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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도쿄 여행 중 어느 박물관을 들렀을 때 메이지 유신 이전 도쿠가와 막부 당시 도쿄 지역의 발달 했던 상업과 수 많은 인파를 구현해 놓은 미니어처들을 본 기억이 납니다. 수로를 가득 메운 목선에 가득 담긴 상품들하며 지붕을 길게 잇댄 점포들 하며 인상 깊었습니다. 거기 적혀 있는 인포 패널을 읽어 봤었는데 이미 일본은 근대화 이전부터 상업 규모가 상당 했었더군요.
이 강의가 너무 좋은 게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경제 용어들의 어원들을 다 알 수 있네요! 주식회사 (일본어 : 카부시키 가이샤) 주식 (일본어 : 카부) 이 카부라는 게 실제 상인들의 소유권을 보장해주는 나무 표찰이었군요! 저는 도대체 왜 주식이라는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나무 기둥"이라는 뜻의 株자를 쓰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오늘 영상 보니까 바로 이해가 가네요 ㅎㅎ
일본의 시장경제체제가 자체적으로 발전한 제도였을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나저나 메이지이신(일본식 발음)과 명치유신(한글식 발음)이 왜 섞여서 메이지유신이라고 명명되는걸까요? 그것도 처음알았네요.. 교수님께서 계속 명치유신 하셔서 왜그러나 했는데 통일된 발음체계로 쓰신거였네요. 삼프로티비 또 하나 대박컨텐츠 만드신듯 합니다. 공부를 좀 하다가 중간에 접었어서.. 아쉬움이 있는 일본 역사인데 흥미롭게 들을 수 있겠습니다. 어설프게 알고있던 부분들이 연결되는 즐거움을 또 느낄수 있겠어요😍 유료로 돌리지 말아주세요🙏🏻
일본과 한국의 결정적차이는 권력자들의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똑같이 권력을 추구하고 서민들의 고혈을빨았어도 기본적으로는 국가의 발전과 번영을위해 노력하는쪽과 오로지 자신들의 절대권력을 천년만년 유지하는것만이 목표인쪽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북한을보면 알수있죠;; 그놈들도 한국인이니까;;
@@해피바이러스-m7p 정한론은 이론이 아닙니다.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기록되어있는 '신공황후의 삼한 정벌' 이래, 한반도는 늘 일본의 정복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우리가 여진족 정벌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듯이, 일본은 한반도 정벌하는 걸 당연하게 여겨왔습니다. 어느 나라나 다 이웃 지역에 대한 이런 관념을 가지고 있지요. 이런 관념이 기본적으로 깔린 상태에서, 메이지유신이 이루어졌고,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사츠마번의 군대가 해산될 기미가 보이자, 이들의 리더이자 유신 3걸 중 하나였던 사이고 타카모리는, 대량해고 사태에 직면한 사츠마번 군대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조선을 정벌하자는 '정한론'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메이지 신정부의 다른 요인들은 이를 전부 반대해서 실패로 끝나고 몇 년 뒤 사이고는 반란을 일으켜 세이난전쟁이 일어나게 되죠. 정한론은 모든 일본 사무라이 계층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던 생각입니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가 적절하냐에 따라 의견이 갈린 것뿐입니다.
다음회에 이야기가 나올 메이지유신이 혁명적인 이유가, 이번화에서 이야기한 양아치나 다름 없는 무사 계급과 그 특권을 무사계급 스스로가 버리는 개혁을 했다는 점이지요 (물론 초기엔 그에 저항하는 무사 반란이 있었지만) 특히 돈 빌려놓고 200년이였나 상환계획을 강행한 사쓰마번이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댄것도 웃기고
user-cp3lh2vt5p 유학도 발린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정약용도 감탄한 일본 ‘소라이학’의 진수 소라이학은 뒷날 그의 제자 다자이 순다이가 쓴 을 통해 조선의 다산 정약용에게도 전해진다. 다산은 처음에는 소라이학을 괴이쩍게 생각했으나 후에는 “찬란한 문채”를 높이 평가하고 자신의 에서 깊이 살펴 많은 부분을 취했다. 나아가 “이제 그들(일본 유학자들)의 글과 학문이 우리나라를 훨씬 초월했으니,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소라이학의 경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평가다. “이제 그들(일본 유학자들)의 글과 학문이 우리나라를 훨씬 초월했으니,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이제 그들(일본 유학자들)의 글과 학문이 우리나라를 훨씬 초월했으니,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이제 그들(일본 유학자들)의 글과 학문이 우리나라를 훨씬 초월했으니,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메이지유신의 가장 근본적인 바탕은, 지도층이 아니라.. 서양 유럽과 꾸준히 문물교류하면서, 서양의 발전된 문화를 접한 대중들의 혁명이죠. 지도자들이 근대화를 이뤄야 한다고 했을때, 이걸 대중들은 충분히 이해했다는 점이죠. 천황은 이미 예전부터 권력이 약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걸림돌이 크지 않았다는 겁니다.
서양문화가 일본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건 메이지유신 이후에나 가능했던 일이고, 에이지유신의 주요세력들도 처음에는 서양에 대해 상당히 배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근대화를 위해 메이지유신이 일어난게 아니라 토막파들이 막부를 타도하는 결과물로서 메이지유신이 일어난거고, 일본의 근대화는 메이지유신이 있고 나서 그 결과물로 근대화를 이행하는 과정에 들어간것입니다.
