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사건의 남조선로동당 제주지부의 김달삼(본명 이승진 1948년 8월에 월북하여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 및 주석단에 선출되어 북한의 인민공화국 창건에 참여하였고, 김일성으로부터 국기훈장 2급을 받았다_제주43위원회)등이 남한단듁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제주 경찰지소 12채소를 습격하여 일으킨 무장봉기가 발단이 되었으며 여기서 설명하고 있듯이 진압과정에서 수 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래서 본질은 공산폭동이고, 당시 군경과 서북청년회의 민간인 대량학살은 본질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거죠? 😢 ㅡㅡ 그러나 4.3의 본질은 발생원인이 아닙니다. 남로당 탓이다. 이승만 탓이다.가 핵심이 아닙니다. 그 와중에 수많은 민간인이 무고하게 학살 당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특히, 군경의 과잉진압과 빨갱이 몰이로 희생자수를 엄청나게 크게 키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
@@natutesway1148 이말이 맞다. 자그마치 1만여명이 죽임을 당했다. 그 방식은 또 어땠냐 죽창으로 찔러죽이고 사지를 자르고 목을 매달아 선전했다. 희생자들중 10세 미만 아동과 60세 이상 노인이 1000명이 넘는다. 이들이 남로당이어서 죽였냐? 이게 국가가 할 짓이냐? 남로당이 남로당짓 했던건 늬들이 강조하지 않아도 만민이 알고있다. 오히려 본질을 흐리고 화제를 전환하는건 늬들같은 건국절 추종자들 아니냐? 늬들은 항상 이런식이지.. 빨갱이 잡는다고 국가의 손에 무고한사람이 희생되는게 옳다고 보냐? 그게 니네 가족이었다면 잘 죽였다 사지를 잘라야한다 죽여서 목 매달아야한다 했을테냐?
@@natutesway1148 그건 안타까운 일이었죠. 하지만 김달삼과 남로당원들이 산에 숨어들어가 게릴라전을 이어 나갔고 민가에 숨어들어 민간인인척 위장을 했던 것 또한 제주도민들의 희생을 키운 큰 원인이었죠. 낮에는 군경이 주민을 탄압하고 밤에는 남로당원들이 군경에 협조한 주민들을 살해하고 다니고.... 이념싸움 속에서 무고한 제주민들이 희생당한 건 참 안타깝습니다...
무분별하게 희생당하신 그때의 제주민들의 명복을빕니다. 다만 4.3 을 이야기 하면서 남로당 이야기 빼고 남로당이 자행했던 공무원 또는 우익민간인들 의 학살 그리고 4.3이 6,25 를 막기위한 투쟁이었다는건 너무 과한거 아닌가 합니다. 잘모르는 민간인들을 선동하여 좌익으로 만들고 대한민국 을 부정하게 만든건 싹 빼버리면서 너무 편향적인 설명이네요
@@치르게게10월 17일, 송요찬은 포고문을 발표하여 "해안선으로부터 5km 바깥에 있는 지역에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허가 없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폭도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무시무시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결정은 중산간마을[17] 거주민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이 포고문은 그들에게 있어서 생활터전 자체를 포기하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해안으로 내려와야 살 수 있는데도 내려오지 못했다. 그럼에도 다음 날부터 해안은 전면적으로 봉쇄되었고, 군경은 중간산마을을 비롯한 산악지역을 적지(敵地)로 간주했다. 여순사건이 터진 후에는 더욱 심해져서 서북청년회 회원들이 대거 제주도로 내려와 군인과 경찰 행세를 했다. 또 제주도민들을 대상으로 민보단을 조직해 무장대를 막으려고도 했다. 마침내 1948년 11월 17일, 이승만 대통령은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송요찬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이 계엄령 선포에 대해 불법이었는지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다. 제헌헌법에는 제64조에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한다"라고 써 놓았고 제헌헌법 제99조에는 "법률의 제정 없이는 실현될 수 없는 규정은 그 법률이 시행되는 때부터 시행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계엄령 선포 당시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18] 이에 대해 계엄령 선포가 적법했다는 측은 제헌헌법 이전의 법령인 일본의 계엄법이나 미군정 아래에서 계엄령이 폐지되지는 않았다는 점, 제헌헌법 제100조에는 "현행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고 명시한 점 등을 들어 계엄령이 법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논란으로 인하여 이승만의 양자가 소송을 건 일이 있었는데, 법원은 그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계엄령 선포는 제헌국회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야당 국회의원들이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이인에게 계엄령의 허점을 지적하며 위헌 아니냐고 묻자, 그는 계엄법의 부재를 인정했지만 "계엄령은 급박한 때에 현지 군사령관이 하는 것", "단지 동란을 방지하는 응급조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면서 얼버무렸다.
