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임이' 의빈 성씨를 평생 저주한 'OO' 윤씨 (Feat. 상상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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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6 сен 2024
  • '《의빈을 저주했던 화빈 윤씨》
    조선 제 22대 임금 정조는 총 4명의 후궁을 두었습니다.
    '원빈 홍씨', '화빈 윤씨', '의빈 성씨', '수빈 박씨'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정조의 두번째 후궁인 화빈 윤씨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
    1. 무품 빈, 간택후궁
    조선 제 22대 임금 정조의 두번 째 후궁인 '화빈 윤씨'는
    정식 '간택' 절차를 거쳐 1780년 정조 4년에
    '무품 빈'으로 '간택후궁'에 책봉되었습니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정조 임금 때부터는
    정1품 ‘빈’보다는 높으면서 감히 품계를 매길 수 없을 만큼 높다는 뜻의
    '무품'인 왕비와 왕세자빈 보다는 낮은 품계인
    '무품 빈'이라는 특수한 후궁 품계가 등장하게 되는데요?
    '화빈 윤씨'가 바로 그 '무품 빈'의 '간택후궁'이었습니다
    2. 상상임신
    화빈은 왕실의 후사를 잇기 위해 간택된 후궁이었지만, 끝내 단 한명의 자식도 낳지 못했습니다.
    대신, 상상임신을 했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 실록》과 《이재난고》에 전해지는데요?
    정조 5년인 1781년 1월 17일, 화빈 윤씨가 임신하여 산실청을 설치했으나,
    그로부터 10개월 후인 1781년 11월 2일, 여전히 화빈 윤씨의 출산을 기다리는 기록만 있을 뿐, 출산을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3. 의빈을 저주하다
    이후 1786년에는, 문효세자가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인 홍역으로 요절하는 일이 벌어지는데요?
    몇 개월 뒤에는 세자의 친모인 의빈 성씨까지 만삭의 몸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화빈 윤씨와 그 외척인 조시위가 저주하고 독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는데요?
    황윤석의 《이재난고》에 의하면,
    의빈은 임신 때에 태기가 조화되지 못하고 위로 치밀어 가슴이 부어오르는 것처럼 아픈 병증인 ‘자현’ 병세가 있었고 사망했다고 하는데,
    의빈이 이렇게 사망한 것은 화빈 윤씨가 독을 쓴 것이라고 하여 화빈 윤씨에게 심히 죄를 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화빈의 외척인 조시위는 임금의 외척을 자칭하면서 조정 일을 제멋대로 좌지우지 하며, 문효세자의 출 생 후에도 “호칭 정하는 일을 그렇게 서두를 것 없다.”라고 발언하는 등 방자한 태도를 보였는데요,
    앞서 말씀드렸던 화빈의 산실청이 30개월 이상 지속된 것과도 맞물려. 정조 11년인 1787년 1월 12일 화빈의 인척인 고모부 조시위는 제주도로 귀양을 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자 화빈은 목이 쉬도록 울면서 의빈 성씨를 원망했다고 합니다.
    화빈 윤씨의 이후 활동상은 60세에 사망할 때까지 찾을 수 없는데요.
    실록에도 일체 등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시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도 정조의 다른 후궁들인 의빈, 원빈, 수빈만 언급되고, 화빈은 한 마디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조선 제 22대 임금, 정조의 두번째 간택후궁, 무품 빈의 화빈 윤씨에 대해 정리해보았는데요?
    의빈 성씨를 향한 지나친 투기와 질투 때문에 자신의 삶을 다 망가트린 어리석은 여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영상이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댓글까지 꼭 부탁드립니다. 영상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옷소매붉은끝동 #정조 #상상임신 #역사이야기 #의빈 #의빈성씨 #성덕임 #덕임이 #혜경궁홍씨 #화빈 #화빈윤씨 #조선시대 #악녀 #후궁 #원빈홍씨 #수빈박씨 #한중록 #후궁책봉 #조선시대후궁 #역사톡 #저주 #독살 #이세영이준호

