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믿는 사람들 일일히 신경쓰지 마세요! 그사람들은 지구 평면설을 믿는 사람들처럼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눈으로 본것도 안믿는 사람들 이예요 앞뒤로 꽉 믹힌 줄줄이 소세지 같은 사람들이죠! 그런사람들은 그냥 개무시 하는게 정신건강에 좋아요! 설득시키려고 노력해봤지 스트레스만 받고 울화통만 터져요.
한국의 풍요로움에 북한의 주민들을 생각해보면 안타까움이 절로 드는데 이런 일을 해결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일을 해결하자면 우리 자신부터 긍정하고 자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런 자유를 도입한 지도자를 긍정하고 탄탄한 산업화로서 우리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준 지도자부터 그 분들의 대단한 공적을 인정해야겠습니다
예전에 군복무중 휴가갈때 군화를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반짝반짝 하게 하고 군복도 칼같이 다려입고 철원에서 부산까지 폼잡고 휴가나온 추억이 생각나네예 ♡♡ㅎ 북한 현실 생활은 조선시대 드라마를 보는 느낌 임미데이~ 강교수님 설명에 찐 공감하는 유미카님 표정이 귀엽네예~~ㅎ
삼수갑산 획일화된 집앞에 확대한 사진을 보니 우물이군요 우리 한국에도 개개인의 가정에 우물을 파거나 하는 이전에는 마을 공동 우물에가서 퍼다 먹었습니다 집집마다 상하수도를 깔려면 포항제철같은 제철소 정유공장에서 정제과정을 거친 플라스틱이 나와야 가능한겁니다 한국에는 집집마다 시골에도 상하수도가 깔려있는 선진 사회입니다 북한은 이런 한국을 잘 살펴보시길...
58년생, 67년도까지 농촌 동네애서 공동우물 한곳에서 동네 모두 물지게로 물을 길어다가 먹고, 그해 대전으로 이사와서도 3,4년간은 동네 공동우물을 길어 먹고 살았지요. 71년 중1때 서울구경을 처음 했는데 사당동 산동네에선 공동 수도가 있어서 얼마씩 내고 물을 받아다 먹더라구요. 서울도 산동네선 그랬는데 지방 특히 시골은 더 늦었겠지요. 지금은 그때가 그립습니다
군화라고하면 못이 들어와도 바닥에 철판을 갈아 안들어오고 위에도 어느정도 날카로운것으로부터 방어해주는겁니다 영상에 나오는 북한의 군화는 그냥 작업화 수준이라고 보면되겠습니다 군대도 사회도 유지할려면 경제사정이 따라주어야합니다 이런 면들을 볼때 한국이 지난 시절에 이를 극복하기위해서 걸어온길이 올바른거고 남북의 최종 결정은 자유민주의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이 맞다고 봅니다 우리 스스로 그러한 선의길 정당한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합니다
70년대까지는 대한민국 농촌도 동네 공동우물에서 물 길어다 먹었고 매일 꽁 보리밥에 시래기죽에 콩죽 조죽(조당수) 먹었습니다. 쌀밥은 추석과 설명절에나 먹어 보며 자랐지요. 그때는 항상 배고파서 소나무 속껍질 진달래꽃 아카시아꽃 풀쌔싹 어린 개살구 개복숭아 닥치는대로 따서 먹은 기억이 나며 이밥에 고깃국 먹으려면 공부를 열씸히 해야 한다는 할아버지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80년대 회사에서 매일 12시간을 일해도 제대로된 임금도 못 받으며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에 만족하며 신명나게 일했던 기억도 새롭네요. 모든 국민이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잘 살게 되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기본적으로 대다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고 듣고 접한 것들이 뇌리속에 고정관념처럼 자리하게 마련입니다. 만약 어떤 탈북민이 무얼 잘 몰라 고난의 행군때도 그렇게 소문처럼 많이 죽거나 고생하지 않았다던가, 요즘은 북한도 옛날같지 않아서 배굶고 사는 인민들은 그리 많이 않다거나 그런 소식을 먼저 접한 사람들은 그 후로 다른 탈북민이 그와 다른 상반된 얘기를 하면 그 때부턴 그 사람의 주장이 귀에 들리기는한데 뇌리에 잘 박히지가 않습니다. 먼저 들었던 얘기가 있고 인지하고 있는 것들이 이미 그 사람의 인식구조를 지배하고 있기때문에 흔히 에~이 그정돈 아닌걸로 아는데, 너무 과장이 심하시다, 더 심하게는 저 인간 내가 북한에 직접 가보지 않고 직접 가서 확인이 안된다고 관심끌기나 사연팔이로 막 내뱉는구나 하는 불신까지 발생하는 현상도 소수나마 생기곤 합니다. 북한의 특수부대 장교 딸인 정유나씨도 대한민국 사람들이 북한에대한 인식이나 정보는 오히려 우리도 모르며 자랐던 걸 더 세부적으로 잘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걸 살면서 점점 크게 느낀다고 했었죠...! 반면 북한의 진실을 호도하거나 혼란을 발생케하는 건 도리어 제대로 알지도 확인되지도 않은 걸 진실처럼 떠들고 책임없이 주장하고 다니는 같은 탈북민들이 가장 문제라고 냉철하게 꼬집기도 했는데 전혀 틀린 말이 아니라고 봅니다. 한 때 김정은이 이미 사망했는데 북한 당국이 숨기고 있다는둥,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며 해외 유학파 출신이라 개방적이라 북한 인민이 많이 자유로운 환경으로 바뀌었고 인권문제도 개선되서 함부로 처형건수도 줄었느니 어디서 출처도 모르는 찌라시 소식들을 듣고서 그걸 아무런 교차검증도없이 떠들고 다니느것도 죄다 방송하는 탈북민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헛소리들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경솔하기 짝이 없고 이젠 탈북민들도 이렇게 개인 유튜브 방송이다 이만갑이다해서 여기저기 매스컴들을 많이 타니까 어디서 무슨 근거도 불확실한 얘기만 들어도 사이비 기자들이 조회나 특종건수 올리려고 일단 기사부터 싣고 터트리고 보자 라는 심산으로 막 내뱉는 사례가 갈수록 즐비해지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다 어쩌다 얻어 걸리듯 맞으면 관심폭증 하며 건수 올리는거고 틀리면 말고 라는 식에 무책임한 태도이죠. 그렇다고 그러한것들이 북한 사람들의 공통 습성이거나 본질이라고 여기진 않습니다. 여기와서 좋은 것만 보고 배우면 괜찮은데 좋지 못한 것들까지 배우고 그대로 답습하며 사는 일부 탈북민들 역시 생전 누리지도 알지도 못한 자유라는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그걸 소중하게 조심스럽게 활용하기보다 남용을 하고 내가 내 마음대로 이렇게 저렇게 떠들어도 여긴 북한 보위부처럼 아무도 날 어쩌지 못해 하는 믿는 구석때문에 멋대로 방종을 일삼는 탈북민들이 문제입니다.