이야~핵심은 하나도 이야기 하지 않는 명강의군요 ㅎㅎㅎㅎ 티비를 안보니 강사가 누군지는 모르겠소만 정치성향 이신가보네.. 일본/중국 욕할거 뭐있나..역사적 거짓말은 우리나라가 더 많이 하는데.. 도대체 대한민국 역사의 진실은 언제쯤 배울 수 있을런지.. 댓글에 이것저것 쓰면 또 공격 받을거니 이쯤에서 그만 쓸랍니다.. 제주 4.3 시절에 희생되신 무고한 제주도민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한심한 역사..거짓의 역사..대한민국..
4.3을 이해할때 중요한 점 1.남로당 그자체는 당시에는 불법적인 단체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대하여 반체제적인 성격으로 변질되었다. 2. 경찰서 습격사건은 제주도만이 아닌 전국 여러곳에서 일어났었는데 이는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안된것에 대한 분노가 이유였다. 4.3은 강경진압으로 다른 지방들에 본보기적인 성격이 강했다. 3. 진압과정을 정당화 하기 힘든부분이 많다. 어린아이. 임산부등 남녀노소 가리지 않은 유혈진압이 있었다. 4.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당시 상황에서는. 지금 우리가 가진것과같은 일체화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식 을 기대하긴 힘들다. 친일파적인 모습을 보이던 당시 미군정과 이승만 보단 평등을 강조하며(현실에선 형편없지만) 반일감정을 건드린 공산주의 좌파진영이 더 친근했을 것이다. 애초에 당시는 반공이란 개념도 없었다 5.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조세량이 늘어났고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당시 친일경찰간부들은 치안 유지라는 명분으로 해방 이후에도 직위를 유지했다. 6. 4.3사건이란 명칭도 정식은 아닌. 임시방편으로 정한 이름이다. 4.3일 발생한 폭력사태의 명칭을 당시 정부가 부르던걸 사용할정도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7. 당시 한국은 미군정의 아래 있었음으로 책임의 소재를 완벽히 밝히는데는 어려움이 많다.
[제대로 말한 점] --- 남로당은 불법적 단체는 아니었으나, 대한민국 건국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반체제적인 성격으로 변질되었다. [설명] 핵심을 짚으셨군요. 4.3의 원인을 소개하면서 먼저 3.1절 사태를 많이 말하는데, 그럼 3.1절 사태가 4.3의 원인의 전부인 것처럼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사태를 처리하려 하던 것이 장장 10년(57년에 마지막 무장대 체포)이나 걸린 것은 쉽게 이해가 안되지요. 4.3의 근본 원인은 남로당의 존재였습니다. 당시 남로당은 제주 제1당으로 사회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미군은 육지부보다 1달 늦게 제주에 입성합니다. 입성하고 보니 남로당이 판을 치고 있던 겁니다. 처음 둘은 서로 협조적이었으나, 남로당이 공산주의 정당임을 알고 미군정은 탄압을 고민하게 됩니다. 이때 3.1절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잘못 말한 점] --- 당시 반공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설명] 4.3 사건을 진압하고 토벌하던 과정이 반공인데요. 그 전에 이미 서청단이 반공세력이었고요. 물론, 당시 일반 제주 주민들은 공산주의의 해악성에 대해 전혀 무지했기에, 반공 개념의 유무는 따질 게 못되지요. 그리고 당시 미미했던 우익세력이라도 반공 개념은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때 제주는 같은 국민인 남북의 정치를 따로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었고 3.1운동기념을 하며 의지를 다지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경찰의 말에 치이고 경찰이 그냥가서 분노로 시위한게 경찰은 반란으로 보고 총을 쏴대서 피해자가 나오고 총파업이 시작되고 근데 무슨 일이 있어서 투표를 대부분이 못했더니 빨갱이라고 정부에서 미군과 손잡고 학살하기 시작 한거 맞나요?
