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정정 4:18 최영 장군이 '종묘사직'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종묘사직'이란 단어는 유교에서 쓰는 단어로 조선이 건국된 후에 사용해야 하는 건데 당시 영상을 제작할 땐 몰랐던 사항이라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실수를 줄일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시청에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분명 종묘와 사직은 주나라를 기본으로 내려오는 여러 중국의 예법을 집대성한 '예기'에서 언급되는 제도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종묘사직'이라는 표현이 유교 본위의 국가였던 조선에서만 사용되었고, 고려나 그 밖의 나라에서 사용되지 않았으리라고 단언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종묘(또는 태묘)'는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서울의 조선시대 종묘가 대표적이나, 삼국시대 이전부터 왕의 조상(또는 선대왕)을 신으로 섬겨 모시는 제단이 있었다는 내용을 여러 문헌적 또는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삼국사기' 中 '신라본기 신문왕 조'의 기사에서 '종묘'라는 표현이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형태가 유교에서 비롯되었든 아니면 그 전부터 내려오던 신앙 체계에서 근거하였든과 상관 없이 시조들과 선대왕을 제사지내는 사묘가 있었고 그것을 '종묘(또는 태묘)' 라고 불렀거나 동일시하였다고 볼 만 합니다. 다음으로 사직 역시 이와 유사합니다. 삼국사기 中 '신라본기 경순왕 조'의 기사엔 고려에 귀부하기로 결심한 왕 앞에 태자(마의태자라 불리는 인물)이 "(전략) 어찌 1,000년 사직(社稷)을 하루아침에 가벼이 남에게 주는 것 (후략)" 라고 언급하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물론 삼국사기는 후대에 저술된 것이므로 해당 기록이 나말여초 무렵에 사용된 어휘를 그대로 옮겼다고 생각할 수 없을 수 있겠으나 적어도 고려 인종 대에 김부식이 편찬했을 당시엔 조정에서 사용할 만한 어휘로 여겨졌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고려는 사대부의 유교가 아니라 귀족들과 그들이 신앙한 불교를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한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성종 대에 최승로가 건의해 받아들인 '시무28조' 등에서 "유교는 치국의 근원"이라 밝힌 바와 같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있어 유교를 아주 등한시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장려한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따라서 유교를 국가적 차원해서 장려하고 불교를 사갈시했던 조선과 대비하는 개념으로 삼아 쉽사기 '예기'에서 언급되는 '종묘사직'이 고려에선 없었으리라고 단정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물론, 최영이 임금에게 '종묘사직을 보존'하시라 충언했으리라고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없지만, 오늘날까지 여러 사극에서 해당 표현이 조정을 두루 살펴 국태민안하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된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사용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
@@대구사람-t8t 최영이 기득권이라서가 아니라 이인임이 공민왕에게서 직접 임명된 우왕의 후견인이라는 직함이 있었기 때문에 명분상 이인임을 비롯한 그 일당을 바로 쳐낼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명분이라는 건 최영만 지킨 것도 아니고 오히로 신진사대부들이 더 심하게 주장했죠 이성계 아니었음 더 못했을겁니다
종묘와 사직은 유교 용어로서 조선이 건국된 후에나 사용되는 것인데 당시에는 이러한 정보를 모른 상태에서 영상을 제작하다보니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놓치고 있던 부분 지적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부터는 이와 같은 실수를 최대한 줄일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류정정
4:18
최영 장군이 '종묘사직'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종묘사직'이란 단어는 유교에서 쓰는 단어로 조선이 건국된 후에 사용해야 하는 건데 당시 영상을 제작할 땐 몰랐던 사항이라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실수를 줄일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시청에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분명 종묘와 사직은 주나라를 기본으로 내려오는 여러 중국의 예법을 집대성한 '예기'에서 언급되는 제도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종묘사직'이라는 표현이 유교 본위의 국가였던 조선에서만 사용되었고, 고려나 그 밖의 나라에서 사용되지 않았으리라고 단언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종묘(또는 태묘)'는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서울의 조선시대 종묘가 대표적이나, 삼국시대 이전부터 왕의 조상(또는 선대왕)을 신으로 섬겨 모시는 제단이 있었다는 내용을 여러 문헌적 또는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삼국사기' 中 '신라본기 신문왕 조'의 기사에서 '종묘'라는 표현이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형태가 유교에서 비롯되었든 아니면 그 전부터 내려오던 신앙 체계에서 근거하였든과 상관 없이 시조들과 선대왕을 제사지내는 사묘가 있었고 그것을 '종묘(또는 태묘)' 라고 불렀거나 동일시하였다고 볼 만 합니다.
