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전평) 중국이란 나라와 한족을 평가할 때는 관점을 달리해야 합니다. 그 관점은 한족의 출발은 노예에서 출발했다는 것 입니다. 첫째. 한족은 황하강 중하류에 정착했던 거주민에서 출발 했으며, 최초 통일왕조 진 당시까지 국토의 규모는 매우 작았습니다. 둘째. 한족은 정주민족으로 역사의 대부분은 북방의 기마민족에게 공물을 바치는 속국이나 피지배계층으로 살아 왔습니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선비족, 오호십육국 시대는 패자들 역시 돌궐을 포함한 북방민족, 몽골족의 원, 여진족의 금과 후금 그리고 중국 마지막 왕조인 여진족의 청나라가 중국을 지배해 왔습니다. 한족이 주류였던 역사는 고작 50년 역사의 진나라와, 북방민족의 침입에 전전긍긍했던 한나라, 송나라 그리고 봉금령으로 국체의 성격을 규정 지었던 명나라에 불과 했습니다. 즉 중국인들이 속국 속국 하며 떠드는 이유는 한족 자체가 오랜 노예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한족과 한족이 주류인 중국을 다시 해석하게 되면 다음과 같습니다. 황하 중하류의 곡창지대에 정착했던 소수민족 한족은 고조선을 포함한 북방의 기마민족에게 공물을 바치며 생존을 이어갔다. 수천년 전 기후변화로 인해 온도가 내려가며 북방지역이 초원화 되고 사람이 살기 어려워지면서 북방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고, 중국의 중원과 관중지역(두개의 강 사이에 존재하며 한반도 보다 큰 크기의 농경에 최적화된 평원지역)을 둘러싼 북방민족의 쟁투가 이어지며 민족 단위에서 국가단위로 경쟁과 성장이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한족은 일개 민족으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후 북방민족이 주가 되고 한족이 피지배계층이 되는 고대국가로 전환되며 한족 역시 역사의 전면에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진 이라는 한족 중심의 첫 통일국가로 발전한다. 하지만 강성한 북방민족의 공격으로 인해 50년의 짧은 역사속에 무너지고, 진의 피를 이은 한나라가 수도를 옮겨 다시 건국되어 맥을 이어가게 된다. 이 당시에도 한은 북방민족이 각축을 벌이던 중국대륙의 중부와 북부에 비해 작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고 오호십육국(모두 북방민족임) 시대를 거쳐 가장 강력한 세를 가졌던 선비족이 새로운 패자로서 국가를 건설하니 그것이 바로 수나라 였다. 북방민족간의 쟁투에서 승리한 수나라는 비록 같은 북방계열이지만 복속되지 않았던 고구려를 공격하다 멸망하고, 이어 다시 선비족 출신의 당태종이 당나라를 건국했고 고구려와의 경쟁끝에 승리하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선비족에게 패퇴한 여러 북방민족들은 일부는 서쪽으로 나아갔고 (돌궐족은 서쪽으로 이동하여 투르크, 현 터키를 건국), 일부는 북방의 거친 초원에서 유목민으로 적응했으며 (몽골계열), 또 다른 일부는 요서와 요동 그리고 우수리에서 사할린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정착했다 (여진계열 -농경과 수렵) 중국에서 다시 한족 중심의 송이 들어섰지만, 여진족의 금나라와 몽골족에게 허구헌날 처 맞으며 공물을 바쳐야 했고, 심지어 당시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던 티벳인들이 중심이 된 토번국은 감숙성, 신강성, 사천성을 지배하며 심지어 공주까지 헌납(?)해야 했다. 현 스스로 대국이라 칭하는 중국의 광대한 국토는 한족이 아니라 100년간 중국대륙을 지배했던 원나라의 정복전쟁에 의한 결과이다. 