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광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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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나이 1908세인가ㅣ삼국유사 고조선 바로 알기
문헌 자료를 이해하는 역사 연구 방법
- 단군 수壽 1908세歲는 무슨 뜻인가?
- 고대의 햇수 표기법
- 수壽의 다른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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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지명과 인명에 대한 신채호 정인보 선생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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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지명인 낙랑과 평양의 어원에 대한 신채호 정인보 선생의 연구를 소개하는 영상입니다. - 펴라와 낙랑 그리고 평양 - 고구려의 평양은 여러 곳이었다 - 이두문을 연구한 신채호 선생
고조선 영토는 어느 정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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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백과에서 발견한 고조선 지도를 보고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에 만들었습니다 - 기원전 7세기 요동반도에 머문 고조선 지도 - 기원전 3세기 연의 침략과 서쪽 2천리 - 위만조선이 고조선인가?
언제부터 압록강과 두만강이 우리 국경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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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강역이 양강(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으로 내려앉게 된 과정을 정리했습니다 - 조선 초기 연산관과 동팔참 - 조선 중기 봉황성 - 조선 후기 봉금지역 - 간도협정
다시 찾는 우리 국경사 통일신라부터 고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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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제작한 영상의 총정리면서 우리는 어떻게 국경을 찾고 잃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영상입니다. - 통일신라 북계 니하에서 정천군까지 - 고려 북계 철령에서 공험진까지
한나라에 패배한 적이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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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가 한반도 남부에 있다고 정의했던 진국은 어디에 있었고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알아보는 영상입니다 - 단군조선과 진국 - 북부여와 진국 - 북부여와 한나라의 전쟁 - 한사군이 패퇴하는 과정 - 일본 기록에 나오는 신국의 정체는
통일신라와 발해의 경계 정천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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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와 발해의 경계에 있는 정천군을 찾는 영상입니다 과연 주류학계의 주장처럼 통일신라는 대동강에서 원산만까지를 경계로 '삼국통일'을 했을까요?
자방고전의 비밀을 찾았다ㅣ가림토와 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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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를 바탕으로 훈민정음이 본따서 만든 옛글자의 비밀을 찾는 영상입니다 주요 내용 - 해례본과 다른 자방고전의 뜻은 - 발성기관과 초성은 같은 모양인가 - 천지인을 상형했다는 중성에 담긴 우주이치 - 자방고전의 옛글자는 무엇인가 - 각필문자와의 연관성 - 붓글씨로 쓰기 힘든 한글 - 음양오행의 기원
훈민정음 해례 해석ㅣ세종이 글자를 만든 이유ㅣ한글에 담긴 우주의 이치 #hang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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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과 가림토 1부입니다 주요 내용 - 초성 자음 초출자는 발성기관을 본따 만들었다 - 초성 자음 재출자에 꼭 들어가는 사람 - 중성 모음 초출자는 천지인을 형상했다 - 중성 모음 재출자에 육기변화가 들어간 이유
고조선사 최대 미스테리ㅣ 단기 1048년에 벌어진 일ㅣ제왕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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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사서의 단군조선 천도기록을 통해 보는 고조선 역사 주요 내용 - 단기 1048년 은 무정 8년 을미에 벌어진 사건 - 송화강 아사달에서 백악산 아사달로 천도 - 부여의 시조 고등 - 백악산 아사달에서 장당경으로 천도한 시점 - 조선 태조 이성계는 백악과 녹산을 알고 있었다
고조선은 도읍을 두번 옮겼다ㅣ천도 기록으로 보는 고조선의 진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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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 사서에 기록된 단군조선의 천도 기록을 통해 보는 고조선 역사 주요 내용 - 삼국유사 제왕운기 동국통감 세종실록지리지에 인용된 고유사서 - 고유사서마다 기록이 다른 이유는? - 제왕운기에서 말하는 1048년 은 무정 8년의 비밀 - 동국통감에서 말하는 첫번째 천도
알면 열받는 일본의 한국사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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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일본 오사카 역사박물관의 역사연표에 기재된 한국사 왜곡 실태를 밝혀서 일본의 역사 왜곡은 현재도 진행중인 것을 밝히는 영상입니다. 주요 내용 - 단군조선 부정 -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사 왜곡 - 임나일본부설은 사라지지 않았다
광개토대왕비문의 신묘년 기사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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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비문의 신묘년 기사 논란을 살펴보는 영상입니다 주요 내용 - 고구려인가 왜인가 주어의 문제 - 신묘년 기사의 배치 - 여러 해석 소개 어떤 해석이 맞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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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광개토대왕비문을 재해석하여 진실을 찾는 영상입니다 주요 내용 - 복기대 교수님의 논문 해석과 보완 - 추모인가 추모왕인가 - 광개토대왕이 정벌한 지역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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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sandrockwon
    @sandrockwon 3 часа назад