아니요. 저때 제주에서는 남북의 정치를 따로하지말고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하나 단일정부를 하고 있었구요. 3.1운동도 우익집단 좌익집단 따로했구요.이미 좌익집단에 남로당은 집단파업준비와 시체팔이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좌익집단이 행정기구의 중심인 제주관덕정에서 가두행진을 하면서 스탈린만세 박헌영만세 김일성 만세 조선인민민주주의 만세 했구요
창작하지마. 그때 제주인들중..남인지 북인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음. 님로당 짓이야 그리고 6.25전쟁 일어나고 후방에서 남로댕 뛰어다니는 데.냅두니. 억울하게 돌아가시는 분들 명복 빕니다만. 그리.만든 남로당..항복 안하고 제주민을 총알받이로 쓴 남로당 사과해야 한다.
다른 지역 출신 역사가들은 4.3 슬픈역사를 말하는 데, 제주출신 국토부 장관 원희룡은 이번 김재원 4.3 폄하발언이나 제주도 내 4.3 왜곡 비하 현수막이 걸려도 이 일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제주도민들이 고향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라고 키워줬는 데 책임져야할 사명은 외면하는 무책임함에 치가 떨린다.
남로당의 무장폭동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
남로당과 김일성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라 ..
제주43사건의 남조선로동당 제주지부의 김달삼(본명 이승진 1948년 8월에 월북하여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 및 주석단에 선출되어 북한의 인민공화국 창건에 참여하였고, 김일성으로부터 국기훈장 2급을 받았다_제주43위원회)등이 남한단듁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제주 경찰지소 12채소를 습격하여 일으킨 무장봉기가 발단이 되었으며 여기서 설명하고 있듯이 진압과정에서 수 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되었습니다
이런 종북주사파들이 4.3을 왜곡 폄훼하는자들이 있어서 정쟁의 발단이되는것이다, 6.25도 남침이라 할 자들, 소환 할 필요없이 가족모두 월북시켜야한다,
제주 4.3 사건이 발생한 날 무슨일 이 일어나서 경찰과 군이 출동 하였는지는 싹 빼 먹고 시작 하네
제주 4.3 사건의 배후는 반드시 남로당이 있는데 그걸 언급안해주니 원😢
남로당이 모여
4.3은 공산 반란에서 안타까운 양민이 희생되었슴니다.
김대중 "제주 4.3은 공산당의 폭동으로 일어났다"(1998.11.23. 미국 CNN과의 인터뷰)
김대중 대통령은 위대하시다. 진실을 얘기하신다.
그래서 본질은 공산폭동이고, 당시 군경과 서북청년회의 민간인 대량학살은 본질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거죠? 😢
ㅡㅡ
그러나 4.3의 본질은 발생원인이 아닙니다.
남로당 탓이다. 이승만 탓이다.가 핵심이 아닙니다.
그 와중에 수많은 민간인이 무고하게 학살 당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특히, 군경의 과잉진압과 빨갱이 몰이로 희생자수를 엄청나게 크게 키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
@@natutesway1148 이말이 맞다. 자그마치 1만여명이 죽임을 당했다. 그 방식은 또 어땠냐 죽창으로 찔러죽이고 사지를 자르고 목을 매달아 선전했다. 희생자들중 10세 미만 아동과 60세 이상 노인이 1000명이 넘는다. 이들이 남로당이어서 죽였냐? 이게 국가가 할 짓이냐? 남로당이 남로당짓 했던건 늬들이 강조하지 않아도 만민이 알고있다. 오히려 본질을 흐리고 화제를 전환하는건 늬들같은 건국절 추종자들 아니냐? 늬들은 항상 이런식이지.. 빨갱이 잡는다고 국가의 손에 무고한사람이 희생되는게 옳다고 보냐? 그게 니네 가족이었다면 잘 죽였다 사지를 잘라야한다 죽여서 목 매달아야한다 했을테냐?
