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문장에서 in der Tal은 in der Tat를 Kant가 오타한 것이 아닐까요? B ⅩⅩⅣ Dieser aber wird alsbald positiv, wenn man inne wird, daß die Grundsätze, mit denen sich spekulative Vernunft über ihre Grenze hinauswagt, in der Tal nicht Erweiterung, sondern, wenn man sie näher betrachtet, Verengung unseres Vernunftgebrauchs zum unausbleiblichen Erfolg haben…
안녕하세요, 김상현 선생님께서 답변주셔서 댓글 달아드립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펠릭스 마이너 판은 in der Tat라고 되어 있습니다. 학술원판은 제가 학교 연구실에 가지고 있어서 필요하다면 추후 확인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인쇄의 실수이든 칸트의 오타이든 내용상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으므로 그냥 in der Tat라고 읽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린비아카데미-p8e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 3부 강의가 취소된 지 1년 반이 되는데 아직 재개 계획이 없는지 여쭙습니다. 혹시 선생님이 현강 출강하실 시간이 안 된다면 녹강이라도 제작을 타진해주실 수 없을지요. 개인적으로 칸트 강의 중 가장 유익한 강의라 생각해서 꼭 완결을 보고 싶습니다. 고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형이상학의 어원에 대한 설명이 잘못되었기에 바로잡습니다. "metaphysica" 즉 형이상학이란 이름은 BC1세기에 활동했던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에 속한 희랍인 안드로니코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을 정리할 때, 형이상학에 관한 저술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를 몰라서 "physica" 즉 자연학 다음에(meta) 배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희랍어에서 "meta"는 전치사로서 "다음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metaphysica란 말의 원래의 뜻은 "physica 다음에"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상현 선생님께서 답변주셔서 댓글 달아드립니다. 예, 위 내용은 역사적 정설로 알려진 내용입니다. 제가 강의한 내용을 확인해 보니 위 사실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없더군요. 강의에서 전달하고 한 내용은 metaphysica의 내용상 위상, 혹은 physica와의 논리적 관계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래와 같이 정리하면 오해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사적/시간적 순서(meta의 사전적 의미): physica - metaphysica **내용적/논리적 순서(meta의 실질적 의미): metaphysica - physica 즉, 형이상학은 책의 정리 순서 및 단어의 사전적 의미로는 물리학(자연학) 다음이지만, 그 내용은 물리학(자연학)의 근거를 밝히는 것이므로 근거-귀결이라는 논리적 순서를 고려할 때, 물리학(자연학) 이전에 물리학(자연학)의 가능근거를 밝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가로, 오늘날 meta를 접두어로 한 거의 모든 새로운 용어들은 '~다음에'라는 시간적 순서의 의미보다는 '~ 관해' 정도의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보충하자면 'meta 다음에 등장하는 것(가령 A라고 한다면)에 관해 그 A에 대해 비판하거나 A가 성립할 수 있는 근거를 밝힘으로써 A를 넘어서는 활동'에 대해 지칭하고자 사용한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AⅩⅣ '… und gleichwohl sind sie ohne Vergleichung gemässigter, als die, eines jedes Verfassers des gemeinsten Programms, der darin etwa die einfache Natur der Seele, oder die Notwendigkeit eines ersten Weltanfanges zu beweisen vorgiebt.'에서 eines jedes Verfassers의 예로 어떤 철학자를 들 수 있을까요? Theodor Valentiner의 독어판이나 PAUL GUYER의 영역판에도 이에 대한 주석이 없네요~~
누구 도와주실 분~~ 제가 독일어 실력이 거의 초보 수준이라서 다음 문장 중 mit unserem과 zu gelangen이 어디에 걸리는지 몰라 정확한 해석이 안 되어 답답합니다. B ⅩⅩⅠ Nun bleibt uns immer noch übrig, zu versuchen, ob sich nicht in ihrer praktischen Erkenntnis Data finden, jenen transzendenten Vernunftbegriff des Unbedingten zu bestimmen, und auf solche Weise, dem Wunsche der Metaphysik gemäß, über die Grenze aller möglichen Erfahrung hinaus mit unserem, aber nur in praktischer Absicht möglichen Erkenntnisse a priori zu gelangen.
