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믿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각오해야 할 것, 명심해야 할 것, 인내하고 경계하면서 진정한 순종을 이뤄내야 한다는게 정말정말 얼마나 어려운건지 ... 어려움이 닥쳐올때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설교는 많아도, 예수믿을 때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그 힘듦과 어려움, 그 높음에 대해서는 설교가 별로 보이지 않는것이 좀 아쉽습니다. 우리 정말 제대로 각오하고 예수님 믿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의 억재력 이라는 것은 동의하지만 완전 억제가 아닌 것은 어떤 이유일까? 예수님을 믿어도 우리의 탐심은 완전 억제 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찬수 목사님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단순히 억제력이라고만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억제력이라고 한다면 우리 안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완전성을 폄하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억제력을 넘어,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억제할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시는 한편 우리의 실수와 연약함에 대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도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발현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얘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머무는 것.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사사기의 백성들처럼 끝없이 넘어지고 용서받으며.. 살아가는 것. 다만 다른 왕을 요구허지는 얺는 것.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롬 10:9 !!
예수를 믿는다는 것 자체로 구원받을 줄 믿습니다^^
예수님 믿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각오해야 할 것, 명심해야 할 것, 인내하고 경계하면서 진정한 순종을 이뤄내야 한다는게 정말정말 얼마나 어려운건지 ... 어려움이 닥쳐올때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설교는 많아도, 예수믿을 때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그 힘듦과 어려움, 그 높음에 대해서는 설교가 별로 보이지 않는것이 좀 아쉽습니다. 우리 정말 제대로 각오하고 예수님 믿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의 억재력 이라는 것은 동의하지만 완전 억제가 아닌 것은 어떤 이유일까?
예수님을 믿어도 우리의 탐심은 완전 억제 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찬수 목사님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단순히 억제력이라고만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억제력이라고 한다면 우리 안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완전성을 폄하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억제력을 넘어,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억제할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시는 한편 우리의 실수와 연약함에 대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도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발현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얘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머무는 것.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사사기의 백성들처럼 끝없이 넘어지고 용서받으며.. 살아가는 것. 다만 다른 왕을 요구허지는 얺는 것.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