한국의 4~50년전 딱 그 모습이네요! 그때는 인정들도 많았고 너무도 평화 스러웠죠 지금보다는 삶의 스트레스도 없고~ 좋은 것 많이 못먹는 경우는 있었지만 굶는사람은 별로 없었고, 야채과일 생선은 너무도 싸고, 고기는 좀비싸긴 했어도 종종 먹었죠! 빈부의 격차도 크게 없었고ᆢ 가장들은 가족 먹여 살리느라 고생은 좀 많이 하긴했지만~
빨간물이 얼마나 들면 저렇게 사진을 보여줘도 못믿겠다고 하냐? 진짜 큰일이다.... 그리고 교수님 우물 못보셨어요? 교수님 보다 조금 더 어린 저는 봤었는데.... 😂 옛날에 용산구 원효로 1가에 우물집이라고 있었는데 거기 마당에 우물이 있었어요~ 그리고 수유리에 살던 고모네에 가서도 본 적이 있었어요. ㅎㅎㅎ 아주 어렸을 때에 수유리에 가면 아주머니들이 개울가에서 빨래하고 아이들은 가재잡고... 그 때의 모습이 아직도 그려지네요. ㅎㅎㅎ
북한의 뚱뚱한 지도자가 평양에서부터 먹는문제 상하수도문제 전기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자기 입으로 떠 벌렸는데 꼭 지키기를 바라고 한국의 60~70년대의 지도자가 이런 문제들을 다 해결했으니 꼭 참조해서 보시기를 바랍니다 자기의 아버지도 이런 한국의 지도자를보고 농민들과 어울려 막걸리도 마시면서 새마을 운동으로 잘했다 라는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먼데서 답을 구하지말고 우리 대한민국을 들여다보시길...
60년~70년대를 산 사람으로 현재 40대도 그림같은 상황을 이해못할 것입니다 60년~70년대를 살은 사람으로 이해가 갑니다 북한 시골의 현실은 남한의 60년~70년대 아직도 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한 아이들도 농담으로 아버지때는 밥 끼니도 없이 고구마,감자 같은곳을 먹고 살았다고 하면 이해를 못하는 실정입니다. 과거에 "그때를 아십니까" 옛날 다큐영화를 보시면 상황이 똑같습니다. 김동완교수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기성세대의 노력으로 오늘의 부를 누릴 수 있습니다
도대체 북한에 대해 좋게 얘기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교수님을 통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걸 알게 되네요 ㅜ 그생각이 참 한심합니다 우연히 접한 유미카에서 탈북스토리 들으면서 40대인 저에겐 예전 일제시대 또는 옛 전쟁때 조상들이 힘든 일을 경험한 얘기를 전해듣는 것 만큼 먼 얘기고 믿기가 힘든 얘기들이었습니다 그 얘기들을 보게 듣게 되면서 마음이 아프고 눈물 짓고 놀라워 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북한주민들이 더 이상 힘들지 않게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게되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북한을 좋게 얘기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겁니다. 정치적으로 보수의 시각에서 진보쪽을 공격하기 위한 '진보는 북한을 찬양한다'라는 프레임을 씌우기는 하는데 진보쪽이더라도 북한 인민들을 가엽게 여기는 시각은 있을지언정 북한 정권을 찬양하는 사람은 아마 한명도 없을 겁니다. 정치적으로 보수쪽에 약간 치우친 사람들이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다라는 말을 하는걸 가끔 들으면 정말 어이가 없고 화가 납니다
강릉 토박이 부모님이 늘 "그릇 한번 까셔내고 갖고 와라~" 하셨어요 즉, 헹구고 갖고 오라는 것을 그렇게 사용하셨는데 북한에서 "까시다"란 단어가 '설거지하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다니 신기하네요 추측상, 이 단어가 "그릇을 씻다"라는 의미로 조선시대나 아무튼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 사용되어져 왔나 보네요 70년대 후반까지 저희 친정동네는 저런 우물이 있었답니다 80년 들어서며 시내든 산골이든 상수도 시설이 갖춰지면서 더이상 무용지물이 되었기에 그때를 거친 나이라 저런 장면들이 낯설지 않답니다😊
저런 사회에서도 사람이 명맥을 유지하니, 인간의 생존력이 얼마나 끈질기고 위대한 지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지옥을 탈출해 오신 분들의 용기 또한 참 대단합니다. 그게 인간인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더 나은 데로 나아가려는 본성. 북한분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는 이것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앞으로도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 50초반인데 시골 가난한 집에와서 살았습니다 도시에서 사신분들은 고무신 아궁이 이야기하면 거짓말하지말라하고 60대분들하고 옛날이야기하면 그 언니들이 저한테 자기 60대냐고 이야기해요 그만큼 남한도 옛날엔 시골하고 도시 다릅니다 교수님 우물 안 써보셨다는데 전 어릴따 윗집우물에 가서 손빨래했습니다
전우물 길어봤어요 .. 시골에 전기가 없었고 밤에 호롱불 밝히고 나무때서 밥짓고 시냇가에서 빨래하던 모습이 훤하네요. 저희 외갓집 이이였어요. 인천의 모습이였어요. 제가 국민학교 시절 모습 이젠 너무 아련한 옛날 60년 중반쯤 되는것 같은데 그래도 지금 북한처럼 굶고 사는사람 본적은 없던것 같습니다.
