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데일리TV] 풍납토성 심포지엄- 이희진 소장 "백제왕이 '움집'서 살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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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4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114

  • @이상도-o6e
    @이상도-o6e 5 лет назад +10

    처음에는 말이 믿음이가다가 이희진 이양반도 웃기는소리하네 백제에 불교가 전해진게 언제인데 백제초기시대에서 왕궁내 불교사찰을 찾나 참 어이없다 하여튼 학자들이라는게

    • @김뺑올
      @김뺑올 4 года назад +3

      침류왕때 대략 4세기 후반에 불교가 공인됬으면 말아 않되는게 아니지 공주천도가 문주왕때 475년이고 불교의 공인도 불교가 신앙되고 한참 후에 일반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면 한성시절 백제 궁성터에 불교사찰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 @user-Mush1000
      @user-Mush1000 4 года назад +2

      @@김뺑올 축조시기가 기원전후경인데 그때는 중국도 불교가 유입안된상황인데 무슨소리...?

    • @김뺑올
      @김뺑올 4 года назад

      @@user-Mush1000 한성백제 수도 위례성이 공식적으로 bc18년에서 ad475년 까지 백제수도로존속했잖아? 백제에서 불교가 공인된 시기가 ad384년인가 이고 더군다나 공인되기 훨씬 전부터 민간에 불교가 신앙됬을 가능성이 높고? 당연히 기원전후 초반기엔 불교사찰이 존재할 수 없겠으나 불교가 수용된 이후에는 백제수도쯤된면 불교사찰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거 아니냐? 모쥐라
      위례성이 무려 500년 가까이 백제 수도 였는데 뭔 소리야? 처음 자리잡은 곳에서 수도가 수백년간 안바꼈으면 당연히 불교수용이후사찰정도는 있을 개연성이 있다고 봐야 맞는거쥐 모쥐라

    • @user-Mush1000
      @user-Mush1000 4 года назад

      @@김뺑올 민간에서 불교? 불교전래가 민간중심으로 되었다는건 무슨 소리..? 위에서 아래로 수용되는게 고대에는 더 일반적일텐데?
      그리고 풍납토성이 발굴이 완전히 다된거도아니고, 보존해야하는 이유가 극히 일부만을 조사했는데도 저정도 역대급규모로 쏟아져나와서 그 중요도가 높은거지,(그만큼 크다=중앙집권력에 의한 건축인력동원=일찍부터 왕권급 정치체가 있다=그래서 왕성일가능성이 높다) 왕궁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그 가치가 폄하될문제는 아닐텐데?
      고고학 발굴이 모든 증거가 나타나야지 그게 정설이되는것은 아님(구석기 발굴만봐도...) . 그리고 풍납토성은 건축공법이랑 그 규모, 발굴유물로도 도읍과 관련된 근거가 상당히 충족되니까 최근 정설로 인정받는거임. 다시 말하면 이미 충분하고, 오히려 더 까봐야할상태... 만일 백번양보해서 백제왕성이 아니면 뭐가되는데..? 경주 월성보다 큰 수백년동안 쌓아온 거대한 성을 대체 누가 쌓았는데..?

    • @부여볼
      @부여볼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공인뜻을 모르는 빡대가리가 있네

  • @달무리-q1n
    @달무리-q1n 2 года назад

    풍납토성이 왕이 거주하던 궁궐이고, 외성은 더 멀리 있습니다.

  • @자두뽕
    @자두뽕 2 года назад +1

    한반도에 없는 백제 왕성을 찾을라니 웃기지도 않는 촌극이 벌어지는 구나 ㅋ

  • @minjeekim4700
    @minjeekim4700 7 лет назад +3

    이희진 소장님 책 재밌게 읽었습니다. 계속 좋은 연구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 @foreveryoung3939
    @foreveryoung3939 6 лет назад +5

    감사합니다.이희진 교수님!!

