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함창읍은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의 고향이십니다 아버지가 보고싶어서 살아생전에 즐겨부르시던 상주함창가를 떠올렸고 상주함창가를 들으면서 그리움을 달래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해주셨는데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아버지를 미워하고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나쁜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위독하실때 돌아가셨을때 아버지 임종을 지키면서 미움과 원망은 사라지고 아버지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응급실에 누워계신 아버지에게 같이 고향가자고 말씀을 드리고 집중치료실에서 돌아가시기직전에는 제사를 꼭 지내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버지유골은 부산 영락공원에서 산골이라는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납골당에 모시지않고 흙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서 아버지고향 상주 함창과 점촌과 문경에 한번 다녀왔습니다 노래잘하시고 항상 밝은 성격이신 아버지가 많이 보고싶습니다
상주 함창은 상주의 옛 지명이라기 보다는 지금의 광역 자치단체 급에 해당하는 큰 고을(신라때 전국 5주중 상주, 통일신라때 전국 9주중 상주, 고려때 전국 5도 양계중 한개의 도인 경상도(경주+상주)의 소재지인 상주 에 속했던 함창현이라는 독립된 고을의 옛 이름이라고 보는게 맞는것 같고요, 공갈못(역사시간에 배우는 삼한시대 4대 저수지 중 한곳인 상주의 공검지임)이 있는 공검면은 그 옛날 6가야중에 금관가야 다음으로 컸던 것으로 보이는 고령가야)의 땅으로서, 상주시의 일부인 함창읍과 은척면과, 이안면과 문경시의 일부인 문경읍과 가은읍과 호계면(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여지승람 기록)등이 속한 고대 국가인 (대가야의 고령군 과는 전혀 다른곳임) 였다고 합니다. 이 지역의 방언이 낭떠리지, 즉 절벽(벼랑)을 비랑, 비리로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껏 전해오는 그 실례로, 문경 관광지 진남교반 인근에 있는 고모산성길 옆에 "토끼비리" 라는 옛길이 있어서 방송에도 자주 소개된 유명한 길입니다. 그 뜻은 영남 남쪽 지역에서 한양으로 가는 유일한 관문이던 문경새재로 가기 위해서, 보부상과, 지게꾼들이 위험을 무릅써고 다니던 지름길로서, 토끼나 겨우 지나 다니는 수직 절벽의 낭떠러지인 벼랑(비랑, 비리)끝에 난 길이라고 하여 불려진 것으로 전해옵니다. 이 이름으로 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함창의 공갈못 노래는 함창에서 수십여리 떨어진 지역에 살던 저희도 40~50여년 전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에 합창 대회 합창곡으로 불렀을 정도로 그쪽 지방에서는 광범위하게 전승되어져 오던 곡이었는데, 전국적으로 유명하신 호남쪽 국악인 선생님들(김소희, 이동창)이 발견하고, 편곡을 하여서 부르심으로 인해서 전국적이고, 대대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된 긍정적인 면에 비해서, 그 토속적인 원래 가사가 많이 훼손되어져 전해진게 아쉽게 여겨집니다. 예컨데 구전되는 원 가사와 보존회에서 부르는 가사는 이 지역의 원래 방언대로 " 연밥 따는 저 처자야'" 라고 전해지는데, 호남분인 김소희 명창이 개작한 가사에는 호남 방언인 "연밥 따는 큰아가야"로 개작되었는데, 원래 광범위하게 구전되고 있던 지역에서는 전혀 쓰지 않는 방언으로서, 이는 동부민요에 서도민요 가사를 덧씌운 것으로서, 예컨데 남자 핫바지에 여자 저고리를 입혀 놓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 점은 국악인들에게서 고쳐졌으면 합니다. 추억이 새록 새록한 가락을 소상히 소개해 주셔서 추억이 소횐되게 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상주함창가의 가사가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경상도 방언을 다른지역사람이 듣고 해석을 못해서 비리(벼랑)끝을 피리끝으로 잘못 불렀나봅니다 나도야 후생가면 낭군부터 섬길라네는 여동생이 자신을 구해주지않은 오빠를 원망하며 부른 노래였네요 상주함창가를 상주모심기노래 상주연밥따는노래 두가지로 말하길래 헷갈렸는데 처음에는 상주 공갈못에서 연밥따는 노래였고 세월이 흘러 이후에는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모심기노래가 되었다고 해석하면 올바르게 해석한게 맞을까요? 아버지는 상주 함창가를 연밥따는 노래로 알려주시고 연꽃에 열매가 생긴것을 따서 드시면서 연꽃의 열매가 정말 맛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상주 함창 공갈못이 어디있는지 상주시 함창읍에 한번더 여행다녀와야겠습니다 상주함창가를 알려주셔서 정말 잘배웠습니다
공갈못은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 공검면행정복지센터 근처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상주(분지)평야 사벌면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대규모 못이었으나 상류에 오태못을 만들게 되어, 지금은 소규모 못으로 축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상주시 공검면, 이안면은 예전 함창현 시절에 함창현 관할이어서, 공갈못을 상주함창의 공갈못이라고 한다더군요.