    청와대 복원사업 에 찬성 합니다. *~*

  • @DalcommeHeony
    @DalcommeHeony 8 часов назад

    이병도는 만고의 민족 빈역자

  • @lodinechris
    @lodinechris 13 часов назад

    <신지비사(神誌秘詞)> 3京제도 1. <高麗史> 열전 권35 '김위제 열전'에 <신지비사(神誌秘詞)> 원문 일부가 전한다 高麗 15대 숙종(왕옹王顒, 1095~1105) 때 김위제가 "단군조선 때 <신지비사(神誌秘詞)>에서 저울대秤幹를 중심으로 저울추秤錘, 저울판極器이 균형을 맞춰야 무게를 잴 수 있는 것에 빗대어, 3개의 수도 중 대단군이 머무는 진한의 수도 부소량扶疎을 중심으로 오덕지(五德地 번한수도), 백아강(百牙岡 마한수도)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 했습니다. 이처럼 고리高麗의 현 수도 개경-서경(당산-북경)과 동경에서 (동경을 폐하고) 남경(현 난징)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러면 주변 70개 나라가 항복하여 조공을 바칠 것이며, 땅의 덕에 힘입어 신기神氣를 수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는 단군조선이 70개 나라를 천자국이었으며, 고리高麗 역시 단군조선-고구리(高句麗·高麗)를 이어받은 천자국으로서 수도를 남경으로 옮긴다면 더욱 번성하여 단군조선 때처럼 70개 나라가 조공할 것이라는 상소이다. 2. 고리高麗의 3京 단군조선 3京제를 이어받아 고구리도 평양성, 국내성(나라안성), 한성의 3경京을 두었다. 고리는 처음에 중경-서경(송악-북경)과 동경을 두었으나, 김위제의 상소를 받아들여 동경을 폐하고 현 난징(목멱양)에 남경을 두었다. 3. BC2049년 천제 제문 '서효사誓效詞' <단군세기>에 의하면 6대 달문단군 때(BC2083~2047)이던 BC2049년(달문35), 제후국 왕들을 상춘에 모아 구월산에서 3신神에게 제사를 지내고 신지神誌 발리發理로 하여금 '서효사誓效詞'를 짓게 했다. ※단군조선때 역사와 왕명을 기록하는 관리를 '신지神誌'라 하였는데, 신지神誌 발리發理가 명을 받들어 천지에 올린 제문 '서효사誓效詞'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대단군인 달문단군이 천제를 지낼 때 참석한 나라들(제후국들)의 수와 규모가 나와 있다. 대국이 마한·변한으로 둘, 소국이 스물, 읍락이 3624곳이었다고 적혀있다. 이렇게 많은 거수국(제후국)들을 거느렸다. ※읍락 하나는 지금의 충청도 넓이 정도로 보므로, 엄청나게 넓은 영토를 다스리며 대단군 휘하 연방국 제도로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4. <신지비사(神誌秘詞)> 내용 중 3京제도 원문이 전하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는데, 우주창조의 신비, 여러 역사영웅들, 앞날에 대한 예언 등의 내용을 포함한다. 그 내용 안에 "저울의 머리와 꼬리를 정밀하게 하여 수평을 잘 잡을 수만 있다면 나라를 융성하게 하고 태평성대를 보장받을 것이고, 만약 비유로 들은 세 곳의 땅을 버린다면, 왕업을 쇠퇴할 것이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저울대秤幹를 중심으로 저울추秤錘, 저울판極器이 균형을 맞춰야 무게를 잴 수 있는 것에 빗대어, 3개의 수도 중 진한의 수도 소밀량(蘇密浪 소도 아사달)을 중심으로 안덕향(安德鄕 번한수도), 백아강(百牙岡 마한수도)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하였다. ※<단군세기>에 전해지는 단군조선 3京과 <高麗史>에 나오는 3京의 이름이 약간 다르다. 조소앙 선생이 대한민국의 건국정신(3균제)을 <신지비사(神誌秘詞)>의 머리, 몸통, 꼬리가 균형을 맞추는 3京제도에서 인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p.s 배달국(BC 3898~2333) 때 환웅 천황은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문자를 만들게 했다. 배달국 당시 왕명을 출납하고, 천황을 보좌하던 직책을 신지神誌라 하였고, 이 직책명은 단군조선 때도 이어졌다. 말로만 전해지던 것을 글을 적어 전할 길을 찾던 신지神誌 혁덕赫德은 어느날 어지러이 찍혀져 있는 사슴 발자국을 보고 지나간 방향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녹도문(鹿圖文: 神誌文字)을 만들었다. 신지 혁덕(赫德)은 환웅 천황의 명을 받아 녹도문(鹿圖文)으로 <천부경(天符經)>을 적었다. 훗날 최치원이 신지의 전고비를 보고 다시 이를 기록함으로써 온누리에 전했다.

  • @dutnehreh
    @dutnehreh 2 дня назад

    연개소문 동생 연정토 아들 연남생 연남건 그러니 연은 성이다 너무 쉬운 것을 아직도 논의 중이라고 하면 어쩐데요

  • @kdsbsb
    @kdsbsb 4 дня назад

    역시 상생티비에서 역사광복 관련 많은 동영상들을 제작하네요. 굿!

  • @awesome-mz2lj
    @awesome-mz2lj 5 дней назад

    기자나 위만은 개똥 역사임.... 아예 다 삭제 해야 함

  • @freedom-lz7cg
    @freedom-lz7cg 6 дней назад

    웃기네! 복기대는 우리 영역을 한반도로 국한한 식민사학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

  • @산과들-d2x
    @산과들-d2x 6 дней назад

    친일매국노 척살하자.그악질후손도 정치계에서 추방하자.

  • @freedom-lz7cg
    @freedom-lz7cg 6 дней назад

    제발 우리 영역을 한반도에 가두지 마세요

  • @richardkimn
    @richardkimn 7 дней назад

    고려말 성리학자들과 태정태세문단세... 반란자들이 만든 만족역사 말쌀 불쏘시개가 일제시대를 거쳐 화려하게 타올랐군. 그 찌끄러기들이 아직도 교수라고 자리잡고 있으니 그 DNA는 대단하다. 민족에 단죄를 위해 빨리 병원가서 정관 절제술 해라.