1일1장, 내 가난했던 소시적 때거리가 없어 그날 그날 날품 팔아 일끝나고 장에서 정부미를 사다 끼니를 해 주시던 어머니가 생각나 맘이 찡합니다. 같은 한민족으로 AI시대에 북한 이야기를 보면 그저 안타까울 뿐. . 하루빨리 북한에도 풍족한 현대 문명화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군요
북중 국경 1400km를 직접 발로 다니며 북한 사회의 진실을 담아서 알릴려고 많은 애를 쓰 오시고 지금도 애를 쓰시는 강동완 교수님 그 정신을 높이 사고 싶고 무었보다 안타까운것은 이렇게 가난으로 신체가 왜소해지고 가벼워져서 한민족의 유전자 자체를 잃어버리는 전혀 다른 민족이 되지 않을까 그것이 안타갑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던 80년대 우리 동네도 우물가 냇가에서 아줌마들 빨래했는데 그때는 저녁에 정전도 잘되서 양초와 후레쉬는 늘 비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조금 더 빨리 좋아지고 차이지 남과북 사람사는건 똑같은 듯.. 사진을 통해 북한 주민의 삶을 더 자세히 보게 되는 좋은 영상이네요
남한도 서울 등 대도시는 1960년대 초중반까지 저런 모습이었고 시골은 70년대 중반까지 저랬습니다 . 저런 모습을 벗어날려면 엄청난 돈과 강력한 추진력이 있어야 합니다 . 남한은 1965년부터 고속성장을 시작합니다 . 당시 대통령은 월남전 핏값과 한일수교 자금을 산업혁명 추진에만 투입한게 아니라 거의 절반을 국민 복지를 위한 [상하수도 시스템]과 [전기전력 시스템]과 [교통 시스템] 구축에 투입합니다 . 물론 서울 등 대도시가 우선적으로 구축됩니다 . 당시 대통령의 무시무시한 추진력으로 인해 1970년대 후반까지 남한은 모든 국민이 어마어마한 생활혁명을 겪게 되고 그 혜택을 받습니다 . 댕큐 대통령님 !!!
박정희대통령이 독재는 했지만 전세계 다른 독재자들과는 달리 자기 자신을 위한 독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을 위한 독재를 했죠. 세상에 이런 독재자 없었죠. 박정희 대통령이 자원하나 없고 척박한 국토를 가진 우리나라, 농업국가 대한민국을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자원은 인간이다' 라고 선언하고 국민을 교육시켜서 공업으로 먹고 사는 현대국가로 만들었죠.
북한의 현실을 안믿는 사람들은 권력을 유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알면서도 왜곡해서 선전선동을 하고 그들을 따르는 따르는 사람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맹종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편을 가르고 왜곡하는 일부 의원들이 진짜 나쁩니다. 그래도 북에서 온 여러분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업도 일취월장 하길 기원드립니다
우물 세대입니다😊 그러나 우물은 집집마다 있었던것 같고 펌푸도 있었죠 우물에 수박 담가서 시원하게 잘라 먹었던 기억납니다 여름에 학교 다녀와서 우물에서 물한바가지 길어올려 세수하고 발씻고 그 시원함 잊을 수가 없네요 북한 주민에게는 생존의 우물이고 우리에게는 향수를 그리는 우물이 되었군요😢
북에서 오신 분들 얘기하시는 것도 괜찮지만 교수님 말씀도 다른 관점과 다른 맛이 있어 좋습니다.
저는 북한이 저렇타는거
백프로 천프로 읻습니다
이산기족 만남때만 봐도
남한사람 북한사람 딱봐도
티가 나던데요 .
안믿는 사람들 일일히 신경쓰지 마세요! 그사람들은 지구 평면설을 믿는 사람들처럼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눈으로 본것도 안믿는 사람들 이예요 앞뒤로 꽉 믹힌 줄줄이 소세지 같은 사람들이죠! 그런사람들은 그냥 개무시 하는게 정신건강에 좋아요! 설득시키려고 노력해봤지 스트레스만 받고 울화통만 터져요.
50중반 인데 누가 안 믿나요? 5000만 중에 100명 될까요.? 아니면 국힘당 지지 안하면 빨갱이 인가요?
