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삼국지 지략가 지력 순위 TO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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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1 фев 2025
  • #삼국지 #제갈량 #사마의
    ★여몽 년도 수정★
    20. 여몽
    214년 여몽은 형주 공략에 나서 오나라가 장사・계양 2개 군을 영토로 편입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215년에는 합비를 공격하다가 장료의 기습을 받아 위기에 빠진 손권을 구했고, 217년에는 도독이 되어 오나라를 쳐들어온 조조의 대군을 물리쳤다. 그 공으로 노숙의 뒤를 이어 오나라의 대도독이 되었다.
    219년 촉나라의 관우가 위나라의 조인이 지키던 번성 공략에 나서자 여몽은 그 틈을 타서 관우의 배후를 공격해 형주를 점령하고 관우를 사로잡아 처형하였다.
    진수는 삼국지에서 여몽은 용감할 뿐 아니라 지략도 뛰어난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여몽과 관련해서는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고사성어도 전해진다.
    중국 삼국지 지략가 지력 순위 TOP20
    본 순위는 등장빈도와 활약상 중심으로 정사보다는 삼국지연의를 기반으로 만들었습니다.
    6. 곽가
    여포 토벌 때에는 곽가의 진언으로 여포를 생포하였다. 여포에게 패하여 조조 진영에 머물렀던 유비가 원술을 공격하러 떠났다가 이후 반기를 들자 원소가 도우러 올 것을 염려하는 조조를 설득하여 유비 토벌에 성공하였다.
    손책이 강동을 평정하고 양자강 건너의 허창을 습격하려 하자 곽가는 손책에게 원한을 산 사람들을 가벼이 보아서는 안된다고 예언하였고, 이내 손책은 오군 태수 허공의 자객에 의해 상해를 입고 죽음에 이른다.
    조조는 그를 두고 “오직 곽가만이 나의 뜻을 잘 안다”고 말할 정도였다.풍토병으로 쓰러져 38세의 나이에 요절하였는데, 조조는 적벽전투에서 패배한 후 곽가의 부재에 대해 더욱 안타까와 했다고 한다.
    7. 주유
    손견이 죽은 후 손책을 섬겨 양쯔강 하류 지방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208년 조조가 화북을 평정하고 형주로 진격해 오자, 손권을 설득하여 군사 3만을 주면 조조를 격파하겠다고 장담하였다. 마침내 손권을 설득하여 오나라 대도독으로 군사를 이끌고 참전하여 적벽대전에서 화공으로 위군을 대파하였다. 익주를 점령하여 촉을 병합하고 조조의 위를 점령하여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이것이 주유가 구상한 천하 이분지계이다.
    8.육손
    어린 나이로 뛰어난 지략을 지녀 여몽과 함께 공안을 함락하고 관우를 사로잡아 죽였다. 뒷날 유비가 복수를 위해 군사를 동원했을 때도 노장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침착하게 작전을 짜 촉의 40여 진지를 불살라 촉의 대군을 격파하고 승리를 이끌었는데, 모두 그의 생각이었다.
    진수는 육손에 대해 “충성이 매우 지극하여 나라를 걱정하다 죽었으니 사직의 신하라고 할 만하다”고 평하였다.
    9. 법정
    촉나라 책사중 천상계에 속하는 제갈량과 방통을 제외하고는 가장 뛰어난 전략가로 평가받는다.유비가 익주를 점령할 때 뛰어난 정치력과 상황 판단 능력으로 유비가 익주를 얻게 만드는 1등 공신이다.
    조조와의 한중 쟁탈전에서도 조조가 책임자로 하후연과 장합을 두고 갔음에, 법정이 말하길
    "조조가 일거에 장로를 항복시키며 한중을 평정시켰음에도 급히 돌아간것은 내부에 우환이 닥쳤을 것이며, 하후연, 장합의 재략은 우리 장수들보다 나은점이 없으니 군사를 일으켜 공격하면 반드시 함락할 수 있습니다"
    라며 상중하의 계책으로써 천금같은 기회를 놓칠순 없다며 유비를 설득하며 필승을 자신한다. 정군산 전투에서 반객위주법 이라는 기책을 사용하여 하후연 참살에 결정적 공헌을 한다.
    유비 진영의 2인자라 할 수 있는 제갈량에게도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릉대전에서 유비가 육손에게 완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제갈량은 "아 법효직(법정의 자)만 있었더라도 폐하의 출정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한스럽구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10. 순유
    여포 토벌, 관도 전투 등 조조의 중요한 전투 대부분에 군사로써 종군하여 조조에게 항상 적절한 조언을 하였다. 또 실제 전투에서도 관도 전투의 전초전인 백마 전투에서는 원소군의 기병대장 문추를 죽이는 공적을 세웠다. 당대 최고의 군사로써 삼국시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이라 불리우는 관도대전에서 백마, 연진, 치중, 오소 전투 등 그야말로 모든 전장에서 그 상황에 맞춰 적절한 계책을 내놓습니다.
