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왕장구 하 8장 제선왕이 물었다. “상나라 탕왕이 하나라 걸왕을 추방하고,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 주왕을 정벌하였다 하는데, 정말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역사책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선왕이 말하였다. “신하가 자기 군주를 시해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하며, 이러한 잔적한 사람을 ‘일부’라 합니다. 저는 주나라 무왕이 일부인 주를 주살하였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가 자기 군주를 시해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주 탕은 은상을 개국한 임금이다. 고대의 전설에 의하면, 하나라 걸왕이 포악하자 탕은 군사를 일으켜 그를 토벌하고 남소(南巢)로 유배시켰다고 한다 상나라 주왕이 무도하자 주나라 무왕은 문왕의 목주(木主 : 위패)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군사를 일으켜 그를 토벌하였다. 주왕은 스스로 불에 타 죽었다. 시, 주(弑, 誅) (시해, 주살로 번역) 이 두 글자는 각각 포폄(褒貶)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포폄 : 옳고 그름이나 선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함) 신하가 도리에 맞지 않게 임금을 살해하는 것과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것은 모두 ‘시’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죄인을 정의에 부합되게 토벌하여 죽인다면 ‘주’를 썼다. 일부주(一夫紂) (‘일부인 주’로 번역, 여기서 주는 상나라 주왕을 의미함) 일부주(一夫紂) : 독부주(獨夫紂)의 의미이다(‘독부주’는 《순자 · 의병(荀子 · 義兵)》에 인용된 《서경 · 태서(書經 · 泰誓)》의 말이다). ‘독부’와 ‘일부’는 모두 군중의 지지를 잃고 외톨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출처 : 맹자, 우재호 옮김, 을유문화사 149-150쪽 (주는 책에 있는 각주의 내용을 최대한 옮기되 일부 가감이 있습니다)
이런거보면 가장 망나니같고 빽도 집안도 노력도 안하던 평민출신인 유방이 세운 한나라가 오래간걸보면 가장 민심에 대해 잘 알수있던 사람이여서 그런가 싶기도 하네요. 물론 그도 전쟁통에 자기자식도 버릴려했고 애비죽인다고 협박해도 신경안쓰고 백성들을 약탈도 했죠. 항우를 이길수있었던 이유는 자기말대로 인재를 잘 사용했기때문이라지만.
조조나 도겸이나 도긴개긴인것 같네요^ ^;; 아버지가 비참하게 돌아가신건 슬프지만 백성을 하찮게 여기고 도륙한 것 자체가 쉴드 칠수는 없죠ㅠ 도겸이 역적 궐선과 연합한것 까진 알고 있었는데 제가 몰랐던 도겸의 만행까지 알려주시고ㅋ 감사드려요 ~ P.s 안녕하세요~ 오래 전부터(제갈량 북벌 시리즈 영상 등) 영상을 눈팅만 하고 있었는데ㅠㅜ 심사숙고 끝에 첫 글을 남깁니당. 정사 삼국지에 대해 알고 싶어서 청화수님 영상을 접했는데 덕분에 제가 알고 있었던 삼국지에 대한 고정 관념(조조=나쁜 인물, 유비=선한 인물 등)이 벗겨졌어요. 여러 관점들을 소개 주셔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었어요 ^^* 다른 영상들도 재미있게 듣고 있어요 ㅋ 영상을 통해 힘들었던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ㅠㅜ 역사를 초월해서 인생을 배우는 거 같아요😭 목소리도 책 읽어 주듯이 좋으시고 멋지세여~ 요즘 생업은 어떠세요?? 코로나 때문에 많이 힘든 시기인데 고생하시는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21년에도 재미있는 영상 기대할게요. 건강 유의하세요^ ^*
청화수님은 조조의 서주 대학살을 개인적인 원한에 초점을 맞추고 계시네요 임용한 박사님은 당시 주변 세력과의 패권 주도 때문에 전략적인 차원으로 서주 대학살을 주장하고 계시더군요 누구의 의견이 맞는 건지 모호하지만, 분명 조조의 서주 대학살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며, 실질적으로도 조조가 평생 감수해야 할 아킬레스건이었습니다
@@MrBolja2 관점이란것도 나름의 근거가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죠. 전략적 판단이라고 한다면 조조는 어떤 목표를 이루어야 할텐데, 서주대학살을 통해서 어떤 이득을 얻었나요? 아버지의 원수인 도겸 혹은 도겸의 수하들에게 갚기라도 했나요? 도겸의 실질적 계승자인 유비를 죽이기라도 했나요? 뭐, 그분께선 초토화 자체에 의미를 둔다고 했는데... 글쎄요. 초토화를 했다면 조조는 왜 서주를 점령하지도 못하고 도겸일파를 잡지도 못했나요? 무슨 몇년뒤 여포잡는데 서주대학살이 도움됐다고 말씀하실 건 아니잖아요? 애초에 조조를 좋게 평가한다면 이걸 전략적 평가라고 포장하는게 더 어이없는 일 일겁니다. 서주파 인재들로부터 반조조 감정을 만들어 적벽대전이라는 큰 스노우볼을 형성하고, 얼떨결에 유비를 스타로 만들었으며, 병사들에게 명을 내려 백성을 도륙한 군주라는 오명을 남기게 한 이 사건을 어떻게 전략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나요? 조조만이 아니라 다른 군웅들도 마찬가지로 목숨 보기를 잡초보듯 했겠지만, 백성들이 자국의 관군에게 죽는건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근대시대 전이라 할지언정 그 시대라고 해서 인간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청화수님도 결국은 백성의 민심이 결정적이라고 하신거죠. 이걸 전략이 아니라고 하는게 아니라고 해야 되려 조조를 높히 평가하는 겁니다. 그저 아버지의 죽음에 눈돌아간 한 미쳐버린 아들로서 그를 바라봐야 하는게 타당하죠. 다시 돌아와서, 관점이라는건 나름의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근거가 없으면 허무맹랭한 소리에 불과하죠. 자, 조조가 서주대학살을 한 것이 전략적 판단이었다면 이로서 조조가 얻은 이득은 무엇이었나요?
