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때 상황 자체가 쿠빌라이에게 너무 불리한 상황이였는데 고려가 배팅한거임.. 다들 진다고 쿠빌라이 편 안했는데. 고려 태자가 와서 너가 황제 잖아? 이러니 감동할 수 밖에.....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 성공한거임 만약 실패했으면 고려 멸망이였음. 또한 후대 칸들도 고려 국왕을 멋대로 바꿀수는 있었지만... 함부로 대할수가 없던데 시간이 흐를수록 고려 국왕들이 가족들 서열이...높아지면서 황제도 함부로 못했다는게 참.. 대단한 부분
@@eisjshaieonw 우연한 조우 x ... 고려사만보면 절대 모르고 원나라 역사 공부하면 쉽게 아는 내용임. 고려 침입하던 주력세력이 내몽골 요동 만주일대를 부여받은 동방3왕가 애덜이었슴. 고려가 투항하겠다고하던것도 얘네 통해서였고.. 그당시만 하더라도 얘네 세력은 서쪽의 훌라구 차가타이 못지않았었슴. 그리고 핵심적으로.. 칸의 왕위 계승싸움에 항상 껴서 판도를 좌지우지한애덜이었슴. 오고타이가 칸이 된것도 동방3왕가의 지지받고서였고 (칭기스칸이 죽고나서 2년간 섭정뒤에 오코타이가 칸이 된건데.. 2년간 섭정하던게 막내 동생이던 테무게였슴) 칸이 오고타이계에서 툴루이계로 바뀌게된것도 동방3왕가애들이 변심해서임. (테무게가 스스로 칸될려고 병사 일으킨거때매 수하장수들 처형되고 테무게도 바로 죽음) 이거때매 몽케가 칸되게 지지했슴. 고려가 투항하겠다고한건 몽케가 남송 치던 와중에 사망할땐데 .쿠빌라이는 당시 남송치는 병력 좌익 이끌고있었슴. . 몽골초원 서부쪽 관할하던 아리크부카가 차가타이등 서부쪽 왕족들 지지받구 칸이되지만 뒤에 쿠빌라이가 동방3왕가 지지받구 전투에서 이긴 이유임.. 고려도 동방3왕가통해 투항한거라 쿠빌라이 만날수밖에 없었슴.
근데 후삼국에서 후고려 세운 궁예는 정말 신라 헌강왕의 서자였는지? 고구려 보장왕의 후손이라는 말도 있고…. 그리고 왕씨고려를 세운 왕건은 신라계 호족이었는지? 아나면 옛 고구려 유민들이 정착한 호족이었는지 궁금….. 삼국시대 자료들도 의문점이 많지만 후삼국시대도 뭔가 의문점이 많음….. 신라의 장군이었던 견훤도 백제와 무슨 연관이 있었는지도 ……
@@David-nu8gx 궁예는 종교로 세를 넓힌 인물인데 정통성이 약하다 보니 왕의 서자라고 했을 가능성이 많죠 왕건은 뭐 다이아수저죠 견훤도 다이아수저인데 상주 지역이 그래도 신라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라서 옛백제 땅에서 세를 넓힌 것이죠 그 당시에 신라왕실의 영향력이 약한 지역에서 궁예와 견훤이 나라를 개국 했다라고 봐야죠
몽골이 일본 정벌 계획에 있어서 반드시, 꼭, 확실하게 필요한 지역과 사람들이 고려와 고려인..거기다, 40년 넘게 죽고 죽이다보면, 알게 모르게 내면에서 존재를 인정하게 될 수 밖에 없기도 하고.. 결국에는 몽골의 요구를 나라 기둥 뿌리 뽑아가며 제법 잘 들어줬으니..굳이 없앤 이유가 없었던거죠..
수많은 나라의 외침이 있었음에도 잘 버텨낸건 우리의 지형의 이점이 있기도 했습니다. 우린 산이 많아서 많은 병력이 한번에 들이닥치기 어렵고 평소 방비만 튼튼히 하고 청야 작전으로 맞서면 상대방은 군량미 조달에 어려움과 함께 성하나당 며칠에서 수십일을 소요해야 했기에 이긴다한들 얻는거에 비해 피해가 너무 컸죠. 전쟁은 단순히 병력만 가는게 아니라 엄청난 국력이 소모되는 일입니다. 군량만 해도 어마어마하죠. 전쟁은 잘 싸워야 하기도 하지만 보급싸움이기도 했고요. 근대 화약시대에는 단 며칠간의 해상전면전으로 베니스 같은 당시 최고의 상업도시도 그 전쟁으로 1년 베니스 예산을 화약값으로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구려에 130만을 보내고도 진 수나라의 경우 얼마못가 힘이 쇠퇴하여 망하기도 했고요. 거란이 3차침입때 10만중 4만이 황제직속 최정예 부대를 보내고도 진거기에 그후로 200년동안 침략을 못한 겁니다.
국토 대부분이 산지라서 굳이 땅을 얻어도 이점이라고는 없고, 반대로 냅두자니 후방이 위험하고. 그렇다고 군사력이 약하나? 그것도 아님 지금으로 치면 탱크/전투기에 해당되는 정예기병대가 활동하기에 좋은 환경도 아니고 한반도는 손해를 보면서 종속시켜야하는 아주 귀찮은 상대죠. 이기고 지는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그나마 덜 손해를 입고 합리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냐 싸움이였죠.
일단 워낙 산악지대라 기병 위주인 몽골군대가 중앙아시아 러시아 동유럽 처럼 마구 휘젓고 다니기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을거라 봅니다 .. 몽골의 침략을 격퇴한 나라가 꽤 있죠 .. 인도 베트남 일본등 .. 고려는 몽골 입장에서 완전 영토 지배하는 지역이라기 보단 속국 정도로 지배하는 영토로 놔두는걸로 정치적 판단을 한듯 합니다
저때 중국왕조는 고구려와 고려를 별개의 나라로 보지 않았습니다. 왕조만 바뀌었을뿐 같은 나라로 인식했죠. 실제로 고구려는 중반기에 고려라고 이름을 바꾸었고 고려는 그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아 국호를 지었죠. 그렇기 때문에 원나라도 고려를 고구려의 후신이나 고구려와 같은 나라로 인식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나 영국이 왕조는 바뀌어도 계속 영국 프랑스인 것과 같습니다. 러시아제국이 망하고 소련이 들어서도 여전히 러시아로 불렸습니다. 또 한가지 전 왕조가 망하고 새 왕조가 들어서 국호가 바뀌어도 한동안 전 왕조의 이름을 관용적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지만 명나라는 초창기에 조선을 고려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이지만 헬조선, 조선놈 등으로 부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machopark9359 중국이 우리를 보는 입장에서 같은 거라는 말씀을 한 것 같습니다. 사실은 한자도 그들의 언어이구요. 전에 요동반도 가서 찍은 다큐에서 보니 그 곳 중국 노인들이 성벽 등 고구려 유적을 보고, 까오리 라고 하더라고요. 대한민국의 대 자 처럼 고구려의 높을 고도 수식어라면 구려 = 고려 의 대내외적 의미는 비슷하다고 봐야되지 않을까요? 현대의 Korea 국호도 마찬가지이고요. 다른 나라들의 국호에서도 아예 국명을 바꾸는 게 아니지만, 발음이나 표기는 조금씩 역사가 흐르면서 달라지는 예가 허다하지 않습니까?
사실상 선조와 인조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삐딱선을 타버렸죠...안그래도 건국초기부터 성리학의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심했는데 정도전이 왕실은 검소하고 백성들은 사농공상을 기본으로하고 관리들은 청백리를 모델로 하라며 관리들의 녹봉도 대거삭감에 백성들의 세율도 소득의 3할에서 5할로 깎아주는 등의 의도는 좋았습니다... 단 그로인해서 군인과 아전들의 반발이 엄청났는데 정도전이 이를 가라앉히고자 절충안으로 내놓은게 백성들로부터 받은 민원을 해결해주고 거기에 수수료 받아서 생계를 꾸리는 건 봐준다고 했다네요..이 수수료가 바로 뇌물이었습니다. 형벌감량과 판결을 유리하게 유도하거나 벌금을 면제받거나 군역면제 등등에서 뇌물천하가 조선초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선조임금의 전시대처미흡과 인조의 사대주의적이고 무지한 외교로 인해서 다 곯은게 터져버렸고 그 치부와 자신들의 추태를 가리고자 극단을 넘어서 광기의 쇄국정책을 실시하고 거기다가 왜곡된 유교사상을 강요하여 자유연애를 금지시키고 결혼도 부모님이나 상전이 정해준 남자나 여자와만 결혼하게 하고 성을 억압하는 정신나간 중세유럽식의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그게 지금도 구세대적인 이성교제금지의 교칙이나 성을 억압하면서도 뒤에서는 성을 더 변태적으로 탐닉하고 갈구하는 이중적인 구조로 오늘 날의 남북한 양쪽에 정착되어 있지요...조선인조임금의 엉터리 사대외교는 결과적으로 나중에 오늘 날의 우리나라 보수라는 작자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대상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죠..물론 한국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던게 원인이며 그 이전에 일제시대 때도 2차대전 당시에 랜드리스로 엄청난 물자를 원조받은 것도 미국이고 독립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 연햡국의 승리였고 그 연합국의 승리도 미국의 힘이 있었던 것도 감안해야겠죠...