중국 최후의 왕조인 청나라는 여진족이 지배층으로 한족을 피지배층으로 했으며 비교적 오랜기간 유지된 유일한 왕조이기도 했다, 참조로 한족은 노예에서 벗어나기 위해 천지회라는 지하조직을 운영했고 이는 중국의 폭력조직인 삼합회의 기반이 된다. 간략하게 요약했지만, 중국의 역사는 한족이 아니라 북방의 기마민족이 지배했던 역사와 다름 없습니다. 국가의 성립부터, 국토의 확대, 문명의 발전은 물론 제 세력간의 갈등과 전쟁까지 한족의 자취는 미미합니다. 이런면을 정확히 인지해야 한족에 대하여 제대로 된 분석이 가능합니다. 지배계층으로의 한족과 노예로서의 한족은 첫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왜 한족이 주류가 된 중국이 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천민 혹은 졸부같은 행태를 보이는지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중국군을 몰아낸거 가장최근에 하나 더 있습니다. 6.25전쟁중 용문산전투가 그것입니다. (1951. 5.16~5.21) 우리 근대사전쟁에서 크고작은 승리부터 값지지않은 피흘림과 희생이 어디있겠냐만은 꼭 하나 짚고가고싶은 승리가있습니다. 현재 3사단 백골부대와함께 철원을 지키고있는 육군 6사단 청성부대의 2연대가 당시 중공군 2개의 사단을 1951년 5월 16일부터 방어하고있었습니다. 우리는 1개연대 병력이 최선이었고 참고로 이 연대병력 3개를 모아서 1개사단으로 구성됩니다. 즉 당시 중공군의 병력은 9개연대규모였고 3개사단이 밀고내려왔는데 여기서 중요한것은 중공군의 1개사단 병력은 당시 우리 국군 1개사단의 병력보다 병력의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인해전술 이렇게 3일이넘게 용문산고지를 사수하던 우리 2연대는 이후 후방에서 미군의 포병지원이 시작되며 같은사단소속이던 7연대와 19연대가 후방에서 합류하게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력은 중공군의 10분의 1수준도 채 되지못했고 2연대가 죽음을 결심하고 방어할동안 7연대와 19연대가 용문산 인근의 지형을 잘 이용하며 준비된 전략대로 언저리로 포위해나갔고 이과정에서 중공군들이 대량 사살~ 그리고 중공군 다수가 퇴각하게되는데 살아남은 중공군들이 미친듯이 도망을가며 막다른길에 호수가 나오자 살기위해 물에 뛰어들지만 모두 수장되어 죽습니다. 이호수는 경기도 양구군에있는데 당시대통령이 깨트릴 파 오랑캐 로 를 써서 저수지명을 '파로호'로 지정하게됩니다. 아군 사상자 698명 중공군 사상자 85000명 용문산전투는 유럽대학 교범으로도 수록되고있을만큼 전략.전술이 뛰어났으며 저는 저 예일대 교수님께서 20세기의 제2의 살수대첩이라고하는 이 전투를 행여나 모르신다면 참고해볼만하다봅니다.
국뽕이 무슨 유행어냐? 사실을 알려주는 영상만 올라오면 국뽕이니 어쩌니 생각이 없는 건가? 요줌 한국 관련 영상만 올라오면 국뽕 어쩌니 저쩌니 에효 중국인 인가? 제발 부정적으로만 받아 드리지 말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사실을 공유해주는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 이라도 보여 줍시다 좀...
수천 년의 중국 역사상 중국인이 세운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중국인들이 오랑캐라고 불렀던 돌궐이나 몽고, 여진족들이 세운 나라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았죠. 또 중국인들이 자기 문자라고 말하는 한자는 실상 동이족이 만든 문자였죠.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황하문명보다 수천 년 앞서 홍산문명이 있었는데 왜 홍산문명에 대해 떠들지 않나요? 그건 동이족의 문명이었기 때문이죠. DNA라는 과학적인 증거로 밝혀진 사실입니다. 결국 중국의 모든 문명의 시발은 동이족의 홍산문명이란 게 역사적 사실이죠.