@@니가그래서안돼는겨 아닛, 그래서 뭘 얻었냐고요. 애초에 저걸 최선의 수라고도 볼 수도 없지 않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을 도륙하는 리스크를 안고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계산하고 저짓거리를 했다는 겁니까? 게다가 결과론적이라뇨. 애초에 백성을 죽인다는 건 그정도 스노우볼이 없을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게 오히려 조조와 그 책사들을 무시한 것 아닙니까? 왜 조조의 측근들은 이 행동을 말렸으며 위 정통성을 기반한다는 진수의 서술조차 도륙을 행했다고 기록했을까요? 당대 그 누구도 그의 판단이 그릇됨을 알았고, 늘 기회주의자에 최선의 한 수만을 두던 조조가 대형 병크를 터뜨리는 것에 놀라서 그런 것 아닙니까? 게다가 초토화의 실패여부라뇨? 애초에 도겸 유비까지 뽑아내야 그게 초토화라할 수 있는거 아닙니까? 실패의 부라는 걸 왜 모릅니까? 전쟁도 아니고, 님들이 주장하시는 초토화의 성공여부는 간단하죠. 조조가 양민을 도륙하면서 쭉 나아가서 모든 일의 원흉인 도겸을 잡아 족치는가 마느냐. 거, 아니면 그 누구도 서주의 땅에서 거병할 수 없도록 완전한 멸을 행하던가. 둘 다 아니죠? 조조가 어느 조건을 달성하기를 포기하는 그 순간이 바로 초토화 실패란겁니다. 뭔 논리에 결과론적만 붙히면 다 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조조가 실패할 줄 알았으면 하지도 않았다고 하셨는데, 왜들 그렇게 그걸 포장하시려 합니까? 서주대학살은 그 실행 결행부터 진행, 결과까지 조조라는 세력의 오점만을 남길 것이라 예상된 일입니다. 과거 백기와 항우가 수십만에 달하는 사람을 생매장하고 죽일 때, 어떤 이들도 이 행동에 칭찬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큰 일을 이루려면 대의를 따라야하는데, 대의의 상징인 민중을 학살한 그들을 누가 따르겠습니까? 서주파 인재들의 원한과 학살이라는 오명까지도 예상하고 실행했더니 성공까지는 못하고 어찌저찌 마무리 되었다? 이보세요. 님이 말했죠? 최선의 한 수를 두는데 그걸 꼭 결과론적으로 해석하면 안된다고? 만약 최선의 한 수를 생각했다면, 조조는 학살 그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뻔히 보이는 민심잃는 지름길을 가진 않았을 테니 말이죠. 그거 아세요? 조조는 이 일로 여포의 배신을 촉진시키고 순욱과 정욱이 지키던 2개현을 제외하고 모든 현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왜냐고요? 백성을 죽였으니까요! 그런 당연한 것을 미쳐 계산도 못하고 조조 나름대로 생각해서 저질렀다? 그게 오히려 "최.선.의.한.수"를 둔다는 군웅으로선 머리가 너무 멍청한거 아닙니까? 그걸 2차례에 걸쳐서 했다는 것은 그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픔으로 반 미쳐서 그렇게 판단한 걸로 보는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더불어 그의 인성문제도 엿보이고요. 저는 뭐 당연하게도 결론을 참고해서 말을 하는게 큽니다. 다만, 과연 이걸 결론까지 봐야만 망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조조의 모든 군신과 당대의 모든 군웅들, 그리고 위 정통성의 저술자 진수와 이바닥 권위자 배송지, 그리고 각종민담까지 정통한 나관중까지 모든 이들이 한 입으로 말하는 일들을 계획적인 일이었다고 하는게 과연 개연성이 있어보이시나요? 헌제의 장인 동승이 조조암살을 모의하다 걸려서 그 일가족이 몰살 당한 것은 조조의 인성문제도 있으나 아무도 계산이 아니었다고 하기엔 힘들 겁니다. 정치적 알력과 신변의 보장 등의 관점만 보더라도 말이죠. 그러나 서주 대학살을 ㅇㅇㅎ씨처럼 무조건 뒤집기 식으로 이건 사실 모두 계획이었다고 말하는건 무리가 아닐까요? 역사라는 건 그 특성상 관점을 여럿 있을 수 있는데, 이건 조조를 폄하하는 게 아니라면 하나의 관점외에는 바라보기가 힘든 드믄 사건입니다. 그저 아비잃은 아들이라 보는게 타당하다는 거죠.