동의합니다. 메이지유신이 달성되었지만 일본 대중들은 그게 무엇인지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다가 근대화 교육이 시작되고 나서야 비로소 일본이라는 근대국가가 형성된 것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조선은 절대적 제왕제로 인한 중앙집권제 일본은 봉건제로 인한 지방분권제를 운영했던 차이점이 컸다고 봅니다.@@이현학-o7f
대중의 혁명 아니고, 일본 대중들은, 전선이 피를 수송한다고, 폭동 벌이고 다녔습니다. 따라서 잘 아시다시피 전봇대가 세워진 때가 징병령 발포와 같은 때라서, 전선으로 인민의 피를 운반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폭동이 일어났죠. 메이지 6~7년의 혈세(血稅)봉기, '혈세'라는 말은 그것과 관련이 있지요. -번역과 일본의 근대
근대화가 시작되기 전 독일과 일본 사람에 대한 유럽인들의 공통된 평가는 게으르고 거짓말 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독일과 일본인들에 대한 평가와는 천지 차이지만 팩트입니다. 독일 일본 조선 구분할 필요 없이 후진국 국민의 개개인의 자질 차이가 아니라 이창민 교수님께서 초반부에 설명하신 시스템의 문제로 이해를 해야 한다는
생체시계가 농업산업 기반으로 되어 있으면 그렇게 보일수 밖에 없음. 제조업 산업시대의 공장에서는 내가 손을 바삐 놀리고 버튼 누르고 물건 옮긴 횟수만큼 생산물이 늘어나지만.. 밀이랑 쌀은 오늘 내가 하루 엄청나게 손을 열나게 움직여봤자 그 생산물의 결과는 수개월 후에 받아볼수 있고 그것도 1년내내 못하고 겨울에는 쉬어야 하고 생산물의 품질도 일정하지 못함.
세계 10대 제약회사, 현 아시아 1등 제약회사 다케다 제약 창업 1700년대 오사카의 아베노하루카스를 지은 다케나카공무점 창업 1612년 동양에서 처음 전기를 생산 일본 NEC 창업 1899년 세계최초 낸드플래쉬 메모리를 발명한 도시바 창업 1700년대(도쿄 닌교초의 태엽인형가게로 출발) 산와금융그룹 창업 1600년대 나고야 지방에서 출발.' 일본 유통대기업 AEON 창업 1700년대 일본은 근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었고, 자본가, 재벌들이 많았고 풍부한 기술장인과 엘리트들이 많았음. 이미 서구화가 될 나라였음. 우리가 일본가서 타는 사철회사들 한신, 한큐, 킨테츠, 게이오, 도부, 세이부 등등도 1890년대, 1900년대 초 뿌리있는 자본가들이 지은 것들. 유럽이 근대화에 200년 걸리고 일본은 초고속으로 50년밖에 안걸렸음.
중요한 의문 한가지는, 17세기에 일본에서 근면이 사회의 보편 덕목으로 뿌리내리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불분명 하군요. 환경적 요인으로만 가능한 일은 아닌 듯합니다. 전세계 모든 나라가 어려운 환경에 처하지만 나태한 민족성이 근면으로 변화한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특별한 다른 원인이 있을 것 같군요.
저 교수님이 설명을 부실하게 해서 그렇습니다. 원래는 일본의 원로 경제사학자인 고 하야미 아키라 씨의 '근세 일본의 경제발전과 근면혁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기반해서 저 교수님이 본인의 생각을 덧붙여 얘기한 것 같습니다. 일본의 근면혁명이 시작된 것은 헤이안시대부터입니다. 송나라와 교역을 하면서 대량의 송전이 쏟아져 들어와 일본에 상업사회가 형성되면서부터 근면혁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일본과 송나라가 무역을 하면서 대량의 송전 (송나라 화폐) 이 일본에 쏟아져 들어왔고, 이 송전이 일본 최초로 키나이 지방 (교토, 오사카, 나라 등) 을 상업사회로 만들고 이를 전국으로 확산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송나라의 "강남농법"이 일본에 전래되면서 일본에 수전이 확대되고 농업생산력과 인구가 크게 증가하게 됩니다. (조선에서 강남농법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는 건 18세기부터임) 상업사회가 형성이 되면, 농업과 공업을 상업이 이끌게 됩니다. 자급자족 사회에서는 쌀을 재배해서 자기 가족이 소비하고 말아버리지만, 상업사회에서는 자기가 재배한 쌀 전부를 판매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것이 어느 가격에 판매되는지도 예측을 할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시장이 존재하면 다른 상품 작물들도 판매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 가격도 예측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시장의 가격과 동향에 맞추어, 농사 재배 작물 종류, 재배 시기, 재배 빈도 등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죠. 농삿일이 끝나고 난 저녁에는 새끼줄을 꼬거나 목공예를 해서 생활용품을 만들어서 시장에 파는 것이죠. 상업이 주도하는 시장이 존재했기 때문에, 농민들은 그에 자극을 받아, 자신의 라이프를 계획성 있게 설계하고 일해나갔던 것입니다.
@@클램프-j4f 현 일본 장인정신을 300년전하고 이어서 폄하시키는데 그건 완전 시각 자체가 잘못됐음. 일본 장인정신은 제품 설계뿐만 아니라 생산공정 혁신에 대한 유능한 엔지니어들이 많음. 도요타의 tps, 현재 삼성이 쓰고있는 반도체 공정 레이아웃 대부분 일본 nec, 도시바 엔지니어들이 만든거임.
@@song2sexy 지금 시각에서 보면 안됨. 적어도 300년전은 전세계 공통적으로 직업에 대한 자유에 대한 마인드를 지닌 국가가 거의 없었음. 거주이전의 자유도 마찬가지임. 가게와 현금성자산, 본인이 가지고 있는 기술도 자산임. 적어도 그것만큼은 물러줄수있었던게 그 당시 일본임. 그리고 그런 시스템이 근대화 시기 서구열강에서 기술이전받으면서 '우리하고 시스템이 비슷한데?'라고 했었음. 유럽도 마찬가지였음. 그리고 이러한 역사가 있었기때문에 세계2위경제대국까지 올라갔던 현재의 일본이 있는거. 나쁜 시스템은 전혀아님.
