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다방47 ☆태평양전쟁 ep.46 미국의 히든카드 [원자폭탄 전격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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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1 июн 2022
  • 드디어 등장한 미국의 히든카드 #원자폭탄
    원자폭탄의 비밀 #핵분열 의 원리와
    핵분열물질인 #우라늄 #플루토늄 의 특징
    그리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핵분열 #연쇄반응 까지!
    물리학자 채승병에게 듣는 핵폭탄의 과학적 원리.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씬맨 vs #팻맨 vs #리틀보이
    이 세 가지 원자폭탄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핵분열의 원리가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닌 원자폭탄으로 개발되기까지 과정과
    그 비하인드 스토리. 일본에 떨어뜨린 원자폭탄 리틀보이 vs 팻맨 전격분석!
    그리고 원자폭탄 개발 당시 쓰인 계산자와 기계식 계산기의 실제 사용법까지
    원자폭탄 개발의 모든 것!
    세계에서 가장 쉬운 #핵폭탄 방송 역전다방에서 파헤쳐봅니다!
    #역전다방 #태평양전쟁 #원자폭탄 #포츠담선언
  • РазвлеченияРазвлечения

Комментарии • 445

  • @Monocrom1027
    @Monocrom1027 2 года назад +144

    유튜브에서 참 많이 봐오던 전쟁사. 세계대전.. 국방티비에서 최고의 프로그램이라 칭해지던 토전사 이후 전쟁사에 대해 또 한다고 했을때 반신반의 했었는데 이건 뭐...한편 한편이 다...음...그냥 너무 재미있다.

    • @user-sv1vp3vr4t
      @user-sv1vp3vr4t 2 года назад +16

      진짜 디테일이 사람 감동하게 만드는거같음

    • @user-vu2fb7sh1t
      @user-vu2fb7sh1t 2 года назад +17

      개인적 생각이지만 채박사가 신의한수 ,심소령이 조연으로 기여
      남보람씨가 나왔으면 더 완벽했을 거라는 생각
      허준은 여기저기 너무 경험을 많이해서 이젠 국내유일 전쟁사 전문MC랄까..완급조절이 물이 올랐음

    • @supercjh
      @supercjh 2 года назад +7

      @@user-vu2fb7sh1t 동감

    • @jaeseunglee3598
      @jaeseunglee3598 2 года назад +6

      허준씨는 야구예능할때 부터 알게 되었는데 그때보다 심지어 더 잘생김.

  • @mmanhb552
    @mmanhb552 2 года назад +80

    캬 채박사님의 밀사쿨 역대급이었다 기계식 계산기 등장! 그리고 허준씨 이제보니 영재네ㅎㅎㅎ
    포츠담회담이 냉전의 시작이라니 역시 역전다방 믿고 봅니다

  • @user-vc2vq9nw3u
    @user-vc2vq9nw3u 2 года назад +95

    이해가 잘되요 집에서 핵폭탄 하나 만들어봐야겠어요.

    • @greatst8834
      @greatst8834 Год назад +4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user-bf5gn6fl8c
      @user-bf5gn6fl8c Год назад +5

      샘들 여기입니다🎉

    • @user-yi8ip5up6o
      @user-yi8ip5up6o Год назад +5

      돈이 없어서 못만듬

    • @user-cw8us7km8b
      @user-cw8us7km8b Год назад +8

      그폭탄이 지금 옆에 한이불 덥고 자고있습니다...ㅎㅎ

    • @burning.butterfly
      @burning.butterfl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어머님집에 핵폭탄한개 놔드려야겠어요ㅋㅋ

  • @user-wl7nh9lj1e
    @user-wl7nh9lj1e 2 года назад +45

    여태까지 보면서 느낀게 진짜 진행하는분들 잘뽑은거같음.. 전쟁역사에 필요한 모든 분야가 결집한거 같습니다 ㅋㅋㅋ

  • @silnot8235
    @silnot8235 2 года назад +39

    솔직히 방송 볼때마다 돈 벌어가는 기분입니다.
    이런 저같은 문과맨ㅋㅋㅋㅋㅋ은 평생 이해하기 힘든 내용을 매주
    깔끔하게 설명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려요.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1

      원폭 개발을 처음 시작한 것은 미국-독일 아닌 영국.
      독일 폭격을 피해 캐나다로 이전, 영국 단독으로 자원과 비용을 댈 수 없게 되자
      이미 진행중이던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하며 최종적으로 미-영-캐 공동 맨허튼 프로젝트.
      티저드 미션, 1940년 8월 경 프랑스 항복 및 영국 항공전 위기 속에서
      미국의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처칠이 헨리 티저드가 이끄는 영국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 2차대전 내내 지속.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제공된 과학기술 목록은
      핵임계질량-레이더-마그네트론-근접신관-제트엔진-소나-암호해독...페니실린 등.
      핵무기 개발이 실제 가능하다는 최초의 확증인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받은 이후 미국도 원폭 개발에 본격 참여.
      핵임계질량 수치가 전달된 초기, 정보를 받았던 미국은 무시했으나 호주 출신의 영국팀 올리펀트가 유력한 미국 과학자들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 경고하며 결국 미국측도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인식 전환.
      핵무기 개발 과정 정리하면
      1. 1932년 중성자 발견, 영 채드윅
      1920년대 원자핵 변환을 통해 최초 인공 원소 변환했던 영 러더포드, 원소 변환의 원인으로서 중성자 예측.
      중성자는 전하 0 + 전자 보다 훨씬 무거운 조건 때문에 원자핵의 강력한 양전하 반발을 극복하고 핵을 부수는 망치 역활.
      채드윅은 영-캐 팀 단장으로 맨허튼 프로젝트 참여.
      2. 1938년 원자핵 분열 발견, 독 오토한과 마이트너
      중성자가 핵을 부수는 망치 방아쇠 역활을 한다는 최초의 확인.
      3. 1940년 7월경 영국 핵무기 개발 검토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 1941년 7월 무렵 핵무기 가능하다는 모드 위원회 첫 보고서
      독일의 원자핵 분열 소식에 영국은 독일의 핵무기 생산 가능성 우려.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전황이 지극 불리했지만, 1940년 7월경 핵무기가 실제 가능한지 조사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1년 뒤인 1941년 7월경 모드 위원회의 첫 보고서에, 핵무기 생산은 가능하다는 결론. 영국 핵무기 프로젝트 튜브 앨로이 시작.
      4. 1941년 8월 티저드 미션으로 미국에 모드 위원회 보고서 제공. 미국이 비로서 핵무기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 파악.
      핵임계질량이 미국에 전달되었지만 정보 받은 전문가들은 무시, 호주 출신의 영국 핵무기 개발팀 과학자 올리펀트는 미국의 유력
      과학자들을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을 전달 결국 미국 과학계가 대통령에게 건의해 미국 역시 핵무기 개발 시작.
      5. 1942년 10월경, 미국이 핵개발에서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
      6. 1943년 8월 쾨벡에서 미영은 핵무기 프로그램 통합 결정 + 핵무기 정보 공유 비밀 협정 체결.
      7. 1944년 미영 하이드 파크 협정으로 핵정보 공유 확인.
      8. 1945년 7월 최초 원폭 실험 성공
      9. 1946년 8월 미국 맥마흔 법, 핵기술과 정보의 해외 유출 금지. 영국과의 핵협정 미국이 깨트림.
      미국이 영국과의 핵협정을 파기하자 영국은 전후 파산 상태에서 독자 핵개발 시작. 1952년 원폭, 1957년 수폭 실험 성공.
      최종 정리하면 2차대전 발발 당시 독일과 영국은 핵무기 개발 직전 동일 출발선.
      독일은 초기 전격전의 대성공으로 핵무기 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영국은 극한의 위기 속에서
      혹이나 독일이 핵무장 먼저 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만 했기에 가장 먼저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든. 미국은 티저드 미션으로
      영국이 제공한 핵임계질량 등의 정보를 접한 이후에 비로서 핵무기 개발에 나선. 하지만 결국 풍부한 미국의 자원과 인력 과학기술
      기반이 맨허튼 프로젝트 주도해 핵무기 완성.
      관련 링크 때문인지 글이 삭제되어 링크를 제외하고 올립니다.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B-29 원폭 투하 임무 하마터면 랭커스터에게 빼았길뻔.
      b-29 아닌 랭커스터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훈련 : b-29 폭탄창 개조 혼선으로, 영공군 특임 부대 역시 원폭 투하 훈련.
      ruclips.net/video/5XX9ptCNpik/видео.html : Hiroshima 1945 - The British Atomic Attack
      B-29의 폭탄창은 2개로 커다란 원폭 수용 불가, 대형 폭탄창 1개로 개조 어려움 겪으며,
      만약을 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 폭격기 특수 임무 부대 차출해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 훈련도 함께 병행.
      랭커스터는 B-29 보다 짧았던 항속거리 때문에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원폭 투하 훈련을 했다고, 이미 43년 부터 수 백기의
      랭커스터가 공중급유기로 전환되었고,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실제 공중 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
      댐버스터 폭격대 이끌었던 가이 깁슨, 1944년 9월 모스키토 폭격기 임무 수행중 독 전투기와 교전 충돌 전사.
      ruclips.net/video/mx8uRwANfWU/видео.html : Dambusters - Guy Gibson Grave & Crash Site
      깁슨이 추락한 네덜란드 마을엔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그의 묘소가 있습니다.
      동영상의 댓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댐버스터 작전 성공 후 임무 해제되어 공군을 떠난 뒤 , 미국 방문했을 때 독일 상공으로의 작전 횟수
      얼마나 되냐는 질문. 깁슨의 답변은 174회였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폭격기 승무원들에게 부여된 의무로서의 작전 횟수를 몇 배 이상 초과했죠. (기억으로 미 폭격기 승무원들 30회 정도 임무 수행하면 귀국.)
      의무 복무 채운 상태에서 깁슨은 44년 다시 공군에 복귀. 모스키토 폭격기로 임무 수행중 독일 전투기와 교전하게 되었고, 충돌로 전사.
      당시 나이는 26세 중령 추서.
      (관련 댓글
      beefabob
      1년 전
      On 4 October 1943 Gibson began a tour of The United States and whilst in Washington DC., he attended a major Press Conference at the offices of the British Information Service in New York on 7 October. This was at a time when the first American airmen were coming home 'tour expired' after 25 operations. During questions one young lady asked, 'Wing Commander Gibson, how many operations have you been on over Germany?' He replied, 'One hundred and seventy-four.' There was a stunned silence" A truly great man.
      )
      영국공군 폭격기 사령부는 2차대전 중 약 36만5천회 출격, 약 100만톤 폭탄 투하, 폭격기 손실 약 8500대.
      투입 병력 약 12만5천 중, 전사 약 5만5천, 약 8천5백 부상, 약 1만명 포로 : 승무원 사망율은 약 45%에 달할 정도로 극도로 위험했습니다.
      독일의 폭격 피해 역시 막대해서, 폭격으로 사망 약 60만, 폭격에 대비하기 위한 독일의 방공포 병력 약 90만이었다고 합니다.
      독일 입장에서 2차대전 독일을 폭격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미국의 b-17이나 b-29가 아닌 랭커스터 폭격기.
      b-29는 종전 직전 태평양 전선에 투입되었기에 독일 폭격엔 사용되지 않았고, 거대한 b-17의 폭장량은 모스키토 폭격기와 비슷.
      랭카스터는 44년 이후엔 1발에 5톤, 10톤 하는 톨보이와 그랜드슬램으로 독일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랜드슬램은 너무 무거워
      투하하는 순간 랭커스터 폭격기 고도가 갑자기 위로 상승할 정도.
      랭커스터는 하마터면 히로시마 원폭을 투하할 뻔 했습니다.
      랭커스터의 폭탄창은 원폭을 별 다른 개조 없이 수용할 수 있었지만, 개발중이었던 b-29는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를 위한 개조 추가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미국과 영국은 개발 실패를 대비,
      영국 폭격기 사령부내 특수 임무 부대를 차출해 승무원들에게 임무를 밝히지 않고 (일본에 대한 초장거리) 폭격 훈련에 돌입.
      b-29 보다 일찍 나온 기종이라 고고도 성능과 항속거리에게 부족했던 랭커스터는 원폭 투하를 위해,
      공중급유를 포함한 훈련을 거쳤습니다. 이미 45년 당시에 대형 4발 폭격기가 공중급유를 받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군요.
      원폭을 탑재한 타이거 편대 출격은 동남아의 영국 공군기지 또는 태평양의 미군 기지였는데 랭커스터 항속거리 초과로 공중 급유 필수.
      원폭 투하 랭커스터 편대 이름은 타이거였습니다. 미국 입장에선 다행히도, 원폭 수용할 수 있는 개조가 성공해 타이거 편대는 임무 해제.
      (미국이 보유한 b-17, b-24 등은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 불가능. 새로 개발중인 b-29는 1개의 대형 폭탄창이 아닌, 2개의 폭탄창 구조라 원폭
      탑재 불가능, 기체 골격 자체를 변경해 폭탄창을 1개로 재설계해야 했는데 테스트 과정에서 몇 차례 실패했다고 하는군요. 히로시마 작전 투입
      직전에 폭탄창 개조가 완료. 영 랭커스터 폭격기는 폭탄창은 넉넉했지만, 항속거리 문제로 공중급유가 필요했는데 이미 1943년 이후 수백대의
      랭커스터기들이 급유기로 개조되었고, 실제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공중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내용 포함.)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1

      이 영상에서는 핵폭탄의 폭발 원리에 집중되어,
      제한된 방송 시간 때문에 2차대전 동안 핵무기 개발이 진행된 큰 흐름 과정이 생략되었습니다.
      디테일과 시야각은 상보적이며,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는 잃게 됩니다.
      그리고 왜 중성자가 핵분열을 일으키는 망치인지 언급 생략.
      핵무기 및 핵발전, 핵에너지의 실용화는 중성자 발견 이후에 비로소 가능해진 겁니다.
      그 중성자는 이미 1920년대 캐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의 최초 핵변환 통한 인공 원소변환 때 예측된.
      교과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기본 입자, 전자-원자핵-양성자-중성자 이 단계 까지 모든 입자는 영국에서 확증된.
      독일은 우수한 과학기술 역량에도 불구하고,
      대전초 전격전 깃발 날리던 때에는 핵무기 개발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대전 중반 이후 전황이 악화된 이후엔 핵무기 개발 여력 자체가 없어져 핵무기 개발 시도도 하지 못한.
      2차대전 초 미국은 풍부한 자원, 인구에
      독일-영국 대비 크게 쳐지지 않은 과학기술 확보한 상태였지만 사실상 멍 때렸던.
      만일 영국이 티저드 미션을 통해 핵심 과학기술과 핵임계질량 정보 넘겨주지 않았다면 자력으로만 해내기 쉽지 않았을 것.
      아이디어 자체가 있어야 시도, 시도 해봐야 될지 안될지 결정된다는 점에서. 미국 자체 아이디어는 많이 부족했던.
      2차대전 미국은 사실 운수대통.
      전쟁 진행 중 영국에게서 첨단 과학기술 제공받고, 독일 항복 이후 많은 최상급 독일 과학기술자 확보.
      그리고 2차대전 당시 미국 폭격기들은 적 전투기로 부터 자체 방어 위해,
      폭장량을 희생하면서 규모에 비해 적은 폭탄 탑재량으로 거대한 b-17이 영국 합판으로 만든 중형 모스키토와 비슷한 수준.
      그렇게 자체 방어 능력 강화했어도 호위 전투기 없을 때는 엄청난 피해 입었습니다.
      폭탄창이 대체로 영국 폭격기에 비해 작았고, 가장 거대했던 b-29도 폭탄창 2개라 원폭 탑재가 어려웠던.
      여기 영상에서 그 역시 간단 언급되었는데, 큰 1개 폭탄창으로 개조 실패 대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도 핵투하 훈련 실시.

  • @user-ir7ff9te3p
    @user-ir7ff9te3p 2 года назад +32

    채박사님 원자폭탄 설명하실때 먼가 방방 신나셔서 설명하시는거 엄청 귀여우셔요 ㅋㅋㅋㅋㅋ

  • @agile154
    @agile154 2 года назад +31

    우리 삶에도 여러가지 임계점들이 있는데, 그 지점을 더욱 자세히 알아보는 장이 되었어요. 밀도와 간격 밀폐 반사, 높은 속도로 붙이기, 외부로 새나가지 못하게 한 다음 응축하기 등.. 이번 회차 기대는 했지만 그 이상을 맛보고 가네요. 채박사님댁 냉장고에 고농축 우라늄이 있을것 같은 생생한 설명이었습니다.

  • @nyk4457
    @nyk4457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1

    오펜하이머보고 복습와러 왔어요

  • @papamind
    @papamind 2 года назад +15

    채 박사님 설명 너무 쉽게 잘해주셔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감동이네요.

  • @jhunterkim
    @jhunterkim 2 года назад +12

    매주 수요일 저녁을 기다립니다.
    오로지 역전다방 업데이트 영상보기 위해서 👍🙏
    거를 타선이 없는 최고의 멤버들

  • @user-bjjx3oly
    @user-bjjx3oly 2 года назад +22

    오늘 채 박사님 필살기 진짜 ㄷㄷㄷㄷ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네요 ㅎㅎㅎ 다음주도 기대할게요!!!

  • @good-citizenship
    @good-citizenship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6

    핵폭탄 설명만큼은 그 어느것보다 자세하다. 여기에 물리학자 이야기들 저 내부폭발 계산 주도한 파인만 이야기 곁들였으면 완벽했겠다

  • @lineroh1
    @lineroh1 2 года назад +46

    최곱니다. 세금으로 이런 컨텐츠를 만들어야 되요. (세를세환 만세!)

    • @user-sv1vp3vr4t
      @user-sv1vp3vr4t 2 года назад +3

      이건 진짜 세금만 있어서도 안되고 제작진분들이랑 출연진분들도 진짜 대단함 ㄹㅇ

    • @user-ox3zq2wg8t
      @user-ox3zq2wg8t 2 года назад +1

      딱딱딱

  • @newjae1
    @newjae1 2 года назад +49

    거짓말 아니라 매주 한 시간 덜되게 영상 한 1년 가까이. 퀄리티가 ㄹㅇ 두학기 짜리 중일전쟁-2차대전-태평양전쟁 강의 같음. 학부생 과목보다도 더 퀄이 좋음 ㅎㅎㅎㅎㅎㅎㅎ

    • @zacharypark4268
      @zacharypark4268 2 года назад +6

      이분들 면면 자체가 정말 전문가시죠..!박원장님은 학계에서도 최상위라 알고 있고요 ㅎㅎㅎ

  • @jspkorea1639
    @jspkorea1639 2 года назад +71

    채승병이 중학교동창입니다..여전히 혀가 짧은 ㅎㅎㅎ ..중학교때 별명이 아식스 였습니다(왜인지는 보인에게 물어보시길 ㅎㅎ) 중학교때 우리학교 최고의 천재였죠. 승병이 말잘한다~ 화이팅 !!

    • @user-ul3tq9pb8j
      @user-ul3tq9pb8j 2 года назад +6

      ㅋㅋㅋ 오늘 역전다방 보는데 왜 아식스가 계속 떠오르는지 ㅋㅋㅋㅋㅋ

    • @user100b
      @user100b Год назад +3

      중딩때부터 천재였군요. 와~
      아식스 설명좀 ㅋ

    • @user-sm2in8lv8m
      @user-sm2in8lv8m Год назад +3

      혀가 짪으신게 넘 귀여우셔용ㅎㅎ

    • @ysb6676
      @ysb6676 Год назад

      교포인가여? 혀과왜이리짧지

  • @conellchirs5155
    @conellchirs5155 2 года назад +21

    채박사님 저런물건 집에 많으면 와이프분이 안좋아 할텐데 티비 나가서 교육 해야한다고 말씀하고 마음껏 덕질 하시겠네 ㅋㅋ

  • @myoungkim1680
    @myoungkim1680 2 года назад +29

    따지고보면 핵폭탄의 원리라는 타이틀의 10분짜리 유투브각인데, 한시간 분량으로 확실히 이해되면서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분량조절에 대한 걱정은 이미 놓은지 오래니까요.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1