인간생지옥이예요
비용이 아무리 들어도 통일이 되어 다같이 행복하게 살아야지요. 우리는 같은 민족이잖아요. 두 분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어 곧 통일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북한을 다녀오신 교수님
사진을 유대표님과 이야기 하시고 설명하시니 이해가가고
얼마나 열악한 곳 인지
가슴아파요
우리나라 도 70년대초반까지 시골마을 우물에서 물동이에 퍼다가 공동으로 우물사용 했다요 그후 마을마다 마을상수도 마을뒷에 공용으로 시설완충해 지금까지 사용하고있음 ,
1960년대 충남 조치원읍.
인구 2만명 소도시.
일제시대 만든 수도물 공급망이 있었어요..
물론 집집마다 지하수 우물,펌프도 같이 사용했지요.
저도 60년에 태어 났고 풍족하진 않지만 배는 안골고 살았는데요,,,,우리의 50년대 수준 같아서 안타갑네요
50년대를 살아봤는데 북한처럼은 아닙니다.
저기는 노력해도 소용이 없지만 우리는 노력하면 보리밥 밀가루라도 먹을 것이 생겼어요.
50년대에도 대한민국에 굶어죽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때는 경제는 나빳어도 원조 물작 적지 않았죠.
@@HpminKim
박대통령을 밀가루 대통령이라고 부를 만큼 원조를 경제발전에 썼죠. 감사합니다.
저도 60년생인데 어렸을때 수제비를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나지만 배가 고프지는 않았던것 같아요
경상도에서 70년대에 사용한 말입니다
경상도에서는 까신다가 아니고 '가신다'로 사용했어요
거짓같은 참 일이 일어나고 있군요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참 복 받은 줄 알아야 하겠구만
저는 70년대까지 시골에 집집마다 우물이 있었지요! 그나마 나은 편인데 물이 안 좋은 섬 같은 데는 공동 우물만 있었지요
한국의 풍요로움에 북한의 주민들을 생각해보면 안타까움이 절로 드는데 이런 일을 해결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일을 해결하자면 우리 자신부터 긍정하고 자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런 자유를 도입한 지도자를 긍정하고 탄탄한 산업화로서 우리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준 지도자부터 그 분들의 대단한 공적을 인정해야겠습니다
해산 장마당나오니 유미씨 눈이 반짝반짝....
유미카에나오신게스트중 남한출신은 첨같아요. 참고로
저는 동환님팬예요
유미님 강동완교수님 수고많으십니다.북한의 참혹한 실상에 마음이 무거워지네요.48년생인 저로서는 어렵든 어린시절을 거치면서 성장하였지만 저런형태의 주택은 본기억이 없습니다 저곳까지 우리들의 힘이 미치지 않으니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반갑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빠릅니다.
교수님! 늘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말씀을 너무 잘하십니다. 영상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 저는 믿습니다 "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입니다.
그저 웃습니다... 웃픕니다...어째야 할까요 ㅠㅠㅠ
하루에 1편씩 4일....김동환 교수님 방송은 다른곳보다 유미님 방송이 더 웃고프네요 ^^ ㅠㅠ
안 믿는 것이 아니고 안 믿고 싶은 거예요. 살다가 탈출한 분들의 공통적인 말을 믿지 않으면 누구 말을 듣겠어요. 그런 사람들은 북한으로 보내서 살다가 오게 하면 좋겠어요. 너무 유익한 시간 고맙습니다.
교수님 같은 분이 계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 군복무중 휴가갈때 군화를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반짝반짝 하게 하고 군복도 칼같이
다려입고 철원에서 부산까지
폼잡고 휴가나온 추억이 생각나네예 ♡♡ㅎ
북한 현실 생활은 조선시대
드라마를 보는 느낌 임미데이~
강교수님 설명에 찐 공감하는
유미카님 표정이 귀엽네예~~ㅎ
저는 59세 인데요, 우리동네도 1976년도 까지 용천수 떠다 생활했는데 그이후로 수도가 들어와서 사용했었요
강원도 울 동네도 그릇을 까신다 표현해요
안믿는 사람들은 진실이 필요없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삐뚤어진 신념입니다.
교수님 콘텐츠도 잼있어요~색다른 느낌의 콘텐츠~~~좋아용~~^^
강교수님의 생생한
북한 사진과
자세한 설명 그리고
유미님이 추가설명을 해주시니
귀에 쏙쏙 들어오네요^^
유미님 응원해요
행복하세요
교수님 대단할 일을
하고 계시네요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40대후반인데... 언니랑 같은방을 쓰는건도 싫어서 내 방 갖고 싶다고 엄마하테 졸랐던 기억이 있어요. 우리 엄마 세대에는 온가족이 한 방에 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40대 중반인데 중학생때까지 단칸방에서 4명이서 다닥다닥 붙어서 잤어요....ㅎ_ㅎa.
나는 70후반인데 중학교때 내방이 따로있었음
삼수갑산 획일화된 집앞에 확대한 사진을 보니 우물이군요 우리 한국에도 개개인의 가정에 우물을 파거나 하는 이전에는 마을 공동 우물에가서 퍼다 먹었습니다 집집마다 상하수도를 깔려면 포항제철같은 제철소 정유공장에서 정제과정을 거친 플라스틱이 나와야 가능한겁니다 한국에는 집집마다 시골에도 상하수도가 깔려있는 선진 사회입니다 북한은 이런 한국을 잘 살펴보시길...
신박~!