저는 국가란 언제나 약탈의 주체라 생각 합니다. 국가가 보호 한다니요? 애초의 국가 성립이 구성원 소로에 의한 외적으로부터의 안정 보장입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갖춰지고 나서는 언제나 국가는 국가의 구성원이 아니라 국가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게 바로 조직논리죠! 때문에 국가는 법으로 국민에 대한 보호를 명시하기보다는 법으로 질서를 세우고 그 질서안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다분히 억압기제로 통제하도록 구성되어 왔습니다. 그 국가의 제도가 세련되어지면 되어질 수록 이 억압의 기제는 정밀해 집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고도화 된 사회일수록 지켜야 할게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민의 의무는 법에의해 강제되고 국가의 의무는 윤리화되어 그 책임과 권한의 경계가 모호해 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의 혹은 타의로 국가에 귀속되는 길을 택하는 것은 국가야 말로 개인을 보호 해줄 거의 유일한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국가는 언제나 ㅍ리요이상의 청구서를 국민에게 내미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세금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국가가 세금을 대하는 태도야말로 국가가 국민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터무니 없는 고율의 세금에 이래저래 특례조치로 빼주는것이 많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정신상태를 의심해 봐야죠! 왜냐하면 고율로 뽑아먹는 손에는 그 탐욕이 거리낌없이 나타나고 그것을 이런저런 명목을 빼주는 그림자에는 언제나 사적이익이 숨어있기 마련 입니다. 한데 사회주의 국가의 정수인 국가통제가 경제에 관여하게 되면 언제나 감당 할 수 없는 세금과 자애로운 감면의 두 얼굴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국민을 보호하기위한 조치가 아니라 국민을 길들이는 조치 입니다. 한손에는 고기를, 한손에는 회초리를 들고 말이죠! 그러므로 국가가 국민에게 강요하는게 많은 정부일수록 그 진면목은 독재적이고 약탈적이라 생각 합니다. 그런새끼들이 즐겨 도덕으로 상대를 후려치죠! 인간희생제물을 얻기위한 아즈텍의 꽃전투 처럼 말입니다!
근면과 인구 증가율이 관련이 있으려나.... 베이비 부머를 보면 그렇지도 않긴 한데.... 하지만 근면을 요구하는 사회는 구성원에게 인구가 감소하도록 하는 어떤 압력을 가한다는 게 맞말 같아보이는 데...원인과 결과가 바뀐 거 같은 것은 기분 탓 ㅋㅋㅋ 증가한 인구를 근면으로 갈아서 ㅋㅋㅋ 기술로 바꾸는 게 ㅋㅋㅋㅋ 맞는 건가 ㅋㅋㅋㅋ 그나저나 ㅋㅋㅋ 일본의 발달한 상공업 제도는 일본의 종횡비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 아무래도 유통과 상업은 뗄레야 뗄 수가 없는 관계고.... 종횡비가 클 수록 유통의 중요성이 커지지 않을까 해서요
일본은 18세기부터 서양에 일본 문화를 수출해왔습니다 ㅎㅎㅎ '고흐가 사랑한 우키요에전'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상설갤러리에서 일본 풍속화 ‘우키요에’를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상설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고흐가 사랑한 우키요에전’이다. 에도시대 다색목판화인 우키요에가 19세기 서양미술사에 미친 영향을 고흐를 중심으로 조명하는 전시다. 카츠시카 호쿠사이, 우타가와 히로시게, 도슈사이 샤라쿠의 작품 등 100여 점이 전시된다. 얼핏 횟집에서나 보던 흔한 왜색 그림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화투 그림 색감과도 비슷하다. 우키요에의 본질인 대중성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우키요에는 목판화인 덕분에 일본 대중문화의 대표작이 될 수 있었다. 다량 인쇄가 가능했고 싼 가격에 서민들이 길거리에서 쉽게 구해 즐길 수 있었다. 우키요에가 서양에 처음 소개된 것도 장거리 운송 도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완충재로 쓰이면서였다. 1867년 파리만국박람회 출품용 도자기 완충포장지가 세계미술사를 바꿨다는 말의 기원이다. 이후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을 사로잡은 우키요에는 반 고흐의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가 하면 그의 작품 형태마저 바꿔놨다. ‘탕기영감의 초상’ 배경에 온통 우키요에를 그려 넣은 것이 대표적 예다. 전시는 9월 10일까지 이어진다. 문의 054)840-3600. 이후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을 사로잡은 우키요에는 반 고흐의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가 하면 그의 작품 형태마저 바꿔놨다. 이후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을 사로잡은 우키요에는 반 고흐의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가 하면 그의 작품 형태마저 바꿔놨다. 이후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을 사로잡은 우키요에는 반 고흐의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가 하면 그의 작품 형태마저 바꿔놨다.
@@삐용삐용-s8p 일본이 의도적으로 수츨 했다라기 보다 서양 화가들이 일본 화법을 좋아했다가 어떨까요? 지금의 일본 애니메이션도 전세계적으로 인기 있지만 K-wave 같은 전반적인 한국 문화 수출과 비교하기에는 좀 그렇네요! 일본av산업도 주요 수출 상품이라고 칭하기에는 좀 너무 선정적이거나 유아틱한 것을 좋아하는 매니아 계층이 주요 고객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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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성은 정해진게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것
우리민족도 조선에 이르러서 게을렸다. 박정희가 이익을 미끼로 부지런하게 만들었을뿐. 문재인때 다시 게을러졌지. 포퓰리즘 나라망할 일이지
인간의 운명도 또한
오늘 강의 너무 고맙습니다.
우리사회 내면의 문제 을 콕 집어주셨네요.~
이프로님 자화자찬에 꾸벅
몇 해 전 도쿄 여행 중 어느 박물관을 들렀을 때 메이지 유신 이전 도쿠가와 막부 당시 도쿄 지역의 발달 했던 상업과 수 많은 인파를 구현해 놓은 미니어처들을 본 기억이 납니다. 수로를 가득 메운 목선에 가득 담긴 상품들하며 지붕을 길게 잇댄 점포들 하며 인상 깊었습니다. 거기 적혀 있는 인포 패널을 읽어 봤었는데 이미 일본은 근대화 이전부터 상업 규모가 상당 했었더군요.
에도박물관 아닐까요?
언제쩍 일본이 게을런지 몰라도 에도, 메이지때는 엄청 부지런했고 그후 쭈욱 일벌래로 몸을 불사르는 특징을 가진 일본인들이라 봅니다..