안녕하세요, 김상현 선생님께서 답변주셔서 댓글 달아드립니다. 이런 정도 번역하면 아마 어디에 걸리는지에 대해 약간의 답변이 될 것 같습니다. 직역: "이제 우리에게는 여전히 항상 다음과 같은 시도가 남아 있다. 즉 우리의 의도(mit unserem), 그러나 단지 실천적 의도에서만, 가능한 선험적 인식에 다다를 수 있는 자료(Data)들이 이성의 실천적 인식에서 발견되지는 않을까 하는 시도가 그것이다." 문의한 부분만 약간 의역하자면, "우리에게는 단지 실천적 의도에서만 가능한 선험적 인식을 성취(획득)할 수 있는 자료들이 ..." 정도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mit unserem은 aber 이하와 동격으로 '단지 실천적 의도에서만'이라고 mit unserem의 의미를 분명히 하는 것, 즉 Absicht에 걸리는 것이고, zu gelangen은 Data에 걸리는 것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의도??..의도 Absicht 여성명산데..그럼 mit unserer가 되야지요. 그리고 문맥상 의미도 안맞습니다. mit unserem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단어는 의미상 뒤에 오는 Erkenntnisse 일 수 밖에 없는데.. 이 또한 문법상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Erkenntnisse 는 복수형이기 때문이고..전치사 mit과 같이 쓰일려면 mit unseren Erkenntnissen 이 되어야 하거나...아니면 단수형인 mit unserem Erkenntnis 라고 해야 하는데.. 아마 칸트가 오기를 했거나..당시 출판사에서 인쇄를 잘못했거나..했을 겁니다. 전문에 걸쳐 이런 문법적 오류들이 적지 않게 나오니 말이죠.
@@이카피지각은 perception이고 통각은 apperception입니다. 통각이란 지각에 항상 동반하면서 다양한 지각들을 통일하는 의식입니다. 검색만 잠깐 해도 나오는 걸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자의적 해석하면서 남들 깎아내리는 건 국격 떨어뜨리는 짓임을 유념하십시오.
감성-상상력-지성-이성을 통합하면 자아가 될 터인데, 통각의 topos는 자아입니다. 자아는 인식의 출발점이자 목적지입니다. '나는 인식했다'에서 인식의 주체인 '나'는 자아이고 그 자아가 완수한 인식의 근거가 통각입니다. 자아의 관점에서 지각의 완성을 주재하는 topos가 통각입니다. 칸트 인식론에서 자아가 등장하는 유일한 대목이 통각입니다. 분석(분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분열상인데)을 통해 알려진 지각의 분열상을 통일하는 것은 자아가 유일하고, 그 통일을 수행하는 기능이 통각입니다. 감성이나 지성은 자아의 부분으로 그들이 하는 일은 주로 분석입니다. 유기적으로 보면 그것들은 분석기능이고, 자아는 분석기능들의 총체(=통각)입니다. '비판=분석(나누다)'의 기조에서 보면 자아는 '순이비'에서 어울리지 않은 개념인 것은 분명합니다.
애는 나눔을 통해 진가가 드러남.....지식을 선물로 바꾸면 지혜가 되고, 그것을 나누는 이는 철학자(애지자)임......철학을 사랑하는 사람.....
다음 문장에서 in der Tal은 in der Tat를 Kant가 오타한 것이 아닐까요?
B ⅩⅩⅣ
Dieser aber wird alsbald positiv, wenn man inne wird, daß die Grundsätze, mit denen sich spekulative Vernunft über ihre Grenze hinauswagt, in der Tal nicht Erweiterung, sondern, wenn man sie näher betrachtet, Verengung unseres Vernunftgebrauchs zum unausbleiblichen Erfolg haben…
안녕하세요, 김상현 선생님께서 답변주셔서 댓글 달아드립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펠릭스 마이너 판은 in der Tat라고 되어 있습니다. 학술원판은 제가 학교 연구실에 가지고 있어서 필요하다면 추후 확인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인쇄의 실수이든 칸트의 오타이든 내용상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으므로 그냥 in der Tat라고 읽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린비아카데미-p8e 감사합니다. ^.~
3부 동영상은 언제 올려 주시나요?