@@natutesway1148 빈대잡겠다고 초가삼간 다 태웠는데 빈대를 비난하는 멍청한 댓글이 수두룩하네요. 진짜 지능문제인가봅니다.
@@natutesway1148
그건 안타까운 일이었죠.
하지만 김달삼과 남로당원들이 산에 숨어들어가 게릴라전을 이어 나갔고 민가에 숨어들어 민간인인척 위장을 했던 것 또한 제주도민들의 희생을 키운 큰 원인이었죠.
낮에는 군경이 주민을 탄압하고
밤에는 남로당원들이 군경에 협조한 주민들을 살해하고 다니고....
이념싸움 속에서 무고한 제주민들이
희생당한 건 참 안타깝습니다...
남로당에게 학살당한 경찰관과 그의 가족들예기도 좀 해주시죠
최태성 강사는 이번 강의에 이덕구의 선전포고 이야기 하지를 않네요. 4․3사건 주동자 제2대 제주인민해방군 사령관 이덕구는 1948년 10․19여순반란사건 직후인 10월 24일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전포고하여 대한민국에 대하여 반란하였다.
4.3사건은 남로당이 주도한 무장폭동
이었고,토벌과정에서 선량한 양민이 죽은
사건 아닌가요?김대중도 4.3사건은
"공산주의자가 일으킨 폭동"이라 했는데..
남로당과 양민을 구분해야지
4.3 폭동을 남로당과 양민을 똑같이
보아서 안된다
양민은 국가가 사과하는것은 맞다
그러나 남로당은 처벌한것이 정당한것이다
이 자식 뭐하는놈이여????
공산은 항상 불리해지면 양민 뒤로 숨어 총알받이로 이용합니다.
김달삼 이야기도...
복동으로 건국선거도 치루지못한 이야기도...
없어서 객관적 진실 을 찿기에는 미흡한것 같읍니다
남로당 원흉을 잊지 말아야한다.
솔직히 남로당도 무고한 시민 많이 죽였습니다.
남로당이 모여
이 자도 진실을 호도하고 학살만 강조하는구나.이러니 나라가 망하지 않겠는가?.
선거인 등록율 91.7%, 투표율 95.5%로 국민 절대 다수의 참여와 지지로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 정부에 반대하여 남로당제주도당은 8년 7개월 17일 간 항적한 사실은 알고나 있는지?
심리학자 아저씨! 소망교회는 경성큰마을 106동에서 노인복지를 했으면 용문동 메디컬케어 가서 하셔! 나는 변교수님이야!
역사가들은 진실 그대로 진실을 알려야하는데 왠지 서글프네. 진실을 알려주세요..쌤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전 4권) 중 제주 4.3사건 편을 읽어 보세요. 오직 사실만 담은 시리즈입니다~
이사람 외눈박이강의를하네
인간아 43이 47년에 생긴거지만 훨씬 이전인 27년 정도 부터 거슬러 가서, 살펴봐야 알수 있는거다, 그라운드씨 에게 배워라.
이것을 JDC가?? 어쩐지 전에도 한심한 조직이였는데… 뭐 옛날엔 JIFC라며 금융센터 난리 치더니… 거짓 선동은 여전하네요.
최태성은 전교조 출신인가? 제주4.3사건은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고 반란"인 사실을 알고나 강의를 하는지? 이 기회에 4.3사건 공부 좀 하실 바래요.
무장 폭동
역사가라고 하는 사람이 너무 한쪽으로만 편향되게 말을 하네요. 역사가시니까 시대상황과 그 사건의 본질부터 좀 말해봐요.