그래보면 100년 넘게 부지런한거죠.. 일본인들이 괜히 설탕 좋아하는게 아니죠.
조선통신사 신유한이 쓴 기록을 보면 오사카를 보고 오랑캐라 취급했던 왜가 이렇게 청결하고 발달했을 줄 몰랐다며 한탄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죠
쉬잇!!조선미화국뽕에 쩔어계신 그분들이 몰려옵니다..@@MrSds0527
@@행성X509 그게 현대 한국인 기준이라서 애매하죠. 지금 한국인 기준으로는 에도시대 일본이나 조선이나 게을러보였을겁니다. 산업혁명이전 일본이나 한국이나 전근대적 농업국가라 시스템이 근면할수가 없으니까요
사회시스템의 개혁이 중요하죠. 우리나라도 625전쟁이전과 이후가 다르고 산업화이전과 이후,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가 다르죠.
독일도 예전 묘사보면 술 먹고 퍼질러자는 게으른 놈들 이런 이미지 있음 산업화 이후 독일인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할 묘사..
독일 게르만족도 로마인들이 보기에는 그냥 야만인이었죠
사기죄 형량을 늘려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도 찾네요. 감사합니다.
이창민 교수님 모 강연회에서 보고 팬됐는데, 삼프로티비에서 보게 되네요. 항상 일본 관련 지식을 경제학 관점에서 설명해주시는 거에 감탄하고 갑니다
이프로의 딕션은 놀랍다. 뭐 하나 빠짐없이 들림
이 강의가 너무 좋은 게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경제 용어들의 어원들을 다 알 수 있네요!
주식회사 (일본어 : 카부시키 가이샤)
주식 (일본어 : 카부)
이 카부라는 게 실제 상인들의 소유권을 보장해주는 나무 표찰이었군요!
저는 도대체 왜 주식이라는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나무 기둥"이라는 뜻의 株자를 쓰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오늘 영상 보니까 바로 이해가 가네요 ㅎㅎ
이프로는 얘기하는거 들어보면 꼭 중2병 환자 같이 얘기하네요
후라이팬 위에 고등어처럼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는 사람들이 부지런해진다는 것은 정말 좋은 사회 현상 입니다
새로운 통찰을 주는 일본경제 역사 강의 감사합니다.
이진우 기자 천재 같아요!
게으름과 부지런함의 결합.
이창민 교수님과 호사카 유지 교수님이 대화를 하면 무슨 무슨 결과가 나올까요?
일본의 시장경제체제가 자체적으로 발전한 제도였을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나저나 메이지이신(일본식 발음)과 명치유신(한글식 발음)이 왜 섞여서 메이지유신이라고 명명되는걸까요? 그것도 처음알았네요.. 교수님께서 계속 명치유신 하셔서 왜그러나 했는데 통일된 발음체계로 쓰신거였네요.
삼프로티비 또 하나 대박컨텐츠 만드신듯 합니다. 공부를 좀 하다가 중간에 접었어서.. 아쉬움이 있는 일본 역사인데 흥미롭게 들을 수 있겠습니다. 어설프게 알고있던 부분들이 연결되는 즐거움을 또 느낄수 있겠어요😍
유료로 돌리지 말아주세요🙏🏻
일본과 한국의 결정적차이는 권력자들의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똑같이 권력을 추구하고 서민들의 고혈을빨았어도 기본적으로는 국가의 발전과 번영을위해 노력하는쪽과 오로지 자신들의 절대권력을 천년만년 유지하는것만이 목표인쪽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북한을보면 알수있죠;; 그놈들도 한국인이니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네요
성실함에 따른 보상이 있으면 성실할것이고
일하나 노나 마찬가지면 누가 일하겠는가.
일본은 무역을 통해 국가경제를 움직였다면 조선은 명나라 , 청나라에 사대의 예를 갖추며 꿀 한방울 얻어 먹으며 성리학과 문학에 취해 우월주의가 강했고 이웃국가들은 오랭캐로 보는 편견이 강했죠 .
일본이 서양문명을 빨리받아들여서 개화가 빨랐는지 알았는데 이미 시장경제 체제를 나름의 방식대로 만들어나갔네요
유학파가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맞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정한론으로
식민지 이론을만든 사람이기도
하구요
시장경제의 ㅅ자도 몰랐던 조선과는 차원이 달랐죠
@@tuiontu4194 조선은 ㅅ을 사람인으로 읽었다고 합니다
@@해피바이러스-m7p 정한론은 이론이 아닙니다.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기록되어있는 '신공황후의 삼한 정벌' 이래, 한반도는 늘 일본의 정복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우리가 여진족 정벌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듯이, 일본은 한반도 정벌하는 걸 당연하게 여겨왔습니다. 어느 나라나 다 이웃 지역에 대한 이런 관념을 가지고 있지요.
이런 관념이 기본적으로 깔린 상태에서, 메이지유신이 이루어졌고,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사츠마번의 군대가 해산될 기미가 보이자,
이들의 리더이자 유신 3걸 중 하나였던 사이고 타카모리는,
대량해고 사태에 직면한 사츠마번 군대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조선을 정벌하자는 '정한론'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메이지 신정부의 다른 요인들은 이를 전부 반대해서 실패로 끝나고
몇 년 뒤 사이고는 반란을 일으켜 세이난전쟁이 일어나게 되죠.
정한론은 모든 일본 사무라이 계층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던 생각입니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가 적절하냐에 따라 의견이 갈린 것뿐입니다.
세종이 민간인의 해상무역시 사형시키면서 나라경제발전은 끝남
사카모토 료마 얘기가 나오려나 싶었는데 다음화에 나오겠군요
정말 일본을 몰랐네... 너무 재미납니다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부강해 지려면 경제 제도도 중요하지만 제도를 보호하는 기강?법치? 가 필수다.
불과 5년여 전만 해도 일본이라는 나라를 입에 올리면 이상하게 쳐다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좋은 내용을 들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함. 아무튼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편협함은 경계해야...