[중국 & 한자의 기원] 요순시대부터 청나라까지 모두 동이족이 통치하였으며, 화하족(華夏族)은 중국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의 원류가 되는 민족으로 '중화'(中華) 또는 '화하'(華夏)라는 말은 화하족에서 유래한 말로서, 근대 중국(1949년 마오쩌둥 이후)을 일컫는 말입니다. 모택동이 문화대혁명(1966~1976)이란 미명하에 기존의 관습과 문화를 모조리 부정하여 의사, 교수, 기술자, 지식인, 자본가라 폄하하여 수천만 명을 학살하면서 공자 묘를 헐어버리고, 전통 예술품, 서적 등 수많은 문화재도 깡그리 불태워버리는 등 중국의 문화를 모조리 말살시킨 운동을 벌였습니다. ※ 동이족의 흔적을 지우기 위함. 夷 : 大 + 弓 (큰 활을 잘 쏜다) 東夷族 : 큰 활을 잘 쏘는 동쪽의 겨레. ※ 공자 曰 "도가 행하여지지 않으니 나는 군자 불사지국 (君子 不死之國)인 선조의 땅 구이(九夷 : 동이의 다른 이름)에 가고 싶다"하고 바다에 뗏목을 뛰웠다고 합니다. ● 명나라의 시조 주원장은 전라북도 김제 사람으로 일월교(日月敎)의 신도로 있다가 교주가 되어 그 세력으로 나라를 세워 일월(日月)을 합쳐 국호를 명(明)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중국에선 파룬궁 등 종교를 탄압합니다. [山海經] 十八卷 海內經 東海之內 北海之右 朝鮮 海之內東西二萬八千里 地方三萬里 南北二萬六天里 산해경 '조선의 경지는 동서 28000 리, 지방 30000 리, 남북 26000 리다' ● 영조 "세자(사도세자)가 얼마나 용맹한지 언월도를 휘두르며 얼음 바다를 뛰어 다닌다" ● 조선실록에 '극광(오로라)이 177회 관측되었다'고 기록. ● 이완용의 손자 이병도(서울대 역사 교수)가 '식민사관'을 가르쳐 우리나라의 역사는 한반도로 고착됨.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1902~1999) 박사가 장관시절 중국의 세계적 문호 임어당(林語堂 1895~1976)을 만나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 우리 한국까지 문제가 많다" 임어당이 놀라면서 "그게 무슨 말이오? 한자는 당신네 동이족이 만든 문자인데 그것도 아직 모른단 말입니까?" 대구대 교수가 북경대 교수에게 '문자 세미나'에서 "중국은 한자를 만들어 자랑스럽겠습니다?" 북경대 교수 "한자는 당신네 선조 동이족이 만든 글이다" 한(漢 은하수 한) : 한강, 한성, 한양, 한문 등 한(韓 나라 한) : 한식, 한지, 한복 등 모두 우리 고유의 것입니다. ● '갑골문자는 은나라가 만들었고, 은나라는 동이족이다'
국가의 힘든 시기를 다 이기며 극복해 왔지만, 내부의 분열이 다른것도 아닌 페미니즘으로 이렇게 흔들실전 몰랏습니다. 메갈에 대한 여러루투를 통해 문제 인식하고 거부했지만, 사실 여성인권에 대한 문제는 부모세대를 보고 느끼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 동조했지만, 지금 너무 심각해서 페미람 , 아니 여성인권이란 얼굴뒤에 숨은 메갈스런 행동이나 법 개정이 너무 보이는데... 이건 절대 여성인권이 아니고, 과거 메갈의 사고를 공산주의적 전략전술의 방법으로 침투하는 이이제이 방식입니다. 이러다 이란같은 더 큰 반발이생기고, 반작용으로 우리나라 매분이 더 심해지는걸 누가 반길지.... 정치인과 주변경쟁자들 외국의 우리나라 경쟁자들입니다. 남자들도 그렇지만, 여성분들 진짜 각성해야합니다. 우리나라는 전시구가입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전쟁이나고 젤 큰 피해는 남자뿐 아니라 여성들도 비참해집니다.
* 여수전쟁 (麗隋戰爭) 한국 승 598년(영양왕 9)~614년 고구려 vs 중국 수나라 전쟁. * 나당전쟁 (羅唐戰爭) 한국 승 670년 ~ 676년, 7년전쟁 신라 vs 중국 당나라 전쟁. * 임진왜란 (壬辰倭亂) 한국 승 1592, 5, 23~1598,12,16, 7년전쟁 조선 vs 일본 전쟁
사연자님 과 교수님 대한민국에 대해 좀더. 깊이 공부해보서요 제가 얘기 하리다 대한민국 옛 고조선 시대 중국땅 반이상이 대한민국 땅이였소 그리고 지금의 중국은 50여개의 국가였소 고조선은 워낙크고 강대국 이라 넘보지 믓하고 작은나라 끼리 싸우여 오랑케 나라가 탄생했소 그게 한나라 위나라 오나라 삼국지로 탄생했소 그러다 다망하고 진시황이 삼국통일 했으나 다시 분란이 일어나 수나라가 등장해. 고구려를 침공했소 아참 잊었네요 전쟁만 일삼든. 오랑케 족으로 고조선은 망했네 요. 그런데 고조선 후예가 다시 고구려를 세워 천년 가까이 중국을 넘보지 못하게하고 중국을 완전 지배도 했으나 자중지란으로 모든땅 다뺏기고 남은땅이 대한민국 땅이요 그러나 다시 찾을것이요 세계서 가장 똑똑한 두뇌를 가진 민족이니까요
역사공부를.복습할수있어서
감사하네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게
자랑스럽습니다~😂
학생과 교수님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
역사를 잘 이해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훌륭한 교수가 있기에..한국..한국인임이 축복임을 느낍니다.