1~2부 16개 동영상 2번씩 모두 보았습니다.
3부는 김상현 선생님의 개인사정으로 인해 잠정중단 상태입니다..! 강의가 재개되면 알려드릴게요^_^
@@그린비아카데미-p8e 감사합니다. ^.~
@@그린비아카데미-p8e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 3부 강의가 취소된 지 1년 반이 되는데 아직 재개 계획이 없는지 여쭙습니다. 혹시 선생님이 현강 출강하실 시간이 안 된다면 녹강이라도 제작을 타진해주실 수 없을지요. 개인적으로 칸트 강의 중 가장 유익한 강의라 생각해서 꼭 완결을 보고 싶습니다. 고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강의가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3강을 혹시 하셨나요?
형이상학의 어원에 대한 설명이 잘못되었기에 바로잡습니다. "metaphysica" 즉 형이상학이란 이름은 BC1세기에 활동했던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에 속한 희랍인 안드로니코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을 정리할 때, 형이상학에 관한 저술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를 몰라서 "physica" 즉 자연학 다음에(meta) 배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희랍어에서 "meta"는 전치사로서 "다음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metaphysica란 말의 원래의 뜻은 "physica 다음에"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상현 선생님께서 답변주셔서 댓글 달아드립니다.
예, 위 내용은 역사적 정설로 알려진 내용입니다. 제가 강의한 내용을 확인해 보니 위 사실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없더군요. 강의에서 전달하고 한 내용은 metaphysica의 내용상 위상, 혹은 physica와의 논리적 관계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래와 같이 정리하면 오해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사적/시간적 순서(meta의 사전적 의미): physica - metaphysica
**내용적/논리적 순서(meta의 실질적 의미): metaphysica - physica
즉, 형이상학은 책의 정리 순서 및 단어의 사전적 의미로는 물리학(자연학) 다음이지만, 그 내용은 물리학(자연학)의 근거를 밝히는 것이므로 근거-귀결이라는 논리적 순서를 고려할 때, 물리학(자연학) 이전에 물리학(자연학)의 가능근거를 밝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가로, 오늘날 meta를 접두어로 한 거의 모든 새로운 용어들은 '~다음에'라는 시간적 순서의 의미보다는 '~ 관해' 정도의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보충하자면 'meta 다음에 등장하는 것(가령 A라고 한다면)에 관해 그 A에 대해 비판하거나 A가 성립할 수 있는 근거를 밝힘으로써 A를 넘어서는 활동'에 대해 지칭하고자 사용한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해결했습니다. ㅎㅎ
erfahrungsfreien는 A Ⅻ의 unabhängig von aller Erfahrung(모든 경험에서 독립하여), AⅩⅦ의 frei von aller Erfahrung(經驗에서 자유로이)의 뜻으로 Kant가 만든 용어인 것 같네요~~
AⅩⅣ '… und gleichwohl sind sie ohne Vergleichung gemässigter, als die, eines jedes Verfassers des gemeinsten Programms, der darin etwa die einfache Natur der Seele, oder die Notwendigkeit eines ersten Weltanfanges zu beweisen vorgiebt.'에서 eines jedes Verfassers의 예로 어떤 철학자를 들 수 있을까요? Theodor Valentiner의 독어판이나 PAUL GUYER의 영역판에도 이에 대한 주석이 없네요~~
누구 도와주실 분~~
제가 독일어 실력이 거의 초보 수준이라서 다음 문장 중 mit unserem과 zu gelangen이 어디에 걸리는지 몰라 정확한 해석이 안 되어 답답합니다.
