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의 군사력은 어땠을까? 중국전쟁사의 변천사 3부 최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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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4 ноя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16

  • @miya0714
    @miya0714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지나가는 대한민국 역덕인데요 항삼잼을 흥미유발을 놓치지않고 분명히 고생해 만들었는데걍보셈요 해주셔서 님 제생각에 일반인 범인 아니고 대인배 기질이네요 물러감다 고맙습니다 잘봅니다 ❤하트는걍 고맙다고 고백절대아님 의미부여 ㄴㄴ 절대 이남자 진심이다 받아줘야겠다 ㄴㄴ 두주먹 불끈 쥐겠습니다 진짜 참 감사합니다 😅❤

  • @kil-subchae6703
    @kil-subchae6703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역사돋보기를 시청합니다.

  • @kenny342
    @kenny342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송나라부터 화기가 발달했다기 보다 지도를 보면 목장을 잃었기에 보병이 위주죠..

  • @정도전-x9w
    @정도전-x9w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신립이 패했던 이유도 이러한점 때문이었죠 여진족이 기마민족한테는 통하는 전술을
    신립장군이 대패했던것도 보병 조총위주의 일본군한테 전술이나 전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것이 크죠 반대로 이순신은 일본군에 조총이나 전술을 제대로 파악하고 훈련이나 군사들 전술을 편성했죠
    한마디로 일본군이 장점을 발휘하기 어렵게 해버렸죠

    • @chriskim2958
      @chriskim2958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지형문제가 컸죠. 한반도는 기마병보다 진형과 진지를 만들어 화포 조총을 쏘면 더 유리한게 맞음. 근데 만주는 다름. 그 예가 가토가 함경도까지 점령후 여진족까지 우습게 보고 더 위로 올라가서 원래 하던대로 창술과 조청중심의 보병으로 붙었으나 결국 여진족 기마병에 털려서 함경도로 바로 도망쳐 나옴.

  • @AppleJimed
    @AppleJimed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7

    덩사오핑의 개혁 이전 중공군이 예비군과 아녀자들로 이루어진 오합지졸 베트남 방어군에게 1대1에 가까운 굴욕적인 교환비를 당하고 결국 빤스런친 중월전쟁을 언급하지 않은게 아쉽네요

  • @최준영-f7z
    @최준영-f7z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철령위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가요 ?

  • @시크릿미라클
    @시크릿미라클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이 여송장군 * 진린 등자룡 장군 조선땅 왔었죠 😮

  • @레이오트
    @레이오트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4

    결론 : 중국의 역사는 군벌의 역사다.

    • @user-sd8fe8ij7l
      @user-sd8fe8ij7l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중화인민공화국전까진 군벌이 존재했지. 청나라때도 북양군벌 있고

  • @bca5612
    @bca5612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미국의 베트남전 이후에 벌어진 중국 배트남의 짧은 전쟁언급이 없는 것이 아쉽네요.

  • @호롱방
    @호롱방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아 중국놈들 사극에 왜수염을 안붙혀 먼코스프레 연극찍나 저러니 리얼리티 디테일이 없지

  • @고구려-x1h
    @고구려-x1h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최근 우리나라에서 드라마 [연인]의 방영을 계기로 이 드라마의 배경시대인 병자호란 때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잠깐 가도의 모문룡 이름이 나왔지만 병자호란이 끝나고 청나라가 가도의 명나라군을 칠려고
    조선에 파병을 요청했는데 이 때 파병된 조선군의 사령관이 병자호란 때 강원도 김화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조선에게 몇 안되는 승리를 안겨준 김화전투의 조선군을 지휘한 유림장군 이었습니다.
    이후 청나라는 명나라의 금주를 공격할 때도 조선에 파병을 요구했는데 이 때도 조선군을 이끈 사령관이
    유림장군 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측 기록에는 조선군은 적극적으로 나서 싸우지 않았다고 돼있지만 다른 기록에선 청나라 황제가 조선군 지휘부를
    불러 공적을 치하했다고 한걸 보면 조선군이 파병될 때 마다 나름 활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청나라 말기 우리나라는 대한제국일 때 중국인 도적떼들이나 의화단 잔당들이 국경을 넘어와 약탈을 일삼자
    대한제국은 창기병을 선봉으로 군대를 월경해 만주땅으로 보내 중국 도적떼들과 의화단 잔당들을 토발하게 합니다.
    나라가 엉망진창이라 만주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청나라는 처음엔 대한제국이 대신 만주의 치안을 유지해준다고
    오히려 고마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만주로 넘어와 사는 한국인들이 늘어가고 대한제국이 이를 계기로 청나라인들을 쫓아내고
    한국인들이 사는 만주땅을 대한제국 영토로 편입시켜 통치하기 시작하자 분노한 청나라는 나라가 어려운 와중에도
    군대를 보내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대한제국군과 여러차례 전투를 벌였다는데요.
    놀랍게도(?) 청나라와 대한제국 양국 군대의 만주지역을 두고 벌어진 전투에서 대한제국군이 전승을 거뒀다고 합니다.
    그렇게 대한제국의 고토회복의 꿈이 이루어지나 했지만 만주지역을 탐내며 대한제국을 도와주던 러시아가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해 한반도에서 손 떼고 물러나고 아시다시피 일본이 대한제국을 멸망시키고 식민지화 하면서
    대한제국의 만주회복의 꿈은 무산되는 안타까운 역사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