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이 조금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자면 구약시대의 십일조는 신정국가 체제에서 토지를 분배해 주고 그 소산의 10%를 세금으로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부가세와 비슷하지요. 그리고 레위지파는 공무원이어서 경작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제사장으로서 역할도 있지만 호구조사를 해서 군복무자들을 파악해서 전쟁에 대비하고 왕권이 모든 백성에게 미치게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봐야 합니다.
지난 2년간 수입이 전혀 없어 남편만 십일조를 드리다가 제가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기쁜 마음으로 제가 다시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했을때 남편이 하는 말이 이제 우리는 아기도 있는데 우리 둘다 양쪽에서 드리면 아기는 무슨 돈으로 키우냐 하더라구요 주신분이 하나님이니 다시 부족함없이 채워주실거야 하는데도 헌금이 너무 많다 하는 남편에게 왜 나와 생각이 다를까 잠시 저의 잣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억지로 하거나 인색함으로 하는것이 아닌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그 해답이었네요 얼마를 드리느냐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드리느냐가 더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드릴 수 있도록 물질의 축복을 주심 또한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신약에 십일조가 안나오지만 신약에 나오는 연보라는 단어에 이미 십일조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3장 23절은 외식에 대한 비판이지 그것이 십일조를 하지 말라는 뜻도 아닙니다. 십일조가 레위인을 먹여 살리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제물이나 예물은 드리는 자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표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예를 들면 화목제와 같은 경우 제물의 일부는 제사장이 받고 나머지는 드리는 자가 먹습니다. 화목제의 목적은 예물을 드리는 자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표현한 것이지 화목제의 목적이 제사장 고기 먹이려고 그리고 드리는 자가 고기파티 할려고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십일조의 목적은 우리의 가진 것과 수입에 대한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고백입니다. 다만 드려진 예물을 사용하는 방법이 레위인에게 주었을 뿐입니다. 마치 십일조의 목적이 레위인 먹여 살리기 위해서 드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십일조를 레위인들이 받는다! 라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했으니 내옆에 형제가 돈이없어 굶주림에 고통해도 지갑을 열지 않는다면 그 십일조는 무효이고 십일조는 커녕 헌금도 못했지만 옆에 나보다 더 가난한 형제에게 지갑을 열어 나에게 부족한 금전중에 극히 일부라도 주었다면 그사람은 십일조를 한것과 다름없다고 하나님은 인정할것입니다 이것이 십일조의 근본 정신이라고 생각하구요
영상의 4분 경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여기서 율법 정신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야고보서가 율법의 행위도 강조하는 것이 믿음은 행위로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정신만 있고 마음만 있으면 그것이 어떻게 증명 되겠습니까? 성경에서 순종을 강조하는 것이, 믿음의 증거가 순종이라는 행위로 나타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주님께서도 "이것도 저것도"라고 분명히, 율법의 참된 정신과 행위, 이 두가지를 지켜야 할 것을 말씀하셨는데, 주님의 말씀의 뜻을 율법의 정신으로만 설명하고 그냥 넘어가는지요? ㅎㅎ 저도 성경을 보는 사람입니다. 이런식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기 생각에 맞추어서 어물쩡 넘어가면 안되요~ 이게 성경 말씀을 자기 생각대로 가감 하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이것도 저것도" 지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신과 마음만이 아닙니다. 행위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웃사랑? 마음과 정신만 있으면 되나요? 행위가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 세대 사람들에게 맞추려고 일부러 빙~둘러서 왜곡하며 가감 한 것이라면, 회개하세요... 차라리 전하지 않는 것이 낫지 이런식으로 전하면 안됩니다. 율법은 사랑으로 "완성이" 되는 거지, 율법 자체를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주님의 마음과 정신과 삶으로 다시 보기를 바랍니다. 십일조와 주일 헌금은 구원받은 자라면, 자신이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라 믿는다면, 필히 드려야할 예물이며, 나머지 예물은 자신의 감동으로 자원해서 드리는 것이 맞습니다. 이것이 올 바른 성경적인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십일조를 드리라는 말씀이 분명하게 없다는 것은, 십일조는 구약에서 이미 강조 하였듯이 신앙의 기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술 먹지 마라, 담배 피지 마라고 있습니까? 어떤 것은 문자로, 어떤것은 자기 해석으로 이런식으로 성경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에서도 기도하는 자의 마음과 자세를 지적하셨지 십일조를 드리는 바리새인의 모습을 지적하지는 않았습니다. 십일조와 주일예물은 기본입니다. 초등수학을 중등수학과 고등수학에서 다루지 않는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한글을 다시 배우지는 않습니다. 한글은 기본이죠.... 그리고 십일조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에도 포함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문자로만, 문자로 기록된 것만 알 것이 아니라, 더 깊고 더 넓게 보고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만...
구렁이 담넘어가는건 한국 기독교 입니다. 전 세계 어느나라에서 십일조를 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한국에서만 십일조를 냅니다. 한국 아니면 해외에 있는 한인교회에서만요. 그럼 외국에 있는 다른 교회들은 성경을 몰라서 십일조를 안한건가요? 우리가 행위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건 율법 입니다. 감사함으로 내 몸이 이끌려서 하게 된다면 은혜지요. 숫자 퍼센트를 정해놓고 이 율법을 따르면서 그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서로 정죄하게 하는 시스템을 결코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외국에서 십일조 하는지도 유튜브 통해서 검색도 좀 해보시고 종교의흑역사 라는 책도 함께 보시면 님의 십일조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는데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제발 옛 율법은 버려주세요.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것 입니다. 그 안에 이모든 율법이 다 들어 있습니다.
@@romin1208 외국교회를 왜 비교하나요? 외국교회가 진리인가요? 또 무슨 책을 읽는것이 중요한것도 아니고 그 책의 글쓴이도 자기 생각과 주장일 뿐입니다. 진리는 성경이고 오직 예수 입니다. 전혀 설득력 없는 외국교회나 책 한권으로 비교하지 마시고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으로 반박 해보세요. 사람의 지식과 견해와 생각과 주장은 믿음과 복음을 왜곡할뿐입니다. 율법이 뭔지도 모르는 이 같으니 이만 할께요
@@romin1208 님은 성경과 복음에 대해 완전 무지하군요... 이스라엘 유대민족에게서부터 시작된게 성경이고 복음인데 지금 어떻나요? 예수님 당시에도 어떠했나요? 성경을 좀 읽으세요.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라고 외국교회와 비교해서 우리나라 교회가 잘못 됐다? 님의 논리대로라면 성경은 볼필요도 없고 이스라엘 유대민족과 비교를 해야 한다는건데ㅎㅎ 참 정말 무지 하군요 ㅎㅎ 제글에 예수님의 말씀에 관해 반박하고 성경말씀을 들어 님의 주장을 설득하세요 성경과 복음은 어디서 먼저 전파된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마 19: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성경을 대충알고 남의 입으로 듣고 배우지 말고 직접 성경을 읽고 보고 또 읽고 보세요
신약시대의 십일조는 십일조가 페지된 것이 아니고 소득의 10%라는 숫자적 규정을 예수 없앴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정이 좋은 분들은 실일조이상 소득의 절반 이상을 낼 수도 있고 형편이 어려운 분들은 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 보는 것이 무방합니다. 가령 300만원 버는 가장에게 30만원은 엄청 큰 돈입니다. 그러나 1000만원 버는 가장에게서 300만원을 내도 한달에 300만원 버는 가장에 비해서 배이상 소득이 있습니다.
