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첨성대의 술구형 모양이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걸 맥주병에 비유했는데 그건 맥주병의 주둥이 부분을 비유했던 거였는데 콜라병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네요~ 콜라병은 약간 여성의 몸매를 비유할때 S라인을 표현하는거구요 저는 병의 입구는 좁다가 점점 넓어지는 걸 표현하고 싶어서 맥주병을 이야기 한겁니당~ 오해 없으시길 바래용^^*
첨성대는 다곤(니므롯)의 마누라이자 바알(탐무스)의 애미인 금성(비너스, 계명성), 우물의 여신 이슈타르(세미라미스, 아슈타르테, 아스다롯,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에게 제사를 지내던 지구라트(제단)임. 신라인은 서역에 있었었던 쿠시kush족(갈족)이라는 월지의 하위부족이며 한족들이 쿠시족을 한자로 거사로 적어서 거사족으로 불렀다. 거사간은 쿠시족의 우두머릴 뜻한다. 소그드인이라는 의견도 있다. 고대 아시리아와 바벨론은 닭도 숭상하며 섬겼다. 신라는 닭의 나라이다. 신라의 종교는 고대 아시리아와 바벨론의 종교이며, 신라인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나라를 세우며, 일본의 신도는 아스다롯과 그의 아들인 바알과 바알의 애비인 다곤을 섬기는 신라의 종교이다. 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 내용은 제 주장이 아닙니다. 여기 저기 찾아보니 이런 주장이 있는데 저는 이 내용이 맞는 지 틀리는 지 모르겠네요.
안녕하세요? 한나님! 우리나라역사를 공부하려고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정말 귀에 쏙쏙 들어올 정도로 설명을 어찌 그리도 잘 하시는지 감탄을 하게 됩니다. 저는 애니메이션 감독이 꿈인 세인트 위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 역사에 대해 디즈니 방식의 한국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첨성대에 대한 이야기 잘 시청하였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번외의 이야기이지만 혹시 '어우동'에 관한 이야기도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전에 모 방송 역사 스페샬 같은 특집 프로그램에서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는 걸로 기억하는데... 첨성대 상부 우물 정자의 정자석이 있는 이유는 말 그대로 첨성대는 기본적으로 우물이었고 첨성대 바닥에는 물이 고여있었고 밤에 옆 구멍에 사다리를 걸치고 올라 가서 바닥을 보면 물에 비친 하늘의 별을 관측 가능했다고 ... 하부 기단에 먹물 자국 보다는 이끼라든지 물이 낀 흔적이 있다고... 우물 + 천연 옵스큐라의 역활에 이승과 저승을 잇는 상징적인 통로 역활도 했다고... (이 부분은 선덕여왕의 사후와 관련있다고 했었는데 기억이 잘 안남.) 내부에 채워진 잡석은 6.25 당시에 탱크 등이 옆을 지나가면서 그 진동으로 무너질 것을 두려워 해서 전쟁 당시에 채웠다는 말도 있는 걸로 들었음.
지금까지 본 첨성대 분석중에 가장 정리가 잘되고 재미있게 구성하셨어요. 감사드립니다. 삼국사기에 일식기록등에서 알수 있듯이 별의 관측은 고대국가에서 정말 중요했을거에요. 카메라설에 하나 덧붙이자면, 별의 관측이 보는데서 끝나지 않았겠죠. 시간대마다 움직이는 별을 까만종이에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별이 날마다, 계절마다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았을것이고, 관측결과로 점을 칠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여라가지 용도에 쓰였겠지요
첨성대는 선덕여왕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닌 선덕여왕 그 자신 입니다. 그 이유는 첨성대가 위치한 곳이죠. 첨성대는 불교적 의미를 띄지만 절 안에 놓이지 않고 하늘을 본다라지만 산위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첨성대는 그냥 백성이 살아가는 도시에 떠억 버티고 있고 그처럼 선덕여왕은 죽지않고 자신의 백성 사이에서 존재하고 싶엇던 것이지요. 1.첨성대가 의미하는것은 우주 입니다. 옛날에 중국의 영향을 따라 우리는 천원지방설 즉, 땅은 사방으로 모가나고 하늘은 둥글다고 생각 했습니다. 첨성대의 기단은 정사각형이고 그 몸체는 둥글지요. 즉, 첨성대는 우주적인 표상으로 신라한가운데 놓엿고 이 뜻은 신라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선언인 것입니다. 2.첨성대는 우물입니다. 이미 박혁거세의 신화를 언급하셨으니 긴 설명은 안할랍니다. 다만 모난땅과 둥근하늘이 하늘의 우물 입구를 떠받친 것입니다. 즉, 추상적인 우주보다 구상적인 신라를 더 위에 떠받드는 이를테면 불국토의 의지이죠. 내세의 극락이 아닌 현세의 신라란 것입니다. 3.첨성대는 호리병 입니다. 첨성대를 윗부분의 모습으로 우물로 보면 첨성대의 몸체는 바로 호리병입니다. 이것은 여왕치세에 잦은 전재지변의 신라에 구원을 내리고픈 소망이 우러나온 모습이죠. 약사여래의 호리병박에는 치유의 샘이 들어 있습니다. 또한 신라는 여러 보살중에 특히 약사여래를 우선시 했습니다. 구제의 보살이기 때문이죠! 4. 첨성대는 여체입니다. 땅을 밟고 하늘의 우물을 머리에 인 존재는 어머니인 여자이죠. 우리네 여인네들은 무거운물건을 하늘에 메고 잘도 살았답니다. 그러니까 임금으로 또한 여인네로 자신의 백성을 힘들지만 가열차게 이고 가려는 그 애처롭지만 높은 소망을 한 몸에지고 돌로서 서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첨성대 가운데 뚫린 창은 눈이 아니라 여성의 음문이요, 자궁이기도 합니다. 여왕이신 선덕은 그렇게 하늘을 담는 우물이 되어 하늘의 정기를 받아 수태하여 지상낙원을 배태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5. 첨성대는 단순한 제사터도 점을 치는 곳도 아닌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조형물 입니다. 제가 천문학을 잘 모르지만 첨성대의 창은 별을 보기 위한 것은 아니라 생각 합니다. 해를 보기 위한 것이지. 스톤헨지나 마추픽추나 테노치티틀란이나 아나사지의 원형구조물 같은 것은 특정시간에 받는 해가 특정한 모양이나 형태를 띄게 한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니까 첨성대는 특정한 날의 태양을 받도록 구상되엇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입니다. 때문에 이날에 만약 태양빛이 가림이 없이 첨성대의 옆 창문안으로 들어가면 이것은 선덕여왕이 태양의 정기를 받아 불국토를 잉태한다는 국태민안의 상징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죠! 김알지가 금알에서 태어날때 숲속의 닭이 햇빛을 받아 울어젇히니 바로 계림(신라)의 태동 이었던것과 마찬가지로요. 제 주장은 첨성대는 선덕여왕입니다. 선덕여왕은 여왕으로서 후사를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나이 때문에요. 그래서 선덕여왕은 왕이 될 자신의 아이 대신에 신라 자체를 자신의 아이삼아서 그 신라와 함께 살고 지키는 상징으로 남으려 했던 겁니다. 사천왕사,황룡사9층탑, 첨성대가 바로 이 여왕의 비원이자 유산인 것입니다.