황현필. 최태성씨는 강 의는 잘하는데 한쪽으로 치우치는게 문제이다. 예를들어 경부고속도로 강의보면 알수있다.박대통령치적은 쏙 빼고말한다. 역사강의는 진실을 말해야한다.
43사건은그당시이승만정권의큰책임이지만,뒤에서조장한남로당분자들의책임도분명히짚고넘어가야합니다
4,3은 잘알지못하면서 떠드는사람 많다
제주는 김달삼이란작자 성과 이름다 다르다
역사를 얘기하는 것이 진실을 얘기해야지 알지도 못하면서 헛소리하면
이인간도 제대로 공부도 안하고 영상찍었네. 통일독립을 염원하는 평화시위가 아니라 남로당 주최 불법선동 집회였다 이인간아
최태성 강사는 다음 강의에는 1998년 11월 23일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 CNN방송에 출연하여 ‘제주4․3사건은 공산당의 폭동으로 일어났다’고 전 세계에 천명한 사실을 강의 해주길 바란다.
최태성 강사 경부고속도로 강의 때도 박정희대통령 언급은 1도 없더니ㅋㅋ 결국 4.3사건도 북괴간첩 공작에 대한 언급은 1도 없네
전부 사팔뜨기.눈치보는 좌향 좌만 그득한 현실.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시는 분이라
역사도 홈쇼핑 물건팔듯
미화하시는 군요.
남한도 공산화되길 바라시는건지
유튜브 광고를 한 건 좋은데 알고리즘 때문에 4*3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광고가 더 많이 나온다
편향된 강의로 본질을 호도하지 말고 모든면에서 사실대로 강의하시오 남로당얘기를 왜 빼나
최태성이 좌익편에서 김달삼(본명 이승진)이를 옹호하는 내용이네요 마치 자기가 정의의 사도인것처럼요 43을 바라보는 다른 시기🎉ㄱ은 모두 틀렸다는건가요? 이런 놈이 역사교사라니 그저 참담할 따름입니다.
남로당제주도당은 1948년 5․10 제헌의원 선거 때 전국 200개 선거구 중 유일하게 북제주 2개 선거구 선거를 파탄 내어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한 사실들을 최태성 교사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제대로 교육을 시키고 있는가?
객관적으로 접근해야지? 이렇게 편향된 시각으로 호도하면 안돼요
4.3 사건은 김달삼이 주동하여 일으킨 공산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던 사건임. 따라서 당시 주동세력과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를 구분하여 추모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43 반란이지요....
8:56 8:56 모가 반란이여 그때 살어봤어
원인에대해서도 좀 정확히 설명해야되지않나?
에라이 ㅉ ㅉ,역사공부 자세히 더 해라,,
니가 퍽이나 진실을 말하겠다 ㅋㅋㅋㅋㅋㅋ
북한 노동당 주장을 그대로 반영 하네
에라이 인간아.. ㅉㅉ
시건발단은 경찰이 잘못한것 맞으나...빨걍이 남로당이 개입함으로써 어쩔수 없이 토벌 할수 밖에 없는..이상황에서 베트남처럼 분간을 할수없는 그런상황에서 억울한 쥭음이 많았던 아픈 역사라고 생각한다.
괜히 시민에게 발포했나요.?
이해가 안됌니다
무분별하게 희생당하신 그때의 제주민들의 명복을빕니다. 다만 4.3 을 이야기 하면서 남로당 이야기 빼고 남로당이 자행했던 공무원 또는 우익민간인들 의 학살 그리고 4.3이 6,25 를 막기위한 투쟁이었다는건 너무 과한거 아닌가 합니다. 잘모르는 민간인들을 선동하여 좌익으로 만들고 대한민국 을 부정하게 만든건 싹 빼버리면서 너무 편향적인 설명이네요
거짓 왜곡쟁이
토벌대가 뭘 토벌하러 간거야.....? 왜 산에 숨었지....?