서양의 길드와 카부나카마가 비슷해 보이네요
회사 다닐려면 근면성이 중요하죠
4편안주시나요?
굶어서 죽지 않을 정도만 세금을 걷어서 가니 부지런히 일할 희망이 없겠죠
사카모토 료마 이야기도 기대합니다❤
제어되지 않는 욕망과 시장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시길
농업사회와 산업사회의 차이지...게으로고 부지런하기보다는...
경제가 좋아 질라면 젊은 인구가 많아야 합니다 그리고 옛풍속을 버리지 말고 함께 국민이 풍요로워야 한다 요즈음 재래시장 둘려보면 양품점 하시던 분들과 한복집 하시는 분들께서 헌옷 짜집기와 채소 콩나물로 생활로 이어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변하지 않으면 원래 그런겁니다
유럽 봉건제도에서 농민의 권리는 흑사병 이후에 매우 강화된 채 근대 시대에 접어들었기에 인력을 덜 쓰기 위한 생산성 향상의 유인이 강했지요.
4화 안올림?
카부나카마 제도가 효과가 있었군요 그래서 현대에도 일본식 기업 또는 기업인친목회가 남아있고 여러 작용을 하는군요…
저 시대때 동북아 일본과 중국의 경제 차이점이 일본은 상법개정을 중심으로 뒀고 중국은 화이질서로 조공으로 쭉 밀고가던데 일본 상법에 저런 디테일이 있었군요
어머 교수님 안녕하세요 죄많은 학부생 시험 끝내고 찾아뵐게요,, 스크롤내리다 꺔짝놀ㄹ랐네
굶어죽던 시절에 게으르다는 것이 가능한가
구한말 조선은 굶어죽던 시절에도 아무것도 안하고 게을렀죠
일본의 노동관과 근로 윤리는 이시다 바이간의 영향이 큰 것으로 아는데 그 사상가의 이야기는 안 나오네요~ 시간상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다른면으로 접근하신 걸까요?
넘 재밋다
바쁜사람 32:00 부터 ^^
우리도 그랬죠. 1960년대 까지도.. 민족성도 바뀔수 있습니다.
잼나고 유익해요 ^^
게을런한 일본 국민들이 나중엔 산업정책 이 바뀌면서 부지런히 움직이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치밀하게 진행될 수 있어요 축볷해요🫠
근면성실=사고회로 작동금지
우리나라도 그러지않았나요
1800년대 해외 선교사들이나 기록들보면 무지 게을렀다 .나오던데..
게으르다라...ㅋㅋㅋㅋㅋㅋㅋㅋ
북언더스탠딩의 취지가 너무너무 좋은데 이번엔 책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정말 궁금했던 내용만 모아주신 책을 이제 알았다니.. 언더스탠딩에서 주시는 책을 받으려고 그랬나봅니다!! 😊
우리도
일본에는 지금도 돈만 있다고 장사를 시작할 수 없고 상인조직의 허락을 받아야된다던데
죄송합니다. 황우석박사님 출연하신줄 깜짝
영상이 업로드 되길 목빠지게 기다렸습니다
자기구속적제도 = 지금 일본이 이러고 있음.
다음회에 이야기가 나올 메이지유신이 혁명적인 이유가, 이번화에서 이야기한 양아치나 다름 없는 무사 계급과 그 특권을 무사계급 스스로가 버리는 개혁을 했다는 점이지요 (물론 초기엔 그에 저항하는 무사 반란이 있었지만)
특히 돈 빌려놓고 200년이였나 상환계획을 강행한 사쓰마번이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댄것도 웃기고
양아치요? 조선의 양반 계급만 할까요 ㅋㅋㅋㅋㅋ
user-cp3lh2vt5p 유학도 발린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정약용도 감탄한 일본 ‘소라이학’의 진수
소라이학은 뒷날 그의 제자 다자이 순다이가 쓴 을 통해 조선의 다산 정약용에게도 전해진다. 다산은 처음에는 소라이학을 괴이쩍게 생각했으나 후에는 “찬란한 문채”를 높이 평가하고 자신의 에서 깊이 살펴 많은 부분을 취했다. 나아가 “이제 그들(일본 유학자들)의 글과 학문이 우리나라를 훨씬 초월했으니,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소라이학의 경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평가다.
“이제 그들(일본 유학자들)의 글과 학문이 우리나라를 훨씬 초월했으니,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이제 그들(일본 유학자들)의 글과 학문이 우리나라를 훨씬 초월했으니,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이제 그들(일본 유학자들)의 글과 학문이 우리나라를 훨씬 초월했으니,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이창민 교수님 일본정독 왜 읽다 마는 건가요? 교수님 너무 바쁘신가요?
대존잼
샤일록 이야기의 교훈은 사회가 원시적이면 사람의 살을 걸고도 계약을 체결할수 있었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무의미하고 폭력적인 계약은 정부가 체결저체를 못하게 하는게 맞습니다
신체포기각서 법정효력있으면 볼만하겠네요
저런 내용 다 알고 있는데... 금투세 같은 세금을 많기 내게 하려는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인 1당이 된것은 왜그럴까요? 이창민 교수님의 말씀에 다 답이 있는데 말이죠..
그냥 갑시다… 봉사차원으로다가…
국가에 의한 소유권보호에서 저는 요즘 너무 높은 상속세가 생각나죠?
손볼때가 되긴했죠. 행정 및 전산 시스템이 미비할때 현금거래 비중까지 높아 재벌부터 소상공인까지 탈세가 만연해서 죽을때 한번에 사후정산하는 개념으로 상속세를 높게 유지했던건데 재벌 1~2세들이 대부분 떠나는 시점인 현재 손보기해야함
도덕경제합일설을 주장한 일본 근대자본주의의 아버지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논어와 주판'을 접하면 이프로의 생각이 바뀔 것..
😊
메이지유신의 가장 근본적인 바탕은, 지도층이 아니라.. 서양 유럽과 꾸준히 문물교류하면서,
서양의 발전된 문화를 접한 대중들의 혁명이죠.