맞아요 ㅋㅋ 우물은 여자 선덕입니다 자궁을 들어올린것은 양기를 받기위한겁니다 남향으로 창이난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첨성대 근처 마을이름이 비성골이였습니다. 첨성대 즉 별=시간을 관측하던곳이고 시간즉 때에 맞춰 합궁을해서 임신을 해야하던 사람이고 밑에 돌을 넣은것은 자기는 임신을 포기했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저구멍은 양기를 잘받으란 뜻도있고 남자를 넣어 놓고 밥을줬던 곳입니다. 아치형은 자궁을 뜻하기도하지만 세력이약한 선덕이 저기에 사람들을 배치할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세력이약해서 최소의인원으로 남자가 나가지 못하게하는 방법은 안쪽으로 좁아지는 건축술이지요. 성골중에 나이가 많은 한사람의 기록이 없는 것부터 찾으면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옛날에 중국의 영향을 따라 우리는 천원지방설 즉, 땅은 사방으로 모가 나고 하늘은 둥글다고 생각 했습니다. →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고 고조선 이래로 우리 고유의 사상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강화도 마니산(摩尼山) 정상의 참성단(塹星壇)이죠. 《韓國科學技術史》(全相運 著)에도 천문학의 장(章)에서 천원지방설이 중국의 영향이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제는 우리의 모든 사상이나 기술문명이 중국에서 온 것이라는 조선시대 사대주의적 인식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참고로, 마니산(摩尼山)의 본래 이름은 ‘마리산’인데, 나중에 불교식 명칭으로 바뀐 것입니다. ‘마리’는 ‘으뜸, 높은 곳’의 뜻인데, 같은 어원을 갖는 낱말의 예로는 ‘머리,’ ‘마루’ 등이 있습니다. 위키백과에는 「《고려사》,《세종실록지리지》,《태종실록》 등에는 머리, 우두머리라는 뜻의 마리산(摩利山) 또는 두악(頭嶽)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摩利(마리)는 머리의 중세 동형어인 마리의 취음표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표기된 첨성대는 우리가 부르는 돌탑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돌을 쌓아서 첨성대를 만들었다.' 는 표현만 있어도 현재의 돌탑이 첨성대일 가능성이 있겠지만 삼국유사에 첨성대에 대한 서술이 단 한 글자도 없습니다. 그리고 '대' 라는 한자 뜻은 '인간이 하고자 하는 활동을 편하게 해주는 평평한 곳'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례를 들면 무대, 침대, 당구대, 청와대, 해운대, 경포대 등등 여기서 대는 모두 같은 한자(중국 글씨) 입니다. 첨성대 주변이 평평하여 별을 관찰하기에 편리한 곳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돌탑에 '대'를 붙이는 행위는 동서고금을 두고 그런 실수는 없습니다. 제 추측으로 첨성대는 기우제를 위한 굴뚝 상징탑으로 추론합니다. 남쪽을 향한 창문은 창문이 아니고 연기가 나가는 보조 통로 라고 봅니다. 1960년대 시절에도 첨성대 처럼 생긴 밑이 없는 도자기 서너개를 끼워서 연결하여 굴뚝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맨 위에 있는 도자기에는 옆으로 구멍이 나 있지요. 바람이 불어도 연기가 잘 빠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보조 통로 입니다. 지금도 극소수 사람들이 도자기로 연기통 굴뚝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Camera Obscura는 원리상 빛의 사입을 제한해서 상을 맺게 하는 것이므로 원래 상보다 무척 어두워집니다. 밝은 밖 풍경을 보는 경우에도 방을 최대한 어둡게 한 다음에, 눈이 침침한 상에 익숙해져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미지 자체가 어둡기 때문입니다. 별의 밝기란 느낌보다 실제로는 더욱 미미하기 때문에 상이 맺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실제 선덕여왕 어머니 이름도 마야부인이죠...아버지인 진평왕의 이름도 백정인데 백정은 실제로 석가모니의 아버지 이름이고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도 석가모니의 삼촌 선덕여왕의 이름인 덕만도 석가모니의 누나 이름이라고 하더군요...그렇게 따지고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석가모니만 탄생하지 않았는데 그것에 관련된 건축물이 아닐까 합니다.
우물은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는 신성한 장소입니다. 할머니들이 치성을 드릴때 우물물을 떠놓고 비는 이유가 한밤중에 우물에 비친 북두칠성의 빛을 떠서 북두칠성에게 치성을 드리는것이거든요... 당시 왕들은 일반백성과 달리 하늘의 자식으로 추앙을 받아야 했으므로 하늘의 정기를 받기위한 제단으로 우물모양의 첨성대를 세웠고 그 속에 왕이 들어가 북두칠성(하늘)의 정기를 받는 세리모니를 하고 옆구리로 나와서 하늘의 자식이라는 의식을 했던것으로 봅니다.
1.삼국시대에는 전기불로 인한 빛공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낮은 위치에서나 높은 위치에서나 별이 보이는 건 같습니다.2. 바늘 구멍 카메라의 경우, 광량이 어마어마하게 줄어드는 단점이 있습니다. 현대 경주의 하늘을 바늘구멍 카메라로 본다고 해도 빛공해로 별은 구분되지 않겠지요. 차라리 동일한 스케일로 강원도 산골에서 유사한 구조를 만들어 테스트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저는 이 가설은 좀... 어렵지 않을까.. 그래도 실험해볼만한 가설로 생각됩니다.
