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총이 신분의 한계를 넘어 뜻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신문왕의 리더십)

Поделиться
HTML-код
  • Опубликовано: 14 ноя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6

  • @kbcthink
    @kbcthink  2 года назад +2

    강혜영 강사님 강연 몰아보기 : ruclips.net/p/PLny0hGEMqxdde8RpM-WnFUxvNPEEDyvsB

  • @sunfghjk88
    @sunfghjk88 2 года назад +2

    원효스님 너무 좋아합니다~~♡

  • @Osca_J
    @Osca_J 2 года назад +3

    7세기 같은 화랑도 출신이셨던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 두분이 당나라로 가기위한 애로사항이 많으셨더라고요😂. 이부분은 상당히 더 잘아시니깐요. 당나라 화엄종 공부하기위해 비를 피하기 위해 굴속으로 들어갔던곳이 사람의 무덤이었하더라고요. 굴무덤식인지 맞는지 모르겠어요. 강혜영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어둠속에 목이 말라 해골인지 모르고 마셨던 해골물에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불교를 누구나 접할수 있게 어렵지않게 알리셨죠. 반대로 해골물인지 모르고 마신 의상대사님이 몹시 후회하셨다고🤣. 원효대사님의 아들이 설총이셨군요. 김춘추의 딸 요석공주와 원효대사님 사이에 낳으신 설총이셨군요. 화왕계의 의미와 김춘추 태종무열왕. 아들 문무왕. 손자인 신문왕과 성골.진골에 대해 직계와 방계식으로 골품제 구체적으로 이해쉽게 설명 잘해주셨습니다. 잘배웠습니다. 수고많으셨어요😆👍🎼.

  • @류승화-b2r
    @류승화-b2r 2 года назад +1

    설총이 이두를 만든 것이 아니라 집대성함.