  • @sangmunoh4638
    @sangmunoh4638 7 дней назад

    장자는 그곳을 다스리고 작은 아들이 다른 곳에 뜻을 펼친다니 밀어주는 게 맞죠.

  • @WodoriMaster
    @WodoriMaster 7 дней назад

    고려사 강역에 대한 연구를 요 합니다. 책보고님과 콜라보 부탁합니다.

  • @부익-j5g
    @부익-j5g 10 дней назад

    대통령은 청와대에 위치하는게 맞아요.

  • @전용하-p1x
    @전용하-p1x 10 дней назад

    이세민의 눈은 연개소문이 쏜건가 양만춘이 쏜건가 무슨 개같은 주장이야

  • @용훈권-w8n
    @용훈권-w8n 11 дней назад

    청와대를 다시 복원 하는 운동을 진행 합시다.

  • @용훈권-w8n
    @용훈권-w8n 11 дней назад

    당나라나 고구려(고려)나 또한 백제 신라 모두 옛조선의 신민이었기에~ 모든 나라에 왕과지배층이 갈라져버린 옛조선에 주인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것이니라.모든 역사서를 들춰보면 같은 신국에 신민이었다는 사실을 알겁니다.

  • @한길한길-x3c
    @한길한길-x3c 12 дней назад

    신지는 관직명이고 혁덕은 이를이 아닐까요?

  • @starctk5112
    @starctk5112 12 дней назад

    악플이 아니라 팩트읽기 아님?ㅋㅋㅋㅋ

  • @U-P-D-A-T-E
    @U-P-D-A-T-E 12 дней назад

    3:50 이거지

  • @만섭이-m1b
    @만섭이-m1b 15 дней назад

    먼저식민사관에물든서울대교수잘봐라

    • @민호고-j9h
      @민호고-j9h 7 дней назад

      걍 매국노새리들임 처벌해야 하는데

  • @허라우렌
    @허라우렌 16 дней назад

    제후국보다는 이성계의 쿠데타로 인한 한반도 역사에 국한시켜 정변의 정당성을 주창하기 위함이 아닐까 합니다.

  • @김송주-n2q
    @김송주-n2q 28 дней назад

    어디 아프세요?

  • @Byron_Lenon
    @Byron_Lenon Месяц назад

    눈물이 펑펑 납니다 ..😭😭😭

  • @ScottLee-n3k
    @ScottLee-n3k Месяц назад

    결론은 뭔가요? 4천년전 있었던 가림토도 이것을 참조했다기에 뭔가 획기적인 것이 발표된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네요

  • @문기강-v2i
    @문기강-v2i Месяц назад

    가라=가야=가락. 가라를 음차한 한자로 한자의 문자적 뜻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라구니는 가야국이라는 뜻입니다.가야와 신라는 부여 출신이 아니고 흉노 휴저왕의 왕자 김일제와 그의 동생 김윤의 후손이 세운 나라입니다. 두 나라 모두 김일제와 김윤의 성을 따라 그 욍족의 성이 김씨입니다.

  • @type1972
    @type1972 Месяц назад

    맞아요ㅠㅠ 공룡 🦕 오적과 핀제국 저격수 1970명만 없었어도 우리가 이겼을건데ㅠㅠ 공룡척탄기갑사단 만세!

  • @JeongGwangHee310
    @JeongGwangHee310 Месяц назад

    天圓地方人角。

  • @이-k7h
    @이-k7h Месяц назад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k7h
    @이-k7h Месяц назад

    단재신채호선생님 조선상고사 가없었더라면

  • @이-k7h
    @이-k7h Месяц назад

    분리해 역사학자냐 나쁜놈들 단재신채호선생님 존경합니다

  • @이-k7h
    @이-k7h Месяц назад

    식민사학자들 강단사학자들 역적들

  • @이진철-c6l
    @이진철-c6l Месяц назад

    5만명 주둔과 식량 조달 등 쌍성총관부 공격전에 군세를 정비 할 수 있는 넓은 평지가 필요 함. 상식과 인간 생리학적인에서 거주 조건을 연구 하면 밝혀질 일이다.

  • @투훅-c9h
    @투훅-c9h 2 месяца назад

    삼국유사에 환국이있엇다 라고 적혀있다

  • @이민복-g2f
    @이민복-g2f 2 месяца назад

    단군이 동쪽에서 온 것으로 된 기록이 환단고기인데 배달단군이요. 호천 단군은 웅녀의 후제자로 마고성주였고 산스크리스트어를 사용했답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따밀지역에서 데려와 드라비다어를 사용했고요. 가림토는 서쪽 글자에서 착안해 만들었을거요. 세종은 가림토뿐아니라 다양한 글자들을 보고 가장 간단하고 쉽게 알아볼수있는 글자를 찾았을거요. 기본은 가림토에 두고...