      원폭 개발을 처음 시작한 것은 미국-독일 아닌 영국.
      독일 폭격을 피해 캐나다로 이전, 영국 단독으로 자원과 비용을 댈 수 없게 되자
      이미 진행중이던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하며 최종적으로 미-영-캐 공동 맨허튼 프로젝트.
      티저드 미션, 1940년 8월 경 프랑스 항복 및 영국 항공전 위기 속에서
      미국의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처칠이 헨리 티저드가 이끄는 영국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 2차대전 내내 지속.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제공된 과학기술 목록은
      핵임계질량-레이더-마그네트론-근접신관-제트엔진-소나-암호해독...페니실린 등.
      핵무기 개발이 실제 가능하다는 최초의 확증인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받은 이후 미국도 원폭 개발에 본격 참여.
      핵임계질량 수치가 전달된 초기, 정보를 받았던 미국은 무시했으나 호주 출신의 영국팀 올리펀트가 유력한 미국 과학자들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 경고하며 결국 미국측도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인식 전환.
      핵무기 개발 과정 정리하면
      1. 1932년 중성자 발견, 영 채드윅
      1920년대 원자핵 변환을 통해 최초 인공 원소 변환했던 영 러더포드, 원소 변환의 원인으로서 중성자 예측.
      중성자는 전하 0 + 전자 보다 훨씬 무거운 조건 때문에 원자핵의 강력한 양전하 반발을 극복하고 핵을 부수는 망치 역활.
      채드윅은 영-캐 팀 단장으로 맨허튼 프로젝트 참여.
      2. 1938년 원자핵 분열 발견, 독 오토한과 마이트너
      중성자가 핵을 부수는 망치 방아쇠 역활을 한다는 최초의 확인.
      3. 1940년 7월경 영국 핵무기 개발 검토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 1941년 7월 무렵 핵무기 가능하다는 모드 위원회 첫 보고서
      독일의 원자핵 분열 소식에 영국은 독일의 핵무기 생산 가능성 우려.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전황이 지극 불리했지만, 1940년 7월경 핵무기가 실제 가능한지 조사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1년 뒤인 1941년 7월경 모드 위원회의 첫 보고서에, 핵무기 생산은 가능하다는 결론. 영국 핵무기 프로젝트 튜브 앨로이 시작.
      4. 1941년 8월 티저드 미션으로 미국에 모드 위원회 보고서 제공. 미국이 비로서 핵무기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 파악.
      핵임계질량이 미국에 전달되었지만 정보 받은 전문가들은 무시, 호주 출신의 영국 핵무기 개발팀 과학자 올리펀트는 미국의 유력
      과학자들을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을 전달 결국 미국 과학계가 대통령에게 건의해 미국 역시 핵무기 개발 시작.
      5. 1942년 10월경, 미국이 핵개발에서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
      6. 1943년 8월 쾨벡에서 미영은 핵무기 프로그램 통합 결정 + 핵무기 정보 공유 비밀 협정 체결.
      7. 1944년 미영 하이드 파크 협정으로 핵정보 공유 확인.
      8. 1945년 7월 최초 원폭 실험 성공
      9. 1946년 8월 미국 맥마흔 법, 핵기술과 정보의 해외 유출 금지. 영국과의 핵협정 미국이 깨트림.
      미국이 영국과의 핵협정을 파기하자 영국은 전후 파산 상태에서 독자 핵개발 시작. 1952년 원폭, 1957년 수폭 실험 성공.
      최종 정리하면 2차대전 발발 당시 독일과 영국은 핵무기 개발 직전 동일 출발선.
      독일은 초기 전격전의 대성공으로 핵무기 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영국은 극한의 위기 속에서
      혹이나 독일이 핵무장 먼저 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만 했기에 가장 먼저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든. 미국은 티저드 미션으로
      영국이 제공한 핵임계질량 등의 정보를 접한 이후에 비로서 핵무기 개발에 나선. 하지만 결국 풍부한 미국의 자원과 인력 과학기술
      기반이 맨허튼 프로젝트 주도해 핵무기 완성.
      관련 링크 때문인지 글이 삭제되어 링크를 제외하고 올립니다.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B-29 원폭 투하 임무 하마터면 랭커스터에게 빼았길뻔.
      b-29 아닌 랭커스터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훈련 : b-29 폭탄창 개조 혼선으로, 영공군 특임 부대 역시 원폭 투하 훈련.
      ruclips.net/video/5XX9ptCNpik/видео.html : Hiroshima 1945 - The British Atomic Attack
      B-29의 폭탄창은 2개로 커다란 원폭 수용 불가, 대형 폭탄창 1개로 개조 어려움 겪으며,
      만약을 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 폭격기 특수 임무 부대 차출해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 훈련도 함께 병행.
      랭커스터는 B-29 보다 짧았던 항속거리 때문에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원폭 투하 훈련을 했다고, 이미 43년 부터 수 백기의
      랭커스터가 공중급유기로 전환되었고,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실제 공중 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
      댐버스터 폭격대 이끌었던 가이 깁슨, 1944년 9월 모스키토 폭격기 임무 수행중 독 전투기와 교전 충돌 전사.
      ruclips.net/video/mx8uRwANfWU/видео.html : Dambusters - Guy Gibson Grave & Crash Site
      깁슨이 추락한 네덜란드 마을엔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그의 묘소가 있습니다.
      동영상의 댓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댐버스터 작전 성공 후 임무 해제되어 공군을 떠난 뒤 , 미국 방문했을 때 독일 상공으로의 작전 횟수
      얼마나 되냐는 질문. 깁슨의 답변은 174회였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폭격기 승무원들에게 부여된 의무로서의 작전 횟수를 몇 배 이상 초과했죠. (기억으로 미 폭격기 승무원들 30회 정도 임무 수행하면 귀국.)
      의무 복무 채운 상태에서 깁슨은 44년 다시 공군에 복귀. 모스키토 폭격기로 임무 수행중 독일 전투기와 교전하게 되었고, 충돌로 전사.
      당시 나이는 26세 중령 추서.
      (관련 댓글
      beefabob
      1년 전
      On 4 October 1943 Gibson began a tour of The United States and whilst in Washington DC., he attended a major Press Conference at the offices of the British Information Service in New York on 7 October. This was at a time when the first American airmen were coming home 'tour expired' after 25 operations. During questions one young lady asked, 'Wing Commander Gibson, how many operations have you been on over Germany?' He replied, 'One hundred and seventy-four.' There was a stunned silence" A truly great man.
      )
      영국공군 폭격기 사령부는 2차대전 중 약 36만5천회 출격, 약 100만톤 폭탄 투하, 폭격기 손실 약 8500대.
      투입 병력 약 12만5천 중, 전사 약 5만5천, 약 8천5백 부상, 약 1만명 포로 : 승무원 사망율은 약 45%에 달할 정도로 극도로 위험했습니다.
      독일의 폭격 피해 역시 막대해서, 폭격으로 사망 약 60만, 폭격에 대비하기 위한 독일의 방공포 병력 약 90만이었다고 합니다.
      독일 입장에서 2차대전 독일을 폭격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미국의 b-17이나 b-29가 아닌 랭커스터 폭격기.
      b-29는 종전 직전 태평양 전선에 투입되었기에 독일 폭격엔 사용되지 않았고, 거대한 b-17의 폭장량은 모스키토 폭격기와 비슷.
      랭카스터는 44년 이후엔 1발에 5톤, 10톤 하는 톨보이와 그랜드슬램으로 독일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랜드슬램은 너무 무거워
      투하하는 순간 랭커스터 폭격기 고도가 갑자기 위로 상승할 정도.
      랭커스터는 하마터면 히로시마 원폭을 투하할 뻔 했습니다.
      랭커스터의 폭탄창은 원폭을 별 다른 개조 없이 수용할 수 있었지만, 개발중이었던 b-29는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를 위한 개조 추가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미국과 영국은 개발 실패를 대비,
      영국 폭격기 사령부내 특수 임무 부대를 차출해 승무원들에게 임무를 밝히지 않고 (일본에 대한 초장거리) 폭격 훈련에 돌입.
      b-29 보다 일찍 나온 기종이라 고고도 성능과 항속거리에게 부족했던 랭커스터는 원폭 투하를 위해,
      공중급유를 포함한 훈련을 거쳤습니다. 이미 45년 당시에 대형 4발 폭격기가 공중급유를 받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군요.
      원폭을 탑재한 타이거 편대 출격은 동남아의 영국 공군기지 또는 태평양의 미군 기지였는데 랭커스터 항속거리 초과로 공중 급유 필수.
      원폭 투하 랭커스터 편대 이름은 타이거였습니다. 미국 입장에선 다행히도, 원폭 수용할 수 있는 개조가 성공해 타이거 편대는 임무 해제.
      (미국이 보유한 b-17, b-24 등은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 불가능. 새로 개발중인 b-29는 1개의 대형 폭탄창이 아닌, 2개의 폭탄창 구조라 원폭
      탑재 불가능, 기체 골격 자체를 변경해 폭탄창을 1개로 재설계해야 했는데 테스트 과정에서 몇 차례 실패했다고 하는군요. 히로시마 작전 투입
      직전에 폭탄창 개조가 완료. 영 랭커스터 폭격기는 폭탄창은 넉넉했지만, 항속거리 문제로 공중급유가 필요했는데 이미 1943년 이후 수백대의
      랭커스터기들이 급유기로 개조되었고, 실제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공중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내용 포함.)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3

      이 영상에서는 핵폭탄의 폭발 원리에 집중되어,
      제한된 방송 시간 때문에 2차대전 동안 핵무기 개발이 진행된 큰 흐름 과정이 생략되었습니다.
      디테일과 시야각은 상보적이며,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는 잃게 됩니다.
      그리고 왜 중성자가 핵분열을 일으키는 망치인지 언급 생략.
      핵무기 및 핵발전, 핵에너지의 실용화는 중성자 발견 이후에 비로소 가능해진 겁니다.
      그 중성자는 이미 1920년대 캐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의 최초 핵변환 통한 인공 원소변환 때 예측된.
      교과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기본 입자, 전자-원자핵-양성자-중성자 이 단계 까지 모든 입자는 영국에서 확증된.
      독일은 우수한 과학기술 역량에도 불구하고,
      대전초 전격전 깃발 날리던 때에는 핵무기 개발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대전 중반 이후 전황이 악화된 이후엔 핵무기 개발 여력 자체가 없어져 핵무기 개발 시도도 하지 못한.
      2차대전 초 미국은 풍부한 자원, 인구에
      독일-영국 대비 크게 쳐지지 않은 과학기술 확보한 상태였지만 사실상 멍 때렸던.
      만일 영국이 티저드 미션을 통해 핵심 과학기술과 핵임계질량 정보 넘겨주지 않았다면 자력으로만 해내기 쉽지 않았을 것.
      아이디어 자체가 있어야 시도, 시도 해봐야 될지 안될지 결정된다는 점에서. 미국 자체 아이디어는 많이 부족했던.
      2차대전 미국은 사실 운수대통.
      전쟁 진행 중 영국에게서 첨단 과학기술 제공받고, 독일 항복 이후 많은 최상급 독일 과학기술자 확보.
      그리고 2차대전 당시 미국 폭격기들은 적 전투기로 부터 자체 방어 위해,
      폭장량을 희생하면서 규모에 비해 적은 폭탄 탑재량으로 거대한 b-17이 영국 합판으로 만든 중형 모스키토와 비슷한 수준.
      그렇게 자체 방어 능력 강화했어도 호위 전투기 없을 때는 엄청난 피해 입었습니다.
      폭탄창이 대체로 영국 폭격기에 비해 작았고, 가장 거대했던 b-29도 폭탄창 2개라 원폭 탑재가 어려웠던.
      여기 영상에서 그 역시 간단 언급되었는데, 큰 1개 폭탄창으로 개조 실패 대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도 핵투하 훈련 실시.

  • @user-vy7dk2kf3b
    @user-vy7dk2kf3b 2 года назад +16

    채박사님 최고^^적절한 효과음 늘 감사하게 듣고 있습니다^^

  • @hongdonghwan1741
    @hongdonghwan1741 2 года назад +23

    컴퓨터와 커서의 어원!!! 진짜 대박이다!!
    채박사님 찐천재인듯 ㅋ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First Known Use of cursor
      1594, in the meaning defined above ---------------> 위에서 정의한 의미란, 위치를 지시하기 위해 움직이는 지시선.
      -----------------------------------> 전 부터 정확한 위치를 지시하는 도구에 붙은 이름이며, 계산자의 위치 지시선에도 그대로 사용된.
      커서 단어의 어원은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어에 이르고 달린다-흐른다 의미라고.
      -----------------------------------> 화폐 통화를 의미하는 커런시 및 암호화폐를 의미하는 크립토 커런시와 같은 어원.
      즉 계산자의 지시자로서 커서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 아닌.
      계산자의 원리는 로그를 이용해 곱셈-나눗셈을 지수의 덧셈-뺄셈으로 바꾸는 것.
      로그는 네이피어가 1600년대 초에 도입한 수학 연산 방식, 계산자는 로그가 도입된 이후에 만들어졌기에
      커서라는 단어는 계산자 등장 이전 이미 존재하던 단어.
      하지만 의미 자체는 동일합니다. 계산자에서도 좌우로 움직이며-내달리며-흐르며 위치 지시하기에.
      First Known Use of computer
      1613, in the meaning defined above
      ----------------------------------------> 어지간 해선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찾기 정말 어렵습니다.
      ----------------------------------------> 특히 발명품이나 새로운 제도 아닌 이름-호칭에선 거의 다 전에 이미 존재하던 단어 가능성 큰.
      merriam-webster 영영사전 온라인, 단어 검색하면, 친절하게 그 단어가 처음 사용된 년도 (추적할 수 있으면) 소개됩니다.

  • @user-gk8vc8nd5c
    @user-gk8vc8nd5c 2 года назад +21

    채박사님같은분이 친구면
    세상 궁금한거 없이 살겠어요

    • @user-mk6fv4jd4v
      @user-mk6fv4jd4v 2 года назад +4

      진짜 친구라면 물어볼게 너무너무 많음

  • @user-lb7ir3yt4k
    @user-lb7ir3yt4k 2 года назад +21

    설명을 쉽게 잘 하는 사람이 정말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정말 똑똑하고, 세심한 배려의 채박사님을 봅니다...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원폭 개발을 처음 시작한 것은 미국-독일 아닌 영국.
      독일 폭격을 피해 캐나다로 이전, 영국 단독으로 자원과 비용을 댈 수 없게 되자
      이미 진행중이던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하며 최종적으로 미-영-캐 공동 맨허튼 프로젝트.
      티저드 미션, 1940년 8월 경 프랑스 항복 및 영국 항공전 위기 속에서
      미국의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처칠이 헨리 티저드가 이끄는 영국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 2차대전 내내 지속.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제공된 과학기술 목록은
      핵임계질량-레이더-마그네트론-근접신관-제트엔진-소나-암호해독...페니실린 등.
      핵무기 개발이 실제 가능하다는 최초의 확증인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받은 이후 미국도 원폭 개발에 본격 참여.
      핵임계질량 수치가 전달된 초기, 정보를 받았던 미국은 무시했으나 호주 출신의 영국팀 올리펀트가 유력한 미국 과학자들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 경고하며 결국 미국측도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인식 전환.
      핵무기 개발 과정 정리하면
      1. 1932년 중성자 발견, 영 채드윅
      1920년대 원자핵 변환을 통해 최초 인공 원소 변환했던 영 러더포드, 원소 변환의 원인으로서 중성자 예측.
      중성자는 전하 0 + 전자 보다 훨씬 무거운 조건 때문에 원자핵의 강력한 양전하 반발을 극복하고 핵을 부수는 망치 역활.
      채드윅은 영-캐 팀 단장으로 맨허튼 프로젝트 참여.
      2. 1938년 원자핵 분열 발견, 독 오토한과 마이트너
      중성자가 핵을 부수는 망치 방아쇠 역활을 한다는 최초의 확인.
      3. 1940년 7월경 영국 핵무기 개발 검토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 1941년 7월 무렵 핵무기 가능하다는 모드 위원회 첫 보고서
      독일의 원자핵 분열 소식에 영국은 독일의 핵무기 생산 가능성 우려.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전황이 지극 불리했지만, 1940년 7월경 핵무기가 실제 가능한지 조사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1년 뒤인 1941년 7월경 모드 위원회의 첫 보고서에, 핵무기 생산은 가능하다는 결론. 영국 핵무기 프로젝트 튜브 앨로이 시작.
      4. 1941년 8월 티저드 미션으로 미국에 모드 위원회 보고서 제공. 미국이 비로서 핵무기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 파악.
      핵임계질량이 미국에 전달되었지만 정보 받은 전문가들은 무시, 호주 출신의 영국 핵무기 개발팀 과학자 올리펀트는 미국의 유력
      과학자들을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을 전달 결국 미국 과학계가 대통령에게 건의해 미국 역시 핵무기 개발 시작.
      5. 1942년 10월경, 미국이 핵개발에서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
      6. 1943년 8월 쾨벡에서 미영은 핵무기 프로그램 통합 결정 + 핵무기 정보 공유 비밀 협정 체결.
      7. 1944년 미영 하이드 파크 협정으로 핵정보 공유 확인.
      8. 1945년 7월 최초 원폭 실험 성공
      9. 1946년 8월 미국 맥마흔 법, 핵기술과 정보의 해외 유출 금지. 영국과의 핵협정 미국이 깨트림.
      미국이 영국과의 핵협정을 파기하자 영국은 전후 파산 상태에서 독자 핵개발 시작. 1952년 원폭, 1957년 수폭 실험 성공.
      최종 정리하면 2차대전 발발 당시 독일과 영국은 핵무기 개발 직전 동일 출발선.
      독일은 초기 전격전의 대성공으로 핵무기 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영국은 극한의 위기 속에서
      혹이나 독일이 핵무장 먼저 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만 했기에 가장 먼저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든. 미국은 티저드 미션으로
      영국이 제공한 핵임계질량 등의 정보를 접한 이후에 비로서 핵무기 개발에 나선. 하지만 결국 풍부한 미국의 자원과 인력 과학기술
      기반이 맨허튼 프로젝트 주도해 핵무기 완성.
      관련 링크 때문인지 글이 삭제되어 링크를 제외하고 올립니다.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이 영상에서는 핵폭탄의 폭발 원리에 집중되어,
      제한된 방송 시간 때문에 2차대전 동안 핵무기 개발이 진행된 큰 흐름 과정이 생략되었습니다.
      디테일과 시야각은 상보적이며,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는 잃게 됩니다.
      그리고 왜 중성자가 핵분열을 일으키는 망치인지 언급 생략.
      핵무기 및 핵발전, 핵에너지의 실용화는 중성자 발견 이후에 비로소 가능해진 겁니다.
      그 중성자는 이미 1920년대 캐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의 최초 핵변환 통한 인공 원소변환 때 예측된.
      교과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기본 입자, 전자-원자핵-양성자-중성자 이 단계 까지 모든 입자는 영국에서 확증된.
      독일은 우수한 과학기술 역량에도 불구하고,
      대전초 전격전 깃발 날리던 때에는 핵무기 개발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대전 중반 이후 전황이 악화된 이후엔 핵무기 개발 여력 자체가 없어져 핵무기 개발 시도도 하지 못한.
      2차대전 초 미국은 풍부한 자원, 인구에
      독일-영국 대비 크게 쳐지지 않은 과학기술 확보한 상태였지만 사실상 멍 때렸던.
      만일 영국이 티저드 미션을 통해 핵심 과학기술과 핵임계질량 정보 넘겨주지 않았다면 자력으로만 해내기 쉽지 않았을 것.
      아이디어 자체가 있어야 시도, 시도 해봐야 될지 안될지 결정된다는 점에서. 미국 자체 아이디어는 많이 부족했던.
      2차대전 미국은 사실 운수대통.
      전쟁 진행 중 영국에게서 첨단 과학기술 제공받고, 독일 항복 이후 많은 최상급 독일 과학기술자 확보.
      그리고 2차대전 당시 미국 폭격기들은 적 전투기로 부터 자체 방어 위해,
      폭장량을 희생하면서 규모에 비해 적은 폭탄 탑재량으로 거대한 b-17이 영국 합판으로 만든 중형 모스키토와 비슷한 수준.
      그렇게 자체 방어 능력 강화했어도 호위 전투기 없을 때는 엄청난 피해 입었습니다.
      폭탄창이 대체로 영국 폭격기에 비해 작았고, 가장 거대했던 b-29도 폭탄창 2개라 원폭 탑재가 어려웠던.
      여기 영상에서 그 역시 간단 언급되었는데, 큰 1개 폭탄창으로 개조 실패 대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도 핵투하 훈련 실시.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B-29 원폭 투하 임무 하마터면 랭커스터에게 빼았길뻔.
      b-29 아닌 랭커스터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훈련 : b-29 폭탄창 개조 혼선으로, 영공군 특임 부대 역시 원폭 투하 훈련.
      ruclips.net/video/5XX9ptCNpik/видео.html : Hiroshima 1945 - The British Atomic Attack
      B-29의 폭탄창은 2개로 커다란 원폭 수용 불가, 대형 폭탄창 1개로 개조 어려움 겪으며,
      만약을 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 폭격기 특수 임무 부대 차출해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 훈련도 함께 병행.
      랭커스터는 B-29 보다 짧았던 항속거리 때문에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원폭 투하 훈련을 했다고, 이미 43년 부터 수 백기의
      랭커스터가 공중급유기로 전환되었고,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실제 공중 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
      댐버스터 폭격대 이끌었던 가이 깁슨, 1944년 9월 모스키토 폭격기 임무 수행중 독 전투기와 교전 충돌 전사.
      ruclips.net/video/mx8uRwANfWU/видео.html : Dambusters - Guy Gibson Grave & Crash Site
      깁슨이 추락한 네덜란드 마을엔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그의 묘소가 있습니다.
      동영상의 댓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댐버스터 작전 성공 후 임무 해제되어 공군을 떠난 뒤 , 미국 방문했을 때 독일 상공으로의 작전 횟수
      얼마나 되냐는 질문. 깁슨의 답변은 174회였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폭격기 승무원들에게 부여된 의무로서의 작전 횟수를 몇 배 이상 초과했죠. (기억으로 미 폭격기 승무원들 30회 정도 임무 수행하면 귀국.)
      의무 복무 채운 상태에서 깁슨은 44년 다시 공군에 복귀. 모스키토 폭격기로 임무 수행중 독일 전투기와 교전하게 되었고, 충돌로 전사.
      당시 나이는 26세 중령 추서.
      (관련 댓글
      beefabob
      1년 전
      On 4 October 1943 Gibson began a tour of The United States and whilst in Washington DC., he attended a major Press Conference at the offices of the British Information Service in New York on 7 October. This was at a time when the first American airmen were coming home 'tour expired' after 25 operations. During questions one young lady asked, 'Wing Commander Gibson, how many operations have you been on over Germany?' He replied, 'One hundred and seventy-four.' There was a stunned silence" A truly great man.
      )
      영국공군 폭격기 사령부는 2차대전 중 약 36만5천회 출격, 약 100만톤 폭탄 투하, 폭격기 손실 약 8500대.
      투입 병력 약 12만5천 중, 전사 약 5만5천, 약 8천5백 부상, 약 1만명 포로 : 승무원 사망율은 약 45%에 달할 정도로 극도로 위험했습니다.
      독일의 폭격 피해 역시 막대해서, 폭격으로 사망 약 60만, 폭격에 대비하기 위한 독일의 방공포 병력 약 90만이었다고 합니다.
      독일 입장에서 2차대전 독일을 폭격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미국의 b-17이나 b-29가 아닌 랭커스터 폭격기.
      b-29는 종전 직전 태평양 전선에 투입되었기에 독일 폭격엔 사용되지 않았고, 거대한 b-17의 폭장량은 모스키토 폭격기와 비슷.
      랭카스터는 44년 이후엔 1발에 5톤, 10톤 하는 톨보이와 그랜드슬램으로 독일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랜드슬램은 너무 무거워
      투하하는 순간 랭커스터 폭격기 고도가 갑자기 위로 상승할 정도.
      랭커스터는 하마터면 히로시마 원폭을 투하할 뻔 했습니다.
      랭커스터의 폭탄창은 원폭을 별 다른 개조 없이 수용할 수 있었지만, 개발중이었던 b-29는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를 위한 개조 추가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미국과 영국은 개발 실패를 대비,
      영국 폭격기 사령부내 특수 임무 부대를 차출해 승무원들에게 임무를 밝히지 않고 (일본에 대한 초장거리) 폭격 훈련에 돌입.
      b-29 보다 일찍 나온 기종이라 고고도 성능과 항속거리에게 부족했던 랭커스터는 원폭 투하를 위해,
      공중급유를 포함한 훈련을 거쳤습니다. 이미 45년 당시에 대형 4발 폭격기가 공중급유를 받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군요.
      원폭을 탑재한 타이거 편대 출격은 동남아의 영국 공군기지 또는 태평양의 미군 기지였는데 랭커스터 항속거리 초과로 공중 급유 필수.
      원폭 투하 랭커스터 편대 이름은 타이거였습니다. 미국 입장에선 다행히도, 원폭 수용할 수 있는 개조가 성공해 타이거 편대는 임무 해제.
      (미국이 보유한 b-17, b-24 등은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 불가능. 새로 개발중인 b-29는 1개의 대형 폭탄창이 아닌, 2개의 폭탄창 구조라 원폭
      탑재 불가능, 기체 골격 자체를 변경해 폭탄창을 1개로 재설계해야 했는데 테스트 과정에서 몇 차례 실패했다고 하는군요. 히로시마 작전 투입
      직전에 폭탄창 개조가 완료. 영 랭커스터 폭격기는 폭탄창은 넉넉했지만, 항속거리 문제로 공중급유가 필요했는데 이미 1943년 이후 수백대의
      랭커스터기들이 급유기로 개조되었고, 실제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공중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내용 포함.)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First Known Use of cursor
      1594, in the meaning defined above ---------------> 위에서 정의한 의미란, 위치를 지시하기 위해 움직이는 지시선.
      -----------------------------------> 전 부터 정확한 위치를 지시하는 도구에 붙은 이름이며, 계산자의 위치 지시선에도 그대로 사용된.
      커서 단어의 어원은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어에 이르고 달린다-흐른다 의미라고.
      -----------------------------------> 화폐 통화를 의미하는 커런시 및 암호화폐를 의미하는 크립토 커런시와 같은 어원.
      즉 계산자의 지시자로서 커서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 아닌.
      계산자의 원리는 로그를 이용해 곱셈-나눗셈을 지수의 덧셈-뺄셈으로 바꾸는 것.
      로그는 네이피어가 1600년대 초에 도입한 수학 연산 방식, 계산자는 로그가 도입된 이후에 만들어졌기에
      커서라는 단어는 계산자 등장 이전 이미 존재하던 단어.
      하지만 의미 자체는 동일합니다. 계산자에서도 좌우로 움직이며-내달리며-흐르며 위치 지시하기에.
      First Known Use of computer
      1613, in the meaning defined above
      ----------------------------------------> 어지간 해선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찾기 정말 어렵습니다.
      ----------------------------------------> 특히 발명품이나 새로운 제도 아닌 이름-호칭에선 거의 다 전에 이미 존재하던 단어 가능성 큰.
      merriam-webster 영영사전 온라인, 단어 검색하면, 친절하게 그 단어가 처음 사용된 년도 (추적할 수 있으면) 소개됩니다.

  • @user-bluesky0230
    @user-bluesky0230 2 года назад +25

    정말 핵폭탄의 원리를 이렇게 쉽게 설명할수 있다니 너무 좋았습니다.