그래서 강화에 고려궁지 라는 궁궐 이 있어요 물론 복원 된것이지만~~ 고려 고종임금님이 몽고와 항전하며 39년간 계시던 곳이죠 이곳 에서 8만 대장경을 불심으로 만들것을 명 하여 강화 선운사 란 곳에서 판각 을했는데 강화의 강물은 짠 물이라서 강물에 한달을 담그고 찌고 말리고 를 반복한후에 한작 한 획을 판각할때마다 절을 하였답니다 나라를 지키려는 고려인들의 마음을 담은것이죠 지금 해인사에 있는 8만 대장경 이 있는것은 바람. 습도 .해중 .등으로 부터 보존을 하기 위한 선택인 것입니다 8 만 대장경은 원래 강화에 있어야 하는데 그점이 못내 아쉽네요
그냥 몰빵 올인 베팅이 성공한게 큼.. 쿠빌라이가 얼마나 흡족했으면 자기 딸을 혼인 시키겠음. 칸의 직계 씨족인 황금씨족은 엄청난 정당성을 가지고ㅜ있고 원종과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새로운 칸 형제와 동거동락 하면서 심양왕으로까지 추대되고 고려의 독립성을 그나마 지킨거님. 고려의 외교력을 이 시대 정부는 잘 배워야함
원나라 몽골땅이 더 추워요 몽골초원에서 말타고 직진해서 태행산맥를 넘어 구)두만강 현) 요화강까지 말타고 살랑살랑 오는데 일주일이면 돼요 현)압록강까지 오는데 10일이면되고 허나 배달국 고조선 북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고려 조선 대한제국까지 우리 조상분들 선조들은 한번도 한반도땅에 쪼그리고 웅크리고 살지 않았다 항상 대륙에 동쪽은 우리선조들에 땅이였고 서토 만주 옥저 한반도는 항시 우리 땅이고 우리가 다스리고 살았다 우리가 한반도로 고립된것은 우리에 원수 일본놈들이 만주땅를 청나라에 팔아먹고 난후에 연해주땅를 러시아에 강제로 빼앗겨서 이모양이 된것이다 대한제국이 되어서도 만주땅만 빼앗겼지 동간도 서간도 북간도땅은 남아있었는데 일본이 패망하고 만주 한반도 땅에서 쫒겨가면서 청나라손에 들어가고 남북으로 쪼개져 한반도에 고착화 된것이다 또 김일성이 중공에 백두산일부땅를 팔아먹어서 지금에 압록강 두만강이 된것이다 통일이되면 100% 요동땅를 되찾를수있다 지금 국제재판소에 만주땅중 요동에 서간도 동간도 북간도땅를 재소해놓고있다 통일이 되면 되찾를수 있도록 그리고 연해주일때와 아무르강까지 러시아와 협상할수있다 우리땅인줄 러시아는 알고있고 여차하면 연해주땅를 러시아는 우리에게 팔수도있고 또 연해주가 독립해 대한민국에 합류할수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중에 패하거나 휴전이되거나 더 장기화가 되면 푸틴은 쫒겨나거나 죽게될것이고 러시아는 또 3개국이상이 분리독립 될것이다 그때 옛 옥저땅이 우리땅이 될것이다 캄차카 사할린 연해주
러시아의 동장군을 앞세운 방어도 '그게 뭐임?' 하고 우습게 격파했던 게 몽골군인데 우리나라의 겨울 따위로는 못 막죠 몽골도 겨울에 최대 영하 58도 가까이 내려갈 정도로 굉장히 추운 곳이고 이런 곳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몽골인들한테 어지간한 추위 따위 아무 것도 아닙니다 또한 기병의 확실한 카운터는 삼림이나 산악지대가 아니라 수풀이 우거지고 늪지대가 많은 밀림입니다 덥고 습한 열대 기후에 밀림이 많은 인도, 베트남 정벌에 실패한 것이 그 증거죠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이 논리대로면 한국전쟁은 왜 일어남;;;;; 그냥 몽골이 고려에 관심이 그 딱 없었습니다.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거죠. 야들 고려 침략 패턴이 똑같습니다. 대규모 군도 파견 안 합니다. 몇 백명 몇 천명 규모로 내려와 사신 보냅니다 항복해 안해 그럼 털어 먹고 가지 이거였습니다. 몽골이 고려를 정복할 생각이었으면 그냥 정복 당했을 겁니다. 강화도 정령 이거 그냥 했습니다 유목민족이라 해전을 못한다 이건 몽골군을 모르는 소리죠 야들 특징이 못 하는 걸 구지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잘 하는 늠들 데리고 와서 시켰지 해전과 배 만드는 늠들 데리고 와 충분히 강화도 정도는 점령했을 겁니다. 이걸 안 한 겁니다. 할 능력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 만큼 고려의 가치를 낮게 보았다는 거죠.
뭔 소리여? 그 반대인데? 몽골에서 고리국이 나왔고 고리국에서 부여가 나왔으며 그 부여에서 구려와 백제가 나오는데? 주몽신화는 몽골의 코릴라르타이-메르겐신화가 원조여. 아시아의 민족흐름이 서에서 동으로 가는 데 뭔 몽골이 구려 후손이라는 자각이 나오나? 말갈이나 거란까지 모를까
조선 태종과 세종때 전국 각지에서 고대사와 고려역사를 압수하고 감추는 자는 사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그 압수된 한국 고대사와 고려역사는 불태웠다고 합니다. 왜? 명나라(한족)의 속국이었기에, 종주국 대국으로 떠 받들던 명나라의 역사보다 종속국인 자국의 역사가 더 크면 안되었기에 불태웠다고 합니다. 저는 일제 식민사관뿐만 아니라, 중국의 중화주의 사관과 조선왕조 유교적 성리학 소중화주의 반도사관도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고대사 연구하는 한국 사람들 대부분 식민사관 문제에만 지적합니다.
그건모르겠네요 사실. 왕이 강화도에 숨어서 버틴걸 용맹했다는 생각은 안듭니다. 왕이 항복할때까지 십년이 넘게 한반도 전역을 약탈 학살하고 다녔거든요. 그러든말든 왕은 계속 강화도에 있었고요. 학자들은 그당시 몽골군의 강제유전자 뿌리기로인해 현재 많은 한국인의 외모가 몽골과 제일 비슷하다고 추측하고요. 결국 몽골속국이 됐는데 지혜로운 왕이라고 생각은안드네요
국뽕없이 그 당시 고려를 독립국으로 보긴 힘들지. 정확히 말하자면 부마국이 더 정확하고, 고려왕들은 원나라 황제 손자 였고, 어쩔때는 원나라 황제 맘대로 고려왕을 귀양 보낸일도 있었는데. 심지어 고려왕들은 거의 일평생을 원나라 수도에서 살았고, 하도 고려로 안 돌아가서 원황제가 고려로 가라고 명령 내린경우도 있었습.
😂다 좋은데 지도의 고려 강역이 축소되어 표시되어 있네요. 인하대학교 고조선 연구소와 복기대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고려의 북쪽 강역은 중국 랴오닝성 톄링(鐵嶺)시 일대까지가 고려(918~1392)의 땅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이젠 왜나라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식민사관에서 벗어날 때도 되었다고 봅니다.
@@후니-j2d 맞습니다 이제는 기원전 2333년이라고 가르쳐도 할아버지 하겠네요. 요즘은 고조선으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교원대 송호정 교수는 EBS 개천절 특집에 출연하여 공공연히 단군은 실제 역사가 아니라 만들어진 신화라고 멍소리 하고 EBS는 그걸 또 혈세로 찍어 전국 방송으로 내보내니 대한민국은 정상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고려는 원의 부마국인데.... 고려왕은 원나라 황족들과 결혼을 함 - 충 자 붙은 왕들임. 공민왕때 독립,,, 충숙왕 - 충선왕(쿠빌라이 외손자) ; 쿠릴타이에 항상 참석함 충선왕은 고려왕과 심양왕을 같이 함_ 심양은 고려가 원에게 뺏긴 땅임. 기황후의 아들이 원 황제에 등극함- 종족적으로 몽고인과 같다고 본 듯함.
@@대훈김-n9w 좀! 뜬금없긴해! 그래도 세종 이도가 자기아버지와 족속들을 위해선지, 이전세상 기록들 다 걷어불살라 버리고 사대부,기자조선(개같은 기자자신도 모르는). 농사서적들 만 남긴것을 근자에 실록에서 밝혀진 거 만 하겠나? 전주이씨들이 목숨걸고 숨길려고 해도 초단위로 정보들 넘쳐나는데서 속일수있나? 하여간,전주이씨,전주김씨(김일성이네)가 문제야! 어쩔거야!
옛 고려나 조선이나 한국내의 나라들은 살아 남기위해 꼬리를 흔드는법이 다른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흔들었으니 중국이나 몽골이나 가히 귀엽게 봐서 속국으로 살려둔것뿐이다. 지금도 직장내에서 상사 비위맞추는건 예부터 내려오던 기술이다. 뻣뻣 하게 게기면 부러졌지 살아남냐? 이해가 가니 아니면 오니.
몽골침략 뿐만 아니라 대륙에 이어져 있는 비옥하고 나름 기후도 좋은 곳이었는데 여지껏 나라를 유지하고 있는게 미스테리하긴함.. 선조들 봐도 일부 잘나가던 시절 빼고는 군사력도 별볼일 없고 대책도 없어 보이는 때가 비일비재했는데.. 기세가 남달랐느니 이딴 수식어는 별로..ㅋ 그냥 잘 얻어 걸린거 같기도하고..