첨성대가 지진에 강한 이유는 수학적 계산이 아니라 조적식 평면 아치형 구조라 튼튼한 것입니다. 맨아래 기단은 면진 역활을 하는 것이구요. 참고로 첨성대 안에 채워진 자갈은 빨리 치워야 합니다. 경주 때 같은 지진이 한번더 오면 남쪽창 아래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상부 구조물은 채워진 자갈 때문에 붕괴 확률이 높습니다. 또한 힘들게 돌을 깍아서 어렵게 세운 구조물인데 신라인 들이 바보입니까? 힘들게 좁은 출입구로 올라가서 별을 관측 하는것이.. 첨성대는 넓은 하늘을 한눈에 관측 하기 쉽도록 만든 세계 최초의 별 관측 장치 입니다. 그래서 넓은 하늘을 보기 위해 일부러 낮은 곳에 위치 한것 입니다. 주위에 산 이나 나무 같은 장애물도 없는것 또한 그때문이지요. 별 관측 방법은 쉽게 우물속에 비췬 하늘을 본다 생각 하시면 됩니다. 첨성대 내부 맨 밑바닥에 먹물을 채워 놓고 사각형 개구부 맞은편에 청동 거울 45도 각도로 붙여 놓으면 편안하게 밤 하늘 별자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또한 첨성대 같은 구조물은 태양계 내의 별들을 환한 대낮에도 볼 수 있었을거라 생각 됩니다. 제말은 어디 까지나 추측에 불과 하지만 지진에 강한 구조물 원리는 제 생각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화약의 역사는 우리 생각보다 오래되었죠, 당시 백성들에게는 거의 외계문명이였고, 하늘의 움직임을 신의 계시로 여겨 국정에 반영하던 고대에 신라지배층은 화약을 신의 계시로 이용합니다 만약 첨성대 내부에 그을림이 있다면 비밀리에 화약을 쏘아올리던 장소이고 첨성대의 이름은, '별을 첨가하는 대' 가 진짜 의미겠죠
저의 가설을 첨부 합니다. 일단 의문점은 높은 산지가 아니고 궁궐 근처 평지에 지어졌다는 것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 그리고 왜 그렇게 좁게 만들었냐는 것 모두를 만족하는 가설이 생각 났습니다. 몇 년 전에 일행의 권유로 수학여행 이후로 다시 첨성대에 갔었습니다. 수학여행 때는 잘 몰랐는데. 밤에 사람이 없는 한적한 첨성대를 보니 주변에 넓은 광장이 있더군요. 천문관측대가 아니고 천문기록지라고 생각해봅시다. 정좌석 위에 별도의 관측기구가 있었다고 가정하면 구조는 간단하게 좌우로 회전하고 상하로 회전하는 가느다란 관을 설치하고 그것으로 관측하고자 하는 별을 찾아 그 상태로 고정합니다. 그리고 그 관의 일직선상에 닿는 지면에 해당 별의 태그를 붙여 작은 말뚝을 박아 놓는 겁니다. 그렇게 1년동안 기록을 하면 첨성대 주변에는 각각의 별의 이동을 나타내는 거대한 지도가 완성 됩니다. (나중에 색색의 실로 같은 별의 자리는 구분해서 메어 놓으면 더 확실히 보이겠죠?) 보통 움직임이 큰 별들은 달과 태양계에 있는 행성들일 겁니다. 그렇게 몇 개만 기록해도 기후변화나 특이한 천체 현상을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땅에 일직선을 그리는 방법인데요. 긴 막대나 줄 등을 이용한다면 기록할 때마다 오차가 클겁니다. 하지만 빛을 이용하면 어떨까요? 그 당시에 거울이 없다고 하셨지만 신라시대 이전에도 거울이 있었습니다. 청동거울은 역사가 오래 됩니다. 보통 종교의식이나 주술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데 거울은 빛을 반사하는 것인데 그것에 무슨 주술적인 의미가 있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만약 관측한 관의 반대쪽에 횃불을 들고 거울로 반사시켰다면 어떨까요? 오목거울은 만들기 어려웠을 테니 여러 개의 거울을 엮어 오목하게 만들었다면? (보통 청동거울의 뒤 쪽에는 걸이 용도의 돌기가 있죠) 관을 통해 반대쪽 땅에는 관의 그림자와 관을 통과해 나오는 빛의 상이 맺혔을 겁니다 그 곳에 작은 말뚝을 박으면 되죠. 다른 부속(나무나 금속으로 만든)들은 모두 소실 되고 돌로 된 지금의 모습만 남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별의 기록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하늘의 뜻을 안다는 의미로 쓰였으니 여왕의 위상에도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경주는 지진이 많았던 곳이고 지진 피해를 덜 입으려고 첨성대 밑에는 요즘 내진 설계 비슷한 구조물도 만들었습니다. 하단 내부에도 역시 지진에 대비해서 돌 등으로 채웠습니다. 그런 곳 내부에 계단을 만들기 힘들고 한국에 현존하는 고대 석탑에 내부 계단은 없습니다. 미륵사지 석탑도 제일 밑에 십자 통로만 존재하고 분황사 모전 석탑도 1층 공간만 존재합니다. 탑으로 내부에 계단이 존재하고 위로 올라가는 게 가능합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애초에 내가 수학여행가서 첨성대보고 저걸가지고 무슨 천체를 관측한단 말인가.. 생각했음. 딱봐도 그냥 탑이야... 천몇백년전 건축물이면 맨날 미스테리다 어쩌다 그렇게 보니까 온갖해석이 다 나오는거. 걍.. 탑이야 탑! 그것도 당시 인도불교건축양식에 영향받은 그냥 탑이라고!!!! 인도에 가면 저런 콜라병모양 탑이 차고 넘친다고!!!
흠 제가 알기로는...첨성대 둘레로..물이 있었다고 해요..그래서 창문 같은 곳을 통해 올라가서 꼭대기 위에서 별이 비치는 모습을 봤다고 들었어요..그 물에 별 위치를 표시해서 농사를 위해 이용했다고 전에 배운적은 있었거든요..첨성대 주위에 물이 있었다는 자국이 있었다고...
첨성대가 천문관측을 위한 것 이었는가 를 놓고 보자면 고대 신라인들은 이미 상고 이전부터 천문관측이 가능했습니다.따라서 천문관측을 위한 첨성대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요 아마도 동서남북의 사방의 井을 윗단에 올려놓은 것은신정(나정 신궁)의 표식 을 의미했을 것 이며 대광성을 향해 기도나 제사를 지냈을 것 으로 보입니다.
@@jammingcode5896 저도 궁금합니다. 어떤 별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다만 그 시기 천문학 적 관점에서 무지했던 시대가 아니었기에 단순한 의미의 별은 아니었던 것 으로 보입니다. 삼국사기 파사이사금 기 를 보면 (2월 혜성이 동쪽에 나타났다. 다시 북쪽에 나타나더니 20일 만에 사라졌다.) 되어 있고 화랑세기 에선 (2월 대광성이 동북쪽에 나타나더니 무릇 20일 이었다. 혹은 성인이 나타난다 하였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천자를 상징하는 의미라면 아마도 금성을 말함이 아닐까 추측을 해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거대 망원경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과거에는 부족국가 혹은 도시국가의 성향이 강했고 신라가 단합된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도 불교의 힘이 컷죠. 그리고 고대 국가의 발전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신정일치시대를 신라도 겪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쉬운 단합을 위해 불교가 정신적 상징이었지만 불교는 왕의 것이 아니었죠. 떄문에 나름 신정일치시대의 강력한 왕권의 회귀를 꿈꾸었들 것도 같습니다. 첨성대는 별을 관찰하여 농사의 시기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퍼트림으로서 종교가 분리된 국가에서 불교의 권위를 뺏어옴으로서 왕권 강화와 농업국가로써 백성들에게 파종과 수확의 시기를 알려주어 이권을 분배하는 기능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동양에서 별을 관측하고 파종과 수확의 시기를 결정하는 달력을 만드는건 전통적으로 중국식 표현은 천자 우리는 하늘님 서양은 교황이 주제했죠. 그리고 그것은 신정일치시대의 신의 권능 이었으니까요. 아마도 첨성대는 그런 다목적 기능의 건축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왕능이 늘어선 곳에 있다는 이유 만으로 많은 것을 시사 한다고 생각합니다.