  • @user-kc2sb6hm2d
    @user-kc2sb6hm2d 2 года назад +26

    와~~~~이래서 이프로는 꼭 봐야된다구
    박사님 제가 여태 살아오면서 핵 분열 강의들중 단연 최고로 알아듣기 쉬웠습니다. 짱!!!

  • @user-zc8du8sx7i
    @user-zc8du8sx7i 2 года назад +16

    진짜 궁금햇던 이야기를 알려주셔서 이해하기 쉬웟어요.. 이렇게 공부하면 얼마나 재밋을까

  • @yataje3751
    @yataje3751 2 года назад +57

    그동안 핵폭탄 원리 알려주는데서는 죄다 "중성자를 쏘아 맞추면 된다" 라고만 했지 중성자를 어떻게 쏘는지는 하나도 설명 안해줬는데 이제 속이다 시원합니다
    그와중에 컴퓨터가 직업 이름이었다니.. ㅎㄷㄷ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1

      원폭 개발을 처음 시작한 것은 미국-독일 아닌 영국.
      독일 폭격을 피해 캐나다로 이전, 영국 단독으로 자원과 비용을 댈 수 없게 되자
      이미 진행중이던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하며 최종적으로 미-영-캐 공동 맨허튼 프로젝트.
      티저드 미션, 1940년 8월 경 프랑스 항복 및 영국 항공전 위기 속에서
      미국의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처칠이 헨리 티저드가 이끄는 영국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 2차대전 내내 지속.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제공된 과학기술 목록은
      핵임계질량-레이더-마그네트론-근접신관-제트엔진-소나-암호해독...페니실린 등.
      핵무기 개발이 실제 가능하다는 최초의 확증인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받은 이후 미국도 원폭 개발에 본격 참여.
      핵임계질량 수치가 전달된 초기, 정보를 받았던 미국은 무시했으나 호주 출신의 영국팀 올리펀트가 유력한 미국 과학자들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 경고하며 결국 미국측도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인식 전환.
      핵무기 개발 과정 정리하면
      1. 1932년 중성자 발견, 영 채드윅
      1920년대 원자핵 변환을 통해 최초 인공 원소 변환했던 영 러더포드, 원소 변환의 원인으로서 중성자 예측.
      중성자는 전하 0 + 전자 보다 훨씬 무거운 조건 때문에 원자핵의 강력한 양전하 반발을 극복하고 핵을 부수는 망치 역활.
      채드윅은 영-캐 팀 단장으로 맨허튼 프로젝트 참여.
      2. 1938년 원자핵 분열 발견, 독 오토한과 마이트너
      중성자가 핵을 부수는 망치 방아쇠 역활을 한다는 최초의 확인.
      3. 1940년 7월경 영국 핵무기 개발 검토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 1941년 7월 무렵 핵무기 가능하다는 모드 위원회 첫 보고서
      독일의 원자핵 분열 소식에 영국은 독일의 핵무기 생산 가능성 우려.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전황이 지극 불리했지만, 1940년 7월경 핵무기가 실제 가능한지 조사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1년 뒤인 1941년 7월경 모드 위원회의 첫 보고서에, 핵무기 생산은 가능하다는 결론. 영국 핵무기 프로젝트 튜브 앨로이 시작.
      4. 1941년 8월 티저드 미션으로 미국에 모드 위원회 보고서 제공. 미국이 비로서 핵무기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 파악.
      핵임계질량이 미국에 전달되었지만 정보 받은 전문가들은 무시, 호주 출신의 영국 핵무기 개발팀 과학자 올리펀트는 미국의 유력
      과학자들을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을 전달 결국 미국 과학계가 대통령에게 건의해 미국 역시 핵무기 개발 시작.
      5. 1942년 10월경, 미국이 핵개발에서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
      6. 1943년 8월 쾨벡에서 미영은 핵무기 프로그램 통합 결정 + 핵무기 정보 공유 비밀 협정 체결.
      7. 1944년 미영 하이드 파크 협정으로 핵정보 공유 확인.
      8. 1945년 7월 최초 원폭 실험 성공
      9. 1946년 8월 미국 맥마흔 법, 핵기술과 정보의 해외 유출 금지. 영국과의 핵협정 미국이 깨트림.
      미국이 영국과의 핵협정을 파기하자 영국은 전후 파산 상태에서 독자 핵개발 시작. 1952년 원폭, 1957년 수폭 실험 성공.
      최종 정리하면 2차대전 발발 당시 독일과 영국은 핵무기 개발 직전 동일 출발선.
      독일은 초기 전격전의 대성공으로 핵무기 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영국은 극한의 위기 속에서
      혹이나 독일이 핵무장 먼저 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만 했기에 가장 먼저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든. 미국은 티저드 미션으로
      영국이 제공한 핵임계질량 등의 정보를 접한 이후에 비로서 핵무기 개발에 나선. 하지만 결국 풍부한 미국의 자원과 인력 과학기술
      기반이 맨허튼 프로젝트 주도해 핵무기 완성.
      관련 링크 때문인지 글이 삭제되어 링크를 제외하고 올립니다.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B-29 원폭 투하 임무 하마터면 랭커스터에게 빼았길뻔.
      b-29 아닌 랭커스터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훈련 : b-29 폭탄창 개조 혼선으로, 영공군 특임 부대 역시 원폭 투하 훈련.
      ruclips.net/video/5XX9ptCNpik/видео.html : Hiroshima 1945 - The British Atomic Attack
      B-29의 폭탄창은 2개로 커다란 원폭 수용 불가, 대형 폭탄창 1개로 개조 어려움 겪으며,
      만약을 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 폭격기 특수 임무 부대 차출해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 훈련도 함께 병행.
      랭커스터는 B-29 보다 짧았던 항속거리 때문에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원폭 투하 훈련을 했다고, 이미 43년 부터 수 백기의
      랭커스터가 공중급유기로 전환되었고,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실제 공중 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
      댐버스터 폭격대 이끌었던 가이 깁슨, 1944년 9월 모스키토 폭격기 임무 수행중 독 전투기와 교전 충돌 전사.
      ruclips.net/video/mx8uRwANfWU/видео.html : Dambusters - Guy Gibson Grave & Crash Site
      깁슨이 추락한 네덜란드 마을엔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그의 묘소가 있습니다.
      동영상의 댓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댐버스터 작전 성공 후 임무 해제되어 공군을 떠난 뒤 , 미국 방문했을 때 독일 상공으로의 작전 횟수
      얼마나 되냐는 질문. 깁슨의 답변은 174회였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폭격기 승무원들에게 부여된 의무로서의 작전 횟수를 몇 배 이상 초과했죠. (기억으로 미 폭격기 승무원들 30회 정도 임무 수행하면 귀국.)
      의무 복무 채운 상태에서 깁슨은 44년 다시 공군에 복귀. 모스키토 폭격기로 임무 수행중 독일 전투기와 교전하게 되었고, 충돌로 전사.
      당시 나이는 26세 중령 추서.
      (관련 댓글
      beefabob
      1년 전
      On 4 October 1943 Gibson began a tour of The United States and whilst in Washington DC., he attended a major Press Conference at the offices of the British Information Service in New York on 7 October. This was at a time when the first American airmen were coming home 'tour expired' after 25 operations. During questions one young lady asked, 'Wing Commander Gibson, how many operations have you been on over Germany?' He replied, 'One hundred and seventy-four.' There was a stunned silence" A truly great man.
      )
      영국공군 폭격기 사령부는 2차대전 중 약 36만5천회 출격, 약 100만톤 폭탄 투하, 폭격기 손실 약 8500대.
      투입 병력 약 12만5천 중, 전사 약 5만5천, 약 8천5백 부상, 약 1만명 포로 : 승무원 사망율은 약 45%에 달할 정도로 극도로 위험했습니다.
      독일의 폭격 피해 역시 막대해서, 폭격으로 사망 약 60만, 폭격에 대비하기 위한 독일의 방공포 병력 약 90만이었다고 합니다.
      독일 입장에서 2차대전 독일을 폭격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미국의 b-17이나 b-29가 아닌 랭커스터 폭격기.
      b-29는 종전 직전 태평양 전선에 투입되었기에 독일 폭격엔 사용되지 않았고, 거대한 b-17의 폭장량은 모스키토 폭격기와 비슷.
      랭카스터는 44년 이후엔 1발에 5톤, 10톤 하는 톨보이와 그랜드슬램으로 독일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랜드슬램은 너무 무거워
      투하하는 순간 랭커스터 폭격기 고도가 갑자기 위로 상승할 정도.
      랭커스터는 하마터면 히로시마 원폭을 투하할 뻔 했습니다.
      랭커스터의 폭탄창은 원폭을 별 다른 개조 없이 수용할 수 있었지만, 개발중이었던 b-29는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를 위한 개조 추가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미국과 영국은 개발 실패를 대비,
      영국 폭격기 사령부내 특수 임무 부대를 차출해 승무원들에게 임무를 밝히지 않고 (일본에 대한 초장거리) 폭격 훈련에 돌입.
      b-29 보다 일찍 나온 기종이라 고고도 성능과 항속거리에게 부족했던 랭커스터는 원폭 투하를 위해,
      공중급유를 포함한 훈련을 거쳤습니다. 이미 45년 당시에 대형 4발 폭격기가 공중급유를 받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군요.
      원폭을 탑재한 타이거 편대 출격은 동남아의 영국 공군기지 또는 태평양의 미군 기지였는데 랭커스터 항속거리 초과로 공중 급유 필수.
      원폭 투하 랭커스터 편대 이름은 타이거였습니다. 미국 입장에선 다행히도, 원폭 수용할 수 있는 개조가 성공해 타이거 편대는 임무 해제.
      (미국이 보유한 b-17, b-24 등은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 불가능. 새로 개발중인 b-29는 1개의 대형 폭탄창이 아닌, 2개의 폭탄창 구조라 원폭
      탑재 불가능, 기체 골격 자체를 변경해 폭탄창을 1개로 재설계해야 했는데 테스트 과정에서 몇 차례 실패했다고 하는군요. 히로시마 작전 투입
      직전에 폭탄창 개조가 완료. 영 랭커스터 폭격기는 폭탄창은 넉넉했지만, 항속거리 문제로 공중급유가 필요했는데 이미 1943년 이후 수백대의
      랭커스터기들이 급유기로 개조되었고, 실제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공중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내용 포함.)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1

      이 영상에서는 핵폭탄의 폭발 원리에 집중되어,
      제한된 방송 시간 때문에 2차대전 동안 핵무기 개발이 진행된 큰 흐름 과정이 생략되었습니다.
      디테일과 시야각은 상보적이며,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는 잃게 됩니다.
      그리고 왜 중성자가 핵분열을 일으키는 망치인지 언급 생략.
      핵무기 및 핵발전, 핵에너지의 실용화는 중성자 발견 이후에 비로소 가능해진 겁니다.
      그 중성자는 이미 1920년대 캐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의 최초 핵변환 통한 인공 원소변환 때 예측된.
      교과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기본 입자, 전자-원자핵-양성자-중성자 이 단계 까지 모든 입자는 영국에서 확증된.
      독일은 우수한 과학기술 역량에도 불구하고,
      대전초 전격전 깃발 날리던 때에는 핵무기 개발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대전 중반 이후 전황이 악화된 이후엔 핵무기 개발 여력 자체가 없어져 핵무기 개발 시도도 하지 못한.
      2차대전 초 미국은 풍부한 자원, 인구에
      독일-영국 대비 크게 쳐지지 않은 과학기술 확보한 상태였지만 사실상 멍 때렸던.
      만일 영국이 티저드 미션을 통해 핵심 과학기술과 핵임계질량 정보 넘겨주지 않았다면 자력으로만 해내기 쉽지 않았을 것.
      아이디어 자체가 있어야 시도, 시도 해봐야 될지 안될지 결정된다는 점에서. 미국 자체 아이디어는 많이 부족했던.
      2차대전 미국은 사실 운수대통.
      전쟁 진행 중 영국에게서 첨단 과학기술 제공받고, 독일 항복 이후 많은 최상급 독일 과학기술자 확보.
      그리고 2차대전 당시 미국 폭격기들은 적 전투기로 부터 자체 방어 위해,
      폭장량을 희생하면서 규모에 비해 적은 폭탄 탑재량으로 거대한 b-17이 영국 합판으로 만든 중형 모스키토와 비슷한 수준.
      그렇게 자체 방어 능력 강화했어도 호위 전투기 없을 때는 엄청난 피해 입었습니다.
      폭탄창이 대체로 영국 폭격기에 비해 작았고, 가장 거대했던 b-29도 폭탄창 2개라 원폭 탑재가 어려웠던.
      여기 영상에서 그 역시 간단 언급되었는데, 큰 1개 폭탄창으로 개조 실패 대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도 핵투하 훈련 실시.

    • @yataje3751
      @yataje3751 2 года назад +4

      @@scz8333 정보의 양이 어마어마 하시군요
      덧글만 달고 끝낼것이 아니라 채널 하나 만드셔서 전문 채널 운영해보세요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First Known Use of cursor
      1594, in the meaning defined above ---------------> 위에서 정의한 의미란, 위치를 지시하기 위해 움직이는 지시선.
      -----------------------------------> 전 부터 정확한 위치를 지시하는 도구에 붙은 이름이며, 계산자의 위치 지시선에도 그대로 사용된.
      커서 단어의 어원은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어에 이르고 달린다-흐른다 의미라고.
      -----------------------------------> 화폐 통화를 의미하는 커런시 및 암호화폐를 의미하는 크립토 커런시와 같은 어원.
      즉 계산자의 지시자로서 커서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 아닌.
      계산자의 원리는 로그를 이용해 곱셈-나눗셈을 지수의 덧셈-뺄셈으로 바꾸는 것.
      로그는 네이피어가 1600년대 초에 도입한 수학 연산 방식, 계산자는 로그가 도입된 이후에 만들어졌기에
      커서라는 단어는 계산자 등장 이전 이미 존재하던 단어.
      하지만 의미 자체는 동일합니다. 계산자에서도 좌우로 움직이며-내달리며-흐르며 위치 지시하기에.
      First Known Use of computer
      1613, in the meaning defined above
      ----------------------------------------> 어지간 해선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찾기 정말 어렵습니다.
      ----------------------------------------> 특히 발명품이나 새로운 제도 아닌 이름-호칭에선 거의 다 전에 이미 존재하던 단어 가능성 큰.
      merriam-webster 영영사전 온라인, 단어 검색하면, 친절하게 그 단어가 처음 사용된 년도 (추적할 수 있으면) 소개됩니다.

  • @sputnik-pq6lh
    @sputnik-pq6lh 2 года назад +101

    와 진짜, 퀄리티랑 재미가 장난이 아니네요... 어려운건 쉽게, 쉬운건 재밌게 설명하라고 하는데, 채박사님 완전 대단하십니다....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1

      원폭 개발을 처음 시작한 것은 미국-독일 아닌 영국.
      독일 폭격을 피해 캐나다로 이전, 영국 단독으로 자원과 비용을 댈 수 없게 되자
      이미 진행중이던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하며 최종적으로 미-영-캐 공동 맨허튼 프로젝트.
      티저드 미션, 1940년 8월 경 프랑스 항복 및 영국 항공전 위기 속에서
      미국의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처칠이 헨리 티저드가 이끄는 영국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 2차대전 내내 지속.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제공된 과학기술 목록은
      핵임계질량-레이더-마그네트론-근접신관-제트엔진-소나-암호해독...페니실린 등.
      핵무기 개발이 실제 가능하다는 최초의 확증인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받은 이후 미국도 원폭 개발에 본격 참여.
      핵임계질량 수치가 전달된 초기, 정보를 받았던 미국은 무시했으나 호주 출신의 영국팀 올리펀트가 유력한 미국 과학자들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 경고하며 결국 미국측도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인식 전환.
      핵무기 개발 과정 정리하면
      1. 1932년 중성자 발견, 영 채드윅
      1920년대 원자핵 변환을 통해 최초 인공 원소 변환했던 영 러더포드, 원소 변환의 원인으로서 중성자 예측.
      중성자는 전하 0 + 전자 보다 훨씬 무거운 조건 때문에 원자핵의 강력한 양전하 반발을 극복하고 핵을 부수는 망치 역활.
      채드윅은 영-캐 팀 단장으로 맨허튼 프로젝트 참여.
      2. 1938년 원자핵 분열 발견, 독 오토한과 마이트너
      중성자가 핵을 부수는 망치 방아쇠 역활을 한다는 최초의 확인.
      3. 1940년 7월경 영국 핵무기 개발 검토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 1941년 7월 무렵 핵무기 가능하다는 모드 위원회 첫 보고서
      독일의 원자핵 분열 소식에 영국은 독일의 핵무기 생산 가능성 우려.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전황이 지극 불리했지만, 1940년 7월경 핵무기가 실제 가능한지 조사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1년 뒤인 1941년 7월경 모드 위원회의 첫 보고서에, 핵무기 생산은 가능하다는 결론. 영국 핵무기 프로젝트 튜브 앨로이 시작.
      4. 1941년 8월 티저드 미션으로 미국에 모드 위원회 보고서 제공. 미국이 비로서 핵무기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 파악.
      핵임계질량이 미국에 전달되었지만 정보 받은 전문가들은 무시, 호주 출신의 영국 핵무기 개발팀 과학자 올리펀트는 미국의 유력
      과학자들을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을 전달 결국 미국 과학계가 대통령에게 건의해 미국 역시 핵무기 개발 시작.
      5. 1942년 10월경, 미국이 핵개발에서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
      6. 1943년 8월 쾨벡에서 미영은 핵무기 프로그램 통합 결정 + 핵무기 정보 공유 비밀 협정 체결.
      7. 1944년 미영 하이드 파크 협정으로 핵정보 공유 확인.
      8. 1945년 7월 최초 원폭 실험 성공
      9. 1946년 8월 미국 맥마흔 법, 핵기술과 정보의 해외 유출 금지. 영국과의 핵협정 미국이 깨트림.
      미국이 영국과의 핵협정을 파기하자 영국은 전후 파산 상태에서 독자 핵개발 시작. 1952년 원폭, 1957년 수폭 실험 성공.
      최종 정리하면 2차대전 발발 당시 독일과 영국은 핵무기 개발 직전 동일 출발선.
      독일은 초기 전격전의 대성공으로 핵무기 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영국은 극한의 위기 속에서
      혹이나 독일이 핵무장 먼저 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만 했기에 가장 먼저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든. 미국은 티저드 미션으로
      영국이 제공한 핵임계질량 등의 정보를 접한 이후에 비로서 핵무기 개발에 나선. 하지만 결국 풍부한 미국의 자원과 인력 과학기술
      기반이 맨허튼 프로젝트 주도해 핵무기 완성.
      관련 링크 때문인지 글이 삭제되어 링크를 제외하고 올립니다.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B-29 원폭 투하 임무 하마터면 랭커스터에게 빼았길뻔.
      b-29 아닌 랭커스터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훈련 : b-29 폭탄창 개조 혼선으로, 영공군 특임 부대 역시 원폭 투하 훈련.
      ruclips.net/video/5XX9ptCNpik/видео.html : Hiroshima 1945 - The British Atomic Attack
      B-29의 폭탄창은 2개로 커다란 원폭 수용 불가, 대형 폭탄창 1개로 개조 어려움 겪으며,
      만약을 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 폭격기 특수 임무 부대 차출해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 훈련도 함께 병행.
      랭커스터는 B-29 보다 짧았던 항속거리 때문에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원폭 투하 훈련을 했다고, 이미 43년 부터 수 백기의
      랭커스터가 공중급유기로 전환되었고,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실제 공중 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
      댐버스터 폭격대 이끌었던 가이 깁슨, 1944년 9월 모스키토 폭격기 임무 수행중 독 전투기와 교전 충돌 전사.
      ruclips.net/video/mx8uRwANfWU/видео.html : Dambusters - Guy Gibson Grave & Crash Site
      깁슨이 추락한 네덜란드 마을엔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그의 묘소가 있습니다.
      동영상의 댓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댐버스터 작전 성공 후 임무 해제되어 공군을 떠난 뒤 , 미국 방문했을 때 독일 상공으로의 작전 횟수
      얼마나 되냐는 질문. 깁슨의 답변은 174회였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폭격기 승무원들에게 부여된 의무로서의 작전 횟수를 몇 배 이상 초과했죠. (기억으로 미 폭격기 승무원들 30회 정도 임무 수행하면 귀국.)
      의무 복무 채운 상태에서 깁슨은 44년 다시 공군에 복귀. 모스키토 폭격기로 임무 수행중 독일 전투기와 교전하게 되었고, 충돌로 전사.
      당시 나이는 26세 중령 추서.
      (관련 댓글
      beefabob
      1년 전
      On 4 October 1943 Gibson began a tour of The United States and whilst in Washington DC., he attended a major Press Conference at the offices of the British Information Service in New York on 7 October. This was at a time when the first American airmen were coming home 'tour expired' after 25 operations. During questions one young lady asked, 'Wing Commander Gibson, how many operations have you been on over Germany?' He replied, 'One hundred and seventy-four.' There was a stunned silence" A truly great man.
      )
      영국공군 폭격기 사령부는 2차대전 중 약 36만5천회 출격, 약 100만톤 폭탄 투하, 폭격기 손실 약 8500대.
      투입 병력 약 12만5천 중, 전사 약 5만5천, 약 8천5백 부상, 약 1만명 포로 : 승무원 사망율은 약 45%에 달할 정도로 극도로 위험했습니다.
      독일의 폭격 피해 역시 막대해서, 폭격으로 사망 약 60만, 폭격에 대비하기 위한 독일의 방공포 병력 약 90만이었다고 합니다.
      독일 입장에서 2차대전 독일을 폭격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미국의 b-17이나 b-29가 아닌 랭커스터 폭격기.
      b-29는 종전 직전 태평양 전선에 투입되었기에 독일 폭격엔 사용되지 않았고, 거대한 b-17의 폭장량은 모스키토 폭격기와 비슷.
      랭카스터는 44년 이후엔 1발에 5톤, 10톤 하는 톨보이와 그랜드슬램으로 독일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랜드슬램은 너무 무거워
      투하하는 순간 랭커스터 폭격기 고도가 갑자기 위로 상승할 정도.
      랭커스터는 하마터면 히로시마 원폭을 투하할 뻔 했습니다.
      랭커스터의 폭탄창은 원폭을 별 다른 개조 없이 수용할 수 있었지만, 개발중이었던 b-29는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를 위한 개조 추가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미국과 영국은 개발 실패를 대비,
      영국 폭격기 사령부내 특수 임무 부대를 차출해 승무원들에게 임무를 밝히지 않고 (일본에 대한 초장거리) 폭격 훈련에 돌입.
      b-29 보다 일찍 나온 기종이라 고고도 성능과 항속거리에게 부족했던 랭커스터는 원폭 투하를 위해,
      공중급유를 포함한 훈련을 거쳤습니다. 이미 45년 당시에 대형 4발 폭격기가 공중급유를 받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군요.
      원폭을 탑재한 타이거 편대 출격은 동남아의 영국 공군기지 또는 태평양의 미군 기지였는데 랭커스터 항속거리 초과로 공중 급유 필수.
      원폭 투하 랭커스터 편대 이름은 타이거였습니다. 미국 입장에선 다행히도, 원폭 수용할 수 있는 개조가 성공해 타이거 편대는 임무 해제.
      (미국이 보유한 b-17, b-24 등은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 불가능. 새로 개발중인 b-29는 1개의 대형 폭탄창이 아닌, 2개의 폭탄창 구조라 원폭
      탑재 불가능, 기체 골격 자체를 변경해 폭탄창을 1개로 재설계해야 했는데 테스트 과정에서 몇 차례 실패했다고 하는군요. 히로시마 작전 투입
      직전에 폭탄창 개조가 완료. 영 랭커스터 폭격기는 폭탄창은 넉넉했지만, 항속거리 문제로 공중급유가 필요했는데 이미 1943년 이후 수백대의
      랭커스터기들이 급유기로 개조되었고, 실제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공중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내용 포함.)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1

      이 영상에서는 핵폭탄의 폭발 원리에 집중되어,
      제한된 방송 시간 때문에 2차대전 동안 핵무기 개발이 진행된 큰 흐름 과정이 생략되었습니다.
      디테일과 시야각은 상보적이며,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는 잃게 됩니다.
      그리고 왜 중성자가 핵분열을 일으키는 망치인지 언급 생략.
      핵무기 및 핵발전, 핵에너지의 실용화는 중성자 발견 이후에 비로소 가능해진 겁니다.
      그 중성자는 이미 1920년대 캐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의 최초 핵변환 통한 인공 원소변환 때 예측된.
      교과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기본 입자, 전자-원자핵-양성자-중성자 이 단계 까지 모든 입자는 영국에서 확증된.
      독일은 우수한 과학기술 역량에도 불구하고,
      대전초 전격전 깃발 날리던 때에는 핵무기 개발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대전 중반 이후 전황이 악화된 이후엔 핵무기 개발 여력 자체가 없어져 핵무기 개발 시도도 하지 못한.
      2차대전 초 미국은 풍부한 자원, 인구에
      독일-영국 대비 크게 쳐지지 않은 과학기술 확보한 상태였지만 사실상 멍 때렸던.
      만일 영국이 티저드 미션을 통해 핵심 과학기술과 핵임계질량 정보 넘겨주지 않았다면 자력으로만 해내기 쉽지 않았을 것.
      아이디어 자체가 있어야 시도, 시도 해봐야 될지 안될지 결정된다는 점에서. 미국 자체 아이디어는 많이 부족했던.
      2차대전 미국은 사실 운수대통.
      전쟁 진행 중 영국에게서 첨단 과학기술 제공받고, 독일 항복 이후 많은 최상급 독일 과학기술자 확보.
      그리고 2차대전 당시 미국 폭격기들은 적 전투기로 부터 자체 방어 위해,
      폭장량을 희생하면서 규모에 비해 적은 폭탄 탑재량으로 거대한 b-17이 영국 합판으로 만든 중형 모스키토와 비슷한 수준.
      그렇게 자체 방어 능력 강화했어도 호위 전투기 없을 때는 엄청난 피해 입었습니다.
      폭탄창이 대체로 영국 폭격기에 비해 작았고, 가장 거대했던 b-29도 폭탄창 2개라 원폭 탑재가 어려웠던.
      여기 영상에서 그 역시 간단 언급되었는데, 큰 1개 폭탄창으로 개조 실패 대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도 핵투하 훈련 실시.