B ⅩⅩⅠ
Nun bleibt uns immer noch übrig, zu versuchen, ob sich nicht in ihrer praktischen Erkenntnis Data finden, jenen transzendenten Vernunftbegriff des Unbedingten zu bestimmen, und auf solche Weise, dem Wunsche der Metaphysik gemäß, über die Grenze aller möglichen Erfahrung hinaus mit unserem, aber nur in praktischer Absicht möglichen Erkenntnisse a priori zu gelangen.
안녕하세요, 김상현 선생님께서 답변주셔서 댓글 달아드립니다.
이런 정도 번역하면 아마 어디에 걸리는지에 대해 약간의 답변이 될 것 같습니다.
직역: "이제 우리에게는 여전히 항상 다음과 같은 시도가 남아 있다. 즉 우리의 의도(mit unserem), 그러나 단지 실천적 의도에서만, 가능한 선험적 인식에 다다를 수 있는 자료(Data)들이 이성의 실천적 인식에서 발견되지는 않을까 하는 시도가 그것이다."
문의한 부분만 약간 의역하자면, "우리에게는 단지 실천적 의도에서만 가능한 선험적 인식을 성취(획득)할 수 있는 자료들이 ..." 정도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mit unserem은 aber 이하와 동격으로 '단지 실천적 의도에서만'이라고 mit unserem의 의미를 분명히 하는 것, 즉 Absicht에 걸리는 것이고, zu gelangen은 Data에 걸리는 것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린비아카데미-p8e 고맙습니다. 이제 문장의 앞뒤와 문맥이 통하네요. ^.~
우리의 의도??..의도 Absicht 여성명산데..그럼 mit unserer가 되야지요. 그리고 문맥상 의미도 안맞습니다. mit unserem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단어는 의미상 뒤에 오는 Erkenntnisse 일 수 밖에 없는데.. 이 또한 문법상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Erkenntnisse 는 복수형이기 때문이고..전치사 mit과 같이 쓰일려면 mit unseren Erkenntnissen 이 되어야 하거나...아니면 단수형인 mit unserem Erkenntnis 라고 해야 하는데.. 아마 칸트가 오기를 했거나..당시 출판사에서 인쇄를 잘못했거나..했을 겁니다. 전문에 걸쳐 이런 문법적 오류들이 적지 않게 나오니 말이죠.
을 읽으면서 가장 안개속인 것이 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흐름의 영토에서 통각의 topos는 어디인가요? 지성과 이성 사이 어디 쯤 아닐까 혼자 짐작해 봅니다만, 캄캄합니다. 아시는 분 불을 밝혀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말로 지각을 일본학자들의 번역을 그대로 가져와서 통각으로 번역한 듯 하네요
일본학자들 허세와 기득권이 쩔어서 자꾸 한자어를 만들어서 일반인들이 접근하는 것을
방해한 듯 하네요
그들만의 리그...우스운 족속들
@@이카피지각은 perception이고 통각은 apperception입니다. 통각이란 지각에 항상 동반하면서 다양한 지각들을 통일하는 의식입니다. 검색만 잠깐 해도 나오는 걸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자의적 해석하면서 남들 깎아내리는 건 국격 떨어뜨리는 짓임을 유념하십시오.
감성-상상력-지성-이성을 통합하면 자아가 될 터인데, 통각의 topos는 자아입니다. 자아는 인식의 출발점이자 목적지입니다. '나는 인식했다'에서 인식의 주체인 '나'는 자아이고 그 자아가 완수한 인식의 근거가 통각입니다. 자아의 관점에서 지각의 완성을 주재하는 topos가 통각입니다. 칸트 인식론에서 자아가 등장하는 유일한 대목이 통각입니다. 분석(분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분열상인데)을 통해 알려진 지각의 분열상을 통일하는 것은 자아가 유일하고, 그 통일을 수행하는 기능이 통각입니다. 감성이나 지성은 자아의 부분으로 그들이 하는 일은 주로 분석입니다. 유기적으로 보면 그것들은 분석기능이고, 자아는 분석기능들의 총체(=통각)입니다. '비판=분석(나누다)'의 기조에서 보면 자아는 '순이비'에서 어울리지 않은 개념인 것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