강화도는 중원에 있었다. 지금 작은 강화도가 아니란다. 지금의 칭다오시 거기가 비가 많이오면 섬처럼 되는 지역. 거기를 강화도로 보면 된다. 고려가 중원에서 얼마나크고 광대한 영토였는지 제대로 공부해라. 고려 500년. 신라 천년 역사가 한반도에서 가능했었으리라보냐. 이치적으로 냉철히 생각해봐라.
먹자니 30년간 전쟁해도 결국 점령 못했고 그렇다고 먹어도 쥐톨만한 땅이라 얻을게 많지않은 계륵같은 반도에 있던 나라가 고려인데 거기서 항복하러왔고 당시는 왕위승계다툼 중이었으니 쿠빌라이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음. 거기다 왕권을 찾은후 일본점령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곳이니 어느정도 어르고 달래서 교두보로 삼을 필요도 있었음. 거기다 후에 노국대장공주가 결혼오며 부마국이 되기도 했고. 딱히 갈굴 필요도 점령할 필요를 못느꼈을꺼임. 공녀,공물 상납하지 교두보로 써서 점령하려 했던 일본은 태풍땜에 2번이나 실패해서 갈 엄두도 안나지 뭐하러 건드리겠음.
원나라 역사를 알면 쉽게 이해되는 구조임.. 원래 내몽골 요동 만주일대를 받은게 징기스칸 동생 3명임.. 고려도 얘네가 주도로 침입해온거였슴.. 쌍성총관부역시 얘네 관할이었고. 근데 얘네가 힘이 쎄다보니 칸이 죽고나서 벌어지는 왕위싸움에 항상 껴서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세력으로 커져버린게 저 시점이었슴. 오고타이 가문에서 툴루이계 (몽케 쿠빌라이)로 칸이 넘어가게된것도 동방3왕가애들 덕분이었고.. 쿠빌라이가 지지세력 더 많던 아리크부카 제낀것도 동방3왕가가 지지해줘서였슴. 고려역시 항복하러갈때 통해서간게 저 동방3왕가 애덜이었슴.. 당연히 쿠빌라이한테 붙을수밖에 없던 이유고.. 왕위계승에 항상 끼고 판도 좌지우지하고.. 쿠빌라이말년엔 반란도 일으키고.. 그리고 스스로 칸이 되려고도 했던 전적이 있던 동방3왕가 견제할 세력 만든게 항복한 고려였슴. 요양행성 만들고 심양왕자리에 충선왕 앉히고.. 반역일으켜 원에 갖다바친 동녕부도 돌려주고 나중엔 충선왕이 고려왕도 겸해서 동방3왕가 견제한거였슴.
제 짧은 생각으로는 대 고구리 후손들이고, 동남북 호령 했던 백제 고구리 후손 들이고, 쉽게 인용하면 몇대 누구네 가문 종가집 자석인데 , 나한테 볼일있댜. 조아리고 온댜. 몽골쪽에선 손안대고 코푸는껵인게죠,. 막말로 쉽게 이해 하자면 몽골이 학교 통이라면. 고리는 싸움 잘하는 정통 체육관 체대 출신들인데 알아서 겨들어오니 ..저집안 애들을 굳이 건들일 피요가 있을까 싶은거리 생각이 듭니다.
몽골을 잘 모르나 본데 백성들과 함께 항복 했다가 다 도륙당한 나라가 한둘이 아님. 그리고 몽골은 수십년 내내 침략한 것이 아니고 여러차례 쳐들어 왔죠. 안 그랬으면 수십년 동안 저항도 못했죠. 몽골의 총대장이 고려 작은성 공격하다 화살 맞아 죽어서 총퇴각하는 등 고려도 만만찮았음. 그러니 몽골도 고려가 만만치가 않으니 고려의 요구를 받아들여 준 거죠. 평화롭게 항복하면 평화가 온다고 믿는 건 아니죠? 고려의 이런 끈질긴 저항은 고려거란 전쟁때도 무려 5차례의 거란 침공이 있었지만 거짓 화친을 하긴 했지만 결국 끝까지 항전한 역사를 보면 알 겁니다. 그 반대로 조선은 고려라는 자주적인 나라를 무너뜨리고 반역질로 나라를 뺃은 거라 항상 중국의 책봉을 받아 정당성을 인정 받으려 했기에 스스로 속국이 된 거죠.
@@홍시-c9s "금나라 시조의 이름은 합부(合富)인데 처음 고려로부터 왔다" (부족7 완안(完顔)편 金史) "삼가 생각건대, 금나라의 시조는 원래 신라로부터 왔고, 완안씨(完顔氏)라고 하였으며, 다스리는 부를 완안부라고 하였다. 신라의 왕은 김씨 성인즉 금나라는 신라의 먼 친척이다" (부족7 완안편 원서(元書)) 저는 근거를 가지고 당신께 꾸중하고 있는겁니다.
이때 고려 태자하고 쿠빌라이 처지가 너무도 비슷해서 서로 의형제 급으로 친해졌다고 또 성격도 둘다 잘맞아서 진짜 역사를 크게 바꾼 두인물의 만남이었죠~
저 불개토풍의 원칙을 태자가 얻어낸 것이 진짜 신의 한수였음
후대 칸도 저 원칙만큼은 거스를 수 없었죠 ㄷㄷ
1268년 몽고와의 협상을 마무리하고 경사출배도감 설치
1270년 천자의 인장을 몽고에 넘기고 천도
1271년 몽고가 원나라를 표방하고 천자국 선포
1272년 대월과 남송이 반발하며 천자국을 선포하고 선대왕들을 천자로 추존.
저때 상황 자체가 쿠빌라이에게 너무 불리한 상황이였는데 고려가 배팅한거임..
다들 진다고 쿠빌라이 편 안했는데. 고려 태자가 와서 너가 황제 잖아? 이러니 감동할 수 밖에.....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 성공한거임 만약 실패했으면 고려 멸망이였음.
또한 후대 칸들도 고려 국왕을 멋대로 바꿀수는 있었지만... 함부로 대할수가 없던데 시간이 흐를수록 고려 국왕들이 가족들 서열이...높아지면서 황제도 함부로 못했다는게 참.. 대단한 부분
@@안경쓴샌님-u2n 선택이 아니라 우연한 조우였을 확률이 높죠
@@eisjshaieonw 우연한 조우 x ... 고려사만보면 절대 모르고 원나라 역사 공부하면 쉽게 아는 내용임.
고려 침입하던 주력세력이 내몽골 요동 만주일대를 부여받은 동방3왕가 애덜이었슴. 고려가 투항하겠다고하던것도 얘네 통해서였고.. 그당시만 하더라도 얘네 세력은 서쪽의 훌라구 차가타이 못지않았었슴. 그리고 핵심적으로.. 칸의 왕위 계승싸움에 항상 껴서 판도를 좌지우지한애덜이었슴.
오고타이가 칸이 된것도 동방3왕가의 지지받고서였고 (칭기스칸이 죽고나서 2년간 섭정뒤에 오코타이가 칸이 된건데.. 2년간 섭정하던게 막내 동생이던 테무게였슴)
칸이 오고타이계에서 툴루이계로 바뀌게된것도 동방3왕가애들이 변심해서임. (테무게가 스스로 칸될려고 병사 일으킨거때매 수하장수들 처형되고 테무게도 바로 죽음) 이거때매 몽케가 칸되게 지지했슴.
고려가 투항하겠다고한건 몽케가 남송 치던 와중에 사망할땐데 .쿠빌라이는 당시 남송치는 병력 좌익 이끌고있었슴. . 몽골초원 서부쪽 관할하던 아리크부카가 차가타이등 서부쪽 왕족들 지지받구 칸이되지만 뒤에 쿠빌라이가 동방3왕가 지지받구 전투에서 이긴 이유임.. 고려도 동방3왕가통해 투항한거라 쿠빌라이 만날수밖에 없었슴.
@@eisjshaieonw 동방3왕가가 커지다 보니깐.. 쿠빌라이가 중앙집권화 힘쏟고 동방3왕가 견제할려고 요양행성도 만들고 심양왕자리도 만들어 충선왕에게 줬었슴.. 이거때매 동방3왕가가 반란일으켰다가 토벌되었구.. 그뒤 쿠빌라이 죽고 얼마안가서 원이 차지한 동녕부도 돌려줬구 심양왕이던 충선왕이 고려왕도 겸하면서 동방3왕가 견제하게했슴.
옛 고구려라 하지만은 실제 국명은 장수왕 때 '고려'로 통일된 것이 맞으며, 후삼국 시대 초기 후고구려의 국명도 고려였으며, 왕건의 고려 또한 그 유지를 이어받았다는 뜻으로 보셔야 합니다.
근데 후삼국에서 후고려 세운 궁예는 정말 신라 헌강왕의 서자였는지? 고구려 보장왕의 후손이라는 말도 있고…. 그리고 왕씨고려를 세운 왕건은 신라계 호족이었는지? 아나면 옛 고구려 유민들이 정착한 호족이었는지 궁금…..
삼국시대 자료들도 의문점이 많지만 후삼국시대도 뭔가 의문점이 많음…..