  • @김태홍-o5t
    @김태홍-o5t 2 года назад

    초석만으로 집짓겠나? 열주식 건물이 그당시 관가의 특징임..한면은 타당하지만 ..너무 시기를 당 장안성기준으로 함. 475년 몰락했는데..

  • @힐링쁘니
    @힐링쁘니 3 года назад

    왕궁이든 아니든 이미 망한 조상들 터때매 그자리에 터 잡고 사는 후손들이 쫒겨나고 그지처럼 산다는게 말이 되냐? 몽촌토성 있음 됐지 비슷한 거 하나 더 만들어서 뭐하게?

  • @방남일-y4e
    @방남일-y4e 7 лет назад +11

    이희진 소장님 의견에 동감합니다.왕궁,왕성에 대한 구분도 알게 되었네요. 23평짜리 5각형 건물 달랑 하나에 큰 건물을 떠받드는 주춧돌이 거의 발굴이 안되었군요.사찰 이 들어선 주춧돌 뿐 아니라 그러한 공간도 없고 주작대로라고 할만한 도로도 겨우10~20미터 정도라니 제가 보기에도 원시적인 토성 같네요. 이제라도 백제의 한산, 한성,한수에 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만 보더라도 한성의 위치가 지금 한강 아래가 아니라 이산을 지나 저 위쪽에 있다고 했고 북한 평양에서 발굴된 한성 글자가 새겨진 성벽각서도 사람들은 잘모르더군요. 온조가 오른 한산은 평남 평성시 일대이고 인근에 은좌봉,백족산이 있으며 한성후기의 위례성은 황해도 신계군 부여면 위라천 일대이고 그강이 예성 강으로 흘러간다고 어느분이 주장하시던데 전 일리 있다 보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연남생비,연남산비의 한성이 지금 서울이 맞을까요?전 아닌것 같습니다.

  • @taevaekbuffaloelf
    @taevaekbuffaloelf 5 лет назад +2

    저것도 사이삥냄시난다.? 삼국중애 백제 낙랑이 가장 크지 2.3.4세기에 왜 나 가야 싢라 규모 보면 알지 마한국 보다 못한순일껄 가야 마한국이 가장 발전했는데 왕성이란게 나오냐

  • @문점식-w5u
    @문점식-w5u 4 года назад +1

    시원한 반론 감사합니다

  • @hanjiney
    @hanjiney 5 лет назад +5

    그럼 어디란 말입니까
    그리고 백제왕성 규모는 누구도 모르는데 크다는 증거가 어딨나요
    초기백제는 그닥 발전된 나라가 아니었고 공주 부여도 규모가 아주 작아요
    백제가 대제국이란 가정을 하니 이해가 안 가겠죠

  • @user-cw8zt1ot7q
    @user-cw8zt1ot7q 5 лет назад +2

    고고학계에 만연된 식민사관, 역사왜곡 학자들 적폐청산해야 합니다~!!!
    패널로 나온 저런 썩은 학자, 교수에게서 뭘 배운단 말입니까?
    이희진박사님의 사이다발언이 속 시원하네요^^

  • @달무리-q1n
    @달무리-q1n 4 года назад +1

    풍납토성은 백제 초기예요. 지금 말씀하시는 다른 국가의 왕성은 수백년 후에요. 왜, 백제 초기의 왕궁 건물은 다 대형건물이어야 한다는 가정을 전제하고 주장하시죠? 초기 마한의 일원으로 부족국가 형태로 백제가 시작했기 때문에 왕궁은 생각보다 작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요.