논리 잘들어내요.저도 그람 가설 대조선 여기부터 나가야 할듯 우리 조선은 하늘에 천문에 관심 많아요 별 북극성 중심적으로 이동 하는 민족임 조선 아침조가 별 태양 달 합처진게 아침조에요 첨성대 주위에 하늘에 별자리 북두칠성 있다고 햇어요(주위연못) 하늘에 별자리를 땅에다가 옴겨놓은 거라고 사인검은 하늘에 제사 지낼때 쓰는검 사인검도 북두칠성이 있음 이런말 있어요 우리는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별자리로 인용해 말할게요..우리는 북극성에서 와서 북두칠성으로 감니다..그래서 고인돌이 많은이유 칠성판으로 덥는대요 두서 없지만 혼자 떠들고 감니다
삼국시대때 신라를 대표할 선덕여왕의 모습을 땅과 하늘과 연관지어 신비롭게 극대화하여 여왕을 높혀 기리며 아울러 별을 관측한 장소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별자리를 보며 전쟁이나 기근이나 재난을 예측하는 장소로도 사용할 수 있게요. 신라 민족이 점성술을 믿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제가 첨성대의 술구형 모양이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걸 맥주병에 비유했는데 그건 맥주병의 주둥이 부분을 비유했던 거였는데 콜라병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네요~ 콜라병은 약간 여성의 몸매를 비유할때 S라인을 표현하는거구요 저는 병의 입구는 좁다가 점점 넓어지는 걸 표현하고 싶어서 맥주병을 이야기 한겁니당~ 오해 없으시길 바래용^^*
첨성대는 다곤(니므롯)의 마누라이자 바알(탐무스)의 애미인 금성(비너스, 계명성), 우물의 여신 이슈타르(세미라미스, 아슈타르테, 아스다롯,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에게 제사를 지내던 지구라트(제단)임. 신라인은 서역에 있었었던 쿠시kush족(갈족)이라는 월지의 하위부족이며 한족들이 쿠시족을 한자로 거사로 적어서 거사족으로 불렀다. 거사간은 쿠시족의 우두머릴 뜻한다. 소그드인이라는 의견도 있다. 고대 아시리아와 바벨론은 닭도 숭상하며 섬겼다. 신라는 닭의 나라이다. 신라의 종교는 고대 아시리아와 바벨론의 종교이며, 신라인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나라를 세우며, 일본의 신도는 아스다롯과 그의 아들인 바알과 바알의 애비인 다곤을 섬기는 신라의 종교이다. 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 내용은 제 주장이 아닙니다. 여기 저기 찾아보니 이런 주장이 있는데 저는 이 내용이 맞는 지 틀리는 지 모르겠네요.
맞아요 콜라는 여성몸을 비유했고요 누군지 이름은 잊었는데 ...
당시에 그런모양옷이 유행했다고 해요
발명에는 모양을 좋게 하는 의장특허가 있는데
개발이후 코카콜라회사에서 권리를 팔게 되는데요
16억인가 18억인가 받았다고 해요
저가 생각하는 첨성대는 도자기 구우는역할이었쓸것같다
요즘 여성들은 달라붙는 옷을 입으니까 자연스럽게 콜라병 몸매를 상상하는데 예전에는 한복을 입었으니까 치마 때문에 아래로 갈수록 풍만해져서 맥주병 모양이 나옵니다
저완전 팬이에요
옵스큐라설 국가적으로 증명했으면 좋겠다..가설중에 제일 현실적이다.
한나님!!! 영상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ㅜㅜ 유익하기까지 해서 매일 틀어놓고 있어요 ㅎㅎ 앞으로도 좋은 영상 많이많이 부탁드려요! 응원할게요!
와 와
정말 저도 역사를 하지만 정말 한나님 방송은 정말 유익하고 재밌는것 같아요
굳 굳 굳
한국 떠나있는지 오래되어서 역사도 가물가물한데 이쁜 한나님 덕분에 한국의 역사를 잘 보고 있습니다. 쉬는 날마다 챙겨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저도...옵스큐라설에한표요...이런재밌고신비한이야기가..지루하고어려운역사를알아가게되는...관심과흥미를갖게하네요...잘봤습니다...
안녕하세요? 한나님!
우리나라역사를 공부하려고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정말 귀에 쏙쏙 들어올 정도로 설명을 어찌 그리도 잘 하시는지 감탄을 하게 됩니다.
저는 애니메이션 감독이 꿈인 세인트 위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 역사에 대해 디즈니 방식의 한국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첨성대에 대한 이야기 잘 시청하였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번외의 이야기이지만 혹시 '어우동'에 관한 이야기도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전에 모 방송 역사 스페샬 같은
특집 프로그램에서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는 걸로 기억하는데...
첨성대 상부 우물 정자의 정자석이 있는 이유는
말 그대로 첨성대는 기본적으로 우물이었고
첨성대 바닥에는 물이 고여있었고
밤에 옆 구멍에 사다리를 걸치고 올라 가서 바닥을 보면
물에 비친 하늘의 별을 관측 가능했다고 ...
하부 기단에 먹물 자국 보다는
이끼라든지 물이 낀 흔적이 있다고...
우물 + 천연 옵스큐라의 역활에
이승과 저승을 잇는 상징적인 통로 역활도 했다고...
(이 부분은 선덕여왕의 사후와 관련있다고 했었는데 기억이 잘 안남.)
내부에 채워진 잡석은
6.25 당시에 탱크 등이 옆을 지나가면서
그 진동으로 무너질 것을 두려워 해서
전쟁 당시에 채웠다는 말도 있는 걸로 들었음.
역활 (x) 역할 (o)
언제부턴가 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설민석씨와 더불어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만수무강하세요. ^^
Thank you, much respect from America
한나님은 설명을정말 잘하시네요!!
선덕여왕님이만든? 첨성대 잘보고갑니다♡
지금까지 본 첨성대 분석중에 가장 정리가 잘되고 재미있게 구성하셨어요. 감사드립니다. 삼국사기에 일식기록등에서 알수 있듯이 별의 관측은 고대국가에서 정말 중요했을거에요. 카메라설에 하나 덧붙이자면, 별의 관측이 보는데서 끝나지 않았겠죠. 시간대마다 움직이는 별을 까만종이에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별이 날마다, 계절마다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았을것이고, 관측결과로 점을 칠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여라가지 용도에 쓰였겠지요
아주 재미 있읍니다
궁금 했는데
역사 문화재 공부 많이 하게 되네요
첨성대는 선덕여왕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닌 선덕여왕 그 자신 입니다.
그 이유는 첨성대가 위치한 곳이죠. 첨성대는 불교적 의미를 띄지만 절 안에 놓이지 않고 하늘을 본다라지만 산위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첨성대는 그냥 백성이 살아가는 도시에 떠억 버티고 있고 그처럼 선덕여왕은 죽지않고 자신의 백성 사이에서 존재하고 싶엇던 것이지요.
1.첨성대가 의미하는것은 우주 입니다. 옛날에 중국의 영향을 따라 우리는 천원지방설
즉, 땅은 사방으로 모가나고 하늘은 둥글다고 생각 했습니다.
첨성대의 기단은 정사각형이고 그 몸체는 둥글지요. 즉, 첨성대는 우주적인 표상으로
신라한가운데 놓엿고 이 뜻은 신라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선언인 것입니다.
2.첨성대는 우물입니다. 이미 박혁거세의 신화를 언급하셨으니 긴 설명은 안할랍니다.
다만 모난땅과 둥근하늘이 하늘의 우물 입구를 떠받친 것입니다. 즉, 추상적인 우주보다
구상적인 신라를 더 위에 떠받드는 이를테면 불국토의 의지이죠.
내세의 극락이 아닌 현세의 신라란 것입니다.
3.첨성대는 호리병 입니다. 첨성대를 윗부분의 모습으로 우물로 보면 첨성대의 몸체는
바로 호리병입니다. 이것은 여왕치세에 잦은 전재지변의 신라에 구원을 내리고픈 소망이
우러나온 모습이죠. 약사여래의 호리병박에는 치유의 샘이 들어 있습니다.
또한 신라는 여러 보살중에 특히 약사여래를 우선시 했습니다. 구제의 보살이기 때문이죠!
4. 첨성대는 여체입니다. 땅을 밟고 하늘의 우물을 머리에 인 존재는 어머니인 여자이죠.
우리네 여인네들은 무거운물건을 하늘에 메고 잘도 살았답니다. 그러니까 임금으로
또한 여인네로 자신의 백성을 힘들지만 가열차게 이고 가려는 그 애처롭지만 높은 소망을 한 몸에지고 돌로서 서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첨성대 가운데 뚫린 창은 눈이 아니라 여성의 음문이요, 자궁이기도 합니다. 여왕이신 선덕은 그렇게 하늘을 담는 우물이 되어 하늘의 정기를 받아 수태하여 지상낙원을 배태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5. 첨성대는 단순한 제사터도 점을 치는 곳도 아닌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조형물 입니다.