300명 잡으려고 3만명 넘게 죽여 대는데 겁먹고 안 도망치겠냐....생각좀해라 진짜
@@yukikaze64z 해안선경계로 5km아래로 내려오라고 공지했고 우익계열은1000여명이죽었음 그래서 토벌하러갔지..
@@치르게게10월 17일, 송요찬은 포고문을 발표하여 "해안선으로부터 5km 바깥에 있는 지역에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허가 없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폭도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무시무시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결정은 중산간마을[17] 거주민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이 포고문은 그들에게 있어서 생활터전 자체를 포기하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해안으로 내려와야 살 수 있는데도 내려오지 못했다. 그럼에도 다음 날부터 해안은 전면적으로 봉쇄되었고, 군경은 중간산마을을 비롯한 산악지역을 적지(敵地)로 간주했다. 여순사건이 터진 후에는 더욱 심해져서 서북청년회 회원들이 대거 제주도로 내려와 군인과 경찰 행세를 했다. 또 제주도민들을 대상으로 민보단을 조직해 무장대를 막으려고도 했다. 마침내 1948년 11월 17일, 이승만 대통령은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송요찬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이 계엄령 선포에 대해 불법이었는지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다. 제헌헌법에는 제64조에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한다"라고 써 놓았고 제헌헌법 제99조에는 "법률의 제정 없이는 실현될 수 없는 규정은 그 법률이 시행되는 때부터 시행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계엄령 선포 당시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18] 이에 대해 계엄령 선포가 적법했다는 측은 제헌헌법 이전의 법령인 일본의 계엄법이나 미군정 아래에서 계엄령이 폐지되지는 않았다는 점, 제헌헌법 제100조에는 "현행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고 명시한 점 등을 들어 계엄령이 법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논란으로 인하여 이승만의 양자가 소송을 건 일이 있었는데, 법원은 그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계엄령 선포는 제헌국회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야당 국회의원들이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이인에게 계엄령의 허점을 지적하며 위헌 아니냐고 묻자, 그는 계엄법의 부재를 인정했지만 "계엄령은 급박한 때에 현지 군사령관이 하는 것", "단지 동란을 방지하는 응급조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면서 얼버무렸다.
@@치르게게 참고 내용
@@치르게게 m.blog.naver.com/happyjejudo/222715319975
그리고 님이 강조하는 5km 아래 해안 마을인데 피해를 입은 곤을동 마을 말고도 몇군데 더있음.....
남로당 인민해방군이 자행한
끔찍한 민간인 학살은 쏙 빼놓고 썰을 푸냐 ?
태성이가 이런 강사였어 ?
지성은 역사의 현실앞에 겸손해야 하는것이다
4.3의 진실앞에 너의 편향된 사고로 말하지 말라는것이다 ㆍ복괴의 남노당이 일으킨 폭동을 덮으려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이다
남로당 무기가 약해서 당시 국군의 전방 부대까지 제주로 투입해야 했던거냐? 북한의 군사력이 압도적인 상황에서도 남침 우려에도 전방부대까지 제주로 보낼 정도인데 이런 식으로 왜곡질하네 진짜
kbs 역사 그날인가 거기에 출연하는 최태성씨는 교사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당신도 전교조 출신인가요? 문재인 정권 입맛에 맞는 좌편향적인 설명하고도 부끄럽지 않습니까?
역사왜곡이 일본보다 몇배는 더하네 ..
이분도 진실은 아니네요ㅡ 아웃
이자식 좌익이구나 ᆢ
역사를 왜곡하다니
댓글보니 아직도 한심한 작자들이 많구나
이야~핵심은 하나도 이야기 하지 않는 명강의군요 ㅎㅎㅎㅎ
티비를 안보니 강사가 누군지는 모르겠소만 정치성향 이신가보네..
일본/중국 욕할거 뭐있나..역사적 거짓말은 우리나라가 더 많이 하는데..
도대체 대한민국 역사의 진실은 언제쯤 배울 수 있을런지..