신라의 장군이었던 견훤도 백제와 무슨 연관이 있었는지도 ……
@@David-nu8gx 궁예는 종교로 세를 넓힌 인물인데 정통성이 약하다 보니 왕의 서자라고 했을 가능성이 많죠
왕건은 뭐 다이아수저죠
견훤도 다이아수저인데 상주 지역이 그래도 신라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라서 옛백제 땅에서 세를 넓힌 것이죠
그 당시에 신라왕실의 영향력이 약한 지역에서 궁예와 견훤이 나라를 개국 했다라고 봐야죠
@@David-nu8gx정확히는 모르지만 궁예는 신라계호족의 지지를 왕건은 고려계 호족의 지지를 받았죠 그리고 왕건의 쿠데타이후 고려계가 정국을주도합니다
병력 쏟아부어도 얻을건 없는 계륵에 속국삼아 일본 정벌 전초기지로 삼은거죠 물론 그 과정에서 꿋꿋하게 항전하고 고유문화를 지킨 선조분들은 정말 대단하시다 생각합니다
항전은 무슨?? 무신정권이 자기들 권력 뺏기지 않을려고 허수아비왕를 인질로 도망다닌거지.
그 정도에 항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존속하지 못했다,, 그런 끊질긴 항전이 없었다먼 이 영상과 같은 그나마의 존중이 있었겠는가??
놀랍게도 몽골이 고려에 넣은 병력은 2차 이후 줄곧 수천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꽤나 신빙성이 있음
백성들 입장에서는 무신정권과 몽골군 사이에서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수밖에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거지. 무슨. 항전?
고려왕실과 백성들 입장에서는 몽골침략을 무신정권 압제에서 벗어날 기회로 여김
몽골이 일본 정벌 계획에 있어서 반드시, 꼭, 확실하게 필요한 지역과 사람들이 고려와 고려인..거기다, 40년 넘게 죽고 죽이다보면, 알게 모르게 내면에서 존재를 인정하게 될 수 밖에 없기도 하고.. 결국에는 몽골의 요구를 나라 기둥 뿌리 뽑아가며 제법 잘 들어줬으니..굳이 없앤 이유가 없었던거죠..
수많은 나라의 외침이 있었음에도 잘 버텨낸건 우리의 지형의 이점이 있기도 했습니다. 우린 산이 많아서 많은 병력이 한번에 들이닥치기 어렵고 평소 방비만 튼튼히 하고 청야 작전으로 맞서면 상대방은 군량미 조달에 어려움과 함께 성하나당 며칠에서 수십일을 소요해야 했기에 이긴다한들 얻는거에 비해 피해가 너무 컸죠. 전쟁은 단순히 병력만 가는게 아니라 엄청난 국력이 소모되는 일입니다. 군량만 해도 어마어마하죠. 전쟁은 잘 싸워야 하기도 하지만 보급싸움이기도 했고요. 근대 화약시대에는 단 며칠간의 해상전면전으로 베니스 같은 당시 최고의 상업도시도 그 전쟁으로 1년 베니스 예산을 화약값으로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구려에 130만을 보내고도 진 수나라의 경우 얼마못가 힘이 쇠퇴하여 망하기도 했고요. 거란이 3차침입때 10만중 4만이 황제직속 최정예 부대를 보내고도 진거기에 그후로 200년동안 침략을 못한 겁니다.
3천년 조공국 o 자주국 x
@@eesoggun 누구한테?
다~ 멸망하고 사라지고, 동아시아에 대륙에 남은 건
70여년전 등장한 중국공산당뿐...
최후의 승자는 대한민국!
@@강창환-h1l 다음 조선족
팩트좀 치네
국토 대부분이 산지라서 굳이 땅을 얻어도 이점이라고는 없고, 반대로 냅두자니 후방이 위험하고.
그렇다고 군사력이 약하나? 그것도 아님
지금으로 치면 탱크/전투기에 해당되는 정예기병대가 활동하기에 좋은 환경도 아니고
한반도는 손해를 보면서 종속시켜야하는 아주 귀찮은 상대죠.
이기고 지는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그나마 덜 손해를 입고 합리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냐 싸움이였죠.
우리문화를 지킬 수 있엇던 것은 고려태자덕분이구나.
진짜 그렇네요
조선때 다 말살함 고려사 특히 후기는 재복원할 귀족20만명 몰살하고 불태워버린후 재집필한게 우리가 배우는 고려사임
말살한 이유는 오랑캐민족이니까요
조선입장에서 한족외에 모든 민족은 오랑캐입니다 한민족 포함
진짜 한민족문화는 말살안된채 보존중인 일본이 지키고있어요
일본은 보존했고 우리나라는 출토돼야 발견됨 조선때 한민족유물 전부 파묻어버림
차기 몽골황제 쿠빌라이에 줄을 잘 서는 바람에 나라는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죠.
쿠빌라이도 고려태자 덕에 칸이 되었으니 윈윈
고려 원종이 대단한 분이신걸 알았네요
대단하긴 개뿔?? 무신정권 허수아비로 시키는대로 한거지..
몽골에게 나라 받친 매국노 아닌가요? 자기힘으로 안되니까 외세를 끌어드린것 자체가요
일단 워낙 산악지대라 기병 위주인 몽골군대가 중앙아시아 러시아 동유럽 처럼 마구 휘젓고 다니기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을거라 봅니다 .. 몽골의 침략을 격퇴한 나라가 꽤 있죠 .. 인도 베트남 일본등 .. 고려는 몽골 입장에서 완전 영토 지배하는 지역이라기 보단 속국 정도로 지배하는 영토로 놔두는걸로 정치적 판단을 한듯 합니다
산이고 나발이고 이미 전국토가 개박살났음. 한국에 여몽전쟁 이전 건축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이유가 뭔데? 그냥 쿠빌라이칸에게 먼저 숙이고 들어가 붙은게 신의한수 였던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네팔이랑 중국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쪽은 히말라야 산맥이있는데 뭔 한국산악지대가 무슨 장애물이라고 멍청해도 이렇게 멍청할수가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때 중국왕조는 고구려와 고려를 별개의 나라로 보지 않았습니다. 왕조만 바뀌었을뿐 같은 나라로 인식했죠. 실제로 고구려는 중반기에 고려라고 이름을 바꾸었고 고려는 그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아 국호를 지었죠. 그렇기 때문에 원나라도 고려를 고구려의 후신이나 고구려와 같은 나라로 인식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나 영국이 왕조는 바뀌어도 계속 영국 프랑스인 것과 같습니다. 러시아제국이 망하고 소련이 들어서도 여전히 러시아로 불렸습니다. 또 한가지 전 왕조가 망하고 새 왕조가 들어서 국호가 바뀌어도 한동안 전 왕조의 이름을 관용적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지만 명나라는 초창기에 조선을 고려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이지만 헬조선, 조선놈 등으로 부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고려 구려 고구려 코리 모두 음차이기 때문에 같은 단어입니다. 다만 역사적 구분을 위해 편의상 나누어 부르는것입니다. 직접발음해보면 알수있습니다.
무슨 고구려를 고려로 바꿔요 ㅋㅋ
애초에 고려를 고고려 고구려로 뷰른겁니다
@@새콤달콤-d1l잘못된 정보입니다. 장수왕 때 고구려 > 고려 로 국호를 변경한 것 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고려가 아닌 고구려로 건국한게 맞습니다. 구글에 ' 장수왕 고려 국호 변경' 으로 검색 해보시길.
청나라 홍타이지가 병자호란으로 조선 쳐들어가기 직전에 하늘에 고하길 “나의 아버지 누르하지이시여 지금 제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정벌하고 적들을 무찌르려고 하니 저를 보우하시옵소서” 라고 했다고함
@@machopark9359 중국이 우리를 보는 입장에서 같은 거라는 말씀을 한 것 같습니다. 사실은 한자도 그들의 언어이구요. 전에 요동반도 가서 찍은 다큐에서 보니 그 곳 중국 노인들이 성벽 등 고구려 유적을 보고, 까오리 라고 하더라고요. 대한민국의 대 자 처럼 고구려의 높을 고도 수식어라면 구려 = 고려 의 대내외적 의미는 비슷하다고 봐야되지 않을까요? 현대의 Korea 국호도 마찬가지이고요. 다른 나라들의 국호에서도 아예 국명을 바꾸는 게 아니지만, 발음이나 표기는 조금씩 역사가 흐르면서 달라지는 예가 허다하지 않습니까?
그태자 충렬왕의 아들 충선왕은 쿠빌라이의 친외손자입니다
어릴때부터 쿠빌라이곁에서자랍니다
쿠빌라이사랑을 많이받았다고합니다
황제계승서열 7위권
고려왕과 만주왕(심왕)
겸직
권력서열 황제다음 2위
이랬다는군요
이지리부카
일자왕인 심왕이 아니라 이자왕인 심양왕으로 알고 있는데요.
@@tigerred1289
1307-1316충선왕이 심왕겸직
1310년 심양왕 심왕으로승격
이런건 국뽕역사책에서 철저히숨김
@@해리슨-j1g고려왕이라고 알고있는데 실제는 몽골왕이니까 숨길수밖에 없지요. 세계사에선 몽골이 고려를 완전 복속한걸로 나옵니다. 오직 한국사에서만 독립을 유지한걸로 정신승리하고있죠.
고려 진짜 대단... 거란부터, 몽까지...하
조선은 가장 최근의 마지막 왕조이기도 하고 실록을 통해 자세한 역사를 알 수 있지만,
고려에 대한 역사는 관련된 쉽게 읽을 수 있는 서적이 없어 모르는 점이 많았는데,
덕분에 재밌는 좋은 역사 이야기 듣고갑니다.