지도자들이 근대화를 이뤄야 한다고 했을때, 이걸 대중들은 충분히 이해했다는 점이죠.
천황은 이미 예전부터 권력이 약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걸림돌이 크지 않았다는 겁니다.
서양문화가 일본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건 메이지유신 이후에나 가능했던 일이고, 에이지유신의 주요세력들도 처음에는 서양에 대해 상당히 배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근대화를 위해 메이지유신이 일어난게 아니라 토막파들이 막부를 타도하는 결과물로서 메이지유신이 일어난거고, 일본의 근대화는 메이지유신이 있고 나서 그 결과물로 근대화를 이행하는 과정에 들어간것입니다.
동의합니다. 메이지유신이 달성되었지만 일본 대중들은 그게 무엇인지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다가 근대화 교육이 시작되고 나서야 비로소 일본이라는
근대국가가 형성된 것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조선은 절대적 제왕제로 인한 중앙집권제 일본은 봉건제로 인한 지방분권제를
운영했던 차이점이 컸다고 봅니다.@@이현학-o7f
@@이현학-o7f 공감합니다. 메이지유신이전 일본은 분명 존왕양이 사상이란 서양을 배척하는 사상을 중심으로 했으며 서양인을 죽이는일들이 많았습니다. 조선에는 그런일이 거의없었죠
대중의 혁명 아니고, 일본 대중들은, 전선이 피를 수송한다고, 폭동 벌이고 다녔습니다.
따라서 잘 아시다시피 전봇대가 세워진 때가 징병령 발포와 같은 때라서, 전선으로 인민의 피를 운반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폭동이 일어났죠. 메이지 6~7년의 혈세(血稅)봉기, '혈세'라는 말은 그것과 관련이 있지요.
-번역과 일본의 근대
일본에 대해 이렇게 상세하게 아시는 분은 많으신거 같은데, 왜 우리 역사에 대해서는 이정도의 자세하게 아시는 분이 없는거 같을까요. 일본만큼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일까요.
구한말 선교사들의 기록을 보면 당시 조선인들도 시간개념없고 거짓말 곧잘하고 특히 조선 남자들이 가장으로서의 역할에도 무책임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당시 사회구조가 희망이 없고 지쳐 자포자기했던게 아닐까요
근대화가 시작되기 전 독일과 일본 사람에 대한 유럽인들의 공통된 평가는
게으르고 거짓말 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독일과 일본인들에 대한 평가와는 천지 차이지만 팩트입니다.
독일 일본 조선 구분할 필요 없이 후진국 국민의 개개인의 자질 차이가 아니라
이창민 교수님께서 초반부에 설명하신 시스템의 문제로 이해를 해야 한다는
@@시리우스-u8y농업사회는 어느나라를 가건 똑같습니다.
산업화되기전에는 다 비슷한거 같음요
일본인 한국인도 글코 20-30년 중국인은 만만디라고 산업화 못할거라 그랬고 이제는 인도인보고 같은말을 하죠
한국 70년대초까지도 노름과 술주정에 고함치고 싸우고 집에서 살림부수는 사람들이 흔했죠.
생체시계가 농업산업 기반으로 되어 있으면 그렇게 보일수 밖에 없음.
제조업 산업시대의 공장에서는 내가 손을 바삐 놀리고 버튼 누르고 물건 옮긴 횟수만큼 생산물이 늘어나지만..
밀이랑 쌀은 오늘 내가 하루 엄청나게 손을 열나게 움직여봤자 그 생산물의 결과는 수개월 후에 받아볼수 있고 그것도 1년내내 못하고 겨울에는 쉬어야 하고 생산물의 품질도 일정하지 못함.
듣다보면 뮌 야그인지 모르겠음ㅋ 좋아요는 꾹!!
그려 우리 나라도 노동시간 계속 늘려서 생산성 올리자! ㅋㅋㅋㅋ 월, 화, 수, 목, 금, 금, 금 굳~~~~! ㅋㅋ
임진왜란 왜군 기록도 안보았나요? ㅋㅋ
말도 안되는 환상을 말씀하시네
이런 거 보면 일본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한국보다 더 서구문물 빨리 받았던 사실에 감동 받을만 하죠.
영상 유료화 하면 돈 안쓰고 지금 다시 일본 정독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 됨
지금도 별로 안 근면한 거 같은데 ㅎㅎ
장사 기업들은 법인세 몇프로에 조세피난처로 옮길 수 있지만 그 기업이 돈을 벌게 해주는 똑똑한 인재들은 정권을 비판했다고 압수수색을 하는 정치적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시장경제를 무시하는 정부하에서는 더더욱 살수없죠 인재는 더ㅜ떠나간다는게 현실..공무원늘리고 사람이 먼저다하는 말로만하는 시스템...하에서 한국의 미래는 점점더 어두워짐..
모욕죄고소한 문통?ㅋㅋ
제발 이런 글 올리지 마세요.
세계 10대 제약회사, 현 아시아 1등 제약회사 다케다 제약 창업 1700년대
오사카의 아베노하루카스를 지은 다케나카공무점 창업 1612년
동양에서 처음 전기를 생산 일본 NEC 창업 1899년
세계최초 낸드플래쉬 메모리를 발명한 도시바 창업 1700년대(도쿄 닌교초의 태엽인형가게로 출발)
산와금융그룹 창업 1600년대 나고야 지방에서 출발.'
일본 유통대기업 AEON 창업 1700년대
일본은 근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었고, 자본가, 재벌들이 많았고 풍부한 기술장인과 엘리트들이 많았음. 이미 서구화가 될 나라였음.
우리가 일본가서 타는 사철회사들 한신, 한큐, 킨테츠, 게이오, 도부, 세이부 등등도 1890년대, 1900년대 초 뿌리있는 자본가들이 지은 것들. 유럽이 근대화에 200년 걸리고 일본은 초고속으로 50년밖에 안걸렸음.
