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츠학의 선 넘는 디스에 드디어 폭발한 엠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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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7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15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8 месяцев назад +3

    2부 홀리컴뱃 대결
    ruclips.net/video/B2OJ1zHWOYk/видео.html

  • @derggt
    @derggt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7

    이츠학님이 엠마오 코인 탑승하려고 억까를 시전했다고 보여지네요 ㅎㅎ 즐거운 분위기 토론 잘 봤습니다

  • @wheeon
    @wheeon 8 месяцев назад +8

    14:32 엠마오의 열변에 캠화면도 감동해버림

  • @bonacrux
    @bonacrux 8 месяцев назад +6

    두 분 진짜 친하신가보네요. ㅋㅋㅋ 나비넥타이 빵 터졌습니다.

  • @aqedah
    @aqedah 8 месяцев назад +8

    이또졌....!

  • @김창성-e1u
    @김창성-e1u 8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감사하니 감동 하고 감탄 하지요

  • @agesonic9566
    @agesonic9566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1

    (구원과는 무관한) 비신자가 본 자의적 전투력 측정표: 다메섹>엠마오>이츠학
    엠마오님은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맷집도 그렇고 실전 파이트에 되게 강하신 것 같아요~
    다메섹님은 저서도 구입해서 봤는데 성경뿐만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현상이나 내면 분석을 잘하고, 일개의 전투를 넘어 전장의 전반적인 상황을 두루두루 읽고 치고 빠지는 데 능숙한 것 같아요~ 통솔이나 지휘에의 역량도 갖추신 듯해요. 감탄할 때가 종종 있었네요!
    이츠학님은 음.. 역시 T답게 이성적인 분석으로 성경을 깊이 파는 데 능하신 것 같긴 한데.. 음.. 또 다른 매력이 있으신 걸로 ^^ 어쩌면 성실이 가장 큰 무기일지도?
    아쉽게도 아직 이 비신자에겐 엠마오 목사님의 말씀에선 감동을 못 느꼈고, 이츠학 목사님의 말씀에선 감탄을 못 느꼈네요. 전도하시려면 더 분발하셔야 할 듯요 :p
    근로자의 날! 간만에 크리스천 동네에 놀다 가요 😇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각자의 장단이 있는 거겠죠. 비신자 입장에서도 솔직한 평과 칭찬도 감사합니다!

  • @달냇
    @달냇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이 토론의 계기가 되었던 부분부터 따져보면, 엠마오: '신앙의 원동력, 변화의 동력은 감동이다' 이츠학: '감동으로 부족하다, 감탄이 더 적절하다.'라는 것이 논제였죠. 이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감동은 너무 감정 쪽에 치우친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딴지를 걸 만 하다.
    2. 하지만 감탄은 감정과 사실 별반 차이가 없다.
    3. 비유의 디테일에 딴지 거는건 너무 억까이다.
    일단 비유 딴지에 대한 건 '비유는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을 보는 것이지 모든 세부사항을 동일시하면 안된다'라고 엠마오님이 아주 잘 반박하셨기 때문에 넘어가겠습니다.
    감동은 기독교인의 신앙의 동력(또는 변화의 동력)에 대한 답변으로 주어졌던 것인데요, 저는 이에 동의하는 편이지만 감동이 감정적인 부분으로만 생각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제가 불편함을 갖고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이런 면에 대해서 엠마오님께서는 이 감동은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지성적인 측면이 있다고 반론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감동이 감정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의지적인 측면이 있다는 쪽이 더 적합한 반박인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대한 감동, 즉 복음에 대한 감동이 있지만 항상 제 마음(또는 감정)이 동일한 상태인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신앙 생활을 해나가지요.
    비유로 드신 경우에 적용해보면, 나를 구하고 차에 대신 치여 죽은 그 사람에게 감동해서 마지막 부탁인 고아원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 그 마음(감동했던 감정 상태)이 언제까지나 동일하게 유지되진 않겠지요. 가기 싫을 감정 상태가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가는 것은 감동이 단순히 감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지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죠. 사랑을 할 때도 항상 감정 상태가 처음처럼 강렬하진 않지만 계속 이어져 가는 것처럼요. 즉 감동이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의지, 관계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고 이렇기에 감동이 신앙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는 것입니다 .
    다만 홀리컴뱃 당시 답변이나 비유를 보면 말씀하시는 감동이 청자 입장에선 감정적인 측면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이 단점이었습니다. '어? 항상 감동한 상태(감정)로 있지 않는데, 교회 가기 싫을 때도 있는데?' 라는 불편함이 들었습니다.
    이츠학님은 감동보다는 감탄이 더 신앙의 동력에 적절하다며 반대하셨습니다만, 감탄도 감동과 사실 크게 다를 것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감탄 역시 감정적인 요소가 가장 강하고 의지적인 측면이 보조를 해줘야 하죠. 비유로 드셨던 '페이커의 플레이에 감탄해서 나도 저렇게 해봐야지'라고 하는 것은, 어쨌거나 플레이를 보고 감정이 움직여서 따라해봐야겠다는 동기가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감탄의 감정이 변화의 계기가 됐더라도 의지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부분이죠.
    더구나 감탄이라고 해버리면 다메섹님이 언뜻 짚으셨듯이 '예수님의 행적만 보고 멋있다 나도 본받아서 저렇게 되야지'라고 하는 것처럼 신앙의 본질과는 빗겨있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추가로 엄청난 기예(물구나무 서서 저글링을 한다던지)를 펼치는 기인을 보더라도 감탄만 하지 굳이 따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또한 탑우디르 원챔러라 페이커의 엄청난 제드 플레이를 본다고 굳이 따라할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즉, 감탄이 꼭 변화의 동력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죠.
    끝으로 신앙의 동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격(감정적인 측면 뿐 아니라 의지적인 측면을 포함한)'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감사'나 '감동'이나 '감탄'과 큰 차이는 없지만요.