아침부터 속이시원한영상감사합니다
우리의역사 우리선조의얼이담겨있습니다..자랑스런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 자부심 감사드립니다
너무나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소국이라 하기에는 땅이 너무 넓고 대국이라 하기에는 사람들 속이 좁으니 중국이라 부른다더라"
ㅋㅋ
@@래현조 쵸 ㅛㅛㅜㅊ ㅠㅠ ㅓ
5:41 5:41 5:41
6:02
😅ㅂ
서구 역사학계, 미국 대학들, 세계 박물관 등..
자업자득이지
이제껏 차이나에서 제공하는 왜곡과 거짓 역사자료를 어떤 검증도 없이 받아들인 결과물 이제라도 역사를 바로
정립해야 한다
6.25 땐 인해전술이 먹혔지만 지금은 집속탄 융단폭격 등의 대량 살상 무기가 있어 대가리숫자 많은건 문제가 되지 않고
어느쪽이 무기가 많으냐에 달려있다.
우리의 주적은 중국이다
그런 소리 하지마소.여시제 에게 찍히면
큰일 나요. 중국 공안들에게 보고하면 어쩌려고. 더불당,국힘당 다 그들이 주류예요. 조심하셔야지.
자유대한민국에 소꾹 중공이다
관전평) 중국이란 나라와 한족을 평가할 때는 관점을 달리해야 합니다. 그 관점은 한족의 출발은 노예에서 출발했다는 것 입니다.
첫째. 한족은 황하강 중하류에 정착했던 거주민에서 출발 했으며, 최초 통일왕조 진 당시까지 국토의 규모는 매우 작았습니다.
둘째. 한족은 정주민족으로 역사의 대부분은 북방의 기마민족에게 공물을 바치는 속국이나 피지배계층으로 살아 왔습니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선비족, 오호십육국 시대는 패자들 역시 돌궐을 포함한 북방민족, 몽골족의 원, 여진족의 금과 후금 그리고 중국 마지막 왕조인 여진족의 청나라가 중국을 지배해 왔습니다.
한족이 주류였던 역사는 고작 50년 역사의 진나라와, 북방민족의 침입에 전전긍긍했던 한나라, 송나라 그리고 봉금령으로 국체의 성격을 규정 지었던 명나라에 불과 했습니다. 즉 중국인들이 속국 속국 하며 떠드는 이유는 한족 자체가 오랜 노예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한족과 한족이 주류인 중국을 다시 해석하게 되면 다음과 같습니다.
황하 중하류의 곡창지대에 정착했던 소수민족 한족은 고조선을 포함한 북방의 기마민족에게 공물을 바치며 생존을 이어갔다.
수천년 전 기후변화로 인해 온도가 내려가며 북방지역이 초원화 되고 사람이 살기 어려워지면서 북방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고, 중국의 중원과 관중지역(두개의 강 사이에 존재하며 한반도 보다 큰 크기의 농경에 최적화된 평원지역)을 둘러싼 북방민족의 쟁투가 이어지며 민족 단위에서 국가단위로 경쟁과 성장이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한족은 일개 민족으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후 북방민족이 주가 되고 한족이 피지배계층이 되는 고대국가로 전환되며 한족 역시 역사의 전면에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진 이라는 한족 중심의 첫 통일국가로 발전한다. 하지만 강성한 북방민족의 공격으로 인해 50년의 짧은 역사속에 무너지고, 진의 피를 이은 한나라가 수도를 옮겨 다시 건국되어 맥을 이어가게 된다.
이 당시에도 한은 북방민족이 각축을 벌이던 중국대륙의 중부와 북부에 비해 작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고 오호십육국(모두 북방민족임) 시대를 거쳐 가장 강력한 세를 가졌던 선비족이 새로운 패자로서 국가를 건설하니 그것이 바로 수나라 였다.
북방민족간의 쟁투에서 승리한 수나라는 비록 같은 북방계열이지만 복속되지 않았던 고구려를 공격하다 멸망하고, 이어 다시 선비족 출신의 당태종이 당나라를 건국했고 고구려와의 경쟁끝에 승리하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선비족에게 패퇴한 여러 북방민족들은 일부는 서쪽으로 나아갔고 (돌궐족은 서쪽으로 이동하여 투르크, 현 터키를 건국), 일부는 북방의 거친 초원에서 유목민으로 적응했으며 (몽골계열), 또 다른 일부는 요서와 요동 그리고 우수리에서 사할린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정착했다 (여진계열 -농경과 수렵)
중국에서 다시 한족 중심의 송이 들어섰지만, 여진족의 금나라와 몽골족에게 허구헌날 처 맞으며 공물을 바쳐야 했고, 심지어 당시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던 티벳인들이 중심이 된 토번국은 감숙성, 신강성, 사천성을 지배하며 심지어 공주까지 헌납(?)해야 했다.