말씀을 인용하는데 있어 신중함과 지혜를 더한다면 전혀 다른 메시지가 나올 수있다. 근거로 제시하는 말씀을 자신의 메시지에 적용하는데 있어 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접근과 이해도 드러난다. 자신의 분량이라는 한계에서 성령님은 각자에게 그들의 이해/분량에 맞게 깨닫게하시고 지혜롭게 생각하도록 견인하신다. 자신의 주장이 주님의 심판대 앞에 불리한 증거가 될 수있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한다면 언어사용과 표현도 더욱 신중할 것이다. 사울바울도 자신 안의 그리스도의 분량만큼 하나님의 증거를 주고 있다.
계절날씨시간 상관없이 좋은 위치의 쾌적한 공간에 모여서 좋은 음향시설에서 실력있는 연주가들 반주에맞춰 찬양하고 훌륭한 지식교양쌓은 고학력 교역자가해주는 설교들으며 예배마친후 좋은 식사하고 편안한 의자에앉아 좋은 차마시며 대화나누고... 그 모든게 경제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면 비용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비용을 지불해야 이상없이 매주 운영되구요. 그 운영을위해 이제목 저제목으로 돈 내라고하는거 그게 헌금입니다. 그저 운영비를위한 돈 문제를 자꾸 성경을뒤져 시비가려봐야 결론이 안나죠. 몇천몇백년전의 거의 지구반대편 문화인 성경의 돈문제 구절들을 가져와서 현대 한국문화를 살고있는 한국교인들이 옳네그르네 따지는거 자체가 그냥 말장난 함정에 빠지는길이라고 봐요. 그자체가 교회,신자의 신앙과는 상관없는 문제이기도하구요.
좀 정확한 결론이 아쉽습니다. 1. 지금도 수입의 10%를 떼는 십일조를 해야하는가? 또는 십일조 생활이 신앙생활에 중요한 것인가? - 성경을 근거로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왜냐하면 모양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십일조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잘못 된 것이죠. 2. 그렇다면 헌금액수는 어떻게 정해야하는가? - 바울의 고린도서를 근거로, 개개인의 수입과 생활비에 무리가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그렇다고 인색한 액수가 아닌 거꾸로 한도 내의 최대한의 액수의 헌금을 해야합니다. 예를 들어 초고소득자들은 소득의 7-80%를 드려도 생활에 부담이 안 된다면 그 액수를 헌금하는 것이 성경적로 옳지요. 저소득자의 경우 생활비가 너무 빠듯하면 매우 적은 액수도 상관없습니다. 못해도 괜찮구요. 실제로 율법 십일조도 모든 이들이 십일조의 의무를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성도로 부터 돈 받지 않으십니다. 성도로 부터 돈 받아 교회에 다시 내려주는 중간자 역할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돈 바치는 성도들의 중심을 높이 평가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크리스찬들여, 내게 돈 바치지 말라. 그 돈을 네 이웃에 베풀거라. 네 부모형제에게 주라, 네 가까운 이웃에 주라, 네 먼 이웃에 주라. 내게는 단 돈 일원도 가져오지 말라. 나는 인간으로 부터 돈 받는 속물신이 아니니라. 이웃에 베푸라. 나는 너희가 이웃에 베푸는 돈을 내게 바친 것으로 간주해 주겠노라. 교회들아, 너희가 필요로하는 돈은 기부금, 회비, 모금으로 걷어서 쓰라. 너희들 돈 걷는데 내 이름 파는 것은 좋은데, 내게 바치라는 말은 제발하지 말라. 교회에 기부해 달라고 부탁해라. 나는 성도가 교회에 기부하는 돈을 내게 바친 것으로 간주해 주겠노라.'
핵심이 빠졌네요. 예전 그러니까 재정 일치 사회에서 나온 십일조는 근대 국가에서는 맞지 않는 개념입니다. 이제 뭐 과부라고 해서 반드시 가난 한 상황도 아니고 복지의 많은 부분을 국가가 담당하고 또한 군사나 모든 다른 면도 국가가 다 하고 있으니 교회에 대한 기부는 교회가 운영되고 신부 목사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만큼으로 제한해야 합니다. 또한 예산의 집행에 있어서도 투명해야 합니다.
성경에대해서 잘못 알고잇는 게 구약의 율법을 신약에서는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구약에서 말하는 울법중 없어진 것은 시민법과 제사법만 없어진 것이고 나머지는 지금도 유효한 것입니다.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십일조의 논란은 다른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한 탐심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십일조라는 말 자체를 논란거리나 부담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과의 사랑의 귀한 교제로 보기에 십일조 하면 기쁨이 됩니다. 십일조는 율법이 어저구 저쩌구 교회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한다는 증거 밖에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연보는 꼭 필요하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악한 삯군 목사들의 간교한 악행에 그 용처의 불투명, 부정사용이 이런 논란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교회 건물을 유지, 운영하느라 정말 그 헌금이 쓰여야 할 선교와 구제는 후순위로 밀려나있는 실정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 말씀속에 그림자로 있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므로 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눅24:44절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완성)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주께서 세상 모든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사 화목제물이 되시고 부활하사 율법의 완성을 이루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11절에 우리 이방인들은 무할례자요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요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입니다. 그렇기에 제사법에 속한 십일조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멀리 있던 우리는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와졌습니다. 유대인들이 돈이 아닌 땅의 소산물로 드렸던 십일조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십은 충만 수, 전부를 뜻하며 일은 대표를 의미합니다. 하늘에 속하신 분께서 땅에 속한 인간들의 허물과 죄를 위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대표로 십자가에 죽으셨고 믿는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나님께 바쳐진 산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완성하셨기에 유대인들이 했던 십일조를 한다는 것은 주께서 육체로 오심과 죽으심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죄 아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유대인인 바울 자신도 율법아래에 있지 않다고 말씀합니다.(고전 9:20) 할례자(유대인)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이방인)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 이방인에게도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며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한 멍에를 제자들 목에 채우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험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만약 당신이 신앙인이라면, 1) 어짜피 다 하나님 것이다. 하나님 주신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십일조'라는 개념에 매일 필요가 없음 그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업에 내가 보탬이 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드는대로 하면됨. 2) 구약성서를 근거로 '해야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이단임. 히브리인들을 위해 떼어두었다면, 오히려, '목사, 전도사와 같은 직업을 가진 자들을 위한 사역비, 교회 운영비 및 사업비'로 생각하면됨. 3) 동호회나 우리가 속한 집단, 혹은 가정을 운영 유지하기 위해 돈을 쓰는것이, 회원, 가족된 입장에서 당연한 책임이라면, 차라리, '우리 교회의 운영과 교회를 기반으로 업으로 삼는자들의 생활비, 여러 사업 (구제, 선교 등)을 위해 '가족'이나 '회원'들에게 '필요를 알리고 달라고 하는게 솔직하고 깨끗한 거임'. -> 히브리인들은 제사에 집중하고 그게 직업이고 다른 일을 하지 않아서 그들을 서포트 하기 위해 뗀 '십일조'의 개념과 오히려 비슷함.