제가 천문학을 잘 모르지만 첨성대의 창은 별을 보기 위한 것은 아니라 생각 합니다.
해를 보기 위한 것이지. 스톤헨지나 마추픽추나 테노치티틀란이나 아나사지의 원형구조물
같은 것은 특정시간에 받는 해가 특정한 모양이나 형태를 띄게 한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니까 첨성대는 특정한 날의 태양을 받도록 구상되엇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입니다.
때문에 이날에 만약 태양빛이 가림이 없이 첨성대의 옆 창문안으로 들어가면 이것은
선덕여왕이 태양의 정기를 받아 불국토를 잉태한다는 국태민안의 상징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죠! 김알지가 금알에서 태어날때 숲속의 닭이 햇빛을 받아 울어젇히니 바로 계림(신라)의 태동 이었던것과 마찬가지로요.
제 주장은 첨성대는 선덕여왕입니다. 선덕여왕은 여왕으로서 후사를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나이 때문에요.
그래서 선덕여왕은 왕이 될 자신의 아이 대신에 신라 자체를 자신의 아이삼아서 그 신라와 함께 살고 지키는 상징으로 남으려 했던 겁니다.
사천왕사,황룡사9층탑, 첨성대가 바로 이 여왕의 비원이자 유산인 것입니다.
제 사견인데요, 선덕여왕의 데이트 장소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맞아요 ㅋㅋ 우물은 여자 선덕입니다 자궁을 들어올린것은 양기를 받기위한겁니다 남향으로 창이난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첨성대 근처 마을이름이 비성골이였습니다. 첨성대 즉 별=시간을 관측하던곳이고 시간즉 때에 맞춰 합궁을해서 임신을 해야하던 사람이고 밑에 돌을 넣은것은 자기는 임신을 포기했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저구멍은 양기를 잘받으란 뜻도있고 남자를 넣어 놓고 밥을줬던 곳입니다. 아치형은 자궁을 뜻하기도하지만 세력이약한 선덕이 저기에 사람들을 배치할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세력이약해서 최소의인원으로 남자가 나가지 못하게하는 방법은 안쪽으로 좁아지는 건축술이지요. 성골중에 나이가 많은 한사람의 기록이 없는 것부터 찾으면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옛날에 중국의 영향을 따라 우리는 천원지방설 즉, 땅은 사방으로 모가 나고 하늘은 둥글다고 생각 했습니다.
→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고 고조선 이래로 우리 고유의 사상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강화도 마니산(摩尼山) 정상의 참성단(塹星壇)이죠.
《韓國科學技術史》(全相運 著)에도 천문학의 장(章)에서 천원지방설이 중국의 영향이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제는 우리의 모든 사상이나 기술문명이 중국에서 온 것이라는 조선시대 사대주의적 인식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참고로, 마니산(摩尼山)의 본래 이름은 ‘마리산’인데, 나중에 불교식 명칭으로 바뀐 것입니다.
‘마리’는 ‘으뜸, 높은 곳’의 뜻인데, 같은 어원을 갖는 낱말의 예로는 ‘머리,’ ‘마루’ 등이 있습니다. 위키백과에는 「《고려사》,《세종실록지리지》,《태종실록》 등에는 머리, 우두머리라는 뜻의 마리산(摩利山) 또는 두악(頭嶽)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摩利(마리)는 머리의 중세 동형어인 마리의 취음표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에 동의합니다~
흙손4B연필 ㄱ
오늘 흥미로웠네요~^^
미와 덕을 두루 갖추셨군요. 한국사를 공부하는 중인데, 책으로 보는 역사에 지루함과 한계를 느끼던 와중에 반가운 콘텐츠를 발견했네요. 앞으로도 양질의 콘텐츠 제작에 힘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즐감할게요~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서 보면 되죠
엄청재미있게 봣어용 감사해용~~^^ 전 한나씨 의견과 같은생각 입니다.별자리를 관찰했을것같아요 카메라원리 정말 대단하네요 누군가 연구해서 확실하게 밝히면 좋겠어요~~^^
마지막 일제강점기 때 찍었다는 학생들 사진이 너무 웃기네요 ㅋㅋㅋㅋ 매번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한나님 덕분에 요새 한국사 재미있게 배우고 있어요!😍
낮에 첨성대 그림자를 자세히 관찰하면 사람이 앉아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비는 모양입니다. 아마도 하늘에 소원을 비는 용도일 거 같네요...
봉화대나
선덕여왕이 좋아하던 사람의 무덤이라는 가설은 어떤가요?
안에 잡석돌이 채워져있다는건 수천년동안 내려오면서 아이들이나 사람들이 너무나 궁금해서 안에 옆 구멍으로 돌을 넣어서 얼마나 깊은지 무슨소리가 나는지안에 물이 있는지 호기심으로 돌을던져넣었을겁니다 수천년동안 지나면서 돌이 쌓였을것같애요
한나님 역사적 조예가 깊으시군요. 잘 배우고 갑니다.
삼국유사에 표기된 첨성대는 우리가 부르는 돌탑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돌을 쌓아서 첨성대를 만들었다.' 는 표현만 있어도 현재의 돌탑이 첨성대일 가능성이 있겠지만 삼국유사에 첨성대에 대한 서술이 단 한 글자도 없습니다. 그리고 '대' 라는 한자 뜻은 '인간이 하고자 하는 활동을 편하게 해주는 평평한 곳'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례를 들면 무대, 침대, 당구대, 청와대, 해운대, 경포대 등등 여기서 대는 모두 같은 한자(중국 글씨) 입니다. 첨성대 주변이 평평하여 별을 관찰하기에 편리한 곳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돌탑에 '대'를 붙이는 행위는 동서고금을 두고 그런 실수는 없습니다.
제 추측으로 첨성대는 기우제를 위한 굴뚝 상징탑으로 추론합니다. 남쪽을 향한 창문은 창문이 아니고 연기가 나가는 보조 통로 라고 봅니다. 1960년대 시절에도 첨성대 처럼 생긴 밑이 없는 도자기 서너개를 끼워서 연결하여 굴뚝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맨 위에 있는 도자기에는 옆으로 구멍이 나 있지요. 바람이 불어도 연기가 잘 빠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보조 통로 입니다. 지금도 극소수 사람들이 도자기로 연기통 굴뚝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우와^^ 재밋네요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정자석 위에 목조 건축물이 있었을 가능성은 어떻습니까? 첨성대 상층부에 돌출된 부분은 목조건축물을 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구요. 그 목조건축물에서 천문관측이나 혹은 제사를 행했을꺼라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맞습니다 . 첨성대는 국가가 이 용도를 위해 나서야 합니다. 무작정 별을 본 신비의 과학으로 만들지 말고, 안의 흙을 걷어내면 뭔가 나올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위에 선덕여왕을 기념한 우상을 올렸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많이 유익하고 재밋네요
손성태교수님의 우리민족의 대이동 책에 보면 멕시코에도 첨성대가 있고 그 용도(속에 흙이 차있는것도 같네요)도 상세히 설명되어있습니다. 그것도 포함해서 언급해주셨음 좋았겠네요.
Wow ..
유익하다 유익해....