  • @조규민-m8i
    @조규민-m8i 7 лет назад +6

    풍납토성을 위례성으로본다는건데ㅋ
    그게가능한가ㅋ삼국사기기록하고지형만봐도 일치하는부분이없는데ㅋ

  • @hanjiney
    @hanjiney 7 лет назад +2

    솔직히 초기 백제가 나라다운 나라일까요??
    군장국가에서 좀 발전한 것에 지나지 않았을 듯.. 그러니..오늘날 조선 왕궁 같은 걸 상상하면 곤란하죠..
    후대의 공주, 부여 왕궁터도 제대로된 게 별로 없는 마당에 한성백제는 말할 것도 없겠죠
    그리고 풍납토성 내는 이미 주택, 아파트로 다 갈아엎었는데...흔적이 나올 수 있나요?? 상식적으로...??
    경주 월성처럼 터로만 남아 있다면 저 주장이 옳습니다.

    • @disjfbdje18
      @disjfbdje18 6 лет назад

      윤내현 교수 책 한번 정독하면 생각 달라질겁니다

    • @김뺑올
      @김뺑올 4 года назад +1

      고구려 백제는 부여에서 떨어져 나온 나라입니다 본래 부여라는 나라가 문명과 국가사 발전단계가 상당히 높았던 나라였습니다 국초부터 감옥과 궁성 성책를 갖춘 나라였고 중화사상에 쩔은 중국측 기록에도 문명수준이 높았던 나라였지요 그런 부여귀족층의 이탈로 세워진 고구려나 백제는 국초부터 만만치 않은 나라였습니다 백제도 보수적으로 봐도 3세기중반 고이왕때 되면 오늘날의 경기도 거의 전역과 충청권 일부까지 아우르는 고대국가였고 4세기 중반 근초고왕때면 고구려도 군사적으로 압도했던 나라에요 그때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심지어 평안도 일부까지 영토를 확장시켰던 강국이었는데 문주왕이 475년 공주로 천도하기 전까지 무려 거의 500여년동안 수도였던 한성시대 위례성이 허술한 초기국가나 군장국가 수준의 도성이었을 거 같아요? 백제 국초에 백제궁성에 대한 삼국사기 기록도 검이불누 화이불치라고 했듯이 적어도 기화를 얹고 나름대로 충분한 공간을 갖춘 궁성이었을 것으로 추측하는게 합리적일 겁니다

    • @문기강-v2i
      @문기강-v2i 7 месяцев назад

      만주원류고를 보면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수 있읍니다. 660년 성 밖 백제 백성이 돌궐과 말갈로 투항했다는 기록이 만주원류고에 나옵니다. 한반도 사비성에서 비항기를 타고 갔을까요?

  • @김세황-l8n
    @김세황-l8n 8 лет назад +2

    백제 불교전래는 서기 373년경
    풍납토성 건축시기는 대략 기원 전후

    • @타라바이
      @타라바이 8 лет назад

      김세황 그이후 장수왕한테 뺏길때까지 백제성

    • @nar..
      @nar.. 7 лет назад +2

      김세황 475년에 개로왕이 죽을때 불교는 이미 전래된겁니다.
      풍납토성을 지을때는 당연히 불교유적이 없겠지밀 나중에는 당연히 절과 탑이 생겼겠죠.
      그러니까 유적이 나와야 한다는겁니다.

    • @doggeshiba276
      @doggeshiba276 4 года назад

      @@nar.. 그렇게 따지면 국내성도 불교 유적 아직 안나옴. 불교가 전래초기라면 충분히 흔적은 안 나올 수 있는 거임.

  • @삼국지-k8t
    @삼국지-k8t 7 лет назад +5

    음. 무작정 비판만 하기 보다는 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동영상인듯. 논리도 있고 왜 덮어놓고 욕하시는 지..

  • @user-Mush1000
    @user-Mush1000 4 года назад +1

    솔직히 다 몰라도 그 규모 하나로 이미 설명이 끝나는수준인데... 다른 왕성지를 비교해도 고대 성 유적중에 풍납토성만한 거대규모 유적이 없음.