강동완 교수님과 유미님, 두 콤비가 영상을 보면서
해설을 해 주시니까
몰랐던 부분까지 이해가 되어서 넘넘 좋습니다
유미대표님은 항상 사업잘 되시기를 바라고, 강동완 교님을 더욱 더 가열차게 북한을 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강동완 교수님 겸손하신 분이시네요.
나름 보고 연구 많이 하셨지만 배우시려는 자세가 훌륭합니다.
겨울에 우물가에가면 김이 무럭 무럭 올라오죠~
@@이수철-i6i 오 진짜요? 신기하네요.
지금도 강원도 시골에서 양수기로 지하수를 퍼올려 수도관에 연결하여 상수로 쓰고 있는데 시골지하수에는 세균이 없으며 여름에는 얼음처럼 느껴지는 찬물이 나오고 추울땐 따뜻하게 느껴지는 더운물이 나옵니다. @@link_love3581
겨울날 아침에 우물가를 지나가면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저도. 어릴때. 우물 사용한적있어요. 우물에. 빠진적도있었구요
58년생,
67년도까지 농촌 동네애서 공동우물 한곳에서 동네 모두 물지게로 물을 길어다가 먹고, 그해 대전으로 이사와서도 3,4년간은 동네 공동우물을 길어 먹고 살았지요.
71년 중1때 서울구경을 처음 했는데 사당동 산동네에선 공동 수도가 있어서 얼마씩 내고 물을 받아다 먹더라구요. 서울도 산동네선 그랬는데 지방 특히 시골은 더 늦었겠지요.
지금은 그때가 그립습니다
대한민국도 6~70년도 광산촌에서는 저렇게 살았습니다!! 저런 집 형태는 일제강점기때 집약 노동이 필요한 광산촌에서는 볼수가 있었습니다!!!
@@박현수-r1y 맞아요 이종언니네가 도계 탄광촌에 사셨는데 딱 저런집이었어요 온동네가 시커먼 50년전 추억입니다 ㅎ
유미님 눈 반짝반짝 ❤
군화라고하면 못이 들어와도 바닥에 철판을 갈아 안들어오고 위에도 어느정도 날카로운것으로부터 방어해주는겁니다 영상에 나오는 북한의 군화는 그냥 작업화 수준이라고 보면되겠습니다 군대도 사회도 유지할려면 경제사정이 따라주어야합니다 이런 면들을 볼때 한국이 지난 시절에 이를 극복하기위해서 걸어온길이 올바른거고 남북의 최종 결정은 자유민주의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이 맞다고 봅니다 우리 스스로 그러한 선의길 정당한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합니다
말로만듣다가 영상 보며 들으니 재미있네요~~
❤😂❤🎉🎉😅😅😊😊
유미 대표님 날씨가 많이 추워요.
옷 따뜻하게 입고 건강관리 잘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중고차는 유미카~~~
꽃배달도 입니까~~~
80년대 서울에도 있었음.
맞아요 교수님 말처럼 우리 북한주민들도 풍요로움을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
70년대까지는 대한민국 농촌도 동네 공동우물에서 물 길어다 먹었고
매일 꽁 보리밥에 시래기죽에 콩죽 조죽(조당수) 먹었습니다.
쌀밥은 추석과 설명절에나 먹어 보며 자랐지요.
그때는 항상 배고파서 소나무 속껍질 진달래꽃 아카시아꽃 풀쌔싹
어린 개살구 개복숭아 닥치는대로 따서 먹은 기억이 나며
이밥에 고깃국 먹으려면 공부를 열씸히 해야 한다는 할아버지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80년대 회사에서 매일 12시간을 일해도 제대로된 임금도 못 받으며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에 만족하며 신명나게 일했던 기억도 새롭네요.
모든 국민이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잘 살게 되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우리나라도 시골에서는 70년대까지, 어떤 곳은 80년대까지 우물에서 물을 길러 먹었습니다.
1960년대 충남 조치원읍.
인구 2만명 소도시.
일제시대 때 만든 수도물 공급망이 있었어요..
물론 집집마다 지하수 우물,펌프도 같이 사용했지요..
일본놈들도 식민지에 수도를 놨는데...김씨 일가 니들은 뭐하냐 ?
유미님.. 혜산 나오니 눈시울이 촉촉해 지셨네요 ~~
유미님 너무 신났다.. 그래도 고향이고 이젠 볼수없는 과거들... 얼마나 추억이 새록새록할까요. 그래서 더 보기좋은 영상인것 같네요
너무 유익해요 ㅠㅠ 끝나는 게 아쉬운
강동완 교수님 응원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파이팅
9:37 한국으로 치면 오피스텔,원룸,고시원 수준이군요 ㅠㅠ
@@cielogun5959 오피스텔과 원룸시설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네예~~
@@낭만파진경 살아본적은 있냐?
기본적으로 대다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고 듣고 접한 것들이 뇌리속에 고정관념처럼 자리하게 마련입니다.
만약 어떤 탈북민이 무얼 잘 몰라 고난의 행군때도 그렇게 소문처럼 많이 죽거나 고생하지 않았다던가, 요즘은 북한도 옛날같지 않아서 배굶고 사는 인민들은 그리 많이 않다거나 그런 소식을 먼저 접한 사람들은 그 후로 다른 탈북민이 그와 다른 상반된 얘기를 하면 그 때부턴 그 사람의 주장이 귀에 들리기는한데 뇌리에 잘 박히지가 않습니다.