이시다 바이간 이야기 나오나
게으림과 부지럼과 차이는 노력한 것이 자기것이 되면
근면하게 됨. 조선은 빼앗가는 관조직이 너무 비대했음.
우리나라는 근면했었던거 같니?
전혀
이프로 코멘트 신경좀 씁시다 ㅉㅉㅉ
중요한 의문 한가지는, 17세기에 일본에서 근면이 사회의 보편 덕목으로 뿌리내리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불분명 하군요. 환경적 요인으로만 가능한 일은 아닌 듯합니다. 전세계 모든 나라가 어려운 환경에 처하지만 나태한 민족성이 근면으로 변화한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특별한 다른 원인이 있을 것 같군요.
저 교수님이 설명을 부실하게 해서 그렇습니다.
원래는 일본의 원로 경제사학자인 고 하야미 아키라 씨의 '근세 일본의 경제발전과 근면혁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기반해서 저 교수님이 본인의 생각을 덧붙여 얘기한 것 같습니다.
일본의 근면혁명이 시작된 것은 헤이안시대부터입니다.
송나라와 교역을 하면서 대량의 송전이 쏟아져 들어와 일본에 상업사회가 형성되면서부터 근면혁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일본과 송나라가 무역을 하면서 대량의 송전 (송나라 화폐) 이 일본에 쏟아져 들어왔고, 이 송전이 일본 최초로 키나이 지방 (교토, 오사카, 나라 등) 을 상업사회로 만들고 이를 전국으로 확산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송나라의 "강남농법"이 일본에 전래되면서 일본에 수전이 확대되고 농업생산력과 인구가 크게 증가하게 됩니다.
(조선에서 강남농법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는 건 18세기부터임)
상업사회가 형성이 되면, 농업과 공업을 상업이 이끌게 됩니다.
자급자족 사회에서는 쌀을 재배해서 자기 가족이 소비하고 말아버리지만,
상업사회에서는 자기가 재배한 쌀 전부를 판매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것이 어느 가격에 판매되는지도 예측을 할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시장이 존재하면 다른 상품 작물들도 판매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 가격도 예측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시장의 가격과 동향에 맞추어,
농사 재배 작물 종류, 재배 시기, 재배 빈도 등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죠.
농삿일이 끝나고 난 저녁에는 새끼줄을 꼬거나 목공예를 해서 생활용품을 만들어서
시장에 파는 것이죠.
상업이 주도하는 시장이 존재했기 때문에,
농민들은 그에 자극을 받아, 자신의 라이프를 계획성 있게 설계하고 일해나갔던 것입니다.
베니스 상인을 저렇게 해석을 해버리네?
그럼 장기, 인신매매도 자유계약으로 허용해야 하나?
이프로가 손경제 진행하기 전 시절부터 봐왔는데, 이런 사람인 줄은 오늘 처음 알았네. 충격이다.
장인정신은 배워야 합니다.
장인정신도 거주나 직업에 대한 자유가 없어서 생겨난건데 뭔ㅋㅋ
남들한테 가르쳐 주기 싫어서 자식한테 인수인계한게 장인정신입니다. 수백년 가업을 이은거 치고.. 진짜 별거 없어요.
@@클램프-j4f완전 빼뚤어졌구나.성격이
객관적인 통찰력을 갖어라
@@클램프-j4f 현 일본 장인정신을 300년전하고 이어서 폄하시키는데 그건 완전 시각 자체가 잘못됐음. 일본 장인정신은 제품 설계뿐만 아니라 생산공정 혁신에 대한 유능한 엔지니어들이 많음. 도요타의 tps, 현재 삼성이 쓰고있는 반도체 공정 레이아웃 대부분 일본 nec, 도시바 엔지니어들이 만든거임.
@@song2sexy 지금 시각에서 보면 안됨. 적어도 300년전은 전세계 공통적으로 직업에 대한 자유에 대한 마인드를 지닌 국가가 거의 없었음. 거주이전의 자유도 마찬가지임.
가게와 현금성자산, 본인이 가지고 있는 기술도 자산임. 적어도 그것만큼은 물러줄수있었던게 그 당시 일본임. 그리고 그런 시스템이 근대화 시기 서구열강에서 기술이전받으면서 '우리하고 시스템이 비슷한데?'라고 했었음. 유럽도 마찬가지였음.
그리고 이러한 역사가 있었기때문에 세계2위경제대국까지 올라갔던 현재의 일본이 있는거. 나쁜 시스템은 전혀아님.
조선인도 게을렀습니다. 외국 선교사들이 다 기록으로 남겨놨습니다.
왜 게을렀을까~~
양반은 일도 안 하고 세금도 안 내는 한량일 뿐인데 조선후기에는 신분을 돈 주고 사서 양반 비율이 50%가 넘었다고 하니 나라가 안 망할 수가 있나
저는 국가란 언제나 약탈의 주체라 생각 합니다. 국가가 보호 한다니요?
애초의 국가 성립이 구성원 소로에 의한 외적으로부터의 안정 보장입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갖춰지고 나서는 언제나 국가는 국가의 구성원이 아니라 국가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게 바로 조직논리죠!
때문에 국가는 법으로 국민에 대한 보호를 명시하기보다는 법으로 질서를 세우고 그 질서안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다분히 억압기제로 통제하도록 구성되어 왔습니다. 그 국가의 제도가
세련되어지면 되어질 수록 이 억압의 기제는 정밀해 집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고도화 된 사회일수록 지켜야 할게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민의 의무는
법에의해 강제되고 국가의 의무는 윤리화되어 그 책임과 권한의 경계가 모호해 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의 혹은 타의로 국가에 귀속되는 길을 택하는 것은
국가야 말로 개인을 보호 해줄 거의 유일한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국가는 언제나 ㅍ리요이상의 청구서를 국민에게 내미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세금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국가가 세금을 대하는 태도야말로 국가가 국민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터무니 없는 고율의 세금에 이래저래 특례조치로 빼주는것이 많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정신상태를 의심해 봐야죠!