  • @doggeshiba276
    @doggeshiba276 4 года назад +1

    재야사학자들은 좋겠다 상대방을 식민사학자로 몰아넣고 여론몰이만 하면 지지자들이 알아서 따라주니까

  • @TV-vl2qp
    @TV-vl2qp 6 лет назад

    이희진 선생님 자료 찾다가 이걸 보게 되네요! 문화재에 대해서 보존이 재산권제한 때문에 힘듭니다만 이렇게 사기로 조작해서 문화재라 우기는 것은 더욱 큰 범죄입니다. 항상 소시민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민란이 아닌 바에야! 항상 배워서 사기치는 지식인이 문제지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신다더만 정말로 불편하게 하시네! 계속 부탁드립니다! 응원합니다. 힘내십시요! 불편하게 해야 사실 발전과 성장이 있는 거 아닙니까?

  • @hahaha6789
    @hahaha6789 5 лет назад +1

    일본 인덕왕릉은 왜 백제 왕릉들보다 수백배 더 크냐? 내가 식민사관에 빠졌냐?

    • @roiesai
      @roiesai 4 года назад

      중요한건 거기 나온 유적이 가야.백제 유물임. 지금은 유적발굴을 막아버렸고

    • @물소추적-j6c
      @물소추적-j6c 4 года назад

      그야 후대에 개축했으니까요..

    • @hahaha6789
      @hahaha6789 4 года назад

      @@물소추적-j6c 알고 말해라. 우기지 말고. 일본 인덕왕릉이 무령왕릉보다 100년전에 만들어 졌는데 수백배는 더 크다. 역사를 판타지로 만들지 말고 팩트를 기반으로해. 너같이 우기면 일본놈들한테 망신당해.

    • @hahaha6789
      @hahaha6789 4 года назад

      @@roiesai 뭔솔? 인덕왕릉 파본적이 있냐? 원래부터 발굴 금지였지. 글고 반대로 가야지방 유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왜계 유물과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산재한 전방후원분은 뭐냐? 판타지 소설쓰는 재야사학자 책 읽지 말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나온 정사를 함 봐. 근거도 없이 식민사학이라고 우기지 말고.

    • @물소추적-j6c
      @물소추적-j6c 4 года назад

      @@hahaha6789 그니까 후대에 크게 개축했다구요. 북한이 자존심 때문에 동명왕릉 크게 만들듯이요. 일본이 중앙집권화를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시기는 백제가 멸망하고 백강전투 이후인데 그전에 고대국가의 기본인 율령반포, 관제 정비, 불교 및 도교 수입같은 것도 없던 3류국가가 그것도 5세기에 저런 대규모 토목공사를 한다는게 말이 되나요. 한국과 다르게 일본은 계속 왕가가 이어져왔고 자국의 자존심을 살리려고 일본서기같은 프로파간다도 서슴없이 만들었으니 개축을 한 이유는 아시리라 믿습니다. 비교적 최근인 19세기까지도 2중해자를 3중해자로 늘리는 공사를 하더군요. 그리고 그 한국식 유물은 태풍 때문에 고분이 일부 허물어져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6세기 백제양식의 유물이 나왔다더군요.

  • @hanjiney
    @hanjiney 7 лет назад +2

    피해 운운한 것에서 순수성을 상실했네요.. 부동산 문제겠죠

    • @힐링쁘니
      @힐링쁘니 3 года назад

      님집이면 그런 소리 쉽게 할수 있나요? 생존이 달렸는데~세상 어찌 될지 모르는데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안되죠

    • @문기강-v2i
      @문기강-v2i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위나라가 또 다시 기병 수십만을 일으켜 백제를 침공했다는 기록이 만주원류고에 나옵니다. 위나라가 한반도 백제를 어떻게 침공합니까?

  • @안수현-i7z
    @안수현-i7z 7 лет назад

    박원순 시장님 까는 내용이네요.
    풍납토성 보존하고 유네스코 등재하겠다는게 웃기는 얘기라는 주장이네요.

    • @문기강-v2i
      @문기강-v2i 7 месяцев назад

      만주원류고를 보세요. 백제는 중국에 있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