임용환박사님말씀하시는거죠? 박사님이 늘 말씀하시는게 그 때 당시 도덕윤리관이랑 지금이랑 같이 보면안된다는거더라구요. 조조를 절대옹호하는것도아니라고하셨었고. 청화수 선생님은 조금 더 사람의 생명을 중심으로 생각하신거고 임박사님은 정세나 조조의 상황을 중심으로 말씀을 하셨던것같습니다. 두분 다 좋은말씀을 해주셔서 폭넓게 한사건에 대한 생각을 할수있어서 좋았습니다. 말씀해주신김에 임박사님 영상보고 이 영상도 다시 들어봐야겠내요 ㅋㅋ 감사합니다 조형남 선생님
@@jymin465 하하핫, 선생님이라뇨ㅎ. 제가 위에서 댓글을 공격적이고 싹바가지 없게 썼는데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만, 임용한님 의견에 앞뒤가 맞지 않은 점이 있다는 거였죠. 당시 도덕윤리관이 지금이랑 같지 않다고 하신 부분말이죠.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사람 목숨 소중한건 그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으로 보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중국의 전란의 시기인 춘추전국시대는 지금까지도 여러 불우한 사건들(분서갱유&문화대혁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찬란했던 백가쟁명의 유산을 낳았습니다. 문학적 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어떻게 해야 백성이 평안케 지낼 수 있는지까지 담겨있는 것들 말이죠. 그러한 인문학적 고찰을 무시하고 볼 순 없다는 거죠. 지금 우리의 도덕관이 서양식 도덕관으로 더 자리잡혀서 그렇지 당장에 100년전만 하더라도 유가에서 주창한 인의예지를 얼마나 잘 따르고 살았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가치관도 무려 조조가 태어나기 몇백년 전부터 존재해왔고, 조조 본인도 그러한 분야에서 문학적 소질도 있었지 않습니까? 정치는 쇼라곤 하지만 대놓고 양민들을 학살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소중한 목숨 함부로 하는것 자체는 똑같았고 그당시 사람들도 우리랑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란 겁니다. 뭐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쉽게 자기목숨 걸고 장각의 태평도에 참가하거나 옆집 사람이 조조한테 죽었는데 반감을 안 가질리 만무하겠죠. 임용한씨의 의견도 존재할 수는 있으나, 만약 그 이유가 도덕성의 차이에 의한 인식이라 한다면 제가 보기엔 고대 중국 철학을 너무 얕잡아보고 있다는 생각이 더 드네요. 그래도 그 인식의 차이가 있다면 하나는 맞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조를 비롯한 각 군웅들이 사람 목숨 보기를 잡초보듯 했다는 점 말이죠. (그래서 유비가 더 돋보였던 걸지도...?)
선생님 이번 영상도 잘들었습니다. 워낙 말이 많은 얘기니 어차피 하시게될거 괜히 요청드렸다 싶기도하네요 ㅋㅋㅋ 이거보다가 느낀건데 선생님께선 철학도 하시잖아요? 인간으로서의 정의나 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어느 정치인들도 자기가 나쁘다는사람은 없잖아요? 본인이 올바른일을 할거라고생각하면서 업무를 수행할거고 저당시 말씀하신 조조나 도겸 등 여러 사람들도 자기가 올바른 일을 하면했다고생각했지 그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적었을것같아요 전 워낙 부족하고 단순한터라 인간으로서의 최고의 선은 행복이고 정의는 다른이들의 행복을 침해하지않거나 도와주는 일이라고생각하거든요 제가 생각한게 맞는지 잘모르겠습니다 영상제작 요청이아니니 그냥 보고 시간없으시면 지나가셔도 됩니다 해헤 항상 재미있는영상 감사합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서주대효도군요…
매번 잘 듣고 보고 갑니다 기분좋은 하루 즐겁게 잘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늘 건강하시고 잘듣고있습니다.