제가 듣기로는 시누이와 올케가 놀다가 벼랑 끝에 떨어진 게 아니라, 그 지역에 워낙 비와 홍수가 많은 곳이라는데, 어느 날 시누이와 올케가 홍수를 피하려고 비리/배리 끝에 앉아 구조되기를 기다리는 극한 상황에서 오빠가 올케 만을 구해서 여동생이 오빠를 원망하는 구절이라고 합니다.
귀한 영상입니다. 이런 노력이 우리 노래와 소리를 다시 민중의 가슴 속에 자리잡게 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좋아하는 노래인데 제 뜻을 알게 되었네요.
상주시 함창읍은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의
고향이십니다 아버지가 보고싶어서 살아생전에 즐겨부르시던 상주함창가를
떠올렸고 상주함창가를 들으면서 그리움을 달래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해주셨는데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아버지를 미워하고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나쁜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위독하실때 돌아가셨을때 아버지
임종을 지키면서 미움과 원망은 사라지고 아버지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응급실에
누워계신 아버지에게 같이 고향가자고 말씀을 드리고 집중치료실에서 돌아가시기직전에는
제사를 꼭 지내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버지유골은 부산 영락공원에서 산골이라는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납골당에 모시지않고 흙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서 아버지고향 상주 함창과 점촌과 문경에 한번 다녀왔습니다 노래잘하시고 항상 밝은 성격이신 아버지가 많이 보고싶습니다
그 노래가 아버님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였네요.
이쁘시네요
자세한 설명 잘 들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섬세하게
아름다운 만큼이나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경상도 방언에 비리있습니다
벼랑 낭떠러지로 알고있어요
비리가 아니라 비랑이라고 하면 딱 맞습니다 함창 방언에 벼랑을 비랑이라고 1960년대까지 말했습니다 비랑끄테!,! 그토록 다정다감하던 옵빠가 장가들더니 올케만,,,,,,,비랑끄테 서있는 심정을 아시나요?
감사합니디ㅡ
설명들으니 이 노래가 더 와닿습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야 이해가 됐네요
감사합니다~
비 끝이 아니고... 비루요...
큰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는 말입니다~^^
실제 음악 소리를 듣을 수 있어 너무 유익한 것 같습니다.
멋집니다. 감동이 우선이죠! 소개해 주신 책 감사합니다.
상주 함창은 상주의 옛 지명이라기 보다는 지금의 광역 자치단체 급에 해당하는 큰 고을(신라때 전국 5주중 상주, 통일신라때 전국 9주중 상주, 고려때 전국 5도 양계중 한개의 도인 경상도(경주+상주)의 소재지인 상주 에 속했던 함창현이라는 독립된 고을의 옛 이름이라고 보는게 맞는것 같고요, 공갈못(역사시간에 배우는 삼한시대 4대 저수지 중 한곳인 상주의 공검지임)이 있는 공검면은 그 옛날 6가야중에 금관가야 다음으로 컸던 것으로 보이는 고령가야)의 땅으로서, 상주시의 일부인 함창읍과 은척면과, 이안면과 문경시의 일부인 문경읍과 가은읍과 호계면(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여지승람 기록)등이 속한 고대 국가인 (대가야의 고령군 과는 전혀 다른곳임) 였다고 합니다.
