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1교시] EP.01 지루하게 이어진 또 다른 전쟁, 정전회담 I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 I 역사학자 박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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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7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71

  • @삶바른
    @삶바른 2 года назад

    11:20
    14:30 스탈린 죽음과 휴전

  • @kim-li8bz
    @kim-li8bz 4 года назад +16

    스탈린 이진짜 우리민족의적이지

    • @노미현-l6y
      @노미현-l6y 3 года назад

      김일성이지

    • @sugarfree97
      @sugarfree97 3 года назад

      스탈린과 김일성 그 부역자들이죠.

    • @waitaoyuanshi5081
      @waitaoyuanshi5081 3 года назад

      스탈린이 무기 대주구 싸움 붙여놓쿠.
      동족상잔 비극.
      모택동은 포로군
      소모하구.
      미국은 남은 무기 소모하구.

    • @진자림-f8e
      @진자림-f8e 2 года назад

      이승만도 우리민족의 적이죠. 스탈린, 김일성, 모택동, 그리고 이승만.
      이 4명 모두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죠.
      이승만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후부터 북진통일을 주장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한국에 전차가 1대도 없었던 이유가 이겁니다. 주한미군 철수하는대도 한국을 무장시켜주지 않았던 이유. 무장시켜주면 북한이랑 전쟁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 @전승헌-w8p
    @전승헌-w8p 4 года назад +5

    이렇게 자세히는 처음알았네요 감사합니다

  • @조영희-r9i
    @조영희-r9i Год назад

    박태균 교수님
    말씀 중에 '저희가' 라는 단어가 계속 귀에 거슬리니 '우리가'로 바꾸세요.

  • @BlackGetta
    @BlackGetta 3 года назад +4

    그러쿠나... 스탈린만 아니었어도, 죽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까...

  • @최창남-u5f
    @최창남-u5f 3 года назад

    와중국군대단하다유엔과싸웟구나유엔군압록강변에서휴전선까후퇴햇구나유엔군바보멍청이

  • @yoga12842
    @yoga12842 4 года назад +8

    공산주의자들은 충성경쟁을 시켜요
    김일성을 만류한게 충성경쟁을 부추기는 하나의 수법이기도 했죠
    무기도 지원해고 전투기 출격도 했고 정전협정도 스탈린이 살아있는한 체결안했으니까
    소련이 깊이 개입한건 맞다고봅니다

  • @jschoi-db3uo
    @jschoi-db3uo 2 года назад

    구글이 미쳤나. 웨 ㄴ 무당광고 돈이 아무리 궁하기로서니 ~

  • @수구레국밥-k9x
    @수구레국밥-k9x 2 года назад

    일본에 강제병합되고
    미국에 위해 해방된
    약한 나라가 겪어야 했던
    현실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이러한 역경을 겪고 있음을 생생히 보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 @성이름-e5y6f
    @성이름-e5y6f 4 года назад +1

    뭐야 내 ep.3돌려줘요

  • @seungyong1320
    @seungyong1320 3 года назад

    1950년의 봄에 전쟁 끝내자...? 1950년 6월 25일에 전쟁터지기 전에 전쟁끝내자 했다고..?