  • @TV-yv1vi
    @TV-yv1vi 2 месяца назад

    감사드립니다

  • @지우개-i3v
    @지우개-i3v 2 месяца назад

    귀한 강의 감사드립니다 👍

  • @김동석-w3y3e
    @김동석-w3y3e 2 месяца назад

    <신지비사 혹은 신지필사에 대하여 > 우라나라 고대사 자료들이 매우 드물고 ,이름만 전하는 것들도 많은대 어짜다 이름만 저하던 사료들이 필사본으로 등장하게되면 이런 사료들은 죄다 부정당하기 일쑤다. 즉, 1. 조선조의 분서행위와 2. 일제의 수거 후 분서 및 조작.왜곡 행위 3. 해방후 식민사학의 전횡만큼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일제가 침략 초기에 이땅에서 고서 20~30여만권을 수거해 갔다고 하는데 이를 은밀히 일본 천황을 신으로 섬기는 종교집단인 덴리교가 있는 일본 나라현 덴리시에 있는 [ 안견의 몽유도원도(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그림)]를 소장한 사립대학인 덴리 대학(일본어: 天理大学)의 기밀도서관에 모두 수장하고 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같은 의혹이 불거진 것은 당시 일본 에서 활동하던 역사학자인 고 이진희 교수께서 논문을 작성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코자 덴리대학 도서관의 고서들을 열람하던 도중 1972년 ‘광개토왕릉 비문의 수수께끼’라는 논문에서 일본의 광개토대왕릉 비문 변조설을 제기해 한·일 학계에 충격을 준 논문에 활용된 자료가 바로 텐리대 도서관에 소장된 한반도에서 수거해온 고서 중에서 한 장을 몰래 뜯어나와 그것을 토대로 작성하였음을 토로한 바가 있었기기에 그러합니다. 그때 이 교수님은 덴리교 도서관에 수장되어 있는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에서 탈취해간 20~30만권의도서를 모두 반환받아야 한다고 심경을 밝히신 바가 있었고 고조선과 관련된 사료도 적지 않이 있는 것을 봤다고 하였습니다.. 덴리대는 이때 일로 인하여 도서관내 기밀 도서관을 만들어 한반도에서 강탈해온 고서들을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가 다시 천황가와 관련된 도서들은 천황가 도서관내로 옮기고 나머지 고서들은 모처의 수장고로 옮겨 지금까지 계속해서 은밀히 분류작업 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지비사가 <환단고기 : 태백일사의 삼성기(삼성오제본기),단군세기 등>에서 명료히 [고조선 6세 달문 단군 재위시 신지 발리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강단사학자들은 이를 출간한 이유립 선생님을 유사역사학자라고 매도하면서 또한 환단고기를 유사역사학 서적이라며 한민족의 상고사를 날조하여 기술한 위서(僞書)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지금 상황은 서서히 강단사학자라고 하는 자들의 주장이 퇴색하고 있다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한편 단군세기와 관련한 또 다른 근거로는 -------------------------------------------------------------------------------------<출전 : 승정원일기> 《고려사》에 단군편이라고 하는 단군조선 관련 기록이 있었으나 현재 판본에는 전해지지 않지만. 다만 승정원일기에 그 내용이 존재했었다는 기록만 적혀있다 ------------------------------------------------------------------------------------- 에서와 같이 분명히 실재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지비사(神誌祕詞)와 관련해서 먼저 (신지(神誌), 또는 신지(臣智))에 대한 해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강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내용과 평소에 저 나름대로 생각해 오던 것을 정리해 본 것입니다. 당시 한문이 정착하기 전까지는 이두식 표기방식은 한자의 뜻과 소리를 빌려 발음과 의미를 기록하던 방식이라는것은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내용입니다만 이러한 이두식 표기방식이 여러 북방국가들이나 부족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보편화된 표기방식이었다는 것을 제대로 파헤친 학자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단군조선,부여,고구려,백제, 신라,가야,일본을 비롯해서 거란, 여진, ,몽골 등 모두 이러한 나름대로의 발음과 의미를 한자를 빌려 기록하는 방식이 존재하고 있었다는점입니다. 이 와중에 신라의 설총은 이두식으로 표기하고자 할 때 일정한 규칙과 용법을 따라 체계적으로 사용할 것을 정하는 규칙이랄까 규정이랄까 하여간 이러한 법칙성을 만들어 내어 사용토록 하였다는 점입니다. 