다음으로 사직 역시 이와 유사합니다. 삼국사기 中 '신라본기 경순왕 조'의 기사엔 고려에 귀부하기로 결심한 왕 앞에 태자(마의태자라 불리는 인물)이 "(전략) 어찌 1,000년 사직(社稷)을 하루아침에 가벼이 남에게 주는 것 (후략)" 라고 언급하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물론 삼국사기는 후대에 저술된 것이므로 해당 기록이 나말여초 무렵에 사용된 어휘를 그대로 옮겼다고 생각할 수 없을 수 있겠으나 적어도 고려 인종 대에 김부식이 편찬했을 당시엔 조정에서 사용할 만한 어휘로 여겨졌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고려는 사대부의 유교가 아니라 귀족들과 그들이 신앙한 불교를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한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성종 대에 최승로가 건의해 받아들인 '시무28조' 등에서 "유교는 치국의 근원"이라 밝힌 바와 같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있어 유교를 아주 등한시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장려한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따라서 유교를 국가적 차원해서 장려하고 불교를 사갈시했던 조선과 대비하는 개념으로 삼아 쉽사기 '예기'에서 언급되는 '종묘사직'이 고려에선 없었으리라고 단정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물론, 최영이 임금에게 '종묘사직을 보존'하시라 충언했으리라고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없지만, 오늘날까지 여러 사극에서 해당 표현이 조정을 두루 살펴 국태민안하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된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사용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
7:11 임진강에 던졌어ㅠㅠ
진짜 대단 감탄 이렇게 좋은채널 감사합니다
이 채널 너무 좋아요! 일 하면서 노래 대신 듣고 있어요!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잘 풀어주시네요~!
조금씩 보면서 이해하려고 했는데 너무 재밌어서 계속 보고있네요 ㅠ
댓글이 생각보다 없네요 정말 좋은 기획같습이다
안녕하세요 최영장군 후손 입니다 백제 사람 이에요
최영은 고려를위해 사방팔방 뛰었지만 결국 우왕으로인해 말년이너무 안좋았죠!
고려 일진 대장 최영과 라이징 스타 이성계~!!!!!!
큰일이다 너무 재미있어
어디서 많이본 캐릭터 같더니 역시 메이플스토리에서 따왔구나 ㅋㅋㅋㅋ
최영장군은 이순신 못지 않네요..
저에건 고려 10대 장군입니다
최영 장군의 업적과 우직함은 위대하신분인건 맞는데 사극을 보면 이인임이나 또 다른 무리들에 대해
관대하고 우유부단 했던거 같음 그래서 그런지 말로가 너무 안좋게 끝난거 같아요
최영 자체가 결국 기득권 출신이니 강경하기가 어려웠죠..
@@대구사람-t8t 최영이 기득권이라서가 아니라 이인임이 공민왕에게서 직접 임명된 우왕의 후견인이라는 직함이 있었기 때문에 명분상 이인임을 비롯한 그 일당을 바로 쳐낼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명분이라는 건 최영만 지킨 것도 아니고 오히로 신진사대부들이 더 심하게 주장했죠 이성계 아니었음 더 못했을겁니다
조선 끝나고 고려도 꼭 부탁드려요 너무 재밌어요ㅠ
저도 꼭 고려, 삼국시대, 고조선까지 다 하고 싶습니다 ㅎㅎ
그 때까지 함께 해주실거죠? ㅎㅎㅎ
@@Joseon-Dynasty 당연하죠 넘나 재밌어요ㅠ
내생각 고려 7대장군
신숭겸 윤관 박서 김경손 정중부
최영. 김윤후
최영이 평생 나라에 목숨바치고...끝이 안좋네.
최영장군이 종묘사직 이란 말은 쓰지 않았겠죠?
종묘와 사직은 유교 용어로서 조선이 건국된 후에나 사용되는 것인데 당시에는 이러한 정보를 모른 상태에서 영상을 제작하다보니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놓치고 있던 부분 지적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부터는 이와 같은 실수를 최대한 줄일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Joseon-Dynasty 네~ 댓글 감사해요. 그리고 ~하든 안하든(선택) ~하던 (과거) 이게 틀리는 자막이 여럿 보여요~ 한국사이니 정확한 한글 자막도 같이 보였으면 싶어요! 잘보고 있으니 힘내세요!
@@chrisyu3047 시청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ㅠ 제가 한글 문법쪽이 약한지라 앞으로는 더욱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원정책의 공민왕이 원나라의 원군요청에 순순히 최영장군을 보내줬었나요??
공민왕은 즉위 후 5년 쯤 지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반원정책을 실시했습니다
최영장군을 원나라로 파견한 건 그 5년 안에 일어난 일이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Joseon-Dynasty 아하~~ 답변 감사합니다^^
친해지고 싶다...
종묘사직은 조선시대 단어 아닌가요?
앗! 오류 죄송합니다 ㅠㅠ
발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최영장군님 집안 벽돌수 만큼 황금도 많았더라는....금수저가 아니라 다이아몬드 수저
ㅋㅋㅋ저정도 신분이면 당연히 많은 수의 사병도 있었을테니 사실 가난하진 않았죠ㅋㅋ
자야해ㅠ
다 주무셨죠? 이제 일어나서 영상 보세요! ㅎㅎ
장난이구요 늦은 시간까지 시청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왕이 얼마나 막장이였으면 이쁘면 그 누구든 그냥 강간하고 봤던 충혜왕은 사람이 없는곳에서 겁탈함 근데 우왕은 그딴거 없음 ㅋㅋㅋ 걍 이쁘면 겁탈임 ㅅㅂ 이러니까 최영이 빡치지
그래서 근본이 중요한듯
황현필이 보다 백배낫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