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뛰어넘어 만나게 되는 반가운 문화유산과 전통을 이어가는 이들의 삶이 있는 정겨운 곳 경상남도 거창으로 떠나본다 ㅣ 한국 재발견 (KBS 20120908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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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15 ноя 2024
- 한국 재발견 '청정 거창, 마음으로 걷다 - 경남 거창'
1. 자연과 벗한 삶의 문화 유산 - 수승대와 갈계숲
아름다운 계곡과 숲이 많은 거창의 곳곳에는 아름다운 문화유산들이 많이 남아있다.
누각과 정자만해도 125채. 특히 맑은 물이 흘러 여름철 많은 이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수승대를 찾으면 처음 찾은 이는 깜짝 놀라고만다.
계곡 한 가운데 집채만한 바위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 모양이 꼭 거북이형상이어서 놀라고, 또 그 바위 옆면은 선조들의 시와 글이 가득 새겨져 있어 놀란다.
삼국시대 백제의 사신을 떠나보내며 근심으로 송별하던 곳이라 수송대라 했다가 퇴계 이황선생이 들러 수승대라 이름을 고쳤다고 하는데, 거북바위를 바라보는 정자 관수루에는 정자로 오르는 계단이 없어 왜 계단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도 갖게 된다.
또 갈계숲에는 신선이 타고 놀고 싶을만큼 아름답다는 ‘가선정’ 선비의 기상이 품기는 ‘도계정’,
여인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병암정’이 소나무와 어울려 진한 역사의 향기를 전한다.
이렇게 자연과 벗하며 살아온 선조들이 남긴 역사의 문화유산을 만나본다.
2. 거창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얼굴들 - 거창의 불상들과 둔마리고분 벽화
삼국시대 거창은 신라와 백제의 경계선에 있던 곳으로 전쟁을 많이 겪었다.
가야의 몰락때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안위와 평화를 빌었을 불상들이 곳곳에 서 있다.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입상, 상림리 석조관음입상, 농산리 석불입상등이 대표적인데, 화강암이 많이 나는 거창의 특성으로 거창지역의 불상은 커다란 돌부처다.
또 둔마리 산등성이에 자리잡고 있는 돌무덤에선 고려시대 벽화가 발견됐다.
고려시대 고분벽화는 우리나라에 5개가 채 안된다고 하는데 세상을 떠난 이의 천도를 빌며 그렸을 벽화속의 선녀들까지 거창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얼굴들을 함께 만나본다.
3. 남으로 간 충신을 만나다 - 동계정온 고택
조선중기 문신 정온 선생이 태어난 고택. 안채 뒤 사당으로 가보면 처마 밑에 정조대왕이 하사한 시가 한 수 걸려있다. “북으로 가거나 남으로 오거나 의는 매한가지.
금석같이 정결하고 굳은 절개는 아직도 삭아 없어지지 않았네.“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한 후 척화파였던 김상헌은 청나라로 끌려가고, 정온선생은 자결을 시도했는데 바로 북으로 간 이가 김상헌, 남으로 온 이가 정온선생이다.
치료 끝에 살아난 선생은 고향의 깊은 산중에 들어가 초막을 짓고 살다 죽었다고 하는데, 인조가 그의 충절을 생각해 내린 정려가 출입문인 생가에서 그가 삶을 마감한 모리재를 찾아 그의 선비정신을 생각해본다.
4. 백성과 나라를 위한 저항정신의 고장 - 인민사, 파리장서비, 거창가
1862년 지배계급의 가혹한 군포징수를 견디다 못해 백성들이 들고 일어난 거창농민항쟁.
4개월후 관군에 진압되었지만 그 정신은 남았다.
1932년 지역주민들이 항쟁을 이끈 평민 이승모를 추모하는 사당 인민사를 세운 것.
그 의로움을 기리기 위해 후세사람들은 양반이 아닌 평민의 사당을 세웠다.
이곳에서 거창의 저항가였던 ‘거창가’를 찾아 복원해 다시 부르는 마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했는데....
그런가하면 거창에선 1919년 지방 유림들이 모여 파리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 세계 언론을 환기시키려던 ‘파리장서거사’를 의논했고, 상림리에는 파리장서비가 서있다.
또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사선대는 의친왕 이강이 일제에 항거하는 의병봉기의 근거지로 삼으려 했다는 사연까지... 이렇게 역사속에서 백성과 나라를 위했던 거창의 저항정신을 만나본다.
5. 해탈을 찾아가는 길 위로 울려 퍼진 아름다운 동종소리 - 고견사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또 있을까싶게 사찰로 가는 길을 아름답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아름다운 돌담과 만난다.
그곳에서 고견사의 동종소리를 듣는다면 아마 그 아름다움은 몇배가 될 것이다.
보물로 지정된 고견사 동종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연대와 만든 이유가 종에 새겨져있어 특이하고, 또 종을 매다는 용뉴의 용머리에 임금‘왕’자가 새겨져있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 왕씨들을 위해 수륙재를 지내도록 전답과 향을 내려주었다고 하는데, 조선의 왕실과 그만큼 연계가 있었던 것.
또 고견사의 고려시대 석불과 소박한 모습의 작은 삼층석탑에서도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인가 느껴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6. 전통을 이어가는 이들 - 징, 삼베일소리
거창에도 우리 전통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 대를 이어 부자가 함께 방짜징을 만드는 무형문화재 14호 징장 이용구씨와 아들 이경동씨. 이들이 만든 징이 깊은 소울음을 내며 울려퍼지다 여운이 멈추는 곳에는 또 다른 소리가 들려온다. 거창 삼베일소리다.
14살부터 삼베일, 길쌈을 시작한 소녀는 이제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됐다.
하지만 지금도 삼베일소리를 벗삼아 삼베를 짜는 예능보유자 이말주 할머니.
그 분에게 거창삼베일소리에 담긴 우리 어머니들의 애환을 들어본다.
7. 돌담 따라 흐르는 아련한 고향의 추억 - 황산마을 돌담길, 야치기
위천면 황산리 황산마을엔 한옥 기와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거창 신씨 집성촌으로 대부분 19세기부터 20세기 초 건립된 한옥들.
기와집을 둘러보며 조선말기 양반가의 건축양식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거니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 마을의 돌담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정겹고 마음이 푸근해진다.
돌담 사이로 반찬을 넘겨받고, 서로 안부를 묻던 이들이 오랜만에 모여
횃불을 들고 잠든 고기를 잡는 야치기 판을 벌였다.
그리고 거창의 대표음식중 하나인 어탕국수로 마을 잔치가 벌어진다.
그 정감 있고 구수한 추억의 맛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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