즉 이를 두고 오늘날에는 이두표기방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집대성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신라 묘비나 비석이나 문헌등에 자주 보이는 관직명.인명 등에 사용된 것들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들 수가 있읍니다. ----------------------------------------------------------------------------------------- 이사금 , 이사부 ..................: 왕급, 왕족 급 지위에는 사이 시옷에 "ㅅ"을 사용 이질금 ...................................: 왕급,왕족급에 준하는 지위에는 "ㅈ"을 사용 이벌찬 이찬 ..........................: 귀족급에는 "ㅎ,ㅎㅎ,ㄱ+ㅋ,ㄱ+ㅎ,ㄱ,ㅋ " 대신 "ㅊ"을 사용 거칠부...................................." "ㅊ" 사용으로 귀족급인 것을 알 수 있음 .................................................한자로 표기하면 <대부(大夫)>의 의미임 --------------------------------------------------------------------------------------------------------------------------------------] 따라서 신지(신지(神誌), 또는 신지(臣智))에 대해서는 그 음가가 최초에는 <귀신 신(神) = ᄀᆞᆷ(ᄀᆞ미, 곰(熊), 검소할 검(儉), ᄉᆞㅣ금(金) = 새 신(新) >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ᄀᆞᆷ>을 표기하기 위하여 도입된 글자라고 보이며 이 <ᄀᆞᆷ>은 <단군왕검>의 <검> 같이 <지상을 통치하는 계급의 지배자급>에게 사용된 호칭이며 이어 사용한 <誌, 智> 는 막리지(莫離支)의 지(支)와 같이 우리 말에서 <크고 건장한 사내, 혹은 높은 지위나 벼슬에 있는 사내>를 가리키는 말로서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변형되어 <장사치, 벼슬아치, 이치,저치,그치 >등에[서 보듯 상대를 하대할 때 사용하지만 당시에는 상당한 높임말로서 대륙에서는 이를 <사내 부(夫)>로 사용한 것과 같습니다. . 이를 종합하면 신지(신지(神誌), 또는 신지(臣智))는 신지는 가장 유력한 군장(왕급은 아닌 왕 아래에서 일정 지역을 지배하는 수준)에게 사용된 칭호로서 이를 [ 임금 : 임금 : ᄀᆞᆷᄀᆞᆷ>ᄋᆞᆷᄀᆞᆷ>(왕검,임검)>임금 ] 의 아래인 <ᄀᆞᆷ치>라고 표기한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신지비사(神誌祕詞)>는 <신지>계급의 벼슬(또는그런 벼슬에 붙인 호칭)에 있는 자가 기록한 비사(祕詞 )인 바 여기서 왜 비(祕)라고 하는 글자를 사용했는가 추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흔한 의미로는 (숨길 비)를 지칭할 수도 있겠으나 이에는 또 다른 의미가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단 뒤의 사(詞)와 연관지어야 하기에 사(詞) 의 의미로 사용되는 [ 1.말, 언어(言語) , 2.글, 문장(文章) , 3.시문(詩文)] 중에서 <2.글, 문장(文章)>에 해당하는 의미가 가장 적합할 것 같은 바 그 까닭은 그 의미에 대해서 가장 객관적이고 공개적인 글이나 문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기 때문이며, 이같은 <객관적,공개적 글이나 문장>과 어울리는 어휘의 조합으로서는 비(祕)가 <무엇을 감추려고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보다는 <심원하다(深遠--: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다), 심오하다, 깊어 알기가 어렵다>는 의미를 가진 어휘로 사용되는 게 더욱 더 적합하다고 보이며 만약 이같은 의미가 더 타당할 경우 신지비사(神誌祕詞)로 읽는 게 아니라 신지필사(神誌祕詞)로 읽는 게 더 정확한 의미일 것 같습니다. 이상과,같은내용을 정리하면 신지비사(神誌祕詞)는 1. 신지필사(神誌祕詞)로 읽는게 더 타당하며 2. 신지(神誌=<ᄀᆞᆷ치>=임금의 아래에서 일정지역을 다스리거나 지위 유지하던 신분)에게 ....명하여 작성된 3. 필사( 祕詞)로서 < 그 의미가 심원한 문장이요 글이다> ....여기서 심원 또는 심오의 의미와 맥을 통하는 것이 .....당시 고조선의 강역을 저울추로 비유하여 이를 3경을 두어 다스리게 하면 ....70개국이 조공을 바칠 것이다라고 하는 의미의 글인데 이를 전부 요약하면 신지필사(神誌祕詞)는 [ 단군조선 때의 <국가경영제도 혹은 경영방법>을 웅장하게 기록한 글]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지우개-i3v
    @지우개-i3v 2 месяца назад