늘 재밌게보고있습니다~ 조비에 대해서도 한번 다루어주셧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ㅎㅎ.. 연말 잘보내시길 바랍니다~~
가끔 힘가진 자들에게 나타나는 광기가 당시 조조에게 있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래서 나라의 지도자는 분노 조절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해야겠죠.
삼국지를 보고 다른 역사를 봐도 알겠지만 광기보다 더 무서운게 무능입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무능하면 광기어린 적군에 고스란히 피른보는겁니다
라디오와 같은 차분하면서도, 냉철한 분석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이 댓글을 읽으시는 모든분들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오늘도 좋은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구독자 10만 빨리 찍으시길 바랄께요. 제 주변에도 청화수 채널은 항상 추천 한답니다.
영상자체는 애껴놨다가 일할때들을거지만 답글먼저 달겠읍니다 해헤
올한해도 정말 고생많으셨고 항상 좋은 영상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선생님!
새해 복 많으 받으십시요. 늘 응원해주시는 덕에 제가 계속 해나갈 수 었었습니다. 올 한해도 더 좋은 영상으로 보답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화수 선생님도 새해복 더받으시고 올한해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_ _)
2020년 정말 우울한 해였습니다만 청화수님 영상으로 많이 배우고 위로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 오늘도 꿀잼예약...항상 감사드립니다
백성을 하찮게 여겼던 군웅들을 향한 분노가 영상 곳곳에서 느껴져 인상적이었습니다. 늦게 연상을 접해 몇 년전 영상부터 보고있습니다.. 좋은내용 감사합니다
올해 감사했습니다♥ 새해 복많이받으세요 💗
이렇게 늘 응원해주셔서 정말 저도 너무나 깊이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옵고 올해도 더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청화수님 침착맨님의 서주대효도설은 어떻게 보시나요
올한해청화수님덕에
좋은공부많이했습니다.
저도삼국지속영웅들의실체란
소말리아군벌과다름없다여깁니다.
그들에게무슨인의를논할수있습니까?
내년에도비범한안목기대하겠습니다.
서주대효도ㅋㅋ
침국지 ㅋㅋ
"한국인"
아 이거 치려고 왔는데 이미 누가 말했네 ㅋㅋㅋㅋ
어라? 백성이네? 바로효도ㅋㅋ
서주 대효도
오늘도 감탄하면서 들었습니다
조조의 일생시리즈가 끝나면 논란이 많은 조조무덤에 대해서도 다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맹자님 말씀 같은 고리타분한 게 제일 본질적인 거죠. 그러니까 그 시절부터 그렇게 강조되고 반복될 수밖에
잘 보았습니다. 항상 생각하게 하는 영상들 감사합니다.
역설적으로 그러면 한나라는 400년 동안이나 남아있었으니 인과 의로 세웠다고 할 수 있을까요?
틀린말은 아니네요ㅎㅎ 근데 사실 인과 의로 세워진 나라가 있긴 있나요?
양혜왕장구 하 8장
제선왕이 물었다.
“상나라 탕왕이 하나라 걸왕을 추방하고,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 주왕을 정벌하였다 하는데, 정말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역사책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선왕이 말하였다. “신하가 자기 군주를 시해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하며, 이러한 잔적한 사람을 ‘일부’라 합니다. 저는 주나라 무왕이 일부인 주를 주살하였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가 자기 군주를 시해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주
탕은 은상을 개국한 임금이다. 고대의 전설에 의하면, 하나라 걸왕이 포악하자 탕은 군사를 일으켜 그를 토벌하고 남소(南巢)로 유배시켰다고 한다
상나라 주왕이 무도하자 주나라 무왕은 문왕의 목주(木主 : 위패)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군사를 일으켜 그를 토벌하였다. 주왕은 스스로 불에 타 죽었다.
시, 주(弑, 誅) (시해, 주살로 번역)
이 두 글자는 각각 포폄(褒貶)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포폄 : 옳고 그름이나 선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함)
신하가 도리에 맞지 않게 임금을 살해하는 것과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것은 모두 ‘시’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죄인을 정의에 부합되게 토벌하여 죽인다면 ‘주’를 썼다. 일부주(一夫紂) (‘일부인 주’로 번역, 여기서 주는 상나라 주왕을 의미함)
일부주(一夫紂) : 독부주(獨夫紂)의 의미이다(‘독부주’는 《순자 · 의병(荀子 · 義兵)》에 인용된 《서경 · 태서(書經 · 泰誓)》의 말이다). ‘독부’와 ‘일부’는 모두 군중의 지지를 잃고 외톨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출처 : 맹자, 우재호 옮김, 을유문화사 149-150쪽 (주는 책에 있는 각주의 내용을 최대한 옮기되 일부 가감이 있습니다)
청화수님 늘 잘보고 있습니다
마초에 대해서 다뤄 주시면 안될까요?