  • @강대봉-e9d
    @강대봉-e9d 2 года назад +1

    '원효 대사와 요석 공주의 사랑'을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관점으로 해석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싶어 잠시 몇 자 적어볼까 합니다 ^^
    하이데거 철학과 사상을 이해하는데서 그의 저서를 문자적 축자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철학. 사상도 '자서전적 글쓰기'이기에 먼저 그의 일생을 역사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세계 내 존재', '현존재' 등 현학적 신조어 분석에 치중하는 건 자칫 "하늘 먹고 구름 똥 싸는 말잔치"에 빠지기 십상이거든요^^
    어느 국사 학자는, "우리나라 5천년 역사에서 가장 힘들게 살았을 법한 세대 톱3를 꼽아 소개한 바가 있었는데 그 중 셋째가 1580년생으로 10대 때 임진왜란을 겪은 걸 시작으로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으로 인생 자체가 '집 나가지 않았어도 개고생'했던 세대이고, 둘째는 1660년생으로 경신대기근. 을병대기근 등 한반도 역사상 최대 대기근을 다 겪으면서 고위 벼슬아치라도 굶어죽는 참사를 겪은 세대이고, 첫째 1위는 1220년생으로 몽골 침입으로 인한 전란을 어려서부터 겪어 온 인생 자체가 전쟁통, 그리고 관리들의 수탈로 인한 북새통을 함께 겪은 최악의 세대라고 하더군요. 너무 먼 과거사라서 실감이 안 날 수도 있지만, 지금 한국인 입장에선 1957년 닭띠생. 1958년 개띠생이 꽤 파란만장한 세대로 볼 여지가 있거든요^^ 3선개헌. 10월 유신체제. 광주학살. 오공육공 군부독재. 대통령들 수감 등 정치혼란. 북한 핵위협 등등 숨돌리기도 바쁜 피곤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세대지요.
    현대 독일의 대표 철학자 하이데거(존재와 시간)가 58개띠 생. 57닭띠 생과 비견되는 시대, 아니 훨씬 더 굴곡진 시대에서 삶을 영위했었습니다. 하이데거는 1889년생으로 비유컨대 신라 삼국통일 직후 전쟁통(보오전쟁, 보불전쟁 등)을 겨우 벗어났지만 독일(프로이센)이 통일제국이 되었으나 아직 국내.국외 상황은 북새통이던 시기에 태어났거든요. 1871년 300여개 공국을 통일한 이후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바그너(작곡가)를 앞세워 '반프랑스. 반가톨릭 문화투쟁'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사실상 루터파 개신교를 국교화하는 쪽으로 종교. 사상 통일을 밀어부치던 시기였고 이 과정에 '니체'는 비극의 탄생.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등을 써서 바그너와 비스마르크 정책들을 철학적 이론적 사상적으로 정당화시키는 작업을 적극 추진해 주었거든요. 마치 고 박종홍 서울대 철학 교수가 10월유신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했다는 썰이 돌았듯이요. 갈0근 등 서울법대 교수팀이 유신헌법을 기초한 사례도,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는 ~"를 쓴 거와 같은 맥락으로 추정됩니다^^
    암튼 하이데거는 300여개로 분열되었던 지금의 독일 지역이 비스마르크에 의해 전격 통일되어 독일제국이 성립된 시기이자 통일 후 국내 갈등이 폭발하여 마치 초한전쟁 때 마냥 다시 천하대란으로 가는 게 아닌가 우려되던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이듬해 총선에서 비스마르크의 당이 참패하고, 1890년 비스마르크는 재상에서 해임되고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된 격인 황제 빌헬름 2세는 보란 듯이 대외팽창 정책을 밀어부쳤고, 결국 (하이데거가 25세 때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나 주지하다시피 독일이 패망하고 황제는 퇴위 당하고 알자스ㅡ로렌 등 금싸라기 영토들을 다 빼앗기고, 수백년을 갚아도 다 갚지 못할 거란 전쟁배상금까지 떠안은 처지로 독일이 전락하던 때 하이데거는 20대를 보냈습니다. 그런 20대 철학과 학생이던 그가 '세계내 존재' 니 등등의 철학적 담론을 심심풀이 땅콩 까먹는 기분으로 시간 때우기로 사색했을까요? 어렵기로 가장 악명이 높다는 하이데거의 저서 '존재와 시간'이 출간되자마자 초베스트셀러가 되었었다는데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연애소설도 아닌데, 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요? '세계내 존재' 등 신조어들이 너무 신선하고 향후 재테크에 도움이 될 성 싶어서였을까요?