    • @usnova1
      @usnova1 2 года назад +7

      @@scz8333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겠지만 적절한 댓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곳 다른 댓글에도 같은 이야기를 적으셨던데, 아마 채박사님의 설명에 인상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시대순으로 나열하는 것은 위키피디아나 나무위키만 봐도 아는 이야깁니다만, 지금 전공자가 보기에도 채박사님의 설명은 정말 적절합니다. 다음 시간에 아마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의 진행에 대해 설명을 해줄 것 같습니다.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usnova1
      스푸트니크1953님 의견에 2가지 조건이 더 추가되면 훨씬 완벽해집니다.
      추가 조건1 -----------------> 필수 요소는 반드시 포함, 추가 조건2 --------------------> 제약 때문에 선택할 때는 우선 순위 정해야
      2차대전 핵무기 특집 프로그램이 갖춰야 할 필수 요소 찾아본다면,
      1. 핵에너지를 인간이 활용하게 된 과학적 계기는? 즉 중성자는 왜 핵분열 망치 방아쇠가 되었나?
      2. 2차대전 상황에서 핵무기가 실용화될 여건이었나? 즉 핵임계질량이 폭격기 탑재 가능한 핵폭탄 제조 가능 수준인가?
      3. 왜 비슷한 역량을 가진 국가들 사이에서 핵무기 개발 나선 쪽과 나서지 않은 쪽으로 나뉘었는가?
      4. 핵무기 개발 사실상 멍 때리던 미국이 어떻게 핵개발을 주도하게 되었나? 즉 핵무기 개발의 큰 흐름?
      1번 ------------------> 중성자 예측과 발견, 실제 원자핵 분열 발견, 중성자가 방아쇠가 된 원인 소개 ---------------> 2~3분이면 충분.
      2번 ------------------> 임계질량 계산 과정 불필요, 언제 어디서 최초 임계질량 구했는지 간단 소개 ----------------> 1~2분이면 충분.
      3번 ------------------> 영국-독일 전쟁 초기 상황 및 미국 설명---------------------------------------------------------------------------> 2~3분이면 충분.
      4번 ------------------> 영국이 미국에 임계질량 제공 후 미국이 주도하게 되는, 2차대전 핵개발 큰 흐름 ----------------------> 5분 이내.
      실질적으로 가장 결정적 요소는 2번입니다.
      만일 임계질량 계산값이 핵물질 질량 10톤으로 나왔다면 --------------------> 2차대전 당시 상황에서 실용화 불가능.
      그럴 경우 그 어떤 나라도 긴급한 전시 상황에서 핵무기 개발에 자원과 비용 투입하지 않습니다.
      즉 핵임계질량 수치가 핵무기 개발 정치적 결단의 열쇠.
      영국은 임계질량을 계산했고, 나머진 멍 때렸습니다.
      그들 사이의 과학 기술적 격차는 사실상 없었거나 크지 않았지만, 전쟁 속 위기 체감이 달랐기에 대응도 달랐던 것.
      전쟁에 패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핵무장 실현 가능성을 검토하도록 했기에, 핵무기의 과학기술 그 자체 보다 더 결정적 요인.
      영국이 최초로 구한 임계질량은 10~20kg 정도였을 것.
      저 상태에서도 실제 핵폭탄 전체 무게와 크기는 거대한 b-29 폭탄창 개조해 겨우 탑재 가능.
      임계질량 수치를 확인하는 것은 핵무기 개발의 기본 중의 기본 첫 걸음. 따라서 그 첫걸음은 반드시 포함해야.
      과학기술 위주는 1번-2번 단계이며, 3번-4번은 정치적 결단이 핵심입니다.
      2번 단계도 정치적 결단이 포함됩니다. 독일은 임계질량 확인 할 충분한 능력 있었지만 확인할 의지가 없었던.
      영상 1편에 저런 필수 요소를 다 포함한 이후,
      남는 시간 내에서 다룰 수 있을 정도의 디테일로 핵무기 설계 등을 다루어야 합리적.
      여기 영상을 저런 기준으로 비추어 본다면,
      1번은 사실상 건너 뛰었으며, 단지 중성자로 핵을 부순다는 사실 만을 언급.
      2번-3번-4번은 실질적으론 아무 언급 되지 않았고, 세부 사항 묘사하다 계산자와 타자식-기계식컴퓨터 등에 시간 배정된.
      디테일의 함정, 세부 사항에 집중하다 핵심 내용과 전체적 흐름을 놓치는.
      그리고 4번은 형식적으로 시대순 나열이 될 것.
      하지만 소항목 연도-월 표기 + 그 항목에 간단한 소제목 -----------------> 으로 구성된 도표 1~2장을 통해 소개하면
      짧은 시간에 커버 가능. 여러 사안들이 최종 정리된 짧은 시대순 나열은 위력적 정보 축약이기도 합니다, 무시할 수 없는.
      미국 영국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가 함께 통합된 일목요연한 자료 찾기 힘들고, 여기 저기 항목별로 흩어져 있어 정리도 필요.
      핵심과 흐름 사실상 다 생략된 상태에서,
      핵무기 설계 세부 디테일 위주 특집 방송 마감 이후 다음 편에서 다시 저런 요소 추가하더라도,
      선후 관계가 완전 뒤집힌 편성이기에 합리적 제작이라고 보기 어려운 땜질과 같은 성격을 가지게 될 겁니다.

  • @user-pn5hj8np5b
    @user-pn5hj8np5b 2 года назад +12

    채박사님 최고다.. 설명도 잘하시고

  • @user-jn9gg1eh3t
    @user-jn9gg1eh3t 2 года назад +11

    ㅈㄴ 유익해 솔직히 같은 전쟁사 여기저기 반복하니 우짜지 했는데 컨셉 개잘잡은듯

  • @ChunkiHong
    @ChunkiHong 2 года назад +8

    오늘은 정말 유익한 방송이였습니다. 굿 퀄리티~

  • @PsychoWatchDog
    @PsychoWatchDog 2 года назад +9

    OGN 시절부터 토전사 역전다방까지 보면
    허준 MC는 ㄹㅇ 천재임.

  • @zacharypark4268
    @zacharypark4268 2 года назад +135

    지릴거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더 재밌고 유익해서 더 지려버렸네요...
    축축하네요ㅋㅋ
    원자탄 원리 진심 너무 재밌어요...컴퓨터의 어원이 계산원인거도!
    10년 더 방영했으면 좋겠습니다...
    심소령님 심소장 될때까지만!

    • @zacharypark4268
      @zacharypark4268 2 года назад +11

      폭탄 이름이 홀쭉이 뚱땡이 꼬맹이인게 웃기네요 ㅋㅋ 영어로 알고 있을땐 이런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ㅋㅋㅋ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4

      원폭 개발을 처음 시작한 것은 미국-독일 아닌 영국.
      독일 폭격을 피해 캐나다로 이전, 영국 단독으로 자원과 비용을 댈 수 없게 되자
      이미 진행중이던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하며 최종적으로 미-영-캐 공동 맨허튼 프로젝트.
      티저드 미션, 1940년 8월 경 프랑스 항복 및 영국 항공전 위기 속에서
      미국의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처칠이 헨리 티저드가 이끄는 영국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 2차대전 내내 지속.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제공된 과학기술 목록은
      핵임계질량-레이더-마그네트론-근접신관-제트엔진-소나-암호해독...페니실린 등.
      핵무기 개발이 실제 가능하다는 최초의 확증인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받은 이후 미국도 원폭 개발에 본격 참여.
      핵임계질량 수치가 전달된 초기, 정보를 받았던 미국은 무시했으나 호주 출신의 영국팀 올리펀트가 유력한 미국 과학자들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 경고하며 결국 미국측도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인식 전환.
      핵무기 개발 과정 정리하면
      1. 1932년 중성자 발견, 영 채드윅
      1920년대 원자핵 변환을 통해 최초 인공 원소 변환했던 영 러더포드, 원소 변환의 원인으로서 중성자 예측.
      중성자는 전하 0 + 전자 보다 훨씬 무거운 조건 때문에 원자핵의 강력한 양전하 반발을 극복하고 핵을 부수는 망치 역활.
      채드윅은 영-캐 팀 단장으로 맨허튼 프로젝트 참여.
      2. 1938년 원자핵 분열 발견, 독 오토한과 마이트너
      중성자가 핵을 부수는 망치 방아쇠 역활을 한다는 최초의 확인.
      3. 1940년 7월경 영국 핵무기 개발 검토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 1941년 7월 무렵 핵무기 가능하다는 모드 위원회 첫 보고서
      독일의 원자핵 분열 소식에 영국은 독일의 핵무기 생산 가능성 우려.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전황이 지극 불리했지만, 1940년 7월경 핵무기가 실제 가능한지 조사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1년 뒤인 1941년 7월경 모드 위원회의 첫 보고서에, 핵무기 생산은 가능하다는 결론. 영국 핵무기 프로젝트 튜브 앨로이 시작.
      4. 1941년 8월 티저드 미션으로 미국에 모드 위원회 보고서 제공. 미국이 비로서 핵무기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 파악.
      핵임계질량이 미국에 전달되었지만 정보 받은 전문가들은 무시, 호주 출신의 영국 핵무기 개발팀 과학자 올리펀트는 미국의 유력
      과학자들을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을 전달 결국 미국 과학계가 대통령에게 건의해 미국 역시 핵무기 개발 시작.
      5. 1942년 10월경, 미국이 핵개발에서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
      6. 1943년 8월 쾨벡에서 미영은 핵무기 프로그램 통합 결정 + 핵무기 정보 공유 비밀 협정 체결.
      7. 1944년 미영 하이드 파크 협정으로 핵정보 공유 확인.
      8. 1945년 7월 최초 원폭 실험 성공
      9. 1946년 8월 미국 맥마흔 법, 핵기술과 정보의 해외 유출 금지. 영국과의 핵협정 미국이 깨트림.
      미국이 영국과의 핵협정을 파기하자 영국은 전후 파산 상태에서 독자 핵개발 시작. 1952년 원폭, 1957년 수폭 실험 성공.
      최종 정리하면 2차대전 발발 당시 독일과 영국은 핵무기 개발 직전 동일 출발선.
      독일은 초기 전격전의 대성공으로 핵무기 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영국은 극한의 위기 속에서
      혹이나 독일이 핵무장 먼저 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만 했기에 가장 먼저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든. 미국은 티저드 미션으로
      영국이 제공한 핵임계질량 등의 정보를 접한 이후에 비로서 핵무기 개발에 나선. 하지만 결국 풍부한 미국의 자원과 인력 과학기술
      기반이 맨허튼 프로젝트 주도해 핵무기 완성.
      관련 링크 때문인지 글이 삭제되어 링크를 제외하고 올립니다.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B-29 원폭 투하 임무 하마터면 랭커스터에게 빼았길뻔.
      b-29 아닌 랭커스터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훈련 : b-29 폭탄창 개조 혼선으로, 영공군 특임 부대 역시 원폭 투하 훈련.
      ruclips.net/video/5XX9ptCNpik/видео.html : Hiroshima 1945 - The British Atomic Attack
      B-29의 폭탄창은 2개로 커다란 원폭 수용 불가, 대형 폭탄창 1개로 개조 어려움 겪으며,
      만약을 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 폭격기 특수 임무 부대 차출해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 훈련도 함께 병행.
      랭커스터는 B-29 보다 짧았던 항속거리 때문에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원폭 투하 훈련을 했다고, 이미 43년 부터 수 백기의
      랭커스터가 공중급유기로 전환되었고,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실제 공중 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
      댐버스터 폭격대 이끌었던 가이 깁슨, 1944년 9월 모스키토 폭격기 임무 수행중 독 전투기와 교전 충돌 전사.
      ruclips.net/video/mx8uRwANfWU/видео.html : Dambusters - Guy Gibson Grave & Crash Site
      깁슨이 추락한 네덜란드 마을엔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그의 묘소가 있습니다.
      동영상의 댓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댐버스터 작전 성공 후 임무 해제되어 공군을 떠난 뒤 , 미국 방문했을 때 독일 상공으로의 작전 횟수
      얼마나 되냐는 질문. 깁슨의 답변은 174회였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폭격기 승무원들에게 부여된 의무로서의 작전 횟수를 몇 배 이상 초과했죠. (기억으로 미 폭격기 승무원들 30회 정도 임무 수행하면 귀국.)
      의무 복무 채운 상태에서 깁슨은 44년 다시 공군에 복귀. 모스키토 폭격기로 임무 수행중 독일 전투기와 교전하게 되었고, 충돌로 전사.
      당시 나이는 26세 중령 추서.
      (관련 댓글
      beefabob
      1년 전
      On 4 October 1943 Gibson began a tour of The United States and whilst in Washington DC., he attended a major Press Conference at the offices of the British Information Service in New York on 7 October. This was at a time when the first American airmen were coming home 'tour expired' after 25 operations. During questions one young lady asked, 'Wing Commander Gibson, how many operations have you been on over Germany?' He replied, 'One hundred and seventy-four.' There was a stunned silence" A truly great man.
      )
      영국공군 폭격기 사령부는 2차대전 중 약 36만5천회 출격, 약 100만톤 폭탄 투하, 폭격기 손실 약 8500대.
      투입 병력 약 12만5천 중, 전사 약 5만5천, 약 8천5백 부상, 약 1만명 포로 : 승무원 사망율은 약 45%에 달할 정도로 극도로 위험했습니다.
      독일의 폭격 피해 역시 막대해서, 폭격으로 사망 약 60만, 폭격에 대비하기 위한 독일의 방공포 병력 약 90만이었다고 합니다.
      독일 입장에서 2차대전 독일을 폭격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미국의 b-17이나 b-29가 아닌 랭커스터 폭격기.
      b-29는 종전 직전 태평양 전선에 투입되었기에 독일 폭격엔 사용되지 않았고, 거대한 b-17의 폭장량은 모스키토 폭격기와 비슷.
      랭카스터는 44년 이후엔 1발에 5톤, 10톤 하는 톨보이와 그랜드슬램으로 독일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랜드슬램은 너무 무거워
      투하하는 순간 랭커스터 폭격기 고도가 갑자기 위로 상승할 정도.
      랭커스터는 하마터면 히로시마 원폭을 투하할 뻔 했습니다.
      랭커스터의 폭탄창은 원폭을 별 다른 개조 없이 수용할 수 있었지만, 개발중이었던 b-29는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를 위한 개조 추가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미국과 영국은 개발 실패를 대비,
      영국 폭격기 사령부내 특수 임무 부대를 차출해 승무원들에게 임무를 밝히지 않고 (일본에 대한 초장거리) 폭격 훈련에 돌입.
      b-29 보다 일찍 나온 기종이라 고고도 성능과 항속거리에게 부족했던 랭커스터는 원폭 투하를 위해,
      공중급유를 포함한 훈련을 거쳤습니다. 이미 45년 당시에 대형 4발 폭격기가 공중급유를 받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군요.
      원폭을 탑재한 타이거 편대 출격은 동남아의 영국 공군기지 또는 태평양의 미군 기지였는데 랭커스터 항속거리 초과로 공중 급유 필수.
      원폭 투하 랭커스터 편대 이름은 타이거였습니다. 미국 입장에선 다행히도, 원폭 수용할 수 있는 개조가 성공해 타이거 편대는 임무 해제.
      (미국이 보유한 b-17, b-24 등은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 불가능. 새로 개발중인 b-29는 1개의 대형 폭탄창이 아닌, 2개의 폭탄창 구조라 원폭
      탑재 불가능, 기체 골격 자체를 변경해 폭탄창을 1개로 재설계해야 했는데 테스트 과정에서 몇 차례 실패했다고 하는군요. 히로시마 작전 투입
      직전에 폭탄창 개조가 완료. 영 랭커스터 폭격기는 폭탄창은 넉넉했지만, 항속거리 문제로 공중급유가 필요했는데 이미 1943년 이후 수백대의
      랭커스터기들이 급유기로 개조되었고, 실제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공중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내용 포함.)

    • @Art-Joe
      @Art-Joe 2 года назад +9

      글에서 지린내가 ㅋㅋㅋㅋㅋ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2

      이 영상에서는 핵폭탄의 폭발 원리에 집중되어,
      제한된 방송 시간 때문에 2차대전 동안 핵무기 개발이 진행된 큰 흐름 과정이 생략되었습니다.
      디테일과 시야각은 상보적이며,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는 잃게 됩니다.
      그리고 왜 중성자가 핵분열을 일으키는 망치인지 언급 생략.
      핵무기 및 핵발전, 핵에너지의 실용화는 중성자 발견 이후에 비로소 가능해진 겁니다.
      그 중성자는 이미 1920년대 캐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의 최초 핵변환 통한 인공 원소변환 때 예측된.
      교과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기본 입자, 전자-원자핵-양성자-중성자 이 단계 까지 모든 입자는 영국에서 확증된.
      독일은 우수한 과학기술 역량에도 불구하고,
      대전초 전격전 깃발 날리던 때에는 핵무기 개발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대전 중반 이후 전황이 악화된 이후엔 핵무기 개발 여력 자체가 없어져 핵무기 개발 시도도 하지 못한.
      2차대전 초 미국은 풍부한 자원, 인구에
      독일-영국 대비 크게 쳐지지 않은 과학기술 확보한 상태였지만 사실상 멍 때렸던.
      만일 영국이 티저드 미션을 통해 핵심 과학기술과 핵임계질량 정보 넘겨주지 않았다면 자력으로만 해내기 쉽지 않았을 것.
      아이디어 자체가 있어야 시도, 시도 해봐야 될지 안될지 결정된다는 점에서. 미국 자체 아이디어는 많이 부족했던.
      2차대전 미국은 사실 운수대통.
      전쟁 진행 중 영국에게서 첨단 과학기술 제공받고, 독일 항복 이후 많은 최상급 독일 과학기술자 확보.
      그리고 2차대전 당시 미국 폭격기들은 적 전투기로 부터 자체 방어 위해,
      폭장량을 희생하면서 규모에 비해 적은 폭탄 탑재량으로 거대한 b-17이 영국 합판으로 만든 중형 모스키토와 비슷한 수준.
      그렇게 자체 방어 능력 강화했어도 호위 전투기 없을 때는 엄청난 피해 입었습니다.
      폭탄창이 대체로 영국 폭격기에 비해 작았고, 가장 거대했던 b-29도 폭탄창 2개라 원폭 탑재가 어려웠던.
      여기 영상에서 그 역시 간단 언급되었는데, 큰 1개 폭탄창으로 개조 실패 대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도 핵투하 훈련 실시.

  • @user-hm4nh6hf5j
    @user-hm4nh6hf5j 2 года назад +33

    이번편 정말 흥미깊게 봤습니다 궁금했던 부분을 쉽게 이해할수있었습니다 다음편이 매우 기대가 됩니다. 역전다방 애청자로써 전쟁사를 흐름에 따라 보는 재미까지. 디테일 높은 방송 계속 이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 @user-ff4yg6by6c
    @user-ff4yg6by6c 2 года назад +6

    교보재 일일챙겨서보여주시네요. 채박사님. 고맙습니다

  • @seanlee9676
    @seanlee9676 2 года назад +14

    왠만해서 댓글 안쓰는데 지리고 갑니다. 이렇게 공부했으면 각종 역학들도 마스터 했을 것 같네요. 일타 교수이심

  • @user-kimjukiki
    @user-kimjukiki 2 года назад +12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에서 핵폭탄 소재를 꼴랑 쇠공으로 해놨길래 뭔가했는데 공 꺼내는거보고 아하 함ㅋㅋㅋㅋㅋ

  • @murdoc_pig
    @murdoc_pig 2 года назад +17

    허준님 진짜 서당개 삼년도 우습게 이해력이 정말 좋아서 더 재밌는거 같아요 ㅎㅎ

    • @user-gh3ye2kf9h
      @user-gh3ye2kf9h 2 года назад +2

      센스도 좋으시고 토전사때부터 너무재밌으세요

  • @user-ns5qh2gu7g
    @user-ns5qh2gu7g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오펜하이머 개봉 앞두고 재시청합니다!!!

  • @markov2k2
    @markov2k2 2 года назад +5

    아. 후배 채박사 강의 참 잘하네. 나도 배우고 간다...국방 티비. 좋아. 빠르게 가 !!!