고려사 고구려사는 거란침입때 서고가 불타서 없어졌고 일본놈들이 36년동안 싹 약탈해갔음.
그건 우리만의 시각이구요. 세계사적인 시각에서는 고려는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
당태종 시절에도 고려입니다
저때만해도 기개가 넘치고 빡쎈 민족이었는데... 조선 600년간 다들 내시가 되어버림.
사실상 선조와 인조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삐딱선을 타버렸죠...안그래도 건국초기부터 성리학의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심했는데 정도전이 왕실은 검소하고 백성들은 사농공상을 기본으로하고 관리들은 청백리를 모델로 하라며 관리들의 녹봉도 대거삭감에 백성들의 세율도 소득의 3할에서 5할로 깎아주는 등의 의도는 좋았습니다...
단 그로인해서 군인과 아전들의 반발이 엄청났는데 정도전이 이를 가라앉히고자 절충안으로 내놓은게 백성들로부터 받은 민원을 해결해주고 거기에 수수료 받아서 생계를 꾸리는 건 봐준다고 했다네요..이 수수료가 바로 뇌물이었습니다. 형벌감량과 판결을 유리하게 유도하거나 벌금을 면제받거나 군역면제 등등에서 뇌물천하가 조선초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선조임금의 전시대처미흡과 인조의 사대주의적이고 무지한 외교로 인해서 다 곯은게 터져버렸고 그 치부와 자신들의 추태를 가리고자 극단을 넘어서 광기의 쇄국정책을 실시하고 거기다가 왜곡된 유교사상을 강요하여 자유연애를 금지시키고 결혼도 부모님이나 상전이 정해준 남자나 여자와만 결혼하게 하고 성을 억압하는 정신나간 중세유럽식의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그게 지금도 구세대적인 이성교제금지의 교칙이나 성을 억압하면서도 뒤에서는 성을 더 변태적으로 탐닉하고 갈구하는 이중적인 구조로 오늘 날의 남북한 양쪽에 정착되어 있지요...조선인조임금의 엉터리 사대외교는 결과적으로 나중에 오늘 날의 우리나라 보수라는 작자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대상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죠..물론 한국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던게 원인이며 그 이전에 일제시대 때도 2차대전 당시에 랜드리스로 엄청난 물자를 원조받은 것도 미국이고 독립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 연햡국의 승리였고 그 연합국의 승리도 미국의 힘이 있었던 것도 감안해야겠죠...
엉터리 사대외교를 지금도 중국에 하고 싶어하는 민주팔이 데모꾼들도 있죠.
김경손 장군님~~고맙습니다
강화 고려 궁궐이며 성벽이며 전부 허물은것이 너무 아쉽네요. 지금 대한민국에는 고려 유적이 크게 없는거 같아서 강화도에라도 귀중한 유적이 보존 되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마음에 더 아쉬움이 큽니다.
그래서 강화에 고려궁지 라는 궁궐 이 있어요
물론 복원 된것이지만~~
고려 고종임금님이 몽고와 항전하며 39년간 계시던 곳이죠
이곳 에서 8만 대장경을 불심으로 만들것을 명 하여
강화 선운사 란 곳에서 판각 을했는데
강화의 강물은 짠 물이라서 강물에 한달을 담그고
찌고 말리고 를 반복한후에 한작 한 획을 판각할때마다 절을 하였답니다
나라를 지키려는 고려인들의 마음을 담은것이죠
지금 해인사에 있는 8만 대장경 이 있는것은
바람. 습도 .해중 .등으로 부터 보존을 하기 위한 선택인 것입니다
8 만 대장경은 원래 강화에 있어야 하는데
그점이 못내 아쉽네요
산동성 이라고 그당시 강화는
@@yeeunjo8929ㅇㅇ 중국 대륙에 있어서 당연히 한반도에는 유적이 없는거지 ㅋㅋ
지금 역사에 배우는 나약한 고려가 아닙니다 몽골은 우리의 고구려와 발해사와 매우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어요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서하 남송 호라즘 같은 나라와 달리 몽골은 고려를 친척으로 생각 했는가 봅니다 북방 유목 민족 일가로
그냥 몰빵 올인 베팅이 성공한게 큼.. 쿠빌라이가 얼마나 흡족했으면 자기 딸을 혼인 시키겠음. 칸의 직계 씨족인 황금씨족은 엄청난 정당성을 가지고ㅜ있고 원종과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새로운 칸 형제와 동거동락 하면서 심양왕으로까지 추대되고 고려의 독립성을 그나마 지킨거님. 고려의 외교력을 이 시대 정부는 잘 배워야함
우리도 힘을 길러 구토수복해야한다
구토나 해
우웩
舊土 나 古土 나 .. 잘못된 표현이 아닌데
고토 아니었나?
고려는 국토의 70% 이상이 산악지역이라서 각 지역에 산성이 많았고 또한 섬과 강도 많아서 몽골군이 기병으로 작전을 펼치기가 힘들었을 듯...
또한 겨울이 길어 현지보급도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함...
원나라 몽골땅이 더 추워요 몽골초원에서 말타고 직진해서 태행산맥를 넘어 구)두만강 현) 요화강까지 말타고 살랑살랑 오는데 일주일이면 돼요 현)압록강까지 오는데 10일이면되고 허나 배달국 고조선 북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고려 조선 대한제국까지 우리 조상분들 선조들은 한번도 한반도땅에 쪼그리고 웅크리고 살지 않았다 항상 대륙에 동쪽은 우리선조들에 땅이였고 서토 만주 옥저
한반도는 항시 우리 땅이고 우리가 다스리고 살았다 우리가 한반도로 고립된것은 우리에 원수 일본놈들이 만주땅를 청나라에 팔아먹고 난후에 연해주땅를 러시아에 강제로 빼앗겨서 이모양이 된것이다 대한제국이 되어서도 만주땅만 빼앗겼지 동간도 서간도 북간도땅은 남아있었는데 일본이 패망하고 만주 한반도 땅에서 쫒겨가면서 청나라손에 들어가고 남북으로 쪼개져 한반도에 고착화 된것이다 또 김일성이 중공에 백두산일부땅를 팔아먹어서 지금에 압록강 두만강이 된것이다
통일이되면 100% 요동땅를 되찾를수있다
지금 국제재판소에 만주땅중 요동에 서간도 동간도 북간도땅를 재소해놓고있다
통일이 되면 되찾를수 있도록 그리고 연해주일때와 아무르강까지 러시아와 협상할수있다 우리땅인줄 러시아는 알고있고 여차하면 연해주땅를 러시아는 우리에게 팔수도있고 또 연해주가 독립해 대한민국에 합류할수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중에 패하거나 휴전이되거나 더 장기화가 되면 푸틴은 쫒겨나거나 죽게될것이고 러시아는 또 3개국이상이 분리독립 될것이다 그때 옛 옥저땅이 우리땅이 될것이다 캄차카 사할린 연해주
이분 아직 아프칸 상황을 모르시는듯...
미국이 30년간 전쟁을 했으나 포기하고 소련도 10년간 전쟁하고 포기한게 아프칸이지만 몽골은 점령했습니다
아프칸에 비하면 한국은 동네 어린애 놀이터수준입니다
몽골이 국가적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하러온게 아닌 부족단위로 약탈하러 온겁니다
몽골 국가적으로 왔다면 이미 우리나라는 끝났습니다
러시아의 동장군을 앞세운 방어도 '그게 뭐임?' 하고 우습게 격파했던 게 몽골군인데 우리나라의 겨울 따위로는 못 막죠
몽골도 겨울에 최대 영하 58도 가까이 내려갈 정도로 굉장히 추운 곳이고 이런 곳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몽골인들한테 어지간한 추위 따위 아무 것도 아닙니다
또한 기병의 확실한 카운터는 삼림이나 산악지대가 아니라 수풀이 우거지고 늪지대가 많은 밀림입니다
덥고 습한 열대 기후에 밀림이 많은 인도, 베트남 정벌에 실패한 것이 그 증거죠
@@Gojong_Emperor_Qianlong
몽골이 러시아도 침략했다지만 가장 추운곳도 여름은 따뜻합니다
물론 겨울은 ...몽골도 침략못했고요
하지만 습지는 저도 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한마디로 첫번째 댓글은 뇌내망상에 가깝죠 ㅋ
몽골은 우리나라와 DNA가 같은 혈족이다
단군시대 시작하며
헤어진 민족이고
몽골에서
서낭당과 여러가지
풍속이 우리와 같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고려태자 원종이 먼저 가서 항복을 했음, 몽골군은 그들에게 항복한 국가는 멸망시키지 않았음
캬 자랑스럽다 거란 몽골 두 거대 정복국가에게도 발리지않는 고려
참 그런거보면 고려가 대단하긴했음
금나라가 그렇게 쳐들어와도 한번도 져본적이 없었는데 제발로 항복한다고 들어왔으니 쿠빌라이는 이얼마나 행복했을까
요나라 거란과 전쟁함. 금나라와는 전쟁한 적이 없음
@@user-d4vu5no7w 윤관의 여진정벌 후 다시는 고려를 침략하지 않는다는 약조를 받고 동북9성을 돌려줌. 이후 세력을 키운 여진이 금나라를 세운 다음 중국북방을 정복하고 고려에 사대관계를 요구하였으나 약조대로 고려를 침략하진 않았음.
