선인만을 대상으로 한 태형, 일본경찰의 즉결 처분권. 일제강점기 시대에 우리 민족이 당해야 했던 부당한 것들입니다. 사법제도로 인해 우리나라 국민들이 공평하게 재판을 받을 수 있었나요. 강제수사가 빈번했고 예심에서 미결 상태로 피의자를 구류할 수 있는 기간이 3개월이나 되고, 2개월마다 연장이 가능했습니다. 이로인해 예심이 미결임에도 1년~2년 이상 장기 구금이 가능했습니다. 피의자 신문서가 재판에서 절대적 증거로 수용되었고, 이로인해 고문을 통해 그들 입맛에 맞춘 진술을 받아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시던 분들께서 고문때문에 고통받고 돌아가신걸 다들 잘 아시지않나요? 또한 즉결 처분권을 통해 재판소에 가지도 못하고 태형에 처하는 조선인들이 많았습니다. 일본이 한국이 발전하기위한 근대화를 준거다 라는 그 설 말이죠? 그럼 전후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보면 되잖습니까? 1945년에서 한국전쟁이 벌어진 50년까지 일본과 한국을 비교해보라구요 태평양 전쟁때 일본은 전투기와 항공모함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 기술력의 백분의 일이라도 한국이 갖고 있었습니까 그 말은 기술력 0 상태에서 배우면서 시작했다는겁니다. 일본의 유산같은게 아니라는거에요. 근대화설을 주장하시려면 밑거름이 될만한게 뭐가 있었는지를 말하셔야죠? 산업인프라도 없고 기술자도 없고 뭐가 근대화이죠?
근데 왜 3.1 운동이 일어났을까요?
어느나라던 반대파가 있기 마련이조. 근데. 바로 반대하지않고. 왜 10년이 지나서야? 운동이 일어났을까요? 전국민이 봉기도 든것도 아닌데.
저기요 독도는 돌섬이여서 대나무가 안 자라고 애초에 돌섬이여서 독도이고, 우산도가 울릉도고 , 울릉도가 대나무 자라는데 그리고 울릉도에서 독도 보이는데 이 뭔 쌉소리지
울릉도옆 붙어있는 죽도말하는겁니다 죽도~ 대나무가 울창한!
2km 떨어진 섬이 흐리면 안 보인다고?
울릉도 동남쪽 백길따라 200리 외로운 섬하나 새들의고향 일본놈이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땅
아깝겠네, 이렇게 계속 갔었으면 일본 되었을텐데
왤케 한국인들은 잘못했다 이 한마디를 못해서 정신승리 핑계를 댈까
이런 역사 왜곡 영상 안나왔으면 좋겠다 저 시절이 축복이였다고? 우리 민족 정기를 말살하려고 발악을 하던 시대였는데 우리말도 통제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을 개 돼지 취급하던 시절이였는데 뭐??? 전라도 군산의 쌀들은 다 어디로 갔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은 알기나하고?? 역사 왜곡으로 떡칠한 일본 교과서로 역사를 배웠나? 제발 제대로된 역사를 배워라
군산은 당시 한국쌀의 수출항구로서. 광복전까지는 일본인들 인구가. 군산인구에 4/1까지 육박 했었죠. 한국 수자원공사 자료에는 현재 전국의 저수지의 40%가. 식민지때 건설되었으며. 일본산업화되는 시기고. 이게 한국이. 수출은 맡은겁니다. 현재쌀의 종자도 95%가. 일본종자이고. 당시 현대정주영회장은 정미소를 운영하였고. 삼성도 일본에서 소면기계를 들여와 소면제조로 시작하다. 쌀 생산 수출로 바꾸게 됩니다. 수탈은 1942년 태평양전쟁당시이 동원령으로 인해 1년가 군수물자제공으로 생긴 허구거짓입니다. 해방후에도. 미국과 일본의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인해 일본은 배상의 의미로. 조선의 일본기업과 자산 80%에 달하는 막대한. 귀속자산을 포기합니다. 1963년. 한일협정으로 일본은국제법 배상이 아닌 한국의 한일관계 개선만으로 당시 일본의 1년 GDP 50%를 지금가치 750조를 지원및 차관하였고 위안부와 태평양 징용자 문제를기재하였고. 2000년대 고이즈미 총리는 위안부 문제를 또 들고 나온 한국에 개인당 5000만원씩 개인편지까지 쓰서. 보내. 해결했지만. 박근혜정부 또 민주당이 위안부 문제를 꺼내. 200억의 국가적 합으로 마무리를 지었으나. 문재인정부에서. 200억을 반환도 안하고. 일방적 파기 했습니다. 이런 지식은 있어야 역사를 제대로 배웠다고 하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