댓글에 이것저것 쓰면 또 공격 받을거니 이쯤에서 그만 쓸랍니다..
제주 4.3 시절에 희생되신 무고한 제주도민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한심한 역사..거짓의 역사..대한민국..
좌파 막내둥이 열일한다.
4.3을 이해할때 중요한 점
1.남로당 그자체는 당시에는 불법적인 단체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대하여 반체제적인 성격으로 변질되었다.
2. 경찰서 습격사건은 제주도만이 아닌 전국 여러곳에서 일어났었는데 이는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안된것에 대한 분노가 이유였다. 4.3은 강경진압으로 다른 지방들에 본보기적인 성격이 강했다.
3. 진압과정을 정당화 하기 힘든부분이 많다. 어린아이. 임산부등 남녀노소 가리지 않은 유혈진압이 있었다.
4.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당시 상황에서는. 지금 우리가 가진것과같은 일체화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식 을 기대하긴 힘들다. 친일파적인 모습을 보이던 당시 미군정과 이승만 보단 평등을 강조하며(현실에선 형편없지만) 반일감정을 건드린 공산주의 좌파진영이 더 친근했을 것이다. 애초에 당시는 반공이란 개념도 없었다
5.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조세량이 늘어났고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당시 친일경찰간부들은 치안 유지라는 명분으로 해방 이후에도 직위를 유지했다.
6. 4.3사건이란 명칭도 정식은 아닌. 임시방편으로 정한 이름이다. 4.3일 발생한 폭력사태의 명칭을 당시 정부가 부르던걸 사용할정도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7. 당시 한국은 미군정의 아래 있었음으로 책임의 소재를 완벽히 밝히는데는 어려움이 많다.
공산주의의 현실적 한계가 드러나지 않았던 1940년대에는 확실히 국민들이 혹할만 하기는 했죠.
한국전쟁 일어나기 전에는 북이랑 남의 갈등도 심하진 않았구, 민간차원에선 쉽게 이동도 가능했으니;;;;
[제대로 말한 점] --- 남로당은 불법적 단체는 아니었으나, 대한민국 건국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반체제적인 성격으로 변질되었다. [설명] 핵심을 짚으셨군요. 4.3의 원인을 소개하면서 먼저 3.1절 사태를 많이 말하는데, 그럼 3.1절 사태가 4.3의 원인의 전부인 것처럼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사태를 처리하려 하던 것이 장장 10년(57년에 마지막 무장대 체포)이나 걸린 것은 쉽게 이해가 안되지요. 4.3의 근본 원인은 남로당의 존재였습니다. 당시 남로당은 제주 제1당으로 사회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미군은 육지부보다 1달 늦게 제주에 입성합니다. 입성하고 보니 남로당이 판을 치고 있던 겁니다. 처음 둘은 서로 협조적이었으나, 남로당이 공산주의 정당임을 알고 미군정은 탄압을 고민하게 됩니다. 이때 3.1절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잘못 말한 점] --- 당시 반공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설명] 4.3 사건을 진압하고 토벌하던 과정이 반공인데요. 그 전에 이미 서청단이 반공세력이었고요. 물론, 당시 일반 제주 주민들은 공산주의의 해악성에 대해 전혀 무지했기에, 반공 개념의 유무는 따질 게 못되지요. 그리고 당시 미미했던 우익세력이라도 반공 개념은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남한내 공산당조직은 합법이었고 국민대다수는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에 호의 적이었음..호의적이유는 거창한 이념보다 친일파처단 토지분배를 주장 노비사회인조선사대살아온 국민다수가 공산주의에 호김을가진것임 번외로 남로당 대부격인 박헌영이 6.25남침시 남로당봉기로 쉽게 남쪽정부 접수가 가능하다 호언장담했고 정복실패 휴전이후 미스파이 혐의로 김일성에게 숙청..
댓글들 보니 진짜 얀타깝다 이념 민주 빨갱이 이런게 문제가 아니라 그런거에 전혀 상관없던 제주 평범한 시민들이 학살된 사건이라는거다
남로당이 일으킨 무장봉기고 그에 협력했던건 역사적 팩트
아니..섞여 잇엇다.분간이 안된다.