@@dagadaoh7065금나라나 고려나 같은 민족이라 굳이 전쟁을 할 이유는 없었음
몽골인들보면 이웃집사람들같죠 거란요 여진금 몽골원 만주청나라 사람들이 우리땅에들어왔지만 저거하고비슷한사람들에 이상한 친근감을느끼죠 그래서 당대최강의군사력으로 침략했지만 항상 협상을요구하곤물러가죠 알수없는 역사의 미스터리임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이 논리대로면 한국전쟁은 왜 일어남;;;;; 그냥 몽골이 고려에 관심이 그 딱 없었습니다.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거죠. 야들 고려 침략 패턴이 똑같습니다. 대규모 군도 파견 안 합니다. 몇 백명 몇 천명 규모로 내려와 사신 보냅니다 항복해 안해 그럼 털어 먹고 가지 이거였습니다. 몽골이 고려를 정복할 생각이었으면 그냥 정복 당했을 겁니다. 강화도 정령 이거 그냥 했습니다 유목민족이라 해전을 못한다 이건 몽골군을 모르는 소리죠 야들 특징이 못 하는 걸 구지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잘 하는 늠들 데리고 와서 시켰지 해전과 배 만드는 늠들 데리고 와 충분히 강화도 정도는 점령했을 겁니다. 이걸 안 한 겁니다. 할 능력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 만큼 고려의 가치를 낮게 보았다는 거죠.
조선족들은 이런식으로 생각하는구나
솔까 몽골이 침략해서 개짓거리 한게 얼마나 많은데
멸망 시키려 했지만 너무나 완강히 저항하면서 버텨 냈고 그렇게 수십년 세월이 흐르면서 몽골 내부의 완력 다툼이 생겼고 이 틈에 고려의 탁월한 선택이 결국 고려를 신뢰하게 된 것,
정말 이거 궁금했는데 잘 보고 갑니다.
수나라 2번침공 그리고 멸망 당태종 3번침공 패퇴 거란 3번침공 완패 원나라 6번침공 30년을 버팀 왜군 24만명 침공 19만명 사망 이래서 일본교과서에서는 임진왜란을 작게 나옴
싸움진짜 찰지게 잘했음 그런데 한일합방은 싸우지도 못하고 스스로 무너짐
한일합방 미스터리...
와,,
정말....신의 한수군요,,
'몽골 고려'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먹을게 없어서요..진짜 계륵같은 나라죠...
몽골 스스로 고구려 후손이란 자각이 이었고, 동족으로 봤던 것이 큰 이유일 것!
고구려(말갈)>발해(말갈)>몽골
고.백.신>통일신라>고려
결국 고려는 큰집, 몽골은 작은집
의 관계라 관대하게 대한것임.
몽골의 왕족들이 발해 대씨의 후손이란
설도 있음.
뭔 소리여? 그 반대인데? 몽골에서 고리국이 나왔고 고리국에서 부여가 나왔으며 그 부여에서 구려와 백제가 나오는데? 주몽신화는 몽골의 코릴라르타이-메르겐신화가 원조여.
아시아의 민족흐름이 서에서 동으로 가는 데 뭔 몽골이 구려 후손이라는 자각이 나오나? 말갈이나 거란까지 모를까
음.... 뭔 개소리야 이게 물론 고구려의 위상이 나름 저때도 알음알음 알려지긴 했지만 그것때문에 봐줬다는건 말도안되는 소리지
@@HO-si9sr말갈과 몽골은 다른종족이에요 모지리야..
@@수수성 몽골의 부족이 하나뿐인가요 ? 그리고 단정이나 반말 비아냥 사절합니다. 어떤 근거로 확신 하시나요?
그 당시 고려태자의 선택은 진짜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성공한 도박이었음
좋은내용 잘 들었습니다. 우리가 조선시대 역사는 많이 알고 있는데 고려시대 역사는 감추어진것이 너무 많아 잘모르고 있어요. 조선의 반고려정책 영향이 크지요.고래시대 주 영토가 대륙인것도 역사가 훼손되어 대부분이 모르고 있지요
영토라기보다는 황량한 벌판에 비슷한 계통의 부족이 같이 살았다고 봅니다. 그때 큰형님이 고구려 발해 고려였는데, 여진 몽골 거란이 크게 흥하였을 때 예전의 정을 봐서 중국 한족보다 많이 봐주고 그랬죠...
조선 태종과 세종때 전국 각지에서 고대사와 고려역사를 압수하고 감추는 자는 사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그 압수된 한국 고대사와 고려역사는 불태웠다고 합니다. 왜? 명나라(한족)의 속국이었기에, 종주국 대국으로 떠 받들던 명나라의 역사보다 종속국인 자국의 역사가 더 크면 안되었기에 불태웠다고 합니다.
저는 일제 식민사관뿐만 아니라, 중국의 중화주의 사관과 조선왕조 유교적 성리학 소중화주의 반도사관도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고대사 연구하는 한국 사람들 대부분 식민사관 문제에만 지적합니다.
"고래시대 주 영토가 대륙인것도 역사가 훼손되어 대부분이 모르고 있지요"
=>바퀴벌레처럼 대륙설 들고오는 ㅎㄷㄷ
@@PrettyT-rex 한민족 최대의 영토는 고구려가 아니고 '고려'입니다.
팩트입니다.
@@강창환-h1l 근거 없이 말하는건 '팩트'가 아니라 '망상'입니다^^
원간섭기가 아니라 원지배기임 내정간섭 수준이 아니라 원나라가 전투하나 없이 명령으로 고려왕을 갈아치워 압송하고 그걸 고려 조정은 얌전히 순응했는데 꼴랑 변발 하나 강요 안했다고 간섭기라고 하면 안되지
타국과 외교를 직접 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독립국가냐 아니냐가 정해지는 것 같더라구요.
조선도 외교권 박탈당하고부터가 실질적 일제강점기라고 보는 사람이 많고...
현대에 와서도 특정 세력을 국가로 인정하는지 아닌지를 수교관계를 맺고있는가로 많이 따지더라구요
격하게 공감 합니다.
고려대제국의 국민성이 용맹하고 투쟁심이 강안민족이라서..몽골이 몽골보다 인구100배많은 중국은 멸망시켰지만...고려대제국의 용맹성에 감히 포기했죠..고려대제국의 위대함이 엿보이는 위대한 치적입니다!
그건모르겠네요 사실. 왕이 강화도에 숨어서 버틴걸 용맹했다는 생각은 안듭니다. 왕이 항복할때까지 십년이 넘게 한반도 전역을 약탈 학살하고 다녔거든요. 그러든말든 왕은 계속 강화도에 있었고요. 학자들은 그당시 몽골군의 강제유전자 뿌리기로인해 현재 많은 한국인의 외모가 몽골과 제일 비슷하다고 추측하고요. 결국 몽골속국이 됐는데 지혜로운 왕이라고 생각은안드네요
@@토기기 라는 통설이 과거엔 있었으나, 최근 유전자 분석에 따르면 의외로 한국인과 몽골인은 유전적 거리가 먼 편입니다.
한국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민족으로는
1.만주족
2.일본인 등이 있습니다
대제국은 개뿔ㅋㅋㅋㅋ입성책동이 뭔지는 아냐?? 고려왕 갈아치운건?ㅋㅋㅋㅋㅋ
@@8circlewizard만주족하고도 유전적으로 멉니다. 그리 싫어하는 일본하고만 가까워요.
영상중에 옥의티는 고려태자 원종이 아이돌급 훈남이었냐 라는 미스테리함 입니다.
근데 우리나라는 너무 산악지대이지 않았음? 평지가 부족하고 그들이 탐낼만한 땅은 아니었을거 같고 그냥 유지시키고 조세등 바치는 물품들 챙기는게 관리하기도 편하고 이득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을거 같네요
우리나라 산이 험한 산도 아니고ㅋㅋㅋㅋㅋ대부분이 200m언저리의 낮은 산이라서 기마병이 활동하기 어렵다는건 헛소리임ㅋㅋㅋ
그당시에 지금처럼 길이 잘 되어있지도 않았을거고 나무도 많았을건데 뭘 알고 얘기하는거처럼 말하네
@@복숭아-b1e 기마병이 길이 닦이고 나무가 없어야만 다니나? 애초에 죽을 각오하고 전쟁하러오는건데 그정도 장애물은 장애가 안되지
@@PrettyT-rex 관리가 불편하다고 뇌좀 쓰고 살어. 먹은 땅이 너무 크잖아 굳이 길도 안좋은곳을 직접관리할 필요가 있냐 아이 귀찮네. 위에 다 적은 내용인데 너는 너대로 생각하든가
@@PrettyT-rex 우리나라 산 보면 800에서 1200정도가 많아여 낮은산은 아님
점령하려면 했겠지만 그 손해를 봐가면서 할 가치가 없기에 걍 속국으로 뒀을듯
이게맞긴함 몽골은 고려를 탈탈털었을때 거란을 ㅈㄴ게 비웃었음 저딴 작은나라 하나 못삼켜서 안달이였냐고 하면서 어이없어했지
독립국이라기보다 변방에 자치주 정도 되는 지위였음.