먼저 들었던 얘기가 있고 인지하고 있는 것들이 이미 그 사람의 인식구조를 지배하고 있기때문에 흔히 에~이 그정돈 아닌걸로 아는데, 너무 과장이 심하시다, 더 심하게는 저 인간 내가 북한에 직접 가보지 않고 직접 가서 확인이 안된다고 관심끌기나 사연팔이로 막 내뱉는구나 하는 불신까지 발생하는 현상도 소수나마 생기곤 합니다.
북한의 특수부대 장교 딸인 정유나씨도 대한민국 사람들이 북한에대한 인식이나 정보는 오히려 우리도 모르며 자랐던 걸 더 세부적으로 잘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걸 살면서 점점 크게 느낀다고 했었죠...!
반면 북한의 진실을 호도하거나 혼란을 발생케하는 건 도리어 제대로 알지도 확인되지도 않은 걸 진실처럼 떠들고 책임없이 주장하고 다니는 같은 탈북민들이 가장 문제라고 냉철하게 꼬집기도 했는데 전혀 틀린 말이 아니라고 봅니다.
한 때 김정은이 이미 사망했는데 북한 당국이 숨기고 있다는둥,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며 해외 유학파 출신이라 개방적이라 북한 인민이 많이 자유로운 환경으로 바뀌었고 인권문제도 개선되서 함부로 처형건수도 줄었느니 어디서 출처도 모르는 찌라시 소식들을 듣고서 그걸 아무런 교차검증도없이 떠들고 다니느것도 죄다 방송하는 탈북민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헛소리들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경솔하기 짝이 없고 이젠 탈북민들도 이렇게 개인 유튜브 방송이다 이만갑이다해서 여기저기 매스컴들을 많이 타니까 어디서 무슨 근거도 불확실한 얘기만 들어도 사이비 기자들이 조회나 특종건수 올리려고 일단 기사부터 싣고 터트리고 보자 라는 심산으로 막 내뱉는 사례가 갈수록 즐비해지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다 어쩌다 얻어 걸리듯 맞으면 관심폭증 하며 건수 올리는거고 틀리면 말고 라는 식에 무책임한 태도이죠.
그렇다고 그러한것들이 북한 사람들의 공통 습성이거나 본질이라고 여기진 않습니다.
여기와서 좋은 것만 보고 배우면 괜찮은데 좋지 못한 것들까지 배우고 그대로 답습하며 사는 일부 탈북민들 역시 생전 누리지도 알지도 못한 자유라는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그걸 소중하게 조심스럽게 활용하기보다 남용을 하고 내가 내 마음대로 이렇게 저렇게 떠들어도 여긴 북한 보위부처럼 아무도 날 어쩌지 못해 하는 믿는 구석때문에 멋대로 방종을 일삼는 탈북민들이 문제입니다.
내용이너무길어
뭔말인지모르겠어
요점만얘기하슈
두분방송 재미있어서 다음편이 기다려집니다❤
보면 볼수록
두분 케미 넘좋네요
기회가 되면
두분이 또 이렇게 방송하면 좋겠네용
넘 재미나용
보면 볼수록 북에 계시는 우리 동포들이 가련하고 안타깝습니다.
하루 빨리 자유민주통일이 되어 불쌍한 저 동포들이 자유와 인권을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유미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97년도까지 우리집터에 우물이 있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도 유미카 통해서 북한실정을 알았지. 모르신분들은 그저 우리보다 조금더 못살겠거니 하겠죠. 저정도 일줄은 모를겁니다ㅠ
@@letsroll-r2g 저도 유미카채널 보면서 북한 실정 알게되었습니다 그전에는 관심도
없었구요 저토록 처참한줄
요즘 알아간답니다 😢
가신다(부시다)...남쪽에서도 자주 써요. 세제와 수세미를 쓰지않고 (흐르는) 물에 대충 씻어낼때 보통 사용하죠.
영상에는 까신다라고 나오길래 뭔가 했더니 물로 가셔내라 이런말을 경상도에서 사용합니다
까신다라는 말은 강원도 고성 지역에서도 많이 써요 저도 고성출신인데 많이 썼죠
백번 옳은 말씀~ 그래두 믿지 않는 인간들 뇌는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봐야 할 듯
이분 말투가 북한느낌이 많이나네요~
한국의 4~50년전 딱 그 모습이네요!
그때는 인정들도 많았고 너무도 평화 스러웠죠
지금보다는 삶의 스트레스도 없고~
좋은 것 많이 못먹는 경우는 있었지만 굶는사람은 별로 없었고, 야채과일 생선은 너무도 싸고, 고기는 좀비싸긴 했어도 종종 먹었죠!
빈부의 격차도 크게 없었고ᆢ
가장들은 가족 먹여 살리느라 고생은 좀 많이 하긴했지만~
빨간물이 얼마나 들면 저렇게 사진을 보여줘도 못믿겠다고 하냐? 진짜 큰일이다.... 그리고 교수님 우물 못보셨어요? 교수님 보다 조금 더 어린 저는 봤었는데.... 😂 옛날에 용산구 원효로 1가에 우물집이라고 있었는데 거기 마당에 우물이 있었어요~ 그리고 수유리에 살던 고모네에 가서도 본 적이 있었어요. ㅎㅎㅎ 아주 어렸을 때에 수유리에 가면 아주머니들이 개울가에서 빨래하고 아이들은 가재잡고... 그 때의 모습이 아직도 그려지네요. ㅎㅎㅎ
북한의 뚱뚱한 지도자가 평양에서부터 먹는문제 상하수도문제 전기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자기 입으로 떠 벌렸는데 꼭 지키기를 바라고 한국의 60~70년대의 지도자가 이런 문제들을 다 해결했으니 꼭 참조해서 보시기를 바랍니다 자기의 아버지도 이런 한국의 지도자를보고 농민들과 어울려 막걸리도 마시면서 새마을 운동으로 잘했다 라는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먼데서 답을 구하지말고 우리 대한민국을 들여다보시길...