현 스스로 대국이라 칭하는 중국의 광대한 국토는 한족이 아니라 100년간 중국대륙을 지배했던 원나라의 정복전쟁에 의한 결과이다.
중국 최후의 왕조인 청나라는 여진족이 지배층으로 한족을 피지배층으로 했으며 비교적 오랜기간 유지된 유일한 왕조이기도 했다,
참조로 한족은 노예에서 벗어나기 위해 천지회라는 지하조직을 운영했고 이는 중국의 폭력조직인 삼합회의 기반이 된다.
간략하게 요약했지만, 중국의 역사는 한족이 아니라 북방의 기마민족이 지배했던 역사와 다름 없습니다.
국가의 성립부터, 국토의 확대, 문명의 발전은 물론 제 세력간의 갈등과 전쟁까지 한족의 자취는 미미합니다.
이런면을 정확히 인지해야 한족에 대하여 제대로 된 분석이 가능합니다. 지배계층으로의 한족과 노예로서의 한족은 첫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왜 한족이 주류가 된 중국이 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천민 혹은 졸부같은 행태를 보이는지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와 ...사이다같은 영상에 속이 후련합니다
안시성전쟁: 연개소문
살수대첩: 을지문덕장군
귀주대첩: 강감찬장군 확인바람
지금 딱좋은 이시기에 이제 국민을 늘립시다!
우리나라 저출산으로 우리나라를 가볍게 생각하고 도발하는게 정말! 화가납니다!
이런강의 동영상으로 한번 봤으면 좋겠다
중국군을 몰아낸거 가장최근에 하나 더 있습니다.
6.25전쟁중 용문산전투가 그것입니다. (1951. 5.16~5.21)
우리 근대사전쟁에서 크고작은 승리부터 값지지않은 피흘림과 희생이 어디있겠냐만은 꼭 하나 짚고가고싶은 승리가있습니다.
현재 3사단 백골부대와함께 철원을 지키고있는 육군 6사단 청성부대의 2연대가 당시 중공군 2개의 사단을 1951년 5월 16일부터 방어하고있었습니다.
우리는 1개연대 병력이 최선이었고 참고로 이 연대병력 3개를 모아서 1개사단으로 구성됩니다.
즉 당시 중공군의 병력은 9개연대규모였고 3개사단이 밀고내려왔는데 여기서 중요한것은 중공군의 1개사단 병력은 당시 우리 국군 1개사단의 병력보다 병력의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인해전술
이렇게 3일이넘게 용문산고지를 사수하던 우리 2연대는 이후 후방에서 미군의 포병지원이 시작되며 같은사단소속이던 7연대와 19연대가 후방에서 합류하게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력은 중공군의 10분의 1수준도 채 되지못했고 2연대가 죽음을 결심하고 방어할동안 7연대와 19연대가 용문산 인근의 지형을 잘 이용하며 준비된 전략대로 언저리로 포위해나갔고 이과정에서 중공군들이 대량 사살~ 그리고 중공군 다수가 퇴각하게되는데 살아남은 중공군들이 미친듯이 도망을가며 막다른길에 호수가 나오자 살기위해 물에 뛰어들지만 모두 수장되어 죽습니다.
이호수는 경기도 양구군에있는데 당시대통령이 깨트릴 파 오랑캐 로 를 써서 저수지명을 '파로호'로 지정하게됩니다.
아군 사상자 698명 중공군 사상자 85000명
용문산전투는 유럽대학 교범으로도 수록되고있을만큼 전략.전술이 뛰어났으며 저는 저 예일대 교수님께서 20세기의 제2의 살수대첩이라고하는 이 전투를 행여나 모르신다면 참고해볼만하다봅니다.
우리자신들미례를위해핵무장을서들러야한다ᆢ
재미있게 봤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
국뽕이지만 팩트네요. 사실 우리나라도 위대한 역사에 대한 홍보가 필요한 듯. 너무 겸손한게 아닌가 싶어요. 현대사회에 들어서도 IMF 극복 같은 국민들의 단합력과 불굴의 정신은 전 세계가 놀란 일 아닌가요.
영상 내용 어디가 국뽕이냐?