  • @TeachTheTruth-
    @TeachTheTruth-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불준석 개웃기네 ㅋㅋㅋㅋ ㅠ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너무 웃기네요 왜 이제봤냐 나는

  • @bnb0828
    @bnb0828 8 месяцев назад +3

    개인적으로 차성진 목사님께서 기성교회에 대해 하시는 비판에 대해서는 저도 상당부분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지만 구원론에 있어서는 다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느끼기는 합니다. 우스갯소리로 감동 원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는데, 사실 그 말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대한 감동 외에 다른 부분이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는 점이 불편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는것 같습니다. 뭔가 엠마오님의 구원관을 듣고있다보면 행위, 인간의 어떠한 노력이나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않는 구원론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이건 칼빈의 이중예정론, 아니면 만인구원론으로 빠지게 됩니다. 칼빈의 이중예정론에 대해 느끼는 불편함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만인구원론은 그럼 이상적인가를 묻게 되는데, 만인구원론도 가만 생각해보면 굉장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죠. 예를 들어 어떠한 성폭행의 현장에서, 종말의 때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이 구원을 받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만인구원론이 타당성을 얻으려면 적어도 아주 엄격한 행위 심판론과 함께 가야합니다. 카톨릭의 연옥, 혹은 교정적 지옥관과 함께 가야하죠. 근데 제가 느끼기에 차성진 목사님의 구원관이 불편하게 다가오는 것은 상선벌악의 관점이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 이후에도 여전히 성경에서 상선벌악의 관점은 견고합니다. 네 이웃중 가장 작은 이들, 가장 비루하고 비천한 이들을 보살피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라고 할 정도록 구원론적으로도 행위가 강조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런 성경의 부분들을 다소 외면하시는 경향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제가 느끼기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어떠한 설득을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생각되는 부분은, 차성진 목사님의 주장의 전제가 분명한 지적도약의 토대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2000년전에 십자가에 달린 한 청년의 죽음이 나의 죄를 사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듣자마자 믿는게 자연스러운 일은 아닐겁니다. 그게 믿어지려면 성령의 감동 없이는 힘들텐데, 문제는 그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차성진 목사님이 하시는 대부분의 얘기는 힘을 잃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대한 감동을 느끼느 사람은 아닙니다. 물론 그 십자가의 사역이라는 큰줄기에서 뻗어나가는 여러 의미들 중 일부분에는 동의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에 당시에 '특별한 죄인?' 취급을 받았던 세리와 창녀들을 찾아가셔서 위로하시고 그들을 그러한 비난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는 부분은 참으로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근데 그것에 감동을 느낀다고 해서 십자가 사역에도 감동을 느끼기는 다소 어렵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표적으로는 의사 슈바이처도 예수님의 어떠한 도덕적, 인간적인 면모는 강조했지만 예수님을 실패한 묵시예언가로 볼 정도록 그 부분에 대한 감동이 있었던 사람 같지는 않아요. 물론 당연히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복음이라는 것에는 단순히 그 부분보다 더 많은 부분이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 @user-cb3vs6lw7
    @user-cb3vs6lw7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경외감 vs. 아뜩함 이라는 워딩으로 토론을 했으면 더 좋았을것 같아요
    예능 목적으로 가볍게 만담 나누신 것이라면 성공일 수도 있겠네요
    다시보니, 그래두 좀 웃음포인트가 많네요~ 쉬는시간에 뇌 비우고 조금 재밋게 들었습니다~😮😂

  • @유문규-w6c
    @유문규-w6c 8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엠마오 감동 원툴 발언 웃겨요 ㅋㅋㅋㅋㅋㅋ

  • @OJCKYG
    @OJCKYG 7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냥 '감사'로 가자. 감사라는 단어가 가장 성경적이다.

  • @조이-b1w
    @조이-b1w 8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진정한 예배는 진리와 영으로 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진리(the truth)는 사실의 영역이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Knowing The God)을 진리와 대치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진정한 예배의 필수요소 중 하나인 진리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다.
    하나님을 알려면 이 세상의 역사와 자연계의 섭리를 배경지식으로 성경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참 지식=하나님을 아는 것=진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지식만으로 예배는 완성되지 않는다. 영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영은 지혜의 영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성령님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 같다.
    지식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어느정도 쌓아갈 수 있지만 영은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강권적인 행사다. 이것은 지극히 경험적이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갈망이 가득할 때
    성경공부를 할 때일 수도 있고, 하나님을 생각할 때일 수도 있고, 기도로 하나님을 찾을 때 일수도 있다.
    그럴때 번뜩이는 깨달음으로, 흐르는 눈물로, 벅찬 기쁨 등(환상이나 마음으로 느껴지는 하나님의 음성도 가능하다고 생각) 영적인 경험을 하게된다. 하나님의 임재라고도 말하는 것 같다.
    이런 예배는 세상에서는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고 이런 예배를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자체가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임재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소망하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