60년~70년대를 산 사람으로 현재 40대도 그림같은 상황을 이해못할 것입니다
60년~70년대를 살은 사람으로 이해가 갑니다 북한 시골의 현실은 남한의 60년~70년대
아직도 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한 아이들도 농담으로 아버지때는 밥 끼니도 없이 고구마,감자 같은곳을 먹고 살았다고 하면
이해를 못하는 실정입니다. 과거에 "그때를 아십니까" 옛날 다큐영화를 보시면 상황이
똑같습니다. 김동완교수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기성세대의 노력으로 오늘의 부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60년 70년도 까지도 우물있었고 시골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음 70년 이후 시골에도 상수도 시설을 하고나서 많이 좋아졌죠.그리고 전기시설도 7년 말부터 시골에 설치 하였네요
까신다 라는 말은 가신다의 쎈발음 같네요. 입가심하다 할 때의 가시다가 헹구다의 의미.
도대체 북한에 대해 좋게 얘기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교수님을 통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걸 알게 되네요 ㅜ 그생각이 참 한심합니다
우연히 접한 유미카에서 탈북스토리 들으면서 40대인 저에겐 예전 일제시대 또는 옛 전쟁때 조상들이 힘든 일을 경험한 얘기를 전해듣는 것 만큼 먼 얘기고 믿기가 힘든 얘기들이었습니다
그 얘기들을 보게 듣게 되면서 마음이 아프고 눈물 짓고 놀라워 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북한주민들이 더 이상 힘들지 않게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게되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북한을 좋게 얘기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겁니다. 정치적으로 보수의 시각에서 진보쪽을 공격하기 위한 '진보는 북한을 찬양한다'라는 프레임을 씌우기는 하는데 진보쪽이더라도 북한 인민들을 가엽게 여기는 시각은 있을지언정 북한 정권을 찬양하는 사람은 아마 한명도 없을 겁니다. 정치적으로 보수쪽에 약간 치우친 사람들이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다라는 말을 하는걸 가끔 들으면 정말 어이가 없고 화가 납니다
유미님 반공교육에 감사합니다.
강릉 토박이 부모님이 늘 "그릇 한번 까셔내고 갖고 와라~" 하셨어요
즉, 헹구고 갖고 오라는 것을 그렇게 사용하셨는데 북한에서 "까시다"란 단어가 '설거지하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다니 신기하네요
추측상, 이 단어가 "그릇을 씻다"라는 의미로 조선시대나 아무튼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 사용되어져 왔나 보네요
70년대 후반까지 저희 친정동네는 저런 우물이 있었답니다
80년 들어서며 시내든 산골이든 상수도 시설이 갖춰지면서 더이상 무용지물이 되었기에 그때를 거친 나이라 저런 장면들이 낯설지 않답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겠읍니다 수고하세요
저런 사회에서도 사람이 명맥을 유지하니, 인간의 생존력이 얼마나 끈질기고 위대한 지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지옥을 탈출해 오신 분들의 용기 또한 참 대단합니다. 그게 인간인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더 나은 데로 나아가려는 본성. 북한분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는 이것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앞으로도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장모습 너무 흥미로워요!
가끔 티비에 6.25전쟁이후 배경으로 드라마에 보면 시장모습이 딱 저느낌이었던거 같아요...
영상 빨리 올려주세요
유미카님 영상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갔소
전 50초반인데 시골 가난한 집에와서 살았습니다
도시에서 사신분들은 고무신 아궁이 이야기하면 거짓말하지말라하고
60대분들하고 옛날이야기하면 그 언니들이 저한테 자기 60대냐고 이야기해요
그만큼 남한도 옛날엔 시골하고 도시 다릅니다
교수님 우물 안 써보셨다는데 전 어릴따 윗집우물에 가서 손빨래했습니다
힘들고 절실함과 사회적 적응력을 위해 남녀 전부 군에 보내어 군복무를 경험하게 해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하긴 요즘은 군대도 좋아져서 예전 군대에 비하면 캠핑 수준이죠.
60년대 내 동생은 방이좁아 봉창밑에 누여놨다 하더라구요
69년생 국민학교때 서울 수원 안양 안산에 살았지만
수도 전기 24시간 나오고
우물은 나이들어서 안쓰는거 깡시골 가서 봤네요
학교 운동장 수도시설이 있어서
뛰어놀다
목마르면 수도물을 마셨죠
보면 다 알죠. 자꾸 안 믿는다고 그러시는데, 솔직히 이걸 안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너무 재밌는데요~
그동안 영상들이 패턴이 비슷했는데.
이런 형태의 영상도 좋네요!
궁금한게 지금까지 본 사진이 몇 십년전 모습의 사진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저렇게 지낸다는건가요?
저의 어릴 적은 한방에 8식구가 보통 함께 살았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내요
유미님도 이제는 한국 오신지가 꽤 되었는데도 교수님 사진 설명에 막힘없는거보면 북한이 정말 발전이 없나보네요….
전우물 길어봤어요 .. 시골에 전기가 없었고 밤에 호롱불 밝히고 나무때서 밥짓고 시냇가에서 빨래하던 모습이 훤하네요. 저희 외갓집 이이였어요. 인천의 모습이였어요. 제가 국민학교 시절 모습 이젠 너무 아련한 옛날 60년 중반쯤 되는것 같은데 그래도 지금 북한처럼 굶고 사는사람 본적은 없던것 같습니다.