제 생각엔 굳이 성경내용 가지고 와서 이해하기 어렵게 두루뭉술하게 설명하기보간 그냥 쉽게 내가 속한 이 공동체가 좋고 잘됬으면 하는 마음이 있으면 후원의 개념으로 내는 거고 자신이 부담스럽거나 형편이 안되면 굳이 안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후원이니까요 개인의 자유죠. 후원이 기쁘고 즐거우면 하는거고 부담스러우면 안하는거죠. 또한 후원이기에 개인의 자유니 눈치줄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으면 하는거니까요. 십일조 = 멥버쉽, 주일헌금 = 수퍼챗 요런느낌?
재침례교 아나뱁티스트가 알려드립니다 매달 바치는 헌금 십일조가 아니라 십분의 일 세금(연보)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헌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구약의 십분의 일 세금은 1년에 한번 매 해 끝 12월달에 레위인, 백성들,고아 과부 나그네를 위한것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헌금을 강요하는 개신교를 떠나 주님께서 피로 세우신 초대교회 가정교회로 돌아가세요 주님의 명령입니다
십일조에 대한 계명이 아니라면 왜 하나님은 마태를 통해 기록했을까요? 성경은 아주 압축적입니다. 즉 교회시대 성도들에게 필요치 아니한 말씀은 기록하지 않았다는 뜻이죠. 마태복음은 불신하는 유대인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성도가 된 유대인들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롬 7:6 "얽매였던 것에 죽었고 벗어 났으므로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다. 율법의 조문의 묵은 것으로 하지 아니 할 것이니라" 하심은 이제부터 은혜 시대이고 율법 없이 제멋대로 살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율법은 구원의 조건으로 믿고 지키는 것은 짐이고 불가능합니다(갈3:10-11).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율법이 필요합니다. 율법은 죄가 무엇이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거룩함이 무엇인지 알려 줍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 하느냐 아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순종은 요? 롬 1:5에서 바을은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로 시작하여 16:26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로 로마서를 닫습니다. 로마서 전체를 믿음과 순종의 끈이로 묶어서 하나로 만듭니다. 믿음만있고 순종이 없으면, 율법만 지키고(선행만 행하고) 믿음이 없으면 둘 기독교의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것이고, 순종은 이 믿음을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심을 몸으로 믿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성부의 법이기도 하지만 모세에게 성부의 법을 직접 전달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율법의 수여자입니다. 율법의 조문 대로 지키지 않는다란 말은 율법 중에 지키지 않아도 되는 율법이 있다는 뜻입니다. 제사법, 절기법, 정결법, 음식법등등 예수님께 율법을 다 성취하시고 십자가에 못 밖으셨어 지키지 않아도 되는 율법이 있다는 뜻입니다. 십자가 이후에는 거룩한 성령께서 우리의 거룩 삶을 위해 인도해 가시는 거룩한 삶을 성령으로 살아야 함을 "영의 새로움"이라 하는 것입니다.믿음도 성령으로 믿고 거룩한 삶도 성령으로 사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와 가르침과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롬 7:12에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라고 할 뿐만 아니라 14절엔 "율법은 신령하다"고 했습니다. "신령한"은 프뉴마티코스란 말로서 "성령에 속한"이란 의미도 된다. 율법은 성부에게, 성자에게, 성령에게 속하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신령한 것입니다. 갖다 내어 버려도 되는 폐기된 물건이 아닙니다. 칼빈과 웨슬리는 절대 안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역사속에 들어 와 우리 대신 우리의 삶을 대신 사신 그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킴으로 그의 의가 우리의 의, 나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는 성령과 함께 우리의 존재 속에, 삶 속에 들어와 사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로 사는 의로운 삶은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을 살므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이런 삶을 요일 3:7 ". . . 의를 행하는 자는 그(예수)의 의로우신 것처럼 의롭고" 라고 말했습니다. 의를 행함은 이제 성령의 인도와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이며 진리인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함으로 지키는 삶입니다. 율법은 언제나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신령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피 공로를 믿고 그가 왕으로 명령하시는 그의 왕적 명령인 율법에 성령의 인도와 가르침과 능령을 힘입어 순종하는 삶이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제쳐두고 무슨 명령을 하시지요? 그러면 구약 39권을 찢어 버려야 했군요? 시편 119편을 읽어 보세요. 율법이니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악한 자들의 말을 들으면 안 됩니다. 십일조로 돌아 와서 십일조는 꼭 해야 합니다. 십일조와 감사헌급과 주일 헌금은 1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사역하시는 본 교회목사님들의 생활을 위해 필요하고, 좀 더 나아 가면 세계 선교를 위해 외국에 나간 선교사님들과 그의 선교사역을 위해 필요하고 좀 더는 구제를 위해 필요합니다. 주님이 마 23:23에서 하신 말씀은 십일조를 하지 말란 말씀이 아니며, 십자가에서 율법을 다 성취했으니 너희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네 마음대로 로 살아도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지키심으로 믿음으로 우리가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의인으로서 의로운 삶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삶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와 가르침과 능력으로 율법을 하나님의 나라의 국법으로 지켜야 하며, 예수님의 왕권에 순종하고 그 왕권과 구원을 널리 널리 전하기 위해 십일조와 감사험금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교회당에 낸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 하나님의 성사업을 위해 드린다는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업을 망치기 위해 사탄의 영감을 받아 가장 복음을 잘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탄의 사자들의 거짓말을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속샘은 하나님의 일의 법영보다 자기의 인기와 자기의 번영을 위해 할 말 아니 할 말을 쏟아내죠. 내가 볼 때 십중팔구 사탄의 자식을이며 지금은 빛의 사자처럼 말하는 나중엔 사탄의 사자로서 자기 정체를 드러낼 것입니다. 모든 이단들이 다 처음에는 다 그렇게 했다고 나중엔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었고 그 땐 이미 사탄의 영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미 사탄의 종을 하나님의 종으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교회와 선교와 구제가 마귀의 듯대로 망하게 될 것이고 마귀의 종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한 50년 넘게 읽어본 사람의 생각입니다. 큰 교회나 작은 교회에 출석하면서 십일조, 감사 헌금, 주일 헌금, 선교 헌금 등등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힘에 못 미치게, 때로는 힘대로, 때로는 힘에 지나도록. 예수님 잘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살아계실땐 아직 옛율법에 속해 있으니까 십일조 하는거고 십자가 사건 이후로 옛율법이 폐하여지고 복음시대니까 얽매이지 않으면 됩니다. 예수님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니 이제 안해도 되요. 자유롭게 마음에 정한 만큼 내시면 되구요. 받으신 은혜가 크면 재산의 반 이상 내도 됩니다. 십일조 안내면 성도들이 돈아껴서 교회 망할것 같다고 생각 안하셔도 되요.