흔히 마초를 패륜아 라고 하는데..촉에 귀부 할때의 마초는이미 기력이 다한 인간 처럼 느껴지더라고요..
24분전에 영상 올려주셨네요 ㅎ 늘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내용도 좋은데 목소리마저 너무 좋네요
충격이군요. 인자한 서주자사 도겸 할아버지가 악인이였다니요.ㄷㄷㄷ
아쉽게도 조금남기고 10만명 달성 못하셨네여. 빨리 10만명 되기를 바라며 2020년 마지막날 잘들었고 새해복많이받으시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늘 이렇게 응원해주시니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더 열심히 좋은 콘텐츠 만들기 위해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정말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이런거보면 가장 망나니같고 빽도 집안도 노력도 안하던 평민출신인 유방이 세운 한나라가 오래간걸보면 가장 민심에 대해 잘 알수있던 사람이여서 그런가 싶기도 하네요. 물론 그도 전쟁통에 자기자식도 버릴려했고 애비죽인다고 협박해도 신경안쓰고 백성들을 약탈도 했죠. 항우를 이길수있었던 이유는 자기말대로 인재를 잘 사용했기때문이라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그때 당시 백성들만 불쌍하네요 도겸한테는 약탈과 죽임을 당하고 조조에게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서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ㅠ
공융이나 공주 또는 교모 일대기 부탁드립니다
한 글자만 달라도 내용의 전후가 변하는터라.....늘 사료의 정확성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환절기 건강하시길......
도겸이 잘못했네
청화수 님 싸랑해요
몇년 간 청화수님 덕분에 역사를 보는 눈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을 좀 더 객관적으로 할 수 있게된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영상 잘 부탁드립니다.
와 이건 처음 본다
이유가 무엇이든 서주대학살은 조조의 천하통일을 막은 조조의 빅똥이죠
몽골은 정복지 주민들 다 죽였는데 평가는 조조와 너무 다른게 좀 의아합니다.
폴란드 정벌 때는 인구의 70프로를 참살해서 30년 넘게 국가 기능이 상실 했었는데 말이죠 ㅎㅎ
역시 화수형!
역시 재물 따위에 눈 멀어서 약탈같은 옹졸한 짓이나 하는 삼류 악당은 일류 역적 조조의 상대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 : 서주대효도라고 부르자!
덕분에 서주에 있던 많은 이들에 조가 놈이라면 이를 갈지.ㅋㅋㅋ
저때 서주를 온전이 먹었다면 제갈량을 얻었을 탠데
이 썸네일은 안들어올 수가 없자나?
서주 대효도가 맞네요
와,,, 도겸 깬다.....
꼭 한 번은 해주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서주대학살.
이게다 촉국지 때문이다
서주 대 효도 아닌가요
요동왕 공손탁과 사마의의 요동대학살도 같이 다루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대방군이나 공손탁 정권의 산동 경략등도 ㅎㅎ ;;
조조가 끝내 유비를 꺾지 못하고 천하통일을 이루지 못 한 이유를 서주대학살에서 찾을 수 있겠네요.
@@니가그래서안돼는겨 저거 없었으면 천하 대부분이 아니라 그냥 천하통일 하지 않았을까요? 대학살 때문에 돌아선 인재들이 좀 큽니다. 유비 최고 브레인 제갈량이 서주출신이고 적벽대전 당시 조조와 전쟁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한 노숙도 서주출신이에요
서주대효도다!!!!!
서주 대효도 뿐이다
한나라 말기는 진짜 대혼돈의 연속이었네요. 서로서로 죽이고 죽이는... 그러니 유비같은 스타가 또 나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조조나 도겸이나 도긴개긴인것 같네요^ ^;;
아버지가 비참하게 돌아가신건 슬프지만
백성을 하찮게 여기고 도륙한 것 자체가 쉴드 칠수는 없죠ㅠ
도겸이 역적 궐선과 연합한것 까진 알고 있었는데 제가 몰랐던 도겸의 만행까지 알려주시고ㅋ 감사드려요 ~
P.s 안녕하세요~ 오래 전부터(제갈량 북벌 시리즈 영상 등) 영상을 눈팅만 하고 있었는데ㅠㅜ 심사숙고 끝에 첫 글을 남깁니당. 정사 삼국지에 대해 알고 싶어서 청화수님 영상을 접했는데 덕분에 제가 알고 있었던 삼국지에 대한 고정 관념(조조=나쁜 인물, 유비=선한 인물 등)이 벗겨졌어요. 여러 관점들을 소개 주셔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었어요 ^^*
다른 영상들도 재미있게 듣고 있어요 ㅋ
영상을 통해 힘들었던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ㅠㅜ
역사를 초월해서 인생을 배우는 거 같아요😭
목소리도 책 읽어 주듯이 좋으시고 멋지세여~
요즘 생업은 어떠세요??
