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맞아 죽은.. '경빈 박씨' (사도세자 후궁) 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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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6 сен 2024
  • 남편에게 맞아 죽은 기구한 운명, 사도세자의 후궁 경빈 박씨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
    경빈 박씨 또는 수칙 박씨는 조선의 추존왕 장조, 즉 사도세자의 후궁으로, 본명은 박빙애입니다.
    본래는 궁녀 출신으로, 숙종의 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침방 나인이었습니다.
    경빈 박씨는 사도세자의 총애를 받아 은전군과 청근옹주(청근현주)를 낳았지만, 영조 37년인 1761년, 사도세자의 정신병으로 인해 맞아 죽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살아 생전에는 정식 후궁으로 진봉되지는 못 했지만,
    고종 때에 사도세자가 왕으로 추봉되면서 귀인으로 추증되었다가 다시 경빈으로 추봉되어 '경빈 박씨'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는 영조 33년인 1757년 음력 11월 11일, 사도세자가 빙애를 취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당시 조선의 법도 상, 윗사람 소속의 나인을 건드리는 것은 금기사항으로 여겼기 때문에, 영조는 매우 분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세자가 빙애를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던 일이 인원왕후의 국상 중에 일어났기에 영조는 사도세자를 더욱 심하게 꾸짖었고, 빙애를 당장 출궁시키라고 명했습니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이에 굴하지 않고 빙애를 화완옹주의 집에 숨겨두고
    다른 궁녀를 '가짜 빙애'로 만들어 진짜 빙애 대신 출궁시켰고, 화완옹주의 집에 자주 출입하며 빙애를 만났습니다.
    훗날 영조가 모든 사실을 알고, 빙애를 다시 내치려 하자 사도세자는 우물에 뛰어드는 자살 소동까지 벌였습니다.
    그럼에도 박씨는 정식 후궁의 품계가 아닌 궁녀의 품계 중 하나인 ‘종 6품 수칙’에 봉해졌는데, 물론 양제나 양원 같은 정식 세자의 후궁으로서의 품계는 아니었지만, 실질적인 취급은 세자의 후궁으로, 승은 상궁, 특별상궁과 비슷한 위치였습니다.
    다만 영조한테 단단히 찍혔는지 박씨는 유독 박한 대우를 받았는데요,
    자식을 낳고도 같은 사도세자의 후궁인 양제 임씨(숙빈 임씨)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궁녀 출신에 자식을 낳은 것까지 똑같지만 박씨는 정식 후궁 봉작 자체를 못 받은 것입니다.
    혜경궁 홍씨 또한, 양제 임씨(숙빈 임씨)는 동정하며 잘 챙겨주었던 반면,
    박씨는 좋게 보지 않았는지, 사도세자가 꾸며준 빙애의 방을 "아니 갖춘 세간이 없더라" 라고 묘사했으며, 박씨의 성격에 대해서도 "그것의 됨됨이가 요악한지라" 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사도세자가 '그리 대수롭게' 굴만큼 총애받았던 빙애의 최후는 비극적이었습니다. 당시 의대증이 심했던 사도세자에게 맞아 죽게 된 것인데요,
    당시 사도세자는 정신병이 극에 달해, 옷을 갈아 입는 걸 광적으로 두려워했고, 해서 입고 있는 옷이 다 해져 떨어질 때까지 안 갈아 입고 버텼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러한 사도세자의 옷을 갈아 입히려다가 폭행당하거나 심지어 살해당하는 궁인이 한두명이 아니었기에 세자의 옷 시중은 부인 혜경궁 홍씨가 맡았었지만,
    혜경궁 홍씨도 다른 일로 사도세자가 던진 바둑판에 얼굴을 맞고 눈이 빠질 뻔하는 등의 사건들이 있어서 당시에는 빙애가 옷 시중을 들게 되었던 것인데,
    결국 영조 37년인 1761년, 사도세자의 옷을 시중드는 도중에 사도세자의 의대병이 발병해 그 자리에서 맞아 죽었습니다.
    야사에 의하면 이 때 사도세자는 빙애를 폭행해 죽인 걸로도 분이 안 풀렸는지 당시 갓 돌이 지난 아기였던 빙애가 낳은 아들, 은전군도 연못으로 던져 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행히 의붓할머니인 정순왕후의 측근의 호위병들이 구해내서
    은전군은 익사를 모면하고 간신히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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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10

  • @572sem3
    @572sem3 Год назад +5

    .... 경빈박씨 하니 뭬야?????.... 가 생각나서 들왓다가 아니네???하고있는..

    • @역사톡
      @역사톡  Год назад +1

      동명이인입니다 ㅎㅎ ^^

  • @soridaizin79
    @soridaizin79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그냥 사도가 미쳤던 거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줬다고 홧김에 후궁을 때려죽임
    혹자는 노론이 은전군을 왕으로 밀려고 결탁했다고 하는데 그건 아무 근거 없는 헛소리고
    (조선이 왕위계승에 있어서 그렇게 허술한 나라가 아님)
    그냥 사도 세자 자체가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음.. 오죽했으면 아들(정조)이 왕이 되고나서
    사도세자 비행 기록들을 조직적으로 폐기했는데도 워낙 자료가 많다보니 다 못없앰

  • @강사라-p4d
    @강사라-p4d Год назад +4

    변덕스러운 영조의 꾸지람 멸시 환멸로
    저렇게 된것

    • @역사톡
      @역사톡  Год назад +2

      그렇죠,, 사도세자는 덕분에 정신병에 걸렸죠

  • @Vickor777
    @Vickor777 Год назад +3

    은전군을 왕으로 밀겠다는 수구들과 결탁하려한게 사도의 귀에 들어가 죽인거임 은전도 우물에 던진게 그 이유 분수를 모르고 감히 정조도 있는데 욕심을 내어 마누라일지라도 죽임거임 어차피 정신병은 맞음 그리 죽이는건 아니니

    • @역사톡
      @역사톡  Год назад +1

      칼로 죽은 것도 아니고..ㅜ 맞다가 죽을정도로 맞았다는 게 참 잔인합니다..

    • @박영귀-k9x
      @박영귀-k9x Год назад

      어이 업네 정신병자 영조 지는 숙의문씨 며느리 궁인을 상중에 승은내려놓고 참돌아이영조

    • @soridaizin79
      @soridaizin79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그건 나중에 지어낸 근거없는 이야기 그냥 사도가 정신나갔던 거고, 아무리 왕세자 아들이지만 정식 후궁 첩지도 못받은 여자의 아들을 왕으로 밀 정도로 조선이 개념없는 나라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