성도의 십일조 가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바로 사용했더라면 지금처럼 사회에서 부정적인 모습이 되지 않았겠지요
주여, 올해에는 더욱 많은 헌금을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복음전파에 기쁨으로 드리게 하소서
아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마음이 흘러가게 하소서!
중요한 이슈 용감하게 다루어주셨네요. 응원합니다. 짝짝
고맙습니다☺️
십일조에 대해서 수많은 영상들이 있는데, 이 영상이 가장 성경적으로 잘 정리한 영상인 것 같습니다.
십일조의 문제는 헌금 봉투에 십일조라고 적어놨기 때문이지 헌금은 해야하지만 십의 일이라는 기준을 만들어서 강요아닌 강요를 하는 것이 문제임
사실 감동되고 진실한 선교와 선한일에는 얼마든지 헌금하려는 마음이 모든 성도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백퍼센트 공감합니다!
헌금의 참뜻,
감사합니다.
헌금의 참뜻을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주여, 나에게 인색한 마음을 치유하여 주소서
저의 인색한 마음도 치유해 주소서!
주여 당신의 이름으로 사기치는 게하시와 같은 목사놈들을 벌하여주시옵소서
설명이 조금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자면 구약시대의 십일조는 신정국가 체제에서 토지를 분배해 주고 그 소산의 10%를 세금으로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부가세와 비슷하지요.
그리고 레위지파는 공무원이어서 경작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제사장으로서 역할도 있지만 호구조사를 해서 군복무자들을 파악해서 전쟁에 대비하고 왕권이 모든 백성에게 미치게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봐야 합니다.
십일조의 사용처로 레위인으로 간주되는 목회자나 교회직무를 수행하는 보조자에게 보수로 지급될 수는 있읍니다. 그러나 주된 사용처는 과부와 고아의 구휼에 사용되었지요.
돈을 사랑하는 탐심으로 인색했던 나의 모습에 따끔하고, 십일조의 정신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게 되는 영상입니다. 율법과 십의 일이라는 숫자로부터 자유롭되, 즐거운 마음으로 봉헌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헌금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시고
정확하게 적용하고 계신
귀한 고백의 글,
고맙습니다💝
이렇게 잘 가르쳐 주는 분도 계시네요...
하느님께서 십일조가 사실 필요하겠습니까..?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지요.
그래서 더욱 그 십일조의 목적과 유래를 잘 알아야 하느님의 뜻에 부합되겠지요.!
십일조 뿐만 아니라 각종헌금을 도적질을 하는 목사들에게 마음이 불편해도 계속해서 하는게 맞는가요.
아니면 소외된자들을 위해 아름답게 직접 도움을 주는게 맞을까요.
십일조를 교회에 냈다고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하는 근거를 먼저 찾는것이 순서 입니다 목사님은 절대로 레위인이 될수 없습니다
지난 2년간 수입이 전혀 없어 남편만 십일조를 드리다가 제가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기쁜 마음으로 제가 다시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했을때 남편이 하는 말이
이제 우리는 아기도 있는데 우리 둘다 양쪽에서 드리면 아기는 무슨 돈으로 키우냐 하더라구요
주신분이 하나님이니 다시 부족함없이 채워주실거야 하는데도 헌금이 너무 많다 하는 남편에게
왜 나와 생각이 다를까 잠시 저의 잣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억지로 하거나 인색함으로 하는것이 아닌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그 해답이었네요
얼마를 드리느냐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드리느냐가 더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드릴 수 있도록 물질의 축복을 주심 또한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항상 친밀한 공감이 가는
현실적 사례를 고백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미 즐거운 드림의 연보자가 되신것 같아
너무 기쁩니다 💝
목회자들이 인구의 10%라면 십일조내는게 맞는거 같아요. 그게 아니라면 10%는 내것이 아니라 교회와 선한사업에 쓰는게 좋을듯 합니다. 교회에다만 내면 교회가 너무 커져요.
공동체 유지에 엄청난 역할을 한 것이 자명하다...
겸허하고 겸손의 미덕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듯.
생명도, 건강도, 일거리, 직장, 평안한 나라 모두모두 허락하신 하나님께 사실 모든 것을 다 드려도 부족하지요. 십일조, 십이조, 십삼조.. 우리의 감사, 구원의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부터 왔음을 고백하는 것이 헌금의 본질이고
신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너 쓰라고 주신것을 목사도둑놈들이 뺏아가는것을 십일조라고 한다
하느님께 드리는거라노 말하고 목사가 먹는다고 말하는거다
지금이 무슨 제사장시대인가?세금을내야지 웬 십일조?
머리좋은 목사들도 십일조가 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교회 운영과 목사들 생계를 위해 돈이 필요하니 불가불 걷어야 하는 것이다.
새생명을 주신 주님을 구약의 율법보다 더 사랑한다면 더 사랑하는 만큼하십시오. 먼저 주님을 더 사랑하게 해달라고 구하십시오.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율법을 완성하신 사랑의 법을 은혜와 축복을 구하는데만 적용하지말고 주님께 드리는데도 적용하시길...
아멘, 감사합니다^^
신약에 십일조가 안나오지만 신약에 나오는 연보라는 단어에 이미 십일조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3장 23절은 외식에 대한 비판이지 그것이 십일조를 하지 말라는 뜻도 아닙니다.
십일조가 레위인을 먹여 살리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제물이나 예물은 드리는 자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표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예를 들면 화목제와 같은 경우 제물의 일부는 제사장이 받고 나머지는 드리는 자가 먹습니다.
화목제의 목적은 예물을 드리는 자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표현한 것이지 화목제의 목적이 제사장 고기 먹이려고 그리고 드리는 자가 고기파티 할려고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십일조의 목적은 우리의 가진 것과 수입에 대한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고백입니다. 다만 드려진 예물을 사용하는 방법이 레위인에게 주었을 뿐입니다.