코로나 때문에 많이 힘든 시기인데
고생하시는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21년에도 재미있는 영상 기대할게요. 건강 유의하세요^ ^*
어떤 이유가 있든 서주대학살은 조조의 가장 큰 실책입니다. 도겸이 아무리 이상한 놈이라고 해도.
서주대효도
뜬금 없이 서주아이스 먹고 싶다 ㅠ
서주대효도는 못참지
ㅋㅋㅋㅋㅋㅋ근본없는 괴도적ㅋㅋㅋ
조숭살해사건은 그냥 도겸이 도겸한거네요ㅋㅋㅋ
광고 깬다
청화수님은 조조의 서주 대학살을 개인적인 원한에 초점을 맞추고 계시네요
임용한 박사님은 당시 주변 세력과의 패권 주도 때문에 전략적인 차원으로 서주 대학살을 주장하고 계시더군요
누구의 의견이 맞는 건지 모호하지만, 분명 조조의 서주 대학살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며, 실질적으로도 조조가 평생 감수해야 할 아킬레스건이었습니다
삼국지에서 영웅,군웅 이라 불리는 작자들의 면모가 유비를 제외하면(이마저도 코스프레일 가능성이 농후) 애민정신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그저그런 놈들이었다는것을 적나라하게 밝히시네요
조조한테 물어보세요~~!!! 우문현답!?
귀로 듣는 수면제 올라왔다ㅋㅋㅋ
ㅇㅇㅎ같은 사람이 주장하는 조조의 전략적 판단이라는 개소리를 지금도 말하는 사람이 있넹ㅋㅋㅋㅋㅋㅋ
그인간 유선보고 현군이라 한 인간입니다ㅋ
@@MrBolja2 관점이란것도 나름의 근거가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죠.
전략적 판단이라고 한다면 조조는 어떤 목표를 이루어야 할텐데, 서주대학살을 통해서 어떤 이득을 얻었나요? 아버지의 원수인 도겸 혹은 도겸의 수하들에게 갚기라도 했나요? 도겸의 실질적 계승자인 유비를 죽이기라도 했나요?
뭐, 그분께선 초토화 자체에 의미를 둔다고 했는데... 글쎄요. 초토화를 했다면 조조는 왜 서주를 점령하지도 못하고 도겸일파를 잡지도 못했나요? 무슨 몇년뒤 여포잡는데 서주대학살이 도움됐다고 말씀하실 건 아니잖아요?
애초에 조조를 좋게 평가한다면 이걸 전략적 평가라고 포장하는게 더 어이없는 일 일겁니다.
서주파 인재들로부터 반조조 감정을 만들어 적벽대전이라는 큰 스노우볼을 형성하고, 얼떨결에 유비를 스타로 만들었으며, 병사들에게 명을 내려 백성을 도륙한 군주라는 오명을 남기게 한 이 사건을 어떻게 전략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나요?
조조만이 아니라 다른 군웅들도 마찬가지로 목숨 보기를 잡초보듯 했겠지만, 백성들이 자국의 관군에게 죽는건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근대시대 전이라 할지언정 그 시대라고 해서 인간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청화수님도 결국은 백성의 민심이 결정적이라고 하신거죠.
이걸 전략이 아니라고 하는게 아니라고 해야 되려 조조를 높히 평가하는 겁니다. 그저 아버지의 죽음에 눈돌아간 한 미쳐버린 아들로서 그를 바라봐야 하는게 타당하죠.
다시 돌아와서, 관점이라는건 나름의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근거가 없으면 허무맹랭한 소리에 불과하죠.
자, 조조가 서주대학살을 한 것이 전략적 판단이었다면 이로서 조조가 얻은 이득은 무엇이었나요?
@@니가그래서안돼는겨 아닛, 그래서 뭘 얻었냐고요.
애초에 저걸 최선의 수라고도 볼 수도 없지 않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을 도륙하는 리스크를 안고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계산하고 저짓거리를 했다는 겁니까?
게다가 결과론적이라뇨. 애초에 백성을 죽인다는 건 그정도 스노우볼이 없을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게 오히려 조조와 그 책사들을 무시한 것 아닙니까? 왜 조조의 측근들은 이 행동을 말렸으며 위 정통성을 기반한다는 진수의 서술조차 도륙을 행했다고 기록했을까요? 당대 그 누구도 그의 판단이 그릇됨을 알았고, 늘 기회주의자에 최선의 한 수만을 두던 조조가 대형 병크를 터뜨리는 것에 놀라서 그런 것 아닙니까?