이 지역의 방언이 낭떠리지, 즉 절벽(벼랑)을 비랑, 비리로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껏 전해오는 그 실례로, 문경 관광지 진남교반 인근에 있는 고모산성길 옆에 "토끼비리" 라는 옛길이 있어서 방송에도 자주 소개된 유명한 길입니다.
그 뜻은 영남 남쪽 지역에서 한양으로 가는 유일한 관문이던 문경새재로 가기 위해서, 보부상과, 지게꾼들이 위험을 무릅써고 다니던 지름길로서, 토끼나 겨우 지나 다니는 수직 절벽의 낭떠러지인 벼랑(비랑, 비리)끝에 난 길이라고 하여 불려진 것으로 전해옵니다. 이 이름으로 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함창의 공갈못 노래는 함창에서 수십여리 떨어진 지역에 살던 저희도 40~50여년 전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에 합창 대회 합창곡으로 불렀을 정도로 그쪽 지방에서는 광범위하게 전승되어져 오던 곡이었는데, 전국적으로 유명하신 호남쪽 국악인 선생님들(김소희, 이동창)이 발견하고, 편곡을 하여서 부르심으로 인해서 전국적이고, 대대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된 긍정적인 면에 비해서, 그 토속적인 원래 가사가 많이 훼손되어져 전해진게 아쉽게 여겨집니다.
예컨데 구전되는 원 가사와 보존회에서 부르는 가사는 이 지역의 원래 방언대로 " 연밥 따는 저 처자야'" 라고 전해지는데, 호남분인 김소희 명창이 개작한 가사에는 호남 방언인 "연밥 따는 큰아가야"로 개작되었는데, 원래 광범위하게 구전되고 있던 지역에서는 전혀 쓰지 않는 방언으로서, 이는 동부민요에 서도민요 가사를 덧씌운 것으로서, 예컨데 남자 핫바지에 여자 저고리를 입혀 놓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 점은 국악인들에게서 고쳐졌으면 합니다.
추억이 새록 새록한 가락을 소상히 소개해 주셔서 추억이 소횐되게 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비리가 맞읍니다 벼랑끝터머리
상주함창가의 가사가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경상도 방언을 다른지역사람이 듣고 해석을 못해서 비리(벼랑)끝을 피리끝으로 잘못 불렀나봅니다 나도야 후생가면 낭군부터 섬길라네는 여동생이 자신을 구해주지않은 오빠를 원망하며 부른 노래였네요 상주함창가를 상주모심기노래 상주연밥따는노래 두가지로 말하길래
헷갈렸는데 처음에는 상주 공갈못에서 연밥따는 노래였고 세월이 흘러 이후에는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모심기노래가 되었다고 해석하면 올바르게 해석한게 맞을까요?
아버지는 상주 함창가를 연밥따는 노래로 알려주시고 연꽃에 열매가 생긴것을 따서 드시면서 연꽃의 열매가 정말 맛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상주 함창 공갈못이 어디있는지 상주시 함창읍에 한번더 여행다녀와야겠습니다 상주함창가를 알려주셔서 정말 잘배웠습니다
공갈못은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 공검면행정복지센터 근처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상주(분지)평야 사벌면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대규모 못이었으나 상류에 오태못을 만들게 되어, 지금은 소규모 못으로 축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상주시 공검면, 이안면은 예전 함창현 시절에 함창현 관할이어서,
공갈못을 상주함창의 공갈못이라고 한다더군요.
제가 듣기로는 시누이와 올케가 놀다가 벼랑 끝에 떨어진 게 아니라,
그 지역에 워낙 비와 홍수가 많은 곳이라는데, 어느 날 시누이와 올케가
홍수를 피하려고 비리/배리 끝에 앉아 구조되기를 기다리는 극한 상황에서
오빠가 올케 만을 구해서 여동생이 오빠를 원망하는 구절이라고 합니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우리엄마 챙겨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