마치 십일조의 목적이 레위인 먹여 살리기 위해서 드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십일조를 레위인들이 받는다! 라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부양이 지나쳐서 과한 것을 당연한 듯 챙기려 들고, 심지어 교회가 자기 것인줄 착각하는 목사들, 더 나아가 교회를 사고 파는 이 지경에 이른 심부엔 성도 숫자를 돈으로 환산하려는 일개 평신도보다도 못한 타락한 사역자들이 널려 있는 세상에 와 있다.
뼈저리게 공감합니다.
주여, 우리와 한국교회가 배금주의, 물량주의, 기복주의, 성공복음으로 부터 돌이킬수 있도록
뼈를 깎는
회개의 영을 부어주소서!
십일조 드리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 입니다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자력으로 살기 힘든이웃에게 사용하라 했어요 원로 은퇴목회자를 봉양하는거
아니자나요 사억자들이 회개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십일조는 세금이었다. 지금은 세금 내고 수 십가지 감사헌금 , 건축 헌금. 주일 헌금. 심방 헌금 내고 또 십일조까지 내라고 한다. 도둑놈 심보다.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했으니 내옆에 형제가 돈이없어 굶주림에 고통해도 지갑을 열지 않는다면 그 십일조는 무효이고 십일조는 커녕 헌금도 못했지만 옆에 나보다 더 가난한 형제에게 지갑을 열어 나에게 부족한 금전중에 극히 일부라도 주었다면 그사람은 십일조를 한것과 다름없다고 하나님은 인정할것입니다
이것이 십일조의 근본 정신이라고 생각하구요
영상의 4분 경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여기서 율법 정신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야고보서가 율법의 행위도 강조하는 것이 믿음은 행위로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정신만 있고 마음만 있으면 그것이 어떻게 증명 되겠습니까? 성경에서 순종을 강조하는 것이, 믿음의 증거가 순종이라는 행위로 나타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주님께서도 "이것도 저것도"라고 분명히, 율법의 참된 정신과 행위, 이 두가지를 지켜야 할 것을 말씀하셨는데, 주님의 말씀의 뜻을 율법의 정신으로만 설명하고 그냥 넘어가는지요? ㅎㅎ
저도 성경을 보는 사람입니다. 이런식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기 생각에 맞추어서 어물쩡 넘어가면 안되요~ 이게 성경 말씀을 자기 생각대로 가감 하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이것도 저것도" 지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신과 마음만이 아닙니다. 행위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웃사랑? 마음과 정신만 있으면 되나요? 행위가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 세대 사람들에게 맞추려고 일부러 빙~둘러서 왜곡하며 가감 한 것이라면, 회개하세요...
차라리 전하지 않는 것이 낫지 이런식으로 전하면 안됩니다. 율법은 사랑으로 "완성이" 되는 거지, 율법 자체를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주님의 마음과 정신과 삶으로 다시 보기를 바랍니다.
십일조와 주일 헌금은 구원받은 자라면, 자신이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라 믿는다면, 필히 드려야할 예물이며, 나머지 예물은 자신의 감동으로 자원해서 드리는 것이 맞습니다. 이것이 올 바른 성경적인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십일조를 드리라는 말씀이 분명하게 없다는 것은, 십일조는 구약에서 이미 강조 하였듯이 신앙의 기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술 먹지 마라, 담배 피지 마라고 있습니까? 어떤 것은 문자로, 어떤것은 자기 해석으로 이런식으로 성경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에서도 기도하는 자의 마음과 자세를 지적하셨지 십일조를 드리는 바리새인의 모습을 지적하지는 않았습니다. 십일조와 주일예물은 기본입니다.
초등수학을 중등수학과 고등수학에서 다루지 않는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한글을 다시 배우지는 않습니다. 한글은 기본이죠.... 그리고 십일조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에도 포함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문자로만, 문자로 기록된 것만 알 것이 아니라, 더 깊고 더 넓게 보고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만...
구렁이 담넘어가는건 한국 기독교 입니다. 전 세계 어느나라에서 십일조를 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한국에서만 십일조를 냅니다. 한국 아니면 해외에 있는 한인교회에서만요. 그럼 외국에 있는 다른 교회들은 성경을 몰라서 십일조를 안한건가요? 우리가 행위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건 율법 입니다. 감사함으로 내 몸이 이끌려서 하게 된다면 은혜지요. 숫자 퍼센트를 정해놓고 이 율법을 따르면서 그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서로 정죄하게 하는 시스템을 결코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외국에서 십일조 하는지도 유튜브 통해서 검색도 좀 해보시고 종교의흑역사 라는 책도 함께 보시면 님의 십일조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는데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제발 옛 율법은 버려주세요.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것 입니다. 그 안에 이모든 율법이 다 들어 있습니다.
@@romin1208 외국교회를 왜 비교하나요? 외국교회가 진리인가요? 또 무슨 책을 읽는것이 중요한것도 아니고 그 책의 글쓴이도 자기 생각과 주장일 뿐입니다. 진리는 성경이고 오직 예수 입니다. 전혀 설득력 없는 외국교회나 책 한권으로 비교하지 마시고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으로 반박 해보세요. 사람의 지식과 견해와 생각과 주장은 믿음과 복음을 왜곡할뿐입니다. 율법이 뭔지도 모르는 이 같으니 이만 할께요
@@풀업파월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인데 왜 외국과 비교하냐니... 저도 할말이 없으니 이만 할께요. ㅡㅡ;;;
@@romin1208 님은 성경과 복음에 대해 완전 무지하군요... 이스라엘 유대민족에게서부터 시작된게 성경이고 복음인데 지금 어떻나요? 예수님 당시에도 어떠했나요? 성경을 좀 읽으세요.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라고 외국교회와 비교해서 우리나라 교회가 잘못 됐다? 님의 논리대로라면 성경은 볼필요도 없고 이스라엘 유대민족과 비교를 해야 한다는건데ㅎㅎ 참 정말 무지 하군요 ㅎㅎ 제글에 예수님의 말씀에 관해 반박하고 성경말씀을 들어 님의 주장을 설득하세요 성경과 복음은 어디서 먼저 전파된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마 19: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성경을 대충알고 남의 입으로 듣고 배우지 말고 직접 성경을 읽고 보고 또 읽고 보세요
Good입니다.
그것을 왜 시간과 장소를 만들어놓고 목사들 발앞에 같다 노아야 합니까 그게 십일조에 정신입니까
그럼 예수님이나 바울시대의 헌금은 무엇인가?
헌금이 아니라 연보 입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인데..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것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죠. 다른 이웃들과 복음 전파를 위한 연보 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하나님은 돈이 필요 없으세요.
신약시대의 십일조는 십일조가 페지된 것이 아니고 소득의 10%라는 숫자적 규정을 예수 없앴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정이 좋은 분들은 실일조이상 소득의 절반 이상을 낼 수도 있고 형편이 어려운 분들은 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 보는 것이 무방합니다. 가령 300만원 버는 가장에게 30만원은 엄청 큰 돈입니다.