Комментарии • 31

  • @alsgml03
    @alsgml03 4 месяца назад +3

    시기질투 하면 그전에 궁에서 내쫓아써야지요 정조대왕님께서 너무 마음이 좋으셔서 의빈만 생각했면 빨리 죄를 물어 품계도 박탈 하고 유배를 보내든 궁에서 아무 멀리 보내버려어야죠ㅠ

  • @user-gx5lo7nk8p
    @user-gx5lo7nk8p Год назад +46

    화빈윤씨 입장만 보면 어느정도 이해는 가네요
    의빈성씨가 정조뿐만 아니라 혜경궁 효의왕후 심지어 군주들과도 사이가 좋았다고 하니 소외감 느꼈을거 같아요

    • @역사톡
      @역사톡  Год назад +13

      지독하게 외로웠을 것 같긴합니다..ㅠㅠ 투명인간마냥,,

  • @달콤솜사탕-x3b
    @달콤솜사탕-x3b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정조는 자식복이 없었슴 😢

  • @박나영-t8y
    @박나영-t8y Год назад +1

    잘봤습니다.

    • @역사톡
      @역사톡  Год наза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양질의 콘텐츠로 보답하겠습니다^^

    • @금채-o3d
      @금채-o3d Год назад

      정조가쓴글 순조 태어나고 한참뒤 궁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없다 라고 적혀있서요

  • @user-hj6rptzc2o
    @user-hj6rptzc2o Год назад +11

    화빈윤씨 대한 영상에 대해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당!!

    • @역사톡
      @역사톡  Год назад +1

      제가 더 감사해요~ 영상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금채-o3d
      @금채-o3d Год назад

      정조가쓴글 순조 태어나고 한참뒤 궁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없다 라고 적혀있서요

  • @금채-o3d
    @금채-o3d Год назад +13

    정조가쓴글 순조 태어나고 한참뒤 궁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없다 라고 적혀있서요 또 문효세자 에게 지어준 중희당 중희당 에서 의빈 사망 이곳을 어느 누구에게 도 안내어주고 집무실 로 사용함

    • @pele2434
      @pele2434 Год назад

      그 기록어디있죠? 찾아보고 싶네요

  • @귀여운냥이-p1m
    @귀여운냥이-p1m Год назад +24

    불쌍하다. 여자구실 할 기회도 못받았으니, 평생 처녀로 고독하게 살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저러거면 후궁 되지말고, 평범한 양반하고 결혼하는게 더좋았겠네요.

    • @금채-o3d
      @금채-o3d Год назад

      정조가쓴글 순조 태어나고 한참뒤 궁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없다 라고 적혀있서요

  • @금채-o3d
    @금채-o3d Год назад +1

    간택후궁 날짜를 정해서 합방 으빈 궁녀 20년재 첫사랑 후궁 간택일 안정하고 매일 찾아옴 정조

  • @芙蓉부용husunduck
    @芙蓉부용husunduck Год назад +6

    제사랑 제가받는다 란 말이 있다.
    화빈은 어쩜 첨부터 밉상였던 모양인듯. 그러니 시어머니 혜경궁에 자애로웠던 중전에게까지 인정받지 못했겠지.
    중전같은경우는 후사도 없었고 정조에게 사랑받지 못하여도 매사 자애로 내명부를 다스렸고 그러기에 어른으로써 존경을 받았는데 이여인의 행태를 보면 분명 궁녀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을듯. 자기처지 운운하기전에 자신의 심성부터 잘챙겨봤음 최소한 같은처지였던 시어머니 혜경궁과 중전에게까지 투명인간 취급받았을까..