    일본놈들이 핵 맞으면서도 끝까지 욕심 냈던 이 땅을 지키려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꼭 지랑스런 모습이 되도록 후손들은 나라를 빛나게 해야 합니다

  • @ysng2004-g6p
    @ysng2004-g6p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책은 아마도 일제시대때 한국 역사 말살을 위해 일본역사학자들이 가지고 가서 일본 어디인가에 보관하고 있을것이다

  • @평생감사-b5o
    @평생감사-b5o 2 месяца назад

    일제가 반도사관을 심으려고 압록강, 두만강안에 조선, 고려, 신라를 가둔것은 맞아 보인다. 감히 그 약한 조선이 간도가 조선땅이라고 우길 이유가 있겠어??

  • @MyongO-i8e
    @MyongO-i8e 2 месяца назад

    발바닥 굳은살.

  • @김삼묵-t7m
    @김삼묵-t7m 2 месяца наза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라 해도 삼한의 위치마저 아무런 근거없이 위치를 배정하는 것은 기존 일제사관을 더욱 확신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중국 고대사서와 최치원등의 서술에 의거해 봐도 마한은 산동, 산서, 하남 그리고 하북성 등에 걸쳐있었다고 얘기합니다.

  • @bamas26
    @bamas26 3 месяца назад

    일본인이에요. 이견이 없어요. 아예 일본것이랑 형식에 제사 유적까지 똑같아요.

  • @애초에미친놈은브레이
    @애초에미친놈은브레이 3 месяца назад

    ?????? - 미국대학에 환빠가 있다 ..