  • @gomdorij3213
    @gomdorij3213 2 года назад +10

    와~~
    채박사님 대단^^
    정말 정말 이해하기 쉬운 원자폭탄 작동원리 설명입니다 ^^

  • @shl8021
    @shl8021 2 года назад +2

    너무 유익하고 재밌어서
    짜증남!!!!!
    책으로 찾아보는 재미를 자꾸 미루게 됨.
    지식자랑하고 싶어 안달난 아저씨들이
    학자나 선생님에서 그치지 않고
    선생이자 학생이면서
    이게 왜 재밌는지 알려주고 싶어하는
    요즘 덕후의 미덕을 한신으로 실천하네
    제작진들의 시대착오적 편견을 벗어난 구성과
    인내심, 장기적인 플랜도 너무 반갑고,
    역사 전문 리액숀 장인 허준이 만나
    말도 안되게 재밌는 교육 교양프로가 되따
    ㅋㅋㅋ
    이번화 거의 최고임🥰🥰🥰👍🏻

  • @Benedicat_me_Dominus.
    @Benedicat_me_Dominus. 2 года назад +19

    매번 좋은 방송이었지만 오늘은 더 좋네요. 어려운 원폭 이야기를 접근하기 쉽게 풀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vinniekim6899
    @vinniekim6899 2 года назад +11

    진정 이 프로는 미쳤음!!!!!!
    오늘도 우리과원들 4명과 식사하다가 엄청 자랑했음. 오늘 업데이트 날이라고...
    밥알 튕겨서 과장님한테 죽을뻔 했지만...ㅋㅋ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First Known Use of cursor
      1594, in the meaning defined above ---------------> 위에서 정의한 의미란, 위치를 지시하기 위해 움직이는 지시선.
      -----------------------------------> 전 부터 정확한 위치를 지시하는 도구에 붙은 이름이며, 계산자의 위치 지시선에도 그대로 사용된.
      커서 단어의 어원은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어에 이르고 달린다-흐른다 의미라고.
      -----------------------------------> 화폐 통화를 의미하는 커런시 및 암호화폐를 의미하는 크립토 커런시와 같은 어원.
      즉 계산자의 지시자로서 커서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 아닌.
      계산자의 원리는 로그를 이용해 곱셈-나눗셈을 지수의 덧셈-뺄셈으로 바꾸는 것.
      로그는 네이피어가 1600년대 초에 도입한 수학 연산 방식, 계산자는 로그가 도입된 이후에 만들어졌기에
      커서라는 단어는 계산자 등장 이전 이미 존재하던 단어.
      하지만 의미 자체는 동일합니다. 계산자에서도 좌우로 움직이며-내달리며-흐르며 위치 지시하기에.
      First Known Use of computer
      1613, in the meaning defined above
      ----------------------------------------> 어지간 해선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찾기 정말 어렵습니다.
      ----------------------------------------> 특히 발명품이나 새로운 제도 아닌 이름-호칭에선 거의 다 전에 이미 존재하던 단어 가능성 큰.
      merriam-webster 영영사전 온라인, 단어 검색하면, 친절하게 그 단어가 처음 사용된 년도 (추적할 수 있으면) 소개됩니다.

  • @supercjh
    @supercjh 2 года назад +9

    허준이 이해력 장난아니게좋으시다

  • @user-mt8yx4wh1z
    @user-mt8yx4wh1z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오펜하이머 개봉 대비해서 리틀보이 떨어진 날 복습

  • @HJ-fu2rr
    @HJ-fu2rr 2 года назад +5

    자가격리때 우연히 접하고 정주행 한 다음....매주 수요일 기다리는 중......

  • @leessam07
    @leessam07 2 года назад +6

    제발! 매일 올려주세요!! 진정 최고의 콘텐츠.
    너무 감사합니다

  • @jufokgun
    @jufokgun 2 года назад +8

    이 정도면 채박사님은 도라에몽이 아니신가 의심이...

  • @jinheelee7623
    @jinheelee7623 2 года назад +12

    최고로 쉬운 원자탄 원리설명👍👍 다들 감사히 잘 보고있습니다 ❤️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원폭 개발을 처음 시작한 것은 미국-독일 아닌 영국.
      독일 폭격을 피해 캐나다로 이전, 영국 단독으로 자원과 비용을 댈 수 없게 되자
      이미 진행중이던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하며 최종적으로 미-영-캐 공동 맨허튼 프로젝트.
      티저드 미션, 1940년 8월 경 프랑스 항복 및 영국 항공전 위기 속에서
      미국의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처칠이 헨리 티저드가 이끄는 영국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 2차대전 내내 지속.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제공된 과학기술 목록은
      핵임계질량-레이더-마그네트론-근접신관-제트엔진-소나-암호해독...페니실린 등.
      핵무기 개발이 실제 가능하다는 최초의 확증인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받은 이후 미국도 원폭 개발에 본격 참여.
      핵임계질량 수치가 전달된 초기, 정보를 받았던 미국은 무시했으나 호주 출신의 영국팀 올리펀트가 유력한 미국 과학자들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 경고하며 결국 미국측도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인식 전환.
      핵무기 개발 과정 정리하면
      1. 1932년 중성자 발견, 영 채드윅
      1920년대 원자핵 변환을 통해 최초 인공 원소 변환했던 영 러더포드, 원소 변환의 원인으로서 중성자 예측.
      중성자는 전하 0 + 전자 보다 훨씬 무거운 조건 때문에 원자핵의 강력한 양전하 반발을 극복하고 핵을 부수는 망치 역활.
      채드윅은 영-캐 팀 단장으로 맨허튼 프로젝트 참여.
      2. 1938년 원자핵 분열 발견, 독 오토한과 마이트너
      중성자가 핵을 부수는 망치 방아쇠 역활을 한다는 최초의 확인.
      3. 1940년 7월경 영국 핵무기 개발 검토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 1941년 7월 무렵 핵무기 가능하다는 모드 위원회 첫 보고서
      독일의 원자핵 분열 소식에 영국은 독일의 핵무기 생산 가능성 우려.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전황이 지극 불리했지만, 1940년 7월경 핵무기가 실제 가능한지 조사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1년 뒤인 1941년 7월경 모드 위원회의 첫 보고서에, 핵무기 생산은 가능하다는 결론. 영국 핵무기 프로젝트 튜브 앨로이 시작.
      4. 1941년 8월 티저드 미션으로 미국에 모드 위원회 보고서 제공. 미국이 비로서 핵무기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 파악.
      핵임계질량이 미국에 전달되었지만 정보 받은 전문가들은 무시, 호주 출신의 영국 핵무기 개발팀 과학자 올리펀트는 미국의 유력
      과학자들을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을 전달 결국 미국 과학계가 대통령에게 건의해 미국 역시 핵무기 개발 시작.
      5. 1942년 10월경, 미국이 핵개발에서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
      6. 1943년 8월 쾨벡에서 미영은 핵무기 프로그램 통합 결정 + 핵무기 정보 공유 비밀 협정 체결.
      7. 1944년 미영 하이드 파크 협정으로 핵정보 공유 확인.
      8. 1945년 7월 최초 원폭 실험 성공
      9. 1946년 8월 미국 맥마흔 법, 핵기술과 정보의 해외 유출 금지. 영국과의 핵협정 미국이 깨트림.
      미국이 영국과의 핵협정을 파기하자 영국은 전후 파산 상태에서 독자 핵개발 시작. 1952년 원폭, 1957년 수폭 실험 성공.
      최종 정리하면 2차대전 발발 당시 독일과 영국은 핵무기 개발 직전 동일 출발선.
      독일은 초기 전격전의 대성공으로 핵무기 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영국은 극한의 위기 속에서
      혹이나 독일이 핵무장 먼저 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만 했기에 가장 먼저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든. 미국은 티저드 미션으로
      영국이 제공한 핵임계질량 등의 정보를 접한 이후에 비로서 핵무기 개발에 나선. 하지만 결국 풍부한 미국의 자원과 인력 과학기술
      기반이 맨허튼 프로젝트 주도해 핵무기 완성.
      관련 링크 때문인지 글이 삭제되어 링크를 제외하고 올립니다.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B-29 원폭 투하 임무 하마터면 랭커스터에게 빼았길뻔.
      b-29 아닌 랭커스터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훈련 : b-29 폭탄창 개조 혼선으로, 영공군 특임 부대 역시 원폭 투하 훈련.
      ruclips.net/video/5XX9ptCNpik/видео.html : Hiroshima 1945 - The British Atomic Attack
      B-29의 폭탄창은 2개로 커다란 원폭 수용 불가, 대형 폭탄창 1개로 개조 어려움 겪으며,
      만약을 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 폭격기 특수 임무 부대 차출해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 훈련도 함께 병행.
      랭커스터는 B-29 보다 짧았던 항속거리 때문에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원폭 투하 훈련을 했다고, 이미 43년 부터 수 백기의
      랭커스터가 공중급유기로 전환되었고,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실제 공중 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
      댐버스터 폭격대 이끌었던 가이 깁슨, 1944년 9월 모스키토 폭격기 임무 수행중 독 전투기와 교전 충돌 전사.
      ruclips.net/video/mx8uRwANfWU/видео.html : Dambusters - Guy Gibson Grave & Crash Site
      깁슨이 추락한 네덜란드 마을엔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그의 묘소가 있습니다.
      동영상의 댓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댐버스터 작전 성공 후 임무 해제되어 공군을 떠난 뒤 , 미국 방문했을 때 독일 상공으로의 작전 횟수
      얼마나 되냐는 질문. 깁슨의 답변은 174회였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폭격기 승무원들에게 부여된 의무로서의 작전 횟수를 몇 배 이상 초과했죠. (기억으로 미 폭격기 승무원들 30회 정도 임무 수행하면 귀국.)
      의무 복무 채운 상태에서 깁슨은 44년 다시 공군에 복귀. 모스키토 폭격기로 임무 수행중 독일 전투기와 교전하게 되었고, 충돌로 전사.
      당시 나이는 26세 중령 추서.
      (관련 댓글
      beefabob
      1년 전
      On 4 October 1943 Gibson began a tour of The United States and whilst in Washington DC., he attended a major Press Conference at the offices of the British Information Service in New York on 7 October. This was at a time when the first American airmen were coming home 'tour expired' after 25 operations. During questions one young lady asked, 'Wing Commander Gibson, how many operations have you been on over Germany?' He replied, 'One hundred and seventy-four.' There was a stunned silence" A truly great man.
      )
      영국공군 폭격기 사령부는 2차대전 중 약 36만5천회 출격, 약 100만톤 폭탄 투하, 폭격기 손실 약 8500대.
      투입 병력 약 12만5천 중, 전사 약 5만5천, 약 8천5백 부상, 약 1만명 포로 : 승무원 사망율은 약 45%에 달할 정도로 극도로 위험했습니다.
      독일의 폭격 피해 역시 막대해서, 폭격으로 사망 약 60만, 폭격에 대비하기 위한 독일의 방공포 병력 약 90만이었다고 합니다.
      독일 입장에서 2차대전 독일을 폭격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미국의 b-17이나 b-29가 아닌 랭커스터 폭격기.
      b-29는 종전 직전 태평양 전선에 투입되었기에 독일 폭격엔 사용되지 않았고, 거대한 b-17의 폭장량은 모스키토 폭격기와 비슷.
      랭카스터는 44년 이후엔 1발에 5톤, 10톤 하는 톨보이와 그랜드슬램으로 독일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랜드슬램은 너무 무거워
      투하하는 순간 랭커스터 폭격기 고도가 갑자기 위로 상승할 정도.
      랭커스터는 하마터면 히로시마 원폭을 투하할 뻔 했습니다.
      랭커스터의 폭탄창은 원폭을 별 다른 개조 없이 수용할 수 있었지만, 개발중이었던 b-29는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를 위한 개조 추가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미국과 영국은 개발 실패를 대비,
      영국 폭격기 사령부내 특수 임무 부대를 차출해 승무원들에게 임무를 밝히지 않고 (일본에 대한 초장거리) 폭격 훈련에 돌입.
      b-29 보다 일찍 나온 기종이라 고고도 성능과 항속거리에게 부족했던 랭커스터는 원폭 투하를 위해,
      공중급유를 포함한 훈련을 거쳤습니다. 이미 45년 당시에 대형 4발 폭격기가 공중급유를 받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군요.
      원폭을 탑재한 타이거 편대 출격은 동남아의 영국 공군기지 또는 태평양의 미군 기지였는데 랭커스터 항속거리 초과로 공중 급유 필수.
      원폭 투하 랭커스터 편대 이름은 타이거였습니다. 미국 입장에선 다행히도, 원폭 수용할 수 있는 개조가 성공해 타이거 편대는 임무 해제.
      (미국이 보유한 b-17, b-24 등은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 불가능. 새로 개발중인 b-29는 1개의 대형 폭탄창이 아닌, 2개의 폭탄창 구조라 원폭
      탑재 불가능, 기체 골격 자체를 변경해 폭탄창을 1개로 재설계해야 했는데 테스트 과정에서 몇 차례 실패했다고 하는군요. 히로시마 작전 투입
      직전에 폭탄창 개조가 완료. 영 랭커스터 폭격기는 폭탄창은 넉넉했지만, 항속거리 문제로 공중급유가 필요했는데 이미 1943년 이후 수백대의
      랭커스터기들이 급유기로 개조되었고, 실제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공중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내용 포함.)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이 영상에서는 핵폭탄의 폭발 원리에 집중되어,
      제한된 방송 시간 때문에 2차대전 동안 핵무기 개발이 진행된 큰 흐름 과정이 생략되었습니다.
      디테일과 시야각은 상보적이며,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는 잃게 됩니다.
      그리고 왜 중성자가 핵분열을 일으키는 망치인지 언급 생략.
      핵무기 및 핵발전, 핵에너지의 실용화는 중성자 발견 이후에 비로소 가능해진 겁니다.
      그 중성자는 이미 1920년대 캐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의 최초 핵변환 통한 인공 원소변환 때 예측된.
      교과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기본 입자, 전자-원자핵-양성자-중성자 이 단계 까지 모든 입자는 영국에서 확증된.
      독일은 우수한 과학기술 역량에도 불구하고,
      대전초 전격전 깃발 날리던 때에는 핵무기 개발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대전 중반 이후 전황이 악화된 이후엔 핵무기 개발 여력 자체가 없어져 핵무기 개발 시도도 하지 못한.
      2차대전 초 미국은 풍부한 자원, 인구에
      독일-영국 대비 크게 쳐지지 않은 과학기술 확보한 상태였지만 사실상 멍 때렸던.
      만일 영국이 티저드 미션을 통해 핵심 과학기술과 핵임계질량 정보 넘겨주지 않았다면 자력으로만 해내기 쉽지 않았을 것.
      아이디어 자체가 있어야 시도, 시도 해봐야 될지 안될지 결정된다는 점에서. 미국 자체 아이디어는 많이 부족했던.
      2차대전 미국은 사실 운수대통.
      전쟁 진행 중 영국에게서 첨단 과학기술 제공받고, 독일 항복 이후 많은 최상급 독일 과학기술자 확보.
      그리고 2차대전 당시 미국 폭격기들은 적 전투기로 부터 자체 방어 위해,
      폭장량을 희생하면서 규모에 비해 적은 폭탄 탑재량으로 거대한 b-17이 영국 합판으로 만든 중형 모스키토와 비슷한 수준.
      그렇게 자체 방어 능력 강화했어도 호위 전투기 없을 때는 엄청난 피해 입었습니다.
      폭탄창이 대체로 영국 폭격기에 비해 작았고, 가장 거대했던 b-29도 폭탄창 2개라 원폭 탑재가 어려웠던.
      여기 영상에서 그 역시 간단 언급되었는데, 큰 1개 폭탄창으로 개조 실패 대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도 핵투하 훈련 실시.

  • @jeremyko4069
    @jeremyko4069 2 года назад +5

    역전다방에 참여하신 모든분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을 늦게 알고 전편을 밤새 보았습니다.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 @hohoha6838
    @hohoha6838 2 года назад +11

    진심 Wonderful.. Computer가 계산원을 말하는 데서 어원이 나왔고, Cursor에 대한 어원도 모두 금쪽 같은 정보였습니다.
    Incredible Movie Clip 입니다. 이 프로그램 만들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First Known Use of cursor
      1594, in the meaning defined above ---------------> 위에서 정의한 의미란, 위치를 지시하기 위해 움직이는 지시선.
      -----------------------------------> 전 부터 정확한 위치를 지시하는 도구에 붙은 이름이며, 계산자의 위치 지시선에도 그대로 사용된.
      커서 단어의 어원은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어에 이르고 달린다-흐른다 의미라고.
      -----------------------------------> 화폐 통화를 의미하는 커런시 및 암호화폐를 의미하는 크립토 커런시와 같은 어원.
      즉 계산자의 지시자로서 커서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 아닌.
      계산자의 원리는 로그를 이용해 곱셈-나눗셈을 지수의 덧셈-뺄셈으로 바꾸는 것.
      로그는 네이피어가 1600년대 초에 도입한 수학 연산 방식, 계산자는 로그가 도입된 이후에 만들어졌기에
      커서라는 단어는 계산자 등장 이전 이미 존재하던 단어.
      하지만 의미 자체는 동일합니다. 계산자에서도 좌우로 움직이며-내달리며-흐르며 위치 지시하기에.
      First Known Use of computer
      1613, in the meaning defined above
      ----------------------------------------> 어지간 해선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찾기 정말 어렵습니다.
      ----------------------------------------> 특히 발명품이나 새로운 제도 아닌 이름-호칭에선 거의 다 전에 이미 존재하던 단어 가능성 큰.
      merriam-webster 영영사전 온라인, 단어 검색하면, 친절하게 그 단어가 처음 사용된 년도 (추적할 수 있으면) 소개됩니다.

  • @johnalson7725
    @johnalson7725 2 года назад +6

    진짜 미쳤다 이 방송!! 핵폭탄에 대해 이렇게 자세하고 쉽게 설명해 주시니 저 같은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네요. 그리고 계산자, 기계식 계산기는 처음보는데 정말 그 당시 공학도분들 존경스럽습니다 저런 계산기로 2차 세계대전은 물론 50년전 아폴로계획까지 쓰셨다니 이제 4-5년 후면 양자컴퓨터가 상용화 되는 시대가 다가 왔는데 저런 도구로 인류를 달까지 보냈다니 정말 정말 존경스럽네요. 원래 역전다방 퀄리티야 항상 최고였지만 이번 회차는 best of best 입니다

  • @user-md1wt6hf1m
    @user-md1wt6hf1m Год назад +3

    예전 정밀 계산은 과학자들이 계산자를 사용했었구나. 나도 비행 조종사 훈련 받을 때 비행용 계산자 사용했었지. 모양은 다르지만, 계산 필요없이 변수 데이터만 맞춰 주면 결과 값이 바로바로 나왔지. 추억 돋네..

  • @habackyear1767
    @habackyear1767 2 года назад +11

    허준똑똑하네

  • @Hodol_Brick
    @Hodol_Brick 2 года назад +11

    정말 이번편 기다리고 있었는데, 잘보았습니다. 박사님들의 자세한 설명이 전쟁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군요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원폭 개발을 처음 시작한 것은 미국-독일 아닌 영국.
      독일 폭격을 피해 캐나다로 이전, 영국 단독으로 자원과 비용을 댈 수 없게 되자
      이미 진행중이던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하며 최종적으로 미-영-캐 공동 맨허튼 프로젝트.
      티저드 미션, 1940년 8월 경 프랑스 항복 및 영국 항공전 위기 속에서
      미국의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처칠이 헨리 티저드가 이끄는 영국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 2차대전 내내 지속.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제공된 과학기술 목록은
      핵임계질량-레이더-마그네트론-근접신관-제트엔진-소나-암호해독...페니실린 등.
      핵무기 개발이 실제 가능하다는 최초의 확증인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받은 이후 미국도 원폭 개발에 본격 참여.
      핵임계질량 수치가 전달된 초기, 정보를 받았던 미국은 무시했으나 호주 출신의 영국팀 올리펀트가 유력한 미국 과학자들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 경고하며 결국 미국측도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인식 전환.
      핵무기 개발 과정 정리하면
      1. 1932년 중성자 발견, 영 채드윅
      1920년대 원자핵 변환을 통해 최초 인공 원소 변환했던 영 러더포드, 원소 변환의 원인으로서 중성자 예측.
      중성자는 전하 0 + 전자 보다 훨씬 무거운 조건 때문에 원자핵의 강력한 양전하 반발을 극복하고 핵을 부수는 망치 역활.
      채드윅은 영-캐 팀 단장으로 맨허튼 프로젝트 참여.
      2. 1938년 원자핵 분열 발견, 독 오토한과 마이트너
      중성자가 핵을 부수는 망치 방아쇠 역활을 한다는 최초의 확인.
      3. 1940년 7월경 영국 핵무기 개발 검토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 1941년 7월 무렵 핵무기 가능하다는 모드 위원회 첫 보고서
      독일의 원자핵 분열 소식에 영국은 독일의 핵무기 생산 가능성 우려.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전황이 지극 불리했지만, 1940년 7월경 핵무기가 실제 가능한지 조사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1년 뒤인 1941년 7월경 모드 위원회의 첫 보고서에, 핵무기 생산은 가능하다는 결론. 영국 핵무기 프로젝트 튜브 앨로이 시작.
      4. 1941년 8월 티저드 미션으로 미국에 모드 위원회 보고서 제공. 미국이 비로서 핵무기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 파악.
      핵임계질량이 미국에 전달되었지만 정보 받은 전문가들은 무시, 호주 출신의 영국 핵무기 개발팀 과학자 올리펀트는 미국의 유력
      과학자들을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을 전달 결국 미국 과학계가 대통령에게 건의해 미국 역시 핵무기 개발 시작.
      5. 1942년 10월경, 미국이 핵개발에서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
      6. 1943년 8월 쾨벡에서 미영은 핵무기 프로그램 통합 결정 + 핵무기 정보 공유 비밀 협정 체결.
      7. 1944년 미영 하이드 파크 협정으로 핵정보 공유 확인.
      8. 1945년 7월 최초 원폭 실험 성공
      9. 1946년 8월 미국 맥마흔 법, 핵기술과 정보의 해외 유출 금지. 영국과의 핵협정 미국이 깨트림.
      미국이 영국과의 핵협정을 파기하자 영국은 전후 파산 상태에서 독자 핵개발 시작. 1952년 원폭, 1957년 수폭 실험 성공.
      최종 정리하면 2차대전 발발 당시 독일과 영국은 핵무기 개발 직전 동일 출발선.
      독일은 초기 전격전의 대성공으로 핵무기 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영국은 극한의 위기 속에서
      혹이나 독일이 핵무장 먼저 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만 했기에 가장 먼저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든. 미국은 티저드 미션으로
      영국이 제공한 핵임계질량 등의 정보를 접한 이후에 비로서 핵무기 개발에 나선. 하지만 결국 풍부한 미국의 자원과 인력 과학기술
      기반이 맨허튼 프로젝트 주도해 핵무기 완성.
      관련 링크 때문인지 글이 삭제되어 링크를 제외하고 올립니다.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B-29 원폭 투하 임무 하마터면 랭커스터에게 빼았길뻔.
      b-29 아닌 랭커스터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훈련 : b-29 폭탄창 개조 혼선으로, 영공군 특임 부대 역시 원폭 투하 훈련.
      ruclips.net/video/5XX9ptCNpik/видео.html : Hiroshima 1945 - The British Atomic Attack
      B-29의 폭탄창은 2개로 커다란 원폭 수용 불가, 대형 폭탄창 1개로 개조 어려움 겪으며,
      만약을 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 폭격기 특수 임무 부대 차출해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 훈련도 함께 병행.
      랭커스터는 B-29 보다 짧았던 항속거리 때문에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원폭 투하 훈련을 했다고, 이미 43년 부터 수 백기의
      랭커스터가 공중급유기로 전환되었고,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실제 공중 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
      댐버스터 폭격대 이끌었던 가이 깁슨, 1944년 9월 모스키토 폭격기 임무 수행중 독 전투기와 교전 충돌 전사.
      ruclips.net/video/mx8uRwANfWU/видео.html : Dambusters - Guy Gibson Grave & Crash Site
      깁슨이 추락한 네덜란드 마을엔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그의 묘소가 있습니다.
      동영상의 댓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댐버스터 작전 성공 후 임무 해제되어 공군을 떠난 뒤 , 미국 방문했을 때 독일 상공으로의 작전 횟수
      얼마나 되냐는 질문. 깁슨의 답변은 174회였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폭격기 승무원들에게 부여된 의무로서의 작전 횟수를 몇 배 이상 초과했죠. (기억으로 미 폭격기 승무원들 30회 정도 임무 수행하면 귀국.)
      의무 복무 채운 상태에서 깁슨은 44년 다시 공군에 복귀. 모스키토 폭격기로 임무 수행중 독일 전투기와 교전하게 되었고, 충돌로 전사.
      당시 나이는 26세 중령 추서.
      (관련 댓글
      beefabob
      1년 전
      On 4 October 1943 Gibson began a tour of The United States and whilst in Washington DC., he attended a major Press Conference at the offices of the British Information Service in New York on 7 October. This was at a time when the first American airmen were coming home 'tour expired' after 25 operations. During questions one young lady asked, 'Wing Commander Gibson, how many operations have you been on over Germany?' He replied, 'One hundred and seventy-four.' There was a stunned silence" A truly great man.
      )
      영국공군 폭격기 사령부는 2차대전 중 약 36만5천회 출격, 약 100만톤 폭탄 투하, 폭격기 손실 약 8500대.
      투입 병력 약 12만5천 중, 전사 약 5만5천, 약 8천5백 부상, 약 1만명 포로 : 승무원 사망율은 약 45%에 달할 정도로 극도로 위험했습니다.
      독일의 폭격 피해 역시 막대해서, 폭격으로 사망 약 60만, 폭격에 대비하기 위한 독일의 방공포 병력 약 90만이었다고 합니다.
      독일 입장에서 2차대전 독일을 폭격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미국의 b-17이나 b-29가 아닌 랭커스터 폭격기.
      b-29는 종전 직전 태평양 전선에 투입되었기에 독일 폭격엔 사용되지 않았고, 거대한 b-17의 폭장량은 모스키토 폭격기와 비슷.
      랭카스터는 44년 이후엔 1발에 5톤, 10톤 하는 톨보이와 그랜드슬램으로 독일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랜드슬램은 너무 무거워
      투하하는 순간 랭커스터 폭격기 고도가 갑자기 위로 상승할 정도.
      랭커스터는 하마터면 히로시마 원폭을 투하할 뻔 했습니다.
      랭커스터의 폭탄창은 원폭을 별 다른 개조 없이 수용할 수 있었지만, 개발중이었던 b-29는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를 위한 개조 추가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미국과 영국은 개발 실패를 대비,
      영국 폭격기 사령부내 특수 임무 부대를 차출해 승무원들에게 임무를 밝히지 않고 (일본에 대한 초장거리) 폭격 훈련에 돌입.
      b-29 보다 일찍 나온 기종이라 고고도 성능과 항속거리에게 부족했던 랭커스터는 원폭 투하를 위해,
      공중급유를 포함한 훈련을 거쳤습니다. 이미 45년 당시에 대형 4발 폭격기가 공중급유를 받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군요.
      원폭을 탑재한 타이거 편대 출격은 동남아의 영국 공군기지 또는 태평양의 미군 기지였는데 랭커스터 항속거리 초과로 공중 급유 필수.
      원폭 투하 랭커스터 편대 이름은 타이거였습니다. 미국 입장에선 다행히도, 원폭 수용할 수 있는 개조가 성공해 타이거 편대는 임무 해제.
      (미국이 보유한 b-17, b-24 등은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 불가능. 새로 개발중인 b-29는 1개의 대형 폭탄창이 아닌, 2개의 폭탄창 구조라 원폭
      탑재 불가능, 기체 골격 자체를 변경해 폭탄창을 1개로 재설계해야 했는데 테스트 과정에서 몇 차례 실패했다고 하는군요. 히로시마 작전 투입
      직전에 폭탄창 개조가 완료. 영 랭커스터 폭격기는 폭탄창은 넉넉했지만, 항속거리 문제로 공중급유가 필요했는데 이미 1943년 이후 수백대의
      랭커스터기들이 급유기로 개조되었고, 실제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공중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내용 포함.)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이 영상에서는 핵폭탄의 폭발 원리에 집중되어,
      제한된 방송 시간 때문에 2차대전 동안 핵무기 개발이 진행된 큰 흐름 과정이 생략되었습니다.
      디테일과 시야각은 상보적이며,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는 잃게 됩니다.
      그리고 왜 중성자가 핵분열을 일으키는 망치인지 언급 생략.
      핵무기 및 핵발전, 핵에너지의 실용화는 중성자 발견 이후에 비로소 가능해진 겁니다.
      그 중성자는 이미 1920년대 캐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의 최초 핵변환 통한 인공 원소변환 때 예측된.
      교과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기본 입자, 전자-원자핵-양성자-중성자 이 단계 까지 모든 입자는 영국에서 확증된.
      독일은 우수한 과학기술 역량에도 불구하고,
      대전초 전격전 깃발 날리던 때에는 핵무기 개발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대전 중반 이후 전황이 악화된 이후엔 핵무기 개발 여력 자체가 없어져 핵무기 개발 시도도 하지 못한.
      2차대전 초 미국은 풍부한 자원, 인구에
      독일-영국 대비 크게 쳐지지 않은 과학기술 확보한 상태였지만 사실상 멍 때렸던.
      만일 영국이 티저드 미션을 통해 핵심 과학기술과 핵임계질량 정보 넘겨주지 않았다면 자력으로만 해내기 쉽지 않았을 것.
      아이디어 자체가 있어야 시도, 시도 해봐야 될지 안될지 결정된다는 점에서. 미국 자체 아이디어는 많이 부족했던.
      2차대전 미국은 사실 운수대통.
      전쟁 진행 중 영국에게서 첨단 과학기술 제공받고, 독일 항복 이후 많은 최상급 독일 과학기술자 확보.
      그리고 2차대전 당시 미국 폭격기들은 적 전투기로 부터 자체 방어 위해,
      폭장량을 희생하면서 규모에 비해 적은 폭탄 탑재량으로 거대한 b-17이 영국 합판으로 만든 중형 모스키토와 비슷한 수준.
      그렇게 자체 방어 능력 강화했어도 호위 전투기 없을 때는 엄청난 피해 입었습니다.
      폭탄창이 대체로 영국 폭격기에 비해 작았고, 가장 거대했던 b-29도 폭탄창 2개라 원폭 탑재가 어려웠던.
      여기 영상에서 그 역시 간단 언급되었는데, 큰 1개 폭탄창으로 개조 실패 대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도 핵투하 훈련 실시.