아니다 가담했거나 부역한자들도 토벌대상이었다
이들이 민가로 내려와 양민을 학살하고 불지르는데 협력했다
알고나 얘기해라
분통이 터진다
거짓투성이...불쌍하다
엉터리해설
저때 제주는 같은 국민인 남북의 정치를 따로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었고 3.1운동기념을 하며 의지를 다지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경찰의 말에 치이고 경찰이 그냥가서 분노로 시위한게 경찰은 반란으로 보고 총을 쏴대서 피해자가 나오고 총파업이 시작되고 근데 무슨 일이 있어서 투표를 대부분이 못했더니 빨갱이라고 정부에서 미군과 손잡고 학살하기 시작 한거 맞나요?
아니요. 저때 제주에서는 남북의 정치를 따로하지말고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하나 단일정부를 하고 있었구요.
3.1운동도 우익집단 좌익집단 따로했구요.이미 좌익집단에 남로당은 집단파업준비와 시체팔이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좌익집단이
행정기구의 중심인 제주관덕정에서 가두행진을 하면서 스탈린만세 박헌영만세 김일성 만세 조선인민민주주의 만세 했구요
그리고 피해자를 이용해 총파업을 남로당이 주도하고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세우려고
투표도 반대했구요.
아닙니다 북한의 지령을받은 남로당 빨갱이들이 남한내 혼란을 목적으로 폭동을일으키고 이념이 뭔지도모르는 양민들을 선동하면서 사건이 전개된거고 무고한 희생자분들도 생긴거죠 타겟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티피컬한 선동 폭동이라는게 되어야 합니다
창작하지마. 그때 제주인들중..남인지 북인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음. 님로당 짓이야
그리고 6.25전쟁 일어나고 후방에서 남로댕 뛰어다니는 데.냅두니.
억울하게 돌아가시는 분들 명복 빕니다만.
그리.만든 남로당..항복 안하고 제주민을 총알받이로 쓴 남로당 사과해야 한다.
펜앤마이크방송에보면 그당시 그아이랑 친구라는분이 나와서 얘기하는데 왜곡된부분이 많은것같습니다
니기미
음...그럼머해...울어머니 4.3유족....난 암것두 안됨...ㅋㅋㅋㅋ
댓글들이 쓰레기 천지구나..
야 이자식들아 아무리 남로당아 일으킨 폭동이지만 그 수백명 남로당 잡자고 이념이 뭔지도 모르는 제주도민 3만여명을 학살한게 말이 되냐?
희생당한 제주도민들에게 죄송하지도 않냐?
학살은 진실아냐? 댓글봐라 ㅋㅋ
다른 지역 출신 역사가들은 4.3 슬픈역사를 말하는 데, 제주출신 국토부 장관 원희룡은 이번 김재원 4.3 폄하발언이나 제주도 내 4.3 왜곡 비하 현수막이 걸려도 이 일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제주도민들이 고향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라고 키워줬는 데 책임져야할 사명은 외면하는 무책임함에 치가 떨린다.
무슨소리에요? 바로 알고 바로강의 하십시요! 46년생 할머니는 그렣게 보지않았는데 더욱더 연구하십시요 절은 사랑들은 귀동냥으로 들은 지식으로 말하지 마십시요!
제발 귀동냥 감성적으로 샹각하는 우를 범하지말길 바랍니다.김대중선생도 인정한 부분이 많아요..
김달삼이 주동이되어 좌익분자들의 폭동으로 일어난 사건인데 이런 헛소릴할까
최태성 이사람 황현필과 똑같이 좌삐리 역사학자임 저런사람이 역사학자라고 공중파 나오는거보면 기가찬다
강의 똑바로해라. 잘못하연 선동이다.
이런게 선생인가 그냥 북으로 가라.
황현필걸러 최태성선생 tv에나와 자주보는데 팩트랑 거리가 멀게 강의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