    제 소견엔 하이데거가 철학 교수 취임식에서 "하이 히틀러!"를 외치는 인사법으로 인사를 했었다는 썰과 존재와 시간이란 저서가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철학적으로 해설한 책이란 썰이 결정적으로 베스트셀러로 만들고 하이데거를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 철학자로 만든 동력이 아니었을까 추정됩니다 ^^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와 사랑을 '파계'로 보는 분들도 많듯이(붓다로드 자현 스님이 대표 격?) 하이데거가 나치에 협력한 지식인이냐 아니냐는 논란은 지금도 있지만, 분명한 건 하이데거는 마케팅의 귀재라 여겨집니다 ^^
    하이데거가 50세 때 히틀러는 2차세계대전을 일으켰는데, 하이데거가 여기에 부화뇌동했다는 증거도 없고 그럴 리도 없다고 보지만, 니체가 끝까지 비스마르크를 '위버멘쉬(니체 버전의 '메시아', 독일판 '나폴레옹')'라는 신념(사실상 신앙 차원)을 버리지 못 했듯, 하이데거도 히틀러가 후에 그런 괴물이 될 거란 예상은 못 했을 터이기에 '비스마르크의 화신(독일판 '나폴레옹')'이 되어 '독일제국의 영광'을 되찾아 주길 바랐을 것이고, 작금의 우리도 '백마 탄 초인'이 나타나 남북평화통일을 이뤄 주길 바라는 바와 맥락으론 같지 않을까요?^^
    독일제국이 1차 세계대전 패배 후, 히틀러가 집권해서 독일의 영광을 되찾겠다고 연설하는 라디오 방송을 들었을 때 40대였을 하이데거가 마음 속으로 "그건 됐고, 나는 철학자라서 '존재'라는 게 내 관심사거든. 그런 건 니나 알아서 해!" 하면서 신경을 껐을까요? '미력이나마 내가 독일의 영광을 회복시키는데 도움이 될 일은 없을까?' 싶은 생각에 히틀러가 감옥에서 썼다는 '나의 투쟁' 책을 대학 도서관에 가서 대출해 읽어보고 무슨 아이디어를 찾아보았지 싶다는 생각을 해보는 게 더 정상적인 추론이 아닐까요? ^^
    대한민국 지성사에서 가장 존경받는다는 고 박종홍 교수도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로 초청해 국난을 타개할 지혜를 구하자, 일본 명치유신을 예로 들어 아이디어를 줬다는 후문이 당시 대학가에 파다하게 돌았고, 고위직 제안은 사절했었다는 썰도 같이 회자되었었는데, 하이데거 입장도 비슷했지 않았을까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프랑스 버전으로 개작한 게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장군멍군' 하면서 독ㆍ프간 지성 대결을 펼친 셈 아니었을까요?
    마치 이광수가 상해 임정에서 돌아와 변명조로 소설 '가실'을 쓰자 김동인이 이광수의 행동을 배신이란 취지로 디스하는 소설 '언약'을 발표하고, 염상섭이 그런 김동인에게 일본유학파들끼리 디스하지 말라는 취지로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내놓자 김동인이 발끈하여 큰 대결로 비화될 조짐이 보이자 같은 일본 유학파인 채만식이 이들을 중재하는 취지를 담은 소설 '암소를 팔아서'를 발표하였지만 결국 이들의 화해는 물 건너 가고 이듬해 김동인은 결국 '발가락이 닮았다'를 발표해 당시 염상섭의 아들이 씨가 다를 거란 풍문을 소설화 하는 바람에 이들은 불공대천지원수가 되고 해방후에서야 김동인이 죽기 직전 '화해'했다는 한국 문학사의 전설이 회자되는 바와 비견되는 거 아닐까요?^^
    같은 맥락으로, 신라3국통일 전, 화엄경 "나무아미타불 10번만 외치면 (죽어도) 극락에 태어난다"는 구절을 이용해 당시 3국통일전쟁 중 '가미가제 특공대 정훈교육' 교재 삼아 '각설이타령'으로 신라 전역에 퍼뜨린 원효 대사 마냥, 니체나 하이데거도 조국을 위해 뭔가 기여하고자 노력했을 뿐 그게 나치에서 악용되었다고 나치 협력자로 매도할 수 있는 지는 의문입니다. 대법원 판례는 '순차적 공모에 의한 공동정범'으로 의률할 소지는 남겨두었으니까 논란은 계속될 수 있겠군요😱
    원효대사는 당시 신분제(6두품)의 한계상 자신의 역할에 미력함을 절감하던 차 "유레카!" 요석공주가 떠올랐지 않았을까요?(자현 스님은, "윈효가 치밀한 계획 하에 요석 공주를 작업했다"더라구요)^^ 성골급 진골인 왕족이자 돌씽인 요석공주는 원효대사가 3국통일에 기여할 뒷배로서 '신의 한 수'였지 않았을까요?^^ 하이데거는 40대 때 '히틀러가 독일의 나폴레옹이 되어주길 기대' 했듯이요^^
    원효성사는 고려 문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파계로 승적이 박탈되었었는데) '스님으로 복권' 시켰다더군요(붓다로드 자현 스님). 따로 학파도 없고, 종단도 없어 싸박질로 날밤을 새우던 당시 고려 불교계를 통합하기 위해 교선합일 시대정신의 구심점으로 삼기에 제격이라서였다더군요😍

  • @신동선-q4y
    @신동선-q4y 2 года назад

    설총은 요석공주의
    아들로 왕족 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