  • @seankim263
    @seankim263 2 года назад +10

    컴공과 출신에 십년넘게 IT로 밥 먹고 사는데
    채박사님께 또 많이 배웁니다 ㅎ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원폭 개발을 처음 시작한 것은 미국-독일 아닌 영국.
      독일 폭격을 피해 캐나다로 이전, 영국 단독으로 자원과 비용을 댈 수 없게 되자
      이미 진행중이던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하며 최종적으로 미-영-캐 공동 맨허튼 프로젝트.
      티저드 미션, 1940년 8월 경 프랑스 항복 및 영국 항공전 위기 속에서
      미국의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처칠이 헨리 티저드가 이끄는 영국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 2차대전 내내 지속.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제공된 과학기술 목록은
      핵임계질량-레이더-마그네트론-근접신관-제트엔진-소나-암호해독...페니실린 등.
      핵무기 개발이 실제 가능하다는 최초의 확증인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받은 이후 미국도 원폭 개발에 본격 참여.
      핵임계질량 수치가 전달된 초기, 정보를 받았던 미국은 무시했으나 호주 출신의 영국팀 올리펀트가 유력한 미국 과학자들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 경고하며 결국 미국측도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인식 전환.
      핵무기 개발 과정 정리하면
      1. 1932년 중성자 발견, 영 채드윅
      1920년대 원자핵 변환을 통해 최초 인공 원소 변환했던 영 러더포드, 원소 변환의 원인으로서 중성자 예측.
      중성자는 전하 0 + 전자 보다 훨씬 무거운 조건 때문에 원자핵의 강력한 양전하 반발을 극복하고 핵을 부수는 망치 역활.
      채드윅은 영-캐 팀 단장으로 맨허튼 프로젝트 참여.
      2. 1938년 원자핵 분열 발견, 독 오토한과 마이트너
      중성자가 핵을 부수는 망치 방아쇠 역활을 한다는 최초의 확인.
      3. 1940년 7월경 영국 핵무기 개발 검토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 1941년 7월 무렵 핵무기 가능하다는 모드 위원회 첫 보고서
      독일의 원자핵 분열 소식에 영국은 독일의 핵무기 생산 가능성 우려.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전황이 지극 불리했지만, 1940년 7월경 핵무기가 실제 가능한지 조사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1년 뒤인 1941년 7월경 모드 위원회의 첫 보고서에, 핵무기 생산은 가능하다는 결론. 영국 핵무기 프로젝트 튜브 앨로이 시작.
      4. 1941년 8월 티저드 미션으로 미국에 모드 위원회 보고서 제공. 미국이 비로서 핵무기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 파악.
      핵임계질량이 미국에 전달되었지만 정보 받은 전문가들은 무시, 호주 출신의 영국 핵무기 개발팀 과학자 올리펀트는 미국의 유력
      과학자들을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을 전달 결국 미국 과학계가 대통령에게 건의해 미국 역시 핵무기 개발 시작.
      5. 1942년 10월경, 미국이 핵개발에서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
      6. 1943년 8월 쾨벡에서 미영은 핵무기 프로그램 통합 결정 + 핵무기 정보 공유 비밀 협정 체결.
      7. 1944년 미영 하이드 파크 협정으로 핵정보 공유 확인.
      8. 1945년 7월 최초 원폭 실험 성공
      9. 1946년 8월 미국 맥마흔 법, 핵기술과 정보의 해외 유출 금지. 영국과의 핵협정 미국이 깨트림.
      미국이 영국과의 핵협정을 파기하자 영국은 전후 파산 상태에서 독자 핵개발 시작. 1952년 원폭, 1957년 수폭 실험 성공.
      최종 정리하면 2차대전 발발 당시 독일과 영국은 핵무기 개발 직전 동일 출발선.
      독일은 초기 전격전의 대성공으로 핵무기 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영국은 극한의 위기 속에서
      혹이나 독일이 핵무장 먼저 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만 했기에 가장 먼저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든. 미국은 티저드 미션으로
      영국이 제공한 핵임계질량 등의 정보를 접한 이후에 비로서 핵무기 개발에 나선. 하지만 결국 풍부한 미국의 자원과 인력 과학기술
      기반이 맨허튼 프로젝트 주도해 핵무기 완성.
      관련 링크 때문인지 글이 삭제되어 링크를 제외하고 올립니다.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B-29 원폭 투하 임무 하마터면 랭커스터에게 빼았길뻔.
      b-29 아닌 랭커스터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훈련 : b-29 폭탄창 개조 혼선으로, 영공군 특임 부대 역시 원폭 투하 훈련.
      ruclips.net/video/5XX9ptCNpik/видео.html : Hiroshima 1945 - The British Atomic Attack
      B-29의 폭탄창은 2개로 커다란 원폭 수용 불가, 대형 폭탄창 1개로 개조 어려움 겪으며,
      만약을 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 폭격기 특수 임무 부대 차출해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 훈련도 함께 병행.
      랭커스터는 B-29 보다 짧았던 항속거리 때문에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원폭 투하 훈련을 했다고, 이미 43년 부터 수 백기의
      랭커스터가 공중급유기로 전환되었고,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실제 공중 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
      댐버스터 폭격대 이끌었던 가이 깁슨, 1944년 9월 모스키토 폭격기 임무 수행중 독 전투기와 교전 충돌 전사.
      ruclips.net/video/mx8uRwANfWU/видео.html : Dambusters - Guy Gibson Grave & Crash Site
      깁슨이 추락한 네덜란드 마을엔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그의 묘소가 있습니다.
      동영상의 댓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댐버스터 작전 성공 후 임무 해제되어 공군을 떠난 뒤 , 미국 방문했을 때 독일 상공으로의 작전 횟수
      얼마나 되냐는 질문. 깁슨의 답변은 174회였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폭격기 승무원들에게 부여된 의무로서의 작전 횟수를 몇 배 이상 초과했죠. (기억으로 미 폭격기 승무원들 30회 정도 임무 수행하면 귀국.)
      의무 복무 채운 상태에서 깁슨은 44년 다시 공군에 복귀. 모스키토 폭격기로 임무 수행중 독일 전투기와 교전하게 되었고, 충돌로 전사.
      당시 나이는 26세 중령 추서.
      (관련 댓글
      beefabob
      1년 전
      On 4 October 1943 Gibson began a tour of The United States and whilst in Washington DC., he attended a major Press Conference at the offices of the British Information Service in New York on 7 October. This was at a time when the first American airmen were coming home 'tour expired' after 25 operations. During questions one young lady asked, 'Wing Commander Gibson, how many operations have you been on over Germany?' He replied, 'One hundred and seventy-four.' There was a stunned silence" A truly great man.
      )
      영국공군 폭격기 사령부는 2차대전 중 약 36만5천회 출격, 약 100만톤 폭탄 투하, 폭격기 손실 약 8500대.
      투입 병력 약 12만5천 중, 전사 약 5만5천, 약 8천5백 부상, 약 1만명 포로 : 승무원 사망율은 약 45%에 달할 정도로 극도로 위험했습니다.
      독일의 폭격 피해 역시 막대해서, 폭격으로 사망 약 60만, 폭격에 대비하기 위한 독일의 방공포 병력 약 90만이었다고 합니다.
      독일 입장에서 2차대전 독일을 폭격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미국의 b-17이나 b-29가 아닌 랭커스터 폭격기.
      b-29는 종전 직전 태평양 전선에 투입되었기에 독일 폭격엔 사용되지 않았고, 거대한 b-17의 폭장량은 모스키토 폭격기와 비슷.
      랭카스터는 44년 이후엔 1발에 5톤, 10톤 하는 톨보이와 그랜드슬램으로 독일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랜드슬램은 너무 무거워
      투하하는 순간 랭커스터 폭격기 고도가 갑자기 위로 상승할 정도.
      랭커스터는 하마터면 히로시마 원폭을 투하할 뻔 했습니다.
      랭커스터의 폭탄창은 원폭을 별 다른 개조 없이 수용할 수 있었지만, 개발중이었던 b-29는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를 위한 개조 추가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미국과 영국은 개발 실패를 대비,
      영국 폭격기 사령부내 특수 임무 부대를 차출해 승무원들에게 임무를 밝히지 않고 (일본에 대한 초장거리) 폭격 훈련에 돌입.
      b-29 보다 일찍 나온 기종이라 고고도 성능과 항속거리에게 부족했던 랭커스터는 원폭 투하를 위해,
      공중급유를 포함한 훈련을 거쳤습니다. 이미 45년 당시에 대형 4발 폭격기가 공중급유를 받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군요.
      원폭을 탑재한 타이거 편대 출격은 동남아의 영국 공군기지 또는 태평양의 미군 기지였는데 랭커스터 항속거리 초과로 공중 급유 필수.
      원폭 투하 랭커스터 편대 이름은 타이거였습니다. 미국 입장에선 다행히도, 원폭 수용할 수 있는 개조가 성공해 타이거 편대는 임무 해제.
      (미국이 보유한 b-17, b-24 등은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 불가능. 새로 개발중인 b-29는 1개의 대형 폭탄창이 아닌, 2개의 폭탄창 구조라 원폭
      탑재 불가능, 기체 골격 자체를 변경해 폭탄창을 1개로 재설계해야 했는데 테스트 과정에서 몇 차례 실패했다고 하는군요. 히로시마 작전 투입
      직전에 폭탄창 개조가 완료. 영 랭커스터 폭격기는 폭탄창은 넉넉했지만, 항속거리 문제로 공중급유가 필요했는데 이미 1943년 이후 수백대의
      랭커스터기들이 급유기로 개조되었고, 실제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공중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내용 포함.)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이 영상에서는 핵폭탄의 폭발 원리에 집중되어,
      제한된 방송 시간 때문에 2차대전 동안 핵무기 개발이 진행된 큰 흐름 과정이 생략되었습니다.
      디테일과 시야각은 상보적이며,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는 잃게 됩니다.
      그리고 왜 중성자가 핵분열을 일으키는 망치인지 언급 생략.
      핵무기 및 핵발전, 핵에너지의 실용화는 중성자 발견 이후에 비로소 가능해진 겁니다.
      그 중성자는 이미 1920년대 캐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의 최초 핵변환 통한 인공 원소변환 때 예측된.
      교과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기본 입자, 전자-원자핵-양성자-중성자 이 단계 까지 모든 입자는 영국에서 확증된.
      독일은 우수한 과학기술 역량에도 불구하고,
      대전초 전격전 깃발 날리던 때에는 핵무기 개발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대전 중반 이후 전황이 악화된 이후엔 핵무기 개발 여력 자체가 없어져 핵무기 개발 시도도 하지 못한.
      2차대전 초 미국은 풍부한 자원, 인구에
      독일-영국 대비 크게 쳐지지 않은 과학기술 확보한 상태였지만 사실상 멍 때렸던.
      만일 영국이 티저드 미션을 통해 핵심 과학기술과 핵임계질량 정보 넘겨주지 않았다면 자력으로만 해내기 쉽지 않았을 것.
      아이디어 자체가 있어야 시도, 시도 해봐야 될지 안될지 결정된다는 점에서. 미국 자체 아이디어는 많이 부족했던.
      2차대전 미국은 사실 운수대통.
      전쟁 진행 중 영국에게서 첨단 과학기술 제공받고, 독일 항복 이후 많은 최상급 독일 과학기술자 확보.
      그리고 2차대전 당시 미국 폭격기들은 적 전투기로 부터 자체 방어 위해,
      폭장량을 희생하면서 규모에 비해 적은 폭탄 탑재량으로 거대한 b-17이 영국 합판으로 만든 중형 모스키토와 비슷한 수준.
      그렇게 자체 방어 능력 강화했어도 호위 전투기 없을 때는 엄청난 피해 입었습니다.
      폭탄창이 대체로 영국 폭격기에 비해 작았고, 가장 거대했던 b-29도 폭탄창 2개라 원폭 탑재가 어려웠던.
      여기 영상에서 그 역시 간단 언급되었는데, 큰 1개 폭탄창으로 개조 실패 대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도 핵투하 훈련 실시.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First Known Use of cursor
      1594, in the meaning defined above ---------------> 위에서 정의한 의미란, 위치를 지시하기 위해 움직이는 지시선.
      -----------------------------------> 전 부터 정확한 위치를 지시하는 도구에 붙은 이름이며, 계산자의 위치 지시선에도 그대로 사용된.
      커서 단어의 어원은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어에 이르고 달린다-흐른다 의미라고.
      -----------------------------------> 화폐 통화를 의미하는 커런시 및 암호화폐를 의미하는 크립토 커런시와 같은 어원.
      즉 계산자의 지시자로서 커서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 아닌.
      계산자의 원리는 로그를 이용해 곱셈-나눗셈을 지수의 덧셈-뺄셈으로 바꾸는 것.
      로그는 네이피어가 1600년대 초에 도입한 수학 연산 방식, 계산자는 로그가 도입된 이후에 만들어졌기에
      커서라는 단어는 계산자 등장 이전 이미 존재하던 단어.
      하지만 의미 자체는 동일합니다. 계산자에서도 좌우로 움직이며-내달리며-흐르며 위치 지시하기에.
      First Known Use of computer
      1613, in the meaning defined above
      ----------------------------------------> 어지간 해선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찾기 정말 어렵습니다.
      ----------------------------------------> 특히 발명품이나 새로운 제도 아닌 이름-호칭에선 거의 다 전에 이미 존재하던 단어 가능성 큰.
      merriam-webster 영영사전 온라인, 단어 검색하면, 친절하게 그 단어가 처음 사용된 년도 (추적할 수 있으면) 소개됩니다.

  • @jhjeon3368
    @jhjeon3368 2 года назад +7

    드디어 정주행으로 이번주까지 완주. 국방티비라서 가능한 조합의 꽃 심소령님 화이팅. ㅋㅋ

  • @medalofduty8935
    @medalofduty8935 2 года назад +8

    태평양 전쟁편 끝나고 자연스럽게 냉전 파트로 넘어가도 재밌을것 같습니다!

  • @joywindy
    @joywindy 2 года назад +7

    완벽한 해설! 역전다방 포에버♡

  • @ijayson4992
    @ijayson4992 2 года назад +5

    역전다방 디테일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에요..그러니 맨날 기다리죵..ㅎ

  • @user-qu3gz6te8k
    @user-qu3gz6te8k 2 года назад +6

    28:50 ㅋㅋ핵천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user-tu3yn1qx7o
    @user-tu3yn1qx7o 2 года назад +9

    채승벽 박사님은 진짜 대단한사람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18MedCom
    @18MedCom 2 года назад +40

    박사님 실망입니다.
    실제 핵폭탄을 꺼내서 보여주실줄알았는데...