국뽕이 무슨 유행어냐? 사실을 알려주는 영상만 올라오면 국뽕이니 어쩌니 생각이 없는 건가?
요줌 한국 관련 영상만 올라오면 국뽕 어쩌니 저쩌니 에효 중국인 인가?
제발 부정적으로만 받아 드리지 말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사실을 공유해주는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 이라도 보여 줍시다 좀...
한글 특허로 한글 공통어된다
천만이 소총및 기갑 무기를 다룰줄 아네요
그중 백만이 탱크 등 전술무기를 다룰수 있고
십만 이상이 적 침투가 가능한 전술 무기급 인원입니다
해보죠 중국과 전쟁
중국공산당이 시작했다면, 둘레
민주,자유국가들은 연합하여,
쓸모없이 넓기만한 땅들을 나눠
사용할것이다 ! 고맙지요 !
중국이 대국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인걸 한국 그 누구도 인정할것이다 그런데 속국이람은 뜻을 이해못하는 중국인들..
속국이면 우리가 중국문화로 늘 살아가고있고 중국어를 했겠지... 나라 국명 자체도 틀린데 속국이 어디서 튀나오는거야?
수천 년의 중국 역사상 중국인이 세운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중국인들이 오랑캐라고 불렀던 돌궐이나 몽고, 여진족들이 세운 나라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았죠. 또 중국인들이 자기 문자라고 말하는 한자는 실상 동이족이 만든 문자였죠.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황하문명보다 수천 년 앞서 홍산문명이 있었는데 왜 홍산문명에 대해 떠들지 않나요? 그건 동이족의 문명이었기 때문이죠. DNA라는 과학적인 증거로 밝혀진 사실입니다. 결국 중국의 모든 문명의 시발은 동이족의 홍산문명이란 게 역사적 사실이죠.
통일신라와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통일신라는 기벌포 해전에서 당나라 함대를 모두 격침시키고 승리로 이끌었다.
김춘추가 스스로 당의 속국이 돼,동신라 역사가 치욕적으로
이분에게 자치권이 아니라 독립국가라고 정확히 바로잡고 싶네요.
한국 🇰🇷 반드시 극초음속 100배속 핵미사일 개발해야 한다 이유는 니들이 더 잘 알잖아 🇰🇷
일제시대때일본은한글을업쌔려햇지만현대에적합한한글이댈겁니다그런데중국이억지주장으로심술부리고있지
한국 정치계에도, 선거에도
이런 식의 중국 개입이 심각하지요..
너무 과찬인줄알지만 마음은 좋아 수고했어요
가찮은 중국!
한때 한중교류가 흥행할때 한국밥통 전기장판 화장품과
한국물품을 배로실어나르기 바쁘더만 조금 구제사회적으로 시야가 넓어지다보니 한국을씹네! 으이구!
응원합니다 ~~
무지가 충만하고.열등이 충만한게 얼마나. 큰 병인지
[중국 & 한자의 기원]
요순시대부터 청나라까지 모두 동이족이 통치하였으며, 화하족(華夏族)은 중국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의 원류가 되는 민족으로 '중화'(中華) 또는 '화하'(華夏)라는 말은 화하족에서 유래한 말로서, 근대 중국(1949년 마오쩌둥 이후)을 일컫는 말입니다.
모택동이 문화대혁명(1966~1976)이란 미명하에 기존의 관습과 문화를 모조리 부정하여 의사, 교수, 기술자, 지식인, 자본가라 폄하하여 수천만 명을 학살하면서 공자 묘를 헐어버리고, 전통 예술품, 서적 등 수많은 문화재도 깡그리 불태워버리는 등 중국의 문화를 모조리 말살시킨 운동을 벌였습니다.
※ 동이족의 흔적을 지우기 위함.
夷 : 大 + 弓 (큰 활을 잘 쏜다)
東夷族 : 큰 활을 잘 쏘는 동쪽의 겨레.
※ 공자 曰 "도가 행하여지지 않으니 나는 군자 불사지국 (君子 不死之國)인 선조의 땅 구이(九夷 : 동이의 다른 이름)에 가고 싶다"하고 바다에 뗏목을 뛰웠다고 합니다.
● 명나라의 시조 주원장은 전라북도 김제 사람으로 일월교(日月敎)의 신도로 있다가 교주가 되어 그 세력으로 나라를 세워 일월(日月)을 합쳐 국호를 명(明)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중국에선 파룬궁 등 종교를 탄압합니다.