그러나 1000만원 버는 가장에게서 300만원을 내도 한달에 300만원 버는 가장에 비해서 배이상 소득이 있습니다.
말씀을 인용하는데 있어 신중함과 지혜를 더한다면 전혀 다른 메시지가 나올 수있다. 근거로 제시하는 말씀을 자신의 메시지에 적용하는데 있어 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접근과 이해도 드러난다. 자신의 분량이라는 한계에서 성령님은 각자에게 그들의 이해/분량에 맞게 깨닫게하시고 지혜롭게 생각하도록 견인하신다. 자신의 주장이 주님의 심판대 앞에 불리한 증거가 될 수있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한다면 언어사용과 표현도 더욱 신중할 것이다. 사울바울도 자신 안의 그리스도의 분량만큼 하나님의 증거를 주고 있다.
창12장에 아브라함은 언약의 시조입니다. 그런 아브라함(마1장 그리스도의 족보에)은 아비멜렉에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구약성경도 확실히 그리스도의 모형 복음입니다.
십의 일을 정하든 십의 이를 정하든 만원을 정하든 마음에 정하고 하라는것이죠
교계에 어퍼컷을 날릴 수 있는
용기 적극 응원합니다
엄청난 부의 축적이 무너져야
교회가 살 것입니다
왜 세금은 안 내고 호의호식하는가?
그리스도인이
헌금의 아름다운
본질과 원리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절날씨시간 상관없이 좋은 위치의 쾌적한 공간에 모여서
좋은 음향시설에서 실력있는 연주가들 반주에맞춰 찬양하고
훌륭한 지식교양쌓은 고학력 교역자가해주는 설교들으며 예배마친후
좋은 식사하고 편안한 의자에앉아 좋은 차마시며 대화나누고...
그 모든게 경제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면 비용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비용을 지불해야 이상없이 매주 운영되구요.
그 운영을위해 이제목 저제목으로 돈 내라고하는거 그게 헌금입니다.
그저 운영비를위한 돈 문제를 자꾸 성경을뒤져 시비가려봐야 결론이 안나죠.
몇천몇백년전의 거의 지구반대편 문화인 성경의 돈문제 구절들을 가져와서
현대 한국문화를 살고있는 한국교인들이 옳네그르네 따지는거 자체가
그냥 말장난 함정에 빠지는길이라고 봐요.
그자체가 교회,신자의 신앙과는 상관없는 문제이기도하구요.
그건 그때고 지금은 세금을 내잖아요
누구도 예수님 보다 위 일 수는 없습니다
(눅11:42)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영상을 잘 보시고 댓글을 써도 늦지 않습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구절은 예수님이 아직 살아계실때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인해서 옛 율법이 폐지 됐습니다.
하나님이 예수가 거지냐 목사가 먹지
좀 정확한 결론이 아쉽습니다.
1. 지금도 수입의 10%를 떼는 십일조를 해야하는가? 또는 십일조 생활이 신앙생활에 중요한 것인가?
- 성경을 근거로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왜냐하면 모양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십일조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잘못 된 것이죠.
2. 그렇다면 헌금액수는 어떻게 정해야하는가?
- 바울의 고린도서를 근거로, 개개인의 수입과 생활비에 무리가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그렇다고 인색한 액수가 아닌 거꾸로 한도 내의 최대한의 액수의 헌금을 해야합니다.
예를 들어 초고소득자들은 소득의 7-80%를 드려도 생활에 부담이 안 된다면 그 액수를 헌금하는 것이 성경적로 옳지요. 저소득자의 경우 생활비가 너무 빠듯하면 매우 적은 액수도 상관없습니다. 못해도 괜찮구요.
실제로 율법 십일조도 모든 이들이 십일조의 의무를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성도로 부터 돈 받지 않으십니다. 성도로 부터 돈 받아 교회에 다시 내려주는 중간자 역할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돈 바치는 성도들의 중심을 높이 평가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크리스찬들여, 내게 돈 바치지 말라. 그 돈을 네 이웃에 베풀거라. 네 부모형제에게 주라, 네 가까운 이웃에 주라, 네 먼 이웃에 주라.
내게는 단 돈 일원도 가져오지 말라. 나는 인간으로 부터 돈 받는 속물신이 아니니라. 이웃에 베푸라. 나는 너희가 이웃에 베푸는 돈을 내게 바친 것으로 간주해 주겠노라.
교회들아, 너희가 필요로하는 돈은 기부금, 회비, 모금으로 걷어서 쓰라. 너희들 돈 걷는데 내 이름 파는 것은 좋은데, 내게 바치라는 말은 제발하지 말라. 교회에 기부해 달라고 부탁해라. 나는 성도가 교회에 기부하는 돈을 내게 바친 것으로 간주해 주겠노라.'
내야되요 ?
🤔🤔🤔😀😀😀🙏🙏🙏🌈🌈🌈
핵심이 빠졌네요. 예전 그러니까 재정 일치 사회에서 나온 십일조는 근대 국가에서는 맞지 않는 개념입니다. 이제 뭐 과부라고 해서 반드시 가난 한 상황도 아니고 복지의 많은 부분을 국가가 담당하고 또한 군사나 모든 다른 면도 국가가 다 하고 있으니 교회에 대한 기부는 교회가 운영되고 신부 목사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만큼으로 제한해야 합니다. 또한 예산의 집행에 있어서도 투명해야 합니다.
그돈을 누가 만든 어 준것인줄아시나요 여호가 나요
교회에는십일조헌금만있는게아니잖아요 감사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 주일헌금 속죄죄헌금 부활절 성탄절 구제헌금 차량헌금 생일헌금 기타 수많은 명목의 헌금이 있는데 가난한사람들은 정말엄두를못내요 ?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성경 오역입니다.
예수님도 십일조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십일조의 의미를 안다면 십일조가 아니라 십이조, 그 이상도 드려야 합니다.
성경에대해서 잘못 알고잇는 게 구약의 율법을 신약에서는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구약에서 말하는 울법중 없어진 것은 시민법과 제사법만 없어진 것이고 나머지는 지금도 유효한 것입니다.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시민법 제사법을 구분하는 하는 기준이 성경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고 성경 어느 구절에 율법을 구분해서 지키라고 하였으며 언제부터 하나님께서 친히 지정하신 장소가 근거도 없이 한국교회가 되었을까요
십일조의 논란은 다른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한 탐심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십일조라는 말 자체를 논란거리나 부담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과의 사랑의 귀한 교제로 보기에 십일조 하면 기쁨이 됩니다. 십일조는 율법이 어저구 저쩌구 교회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한다는 증거 밖에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연보는 꼭 필요하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악한 삯군 목사들의 간교한 악행에 그 용처의 불투명, 부정사용이 이런 논란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교회 건물을 유지, 운영하느라 정말 그 헌금이 쓰여야 할 선교와 구제는 후순위로 밀려나있는 실정입니다.