    • @mmanhb552
      @mmanhb552 2 года назад +2

      기계식 계산기보고 우라늄같은거 진짜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네여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원폭 개발을 처음 시작한 것은 미국-독일 아닌 영국.
      독일 폭격을 피해 캐나다로 이전, 영국 단독으로 자원과 비용을 댈 수 없게 되자
      이미 진행중이던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하며 최종적으로 미-영-캐 공동 맨허튼 프로젝트.
      티저드 미션, 1940년 8월 경 프랑스 항복 및 영국 항공전 위기 속에서
      미국의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처칠이 헨리 티저드가 이끄는 영국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 2차대전 내내 지속.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제공된 과학기술 목록은
      핵임계질량-레이더-마그네트론-근접신관-제트엔진-소나-암호해독...페니실린 등.
      핵무기 개발이 실제 가능하다는 최초의 확증인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받은 이후 미국도 원폭 개발에 본격 참여.
      핵임계질량 수치가 전달된 초기, 정보를 받았던 미국은 무시했으나 호주 출신의 영국팀 올리펀트가 유력한 미국 과학자들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 경고하며 결국 미국측도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인식 전환.
      핵무기 개발 과정 정리하면
      1. 1932년 중성자 발견, 영 채드윅
      1920년대 원자핵 변환을 통해 최초 인공 원소 변환했던 영 러더포드, 원소 변환의 원인으로서 중성자 예측.
      중성자는 전하 0 + 전자 보다 훨씬 무거운 조건 때문에 원자핵의 강력한 양전하 반발을 극복하고 핵을 부수는 망치 역활.
      채드윅은 영-캐 팀 단장으로 맨허튼 프로젝트 참여.
      2. 1938년 원자핵 분열 발견, 독 오토한과 마이트너
      중성자가 핵을 부수는 망치 방아쇠 역활을 한다는 최초의 확인.
      3. 1940년 7월경 영국 핵무기 개발 검토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 1941년 7월 무렵 핵무기 가능하다는 모드 위원회 첫 보고서
      독일의 원자핵 분열 소식에 영국은 독일의 핵무기 생산 가능성 우려.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전황이 지극 불리했지만, 1940년 7월경 핵무기가 실제 가능한지 조사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1년 뒤인 1941년 7월경 모드 위원회의 첫 보고서에, 핵무기 생산은 가능하다는 결론. 영국 핵무기 프로젝트 튜브 앨로이 시작.
      4. 1941년 8월 티저드 미션으로 미국에 모드 위원회 보고서 제공. 미국이 비로서 핵무기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 파악.
      핵임계질량이 미국에 전달되었지만 정보 받은 전문가들은 무시, 호주 출신의 영국 핵무기 개발팀 과학자 올리펀트는 미국의 유력
      과학자들을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을 전달 결국 미국 과학계가 대통령에게 건의해 미국 역시 핵무기 개발 시작.
      5. 1942년 10월경, 미국이 핵개발에서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
      6. 1943년 8월 쾨벡에서 미영은 핵무기 프로그램 통합 결정 + 핵무기 정보 공유 비밀 협정 체결.
      7. 1944년 미영 하이드 파크 협정으로 핵정보 공유 확인.
      8. 1945년 7월 최초 원폭 실험 성공
      9. 1946년 8월 미국 맥마흔 법, 핵기술과 정보의 해외 유출 금지. 영국과의 핵협정 미국이 깨트림.
      미국이 영국과의 핵협정을 파기하자 영국은 전후 파산 상태에서 독자 핵개발 시작. 1952년 원폭, 1957년 수폭 실험 성공.
      최종 정리하면 2차대전 발발 당시 독일과 영국은 핵무기 개발 직전 동일 출발선.
      독일은 초기 전격전의 대성공으로 핵무기 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영국은 극한의 위기 속에서
      혹이나 독일이 핵무장 먼저 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만 했기에 가장 먼저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든. 미국은 티저드 미션으로
      영국이 제공한 핵임계질량 등의 정보를 접한 이후에 비로서 핵무기 개발에 나선. 하지만 결국 풍부한 미국의 자원과 인력 과학기술
      기반이 맨허튼 프로젝트 주도해 핵무기 완성.
      관련 링크 때문인지 글이 삭제되어 링크를 제외하고 올립니다.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B-29 원폭 투하 임무 하마터면 랭커스터에게 빼았길뻔.
      b-29 아닌 랭커스터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훈련 : b-29 폭탄창 개조 혼선으로, 영공군 특임 부대 역시 원폭 투하 훈련.
      ruclips.net/video/5XX9ptCNpik/видео.html : Hiroshima 1945 - The British Atomic Attack
      B-29의 폭탄창은 2개로 커다란 원폭 수용 불가, 대형 폭탄창 1개로 개조 어려움 겪으며,
      만약을 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 폭격기 특수 임무 부대 차출해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 훈련도 함께 병행.
      랭커스터는 B-29 보다 짧았던 항속거리 때문에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원폭 투하 훈련을 했다고, 이미 43년 부터 수 백기의
      랭커스터가 공중급유기로 전환되었고,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실제 공중 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
      댐버스터 폭격대 이끌었던 가이 깁슨, 1944년 9월 모스키토 폭격기 임무 수행중 독 전투기와 교전 충돌 전사.
      ruclips.net/video/mx8uRwANfWU/видео.html : Dambusters - Guy Gibson Grave & Crash Site
      깁슨이 추락한 네덜란드 마을엔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그의 묘소가 있습니다.
      동영상의 댓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댐버스터 작전 성공 후 임무 해제되어 공군을 떠난 뒤 , 미국 방문했을 때 독일 상공으로의 작전 횟수
      얼마나 되냐는 질문. 깁슨의 답변은 174회였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폭격기 승무원들에게 부여된 의무로서의 작전 횟수를 몇 배 이상 초과했죠. (기억으로 미 폭격기 승무원들 30회 정도 임무 수행하면 귀국.)
      의무 복무 채운 상태에서 깁슨은 44년 다시 공군에 복귀. 모스키토 폭격기로 임무 수행중 독일 전투기와 교전하게 되었고, 충돌로 전사.
      당시 나이는 26세 중령 추서.
      (관련 댓글
      beefabob
      1년 전
      On 4 October 1943 Gibson began a tour of The United States and whilst in Washington DC., he attended a major Press Conference at the offices of the British Information Service in New York on 7 October. This was at a time when the first American airmen were coming home 'tour expired' after 25 operations. During questions one young lady asked, 'Wing Commander Gibson, how many operations have you been on over Germany?' He replied, 'One hundred and seventy-four.' There was a stunned silence" A truly great man.
      )
      영국공군 폭격기 사령부는 2차대전 중 약 36만5천회 출격, 약 100만톤 폭탄 투하, 폭격기 손실 약 8500대.
      투입 병력 약 12만5천 중, 전사 약 5만5천, 약 8천5백 부상, 약 1만명 포로 : 승무원 사망율은 약 45%에 달할 정도로 극도로 위험했습니다.
      독일의 폭격 피해 역시 막대해서, 폭격으로 사망 약 60만, 폭격에 대비하기 위한 독일의 방공포 병력 약 90만이었다고 합니다.
      독일 입장에서 2차대전 독일을 폭격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미국의 b-17이나 b-29가 아닌 랭커스터 폭격기.
      b-29는 종전 직전 태평양 전선에 투입되었기에 독일 폭격엔 사용되지 않았고, 거대한 b-17의 폭장량은 모스키토 폭격기와 비슷.
      랭카스터는 44년 이후엔 1발에 5톤, 10톤 하는 톨보이와 그랜드슬램으로 독일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랜드슬램은 너무 무거워
      투하하는 순간 랭커스터 폭격기 고도가 갑자기 위로 상승할 정도.
      랭커스터는 하마터면 히로시마 원폭을 투하할 뻔 했습니다.
      랭커스터의 폭탄창은 원폭을 별 다른 개조 없이 수용할 수 있었지만, 개발중이었던 b-29는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를 위한 개조 추가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미국과 영국은 개발 실패를 대비,
      영국 폭격기 사령부내 특수 임무 부대를 차출해 승무원들에게 임무를 밝히지 않고 (일본에 대한 초장거리) 폭격 훈련에 돌입.
      b-29 보다 일찍 나온 기종이라 고고도 성능과 항속거리에게 부족했던 랭커스터는 원폭 투하를 위해,
      공중급유를 포함한 훈련을 거쳤습니다. 이미 45년 당시에 대형 4발 폭격기가 공중급유를 받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군요.
      원폭을 탑재한 타이거 편대 출격은 동남아의 영국 공군기지 또는 태평양의 미군 기지였는데 랭커스터 항속거리 초과로 공중 급유 필수.
      원폭 투하 랭커스터 편대 이름은 타이거였습니다. 미국 입장에선 다행히도, 원폭 수용할 수 있는 개조가 성공해 타이거 편대는 임무 해제.
      (미국이 보유한 b-17, b-24 등은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 불가능. 새로 개발중인 b-29는 1개의 대형 폭탄창이 아닌, 2개의 폭탄창 구조라 원폭
      탑재 불가능, 기체 골격 자체를 변경해 폭탄창을 1개로 재설계해야 했는데 테스트 과정에서 몇 차례 실패했다고 하는군요. 히로시마 작전 투입
      직전에 폭탄창 개조가 완료. 영 랭커스터 폭격기는 폭탄창은 넉넉했지만, 항속거리 문제로 공중급유가 필요했는데 이미 1943년 이후 수백대의
      랭커스터기들이 급유기로 개조되었고, 실제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공중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내용 포함.)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이 영상에서는 핵폭탄의 폭발 원리에 집중되어,
      제한된 방송 시간 때문에 2차대전 동안 핵무기 개발이 진행된 큰 흐름 과정이 생략되었습니다.
      디테일과 시야각은 상보적이며,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는 잃게 됩니다.
      그리고 왜 중성자가 핵분열을 일으키는 망치인지 언급 생략.
      핵무기 및 핵발전, 핵에너지의 실용화는 중성자 발견 이후에 비로소 가능해진 겁니다.
      그 중성자는 이미 1920년대 캐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의 최초 핵변환 통한 인공 원소변환 때 예측된.
      교과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기본 입자, 전자-원자핵-양성자-중성자 이 단계 까지 모든 입자는 영국에서 확증된.
      독일은 우수한 과학기술 역량에도 불구하고,
      대전초 전격전 깃발 날리던 때에는 핵무기 개발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대전 중반 이후 전황이 악화된 이후엔 핵무기 개발 여력 자체가 없어져 핵무기 개발 시도도 하지 못한.
      2차대전 초 미국은 풍부한 자원, 인구에
      독일-영국 대비 크게 쳐지지 않은 과학기술 확보한 상태였지만 사실상 멍 때렸던.
      만일 영국이 티저드 미션을 통해 핵심 과학기술과 핵임계질량 정보 넘겨주지 않았다면 자력으로만 해내기 쉽지 않았을 것.
      아이디어 자체가 있어야 시도, 시도 해봐야 될지 안될지 결정된다는 점에서. 미국 자체 아이디어는 많이 부족했던.
      2차대전 미국은 사실 운수대통.
      전쟁 진행 중 영국에게서 첨단 과학기술 제공받고, 독일 항복 이후 많은 최상급 독일 과학기술자 확보.
      그리고 2차대전 당시 미국 폭격기들은 적 전투기로 부터 자체 방어 위해,
      폭장량을 희생하면서 규모에 비해 적은 폭탄 탑재량으로 거대한 b-17이 영국 합판으로 만든 중형 모스키토와 비슷한 수준.
      그렇게 자체 방어 능력 강화했어도 호위 전투기 없을 때는 엄청난 피해 입었습니다.
      폭탄창이 대체로 영국 폭격기에 비해 작았고, 가장 거대했던 b-29도 폭탄창 2개라 원폭 탑재가 어려웠던.
      여기 영상에서 그 역시 간단 언급되었는데, 큰 1개 폭탄창으로 개조 실패 대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도 핵투하 훈련 실시.

  • @user-lk4nq4mt4s
    @user-lk4nq4mt4s 2 года назад +14

    와... 핵분열 원리 대학때까지해서 몇번을 본것같은데
    진심 처음으로 쉽게 이해가 되네요 대단하십니다... 최고!

  • @user-rs1cf2db2d
    @user-rs1cf2db2d Год назад +2

    4분이서 친한지 가끔 반말 나오는게 좋음ㅋㅋㅋㅋㅋㅋㅋ

  • @justdoit5833
    @justdoit5833 2 года назад +7

    탁구공 비유가 미쳤네요 ㅋㅋㅋㅋㅋ

  • @aleksei5195
    @aleksei5195 2 года назад +8

    채 박사님 같은 분이 과학 교사였으면 과학 인재들 많이 나올듯요 ㅎㅎ

  • @user-xn1xx6zi7x
    @user-xn1xx6zi7x 2 года назад +12

    진짜 핵폭발 원리를 제대로 알고 갑니다 최고의 프로그램 >ㅁ

  • @user-tv4ey9qq8r
    @user-tv4ey9qq8r 2 года назад +7

    잠수함편이랑 더불어 역대급으로 재밌네요ㅋㅋㅋㅋ

  • @GB-pe5ki
    @GB-pe5ki 2 года назад +22

    드라마 을 보고나서도 몰랐던 핵 분열의 원리를
    여기서 깨우치고 가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ㅋㅋ
    다음 편이 삼국치로 치면 오장원 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후로도 계속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드네요.

    • @jlkim770
      @jlkim770 2 года назад +5

      삼국지는 오장원 이후로도 끝날때까지 기간이 1/4 정도 더 있는데 태평양전쟁도 그정도나 더 있는건가요?? 이렇게나 진행됐는데도 컨텐츠가 엄청 많네요.

  • @littleboy5093
    @littleboy5093 2 года назад +4

    내가 왔다.

  • @Beentomoon
    @Beentomoon 2 года назад +3

    오이오이 오래기다렸다구우~~

  • @ultexrock9194
    @ultexrock9194 2 года назад +7

    인사할 시간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아껴드릴 역전과학의 레알 짧은 과학, 긴급과학....

    • @user-sv1vp3vr4t
      @user-sv1vp3vr4t 2 года назад +4

      ㄹㅇ 채박사님 랩미팅 초대석 한번 마련해주셨으면

    • @user-tt4mj6lj5f
      @user-tt4mj6lj5f 2 года назад +2

      @@user-sv1vp3vr4t 침착맨 와서 군사민수 해줬으명 좋겠다 ㅠ

  • @user-ir1lc9ey9o
    @user-ir1lc9ey9o 2 года назад +7

    퇴근했는데 업로드가 딱 돼있네요
    즐감하겠습니당

  • @japs760410
    @japs760410 2 года назад +4

    아.... 계산자.......
    저 초등학교 때 썼던 기억이......
    우리학교가 구닥다리였는지,
    83년 까지는 주산까지 가르쳤슴......
    슬라이드 룰러는 다양한 현장에서
    아직도 유용하게 쓰일 거 같지만,
    다양한 계산기와 어플로 대체되었지요.

  • @rein3712
    @rein3712 2 года назад +7

    와....컴퓨터는 알고 있었는데 커서는 처음 알았어요....진짜 놀랐음....ㅋ 새로운거 배워갑니다 어디가서 써 먹을 수 있겠네요 ㅋㅋㅋ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First Known Use of cursor
      1594, in the meaning defined above ---------------> 위에서 정의한 의미란, 위치를 지시하기 위해 움직이는 지시선.
      -----------------------------------> 전 부터 정확한 위치를 지시하는 도구에 붙은 이름이며, 계산자의 위치 지시선에도 그대로 사용된.
      커서 단어의 어원은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어에 이르고 달린다-흐른다 의미라고.
      -----------------------------------> 화폐 통화를 의미하는 커런시 및 암호화폐를 의미하는 크립토 커런시와 같은 어원.
      즉 계산자의 지시자로서 커서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 아닌.
      계산자의 원리는 로그를 이용해 곱셈-나눗셈을 지수의 덧셈-뺄셈으로 바꾸는 것.
      로그는 네이피어가 1600년대 초에 도입한 수학 연산 방식, 계산자는 로그가 도입된 이후에 만들어졌기에
      커서라는 단어는 계산자 등장 이전 이미 존재하던 단어.
      하지만 의미 자체는 동일합니다. 계산자에서도 좌우로 움직이며-내달리며-흐르며 위치 지시하기에.
      First Known Use of computer
      1613, in the meaning defined above
      ----------------------------------------> 어지간 해선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찾기 정말 어렵습니다.
      ----------------------------------------> 특히 발명품이나 새로운 제도 아닌 이름-호칭에선 거의 다 전에 이미 존재하던 단어 가능성 큰.
      merriam-webster 영영사전 온라인, 단어 검색하면, 친절하게 그 단어가 처음 사용된 년도 (추적할 수 있으면) 소개됩니다.

  • @Kunpo123
    @Kunpo123 2 года назад +3

    드디어 역전다방 태평양전쟁편의 화룡점정을 찍을 원자폭탄이 모습을 드러냈군요. 이제 태평양전쟁편의 끝이 코앞까지 다가왔습니다. 장장 1년여의 시간을 지나 점점 다가오는 태평양전쟁편의 마지막, 흥미롭게 지켜보겠습니다.

  • @NG_0022
    @NG_0022 2 года назад +3

    36:53 진짜 둘이 합이 너무 잘맞아서 재밌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 @ManyPotSilonze
    @ManyPotSilonze 2 года назад +9

    컴퓨터는 리얼 충격이네 ㅋㅋㅋ 어원이 거기서 나왔구나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First Known Use of cursor
      1594, in the meaning defined above ---------------> 위에서 정의한 의미란, 위치를 지시하기 위해 움직이는 지시선.
      -----------------------------------> 전 부터 정확한 위치를 지시하는 도구에 붙은 이름이며, 계산자의 위치 지시선에도 그대로 사용된.
      커서 단어의 어원은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어에 이르고 달린다-흐른다 의미라고.
      -----------------------------------> 화폐 통화를 의미하는 커런시 및 암호화폐를 의미하는 크립토 커런시와 같은 어원.
      즉 계산자의 지시자로서 커서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 아닌.
      계산자의 원리는 로그를 이용해 곱셈-나눗셈을 지수의 덧셈-뺄셈으로 바꾸는 것.
      로그는 네이피어가 1600년대 초에 도입한 수학 연산 방식, 계산자는 로그가 도입된 이후에 만들어졌기에
      커서라는 단어는 계산자 등장 이전 이미 존재하던 단어.
      하지만 의미 자체는 동일합니다. 계산자에서도 좌우로 움직이며-내달리며-흐르며 위치 지시하기에.
      First Known Use of computer
      1613, in the meaning defined above
      ----------------------------------------> 어지간 해선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찾기 정말 어렵습니다.
      ----------------------------------------> 특히 발명품이나 새로운 제도 아닌 이름-호칭에선 거의 다 전에 이미 존재하던 단어 가능성 큰.
      merriam-webster 영영사전 온라인, 단어 검색하면, 친절하게 그 단어가 처음 사용된 년도 (추적할 수 있으면) 소개됩니다.

  • @user-sw4im6zc7w
    @user-sw4im6zc7w 2 года назад +13

    11:18 워낙 이전에 더 놀라운걸 교보재로 가져오셨기에 이런거에도 별로 놀라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18:30 평소에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이유와 실수들로 씬맨이 ㅋㅋㅋ

  • @1tomahawk752
    @1tomahawk752 2 года назад +2

    지출을 줄이는 것이 재테크의 기본... 오늘 가장 중요한 내용이네요

  • @user-xu9uy8ci6f
    @user-xu9uy8ci6f 2 года назад +3

    너무 좋은 유익하고 훌륭한 프로그램입니다. 오랫동안 방송해 주세요.

  • @user-hb4ub2gi7x
    @user-hb4ub2gi7x 2 года назад +5

    볼때마다 기가막힌다 정말 좋은 프로그램임

  • @user-yj9mm6ll9i
    @user-yj9mm6ll9i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오늘 알쓸별잡에서 모 교수님이 핵폭탄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그래서 다시 쉽게 이해 하려고 이 동영상 봤습니다. 채승병님 짱.

  • @user-lv2yc2rl5d
    @user-lv2yc2rl5d 2 года назад +2

    유투브 통틀어서 가장 기다려지는 수요일이에요.ㅋㅋㅋ

  • @claor1136
    @claor1136 2 года назад +3

    세계최초 원자폭탄 3종에 대한 비교를 들을 수 있다니 너무너무 흥미롭고 재미있는 컨텐츠네요. 그것도 알기 쉽게 잘 설명해주셔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였어요.
    감사드립니다.

  • @user-ir6tz7qz7j
    @user-ir6tz7qz7j 2 года назад +2

    이 프로그램은 다들 행복하고 재밌게 녹화하시는거 같아서 더 보기좋음ㅎ

  • @user-lr9ys7tm4q
    @user-lr9ys7tm4q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이번 편 엄청나네요.
    유익하고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네요.

  • @Wicle
    @Wicle 2 года назад +8

    역시 외교 파트가 있으니 재밌어요

  • @user-rk7in1nt8k
    @user-rk7in1nt8k 2 года назад +3

    매주마다 업로드만 기달리는 사람입니다
    너무 재미있고 유익합니다~~
    채박사님 화이팅~~~~

  • @user-nj6py3yl6h
    @user-nj6py3yl6h 2 года назад +2

    와 씨 진짜 재밌어
    미쳤다 이 프로그램
    5아이즈 환갑잔치 라이브로 방송할때까지 계속가자 역전다방

  • @spicewolf2223
    @spicewolf2223 2 года назад +19

    공중파에서 방영해도 손색없는 퀄리티에
    태평양전쟁 교보재로 써도 될 법한 높은 수준까지!

    • @zacharypark4268
      @zacharypark4268 2 года назад +5

      솔직히 지상파는 이정도 퀄리티의 반의 반도…ㅋㅋㅋㅋㅋㅋㅋ
      전문성도 없는 분들이 TV 나와서 가르치려 할때마다 정말 화났었는데 역전다방 보면서 지식 습득의 극쾌감 느끼고 갑니다 ㅎㅎ 네분+mc 다 진정한 전문가에요!

  • @bedenhelm
    @bedenhelm 2 года назад +4

    와 컴퓨터 커서는 기분좋은 충격이다 ㅋㅋㅋ 정말 좋은 프로야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First Known Use of cursor
      1594, in the meaning defined above ---------------> 위에서 정의한 의미란, 위치를 지시하기 위해 움직이는 지시선.
      -----------------------------------> 전 부터 정확한 위치를 지시하는 도구에 붙은 이름이며, 계산자의 위치 지시선에도 그대로 사용된.
      커서 단어의 어원은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어에 이르고 달린다-흐른다 의미라고.
      -----------------------------------> 화폐 통화를 의미하는 커런시 및 암호화폐를 의미하는 크립토 커런시와 같은 어원.
      즉 계산자의 지시자로서 커서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 아닌.
      계산자의 원리는 로그를 이용해 곱셈-나눗셈을 지수의 덧셈-뺄셈으로 바꾸는 것.
      로그는 네이피어가 1600년대 초에 도입한 수학 연산 방식, 계산자는 로그가 도입된 이후에 만들어졌기에
      커서라는 단어는 계산자 등장 이전 이미 존재하던 단어.
      하지만 의미 자체는 동일합니다. 계산자에서도 좌우로 움직이며-내달리며-흐르며 위치 지시하기에.
      First Known Use of computer
      1613, in the meaning defined above
      ----------------------------------------> 어지간 해선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찾기 정말 어렵습니다.
      ----------------------------------------> 특히 발명품이나 새로운 제도 아닌 이름-호칭에선 거의 다 전에 이미 존재하던 단어 가능성 큰.
      merriam-webster 영영사전 온라인, 단어 검색하면, 친절하게 그 단어가 처음 사용된 년도 (추적할 수 있으면) 소개됩니다.

    • @bedenhelm
      @bedenhelm 2 года назад

      @@scz8333 아 기분 좋았었는데.........

  • @cz_line9051
    @cz_line9051 2 года назад +3

    와 오늘도 정말 알차고 재밌었습니다
    다음주까지 어떻게 기다리냐!

  • @user-bs3bf2xm9j
    @user-bs3bf2xm9j 2 года назад +7

    오늘은 핵다방/ 사이언스 다방

  • @KDX1945
    @KDX1945 2 года назад +11

    존X 재밋네.

    • @zacharypark4268
      @zacharypark4268 2 года назад +7

      딱 똑같이 생각했는데 ㅋㅋㅋ 욕나오게 재밌다고 ㅋㅋㅋ

  • @Driden3
    @Driden3 2 года назад +10

    1주일을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 ㅎㅎ 태평양전쟁 끝나면 자연스럽게 6.25 해주시면 대단히 감사드리겠습니다.