  • @하라미-g9c
    @하라미-g9c 3 месяца назад

    양쪽말을 들어볼 필요가없는게 환단고기에 나오는 환국에 유물 나온다면 진서 앞으로도 없다면 위서인거죠 사마천에 사기도 하나라시대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아직까지도 위서취급받았겁니다

  • @sssill
    @sssill 4 месяца назад

    압록강은 아무르강의 발음이 바뀐것입니다 아무르강 이남이 고구려땅이라는것 아무르강은 만주땅위에 있어요

    • @Sndjj23324
      @Sndjj23324 3 месяца назад

      이론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초기 고려의땅은 북경과 서경 남경입니다, 고려말기 원나라가 심양왕으로 책봉했습니다, 심양은 지금의 선양입니다. 만주와 한반도로 다몰아넣으니 😂😂😂

    • @Sndjj23324
      @Sndjj23324 3 месяца назад

      고구려의수도는 북경이며, 백제 =레이 산동성입니다, 신라의 수도는 상해 이구요, 한반도는 많은사람이 살수없는땅입니다, 한반도에는 황하 or양자강 처럼 큰강이없으니깐요, 고구려시대때 한반도는 고구려의땅이었으며 통일신라때 신라가 다스리다 고려의 영토가됩니다

    • @Sndjj23324
      @Sndjj23324 3 месяца назад

      북경에 유리대왕묘, 대무신왕묘도존재합니다, 그리고 산시성 황하쪽 영락진, 영락궁, 존재합니다

    • @Sndjj23324
      @Sndjj23324 3 месяца назад

      백제=레이 양나라의 양직공도에서는 백제 즉 레이라하며 산동성 레이족가르키는말이며, 지금의 산동성에는 레산 이존재하고 많은 황산이또존재합니다

    • @Sndjj23324
      @Sndjj23324 3 месяца назад

      신라는 비단과 나침반 그리고 물소와 낙타를 기르기좋은땅이었으며, 중국의전주위에 팔공산이존재하며, 신라의 왕족 계보와 당나라의 왕족계보가 겹치는부분도있습니다

  • @스위티-g9s
    @스위티-g9s 4 месяца назад

    ■일왕家는 고령 대가야계입니다. 기록된 역사적 사료와 출토되고 있는 유물을 교차 검정해 봄으로써 명약관화해질수 있을 것입니다. 1●.천황가는 경상도 방언을 사용했습니다. 경상도 방언 (오게 아지메 등)을 사용하는 天皇家라면 백제계나 고구려계가 아님을 말합니다. ㅡㅡㅡㅡㅡㅡ 2●. 천황가문의 제사용 신악(神樂)에서 천황 조상신을 부를때 가라카미(한신:가야신)을 부릅니다. 구다라가미(백제신), 고쿠리가미(고구려신),시라기가미(신라신)가 아닙니다. ㅡㅡㅡㅡㅡㅡ 3●.일본서기와 고사기에서 스사노미코토(아마데라스오미카미의 남동생)는 시라기(신라:경주)의 서쪽 소시머리(소머리:牛頭山:가야산)에서 나왔다고 기록하여 그의 출신지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라경주의 서쪽에는 금관가야 김해도 아니고, 한성백제도 아니며 후기백제의 공주.부여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스사노미코토를 기리는 일본의 이즈모신사는 수구초심의 뜻을 담아 정확하게 그의 고향인 가야산(소머리)와 고령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왕도인 고천원과 소시머리의 밀접한 관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고대로 부터 모든 국가들은 왕도인 내성(內城)과 함께 별도로 외성(外城)인 산성을 두었다는 점입니다. 신라는 반월성과 함께 외성으로 명활산성을 두었습니다. 적의 침략을 염두한 것입니다. 고려는 왕성인 개성외에도 강화도에서 몽고의 침략에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은 한성외에도 북한산성, 남한산성을 두어 장기전을 대비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대가야도 652년의 역사를 유지할수 있었던 것은 왕도인 고천원과 함께 소시머리에 별도의 외성인 산성(山城)을 두어 위기를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소시머리는 소머리를 뜻하며 한자로 우두산, 인도 산스크리스트어로 소를 뜻하며 불교가 융성해지면서 가야산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가야산은 거대한 암석산으로 대가야인들에게는 한민족의 성산인 백두산같은 곳이자 북두칠성같은 곳이기도 하였기에 소시머리(소머리:우두머리)를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기록하여 둔것입니다. 어떤이는 소시머리(우두산: 가야산)를 거창 가조 또는 별유산으로 비정하기도 합니다. 가야대 이경희교수가 가조를 소시머리로 비정하므로서 가조가 관심을 끌면서 별유산이 우두산으로 불리워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조땅은 대가야의 왕이 급하게 피난갈수 있는 외성인 산성의 역할을 제대로 할수 없는 곳입니다. 별유산도 피난민과 군대를 주둔할만한 산성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가조의 별유산은 본시 가야산(소시머리)이라는 큰 몸통에서 뻩어나간 지맥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가조의 별유산(우두산)이 대가야인의 국가적인 좌표가 될만한 백두산같은 역량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가야산의 수륜면 백운동은 대가야의 외성이자 산성으로써 가장 유력한 이유는 고령의 뒷산인 주산에서 산능선을 따라 곧장가면 가야산 정상부에 수십만평의 넓은 개활지가 펼쳐져 있어서 농사를 짓고 자급자족도 가능하며, 적의 침략에도 방어가 매우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대가야가 패망했을때 마지막 왕자인 월광태자가 피난길로 떠난곳도 수륜면 백운동일대 였습니다. 그리고 가야산아래 첫동네인 백운(白雲)과 소시머리에서 출발한 스사노미코토가 일본땅에 처음 도착했던 곳을 이즈모(出雲)라고 한것도 지명에서 느끼는 친연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ㅡㅡㅡㅡㅡㅡ 4●.소시머리(소머리산:가야산)인근에 신들이 사는 왕도인 고천원(高天原:다카마가하라)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곳에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와 여러 신들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고천원(高天原)이라는 뜻은 높은 고원 즉 산속에 있는 왕도를 말합니다. 다시말하면 분지형 왕도를 말합니다. 고령은 내륙에 위치의 분지형 왕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가야영토에 속해있던 지역을 보면 대체적으로 산중분지에 터를 자리잡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김해 금관가야는 바다와 접한 해양도시국가였고, 한성백제도 고원분지형 도시도 아닙니다. 백제말기 공주.부여도 분지형 왕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왕도인근에 소시머리(소머리산:牛頭山:가야산)로 비정할 만한 곳이 나란히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부합되는 곳이 아닙니다. ㅡㅡㅡㅡㅡㅡ 5●. 일본서기와 고사기의 기록에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의 손자인 니니기미코토가 하늘에서 내려와서(천손강림) 미야자키 휴가땅에 처음 도착했을때 그가 했던 첫말이 '이곳은 가라가 잘 보이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말해서 자신이 가야출신임을 말한것입니다. 그리고 휴가지방의 그 뒷산이 바로 가라쿠니타케(가야국산)입니다. 그들의 출신이 어디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휴가지방일대를 개척한 세력집단이 고천원의 아마테라스오미가미의 직계 손자 니니기미코토에 의해 건설되어진 곳이라면 금관가야의 김해세력이나 백제나 신라계가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근거로써 사이토 바루 고분군이 있습니다. 사이토바루고분은 일본을 통일하여 야마토국가를 건설한 진무천황과 밀접한 지역의 고분군입니다. 사이토바루 고분군의 대표적인 유물을 보면 대가야계 철갑투구,철갑갑옷, 구리동경, 환두대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ㅡㅡㅡㅡㅡㅡ 6●.일본은 고분시대(3~5세기)와 함께 고대국가로 갑자기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일본의 고분시대를 대표한 유물은 모두 대가야계 유물과 동일합니다. 대가야계 철갑투구와, 철갑갑옷, 환두대도,그리고 토기류들은 그들의 출신지가 어디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ㅡㅡㅡㅡㅡㅡ 7●.일본천황이 입고있는 옷을 가라후쿠(가야복)라고 합니다. 그들자신이 가야계 출신임을 말하고 있는 또하나의 예입니다.