상징. 모형 다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이 복음의 상징성을 가졌다. 특히 이삭의 예는 사람이 죽을 수 없어서 수양(그리스도) 죽어야만 증거를 말해주고 있다. 가장 확실히 트라우마가 각인된 이삭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100년의 응답을 본 장본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 말씀속에 그림자로 있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므로 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눅24:44절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완성)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주께서 세상 모든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사 화목제물이 되시고 부활하사 율법의 완성을 이루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11절에 우리 이방인들은 무할례자요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요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입니다. 그렇기에 제사법에 속한 십일조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멀리 있던 우리는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와졌습니다. 유대인들이 돈이 아닌 땅의 소산물로 드렸던 십일조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십은 충만 수, 전부를 뜻하며 일은 대표를 의미합니다. 하늘에 속하신 분께서 땅에 속한 인간들의 허물과 죄를 위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대표로 십자가에 죽으셨고 믿는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나님께 바쳐진 산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완성하셨기에 유대인들이 했던 십일조를 한다는 것은 주께서 육체로 오심과 죽으심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죄 아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유대인인 바울 자신도 율법아래에 있지 않다고 말씀합니다.(고전 9:20) 할례자(유대인)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이방인)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 이방인에게도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며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한 멍에를 제자들 목에 채우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험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돈 때문에 양들이 문에 들어가지 못하던데요.
교회가 걸러내니
참 문제던데요
그래서 타락한것
아닙니까?
기복신앙이 돼버림
심판은 주님이!
만약 당신이 신앙인이라면,
1) 어짜피 다 하나님 것이다. 하나님 주신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십일조'라는 개념에 매일 필요가 없음
그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업에 내가 보탬이 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드는대로 하면됨.
2) 구약성서를 근거로 '해야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이단임.
히브리인들을 위해 떼어두었다면,
오히려, '목사, 전도사와 같은 직업을 가진 자들을 위한 사역비, 교회 운영비 및 사업비'로 생각하면됨.
3) 동호회나 우리가 속한 집단, 혹은 가정을 운영 유지하기 위해 돈을 쓰는것이, 회원, 가족된 입장에서 당연한 책임이라면,
차라리, '우리 교회의 운영과 교회를 기반으로 업으로 삼는자들의 생활비, 여러 사업 (구제, 선교 등)을 위해 '가족'이나 '회원'들에게 '필요를 알리고 달라고 하는게 솔직하고 깨끗한 거임'. -> 히브리인들은 제사에 집중하고 그게 직업이고 다른 일을 하지 않아서 그들을 서포트 하기 위해 뗀 '십일조'의 개념과 오히려 비슷함.
신약시대 십일조는 첫열매 예수그리스도
말하는 것입니다
각자 깨달은 성경의 진리를 가져와서 성도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것을 십일조라고 하는 것이지
물질적 십일조헌금을 말하는 것이 아님니다
구약이 영으로 거듭난것이 신약이라고
생각하시고 성경을 이해하면 됩니다
제 생각엔 굳이 성경내용 가지고 와서 이해하기 어렵게 두루뭉술하게 설명하기보간 그냥 쉽게 내가 속한 이 공동체가 좋고 잘됬으면 하는 마음이 있으면 후원의 개념으로 내는 거고 자신이 부담스럽거나 형편이 안되면 굳이 안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후원이니까요 개인의 자유죠.
후원이 기쁘고 즐거우면 하는거고 부담스러우면 안하는거죠.
또한 후원이기에 개인의 자유니 눈치줄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으면 하는거니까요.
십일조 = 멥버쉽, 주일헌금 = 수퍼챗 요런느낌?
하나님께서 성경 66권 에서 하나님을 시험해보라고 하시네요.
또 십일조 을 드리지 안어면 하나님이 우리보고 도덕놈이라고 말함니다.
우리가 복을 받아야 물 한병이라도 나누조.
재침례교 아나뱁티스트가 알려드립니다
매달 바치는 헌금 십일조가 아니라 십분의 일 세금(연보)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헌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구약의 십분의 일 세금은 1년에 한번 매 해 끝 12월달에 레위인, 백성들,고아 과부 나그네를 위한것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헌금을 강요하는 개신교를 떠나 주님께서 피로 세우신 초대교회 가정교회로 돌아가세요
주님의 명령입니다
레위인에게 내세요.
십일조에 대한 계명이 아니라면 왜 하나님은 마태를 통해 기록했을까요? 성경은 아주 압축적입니다. 즉 교회시대 성도들에게 필요치 아니한 말씀은 기록하지 않았다는 뜻이죠. 마태복음은 불신하는 유대인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성도가 된 유대인들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롬 7:6 "얽매였던 것에 죽었고 벗어 났으므로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다. 율법의 조문의 묵은 것으로 하지 아니 할 것이니라" 하심은 이제부터 은혜 시대이고 율법 없이 제멋대로 살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율법은 구원의 조건으로 믿고 지키는 것은 짐이고 불가능합니다(갈3:10-11).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율법이 필요합니다. 율법은 죄가 무엇이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거룩함이 무엇인지 알려 줍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 하느냐 아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순종은 요? 롬 1:5에서 바을은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로 시작하여 16:26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로 로마서를 닫습니다. 로마서 전체를 믿음과 순종의 끈이로 묶어서 하나로 만듭니다. 믿음만있고 순종이 없으면, 율법만 지키고(선행만 행하고) 믿음이 없으면 둘 기독교의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것이고, 순종은 이 믿음을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심을 몸으로 믿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성부의 법이기도 하지만 모세에게 성부의 법을 직접 전달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율법의 수여자입니다.
율법의 조문 대로 지키지 않는다란 말은 율법 중에 지키지 않아도 되는 율법이 있다는 뜻입니다. 제사법, 절기법, 정결법, 음식법등등 예수님께 율법을 다 성취하시고 십자가에 못 밖으셨어 지키지 않아도 되는 율법이 있다는 뜻입니다. 십자가 이후에는 거룩한 성령께서 우리의 거룩 삶을 위해 인도해 가시는 거룩한 삶을 성령으로 살아야 함을 "영의 새로움"이라 하는 것입니다.믿음도 성령으로 믿고 거룩한 삶도 성령으로 사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와 가르침과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롬 7:12에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라고 할 뿐만 아니라 14절엔 "율법은 신령하다"고 했습니다. "신령한"은 프뉴마티코스란 말로서 "성령에 속한"이란 의미도 된다. 율법은 성부에게, 성자에게, 성령에게 속하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신령한 것입니다. 갖다 내어 버려도 되는 폐기된 물건이 아닙니다. 칼빈과 웨슬리는 절대 안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역사속에 들어 와 우리 대신 우리의 삶을 대신 사신 그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킴으로 그의 의가 우리의 의, 나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는 성령과 함께 우리의 존재 속에, 삶 속에 들어와 사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로 사는 의로운 삶은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을 살므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이런 삶을 요일 3:7 ". . . 의를 행하는 자는 그(예수)의 의로우신 것처럼 의롭고" 라고 말했습니다. 의를 행함은 이제 성령의 인도와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이며 진리인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함으로 지키는 삶입니다. 율법은 언제나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신령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피 공로를 믿고 그가 왕으로 명령하시는 그의 왕적 명령인 율법에 성령의 인도와 가르침과 능령을 힘입어 순종하는 삶이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제쳐두고 무슨 명령을 하시지요? 그러면 구약 39권을 찢어 버려야 했군요? 시편 119편을 읽어 보세요. 율법이니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악한 자들의 말을 들으면 안 됩니다. 십일조로 돌아 와서 십일조는 꼭 해야 합니다. 십일조와 감사헌급과 주일 헌금은 1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사역하시는 본 교회목사님들의 생활을 위해 필요하고, 좀 더 나아 가면 세계 선교를 위해 외국에 나간 선교사님들과 그의 선교사역을 위해 필요하고 좀 더는 구제를 위해 필요합니다.