경주 보문단지에 야외에 있는 개인박물관에 실물크기 첨성대모형 있읍니다ㆍ 문화재청에서 그쪽에 연결해서 한번 실험해보면 어떨까요?
Camera Obscura는 원리상 빛의 사입을 제한해서 상을 맺게 하는 것이므로 원래 상보다 무척 어두워집니다. 밝은 밖 풍경을 보는 경우에도 방을 최대한 어둡게 한 다음에, 눈이 침침한 상에 익숙해져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미지 자체가 어둡기 때문입니다. 별의 밝기란 느낌보다 실제로는 더욱 미미하기 때문에 상이 맺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군요^^ 전문적 답변 감사합니당
너무 재미있네요.
3번째 제시한 점성술용도가 제일 그럴듯 하네요... 삼국시대하면 점성술이죠... 아니면 꼭대기에 천문 관측 기구가 설치 되있던건 아닐까요?? 사각형 모서리가 다리 맞춰놓기 참 좋아 보이네요.
방송국에 어느 프로그램에 힘을 빌어어 옵스큐라설을 재현 해보았ㅅ으면 좋겠어요. 그알 피디수첩등 샘께서 제안을 해보시죠? 한나샘 티비에서 봅시다
실제 선덕여왕 어머니 이름도 마야부인이죠...아버지인 진평왕의 이름도 백정인데 백정은 실제로 석가모니의 아버지 이름이고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도 석가모니의 삼촌 선덕여왕의 이름인 덕만도 석가모니의 누나 이름이라고 하더군요...그렇게 따지고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석가모니만 탄생하지 않았는데 그것에 관련된 건축물이 아닐까 합니다.
한나 똑.똑 .똑 하구나.
어머.... 역사선생님보다 더 잘알려주시네요.
제가 어렸을때 정말 궁금했거든요. ㅋㅋㅋ
저는 개인적으로 우물을 형상화 신성화 한것이라고 봅니다. 신라는 무슨이유인지
우물에 사람과 동물을 던져넣은 인신공양 제사를 지냈는데 그걸 신성시 해서 만든거라 봅니다.
중간에 창문같은 구멍은 위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보기위한 구멍 떨어질때 나무로 만든 구조물을 만들어 보았을 겁니다.그런데 왜 바닥에 문이 없고 중간에 있냐면 돌의 하중 때문에 바닥에 창을 낼수 없었던거
유익한 역사 채널
첨성대란 말이 어디서 나왔나요? 기록물이 있나요?
오~카메라 옵스큐라!?
가능한거같아요!
그게 와닿습니다^^
그게 딱 첨성대의 목적같은 느낌
한나님 말씀처럼 첨성대가 카메라 옵스큐라?의 역할을 했는지!실험해보면 궁금증이 확 풀릴텐데 말입니다^^
잘 들었습니다^^
우물은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는 신성한 장소입니다. 할머니들이 치성을 드릴때 우물물을 떠놓고 비는 이유가 한밤중에 우물에 비친 북두칠성의 빛을 떠서 북두칠성에게 치성을 드리는것이거든요... 당시 왕들은 일반백성과 달리 하늘의 자식으로 추앙을 받아야 했으므로 하늘의 정기를 받기위한 제단으로 우물모양의 첨성대를 세웠고 그 속에 왕이 들어가 북두칠성(하늘)의 정기를 받는 세리모니를 하고 옆구리로 나와서 하늘의 자식이라는 의식을 했던것으로 봅니다.
오 멋져요
Good,dear Dawn Walker.
1.삼국시대에는 전기불로 인한 빛공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낮은 위치에서나 높은 위치에서나 별이 보이는 건 같습니다.2. 바늘 구멍 카메라의 경우, 광량이 어마어마하게 줄어드는 단점이 있습니다. 현대 경주의 하늘을 바늘구멍 카메라로 본다고 해도 빛공해로 별은 구분되지 않겠지요. 차라리 동일한 스케일로 강원도 산골에서 유사한 구조를 만들어 테스트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저는 이 가설은 좀... 어렵지 않을까.. 그래도 실험해볼만한 가설로 생각됩니다.
박혁거세와 알영왕비 같은 경주 나정우물 같은것 아닌가요? 우물이 여성 자궁와 생명 생산 상징 같은 생각 하는데요. 알영왕비 경우 계룡 옆구리에서 여자아이 태어났다고 신화적으로 나오는데 뭔가 맞은듯 하네요
옵스큐라... 진짜 대박이네요!! 마치 기원전 마야문명의 다큐를 보는 듯한 소름..
첨성대가 지진에 강한 이유는 수학적 계산이 아니라 조적식 평면 아치형 구조라 튼튼한 것입니다. 맨아래 기단은 면진 역활을 하는 것이구요. 참고로 첨성대 안에 채워진 자갈은 빨리 치워야 합니다. 경주 때 같은 지진이 한번더 오면 남쪽창 아래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상부 구조물은 채워진 자갈 때문에 붕괴 확률이 높습니다. 또한 힘들게 돌을 깍아서 어렵게 세운 구조물인데 신라인 들이 바보입니까? 힘들게 좁은 출입구로 올라가서 별을 관측 하는것이.. 첨성대는 넓은 하늘을 한눈에 관측 하기 쉽도록 만든 세계 최초의 별 관측 장치 입니다. 그래서 넓은 하늘을 보기 위해 일부러 낮은 곳에 위치 한것 입니다. 주위에 산 이나 나무 같은 장애물도 없는것 또한 그때문이지요. 별 관측 방법은 쉽게 우물속에 비췬 하늘을 본다 생각 하시면 됩니다. 첨성대 내부 맨 밑바닥에 먹물을 채워 놓고 사각형 개구부 맞은편에 청동 거울 45도 각도로 붙여 놓으면 편안하게 밤 하늘 별자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또한 첨성대 같은 구조물은 태양계 내의 별들을 환한 대낮에도 볼 수 있었을거라 생각 됩니다. 제말은 어디 까지나 추측에 불과 하지만 지진에 강한 구조물 원리는 제 생각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런....채널이있었다니.....ㅎ 이쁜샘이나와서설명하고 ㅎ 구독하고갑니다
아 글구 첨성대는 원래부터 저건물하나로써 천체관측용도였을까요??? 원래는 다른 건물들과 연계하여 천체관측용도였을까요?? 다 부서지고 파괴되어 저것만 남아있는게 아닐런지...뭐 역사첨 배울때 이상했었는데 여전히 미스테리하네요
1년 넘게 지난 지금 제 생각에 이건 경주 근처에 무덤이 아주 많잖아요. 그러니까 도굴 방지를 위해 1~2명씩 초소 감시를 하는 용도인 것같아요. 그리고 신라 경주의 무덤 속에는 아직 남아있는 유물이 많은것도 그때문이 아닐까요?
오~ 잼있는 가설이 많네요~^^ 어릴땐 안에서 창으로 보이는 별의 수나 모양으로 관측하지 않을까 했는데 카메라설도 그럴듯한데요? ㅎㅎ
재밌네요...
첨성대에 올라간 학생들 사진도 신기하고...
카메라 옵스큐라는 너무 끌리긴 하네요...