나도 이게 항상궁금했었음
그럴가치가 없이 전쟁나기전에 납작 엎드린 덕이죠
댓글을 보니 정말 다양한 역사적 시각이나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것들이 있네요... 뭔가 신선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대충 흘려들을 필요도 있겠네요
계륵 같은 존재지 좋아 하는 지형도 아니고 아니 아주 싫어 하는 지형이지...비숫한 이유지만 기후가 다른 베트남에서 죽을 쑤는걸 보면 알지
남송이랑 대월 고려 이셋이 같이 만들어낸것도 있죠 지긍생각해보면 몽골진짜 대단함
국뽕없이 그 당시 고려를 독립국으로 보긴 힘들지. 정확히 말하자면 부마국이 더 정확하고, 고려왕들은 원나라 황제 손자 였고, 어쩔때는 원나라 황제 맘대로 고려왕을 귀양 보낸일도 있었는데. 심지어 고려왕들은 거의 일평생을 원나라 수도에서 살았고, 하도 고려로 안 돌아가서 원황제가 고려로 가라고 명령 내린경우도 있었습.
한국의 역사가 미스테리가 정말 많긴합니다. 거참 왜 그런 것인지요
😂다 좋은데 지도의 고려 강역이 축소되어 표시되어 있네요. 인하대학교 고조선 연구소와 복기대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고려의 북쪽 강역은 중국 랴오닝성 톄링(鐵嶺)시 일대까지가 고려(918~1392)의 땅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이젠 왜나라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식민사관에서 벗어날 때도 되었다고 봅니다.
역사학자들도 사대주의자가 있습니다
우리가 배웠던 교과서 역사 내용 그 사대주의 역사 학자들의 거짓된 역사를 배운 것입니다
고조선의 건국 연도가 2333년이라는 허무맹랑한 말이고 훨씬 그 이전인거죠
@@후니-j2d 맞습니다 이제는 기원전 2333년이라고 가르쳐도 할아버지 하겠네요. 요즘은 고조선으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교원대 송호정 교수는 EBS 개천절 특집에 출연하여 공공연히 단군은 실제 역사가 아니라 만들어진 신화라고 멍소리 하고 EBS는 그걸 또 혈세로 찍어 전국 방송으로 내보내니 대한민국은 정상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후니-j2d언제나 돼야 우리역사가 단군 이전 배달국 그 이전 환국 까지 나오는 바른 우리 역사를 총독부 사관에서 벗어나 배울수 있을까요.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환국. 그걸 가르치는 내용은 한줄도 없네요.
@@고소미-n9s 2300년뒤쯤이면 또 대한민국도 사실 중국과 미국본토를 집어삼킨 거대 대 제국이었는데 모세력에 의한 기록손실로 한반도 반쪽땅이라고 식민사관교육 받고있다고 하겠지?
@@노네이 반도라는 말 자체가 반쪽 섬나라 즉 왜나라 반쪽짜리 땅이라는 왜인들이 만든 말이죠. 그런 왜어를 즐겨 쓰시는 님은 왜인양반 이신가요.
고려는 원의 부마국인데.... 고려왕은 원나라 황족들과 결혼을 함 - 충 자 붙은 왕들임. 공민왕때 독립,,,
충숙왕 - 충선왕(쿠빌라이 외손자) ; 쿠릴타이에 항상 참석함
충선왕은 고려왕과 심양왕을 같이 함_ 심양은 고려가 원에게 뺏긴 땅임.
기황후의 아들이 원 황제에 등극함- 종족적으로 몽고인과 같다고 본 듯함.
고구려가 고려이다 장수왕부터 고려라 했음!!!!
쿠빌라이에게 역배팅 했는데 그게 대박터져서 그렇죠
원종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것이 아쉽군.,
요사. 금사. 원사. 고려사를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고려가 국력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고려는 서경 역에만 60개의 성이 있었던 나라였습니다. 원사에는 몽고가 고려에 패할 것을 염려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충주성. 처인성 전투가 전부가 아닙니다.
그래서 몽골인들이 한국인을 좋아하는구나
직접통치할만한 가치가없기때문이라본다
즉수입보다지출이더많기때문
중앙아시아 사막은 무슨 통치할만한 가치가 있었나?
사고방식이 황당합니다.
징기스칸은 대조영의 19대손, 징기스칸 유언: 고려를 말발굽 아래에 놓이지 말어라.1227년 사망, 여몽전쟁 1231년부터 ~ 후손들이 유언을 어긴 것.
놀구 ㅈㅏㅃㅏ졌네 ㅋㅋㅋ ㅋㅋㅋ ㅋㅋ
@@死탄의인형사탄 인형답네!
뻥도 그럴듯해야지
@@대훈김-n9w 좀! 뜬금없긴해! 그래도 세종 이도가 자기아버지와 족속들을 위해선지, 이전세상 기록들 다 걷어불살라 버리고 사대부,기자조선(개같은 기자자신도 모르는). 농사서적들 만 남긴것을 근자에 실록에서 밝혀진 거 만 하겠나? 전주이씨들이 목숨걸고 숨길려고 해도 초단위로 정보들 넘쳐나는데서 속일수있나? 하여간,전주이씨,전주김씨(김일성이네)가 문제야! 어쩔거야!
유라시아를 다니며 교차검증을 하고 29개 국어를 하시는 분의 책을 바탕으로 쓴 것인데 반대하는 근거는 뭐죠? 남자 시키들이 이야기를 할 땐 근거를 제시해야지. 아니면 ㅈ 떼던가.
예나 지금이나 외교는 저렇게 해야 하는거다.. 실리를 찾아서.. 지금 누구처럼 무조건 갖다 바치는게 아니다..ㅠ
고려사신이 내게 온것은 하늘의 뜻이다
즉 고려를 망하게 하면 하늘의 뜻을 어긴것이니, 곧 나라가 망할것이다
1370년에 요동땅 확보하다가 회군한것이 아쉽네
이 주제가 제일 궁금했음
정치외교 였구나
사극에서 고려시대 나오면 대머리가 되지 않는 이유 ㅎㅎㅎ
"니들 풍속대로 살거라~"
옛 고려나 조선이나 한국내의 나라들은 살아 남기위해 꼬리를 흔드는법이 다른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흔들었으니 중국이나 몽골이나 가히 귀엽게 봐서 속국으로 살려둔것뿐이다. 지금도 직장내에서 상사 비위맞추는건 예부터 내려오던 기술이다. 뻣뻣 하게 게기면 부러졌지 살아남냐? 이해가 가니 아니면 오니.
고구려 장수왕 이후 고려로 국명을 바꿈. 그래서 고구려가 고려고 왕건의 고려도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서 고구려로 봐도 무방함. 고구려가 고려임.
5:42 이때에
우리가 흉노의 후예이기 때문에 동질성을 느껴서
멸망만 안당했지 고려가 독립했다는 논리면 루스공국도 독립국임
중국도 절반은 남았구만
고구려의 실제 국명은 고려가 맞습니다.
중국측 사료에도 고구려는 고려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즉, 한반도에 고려라는 국명은 지금까지 총 4번 존재한 것이죠.
고려(고구려) 고려(궁예 후고구려) 고려(왕건 고려) 고려(코리아)
실제 결혼까지 해서 한가족이 되었죠.
그런데 그 혼인 관계때문에 오히려 훗날 고려의 왕족이 몽골 왕족보다 서열이 더 높아져버리고 그거때문에 한동안 고려가 떵떵거리며 살았습니다.
몽골침략 뿐만 아니라 대륙에 이어져 있는 비옥하고 나름 기후도 좋은 곳이었는데 여지껏 나라를 유지하고 있는게 미스테리하긴함.. 선조들 봐도 일부 잘나가던 시절 빼고는 군사력도 별볼일 없고 대책도 없어 보이는 때가 비일비재했는데.. 기세가 남달랐느니 이딴 수식어는 별로..ㅋ 그냥 잘 얻어 걸린거 같기도하고..
강화도는 중원에 있었다. 지금 작은 강화도가 아니란다.
지금의 칭다오시 거기가 비가 많이오면 섬처럼 되는 지역. 거기를 강화도로 보면 된다.
고려가 중원에서 얼마나크고 광대한 영토였는지 제대로 공부해라.
고려 500년. 신라 천년 역사가 한반도에서 가능했었으리라보냐.
이치적으로 냉철히 생각해봐라.
약먹어라.. 요즘 약 안비싸다
이런 애들이 위험함.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애들
몽골이 고려 침공만 6차례함. 그럴때마다 쑥대밭을 만들어놓고는 언제든 고려는 몽골에 멸망할 수 있었음을 보여줬음. 근데 독립국? 왕의 시호자체가 이미 몽골에 충성한다는 의미를 갖는 "충" 자를 쓰고 공민왕때 되서야 독립 비슷한걸함
자치였다.중원의나라는 다망하고 러시아도3세기 식민지국가.세계를 제패할 기세 몽골에 나라지킨것만해도 대단하다
9차례임.. 근데 고려 침공한건.. 칸의 허락이 있긴해도 내몽골 요동 만주일대를 받은 동방3왕가 애덜이었슴.. 쌍성총관부도 얘네 관할이었구..
쿠빌라이칸 이후론 바뀐게 동방3왕가 견제할 목적으로 고려 대우해준것도 있슴.. 심양왕자리 만들어주고 동녕부도 돌려주면서..
고려의 외교가 고려의 보전에 큰역할을 했네요.
여몽원정으로 일본과 원수지간으로 만들어 오토로 싸우게 하면, 굳이 없앨 필요가 없으니까
그냥 통으로 먹자니 먹을건 없는데 반항이 심한거지. 원나라 입장에서 저 좋만한 나라 먹자고 수십만씩 군대 일으켜서 싸울라니 피곤하고 적당히 항복한다니 받아준거.
그리고 당시 황제국이라면 조공을 받치는 제후국도 필요했고.