[山海經] 十八卷 海內經
東海之內 北海之右 朝鮮 海之內東西二萬八千里 地方三萬里 南北二萬六天里
산해경 '조선의 경지는 동서 28000 리, 지방 30000 리, 남북 26000 리다'
● 영조 "세자(사도세자)가 얼마나 용맹한지 언월도를 휘두르며 얼음 바다를 뛰어 다닌다"
● 조선실록에 '극광(오로라)이 177회 관측되었다'고 기록.
● 이완용의 손자 이병도(서울대 역사 교수)가 '식민사관'을 가르쳐 우리나라의 역사는 한반도로 고착됨.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1902~1999) 박사가 장관시절 중국의 세계적 문호 임어당(林語堂 1895~1976)을 만나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 우리 한국까지 문제가 많다"
임어당이 놀라면서 "그게 무슨 말이오? 한자는 당신네 동이족이 만든 문자인데 그것도 아직 모른단 말입니까?"
대구대 교수가 북경대 교수에게 '문자 세미나'에서
"중국은 한자를 만들어 자랑스럽겠습니다?"
북경대 교수
"한자는 당신네 선조 동이족이 만든 글이다"
한(漢 은하수 한) : 한강, 한성, 한양, 한문 등
한(韓 나라 한) : 한식, 한지, 한복 등 모두 우리 고유의 것입니다.
● '갑골문자는 은나라가 만들었고, 은나라는 동이족이다'
유학파들도 조차 저모양이니 중국의 미래가 훤히 보이는구나 다행이다
조선의 민주화운동. 동학농민운동을 막고자 일본군을 끌어들였다가 뒷통수로 식민지배는 있었지...
농민들 아무개 데려다가 무기 방어구 한개도 안 둘러주고 총알받이로 내보내서 두당 총알 한개값 취급한 그 중공군 말인가요?
이건 있음.
평화로우면 당파싸움 + 헤이해지는 국민들
전쟁 일어나거나 재앙 터지거나 남의나라 식민지가 되면
그제서야 정신차리고 우루루 단합.
건국이념 세상을 널리 이롭게하라
한국인들 앞에서 꼼짝 못하는 중국인들~일 많이 시켜봐서 암~
예일대는 세계적인 대학이니, 중국은 예일대가 중국거라고 하고 있는겁니다.
ㄹㅇ 병신같은 중국적인 마인드네요 국뽕이 너무 심하면 그건그것대로 사람 상병신만드는건데 안타깝네요
우리나라 학생들은 무엇하고 있는지?
아무리 짖어바라 꿈쩍이나 하나 ... 근데 먼저 건디는 순간 지옥이 어떤지 보여주마...
아주참신한국뽕입니다
허여간 동양 유대인혼혈 쌍둥이나라 중국일본...문제가 많아 자신들이 동양인인지 혼혈인인지도 모르는상태...
ㅎㅎㅎㅎ.....
국가의 힘든 시기를 다 이기며 극복해 왔지만, 내부의 분열이 다른것도 아닌 페미니즘으로 이렇게 흔들실전 몰랏습니다.
메갈에 대한 여러루투를 통해 문제 인식하고 거부했지만, 사실 여성인권에 대한 문제는 부모세대를 보고 느끼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 동조했지만, 지금 너무 심각해서 페미람 , 아니 여성인권이란 얼굴뒤에 숨은 메갈스런 행동이나 법 개정이 너무 보이는데...
이건 절대 여성인권이 아니고, 과거 메갈의 사고를 공산주의적 전략전술의 방법으로 침투하는 이이제이 방식입니다.
이러다 이란같은 더 큰 반발이생기고, 반작용으로 우리나라 매분이 더 심해지는걸 누가 반길지.... 정치인과 주변경쟁자들
외국의 우리나라 경쟁자들입니다. 남자들도 그렇지만, 여성분들 진짜 각성해야합니다. 우리나라는 전시구가입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전쟁이나고 젤 큰 피해는 남자뿐 아니라 여성들도 비참해집니다.
한국은 미국과 열강메 의해 조상 땅을
엄청 중국에 빼앗겄는데
이땅을 찾아줄 책임은 미국에 있다.
중국 할시 만주땅을 한국에 양도해야 한다.
시건방 떠는 것도 얼마 안 남았다. 大罪를 짓고 神明을 凌蔑하니 어찌 잘되기를 바라리오
인류 역사의 출발점이 한반도 인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
땅덩이만 크고 사람만 많이 있는 중국 대체 정체성을 못느끼게 지들이 만들고다니네ㅋㅋ
중국은 자기. 나라를 자랑하고욕하네
이제는 외국인이 대한민국 애국자들이다.