역사는 사실을 기술해야 하지만 옵스큐라설이 사실이면 정말 매력적이긴 하네요 ㅋ
렌즈 맞네~~
사다리놓고 중간에서 밑을 확인하는~~
오~~~~하나샘 천재~~ 소름~~~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격리 시설 같은데요. 제물을 안에 넣고 누구를 기다리던지... 헛;;
한나님 단아하면서 예쁘네요 🧡
별을 보기 위한 천문대가 아니라 별에 제사를 하던 제단입니다. 첨성대의 구조는 들어갔다 나오기 위해 만들어진게 아니라 한번 들어가면 다시 못나오게 하기위해 내부 벽을 타고 오르지 못하게 만들어 인신공양으로 별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던 제사시설입니다.
외부돌은 반듯하게 깍여있지만 내부도 보니 내부면은 짱돌 그대로 던데... 손발 달린 사람이면 충분히 잡고 나올수 있을꺼 같은디요?
@@gkdtjr81 일단 관심있는 댓글 대단히 감사합니다.제 주장은 그냥 추측이며 아무런 근거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다만 외부경사에 비해 내부 벽면은 기울기가 역경사라 매달려 오르기는 어려우리라 생각했습니다
상단의 정자석은 지진을 염두에 둔 구조물. 불국사에도 방진을 위한 설계가 발견됨.
언니 경신대기근 다뤄주시면 안될까요ㅠㅠ 너무 궁금해요 그 대기근이 지구의 온도가 1도가 높아져서 그랬다는데 진짠가요?😮
화약의 역사는 우리 생각보다 오래되었죠, 당시 백성들에게는 거의 외계문명이였고,
하늘의 움직임을 신의 계시로 여겨 국정에 반영하던 고대에 신라지배층은 화약을 신의 계시로 이용합니다
만약 첨성대 내부에 그을림이 있다면 비밀리에 화약을 쏘아올리던 장소이고
첨성대의 이름은, '별을 첨가하는 대' 가 진짜 의미겠죠
Good, dear O J.
자꾸 높이가 낮다고 하시는데 당시에는 지금보다 별이 훨씬 선명하게 보였을거라고 합니다 높게 만들어봤자 백성들만 더 힘들어지고 높은데서 별을 보든 낮은데서 보든 큰의미가 없는겁니다
디자인에관한 이야기 새롭고 신기하네요~
활용적인면은 점성대같아요ㅠㅠ
한나쌤. 용광로였다고 하는 썰이있잖아요? 어링불? 인가요? 그 소설 저자가 그렇게 얘기했나 일부 학자분들도 그렇게 얘기한걸로 아는데 그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김동욱 용광로라고 하기에는 내부 그을음 자국같은게 발견이 안되서요
"어링불" 안병호 저 스토리텔링출판사
"김유신" 안병호 저 그렝펄슨 출판사
단 , 김유신은 2022년 말 경 출간예정
위 두 책에서 첨성대는 용광로
옆구리 창은 풀무 바람 넣는 곳
김기민 님 감사
큰오빠입니다. 잘듣고 갈께요.
옵스큐라설은
축소모형 만들어서 실험해보면
증명 가능하지 않을까요?
저의 가설을 첨부 합니다.
일단 의문점은
높은 산지가 아니고 궁궐 근처 평지에 지어졌다는 것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
그리고 왜 그렇게 좁게 만들었냐는 것
모두를 만족하는 가설이 생각 났습니다.
몇 년 전에 일행의 권유로 수학여행 이후로 다시 첨성대에 갔었습니다.
수학여행 때는 잘 몰랐는데.
밤에 사람이 없는 한적한 첨성대를 보니 주변에 넓은 광장이 있더군요.
천문관측대가 아니고 천문기록지라고 생각해봅시다.
정좌석 위에 별도의 관측기구가 있었다고 가정하면
구조는 간단하게 좌우로 회전하고 상하로 회전하는 가느다란 관을 설치하고
그것으로 관측하고자 하는 별을 찾아 그 상태로 고정합니다.
그리고 그 관의 일직선상에 닿는 지면에 해당 별의 태그를 붙여 작은 말뚝을 박아 놓는 겁니다.
그렇게 1년동안 기록을 하면 첨성대 주변에는 각각의 별의 이동을 나타내는 거대한 지도가 완성 됩니다.
(나중에 색색의 실로 같은 별의 자리는 구분해서 메어 놓으면 더 확실히 보이겠죠?)
보통 움직임이 큰 별들은 달과 태양계에 있는 행성들일 겁니다.
그렇게 몇 개만 기록해도 기후변화나 특이한 천체 현상을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땅에 일직선을 그리는 방법인데요.
긴 막대나 줄 등을 이용한다면 기록할 때마다 오차가 클겁니다.
하지만 빛을 이용하면 어떨까요?
그 당시에 거울이 없다고 하셨지만 신라시대 이전에도 거울이 있었습니다.
청동거울은 역사가 오래 됩니다.
보통 종교의식이나 주술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데
거울은 빛을 반사하는 것인데 그것에 무슨 주술적인 의미가 있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만약 관측한 관의 반대쪽에 횃불을 들고 거울로 반사시켰다면 어떨까요?
오목거울은 만들기 어려웠을 테니
여러 개의 거울을 엮어 오목하게 만들었다면?
(보통 청동거울의 뒤 쪽에는 걸이 용도의 돌기가 있죠)
관을 통해 반대쪽 땅에는 관의 그림자와 관을 통과해 나오는 빛의 상이 맺혔을 겁니다
그 곳에 작은 말뚝을 박으면 되죠.
다른 부속(나무나 금속으로 만든)들은 모두 소실 되고 돌로 된 지금의 모습만 남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별의 기록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하늘의 뜻을 안다는 의미로 쓰였으니
여왕의 위상에도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경주는 지진이 많았던 곳이고 지진 피해를 덜 입으려고 첨성대 밑에는 요즘 내진 설계 비슷한 구조물도 만들었습니다. 하단 내부에도 역시 지진에 대비해서 돌 등으로 채웠습니다. 그런 곳 내부에 계단을 만들기 힘들고 한국에 현존하는 고대 석탑에 내부 계단은 없습니다. 미륵사지 석탑도 제일 밑에 십자 통로만 존재하고 분황사 모전 석탑도 1층 공간만 존재합니다. 탑으로 내부에 계단이 존재하고 위로 올라가는 게 가능합니다.
한나님 판찰라스채널 가보시면 깜짝 놀랄거에요.
요즘은 지상에 조명들이 많아서 낮은 곳에서는 별이 안보이지만 옛날에는 지상에 조명들이 없어서 낮은 곳에서도 별 관측이 쉽겠죠?
건천을가면 자궁산이있어요 선덕여왕 자주기도하러갔는설이있어요 그것을봤을때 여자몸매같아요
옷이 이뻐요 ㅎㅎ
꽃무늬 의상에 볼터치 붉음스레 하니 청순하면서 단아하네요 이뻐요
좋아요
정말 카메라역할로 옵스큐라기법 원리를 이용했다면 기분 좋은 소오~름.... ㅎㅎ
제사장급이 아마도 기도하거나 수행정진 했을수도 있음
또는 기간을 두고 반성하라는 터 아닐까요
내 이럴 줄 알았다! 애초에 내가 수학여행가서 첨성대보고 저걸가지고 무슨 천체를 관측한단 말인가.. 생각했음.
딱봐도 그냥 탑이야... 천몇백년전 건축물이면 맨날 미스테리다 어쩌다 그렇게 보니까 온갖해석이 다 나오는거.
걍.. 탑이야 탑! 그것도 당시 인도불교건축양식에 영향받은 그냥 탑이라고!!!!
인도에 가면 저런 콜라병모양 탑이 차고 넘친다고!!!