그렇죠, 시골우물에는 지붕이 있었고 두레박은 매우 커서 한번 퍼올리면 그 좋은 물을 만족스레 쓸 수 있었지요.
@@이진한-b1i 옛날 생각납니다 여름엔 두레박 물 퍼올려서 등목도 하고요 ^^
유미카님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저도. 65세인데. 방학때 시골 이모네가야 우물을. 봤어요~
전65년생인데 강원도 산골에선 저렇게 물 또는 빨래도 했어요
이런 사실을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알아야 할텐데요......!!!!😢😢
1일1장, 내 가난했던 소시적 때거리가 없어 그날 그날 날품 팔아 일끝나고 장에서 정부미를 사다 끼니를 해 주시던 어머니가 생각나 맘이 찡합니다. 같은 한민족으로 AI시대에 북한 이야기를 보면 그저 안타까울 뿐. . 하루빨리 북한에도 풍족한 현대 문명화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군요
북중 국경 1400km를 직접 발로 다니며 북한 사회의 진실을 담아서 알릴려고 많은 애를 쓰 오시고 지금도 애를 쓰시는 강동완 교수님 그 정신을 높이 사고 싶고 무었보다 안타까운것은 이렇게 가난으로 신체가 왜소해지고 가벼워져서 한민족의 유전자 자체를 잃어버리는 전혀 다른 민족이 되지 않을까 그것이 안타갑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던 80년대 우리 동네도 우물가 냇가에서 아줌마들 빨래했는데 그때는 저녁에 정전도 잘되서 양초와 후레쉬는 늘 비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조금 더 빨리 좋아지고 차이지 남과북 사람사는건 똑같은 듯..
사진을 통해 북한 주민의 삶을 더 자세히 보게 되는 좋은 영상이네요
한 지붕이 있는 게 한 세대 인줄 알았는데 다세대 주택이라 정말 놀랍네요. 교수님 영상과 유미님 설명을 들으니 은근 신기하네요
남한에는 하모니카 다세대 주택은 없었고 대신
대도시 변두리 지역 몇군데에 판자촌이라는 주택지역이 있었죠 .
하모니카 주택과 분위기가 비슷했습니다 .
80년대 초중반까지 모두 사라집니다 .
저도 저런 우물 사용했어요
55년 전쯤
남한도
서울 등 대도시는 1960년대 초중반까지 저런 모습이었고
시골은 70년대 중반까지 저랬습니다 .
저런 모습을 벗어날려면 엄청난 돈과 강력한 추진력이 있어야 합니다 .
남한은 1965년부터 고속성장을 시작합니다 .
당시 대통령은 월남전 핏값과 한일수교 자금을 산업혁명 추진에만 투입한게 아니라
거의 절반을
국민 복지를 위한 [상하수도 시스템]과 [전기전력 시스템]과 [교통 시스템] 구축에 투입합니다 .
물론 서울 등 대도시가 우선적으로 구축됩니다 .
당시 대통령의 무시무시한 추진력으로 인해
1970년대 후반까지 남한은 모든 국민이 어마어마한 생활혁명을 겪게 되고 그 혜택을 받습니다 .
댕큐 대통령님 !!!
50년대에도 남한에는 저런 하모니카 다세대 주택은 없었죠 ..
대신 70년대까지는(몇개 지역은 80년대 초중반까지 존재)
판자촌이라 해서 저런 하모니카주택 비슷한 분위기의 주택지역이 있었습니다 .
박정희대통령이 독재는 했지만 전세계 다른 독재자들과는 달리 자기 자신을 위한 독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을 위한 독재를 했죠. 세상에 이런 독재자 없었죠. 박정희 대통령이 자원하나 없고 척박한 국토를 가진 우리나라, 농업국가 대한민국을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자원은 인간이다' 라고 선언하고 국민을 교육시켜서 공업으로 먹고 사는 현대국가로 만들었죠.
짝짝짝
북한의 현실을 안믿는 사람들은 권력을 유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알면서도 왜곡해서 선전선동을 하고 그들을 따르는 따르는 사람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맹종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편을 가르고 왜곡하는 일부 의원들이 진짜 나쁩니다.
그래도 북에서 온 여러분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업도 일취월장 하길 기원드립니다
강동완 교수님 다음에 국민의힘에 국회위윈 공천 신청하셔야 겠네요
옛날 어르신들은 그릇 가신다. 했죠
우물 세대입니다😊
그러나 우물은
집집마다 있었던것 같고
펌푸도 있었죠
우물에 수박 담가서
시원하게 잘라 먹었던
기억납니다
여름에 학교 다녀와서
우물에서 물한바가지
길어올려 세수하고
발씻고 그 시원함 잊을
수가 없네요
북한 주민에게는
생존의 우물이고
우리에게는 향수를
그리는 우물이 되었군요😢
좋은 댓글입니다
옛적에 이런말을 많이쎠죠.. 삼수갑산 가더라도 무엇무엇하자"
가신다는 말은 우리 경상도에서도 들어본거 같은데요
경상도에서 설거지할때 물로 가셔내라 이런 말을 사용합니다 영상에 나오는 까신다라는 말은 처음들어보는데 가를 강하게 발음하면 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오 1분전
강동완님 누구랑 닮은것 같다 싶었는데 배우 백현진님 닮으셨네요~^^ ㅋ
72생인대 저는80년까지 우물기러
먹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