왜냐하면 고율로 뽑아먹는 손에는 그 탐욕이 거리낌없이 나타나고 그것을 이런저런 명목을 빼주는
그림자에는 언제나 사적이익이 숨어있기 마련 입니다.
한데 사회주의 국가의 정수인 국가통제가 경제에 관여하게 되면 언제나 감당 할 수 없는 세금과
자애로운 감면의 두 얼굴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국민을 보호하기위한 조치가 아니라 국민을
길들이는 조치 입니다. 한손에는 고기를, 한손에는 회초리를 들고 말이죠!
그러므로 국가가 국민에게 강요하는게 많은 정부일수록 그 진면목은 독재적이고 약탈적이라
생각 합니다.
그런새끼들이 즐겨 도덕으로 상대를 후려치죠! 인간희생제물을 얻기위한 아즈텍의 꽃전투 처럼 말입니다!
공산주의 전체주의 관료주의가 독재적이고 약탈적이죠!
이 프로는 일본 역사나 체제를 잘모르는구나. 사람이 다 알 수는 없지.
부지런한거랑 경제랑은 관계가 없음
흐름과 미래비전을 잘생각하는게 중요하지
근면과 인구 증가율이 관련이 있으려나.... 베이비 부머를 보면 그렇지도 않긴 한데.... 하지만 근면을 요구하는 사회는 구성원에게 인구가 감소하도록 하는 어떤 압력을 가한다는 게 맞말 같아보이는 데...원인과 결과가 바뀐 거 같은 것은 기분 탓 ㅋㅋㅋ 증가한 인구를 근면으로 갈아서 ㅋㅋㅋ 기술로 바꾸는 게 ㅋㅋㅋㅋ 맞는 건가 ㅋㅋㅋㅋ 그나저나 ㅋㅋㅋ 일본의 발달한 상공업 제도는 일본의 종횡비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 아무래도 유통과 상업은 뗄레야 뗄 수가 없는 관계고.... 종횡비가 클 수록 유통의 중요성이 커지지 않을까 해서요
일본의 종횡비가 어떻길레 어떤 영향을 받았다는건지 모르겠지만 동서로 긴 러시아는 상공업이 그렇게 발달한거 같진않네요.
6:00 조선시대가 왜 망했는지 알겠네요 ㅎ 와서 뺐어 가고 못살게 굴고 하니
이프로 자랑하는걸 좀 줄이면 시간을 세이브 할수 있을거 같습니다. 쇼츠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맞춰서 핵심 포인트만 듣고 싶어요
이프로 돈좀만지더만 멘트에서 묻어나는 사상이 영~ㅉㅉ
진우아재 참 잘하는데...유료드립은 좀 오바다... 프리챌 생각나누... 외대가 창민아재 잘 영입했누...
이프로는 현대통령과 코드가 맞네
조선형사령
최초에 네덜란드에서 발달한 물류, 기술과 이탈리아 주식회사 형태(자본)가 동인도 회사, 서인도 회사 무역을 통해 일본에서 화란학(네덜란드어)이 붐이 일어 났습니다!
일본은 서양문물 따라하기 우등생이지만 한국은 오히려 서양에 한국문화를 수출하는 모범생입니다.
일본은 18세기부터 서양에 일본 문화를 수출해왔습니다 ㅎㅎㅎ
'고흐가 사랑한 우키요에전'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상설갤러리에서
일본 풍속화 ‘우키요에’를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상설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고흐가 사랑한 우키요에전’이다.
에도시대 다색목판화인 우키요에가 19세기 서양미술사에 미친 영향을 고흐를 중심으로 조명하는 전시다. 카츠시카 호쿠사이, 우타가와 히로시게, 도슈사이 샤라쿠의 작품 등 100여 점이 전시된다.
얼핏 횟집에서나 보던 흔한 왜색 그림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화투 그림 색감과도 비슷하다. 우키요에의 본질인 대중성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우키요에는 목판화인 덕분에 일본 대중문화의 대표작이 될 수 있었다. 다량 인쇄가 가능했고 싼 가격에 서민들이 길거리에서 쉽게 구해 즐길 수 있었다.
우키요에가 서양에 처음 소개된 것도 장거리 운송 도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완충재로 쓰이면서였다. 1867년 파리만국박람회 출품용 도자기 완충포장지가 세계미술사를 바꿨다는 말의 기원이다. 이후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을 사로잡은 우키요에는 반 고흐의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가 하면 그의 작품 형태마저 바꿔놨다. ‘탕기영감의 초상’ 배경에 온통 우키요에를 그려 넣은 것이 대표적 예다. 전시는 9월 10일까지 이어진다. 문의 054)840-3600.
이후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을 사로잡은 우키요에는 반 고흐의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가 하면 그의 작품 형태마저 바꿔놨다.
이후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을 사로잡은 우키요에는 반 고흐의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가 하면 그의 작품 형태마저 바꿔놨다.
이후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을 사로잡은 우키요에는 반 고흐의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가 하면 그의 작품 형태마저 바꿔놨다.
@@삐용삐용-s8p 일본이 의도적으로 수츨 했다라기 보다 서양 화가들이 일본 화법을 좋아했다가 어떨까요? 지금의 일본 애니메이션도 전세계적으로 인기 있지만 K-wave 같은 전반적인 한국 문화 수출과 비교하기에는 좀 그렇네요!
일본av산업도 주요 수출 상품이라고 칭하기에는 좀 너무 선정적이거나 유아틱한 것을 좋아하는 매니아 계층이 주요 고객이라~.
조선인은 지금도 게으른데 ;;;;;
요즘 유난히 이프로님 코멘트가 진행에 거슬리네요 ㅜ 패널 분도 내심 난감한데, 솔직히 말도 못하는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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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으면 맞다, 틀리면 맞다" 역시 진우형의 뻔뻔함이 난 좋아~ ㅋㅋ
옆에서제발말좀줄여라!
전문가애기자르지말고
집중이 안된다😢😢😢😢
참나 쟤는안봣으면
ㅋㅋㅋㅋ 이런말들으면서 이프로 참 근면하고 꾸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