  • @스위티-g9s
    @스위티-g9s 4 месяца назад

    8●.구당서에 "작은 소국이 왜국의 땅을 정복하였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연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천원에서 출발한 아마테라스오미가미의 손자인 니니기미코토에 의해서 개척하게 된 미야자키 휴가(日向)지방에서 그의 손자 대에 가서 걸출한 진무천황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는 휴가(日向)국이 일본열도의 변방에 있음을 개탄하고 거병을 하여 일본열도의 중심부인 긴키지방까지 정복하여 왜국을 정복한 것입니다. 중국 송서 왜국전의 기록에 "왜왕 무(武)가 동쪽으로 모인 55국을 정벌하고, 서쪽으로 중이 66국을 복속시키고, 바다 건너 북으로 95국을 평정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중국 송서에 기록된 왜왕 무가 곧 진무천황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때 스사노미코토에 의해 일찍 이즈모지방에 정착한 선(先)대가야계 세력과 휴가국의 진무천황세력이 서로 연합하여 일본을 정복한후 야마토정권을 수립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진무천황의 직계조상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와 함께 방계인 스사노미코토를 기리는 신사가 일본에 70%를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스사노미코토를 모시는 대표적인 곳이 '이즈모대사' 이기도 합니다. 전국을 통일하고 야마토정부 수립에 기여한 공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ㅡㅡㅡㅡㅡㅡ 9●.대가야의 하지왕이 중국 남제에 "보국장군 本國王" 으로 제수받습니다. 다시말하면 대가야 를 (日)本國 으로 통용했었던 것입니다. ㅡㅡㅡㅡㅡㅡ 10●. 한국과 일본의 문법구조는 주체가 되는 주어는 반드시 앞에 둔다는 점입니다. 그런점에서 임나일본부의 '임나'는 주체가 되고 '일본부'는 대상이 됩니다. 다시말하면 영국이 세계의 식민지를 관리하기 위하여 영연방제도라는 기구를 두어 관리했듯이 임나가 바다건너 일본내 있는 식민지 땅을 관리하는 특별관청을 두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것을 곡해해서 반대로 일본국이 한반도내 임나 즉 가야와 남부를 지배했다고 억측을 부리는 것입니다.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ㅡㅡㅡㅡㅡㅡ 11●. 대가야의 실제 영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29권 고령현 건치연혁 조에 [본래 대가야국이 있던 곳이다. 시조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 또는 내진주지(內珍朱智))으로부터 도설지왕(道設智王)에 이르기까지 대략 16대 520년 동안 존속하였다.] 최치원이 지은 석이정전(釋利貞傳)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가야 산신 정견 모주(正見母主)는 천신 이비가지(夷毗訶之)에게 응감하여, 대가야의 왕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국의 왕 뇌질청예(惱窒靑裔) 두 사람을 낳았다.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별칭이고, 청예는 수로왕의 별칭이다.” 그러나 수로왕의 고기(古記)에 나오는 여섯 알 이야기와 더불어 모두 허황된 것이어서 믿을 것이 못 된다.] 또 최치원이 지은 석순응전(釋順應傳)을 보면 [ “대가야국의 월광 태자(月光太子)는 정견 모주의 10세손이요, 그의 아버지는 이뇌왕(異惱王)이다. 이뇌왕은 신라의 영이찬(迎夷粲) 비지배(比枝輩)의 딸에게 장가들어 태자를 낳으니, 이뇌왕은 뇌질주일의 8세손이다.” 그러나 역시 참고할 것이 못 된다.] “삼국사기” 권34 지리지 고령군(高靈郡) 조에 [고령군은 본래 대가야국(大加耶國)으로서 시조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 또는 내진주지(內珍朱智)으로부터 도설지왕(道設智王)에 이르기까지 무릇 16세 520년이었다. 진흥대왕(眞興大王)이 쳐서 멸망시키고, 그 땅을 대가야군(大加耶郡)으로 삼았다.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바꾸었고, 지금도 그대로 따르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석이정전'에는 정견모주에게는 두아들이 있었는데 대가야의 이진아시왕의 본명은 뇌질주일이고, 남가라의 수로왕의 본명은 뇌질청예이며 서로가 같은 시대의 형제로 나옵니다. 한국역사책에는 전기가야를 김해 금관가야가 주도했고, 대가야가 후기가야를 주도했다는 해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석이정전'을 쓴 최치원은 857년 출생하여 900년대 통일신라시대의 인물입니다. '삼국사기'는 고려중기 1145년 고려인종때 왕의 명으로 김부식이 쓴 책입니다. '삼국유사'는 몽고간섭기인 고려말기 1281년 고려충렬왕때 일연스님이 집필한 책으로 카더라식의 야사입니다. 이 3권의 책중에서 가야역사를 가장 사실적으로 기록한 책은 최치원이 쓴 '석이정전'과 정사인 삼국사기이고, 삼국유사는 사실과는 다른 왜곡된 부분이 많다고 할수 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 12●.일본의 고분시대를 연 대가야계의 활약은 고구려의 광개토왕 남정이전에도 활발했다는 증거들이 일본지역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내 대가야가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영토는 훨씬더 광범위했다는 점입니다. 대가야계 유물은 경남의 합천.거창.산청.함양.진주.사천.고성.하동일대에도 대가야계 고분과 유물이 출토되고 있고 지금의 전북의 무주.진안.장수.남원.임실뿐만아니라 전남의 구례.순천.여수.광양. 고흥까지 대가야계 고분과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경북의 의성.문경.상주.예천.안동일대에도 대가야계 고분과 유물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한국사에서 표시하는 대가야의 영토는 상당히 축소되어있거나 잘못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일본사학에서 주장하는 임나(대가야)의 고대 영토가 실제 발굴되는 유물의 분포지역과 더 일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ㅡㅡㅡㅡㅡㅡ 13●.일본사회는 소가씨 가문을 통하여 백제불교와 문화를 중심한 아스카문화를 꽃피우게 됩니다. 소가노이루카는 백제계 출신으로 왕비를 배출한 부마가 되면서 소가씨 가문은 일본에서 강력한 실세로 등장합니다. 소가씨 가문의 일본 장악에 위기의식을 느낀 나카토미가마타리(中臣鎌足)와 韓人(가라히토:가야인)들이 소가노이루카를 죽입니다. 나카도미 가마타리는 소가가문을 타도하여 일본황실을 안정시킨 공로로 나중에 '후지와라(藤原)성을 받게 되고 소가씨 가문을 대신하여 왕비를 대대로 배출하는 명문가문이 되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천황가의 조상신과 백제로부터 전래된 불교문화가 합쳐져서 '신불'이라는 고유명사가 탄생하게 됩니다. ㅡㅡㅡㅡㅡ 14●.일본서기.고사기에서 나타나는 韓人(한인:가라히토)이라는 표현을 한반도사람(백제.신라.가야)으로 전체적인 의미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역사 해석입니다. 한인(韓人:가라히토)은 이두식표기로 일본내 가야인을 지칭한 말입니다. 그와 함께 아라가야 사람을 原人(원인:아라히토)로 표기했던 것입니다. 일본의 신사에서는 한인(韓人:가라히토:가야사람)과 원인(原人:아라히토:아라사람)을 모시는 곳이 많습니다. 그리고 임나일본부와 함께 안라일본부가 있었던 것처럼 일본내에는 가야의 직할령과 안라의 직할령이 나란히 공존했던 것입니다.

  • @plum4142
    @plum4142 4 месяца назад

    감동입니다 돌팔이 중인 천공인가는 일본에 고마워 하라는 망언을 해대고있는데 아무리 토착왜구라도 최소한 예의가 있어야 하는법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많은 우리 선조들이 일본에 학살당하고 노예로 끌려가고 수탈당하고 게다짝에 짓밟힌 역사를 토착왜구들은 기억할 필요가 없겠지 그러나 우리 한민족에게는 자랑스러운 한글이 있고 디지털등 과학에 빠르게 적응할줄 아는 유전자가 있고 지진 쓰나미등 자연재해에는 일본보다는 비교적 안전하며 무엇보다도 이웃을 짓밟으려는 일본과 달리 이웃과 더불어 같이 가려는 dna가있다 어느쪽이 더욱 강한 생명력이 있다 할 수 있겠는가 토착왜구들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려하지마라

  • @ssamgi21c-n3h
    @ssamgi21c-n3h 4 месяца назад

    홍수로 인류의 문명이 다 무너지고 현대문명이 새로 시작한 환국이 모든땅이 환국의 아래 다스리지만 제후국까지 미치는곳이 동서 2만리이고 남북 5만리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