    • @역사톡
      @역사톡  Год назад +2

      그러게요 집안만 좋으면 뭐할까요 인품이 좋지 않으니 모두에게 외면받은 것 같습니다

    • @USER-han3namkill
      @USER-han3namkill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근데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남자들만 좋은 처첩제가 문제인 것 같기도 해요-_-;; 승은이었던 의빈 제외, 나머지 후궁들은 결국 다 후사 목적으로 들어왔으니...;;;; 효의왕후는 정실이라 받는 대우라도 있지;; 원빈홍씨만 해도 후사 잇는다고 13살짜리 어린애 무품빈으로 앉혀놓고 정실한테 미움받게 만들고...정치라는 게 참 그렇네요😤😤 화빈도 정조의 무품빈이 아니라 자기랑 잘 맞는 평범한 양반집 남정네 만나 살았음 저렇게 외면받고 사는 삶은 아니었겠죠;;

  • @윤미옥-l9m
    @윤미옥-l9m Год назад +12

    편애한 정조도 문제잇다 힐수잇겟죠
    사랑을 못받는것은 시기질투미움으로 연결되죠~~

    • @금채-o3d
      @금채-o3d Год назад

      정조가쓴글 순조 태어나고 한참뒤 궁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없다 라고 적혀있서요

  • @황희경-z8j
    @황희경-z8j Год назад +18

    그나마 정조라는 성군을 만난게
    다행인 경우죠!
    성종때에 적자인 아들을 낳음에도 불구하고
    투기를 했단 이유로
    쫓겨나서 사약으로 죽은 폐비윤씨는
    얼마나 안타깝고 가여운 일입니까?

    • @역사톡
      @역사톡  Год назад +6

      그러게요 말씀대로 그나마 남편이 정조라 투기 저주 모함을 하고도 사약을 받진 않은 것 같습니다~~

    • @금채-o3d
      @금채-o3d Год назад +2

      정조가쓴글 순조 태어나고 한참뒤 궁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없다 라고 적혀있서요

  • @블루블랙딸기
    @블루블랙딸기 Год назад +15

    불쌍하네 그렇게 찾지않을거면 후궁간택할때말렸어야지 그리고 화빈이 저렇게된게 이해가 가는게 어느정도였어야지 홍국영 동생인 원빈도
    잠자리를 가져놓고 화빈만 단한차례도 찾지않으니 죽을 맛이였겠지 ㅉㅉㅉ
    생과부로 늙어죽게 생긴마당이면 정말 분했을듯

    • @역사톡
      @역사톡  Год назад +24

      회임을 했다고 생각을 했으니 뭔가 있긴 있었나본데... 상상임신 소동 이후엔 완전 찬밥신세 독수공방이었을 것 같네요
      화빈이 최종 간택되어 입궁한 시기와 의빈이 승은상궁이 된 시기는 비슷한 시기로, 같은 1780년 인데...
      동기(?)라고 할 수 있겠죠
      게다가 승은후궁과 무려 무품빈 지체 높은 간택후궁이었는데
      막상 정조는 의빈만 좋아하니 화빈은 여러모로 죽을 맛이었을 것 같아요

    • @mikamiria6538
      @mikamiria6538 Год назад +8

      홍국영 동생 원빈과 잠자리 가졌다는 얘기는 야사이고 실제로는 잠자리 갖기도 전에 병걸려 죽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왕이라도 간택후궁은 후사를 잇기 위한거라 선택권을 갖기 힘들었고 합방조차도 길일을 까다롭게 정해 그때만 합방을 했다고 합니다.

    • @금채-o3d
      @금채-o3d Год назад

      @@역사톡 정조가쓴글 순조 태어나고 한참뒤 궁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없다 라고 적혀있서요

    • @금채-o3d
      @금채-o3d Год назад

      @@mikamiria6538 정조가쓴글 순조 태어나고 한참뒤 궁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없다 라고 적혀있서요

    • @금채-o3d
      @금채-o3d Год назад

      @@mikamiria6538 간택후궁 날짜 정해서 합당 의빈 언제나 함게 해도 되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