게다가 초토화의 실패여부라뇨? 애초에 도겸 유비까지 뽑아내야 그게 초토화라할 수 있는거 아닙니까? 실패의 부라는 걸 왜 모릅니까? 전쟁도 아니고, 님들이 주장하시는 초토화의 성공여부는 간단하죠. 조조가 양민을 도륙하면서 쭉 나아가서 모든 일의 원흉인 도겸을 잡아 족치는가 마느냐. 거, 아니면 그 누구도 서주의 땅에서 거병할 수 없도록 완전한 멸을 행하던가. 둘 다 아니죠? 조조가 어느 조건을 달성하기를 포기하는 그 순간이 바로 초토화 실패란겁니다. 뭔 논리에 결과론적만 붙히면 다 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조조가 실패할 줄 알았으면 하지도 않았다고 하셨는데, 왜들 그렇게 그걸 포장하시려 합니까?
서주대학살은 그 실행 결행부터 진행, 결과까지 조조라는 세력의 오점만을 남길 것이라 예상된 일입니다. 과거 백기와 항우가 수십만에 달하는 사람을 생매장하고 죽일 때, 어떤 이들도 이 행동에 칭찬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큰 일을 이루려면 대의를 따라야하는데, 대의의 상징인 민중을 학살한 그들을 누가 따르겠습니까?
서주파 인재들의 원한과 학살이라는 오명까지도 예상하고 실행했더니 성공까지는 못하고 어찌저찌 마무리 되었다? 이보세요. 님이 말했죠? 최선의 한 수를 두는데 그걸 꼭 결과론적으로 해석하면 안된다고?
만약 최선의 한 수를 생각했다면, 조조는 학살 그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뻔히 보이는 민심잃는 지름길을 가진 않았을 테니 말이죠. 그거 아세요? 조조는 이 일로 여포의 배신을 촉진시키고 순욱과 정욱이 지키던 2개현을 제외하고 모든 현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왜냐고요? 백성을 죽였으니까요! 그런 당연한 것을 미쳐 계산도 못하고 조조 나름대로 생각해서 저질렀다? 그게 오히려 "최.선.의.한.수"를 둔다는 군웅으로선 머리가 너무 멍청한거 아닙니까?
그걸 2차례에 걸쳐서 했다는 것은 그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픔으로 반 미쳐서 그렇게 판단한 걸로 보는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더불어 그의 인성문제도 엿보이고요.
저는 뭐 당연하게도 결론을 참고해서 말을 하는게 큽니다. 다만, 과연 이걸 결론까지 봐야만 망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조조의 모든 군신과 당대의 모든 군웅들, 그리고 위 정통성의 저술자 진수와 이바닥 권위자 배송지, 그리고 각종민담까지 정통한 나관중까지 모든 이들이 한 입으로 말하는 일들을 계획적인 일이었다고 하는게 과연 개연성이 있어보이시나요?
헌제의 장인 동승이 조조암살을 모의하다 걸려서 그 일가족이 몰살 당한 것은 조조의 인성문제도 있으나 아무도 계산이 아니었다고 하기엔 힘들 겁니다. 정치적 알력과 신변의 보장 등의 관점만 보더라도 말이죠. 그러나 서주 대학살을 ㅇㅇㅎ씨처럼 무조건 뒤집기 식으로 이건 사실 모두 계획이었다고 말하는건 무리가 아닐까요?
역사라는 건 그 특성상 관점을 여럿 있을 수 있는데, 이건 조조를 폄하하는 게 아니라면 하나의 관점외에는 바라보기가 힘든 드믄 사건입니다.
그저 아비잃은 아들이라 보는게 타당하다는 거죠.
임용환박사님말씀하시는거죠? 박사님이 늘 말씀하시는게 그 때 당시 도덕윤리관이랑 지금이랑 같이 보면안된다는거더라구요. 조조를 절대옹호하는것도아니라고하셨었고. 청화수 선생님은 조금 더 사람의 생명을 중심으로 생각하신거고 임박사님은 정세나 조조의 상황을 중심으로 말씀을 하셨던것같습니다.
두분 다 좋은말씀을 해주셔서 폭넓게 한사건에 대한 생각을 할수있어서 좋았습니다. 말씀해주신김에 임박사님 영상보고 이 영상도 다시 들어봐야겠내요 ㅋㅋ 감사합니다 조형남 선생님
@@jymin465 하하핫, 선생님이라뇨ㅎ.
제가 위에서 댓글을 공격적이고 싹바가지 없게 썼는데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만, 임용한님 의견에 앞뒤가 맞지 않은 점이 있다는 거였죠. 당시 도덕윤리관이 지금이랑 같지 않다고 하신 부분말이죠.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사람 목숨 소중한건 그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으로 보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중국의 전란의 시기인 춘추전국시대는 지금까지도 여러 불우한 사건들(분서갱유&문화대혁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찬란했던 백가쟁명의 유산을 낳았습니다. 문학적 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어떻게 해야 백성이 평안케 지낼 수 있는지까지 담겨있는 것들 말이죠. 그러한 인문학적 고찰을 무시하고 볼 순 없다는 거죠. 지금 우리의 도덕관이 서양식 도덕관으로 더 자리잡혀서 그렇지 당장에 100년전만 하더라도 유가에서 주창한 인의예지를 얼마나 잘 따르고 살았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가치관도 무려 조조가 태어나기 몇백년 전부터 존재해왔고, 조조 본인도 그러한 분야에서 문학적 소질도 있었지 않습니까?