Good, dear Soso Park.
🇰🇷천년을넌게견뎌온모물👍👍✌✌✌👐👐👐💕💖💞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_🙏🙏🙏_
난 처음부터 첨성대가 29:30 에 나온 감옥이라고 믿었다!!! 가다가 사다리 올라가서 토마토 던져주고 볼일도 보고하는거임
상징물로 봐야죠.. 별을 보려면 산에 올라가서 보는게 훨씬 이치에 맞는거지.. 저길 왜 들어감
한나님 지금입고있는거 생활한복이죠? 어디서 구매하세요? 이쁘네요.치마는 어떤가요? 상의만봤는데도 왠지 섹시해보이네요.~^^
이근아 꼬레아노 제품입니당 원피스형이구용 인사동에 매장도 있구 인터넷쇼핑몰도 있어요~
@@hanna-tv 감사합니다.~^^
흠 제가 알기로는...첨성대 둘레로..물이 있었다고 해요..그래서 창문 같은 곳을 통해 올라가서 꼭대기 위에서 별이 비치는 모습을 봤다고 들었어요..그 물에 별 위치를 표시해서 농사를 위해 이용했다고 전에 배운적은 있었거든요..첨성대 주위에 물이 있었다는 자국이 있었다고...
옵스큐라설 진짜소름돋네요 저도 개인적으로 옵스큐라설이 맞았으면 좋겠어요 문화제청에서 흙파보고 진짜로 실험해봤으면 좋겠네요ㅜ
카메라 옵스큐라설은 유물을 건들어 보기보단 모형을 직접 제작하여 실험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의 소방서 관측탑같은거요
작은 나라가 몇번 바뀌고 수많은 전화를 지나 일본에 지배까지 받으면서
저 모습 그대로가 처음 완성된 모습과 다를 수도 있죠
역사란 눈감고 손으로 더듬어 지도를 그리는것과 다를게없죠
이름대로 해석해야 될것으로 사료되며
우리민족은 하늘을섬기며는 민족이며
첨성대는 복두칠성과 관련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인 물건이나 건축물을 보면 진짜 궁금해서 스트레스가 쌓일정도임.
진짜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가고 싶을정도.
그래서 학창시절에는 역사공부 안했죠. 머리아파서 ㅎㅎㅎ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저 구멍은 저 멀리있는 별을 관찰했을것으로 추정
웃으시니까 너무 귀엽게 이쁘시네요...^^ 설명할 때는 진지한 표정이시고 너무 재미있어서 잘 보고 있어요...
첨성대가 천문관측을 위한 것 이었는가 를 놓고 보자면 고대 신라인들은 이미 상고 이전부터 천문관측이 가능했습니다.따라서 천문관측을 위한 첨성대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요 아마도 동서남북의 사방의 井을 윗단에 올려놓은 것은신정(나정 신궁)의 표식 을 의미했을 것 이며 대광성을 향해 기도나 제사를 지냈을 것 으로 보입니다.
혹시 대광성이 어떤 별을 말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jammingcode5896 저도 궁금합니다.
어떤 별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다만 그 시기 천문학
적 관점에서 무지했던 시대가 아니었기에
단순한 의미의 별은 아니었던 것 으로
보입니다. 삼국사기 파사이사금 기 를
보면 (2월 혜성이 동쪽에 나타났다. 다시
북쪽에 나타나더니 20일 만에 사라졌다.)
되어 있고 화랑세기 에선
(2월 대광성이 동북쪽에 나타나더니
무릇 20일 이었다. 혹은 성인이 나타난다
하였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천자를 상징하는 의미라면 아마도
금성을 말함이 아닐까 추측을 해 봅니다.
한복 입은 한나님 너무 예쁩니다. 당신은 소중합니다~
3:49 한나님은 콜라병 몸매~
흙을 채운 의도가 그 본 기능을 못하게 할거라면 차라리 첨성대를 무너뜨려버렸겠지요.좀더 연구해야겠네요. 저같이 촉이 좋은 사람이 바빠서 연구 못하는게 아쉽네요.
개인적으로는 거대 망원경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과거에는 부족국가 혹은 도시국가의 성향이 강했고 신라가 단합된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도 불교의 힘이 컷죠. 그리고 고대 국가의 발전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신정일치시대를 신라도 겪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쉬운 단합을 위해 불교가 정신적 상징이었지만 불교는 왕의 것이 아니었죠. 떄문에 나름 신정일치시대의 강력한 왕권의 회귀를 꿈꾸었들 것도 같습니다. 첨성대는 별을 관찰하여 농사의 시기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퍼트림으로서 종교가 분리된 국가에서 불교의 권위를 뺏어옴으로서 왕권 강화와 농업국가로써 백성들에게 파종과 수확의 시기를 알려주어 이권을 분배하는 기능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동양에서 별을 관측하고 파종과 수확의 시기를 결정하는 달력을 만드는건 전통적으로 중국식 표현은 천자 우리는 하늘님 서양은 교황이 주제했죠. 그리고 그것은 신정일치시대의 신의 권능 이었으니까요. 아마도 첨성대는 그런 다목적 기능의 건축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왕능이 늘어선 곳에 있다는 이유 만으로 많은 것을 시사 한다고 생각합니다.
첨성대의별성은왕들을뜻하고왕들이죽고나면무덤자리를표시하기위해첨성대가만들어진게아닐까요?첨성대를기준으로경주에있는왕들의무덤위치를조사하면기준점역할을할수있었다고생각해봅니다 제를올릴때왕무덤이많으면누가누구무덤인지위치표시같은역할~
Good, Mr. Sung hoon Lee.
옛날에는 전기 조명이 없어서 별보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에 산위에 지을 필요가 없죠.
歷史 선생님 한나님!! 저두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는데.. 아프리카 비제이분 중에 한나님 같은 분께서 계시다는게 너무 감사합니다..앞으로도 꾸준한 활동.건강유념! 하씨며! 더욱더 번창 하세요..^^👍😉🙏
제가 팬이 되어간다능요~~^
9:50
논리 잘들어내요.저도 그람 가설
대조선 여기부터 나가야 할듯
우리 조선은 하늘에 천문에 관심
많아요 별 북극성
중심적으로 이동 하는 민족임
조선 아침조가 별 태양 달 합처진게
아침조에요 첨성대 주위에 하늘에
별자리 북두칠성 있다고 햇어요(주위연못)
하늘에 별자리를 땅에다가 옴겨놓은
거라고 사인검은 하늘에 제사
지낼때 쓰는검 사인검도 북두칠성이
있음
이런말 있어요 우리는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별자리로 인용해 말할게요..우리는 북극성에서 와서
북두칠성으로 감니다..그래서 고인돌이 많은이유 칠성판으로 덥는대요
두서 없지만 혼자 떠들고 감니다
춘천 중도섬에 대해 얘기 해주세요
삼국시대때 신라를 대표할 선덕여왕의 모습을 땅과 하늘과 연관지어 신비롭게 극대화하여 여왕을 높혀 기리며 아울러 별을 관측한 장소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별자리를 보며 전쟁이나 기근이나 재난을 예측하는 장소로도 사용할 수 있게요. 신라 민족이 점성술을 믿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사우디 호포푸. 공주별장 금방에가면. 산봉우리마다. 첨성대가. 아직도. 많이 있음. 용도는. 났에도. 사람이. 망을보고. 있드라. 첨성대. 상두쪽은 아라비왕족들에. 머리스는. 각하고. 많이. 닳아음