    적벽 전투에서도 순유는 적이 화공을 준비하려는 책략을 알아채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하라고 조언하였으나, 이미 승리를 자신하던 조조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사태는 순유가 걱정한 대로 화공에 의해 조조군이 대패하고 말았다.
    삼국지 정사의 저자 진수는 위나라 참모들을 편찬할때, 우선적으로 순욱, 순유, 가후를 한편으로 묶고, 그 다음으로 나머지 참모들을 한편에 묶습니다. 즉 이 세명을 조조군 최고의 3대 참모로 꼽은 것 입니다.
    11. 정욱
    조조가 서주를 공격하던 때 순욱과 함께 견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연주에 모반의 기운이 퍼지면서 남아 있는 성 3곳을 지키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때 그는 여포가 보낸 진궁의 공격을 차단하는 데 성공하면서 조조의 큰 신임을 얻게 된다.
    이후 연주의 기반이 흔들려 심약해진 조조는 원소에게 가족들을 볼모로 바치며 밑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정욱이 이를 다그쳐 거절시키고 조조를 분발하게 만들었다. 조조에게 귀순한 유비를 미리 처치해 두라고 조언하기도 하는 등 안목있는 계책을 내놓는데, 나중에 조조가 유비에게 서주의 원술을 공격하게 하면서 병사를 빌려준 데 대해 배반할 것이라고 곽가와 함께 진언했고 이 또한 맞아떨어졌다.
    12. 노숙
    노숙은 일찍부터 손권에게 천하 통일을 도모하기를 권했으며, 유비와 동맹을 맺어 함께 조조에 맞설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208년 유표가 죽은 뒤에 직접 당양의 장판으로 가서 유비를 만나 동맹 체결을 주도했고, 조조가 강동을 공격해왔을 때에는 항전을 주장했다. 그리고 주유를 보좌하여 적벽에서 조조의 군대를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주유의 병이 위독해지자 주유를 대신해 병사들을 통솔했다. 노숙은 강릉에 주둔하다가 육구로 옮겼는데, 그가 다스린 곳은 평안하여 병사와 주민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13. 전풍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설득하여 조조의 후방을 공격할 것을 간언했지만, 원소는 아들 병을 핑계로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그는 지팡이로 땅을 치며
    “대저 우연한 기회는 얻기도 어려운데, 어린아이의 병으로 기회를 잃을 줄이야! 애석하도다!”라고 하면서 원소의 무능함과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한탄했다고 한다. 관도대전에서 패하고 원소가 돌아오자 어떤 사람이 옥에 갇힌 전풍에게 원소가 전쟁에서 패하고 돌아왔으니 당신은 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풍은 원소가 이겼으면 살았겠지만 졌으니 죽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전풍은 원소가 내린 칼로 자결하기에 앞서, 슬피 우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슬퍼할 것 없다. 장부가 세상에 나와 주인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이다.”라고 말한 후 죽었다.
    14. 저수
    전풍과 함께 원소 진영 최고의 책사로 평가받는다. 전풍 등과 같이 원소가 조조보다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원소를 설득해 헌제를 업으로 맞아 제후에게 호령할 것을 권했지만, 계책을 따르지 않아 조조에게 빼앗겼다.
    가장 중요한 조조와의 관도대전 중에 여러 차례 원소에게 수비에 치중할 것을 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투옥되었다. 원소가 크게 패한 뒤 조조에게 포로로 잡혔다. 조조가 두터운 예로 대했지만, 완강히 투항을 거부했다. 군영(軍營)에서 말을 훔쳐 원소에게 돌아가려다가 잡혀 죽임을 당했다.
    15. 조조
    종합적으로 모든 면을 봤을 때에는 삼국지 세계관의 압도적 원탑임이 분명하지만 순수 지력만을 기준으로 판단하기에 조조를 하위에 두었습니다. 실제 조조의 강점에는 본인 스스로의 능력도 뛰어나지만 개인적으로 그를 당대 최고의 자리로 올려준 요인은 순욱, 순유, 가후, 곽가와 같이 자기주장 강하고 누구 앞에서도 쉽게 고개 숙이지 않을 개성있는 인재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만들었다.
    200년 군벌의 최대 세력이었던 관동군의 원소를 관도의 대전에서 격파하여 위나라의 기반을 만들었다. 조조는 어려서부터 책을 즐겨 읽었으며,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드러냈다. 고대 병법가의 저술을 연구하여 손자병법에 주석을 붙인 위무주손자라는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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