멀어서요
몽골은 고려에 친근감을 가진 유일한 나라
이건 망상 그런나라가 공녀요구하냐
먹자니 30년간 전쟁해도 결국 점령 못했고 그렇다고 먹어도 쥐톨만한 땅이라 얻을게 많지않은 계륵같은 반도에 있던 나라가 고려인데 거기서 항복하러왔고 당시는 왕위승계다툼 중이었으니 쿠빌라이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음. 거기다 왕권을 찾은후 일본점령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곳이니 어느정도 어르고 달래서 교두보로 삼을 필요도 있었음. 거기다 후에 노국대장공주가 결혼오며 부마국이 되기도 했고. 딱히 갈굴 필요도 점령할 필요를 못느꼈을꺼임. 공녀,공물 상납하지 교두보로 써서 점령하려 했던 일본은 태풍땜에 2번이나 실패해서 갈 엄두도 안나지 뭐하러 건드리겠음.
@@진짜팩트주의그건 승자의 특권이엿쥬..
어떤 나라는 생체실험까지 햇는데..
고려문화가 몽골 상류층에 영향을 많이 주었으니....
두번다시 친근하고 싶지 않은데 ㅋㅋ
노예 노비 40년이면 뭐 그래도 빨아주는 조선족 같운것들도 있으니 ㅋㅋㅋㅋ
같은 고구려 계승하는 형제 나라라서 멸망 안시킨듯…..
어찌보면, 고려는 원나라의 또 다른 칸국이었던 것이다.
원나라 역사를 알면 쉽게 이해되는 구조임.. 원래 내몽골 요동 만주일대를 받은게 징기스칸 동생 3명임.. 고려도 얘네가 주도로 침입해온거였슴.. 쌍성총관부역시 얘네 관할이었고.
근데 얘네가 힘이 쎄다보니 칸이 죽고나서 벌어지는 왕위싸움에 항상 껴서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세력으로 커져버린게 저 시점이었슴. 오고타이 가문에서 툴루이계 (몽케 쿠빌라이)로 칸이 넘어가게된것도 동방3왕가애들 덕분이었고.. 쿠빌라이가 지지세력 더 많던 아리크부카 제낀것도 동방3왕가가 지지해줘서였슴.
고려역시 항복하러갈때 통해서간게 저 동방3왕가 애덜이었슴.. 당연히 쿠빌라이한테 붙을수밖에 없던 이유고..
왕위계승에 항상 끼고 판도 좌지우지하고.. 쿠빌라이말년엔 반란도 일으키고.. 그리고 스스로 칸이 되려고도 했던 전적이 있던 동방3왕가 견제할 세력 만든게 항복한 고려였슴.
요양행성 만들고 심양왕자리에 충선왕 앉히고.. 반역일으켜 원에 갖다바친 동녕부도 돌려주고 나중엔 충선왕이 고려왕도 겸해서 동방3왕가 견제한거였슴.
제 짧은 생각으로는 대 고구리 후손들이고, 동남북 호령 했던 백제 고구리 후손 들이고, 쉽게 인용하면 몇대 누구네 가문 종가집 자석인데 , 나한테 볼일있댜. 조아리고 온댜. 몽골쪽에선 손안대고 코푸는껵인게죠,. 막말로 쉽게 이해 하자면 몽골이 학교 통이라면. 고리는 싸움 잘하는 정통 체육관 체대 출신들인데 알아서 겨들어오니 ..저집안 애들을 굳이 건들일 피요가 있을까 싶은거리 생각이 듭니다.
고려시대 강역표시오류 고려는 동아시아 최강국이었음 약소국이 아님니다
고려가 요나라 금나라에 두들겨맞고 반도에 박혀있던건 팩트인데 뭘자꾸 아니래ㅋㅋㅋㅋㅋ
뿌리니까요. 자신들의 정신 문화가 응축된곳이 고려니까요. 왕을 굴복시켜도 민심을 못 얻으면 지배가 불가능한걸 아니까요
땅 자체가 척박해서 가치가 없음
얻을꺼 없는 계륵같은땅??? 농경 민족 자체가 떠돌이 유목민 보다 못살고 빼앗을꺼 없다 이게 말이안되죠
김구 선생이 말했던 문화의 힘이다. 고려는 문화 강국ㅇㅣ었다
독립국X 속국O
침략 후에도 독립을 유지 한 것은 일본, 베트남 정도.
왕족과 최형들이 강화도에서 그나마 잘 지낼 때 일반 백성은 무참히 도륙당하고 있었죠. 어쩌다 한두번 이긴 전투만 교과서에 나오지만요...
몽골을 잘 모르나 본데 백성들과 함께 항복 했다가 다 도륙당한 나라가 한둘이 아님. 그리고 몽골은 수십년 내내 침략한 것이 아니고 여러차례 쳐들어 왔죠. 안 그랬으면 수십년 동안 저항도 못했죠. 몽골의 총대장이 고려 작은성 공격하다 화살 맞아 죽어서 총퇴각하는 등 고려도 만만찮았음. 그러니 몽골도 고려가 만만치가 않으니 고려의 요구를 받아들여 준 거죠. 평화롭게 항복하면 평화가 온다고 믿는 건 아니죠? 고려의 이런 끈질긴 저항은 고려거란 전쟁때도 무려 5차례의 거란 침공이 있었지만 거짓 화친을 하긴 했지만 결국 끝까지 항전한 역사를 보면 알 겁니다. 그 반대로 조선은 고려라는 자주적인 나라를 무너뜨리고 반역질로 나라를 뺃은 거라 항상 중국의 책봉을 받아 정당성을 인정 받으려 했기에 스스로 속국이 된 거죠.
@@최영덕-r3h 정확히는 몽골신하로 유럽으로 치면 봉건제 봉신
다른 나라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짐
몽고 징기즈칸의 선조가 고구려 후손이고 고려는 고구려 계보를잇는다고 천명했었고 그후손이기에 몽고에서도 이를 알기에 고려를 그대로 나라를 존속시켜 준거지..
어디에 나오는 기록임 금시초문인데.. 설마 원조비사 이야기는 아니겠죠??
@@딴지타파 근거를 댈리가 있나 지들 망상소설 속 얘기인뎈ㅋㅋㅋㅋㅋ
몽고 시조설화가 주몽과 비슷해서 나온 얘기일듯
쿠빌라이😂😂 확실히 힘만으로는
우리가 몽골에 버티기 힘들었겠지만
외교와 지혜로 잘 살아남았네요
하지만 많은 공물과 공녀를 바치게되어
국가의 성장동력을 잃게 되죠
최선은 나라가 강해져서 주권을 지키는것
당시 워낙 거지국가라 가져갈게 없을뿐더러
30년간 씨뿌리기로 혈통이 섞여서
동일하게 대우해줬는데
근데 배신함
베트남이나 다른 항전없는곳은 신경도 잘 안써는대 고려는 유난히 반발 개겨서 쌍성총관부까지 지어서 감시당했어요 잘못아신듯요
고구려가 원나라 이고 금나라 이고 고려 이고 청나라 이고 조선 이며 대한민국이다
정신나간거 아니에요?
@@홍시-c9s뭐래 금태조 누르하치가 스스로 고려출신 신라사람이라고 했는데
@@Jangjaehun ㅎㅎㅎㅎㅎ환장의 콜라보군요 ㅎ누르하치가 신라사람이라고요? 누가 그랬던가요? 애신각라 설마..그거 해석???
@@홍시-c9s 청나라 황실에서 건륭제의 명으로 30여명의 사학자가 편찬한 흠정만주원류고의 내용인데 당신이 아니라는 근거는 뭔가요?
@@홍시-c9s "금나라 시조의 이름은 합부(合富)인데 처음 고려로부터 왔다" (부족7 완안(完顔)편 金史)
"삼가 생각건대, 금나라의 시조는 원래 신라로부터 왔고, 완안씨(完顔氏)라고 하였으며, 다스리는 부를 완안부라고 하였다. 신라의 왕은 김씨 성인즉 금나라는 신라의 먼 친척이다" (부족7 완안편 원서(元書))
저는 근거를 가지고 당신께 꾸중하고 있는겁니다.
참 골때리는게 처들어왔을때 얌전히 항복했어도 결과는 같았을거라고 생각함 ㅋㅋ
예나 지금이나 이 나라는 이빨로 먹고 살아야 할 팔잔가봄..
그냥 멸망 당했어도
나중에 다른 나라가 생겼겠지요
뭐 그런 문제에 그렇게 자부심을 느낍니까
엎어치나 매치나 ...
얻어터지고 무릎 꿇은건 사실인데
산악지대라서..강도 있고
고려 멸망했어요 왕들이 몽골사람들이었는데 뭔 소리에요. 국립몽골박물관에 가보세요. 한반도가 빨갛게 칠해져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고려 멸앙안했다고 본 나라는 우리나라 뿐입니다.
말은 바로해야지...독립국 취급아님
속국중에서도 기관설치해놓고 반역일어날까 감시할정도로 못믿었다는게 맞음
몽골군이 막상 군사를 몰고 고려에 오면 무고한 백성을 학살하거나 끌고가는것 외에는 얻을것이 없는데.. 무신정권이 자신들 권력을 지킬려고 허수아비왕을 세워서 항전을 하니. 몽골군 입장에서는 그냥 놔둘수도 없고 신경이 쓰일수밖에..
그건 정동행성 설치해서 다루가치 보낼때고.. 나중엔 그냥 고려왕이 정동행성 맡게했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