    • @user-lh5bv2pt2w
      @user-lh5bv2pt2w 2 года назад +2

      유고내전한다고 합니다.전에 다음 편 뭐할지 각자 쓴 다음 무슨 편으로 할지 뽑으셨는데
      누가 쓴건지 가물가물한데(아마 샤를 세환님이 쓴것인듯)유고 내전으로 뽑아서 다음편은 유고내전 하시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고내전하면서 지금 진행중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도 조금 다루신다 합니다.(우크라이나 전쟁 특별편이 있긴 했습니다만)

  • @sean7082
    @sean7082 2 года назад +11

    물리 시간에 배워서 중성자를 쏴서 핵분열 시킨다는 것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평생 "어떻게 폭탄 내부에서 중성자를 가속 시켜서 핵분열을 일으키지?"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입자 가속기는 굉장히 크니까요.), 그 의문이 오늘 풀렸네요. 임계 상태로 몰아넣기 위해, 가속해서 충격을 주거나, 폭축 시키는 것이었군요. 의외로 굉장히 간단한 방법이 있었군요. 거의 콜럼부스 달걀 수준이네요.
    그나저나 비교적 조용히 계시던 샤를님 마지막에 "사실 상의 냉전의 시작이죠"이라고 말씀하실 때 포스가 느껴졌습니다.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중성자를 가속시켜 임계질량 이상의 큰 핵물질 덩어리 타격해 핵폭발시키는 것 아닌,
      안전을 위해 임계질량 보다 작은 덩어리의 핵물질들을 내압 폭발 가속시켜 좁은 영역에 높은 밀도로 밀어 넣어,
      --------------------------------------------------------------> 핵 임계질량에 도달, 핵 폭발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
      --------------------------------------------------------------> 그래서 중성자 대량 발생원도 외부가 아닌 중심부에 배치.
      ---------------------------------> 즉 입자가속기로 가속하는 중성자 아닐 겁니다.
      그리고 중성자 속도가 너무 빨라도,
      핵분열 안 일어납니다. 골프공이 너무 빠른 속도로 홀 위를 지나갈 때는 그냥 통과하듯.
      핵물질을 좁은 영역에 밀어 넣어 임계 질량에 도달하게 하는 핵물질 가속으로 해석해야.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원폭 개발을 처음 시작한 것은 미국-독일 아닌 영국.
      독일 폭격을 피해 캐나다로 이전, 영국 단독으로 자원과 비용을 댈 수 없게 되자
      이미 진행중이던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하며 최종적으로 미-영-캐 공동 맨허튼 프로젝트.
      티저드 미션, 1940년 8월 경 프랑스 항복 및 영국 항공전 위기 속에서
      미국의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처칠이 헨리 티저드가 이끄는 영국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 2차대전 내내 지속.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제공된 과학기술 목록은
      핵임계질량-레이더-마그네트론-근접신관-제트엔진-소나-암호해독...페니실린 등.
      핵무기 개발이 실제 가능하다는 최초의 확증인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받은 이후 미국도 원폭 개발에 본격 참여.
      핵임계질량 수치가 전달된 초기, 정보를 받았던 미국은 무시했으나 호주 출신의 영국팀 올리펀트가 유력한 미국 과학자들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 경고하며 결국 미국측도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인식 전환.
      핵무기 개발 과정 정리하면
      1. 1932년 중성자 발견, 영 채드윅
      1920년대 원자핵 변환을 통해 최초 인공 원소 변환했던 영 러더포드, 원소 변환의 원인으로서 중성자 예측.
      중성자는 전하 0 + 전자 보다 훨씬 무거운 조건 때문에 원자핵의 강력한 양전하 반발을 극복하고 핵을 부수는 망치 역활.
      채드윅은 영-캐 팀 단장으로 맨허튼 프로젝트 참여.
      2. 1938년 원자핵 분열 발견, 독 오토한과 마이트너
      중성자가 핵을 부수는 망치 방아쇠 역활을 한다는 최초의 확인.
      3. 1940년 7월경 영국 핵무기 개발 검토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 1941년 7월 무렵 핵무기 가능하다는 모드 위원회 첫 보고서
      독일의 원자핵 분열 소식에 영국은 독일의 핵무기 생산 가능성 우려.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전황이 지극 불리했지만, 1940년 7월경 핵무기가 실제 가능한지 조사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1년 뒤인 1941년 7월경 모드 위원회의 첫 보고서에, 핵무기 생산은 가능하다는 결론. 영국 핵무기 프로젝트 튜브 앨로이 시작.
      4. 1941년 8월 티저드 미션으로 미국에 모드 위원회 보고서 제공. 미국이 비로서 핵무기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 파악.
      핵임계질량이 미국에 전달되었지만 정보 받은 전문가들은 무시, 호주 출신의 영국 핵무기 개발팀 과학자 올리펀트는 미국의 유력
      과학자들을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을 전달 결국 미국 과학계가 대통령에게 건의해 미국 역시 핵무기 개발 시작.
      5. 1942년 10월경, 미국이 핵개발에서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
      6. 1943년 8월 쾨벡에서 미영은 핵무기 프로그램 통합 결정 + 핵무기 정보 공유 비밀 협정 체결.
      7. 1944년 미영 하이드 파크 협정으로 핵정보 공유 확인.
      8. 1945년 7월 최초 원폭 실험 성공
      9. 1946년 8월 미국 맥마흔 법, 핵기술과 정보의 해외 유출 금지. 영국과의 핵협정 미국이 깨트림.
      미국이 영국과의 핵협정을 파기하자 영국은 전후 파산 상태에서 독자 핵개발 시작. 1952년 원폭, 1957년 수폭 실험 성공.
      최종 정리하면 2차대전 발발 당시 독일과 영국은 핵무기 개발 직전 동일 출발선.
      독일은 초기 전격전의 대성공으로 핵무기 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영국은 극한의 위기 속에서
      혹이나 독일이 핵무장 먼저 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만 했기에 가장 먼저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든. 미국은 티저드 미션으로
      영국이 제공한 핵임계질량 등의 정보를 접한 이후에 비로서 핵무기 개발에 나선. 하지만 결국 풍부한 미국의 자원과 인력 과학기술
      기반이 맨허튼 프로젝트 주도해 핵무기 완성.
      관련 링크 때문인지 글이 삭제되어 링크를 제외하고 다시 올립니다.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B-29 원폭 투하 임무 하마터면 랭커스터에게 빼았길뻔.
      b-29 아닌 랭커스터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훈련 : b-29 폭탄창 개조 혼선으로, 영공군 특임 부대 역시 원폭 투하 훈련.
      ruclips.net/video/5XX9ptCNpik/видео.html : Hiroshima 1945 - The British Atomic Attack
      B-29의 폭탄창은 2개로 커다란 원폭 수용 불가, 대형 폭탄창 1개로 개조 어려움 겪으며,
      만약을 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 폭격기 특수 임무 부대 차출해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 훈련도 함께 병행.
      랭커스터는 B-29 보다 짧았던 항속거리 때문에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원폭 투하 훈련을 했다고, 이미 43년 부터 수 백기의
      랭커스터가 공중급유기로 전환되었고,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실제 공중 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
      댐버스터 폭격대 이끌었던 가이 깁슨, 1944년 9월 모스키토 폭격기 임무 수행중 독 전투기와 교전 충돌 전사.
      ruclips.net/video/mx8uRwANfWU/видео.html : Dambusters - Guy Gibson Grave & Crash Site
      깁슨이 추락한 네덜란드 마을엔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그의 묘소가 있습니다.
      동영상의 댓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댐버스터 작전 성공 후 임무 해제되어 공군을 떠난 뒤 , 미국 방문했을 때 독일 상공으로의 작전 횟수
      얼마나 되냐는 질문. 깁슨의 답변은 174회였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폭격기 승무원들에게 부여된 의무로서의 작전 횟수를 몇 배 이상 초과했죠. (기억으로 미 폭격기 승무원들 30회 정도 임무 수행하면 귀국.)
      의무 복무 채운 상태에서 깁슨은 44년 다시 공군에 복귀. 모스키토 폭격기로 임무 수행중 독일 전투기와 교전하게 되었고, 충돌로 전사.
      당시 나이는 26세 중령 추서.
      (관련 댓글
      beefabob
      1년 전
      On 4 October 1943 Gibson began a tour of The United States and whilst in Washington DC., he attended a major Press Conference at the offices of the British Information Service in New York on 7 October. This was at a time when the first American airmen were coming home 'tour expired' after 25 operations. During questions one young lady asked, 'Wing Commander Gibson, how many operations have you been on over Germany?' He replied, 'One hundred and seventy-four.' There was a stunned silence" A truly great man.
      )
      영국공군 폭격기 사령부는 2차대전 중 약 36만5천회 출격, 약 100만톤 폭탄 투하, 폭격기 손실 약 8500대.
      투입 병력 약 12만5천 중, 전사 약 5만5천, 약 8천5백 부상, 약 1만명 포로 : 승무원 사망율은 약 45%에 달할 정도로 극도로 위험했습니다.
      독일의 폭격 피해 역시 막대해서, 폭격으로 사망 약 60만, 폭격에 대비하기 위한 독일의 방공포 병력 약 90만이었다고 합니다.
      독일 입장에서 2차대전 독일을 폭격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미국의 b-17이나 b-29가 아닌 랭커스터 폭격기.
      b-29는 종전 직전 태평양 전선에 투입되었기에 독일 폭격엔 사용되지 않았고, 거대한 b-17의 폭장량은 모스키토 폭격기와 비슷.
      랭카스터는 44년 이후엔 1발에 5톤, 10톤 하는 톨보이와 그랜드슬램으로 독일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랜드슬램은 너무 무거워
      투하하는 순간 랭커스터 폭격기 고도가 갑자기 위로 상승할 정도.
      랭커스터는 하마터면 히로시마 원폭을 투하할 뻔 했습니다.
      랭커스터의 폭탄창은 원폭을 별 다른 개조 없이 수용할 수 있었지만, 개발중이었던 b-29는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를 위한 개조 추가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미국과 영국은 개발 실패를 대비,
      영국 폭격기 사령부내 특수 임무 부대를 차출해 승무원들에게 임무를 밝히지 않고 (일본에 대한 초장거리) 폭격 훈련에 돌입.
      b-29 보다 일찍 나온 기종이라 고고도 성능과 항속거리에게 부족했던 랭커스터는 원폭 투하를 위해,
      공중급유를 포함한 훈련을 거쳤습니다. 이미 45년 당시에 대형 4발 폭격기가 공중급유를 받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군요.
      원폭을 탑재한 타이거 편대 출격은 동남아의 영국 공군기지 또는 태평양의 미군 기지였는데 랭커스터 항속거리 초과로 공중 급유 필수.
      원폭 투하 랭커스터 편대 이름은 타이거였습니다. 미국 입장에선 다행히도, 원폭 수용할 수 있는 개조가 성공해 타이거 편대는 임무 해제.
      (미국이 보유한 b-17, b-24 등은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 불가능. 새로 개발중인 b-29는 1개의 대형 폭탄창이 아닌, 2개의 폭탄창 구조라 원폭
      탑재 불가능, 기체 골격 자체를 변경해 폭탄창을 1개로 재설계해야 했는데 테스트 과정에서 몇 차례 실패했다고 하는군요. 히로시마 작전 투입
      직전에 폭탄창 개조가 완료. 영 랭커스터 폭격기는 폭탄창은 넉넉했지만, 항속거리 문제로 공중급유가 필요했는데 이미 1943년 이후 수백대의
      랭커스터기들이 급유기로 개조되었고, 실제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공중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내용 포함.)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이 영상에서는 핵폭탄의 폭발 원리에 집중되어,
      제한된 방송 시간 때문에 2차대전 동안 핵무기 개발이 진행된 큰 흐름 과정이 생략되었습니다.
      디테일과 시야각은 상보적이며,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는 잃게 됩니다.
      그리고 왜 중성자가 핵분열을 일으키는 망치인지 언급 생략.
      핵무기 및 핵발전, 핵에너지의 실용화는 중성자 발견 이후에 비로소 가능해진 겁니다.
      그 중성자는 이미 1920년대 캐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의 최초 핵변환 통한 인공 원소변환 때 예측된.
      교과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기본 입자, 전자-원자핵-양성자-중성자 이 단계 까지 모든 입자는 영국에서 확증된.
      독일은 우수한 과학기술 역량에도 불구하고,
      대전초 전격전 깃발 날리던 때에는 핵무기 개발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대전 중반 이후 전황이 악화된 이후엔 핵무기 개발 여력 자체가 없어져 핵무기 개발 시도도 하지 못한.
      2차대전 초 미국은 풍부한 자원, 인구에
      독일-영국 대비 크게 쳐지지 않은 과학기술 확보한 상태였지만 사실상 멍 때렸던.
      만일 영국이 티저드 미션을 통해 핵심 과학기술과 핵임계질량 정보 넘겨주지 않았다면 자력으로만 해내기 쉽지 않았을 것.
      아이디어 자체가 있어야 시도, 시도 해봐야 될지 안될지 결정된다는 점에서. 미국 자체 아이디어는 많이 부족했던.
      2차대전 미국은 사실 운수대통.
      전쟁 진행 중 영국에게서 첨단 과학기술 제공받고, 독일 항복 이후 많은 최상급 독일 과학기술자 확보.
      그리고 2차대전 당시 미국 폭격기들은 적 전투기로 부터 자체 방어 위해,
      폭장량을 희생하면서 규모에 비해 적은 폭탄 탑재량으로 거대한 b-17이 영국 합판으로 만든 중형 모스키토와 비슷한 수준.
      그렇게 자체 방어 능력 강화했어도 호위 전투기 없을 때는 엄청난 피해 입었습니다.
      폭탄창이 대체로 영국 폭격기에 비해 작았고, 가장 거대했던 b-29도 폭탄창 2개라 원폭 탑재가 어려웠던.
      여기 영상에서 그 역시 간단 언급되었는데, 큰 1개 폭탄창으로 개조 실패 대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도 핵투하 훈련 실시.

    • @sean7082
      @sean7082 2 года назад

      @@scz8333 어, 음. 첫번째 임계 상태로 몰아넣기 위해, 가속해서 충격을 준다는 부분은 Thin man 이야기였는데요. (임계 상태가 되게 하기 위해 한쪽을 가속시키잖아요?) 폭축 부분은 지금 설명하신 Fat man이고...
      설명 자세히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user-oo9ix9fn1k
    @user-oo9ix9fn1k Год назад +2

    우와!!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쉽고 재밌게 설명해주시네요.
    허준님 의외의 똑똑함ㅋㅋ 대박!!

  • @seungbumheo6958
    @seungbumheo6958 2 года назад +9

    저는 역전다방을 위해 수요일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다만 정신없이 지나가는 일주일중 역전다방이 나오는 날에 아 수요일이라는걸 깨닫습니다. 그나저나 채박사님 정말많이배워갑니다. 이거 위키글로는 아무리봐도 이해안되던데 ㅠ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원폭 개발을 처음 시작한 것은 미국-독일 아닌 영국.
      독일 폭격을 피해 캐나다로 이전, 영국 단독으로 자원과 비용을 댈 수 없게 되자
      이미 진행중이던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하며 최종적으로 미-영-캐 공동 맨허튼 프로젝트.
      티저드 미션, 1940년 8월 경 프랑스 항복 및 영국 항공전 위기 속에서
      미국의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처칠이 헨리 티저드가 이끄는 영국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 2차대전 내내 지속.
      티저드 미션을 통해 미국에 제공된 과학기술 목록은
      핵임계질량-레이더-마그네트론-근접신관-제트엔진-소나-암호해독...페니실린 등.
      핵무기 개발이 실제 가능하다는 최초의 확증인 핵임계질량 수치를 제공받은 이후 미국도 원폭 개발에 본격 참여.
      핵임계질량 수치가 전달된 초기, 정보를 받았던 미국은 무시했으나 호주 출신의 영국팀 올리펀트가 유력한 미국 과학자들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 경고하며 결국 미국측도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인식 전환.
      핵무기 개발 과정 정리하면
      1. 1932년 중성자 발견, 영 채드윅
      1920년대 원자핵 변환을 통해 최초 인공 원소 변환했던 영 러더포드, 원소 변환의 원인으로서 중성자 예측.
      중성자는 전하 0 + 전자 보다 훨씬 무거운 조건 때문에 원자핵의 강력한 양전하 반발을 극복하고 핵을 부수는 망치 역활.
      채드윅은 영-캐 팀 단장으로 맨허튼 프로젝트 참여.
      2. 1938년 원자핵 분열 발견, 독 오토한과 마이트너
      중성자가 핵을 부수는 망치 방아쇠 역활을 한다는 최초의 확인.
      3. 1940년 7월경 영국 핵무기 개발 검토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 1941년 7월 무렵 핵무기 가능하다는 모드 위원회 첫 보고서
      독일의 원자핵 분열 소식에 영국은 독일의 핵무기 생산 가능성 우려.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전황이 지극 불리했지만, 1940년 7월경 핵무기가 실제 가능한지 조사 위한 모드 위원회 출범.
      1년 뒤인 1941년 7월경 모드 위원회의 첫 보고서에, 핵무기 생산은 가능하다는 결론. 영국 핵무기 프로젝트 튜브 앨로이 시작.
      4. 1941년 8월 티저드 미션으로 미국에 모드 위원회 보고서 제공. 미국이 비로서 핵무기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 파악.
      핵임계질량이 미국에 전달되었지만 정보 받은 전문가들은 무시, 호주 출신의 영국 핵무기 개발팀 과학자 올리펀트는 미국의 유력
      과학자들을 방문해 사안의 심각성을 전달 결국 미국 과학계가 대통령에게 건의해 미국 역시 핵무기 개발 시작.
      5. 1942년 10월경, 미국이 핵개발에서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
      6. 1943년 8월 쾨벡에서 미영은 핵무기 프로그램 통합 결정 + 핵무기 정보 공유 비밀 협정 체결.
      7. 1944년 미영 하이드 파크 협정으로 핵정보 공유 확인.
      8. 1945년 7월 최초 원폭 실험 성공
      9. 1946년 8월 미국 맥마흔 법, 핵기술과 정보의 해외 유출 금지. 영국과의 핵협정 미국이 깨트림.
      미국이 영국과의 핵협정을 파기하자 영국은 전후 파산 상태에서 독자 핵개발 시작. 1952년 원폭, 1957년 수폭 실험 성공.
      최종 정리하면 2차대전 발발 당시 독일과 영국은 핵무기 개발 직전 동일 출발선.
      독일은 초기 전격전의 대성공으로 핵무기 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영국은 극한의 위기 속에서
      혹이나 독일이 핵무장 먼저 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만 했기에 가장 먼저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든. 미국은 티저드 미션으로
      영국이 제공한 핵임계질량 등의 정보를 접한 이후에 비로서 핵무기 개발에 나선. 하지만 결국 풍부한 미국의 자원과 인력 과학기술
      기반이 맨허튼 프로젝트 주도해 핵무기 완성.
      관련 링크 때문인지 글이 삭제되어 링크를 제외하고 올립니다.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B-29 원폭 투하 임무 하마터면 랭커스터에게 빼았길뻔.
      b-29 아닌 랭커스터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훈련 : b-29 폭탄창 개조 혼선으로, 영공군 특임 부대 역시 원폭 투하 훈련.
      ruclips.net/video/5XX9ptCNpik/видео.html : Hiroshima 1945 - The British Atomic Attack
      B-29의 폭탄창은 2개로 커다란 원폭 수용 불가, 대형 폭탄창 1개로 개조 어려움 겪으며,
      만약을 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 폭격기 특수 임무 부대 차출해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 훈련도 함께 병행.
      랭커스터는 B-29 보다 짧았던 항속거리 때문에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원폭 투하 훈련을 했다고, 이미 43년 부터 수 백기의
      랭커스터가 공중급유기로 전환되었고,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실제 공중 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
      댐버스터 폭격대 이끌었던 가이 깁슨, 1944년 9월 모스키토 폭격기 임무 수행중 독 전투기와 교전 충돌 전사.
      ruclips.net/video/mx8uRwANfWU/видео.html : Dambusters - Guy Gibson Grave & Crash Site
      깁슨이 추락한 네덜란드 마을엔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그의 묘소가 있습니다.
      동영상의 댓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댐버스터 작전 성공 후 임무 해제되어 공군을 떠난 뒤 , 미국 방문했을 때 독일 상공으로의 작전 횟수
      얼마나 되냐는 질문. 깁슨의 답변은 174회였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폭격기 승무원들에게 부여된 의무로서의 작전 횟수를 몇 배 이상 초과했죠. (기억으로 미 폭격기 승무원들 30회 정도 임무 수행하면 귀국.)
      의무 복무 채운 상태에서 깁슨은 44년 다시 공군에 복귀. 모스키토 폭격기로 임무 수행중 독일 전투기와 교전하게 되었고, 충돌로 전사.
      당시 나이는 26세 중령 추서.
      (관련 댓글
      beefabob
      1년 전
      On 4 October 1943 Gibson began a tour of The United States and whilst in Washington DC., he attended a major Press Conference at the offices of the British Information Service in New York on 7 October. This was at a time when the first American airmen were coming home 'tour expired' after 25 operations. During questions one young lady asked, 'Wing Commander Gibson, how many operations have you been on over Germany?' He replied, 'One hundred and seventy-four.' There was a stunned silence" A truly great man.
      )
      영국공군 폭격기 사령부는 2차대전 중 약 36만5천회 출격, 약 100만톤 폭탄 투하, 폭격기 손실 약 8500대.
      투입 병력 약 12만5천 중, 전사 약 5만5천, 약 8천5백 부상, 약 1만명 포로 : 승무원 사망율은 약 45%에 달할 정도로 극도로 위험했습니다.
      독일의 폭격 피해 역시 막대해서, 폭격으로 사망 약 60만, 폭격에 대비하기 위한 독일의 방공포 병력 약 90만이었다고 합니다.
      독일 입장에서 2차대전 독일을 폭격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미국의 b-17이나 b-29가 아닌 랭커스터 폭격기.
      b-29는 종전 직전 태평양 전선에 투입되었기에 독일 폭격엔 사용되지 않았고, 거대한 b-17의 폭장량은 모스키토 폭격기와 비슷.
      랭카스터는 44년 이후엔 1발에 5톤, 10톤 하는 톨보이와 그랜드슬램으로 독일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랜드슬램은 너무 무거워
      투하하는 순간 랭커스터 폭격기 고도가 갑자기 위로 상승할 정도.
      랭커스터는 하마터면 히로시마 원폭을 투하할 뻔 했습니다.
      랭커스터의 폭탄창은 원폭을 별 다른 개조 없이 수용할 수 있었지만, 개발중이었던 b-29는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를 위한 개조 추가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미국과 영국은 개발 실패를 대비,
      영국 폭격기 사령부내 특수 임무 부대를 차출해 승무원들에게 임무를 밝히지 않고 (일본에 대한 초장거리) 폭격 훈련에 돌입.
      b-29 보다 일찍 나온 기종이라 고고도 성능과 항속거리에게 부족했던 랭커스터는 원폭 투하를 위해,
      공중급유를 포함한 훈련을 거쳤습니다. 이미 45년 당시에 대형 4발 폭격기가 공중급유를 받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군요.
      원폭을 탑재한 타이거 편대 출격은 동남아의 영국 공군기지 또는 태평양의 미군 기지였는데 랭커스터 항속거리 초과로 공중 급유 필수.
      원폭 투하 랭커스터 편대 이름은 타이거였습니다. 미국 입장에선 다행히도, 원폭 수용할 수 있는 개조가 성공해 타이거 편대는 임무 해제.
      (미국이 보유한 b-17, b-24 등은 폭탄창이 작아 원폭 탑재 불가능. 새로 개발중인 b-29는 1개의 대형 폭탄창이 아닌, 2개의 폭탄창 구조라 원폭
      탑재 불가능, 기체 골격 자체를 변경해 폭탄창을 1개로 재설계해야 했는데 테스트 과정에서 몇 차례 실패했다고 하는군요. 히로시마 작전 투입
      직전에 폭탄창 개조가 완료. 영 랭커스터 폭격기는 폭탄창은 넉넉했지만, 항속거리 문제로 공중급유가 필요했는데 이미 1943년 이후 수백대의
      랭커스터기들이 급유기로 개조되었고, 실제 랭커스터 폭격기에 대한 공중급유도 44년에 프루브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내용 포함.)

    • @scz8333
      @scz8333 2 года назад

      이 영상에서는 핵폭탄의 폭발 원리에 집중되어,
      제한된 방송 시간 때문에 2차대전 동안 핵무기 개발이 진행된 큰 흐름 과정이 생략되었습니다.
      디테일과 시야각은 상보적이며,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는 잃게 됩니다.
      그리고 왜 중성자가 핵분열을 일으키는 망치인지 언급 생략.
      핵무기 및 핵발전, 핵에너지의 실용화는 중성자 발견 이후에 비로소 가능해진 겁니다.
      그 중성자는 이미 1920년대 캐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의 최초 핵변환 통한 인공 원소변환 때 예측된.
      교과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기본 입자, 전자-원자핵-양성자-중성자 이 단계 까지 모든 입자는 영국에서 확증된.
      독일은 우수한 과학기술 역량에도 불구하고,
      대전초 전격전 깃발 날리던 때에는 핵무기 개발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대전 중반 이후 전황이 악화된 이후엔 핵무기 개발 여력 자체가 없어져 핵무기 개발 시도도 하지 못한.
      2차대전 초 미국은 풍부한 자원, 인구에
      독일-영국 대비 크게 쳐지지 않은 과학기술 확보한 상태였지만 사실상 멍 때렸던.
      만일 영국이 티저드 미션을 통해 핵심 과학기술과 핵임계질량 정보 넘겨주지 않았다면 자력으로만 해내기 쉽지 않았을 것.
      아이디어 자체가 있어야 시도, 시도 해봐야 될지 안될지 결정된다는 점에서. 미국 자체 아이디어는 많이 부족했던.
      2차대전 미국은 사실 운수대통.
      전쟁 진행 중 영국에게서 첨단 과학기술 제공받고, 독일 항복 이후 많은 최상급 독일 과학기술자 확보.
      그리고 2차대전 당시 미국 폭격기들은 적 전투기로 부터 자체 방어 위해,
      폭장량을 희생하면서 규모에 비해 적은 폭탄 탑재량으로 거대한 b-17이 영국 합판으로 만든 중형 모스키토와 비슷한 수준.
      그렇게 자체 방어 능력 강화했어도 호위 전투기 없을 때는 엄청난 피해 입었습니다.
      폭탄창이 대체로 영국 폭격기에 비해 작았고, 가장 거대했던 b-29도 폭탄창 2개라 원폭 탑재가 어려웠던.
      여기 영상에서 그 역시 간단 언급되었는데, 큰 1개 폭탄창으로 개조 실패 대비해 영국공군 랭커스터도 핵투하 훈련 실시.

  • @a-jin1309
    @a-jin1309 2 года назад +2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봐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