주님이 마 23:23에서 하신 말씀은 십일조를 하지 말란 말씀이 아니며, 십자가에서 율법을 다 성취했으니 너희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네 마음대로 로 살아도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지키심으로 믿음으로 우리가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의인으로서 의로운 삶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삶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와 가르침과 능력으로 율법을 하나님의 나라의 국법으로 지켜야 하며, 예수님의 왕권에 순종하고 그 왕권과 구원을 널리 널리 전하기 위해 십일조와 감사험금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교회당에 낸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 하나님의 성사업을 위해 드린다는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업을 망치기 위해 사탄의 영감을 받아 가장 복음을 잘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탄의 사자들의 거짓말을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속샘은 하나님의 일의 법영보다 자기의 인기와 자기의 번영을 위해 할 말 아니 할 말을 쏟아내죠. 내가 볼 때 십중팔구 사탄의 자식을이며 지금은 빛의 사자처럼 말하는 나중엔 사탄의 사자로서 자기 정체를 드러낼 것입니다. 모든 이단들이 다 처음에는 다 그렇게 했다고 나중엔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었고 그 땐 이미 사탄의 영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미 사탄의 종을 하나님의 종으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교회와 선교와 구제가 마귀의 듯대로 망하게 될 것이고 마귀의 종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한 50년 넘게 읽어본 사람의 생각입니다. 큰 교회나 작은 교회에 출석하면서 십일조, 감사 헌금, 주일 헌금, 선교 헌금 등등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힘에 못 미치게, 때로는 힘대로, 때로는 힘에 지나도록.
예수님 잘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완성된 것은 끝을 의미한다. 건물을 짓고 완성하면 그 건물 공사는 끝난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통한 모든 것은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뭘 알고 좀 성경을 논하라.
구약의 선택적 채택..ㅎㅎ
교회에 유리하면 구약을 지켜라
불리하면 구약이니까 안지켜도 된다.
근데 그거 알라나 모르겠다
초대교회에서는 전재산 다 갖다바쳤다는거...ㅋ
몰래 빼돌리면 죽음...ㅡㅡ
지금은 헌금이란 목사의 강요 협박에 의해 헌금을 갈취해서 자기사욕 챙기기 바쁩니다
종교 돈과 권력
권력에는 반드시 신이 낀다.
하나님과 십일조가 나쁜게 아니고 목사님들도 나쁜게 아니고 말씀을 자기들 좋을대로 해석해서 하나님이 무조건 내라고 말씀하셨다 라고 성경 지식없는 성도들에게 강요해서 착취하는 일부 먹사들이 나쁘죠
구약시대에는 토지를 분배해 주고 그 소산의 10%이지, 그냥 십일조 내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구약의 십일조를 요구할려면 각 교인들에게 사업장을 열어주고 그 소득의 10%을 요구해 합니다.
수입의
아직도 십일조 내라는 목사한테 속아서
해석은무슨
신약을믿는자들이 구약에만있는 십일조를 왜내냐 십일조 내지말라는
그절은 왜 빼먹고
구약의 십일조 대신
신약엔 십이조나 십삼조 내심이 더욱 좋을 듯...
십일조의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너는 나의 것 이다"
라는 뜻 이다. 이걸 알라고 드
리라고 하심이지 하나님께서
그거 받아먹습니까? 다 사람이 정해서 내라는겁니다
십일조 .. 내야한다고 생각 뭐 민수기 뭐고 떠나서 교회가 뭔가 운영이 되야 ..좀 교회도 생각합시다
예수님의십일조말씀은 십일조도하라는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하는게 맞죠. 하지만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후에 옛 율법은 폐하여 졌죠.
교회도 비지니스 지요. 목회자가 교회 운영도 해야되고 마눌 자가용 옷도 필요하고 애들 교육비도 들지요. 저는 목회자는 결혼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이 생기면 사심이 생기고 욕심이 화를 부르죠. 돈 앞에는 장사 없습니다. 천주교나 불교처럼 결혼하면 안됩니다. 사실 하니님이 무슨 돈이 필요합니까? 신도 앵벌이 핑계일뿐이지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십일조는 현재 안대는게 맞지 돈에 환장한 목사라는것들이 강조하는거지
십일조로. 마음이 불편하다면. 십일조 안하는게. 정답~~십일조 안한다고 문제생기는거 아님~~십일조 해아한다는논리는 신도헌금으로 먹고사는 목사들의 괘변임 십일조하느니 그돈으로 주위에 선행하면 수십배의 효과가나타남
십일조를 요구하는 인간은 사기꾼이요 강도입니다. 십일조는 돈이아니고 예수님 자신 이십니다.
바보들 아냐. 예수님 믿는다면서 예수님이 하라신다. 십일조는 하나님것이다. 하나님이 니들 푼돈이 필요해서 십일조하라고한것이냐 마음을 하늘에 두기위해서 하라는거지.
마태복음 23:23 KRV
[2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행하라하신다.
예수님살아계실땐 아직 옛율법에 속해 있으니까 십일조 하는거고 십자가 사건 이후로 옛율법이 폐하여지고 복음시대니까 얽매이지 않으면 됩니다. 예수님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니 이제 안해도 되요. 자유롭게 마음에 정한 만큼 내시면 되구요. 받으신 은혜가 크면 재산의 반 이상 내도 됩니다. 십일조 안내면 성도들이 돈아껴서 교회 망할것 같다고 생각 안하셔도 되요.
율법의 조문이 아니라 정신이라고 ? 제 멋대로 정신이라고 주장하네
종교 돈과 권력 전지전능하신 야훼가 돈필요하다고 하십니까 위선 그만떱시다
구약과신약다포함입니다
십일조와예물이다포함한다
목사님은 십일조 안하시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