  • @war.and.peace99
    @war.and.peace99 4 года назад +2

    내가 전부터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누누이 설파했거니와 인간답게 살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영위하고 살만한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 줄 요량이라면 동양사에 앞서 서양사를 먼저 공부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동양사라면 한,일,중 3국의 역사를 말한다. 미국이 WWII 에서 승리하여 일본과 한국에 진주하기 전까지 동양 3국에는 민주주의, 인권, 인간다운 삶, 공화정치, 종교와 사상의 자유란 것은 아예 있지도 않았다.
    학문의 자유도 없었다.
    이세상 모든 것은 왕족과 귀족(양반)에게만 부여되었고 이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자자손손 신분이 상속되도록 제도를 만들어 묶어 놓았다.
    그리하여 노비는 노비끼리만 혼인을 할 수 있도록 신분이탈을 엄금하였는데, 일반 백성에 속하는 밭 한떼기 조차 없는 상민(쌍놈)과 천민(백정, 무당, 기생, 상여꾼, 중 등등)의 수는 1500년 무렵에 50%, 1920년 경에 이르러서는 조선인구 2천만명의 90%가 넘었다고 한다.
    이들 90%의 상민은 사실상 노예와 같아서 글도 읽을 수가 없었다.
    1922년의 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조선인구 2천만명의 1% 정도가 문자를 해독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의 신분제도는 1894년에 단행된 갑오경장에 의해 철폐되었다.
    갑오경장은 1850년대 후반 영국에 유학하고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여 4번씩이나 총리대신을 역임한 실력자 이토 히로부미에 의한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1873년 독일의 비스마르크와 회담을 하고 고대국가 일본을 독일식으로 개조한 인물이다. 바로 그가 조선인의 노예해방을 이룬 것이다.
    마침내 신분제도가 철폐되어 근대국가의 첫걸음을 띠게 되기는 하였지만, 1960년대 까지도 한국의 농촌에는 사실상 신분제도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현대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사실상 동의어이며 역시 기독교와도 같은 의미로 통한다.
    그 역사는 2천여년이며 종교개혁 이후로도 2백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서양의 민주주의 역사를 보자.
    영국
    마그나 카르타는 1215년에 국왕의 무소불위 권한을 제한한 것이다.
    1689년의 권리장전이란 말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 즉, 천부인권이 선언된 문서이다.
    미국
    1789년에 이르러 인간의 기본적 천부인권에 관한 10개 조항이 덧붙여져 현재 미국의 헌법이 탄생하였으며 일반 백성 중에서 왕을 뽑아 4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다.
    프랑스
    1789년 인류역사상 최초의 시민혁명이 발생하여 왕을 끌어 내려 공화제를 열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소요와 혁명이 발생하였고, 1871년 파리 코뮨의 사회주의 자치정부가 탄생하였다.
    이것은 절대 다수의 무산계급 즉, 노동자 위주의 사회를 건설하였다는 데에 의의를 두겠다.
    15세기 부터 유럽에서는 종교를 빙자하여 부패한 교회권력을 개혁하기 시작하여 18세기 계몽시대를 거쳐 수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인지가 개화되기 시작하였고 미국의 태평양전쟁 승리 후에 아시아 각국에 미군이 진주하면서 민주주의가 도입되었으니, 유사 이래 1945년 까지 백성 스스로의 인간적 권리에 대한 자각이 없었던 조선에서는 시민의식이 개화되기 까지는 진통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무엇 보다도 자기 땅 밭떼기 한마지기 조차 없었던 고단한 민중의 삶은 이승만 대통령의 토지개혁에 따라 실질적 민주주의의 플렛폼이 갖추어졌지만, 농업생산력이 극도로 낮아서 하루 세끼 먹을거리를 찾아 헤메야 하는 개돼지의 삶은 박정희 대통령이 탄생하기 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
    조선 백성의 대부분의 성씨는 600여년간의 노예의 신분을 덮고자 족보를 사거나 맹글어서 양반가문으로 세탁했던 것이 라고 한다. 아무리 자연증가가 높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전인구의 3%를 넘을 수는 없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가짜 양반 즉, 성이 없이 돌쇠, 갑돌이, 떡쇠, 삼돌이 등으로 불리우던 노예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쯤해서 우리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자기 동족의 90%를 600여년간 노예로 부려먹은 조선의 역사가 정말 자랑스러운 것인지 나는 때때로 의문을 갖는다. 600여년간 노예신분에서 해방을 시켜주고 민주주의를 도입해준 일본과 미국을 배척하고 걸핏하면 식민사관이라느니 매국세력이니 깡냉이를 놀리면 자랑스러운 것인가?
    북한을 소련영토로 편입시키려고 소련국적자 김일성 대위와 스티차코프 중장으로 하여금 위성국가 북한을 세워 한반도를 반토막 낸 저들에게는 주둥이를 닫고, 소련의 계획을 방해하여 한국을 독립시키고 물심양면으로 키워 오늘에 까지 이르른 미국을 철천지 원수인양 선동질을 하면 자랑스러운 자주사관인 것이냐?
    50~60년대의 경제·군사원조
    □ 50~60년대까지 우리 경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었음
    o 당시 국내 저축률이 극히 낮은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높은 투자와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대규모 경제원조와 함께 미국과의 안보·동맹관계를 활용한 외자조달이 가능하였기 때문임
    □ 과거 통계자료의 미비로 체계적인 분석이 어려우나 기발표 논문에 게재된 통계를 보면 미국의 경제원조금액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음
    o 50년대 후반~60년대 초반에 미국의 경제원조는 매년 평균적으로 우리나라 국민총생산의 10% 정도를 점유(2003년 기준으로 보면 600억달러에 해당)하였으며, 56~61년 사이는 우리나라 재정지출의 약 절반 가까이를 충당하기도 했었음
    o 1946~78년 동안 우리나라가 미국으로부터 받은 경제원조는 총 60억 달러로 이는 같은 기간중 전체 아프리카 국가들이 받은 69억 달러, 전체 남미국가들이 받은 149억 달러와 비교해 볼 때 대단히 많은 규모임
    ※ 한편 1955~78년 동안 미국이 한국 및 대만에 제공한 군사원조 금액은 총 90억 달러임(같은 기간중 미국이 아프리카와 남미국가 전체에 제공된 군사원조액은 총 32억 달러)
    ■ 따라서, 해방 후 미국으로 부터 받은 군사 및 경제 원조금액은 최소한 100억불 이상,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여 1천억불 이상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 @시원한밥
      @시원한밥 2 года назад

      정신나간 소리를 길게도 써놓으셨네.
      서양놈들이 본인들 우월해 보이기 위해 퍼뜨린 얘기를 그대로 읊어놓으셨음.
      님같은 분들땜에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동학농민운동을 잘 살펴봐야 되는것임.
      외세의 개입이 없었다면, 각 국가들이 자율적으로 왕정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 할 수 있었을것이라는 단계의 시초가 동학농민운동이었기 때문.
      그래서 동학농민혁명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으로 인해 지배계층의 무능과 부패, 새로운 질서 확립의 필요성을 느꼈다는데 의의를 가진다는 것임.

    • @war.and.peace99
      @war.and.peace99 2 года назад

      @@시원한밥 너는 걔g라ㄹ 하는게 취미이신 것 가텨

  • @무명작가의인생강의
    @무명작가의인생강의 3 года назад +1

    이승만도 북진통일을 고집해서 전쟁 장기화의 책임잇슴

    • @user-gabo
      @user-gabo 3 года назад +9

      이왕하는 전쟁 북진통일해야되는게 당연한거임

    • @전도사-j6x
      @전도사-j6x 2 года назад +1

      장기적으로보면 그게 맞음. 지금 보셈. 자기 힘 없이 남의 손 빌려서 할려니까 못했지.

    • @수구레국밥-k9x
      @수구레국밥-k9x 2 года назад

      힘도 없는데 우긴다고 되나?

    • @MrPegasusfeather
      @MrPegasusfeather 2 года назад

      그때 통일 했으면 지금 대대로 이고생을 했겠슴

    • @진욱-f1n
      @진욱-f1n 2 года наза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북진통일을 주구장창 주장한게 얼마나 무능한건데ㅋㅋㅋㅋ 소련이랑 중국이 뒤에 있는데 북진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그게 능지가 떨어지는거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