ㄹㅉㅇ밍 응원하는 것들은 저 나라 가지
않고 뭐하노?
알아달라고 인민들이
나서서 호소하는 중궈
그냥 붙어보면 알겠지!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못먹듯이!주변국만 없음 충분히 이긴다
까분면. 션샤댐. 폭파시킨다
저딴폐급이명문대에?
2018 대학에서 73명이 백두산갈때 지인자격으로 따라갔어요.
느낀것은 화장실과 호텔서 휴지가없고
물못쓰게 하수구가 더높고 문지방이 낮아 물이 넘으니 변기에 올라서서 샤워는 못함
땅이 넓어 이웃과 소통이 안되 조만간 망하겠구나.
조선족도 친인척끼리만 뭉침 남은 길에 쓰러져도 그냥지나가라고 부모가 가르침.
역시쭝국이다
한국전쟁 때도 300만 중공인민군이 침략 해서 100만이 대가리에 링달고 올라갔습니다 😅
역사적으로 몽골, 중국과 일본은 4천 500년간 천자국, 황제국인 한국의 제후국들이었고 한국의 친척이며, 광대한 영토를 다스린 한국의 일부였습니다. 근대에 이르러 분리되어 나간 나라들입니다. 한국이 한반도에 갇힌 것은 일제의 식민지배 이후입니다.
휼륭한교수님❤❤❤존경합니다😊😊😊박수🎉🎉🎉
전체적인 야그는 알것지만, 당나라와 양만춘은 너무 무식합네다!
중국이 중국했네 ㅋㅋ ㅋ
* 여수전쟁 (麗隋戰爭) 한국 승
598년(영양왕 9)~614년
고구려 vs 중국 수나라 전쟁.
* 나당전쟁 (羅唐戰爭) 한국 승
670년 ~ 676년, 7년전쟁
신라 vs 중국 당나라 전쟁.
* 임진왜란 (壬辰倭亂) 한국 승
1592, 5, 23~1598,12,16, 7년전쟁
조선 vs 일본 전쟁
천신이 동쪽으로 가라고 지시 천자가 살곳은 한국 먼저선점한 셈족의형이 황하강 한강을 지배한 단지파로 한국이 먼저 선점 중국은 후발주자 동생이라 속이고 역사를 감춘다
정작 k팝 본고장은 한번만 낙제 하고 k팝을 듣는 순간 명문대는 바이바이다
😂ㅇ
⁰❤
결론은 북한칭송???
니 귀엔 대한민국을
찬양하는 이 교수의
말이 北돼지가 쵝오
존엄 이라고 들리냐
번영하는 선진 대한민국
윤석열 보유국 가~-즈아
한동훈 보유도 가~-즈아
원희룡 보유도 가~-즈아
우리나라 사람들 대체로
절나도는 쯍꿔렌을 닮고
갱상도는 미쿡 닮았당께
앙~그냐 잉 절나도 개딸
사연자님 과 교수님 대한민국에 대해 좀더. 깊이 공부해보서요 제가 얘기 하리다 대한민국 옛 고조선 시대 중국땅 반이상이 대한민국 땅이였소 그리고 지금의 중국은 50여개의 국가였소 고조선은 워낙크고 강대국 이라 넘보지 믓하고 작은나라 끼리 싸우여 오랑케 나라가 탄생했소 그게 한나라 위나라 오나라 삼국지로 탄생했소 그러다 다망하고 진시황이 삼국통일 했으나 다시 분란이 일어나 수나라가 등장해. 고구려를 침공했소 아참 잊었네요 전쟁만 일삼든. 오랑케 족으로 고조선은 망했네 요. 그런데 고조선 후예가 다시 고구려를 세워 천년 가까이 중국을 넘보지 못하게하고 중국을 완전 지배도 했으나 자중지란으로 모든땅 다뺏기고 남은땅이 대한민국 땅이요 그러나 다시 찾을것이요 세계서 가장 똑똑한 두뇌를 가진 민족이니까요
아울러 육이오 전쟁도 중국의 모택동이 김일성을 꼬드겨 일으킨 전쟁 이었다 그것은 남북이 전쟁으로 약해지면 중국이 쉽게 한반도를 집어 삼킬수 있엇기에 그래서김일성을꼬드겨일으킨전쟁이나이또한중국에의한전쟁이엇든것이다 ?
제발좀지위주라.지긋지긋하다.
몽고족에 200년동안 지배당한 중국.
공산당처재보다.못한
한국은 땅이 작음 핵 한방이면 끝나긴하겠지
짱깻ㄲ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