정치는 쇼라곤 하지만 대놓고 양민들을 학살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소중한 목숨 함부로 하는것 자체는 똑같았고 그당시 사람들도 우리랑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란 겁니다. 뭐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쉽게 자기목숨 걸고 장각의 태평도에 참가하거나 옆집 사람이 조조한테 죽었는데 반감을 안 가질리 만무하겠죠.
임용한씨의 의견도 존재할 수는 있으나, 만약 그 이유가 도덕성의 차이에 의한 인식이라 한다면 제가 보기엔 고대 중국 철학을 너무 얕잡아보고 있다는 생각이 더 드네요. 그래도 그 인식의 차이가 있다면 하나는 맞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조를 비롯한 각 군웅들이 사람 목숨 보기를 잡초보듯 했다는 점 말이죠.
(그래서 유비가 더 돋보였던 걸지도...?)
@@masik7993 정성스러운 의견 감사드립니다 헤헤 제가 워낙 생각도 짧고 아는것도적고 제 생각이랄것이없어서 다른 분들 의견이나 반대의견 보는걸 좋아하거든요. 이렇게 친절하게 잘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선생님 헤헤
선생님 이번 영상도 잘들었습니다. 워낙 말이 많은 얘기니 어차피 하시게될거 괜히 요청드렸다 싶기도하네요 ㅋㅋㅋ
이거보다가 느낀건데 선생님께선 철학도 하시잖아요?
인간으로서의 정의나 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어느 정치인들도 자기가 나쁘다는사람은 없잖아요? 본인이 올바른일을 할거라고생각하면서 업무를 수행할거고 저당시 말씀하신 조조나 도겸 등 여러 사람들도 자기가 올바른 일을 하면했다고생각했지 그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적었을것같아요
전 워낙 부족하고 단순한터라 인간으로서의 최고의 선은 행복이고 정의는 다른이들의 행복을 침해하지않거나 도와주는 일이라고생각하거든요 제가 생각한게 맞는지 잘모르겠습니다
영상제작 요청이아니니 그냥 보고 시간없으시면 지나가셔도 됩니다 해헤
항상 재미있는영상 감사합니다
말씀주신 내용이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 각자의 정의 속에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늘 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늘 저도 고민하고 어려운 테마이지요.. 언제 그에 관해서도 한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늘 정말 너무 깊이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청화수 아니요 항상 제가 감사하죠 ㅋㅋㅋ 영상도 감사드리고 답글도 감사드립니다(_ _)
서주 대파티는 못참지
저는 개인적으로 서주대학살 은 초토화 작전 이었다고 봅니다.... 적군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전략 이죠...
제6대 태조왕이 119세에 죽었고, 명림답부가 113세, 제7대 차대왕이 95세, 제8대 신대왕이 91세, 장수왕이 98세에 죽었다는데요 이거 구라아닌가요? 파해쳐주세요
고구려 제6대 태조왕이 119세에 죽었고, 명림답부가 113세, 제7대 차대왕이 95세, 제8대 신대왕이 91세, 장수왕이 98세에 죽었다는데요 이거 구라아닌가요? 파해쳐주세요
고구려 제6대 태조왕이 119세에 죽었고, 명림답부가 113세, 제7대 차대왕이 95세, 제8대 신대왕이 91세, 장수왕이 98세에 죽었다는데요 이거 구라아닌가요? 파해쳐주세요
고구려 제6대 태조왕이 119세에 죽었고, 명림답부가 113세, 제7대 차대왕이 95세, 제8대 신대왕이 91세, 장수왕이 98세에 죽었다는데요 이거 구라아닌가요? 파해쳐주세요
고구려 제6대 태조왕이 119세에 죽었고, 명림답부가 113세, 제7대 차대왕이 95세, 제8대 신대왕이 91세, 장수왕이 98세에 죽었다는데요 이거 구라아닌가요? 파해쳐주세요
고구려 제6대 태조왕이 119세에 죽었고, 명림답부가 113세, 제7대 차대왕이 95세, 제8대 신대왕이 91세, 장수왕이 98세에 죽었다는데요 이거 구라아닌가요? 파해쳐주세요
고구려 제6대 태조왕이 119세에 죽었고, 명림답부가 113세, 제7대 차대왕이 95세, 제8대 신대왕이 91세, 장수왕이 98세에 죽었다는데요 이거 구라아닌가요? 파해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